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낮 드러난 상장사 실적...신용등급 하락 리스크 UP
어닝시즌(실적시즌)이 종착역에 다다른 가운데 국내 주요 상장사가 우울한 실적 성적표를 내놓고 있다. 업황 부진과 과당 경쟁에 내몰린 기업들은 신용등급 하락 리스크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17일 신한금융투자 추정에 따르면 신용등급 A급 이상(안정적 전망) 상장사 가운데 88개사가 신용등급 변동요인에 도달했다. 이 가운데 40곳 이상이 하향 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기업은 회사채 발행을 위해 고금리를 제시해야 하고, 이도 안 되면 은행으로 발길을 돌려야 한다. 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되면 자금 조달에 드는 비용이 늘어나고, 부실 기업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불가피하다. 특히 빚 더미에 앉은 한계기업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 영업이익 전망 3개월 전보다 -19.3% 감소 재벌닷컴이 지난달까지 2018 회계연도 결산보고서를 제출한 매출 상위 100대 상장사의 지난해 영업이익을 분석한 결과 167조2360억원으로 확인됐다. 2017년(165조7850억원)보다 0.9% 늘어난 사상 최대다. 하지만 반도체 기업(삼성전자·SK하이닉스)을 제외할 경우 오히려 2017년보다 영업이익이 11% 줄어든다.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보험, 건설, IT 업체들의 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개선됐다. 반면, 대부분의 업종은 악화됐다. 에너지, 기계, 조선, 유틸리티는 여전히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2018년 상각전 영업이익(EBITDA) 추정치도 지난 2월 15일 기준 2017년 말 추정치 대비 약 28조9000억원 감소했다. 2019년 추정치는 약 60조2000억원 줄었다. 업종별로는 미디어, IT, 반도체 중심으로 추정치가 개선을 보이는 반면, 디스플레이와 유틸리티, 자동차 업종의 추정치가 하락하고 있다. 문제는 국내 기업 부진이 하루 이틀에 끝날 일이 아니란 점이다. 해외 투자은행(IB) 9곳의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 평균은 1월 말 기준 연 2.5%로 전월보다 0.1%포인트 떨어졌다.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통화기금(IMF)의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연 2.6%다. 노무라는 반도체 제조용 장비(-68.5%) 등 자본재 수입(-21.3%)이 감소해 앞으로 기업투자가 둔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신용평가는 단기 업황 전망이 우호적인 국내 업종으로 메모리반도체를, 비우호적인 업종으로 자동차·조선·유통·건설을 꼽았다. 유건 한신평 기업평가본부장은 "전반적으로 국내 기업 수익성이나 재무건전성을 과거와 비교하면 상당히 좋은 상황이지만 매출 증가 지표를 보면 둔화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지금 부각되는 경제성장률 전망치 하향이나 외부환경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향후 업황이 좋아지는 업종보다는 나빠지는 업종이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미 적잖은 기업이 낙인이 찍혀 있다. 신용평가 업계에 따르면 기업 등급전망은 긍정적 24개, 부정적 35개다. 또한 등급검토 대상은 상향이 4개, 하향 8개다. 우선 긍정적 또는 상향 검토 대상은 화학 업종이 5개, 건설사가 4개, 기계업종이 4개다. 반면, 부정적 또는 하향 검토는 자동차 및 부품이 6개, 여전사가 4개, 건자재업체가 4개, 유통업체가 2개, 디스플레이업체가 2개다. ◆ 등급변동 도달 업체 88개 한국경제에 대한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이근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2019년 한국경제 대전망'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경제가 단기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와 동반한 물가 상승), 중기적으로 고실업, 장기적으로는 성장과 복지, 재정 건전성의 트릴레마(trilemma·동시에 세 목표를 모두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 교수가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를 제기한 것은 국내 경기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 등 공급 측면에서 비용이 높아지는 쇼크가 발생하면서 실질적인 물가 상승 압력이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수출도 빨간불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세청에 따르면 1월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3.3% 줄어든 74억2100만달러로 조사됐다. 같은 달 수출은 5.9% 감소한 463억3000만달러로 조사됐다. 신한금융투자 김상훈 연구원은 "신용등급을 보유한 A급 이상(안정적 전망) 업체들 중 신평사들의 등급 변동요인에 도달한 업체는 총 88개다(상향, 하향 모두 넘어선 업체 2개 포함)"면서 "이중 등급 상향 가능 업체는 40개, 등급 하향 가능 업체는 48개다. 경기 둔화 신호가 감지되는 상황에서 이들의 등급 변동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