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드는 망 중립성 上] 망 중립성 논쟁, 다시 불붙은 이유는?
5세대(5G) 이동통신 시대가 눈 앞에 성큼 다가왔다. 지난해부터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도 초고속·최첨단의 5G 네트워크가 기반이 되지 않으면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 그런데 이동통신사들은 5G 네트워크 투자에 주저하고 있다. 지금까지 통신업체들은 유·무선 네트워크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다. 그 결과 세계 최고 수준의 통신 인프라를 기반으로 우리 ICT 산업이 '세계 최강'이란 꽃을 피웠다. 하지만 정작 돈은 다른 서비스 사업자들이 가져갔다. 이런 전례가 5G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다. 그렇다고 세계적 추세인 5G에 대비하지 않을 수도 없다. 이에 따라 통신사업자들이 네트워크에 충분히 투자하고, 그에 맞게 수익을 가져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를 둘러싼 '망 중립성' 논쟁도 서서히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망 중립성'을 둘러싼 국내외 움직임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데이터 부담 없이 '포켓몬고' 게임을 즐기는 게 문제가 될까. 소비자 입장에서는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오히려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이런 공짜 데이터를 제공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특정 콘텐츠 사업자에만 유리하기 때문에 쏠림 현상이 발생한다는 논리다. 지난달 21일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 고'와 데이터 이용료 제휴 마케팅을 시작한 SK텔레콤의 얘기다. SK텔레콤 측은 "포켓몬고에 소요되는 데이터를 무료로 제공하는 게 아니다. 게임 사업자와 계약을 통해 그 사업자가 소비자 대신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어서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반응이지만 지난달부터 이 이슈는 통신업계와 게임업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 이 같이 소비자의 데이터 사용 요금을 경감시켜주는 '제로레이팅' 서비스가 출시되고 있지만, 차별 없이 망을 개방해야 한다는 '망 중립성' 원칙에 위배된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국내 제로레이팅 서비스는 SK텔레콤의 자사 서비스 '11번가',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벅스', KT의 'KT 내비', LG유플러스의 '지마켓', 동영상 서비스 '비디오포털'의 일부 콘텐츠 등이 있다. 대부분 자사 서비스에 한시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제로레이팅이 논란이 된 이유는 망 중립성 위배 여부 때문이다. 망 중립성(Net Neutality)은 네트워크 사업자(ISP·통신사)가 네이버, 카카오 등과 같은 모든 콘텐츠 사업자에 망을 차별 없이 개방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201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서 한참 이슈가 됐던 망 중립성은 최근 미국에서도 논쟁의 불이 붙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개인정보 보호 규제 조항을 무력화하는 결의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고, 이를 발판으로 망 중립성 폐지 움직임을 보이며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5세대 이동통신(5G) 망 구축을 위한 투자 부담이 늘어나고,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 등장으로 이동통신 트래픽이 폭증하면서 각 사업자들의 이해관계가 다시 얽히기 시작했다. 통신사의 "무임승차는 안 된다"는 주장과 콘텐츠 사업자들의 "망은 차별 없이 공정하게 써야 한다"는 주장이 재점화된 것이다. ◆망 중립성이 뭐길래…'무임승차' 논쟁 재점화 통신사업자는 망 네트워크 설치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다. 하지만 수익은 다른 사업자들이 가져간다. 이동통신사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도로를 깔았는데, 콘텐츠 사업자들이 그 도로에서 차를 운행하며 정당한 도로 이용료도 내지 않고 돈을 챙겨 가는 형국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이동통신사들은 ICT 산업의 성장 밑천만 깔아주고, 정작 돈은 못 버는 상황"이라며 "콘텐츠 사업자들은 업계 입장에서 보면 '무임승차'에 가깝다"고 토로했다. 이런 이유로 네트워크 사업자들은 콘텐츠 운영자들에게 통신망 구축비용의 일부를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네트워크 사업자는 가입자 시장 포화로 인한 요금 인하 경쟁과 늘어나는 네트워크 투자비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반면, 콘텐츠 사업자는 콘텐츠 진흥책 등에 힘입어 첨단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고속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상황 변했다"…CP 영향력 커지며 '책임론' 부상 국내에서 망 중립성 논쟁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은 2012년, 카카오톡의 모바일 인터넷전화(mVoIP) '보이스톡' 출시다. 이동통신 3사와 카카오 사이의 mVoIP 제한 논란 후 같은 해 KT의 스마트TV 접속 제한 사건 등이 불거졌다. 당시에는 통신사들의 조치가 콘텐츠·인터넷 서비스 제공자에 대한 차별로 비쳐지면서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업계에서 이제는 플레이어 간 상황이 바뀌었다는 시각이다. 인터넷·콘텐츠 업체들이 그 사이 안정적인 수익을 내면서 거대 사업자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벤처기업으로 시작한 네이버는 지난해 국내 인터넷 기업으로는 최초로 연간 매출 4조원, 영업이익 1조원 시대를 열며 'IT 공룡'이란 수식어를 얻었다. 영업이익률은 무려 27.4%에 달한다. 2006년과 비교하면 매출이 5733억원, 영업이익 2295억원 수준에서 10년 만에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7배, 4.8배 늘어난 수치다. 현재 시가총액은 26조7000억원으로, 우리나라 전체 기업들 중 여섯번째로 크다. 포스코, 삼성생명, SK텔레콤 등을 제친 규모다. 카카오도 지난해 매출 1조4642억원을 기록, 창사 이래 처음으로 매출 1조원을 넘어섰다. 각 사업자간 영역 구분도 없어졌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신사업 분야로 영역을 넓혀 이동통신사와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동통신 업계 관계자는 "콘텐츠제공업체(CP)들의 영향력은 커지고 있는데, 트래픽 폭증 부담은 고스란히 통신사 몫이 되고 있다"며 "네트워크 사업자들이 사라진다면 콘텐츠 사업자들도 살아남을 수 없는 만큼 일정 부분 생태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문병순 LG경제연구원 책임 연구원은 "서비스와 콘텐츠가 크게 다르고 이를 제공하는데 비용도 크게 다를 경우에도 망 중립성을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소비자에게 불편을 초래할 수도 있다"며 "이러한 경우에는 통신사가 콘텐츠 회사에게 접속료를 징수하고 그 접속료를 통신 인프라에 투자해 소비자들이 다양한 콘텐츠와 IT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소비자에게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