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재벌이 걸어온 길-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 흙수저, 최연소 임원이 되다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은 지난 2021년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Forbes)가 발표한 '2021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서 한국 1위에 올랐다. 세계 145위였다. 자산은 142억 달러(19조4250억원)로, 세계 297위를 기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83억 달러)보다 8조 이상 많았다. 지난 2000년, 셀트리온을 창업한 지 불과 20년 만에 이룬 성과였다. 그는 '살아 있는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린다. 삼성전기를 거쳐 대우자동차를 다니던 직장인 시절, 외환위기에 무너지는 그룹을 지켜봐야만 그는 위기 직후인 2000년, 후배 다섯명과 함께 5000만원으로 셀트리온의 전신인 넥솔을 설립한다. 이 넥솔은 훗날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서 세계 첫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하며 'K-바이오'의 초설을 다진 셀트리온그룹으로 성장한다. 서 명예회장은 국내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부호로, 재벌 2·3세가 주를 이루던 80년대의 재계에 새로운 '신흥재벌'의 등장을 알린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2020년 65세 정년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2년만에 다시 경영에 복귀하며 연 매출 30조원의 통합 셀트리온그룹을 세우고 있다. 자수성가의 신화, 서 명예회장과 셀트리온의 역사를 짚어본다. ◆연탄 나르고 택시를 몰던 학생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은 1957년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때 고향을 떠나 서울 구파발 기자촌으로 올라왔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연탄장수였다. 학교를 마치면 부모님, 동생과 함께 연탄 배달을 했다. 아버지 장사를 돕느라 고등학교 진학도 2년 늦어졌다. 뒤늦게 인천 제물포고등학교에 들어가며 현재 셀트리온 본사가 있는 인천과의 인연이 처음 시작됐다. 건국대학교 77학번으로 바이오와는 거리가 먼 산업공학을 전공했다. 대학교 3학년 때 지금의 부인과 결혼을 하면서 지방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내의 출근을 돕기 위해 택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아침에 택시로 아내를 데려다주고, 합승 손님을 태워 서울로 돌 아왔다. 택시를 몰고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 교습비를 반값만 받고 운전을 가르치기도 했다. 24시간 학교를 다니고 24시간 택시 기사를 하는 생활이 반복됐다. 그런데도 그는 4.3만점에 4.18이라는 높은 학점으로 3년만에 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당시 자신이 공대 출신 가운데서는 문교부 공식 '조기졸업 1호 학생'이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쉽지 않은 어린 시절이었지만 그는 아직도 '흙수저'라는 말을 싫어한다. 서 회장은 자신의 자서전 '서정진, 미래를 건 승부사'에서 "절박함이 있는 사람은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고 잘못되었으면 다시 되돌아가면서 자신이 성공할 때까지 본인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바쳐 본능적으로 노력하게 되어 있다"며 "그래서 흙수저라 힘들다, 어렵다고 단정 짓기 전에 내가 가진 절박함이 미래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충분히 고민해본다면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재벌 1·2세대를 경험하다 그의 첫 직장은 삼성전기였다. 그룹 비서실에서 근무하며 지금은 고인이 된 이병철 삼성 전 회장을 가까이에서 모셨다. 서 명예회장은 지금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이병철 회장을 꼽는다. 그는 "이병철 회장은 '사업보국 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 내가 보기에 가식이 아니었다. 이 회장은 나라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서정진 회장은 삼성에서 4년을 재직한 후 한국생산성본부로 직장을 옮겼다. 대우가 GM으로부터 새한자동차를 인수해 대우자동차로 사명을 변경한 후였다. 대우자동차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며 생산성본부에 자동차 품질과 생산성 혁신 방안에 대한 컨설팅을 의뢰했다. 의뢰를 맡은 서 명예회장의 답은 단 세 줄이었다. "개발을 하면 개발을 해서 망하고, 개발을 안 하면 차가 없어서 망하는데, 왜 GM을 인수하셨습니까?" 당시 차를 팔려면 차종이 최소 5개는 있어야 했다. 차 한 대를 개발하는데 3000억원이 들었다. 당시 대우자동차 생산량은 연간 20만대. 개발비만 대당 150만원이 나오는 꼴이었다. 차를 팔아봐야 개발비도 건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서 회장은 "동유럽이 개방되니 그들의 자동차 회사를 인수해 200만대 규모로 늘리면, 차 한 대당 개발비를 15만원 으로 낮출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 말을 들은 김우중 회장은 며칠 후 운전기사를 보내 서 명예회장을 임원으로 스카웃했다. 1990년, 그의 나이 고작 34살 때였다. 그는 최연소 임원으로 대우자동차에서 세계화추진본부장을 맡으며 경영혁신 활동에 뛰어들었다. 해외 공장을 만들고 해외기업을 인수했다. 나중에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을 때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대우 그룹은 결국 무너졌고, 무리한 세계경영이 대우 해체의 원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서 명예회장은 "대우가 무너진 책임의 절반이 나에게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직장 생활 중 한국 재계의 1세대, 2세대를 직접 지켜본 경험들은 훗날 그가 셀트리온을 키워내며 신흥 재벌로 성장하는데 좋은 밑거름이 됐다. 그는 자신의 자사전을 통해 "그들은 절대 권력을 행사했다. 1세대들이 지금 경영을 한다면 장점이 살아나기 힘들 거다"라며 "요즘 젊은이들은 절대 권력을 휘두르거나 윽박지른다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창업자들은 직원들과 소통이 안 되면 성공할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통해 성공의 조건으로 '생활 습관'을 강조해 왔다. 그는 한 강연에서 "사업을 할 때와 월급쟁이를 할 때, 임원을 할 때도 똑같은 것 하나는 단 하루도 그냥 살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똑똑하다 안 똑똑하다는 중요하지 않다. 흙수저, 나무수저도 중요하지 않다. 젊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제일 큰 재산,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본인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지금와서 대단히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 다 평범한 사람들이었단 것이다"라며 "여러분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실패란 단어는 없다. 아직 성공하지 않은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