2002년 거리응원세대, 24년 만에 자녀 손잡고 응원장 찾아
기업 마케팅·굿즈 소비·체험부스까지 '월드컵 특수' 활기
승패 떠나 세대 잇는 문화·경제 축제로 자리매김
"2002년에는 고3이라 월드컵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는데, 이제는 아이들과 함께 응원하러 왔습니다."
19일 한국과 멕시코의 2026 북중미 월드컵 경기를 앞둔 응원 현장은 이른 아침부터 붉은 물결로 가득했다. 시민들은 응원복을 입고 삼삼오오 모여 기념사진을 찍거나 주변 부스를 둘러보며 축제 분위기를 만끽했다. 가족 단위 관람객부터 연인, 친구, 기업 홍보단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현장을 찾으며 월드컵이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거대한 문화·경제 행사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줬다.
◆ "2002년 거리응원 세대, 이제는 부모가 되다"
응원장 곳곳에서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태극기를 흔드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거리응원의 주역이었던 세대가 24년 만에 자녀와 함께 현장을 찾은 것이다.
경기도 의왕에서 가족과 함께 응원장을 찾은 서정훈(42) 씨는 이날 하루 업무를 뒤로하고 가족들과 특별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그는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왔다"며 "오늘은 한국이 이길 것 같고 손흥민 선수의 득점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내 방민경(42) 씨에게 이번 월드컵은 더욱 특별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그는 "입시 때문에 월드컵 분위기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며 "24년이 지나 아이들과 함께 응원할 수 있게 돼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는 생애 첫 월드컵 응원이었다. 서유나(17) 양은 "처음 경험하는 월드컵이라 설렌다"고 했고, 서예준(14) 군은 "축구에는 큰 관심이 없었는데 와보니 생각보다 재밌다"며 웃었다.
2002년 월드컵을 추억하는 부모 세대와 처음 월드컵을 경험하는 자녀 세대가 한 공간에서 응원하는 모습은 이날 현장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거리응원의 주역이었던 40대는 어느새 부모가 됐고,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월드컵의 기억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 응원도 하고 홍보도 하고…기업들 "월드컵 특수 잡아라"
기업들도 월드컵 열기를 놓치지 않았다. 경기장 주변에는 브랜드 홍보 부스와 체험 이벤트가 곳곳에 마련됐다. 수만 명의 관람객이 모이는 응원 현장은 기업 입장에서 소비자와 직접 만날 수 있는 대형 마케팅 공간이다.
화장품 기업 마녀공장 마케팅팀 직원들은 단체로 현장을 찾아 홍보 활동과 응원을 병행했다. 마케팅팀 직원 정아름(30) 씨는 "회사에서 판촉 홍보도 하고 월드컵도 즐기고 오라고 했다"며 "한국의 승리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행사장 곳곳에서는 경품 이벤트와 체험 프로그램이 이어졌고 시민들은 부스를 돌며 기념품을 받거나 브랜드 체험에 참여했다. 월드컵과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소비 촉진과 브랜드 노출 효과를 동시에 가져오는 만큼 관련 마케팅 경쟁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 "월드컵도 데이트 코스"…20대가 즐기는 응원 문화
경기 종료 후 응원장 한편에서는 아쉬움을 달래며 기념사진을 남기는 연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한국이 멕시코에 패배했지만 커플들은 응원 머플러와 태극기를 든 채 서로를 격려하며 경기 이야기를 나눴다. 일부는 인근 식당과 카페로 발걸음을 옮기며 응원의 여운을 이어갔다.
정민규(20) 씨와 허예원(20) 씨는 경기 직후 "결과는 아쉽지만 다음 경기가 남아 있는 만큼 계속 응원할 것"이라며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응원하고 현장 분위기를 즐길 수 있어서 좋은 추억이 됐다"고 말했다.
승리의 기쁨은 없었지만 응원 현장을 찾은 젊은 세대에게 월드컵은 여전히 즐길 거리였다. 과거 거리응원이 국민적 응집력의 상징이었다면, 오늘날 20대에게 월드컵은 친구와 연인, 가족이 함께 추억을 만드는 문화 콘텐츠이자 여가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 희망을 전하는 아이들의 메시지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뒤 응원장에는 아쉬움이 감돌았지만, 아이들의 표정에서는 월드컵을 직접 경험했다는 설렘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한국의 패배에 아쉬워하면서도 현장에서 친구,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을 더 오래 기억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최찬율(12) 군은 "이강인 선수의 킥과 엄지성 선수의 크로스를 조규성 선수가 넣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웠다"며 "그래도 친구들과 함께 응원해서 즐거웠고 좋은 추억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최주원(12) 군은 경기 직후 "골키퍼가 공을 너무 잘 막아서 아쉬웠다"며 "실제로 축구 경기를 이렇게 크게 보는 건 처음인데 결과는 아쉬워도 정말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최서인(12) 양은 "한국이 져서 아쉽지만 친구들이랑 같이 응원해서 더 특별했다"며 "어머니와 함께 와서 좋은 추억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유하람(12) 군도 "경기 결과는 아쉽지만 친구들이랑 같이 응원하니까 재미있었다"며 "월드컵 현장에 와본 게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쉬운 패배에도 아이들은 승패보다 현장에서 느낀 응원의 열기와 함께한 사람들과의 시간을 더 크게 기억하고 있었다. 월드컵이 남긴 가장 큰 선물은 결과보다도 세대와 세대를 잇는 추억이었다. 2002년 거리응원의 기억을 품은 세대와 처음 월드컵을 경험한 세대가 한자리에 모여 같은 경기를 바라본 이날의 풍경은, 월드컵이 단순한 축구 경기를 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문화·경제 축제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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