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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미의 와이 와인]<333>크리스티앙 무엑스의 여정…율리시스의 우아한 존재감

<333>美 나파밸리 율리시스 빈야드 '크리스티앙 무엑스'

 

안상미 기자.

두 개의 포도나무 뿌리가 있다. 하나는 곧고 길게 뻗어 있고, 다른 하나는 구부러져 지표면으로 솟구치고 있다. 이 둘 중에 어느 것이 인위적으로 물을 주는 인공관개를 하지 않은 포도나무일지 마음 속으로 정해보자.

 

정답은 예상과 달리 땅 속으로 뿌리를 길게 뻗은 나무다. 물이 없는 환경에서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애쓴 결과다. 땅 속 깊은 곳에서 그대로 빨아올린 미네랄과 땅의 고유의 개성이 포도알로, 그리고 와인으로 그대로 전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 나파밸리 율리시스 빈야드를 이끌고 있는 크리스티앙 무엑스(사진)가 포도나무 뿌리를 비교한 사진으로 드라이 파밍을 설명하고 있다. /안상미 기자

미국 나파밸리 율리시스 빈야드를 이끌고 있는 크리스티앙 무엑스(Christian Moueix·사진)는 최근 방한한 자리에서 "5~6m까지 깊게 내린 뿌리로 와인은 테루아의 본질을 가장 순수하게 표현하게 된다"며 "식재와 수확, 양조까지 와인에 최소한의 개입으로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사실 크리스티앙 무엑스는 와인업계에서 설명이 필요없는 인물이다. 보르도 우안의 전설적인 와이너리 샤또 페트뤼스흫 38년간 이끌며 와인 양조의 새로운 기준을 세웠고, 현재도 뽀므롤과 생떼밀리옹에서 8개의 샤또를 운영 중이다. 그는 가문의 전설에 머물지 않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 나파밸리에서도 도미누스 에스테이트로 테루아의 독보성을 알리고 컬트와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미국 나파밸리 율리시스 빈야드를 이끌고 있는 크리스티앙 무엑스(사진)가 와인 율리시스 라벨의 그림처럼 활 시위를 당기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안상미 기자

보통이라면 여기서 끝날 스토리지만 크리스티앙 무엑스는 다시 한 번 길을 떠났다. 2008년 율리시스 빈야드(Ulysses Vineyard)를 인수하면서다. 같은 나파밸리에서도 도미누스가 욘트빌이라면 율리시스는 오크빌에 위치했다. 보르도 메독에서도 마고와 생줄리앙, 포이약 등이 각기 다른 개성이 있는 것처럼 나파밸리 역시 차이가 있다. 포도나무부터 다시 심어야 하는 곳이지만 테루아에 대한 확신이 섰다.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 '율리시스(Ulysses)'에서 그리스 신화 속 율리시스(오디세우스)가 기나긴 모험을 거쳐 고향에 돌아갔지만 다시 도전에 나섰듯이 말이다. 그래서 포도밭도, 와인 이름도 율리시스다. "분투하고, 추구하며, 발견하고, 굴복하지 않으리라." 이 시구에서 비롯됐다. 끝나지 않는 항해와 탐구를 노래한 시는 크리스티앙 무엑스가 평생에 걸쳐 테루아를 깊이 이해해 나가는 과정 그 자체와 닮아 있다.

 

왼쪽부터 율리시스 2014, 2016, 2018, 2021 빈티지. /안상미 기자

율리시스는 카버네 소비뇽을 중심으로 카버네 프랑과 쁘띠 베르도를 조금씩 더해 완성했다. 와인에 크리스티앙 무엑스를 담은게 아니라 율리시스 포도밭 자체의 개성을, 그리고 해마다 펼쳐진 기후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2014년은 다시 심은 포도나무들이 제 역할을 하기 시작한 해이자 지진의 빈티지다. 수확이 얼마남지 않은 8월에 진도 6이 넘는 지진이 있었는데 포도의 맛이 달라졌다. 보통 재해라고 하면 안 좋은 영향을 떠올리겠지만 포도는 오히려 맛이 좋아졌다.

 

그는 "지진으로 땅이 흔들리면서 토양이 섞였고, 강수가 올라오면서 포도나무에 좋은 변화를 줬다"고 설명했다.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좋은 산도와 벨벳같은 질감이 잘 어우러진다.

 

2018년은 나파밸리에서 그레이트 빈티지로 꼽히는 해다. 좋은 밭이 좋은 해를 만나 진가를 발휘했다. 나파밸리 특유의 풍요로운 과실미와 보르도식의 구조감과 우아함이 공존하는 그런 모습 말이다. 집중도 있는 과실이 매끄럽게 광택이 나는 타닌 위에 펼쳐지고, 층층이 다른 모습이 잘 짜여 있다.

 

크리스티앙 무엑스는 "율리시스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만 유일무이한 '존재감'"이라며 "2018 빈티지가 딱 그런 모습"이라고 말했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이라면 2018 빈티지는 프랑스 와인인가 고개를 갸웃할텐데 2021 빈티지는 미국 와인이라 확신할 만한 스타일이다. 잘 익은 과실향 뒤로 단맛이 느껴진다. 가뭄이 2년 연속 이어지면서 포도알은 깊고 강렬하게 응축됐다. 잔당감으로 매운 음식과도 어울릴 와인이다.

 

율리시스가 다시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섰듯 크리스티앙 무엑스의 여정 역시 끝이 아니다. 힌트는 아르고스다. 20년 만에 귀향한 율리시스를 유일하게 알아보고 반긴 충견의 이름이다.

 

마무리도 테니슨의 시구로 한다. "나는 여정을 그만둘 수가 없다. 내 삶의 마지막까지 다 마셔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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