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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뚝배기

첫 해가 불쑥 떠올랐다. 나는 새해가 되면 운동회의 달리기를 상상하곤 한다. 하얗게 줄친 출발선에 발을 굳게 내디뎠던 그 맹랑한 모습을. 새로운 시간과 스치는 시간과의 맞바람 속에서 머리카락이 나부꼈다. 헐렁한 운동화의 끈을 꼭꼭 동여매며 얼마나 두근거렸던가. 눈빛은 또랑또랑 빛났다. 전력 질주할 태세였다. 목표 지점은 가마득했지만, 마음은 벌써 결승 테이프에 달려가 있었다. 심호흡을 했다. 그러다 출발 신호가 메아리치면 젖 먹던 힘을 다해 내달렸다. 그렇게 한해를 달려갈 달력을 바라본다. 365일 코스. 그 출발선 앞에 서면 매년 그랬듯이 설레고 긴장된다. 이제 이골이 나서 무덤덤할 만도 하련만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듯 여전히 나를 흔든다. 굽이치는 쉰 두 개의 주일을 거쳐, 스무 네 번의 절기 변화와 네 번의 광활한 계절을 지나, 열두 산맥을 넘어야 하는 대장정! 달력 속에 펼쳐진 하루하루의 백넘버들을 어루만져 본다. 묘한 열기가 느껴진다. 박동치지 않는 날짜들이 없다. 살아 숨 쉬는 소중한 날들이다. 새해는 이리 가슴 벅차게 밝아왔다. 새해의 커튼을 여는 초읽기에 들어갔을 땐 한 초 한 초가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었다. 금쪽같은 시간을 실감했다. 삶을 가꾸고 꽃피우게 할 살아 있는 세포들이니 그럴 것이다. 아, 이렇게 눈으로 보고서야 시간의 귀함을 깨닫게 되는구나. 이런 생각도 스친다. 시간은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주어지지만 사용하기에 따라선 그 총량의 무게가 다르고, 시간 세포에 온도차가 있을 거라는 것을. 그래서 삶의 질이 달라질 거라는 것을. 동산에 올라 해를 바라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해는 태생적으로 신비하다. 매 순간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우리네 마음을 읽고 그대로 비춰주기 때문일 게다. 희망으로 보면 희망으로 응답하는 것이다. 삶이 팍팍할 때 문득 고개를 들어 해를 바라보는 것은 어쩌면 그런 에너지를 얻고자함인지도 모른다. 올해도 전국의 일출 명소마다 수십만 명이 북적거렸더랬다. 찌든 일상을 불태우고 새 소망을 축원했으니 해에게서 희망을 보았을 게다. 시작이라는 출발에는 종착역이 있다. 사람들은 새 아침에 저마다의 종착역에 간판을 내걸었을 터다. 행복한 삶을 살아갈 가치들이다. 며칠 전 우연히 한 음식점에서 혼밥을 하면서 그 하나를 건졌더랬다. 음식점은 가게들이 어깨를 맞대고 이어진 좁은 골목 안쪽에 들어앉아 있었다. 메뉴는 서너 종류가 보였다. 냉큼 부대찌개를 주문했는데, 이 가게 간판 메뉴여서 만은 아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부터 푸푸 끓으며 군침을 돌게 한 그것이 강력 추천하고 있었다. 반찬이 나오기에 부대찌개도 곧 등장하겠거니 생각했다. 가스레인지 위에 냄비째 올라오면 옆 테이블처럼 군침 돌게 끓일 참이었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다. 마음은 일찌감치 찌개를 끓이고 있었는데, 웬걸 뚝배기를 내놓는다. 잘못 가져왔나? 싶었는데 주인아저씨가 주문한 부대찌개란다. 주방에서 직접 끓였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오래 달궈졌는지 뚝배기는 보글보글 맛깔스럽게 끓고 있었다. 순간 잠시 허탈에 빠졌던 미각이 되살아났다. 맛이 기가 막혔다. 뚝배기와 부대찌개. 특정 요리를 이런저런 용기로 끓이라는 법은 없지만 부대찌개 하면 아무래도 무쇠 뚜껑이나 양은 냄비가 떠오른다. 이 상식을 깬 뚝배기는 여러 가지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었다. 뚝배기는 어떤 요리든 품을 줄 아는 큰 그릇이었다. 그 포용력으로 부대찌개를 웅숭깊은 새로운 맛을 창출했던 거다. 마음씨 역시 따뜻하고 포근했다. 마지막 국물 한 숟가락까지 변함없이 온기를 지켜주고 있었다. 새해 내가 뽑은 최고의 그릇이다.

2018-01-03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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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배터리 게이트, 삼성과 다른 대응에 소비자 '분통'

애플이 배터리를 이유로 아이폰 성능을 저하시킨 '배터리 게이트'에 대해 배터리 교체비용 할인이라는 대응책을 내놓은 뒤 오히려 더 큰 비난을 받고 있다. 갤럭시노트7 배터리 문제로 잃은 소비자 신뢰를 빠른 수습으로 회복한 삼성전자와 다른 행보를 걷는 모양새다. 1일 외신에 따르면 애플을 상대로 한 집단소송이 세계 각국에서 15건으로 늘어났다. 호주 퀸즐랜드에 위치한 법무법인 샤인 로이어즈는 2018년 초 소장 제출을 목표로 집단소송 절차에 착수했다고 이날 밝혔다. 호주에서 아이폰을 쓰다 피해를 본 사용자가 500만명이 넘을 것이며 10억 달러 이상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애플을 상대로 한 집단소송이 제기됐거나 추진 중인 국가도 미국, 이스라엘, 프랑스, 한국, 호주 등 5개국으로 늘었다. 지난 20일(현지 시간)애플이 아이폰6 이후 출시 제품들의 성능을 고의로 저하시켰다고 시인한 지 11일 만이다. 구형 아이폰의 성능 저하 의혹은 예전부터 제기됐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어 음모론 취급을 받아왔다. 의혹이 확인된 것은 뉴스 공유 커뮤니티 레딧에 사용자들이 '오래된 아이폰의 속도가 느려졌다'는 글을 올리면서다. 지난 9일 한 사용자가 "아이폰6S 배터리를 교체했더니 성능이 급격히 좋아졌다"고 주장했고 프라이메이트 랩스의 존 풀 설립자가 이를 검증하며 사실로 드러났다. 애플의 구형 아이폰 성능저하가 신형 아이폰 구매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용자들의 집단소송이 이어지자 애플은 지난 28일 사과문을 올리고 보상안을 공개했다. 사용자가 79달러를 지불해야 하는 아이폰 배터리 교체 서비스를 50달러 할인된 29달러에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되레 성난 사용자들에게 기름을 뿌린 격이 됐다. 국내 상황만 하더라도 법무법인 한누리에 따르면 애플코리아의 보상안 발표 전 3만명 수준이던 집단소송 참여자는 발표 후 하루 만에 15만명 늘어난 18만명에 도달했다. 법무법인 휘명이 집단소송 위임을 위해 개설한 인터넷 카페 회원도 2900명에 달한다. 지난 3분기 107억 달러(약 11조 70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고 CEO에게 급여 등으로 올해 1억200만 달러(약1094억원)를 지불한 애플이 사용자들에게는 기대에 못 미치는 제안을 한 것이 원인이다. 현지 매체 USA투데이는 "노후 배터리 교체비용을 낮추기보다 무료로 배터리를 교체해 줘야 한다"고 말했고 뉴욕타임스는 "이런 방식으로 문제에 대처하는 스마트폰 업체는 본 적이 없다"고 평가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애플의 사과문에 고위 임원진의 서명이 들어있지 않다"면서 "공개 사과하는 것은 CEO에게 주어진 책무"라고도 지적했다. 애플 이전에 스마트폰 배터리 문제로 곤욕을 겪었던 기업으로는 삼성전자가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6년 하반기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노트7'을 출시했지만 배터리 발화 사건이 발생하자 공식 사과와 함께 전량 리콜을 결정했고 문제가 재발하자 제품은 단종, 전량 폐기시켰다. 삼성전자가 시장에서 회수한 제품은 300만대가 넘는다. 제품 배터리만 교체해도 될 상황이었지만 소비자 안전을 우려해 제품 전량 회수와 폐기를 결정한 것이다. 소비자들에게도 전액 환불 또는 최신 플래그십 스마트폰(갤럭시S7)으로 교환 서비스를 제공했으며 갤럭시S7으로 교환한 뒤 이듬해 신제품으로 교체하면 기존 할부금을 50% 면제하는 혜택도 제공했다. 갤럭시노트7 구입 당시 사은품으로 제공했던 스마트밴드 기어핏2 등은 환불이나 교환을 하더라도 소비자에게 귀속시켰다. 제품 회수 과정에서 배터리 충전률 제한 등의 조치로 구설에 올랐지만 배터리 결함 원인을 조사하고 제3의 기관에도 의뢰해 분석 결과를 소비자들에게 공개하며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리는데 성공했다.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소비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자세를 유지한 덕분에 갤럭시노트7 배터리 결함 문제가 조기 해결됐고 차기작인 갤럭시S8, 갤럭시노트8은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다. 시장에 유통되지 않은 갤럭시노트7의 배터리를 교체한 갤럭시노트FE(팬에디션)도 소비자들의 뜨거운 성원에 조기 품절됐다. 한누리 조계창 변호사는 "소비자들이 입은 피해와 위법성 정도를 비춰보면 애플이 제시한 대책의 보상 수준이 극히 낮다"며 "2월 초 실제 소송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8-01-02 06:12: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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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 정세균 국회의장 "정치가 희망의 디딤돌 되도록 하겠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대한민국의 재도약에 국회가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정 의장은 1일 신년사를 통해 "2018년, 새로운 대한민국이 또 한 걸음을 내딛는다"며 "주권재민의 원칙이 바로 서고, 분권과 자치를 꽃피우고,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정치가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제헌 70주년을 맞이해 우리 국회는 헌법 개정 등 대한민국 미래 100년의 토대를 쌓는 일에 심혈을 기울여 나가겠다"면서, "'일하는 국회', '국민 삶에 힘이 되는 국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치가 절망의 걸림돌이 아닌 희망의 디딤돌이 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7년에 대해 그는 "헌정사상 유례없는 소용돌이 속에서도 우리 국민이 보여준 성숙한 민주주의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며 "대한민국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써내려간 시간"이라고 평가했다. 정 의장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민심의 도도한 물결은 새로운 대한민국의 문을 열었다"며 "이제 정치가 국민의 여망에 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낡은 관행과 부조리를 바로잡고 정의와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땀 흘린 만큼 대접받는 공정한 사회, 부와 권력이 결과를 좌우하지 않는 투명한 나라, 사회적 약자가 보호받는 따뜻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새로운 역사의 물줄기는 흐르기 시작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며 "'빨리 가려거든 혼자 가고, 멀리 가려거든 함께 가라'는 격언처럼 국민과 함께 멀리 보고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

2018-01-01 14:38:51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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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종소리

카페 문은 허름했다. 그냥 통나무에 널빤지를 덧댄 문이었다. 엉성했다. 바람이 살짝 밀쳐도 삐거덕 나뭇결 소리를 낼 것만 같았다. 조심스레 문을 여는데 그 소리가 아니었다. 뜻밖의 울림이었다. 딸랑딸랑! 종소리다. 맑고 청아했다. 마치 동그라미를 그리며 호수 가장자리까지 퍼지는 물결처럼 가슴으로 번져 왔다. 참 따스했다. 소리를 내는 쪽을 보니 문 꼭대기 귀퉁이에 매달린 풍경(風磬)! 호젓한 산속에 은자처럼 들어앉은 카페는 기분 좋게 종을 울리고 있었다. 카페 지붕엔 산새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수런댔다. 은은한 풍경소리와 재잘대는 새소리. 한해의 끄트머리에 홀로 선 산속은 그렇게 색감 다른 울림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 기로에서 귀를 쫑긋 세우게 하는 건 종소리. 그것은 비단 세밑이 다가옴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마 오랜만에 들어보는 쇠붙이 울림이 정겨워서일 게다. 디지털오디오 시대에 라이브 종소리를 듣는 게 어디 흔한가. 크고 웅장하게 울리는 보신각의 종이 아니어도 산속을 다독여주기에 충분했다. 하루의 시작을 종소리가 열어주던 시절이 있었다. 골목골목을 메아리치던 두부 장수의 종소리는 자명종이었다. 매일 새벽녘 정적을 깼다. 마을이 들썩거렸다. 뜨끈뜨끈한 두부를 사달라고 종을 마구 흔들어댔다. 사람들을 흔들어 깨웠다. 자꾸 보채는 종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두부를 팔아줘야 했다. 학교에도 땡땡 울리던 시절이 있었다. 당번 선생님이 종을 쳤더랬다. 수없이 울려댔다. 종소리가 메아리칠 때마다 운동장의 아이들은 밀물이 되고, 썰물이 됐다. 학창시절 방학 때 시골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마을 이장님이 치는 종도 들었다. 시골의 숲속 공기와 강바람을 쐰 쇠붙이라 그런가. 촌스럽게 들렸다. 그런데 음색이 달랐다. 설렘과 기쁨이 묻어 있었다. 아침 햇살이 맑아서인지 마을 표정도 따스했다. 알고 보니 이웃집 혼사를 알리는 종소리란다. 신비했다. 종소리에도 표정과 감정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만약 흉사가 생겼더라면 안타까움과 슬픔이 배어났을 터다. 물난리라도 났더라면 다급함이 실렸을 거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엔 종은 단순히 소리만 내는 쇠붙이가 아니었다. 종소리엔 갖가지 사연들이 담겨 있었다. 마을 이장님의 종소리가 경조사에 따라 음색 다르게 읽히는 까닭일 것이다. 두부 장수의 종소리에는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한다는 간절함이 들어 있었던 거다. 녹슨 학교 종은 그땐 몰랐지만 선생님의 노고가 스친 흔적이었다. 휘황찬란한 서울 도심 한복판에 울리는 구세군의 자선냄비 종소리는 추운 이 겨울 그늘진 이웃을 도우려는 애틋함이 묻어난다. 종은 마음의 거울이기도 하다. 마음결에 따라 온기 다르게 들려서이다. 마음을 비우고 들으면 해맑은 언어들이 밀려온다. 정결하게, 산뜻하게, 따뜻하게, 잔잔하게. 때론 감동으로 다가온다. 걱정을 잔뜩 안고 듣는다면 처연하고 무겁게 느껴질 터이다. 소리에 무슨 무게와 모양이 있겠는가. 걱정의 무게가 더 얹혔을 뿐인데 더러는 천근만근으로 들린다. 칙칙한 소리를 내려고 탄생하는 종은 이 세상에 없다. 무슨 소리든 마음을 다스리고 경청하라는 가르침일 것이다. 한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간다. 그 끄트머리에서 서성거리는 종소리엔 공허함과 설렘이 뒤섞여 있다. 며칠 후면 한 해를 접는 대단원의 커튼을 내려야 하고, 새 해의 시작을 알려야 해서다. 종소리는 세월의 벗인 것이다. 불을 밝히고 있는 스마트폰 달력에 시선이 머문다. 맨 아래 줄이다. 잠시 생각에 잠긴다. 카페의 통나무 문에 매달려 딸랑거리는 종을 바라보면서. 새해에는 저 청아한 종소리처럼 밝고 설레는 일들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번지기를 기원해본다.

2017-12-27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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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크리스마스

차창 너머로 보이는 초대형 크리스마스카드 한 장이 정겹다. 시내 길모퉁이 건물 앞 광장에 현란하게 치장한 트리! 꼬마전구가 반짝반짝 불을 밝히며 크리스마스 시즌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한나절 내린 함박눈은 트리 주변을 수북수북 새하얗게 색칠해놓았다. 어릴 적에 투박한 도화지로 만든 크리스마스카드가 그랬다. 엉성하고 손때 묻어 꼬질꼬질했어도 요모조모 갖출 건 다 갖췄다. 거리 곳곳에 집채만 한 트리 옷을 입고 있는 카드들보다 훨씬 더 속이 알찼다. 흰 눈, 산타할아버지, 동네 아이들, 눈사람, 종, 동산, 썰매까지도 담겨 있었다. 하지만 함박눈 구경하기가 힘들었던 내 어릴 적 고향에선 이런 조합은 꿈같은 얘기였다. 그래서 내 카드엔 눈에 대한 동경이 스며있었다. 반짝이 종이를 붙인 트리만이 알록달록 불을 밝혔을 뿐, 온통 눈을 덮고 있었다. 눈은 현재 진행형으로 내렸다. 하얀색 크레용으로 펑펑 그렸다. 빨간 산타 모자에도 흰 눈이 날렸으며, 하얀 털실을 덕지덕지 붙인 산타의 수염도 나풀거리며 눈보라가 쳤다. 그러니 내가 만든 크리스마스카드는 소품만 앉힌 단순한 정물화가 아니었다.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별천지 눈에 대한 동경을, 갈증을 도화지 위에 한 편의 그림동화를 썼다. 동네 아이들은 솜이불 같은 눈 위를 뒹굴며 뛰놀았다. 더러는 눈사람을 만들며 눈썰매를 탔다. 동산은 하얀 고깔을 쓰고 있었으며, 흰 털옷을 입은 트리는 불을 환히 밝힌 채 산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만치 크리스마스 선물보따리를 든 산타할아버지가 그 풍경 속으로 들어왔다. 그런 꿈을 꾸고 있었다. 동네 아이들은 이맘때 카드의 뜰에 이야기를 담은 소품들을 붙이고 그렸다. 그런데 늘 아쉬운 게 있었다. 캐럴이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는데 어른이 된 어느 날 멜로디 크리스마스카드가 시중에 나온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소리가 나는 종이. 세상은 상상하는 대로 이뤄지는구나! 그런데 정작 스피커에는 캐럴 소리가 쉬 나지 않는다. 이따금 카페에서 흘러나오긴 해도 잔뜩 움츠려 있다. 젊은 날에 거리 곳곳을 채우던 그 흔한 징글벨이. 그게 세상 밖으로 함부로 나오지 않게 된 건 저작권인가 뭔가 하는 문제 때문이란다. 게다가 온라인 다운로드로 바뀐 음반구매 패턴도 한 몫 했을 터다. 이런 처지의 캐럴이 이맘때면 귓속에서 여전히 쟁쟁거리는 건 어떤 설렘이 꿈틀거려서다. 학창시절 종로거리를 거닐다 어디선가 캐럴 소리가 들려오면 괜스레 들뜨곤 했더랬다. 눈이 금방이라도 내릴 것만 같았다. 바람은 매서웠지만 마음은 포근했다. 대형 스피커가 있는 레코드 가게 앞은 청춘들로 북적거렸다. 수북이 쌓인 눈 위를 뛰어다니며 눈싸움을 하는 아이들! 그 정다운 풍경이 또 다른 크리스마스카드로 다가온다. 아이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이런 생각을 해본다. 어릴 적 그런 추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어쩌면 옛 추억이 점점 아련하게 가물거리기에 캐럴이라는 소리를 그리워하고 집착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스친다. 추억의 풍경은 오래된 무성 영화처럼 색이 바래지만 캐럴은 그 때처럼 변함없이 재생해 생생하게 들려주니 말이다.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공식이 어디 있겠나. 세대와 시대에 따라 느낌이 다른 까닭이다. 동네 꼬마들은 반짝이는 트리, 눈사람 같은 풍경을 그릴 것이고, 청춘들은 약속, 함박눈, 돌담길 같은 낭만을 떠올릴 것이다. 장년층은 극장, 레코드 가게, 사탕, 크리스마스카드 같은 추억이 스치고, 노인층은 빗자루, 빙판길 같은 냉혹한 현실이 아른거릴 것이다. 내 추억의 산타가 크리스마스카드 창문을 열어젖히고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외칠 것만 같다.

2017-12-20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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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잊힌 이름들

친구가 불쑥 내뱉은 한마디가 그날따라 가슴 시리게 들렸다. 세월 참 빠르다! 그 매정한 현실을 뿌리치려 했던, 그래서 가슴속에 욱여넣으며 유보해왔던 그 넋두리가 말이다. 그건 속절없이 저무는 한해가 공허함으로 밀물져와서일 것이다. 그날 서울 종로의 밤거리도 그랬다. 불을 환히 밝힌 거리는 한해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었다. 길모퉁이를 돌고 돌아도 이어지는 좁다란 맛집 골목들. 시간이 대낮부터 멎은 듯 밝았고, 사람들은 불빛을 기웃거리며 물결치고 있었다. 밤거리는 활기찼다. 모두가 올 한해를 저 불빛처럼 반짝거리며 살아왔을 터다. 탁자에 빙 둘러앉아 오순도순 머리를 맞댄 사진 한 컷이 정겨운 풍경화로 다가온다. 그러나 술잔이 부딪히는 소리에서, 손을 내밀어 크게 악수하는 마음에서. 연인들이 폭 껴안는 사랑에서 저무는 한해의 아쉬움을 본다.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멎어 있으리라. 술잔을 기울이며 세월 빠름을 달래도 가슴 한 켠에 여전히 뭔가 남아 있는 건 왜일까? 까닭모를 그 꿈틀거림은 도대체 뭘까? 그 이유를 알아내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친구의 건배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 실마리를 찾은 건 집으로 가는 길에서였다. 허연 김이 모락거리는 잔치국수를 파는 가게를 스치는데, 한 친구가 불현듯 떠올랐다. 초등학교 1학년 딱 이맘때였다. 친구는 장터에서 잔치국수를 먹고 있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연신 씻어 내면서. 그렇게 군침 돌게 맛있게 먹는 모습은 여태껏 못 봤다. 그날 이후 잔치국수를 보면 침부터 괸다. 면이라는 면을 죄다 좋아하게 된 까닭이다. 그랬다. 내 가슴을 노크하고 있었던 건 그런 옛 친구들이었다. 보고 싶은 얼굴들이다. 추억의 시간에 멈춰 있는 앳된 얼굴들. 녀석들의 얼굴이 흑백필름으로 흐른다. 색 바랜 그 장면들을 떠올리며 기억을 더듬는 것만으로도 마냥 즐겁다. 친구의 눈매들이 떠오른다. 다들 반갑다고 손짓하는 것 같다. 개중에는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는 친구들도 있다. 퍽 서운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잔치국수를 맛있게 먹던 친구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구나. 이젠 얼굴조차 가물거린다. 그 친구의 안부가 무척 궁금하다.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지낼까? 잊힌 이름만이라도 기억해내려 한참이나 맴을 돌았건만 아련하고 가마득하다. 마치 한 편의 영화가 끝난 뒤 자막으로 올라가는 숱한 이름 중 한 깜빡거림처럼. 이렇게 잊힌 이름들이 어디 한둘인가. 아, 이제야 가슴을 친다. 친구는 자신의 이름조차 몰라주는 내게 큰 가르침을 선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라는 삶에는 주연 배우만 있는 게 아니라 자막으로 사라지는 스태프들이 많다는 것을. 무대 뒤의 사람들! 작가며, 감독이며, 카메라, 음악, 미술, 조명, 의상을 담당하는 스태프들이다. 그들의 이름을 얼마나 기억할까. 그래서 그들의 숨은 노고를 감사하고 있을까. 관람객들은 그러나 영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일어나기 바쁘다. 더러는 감동의 여운이 남아 스크린을 응시하지만 자막엔 쉬 눈길을 주지 않는다. 아주 작은 글씨들이 왜 이리 빠르게 지나가는지. 화려함 뒤편에서 묵묵히 쏟은 열정과 시간을 생각하면 스치듯 지나가는 자막은 초라하기까지 하다. 가물거리는 영화의 자막은 저무는 한해의 끝자락과 닮아 있다. 자막이 흘러도, 한해가 다 가도록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스태프 같은 일상의 이름들! 그들은 우리네 삶을 꽃피우려 말없이 헌신했을 터다. 더러는 손발이 부르트도록, 몸이 깨져라 일했을 것이다. 그 피땀 같은 노고를 가족들이 알아주기에 남몰래 눈물을 찍어낸다. 그건 고단한 삶의 그림자를 이끌고 가는 원동력이고, 행복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작은 영웅,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2017-12-13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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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달력

십이월! 달력이 다 뜯겨나가고 달랑 한 장 남았다. 계절도 마지막 겨울을 스케치하고 있다. 봄꽃이 피고, 땡볕에 달궈지고, 낙엽 흩날리는 계절을 지나 이제 찬바람 스미는 길목에서 서성거리는 달력 한 장. 동네 장터의 허름한 선술집 달력은 그렇게 벽면에 매달려 덜렁거리고 있었다. 달랑과 마지막. 듣기에도 쓸쓸한 수식어가 붙어서일까. 처연하다. 한 해를 되짚게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뜯겨나간 열한 장을 합친 무게 보다 달랑 한 장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 그 너덜거리는 달랑 한 장이 왜 그토록 무겁게 느껴지는 걸까?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벽면을 부여잡고 있는 그 십이월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달랑은 그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되물어올 것만 같다. 정초에 결심한 일에 얼마나 매진했는가. 허투루 허송세월하지 않았는가. 가족과 친구, 이웃에게 늘 감사하고 배려했는가. 저무는 한해를 갈무리하면서 아쉬움이 어찌 없겠냐마는 좀 더 잘 할 걸, 잘 해줄 걸, 제대로 할 걸 같은 회한들이 밀물져온다. 달력은 신통방통한 녀석이다. 태생적 어원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캘린더(calendar). 라틴어에서 유래했다는데 그 의미가 대차대조표다! 그러고 보니 달력은 삶의 대차대조표에 다름 아니다. 달력에는 보석 같은 값진 시간들이 흐른다. 열두 개의 보물섬이 있는 것이다. 때론 녹슨 시간들이 보물섬을 탁류로 만들곤 한다. 달력은 어쩌면 금광석을 캐고 곱게 세공(細工)해서 보석처럼 빛나는 시간의 순이익을 창출하라고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의 순이익! 그것은 사랑, 진실, 베풂, 배려, 나눔, 포용, 감사하는 밝고 맑은 시간, 뭉뚱그려 지혜로운 시간들이다. 보물섬엔 금쪽같은 시간만 있는 게 아니다. 증오, 거짓, 욕심, 시기, 질투하는 암흑의 시간들도 있다. 그 암흑의 편린들도 공을 들여 조탁하면 증오는 사랑, 거짓은 진실, 욕심은 나눔과 베풂, 시기와 질투는 배려와 포용이라는 보석으로 각각 거듭날 것이다. 그랬다. 그런 순이익을 창조했기에 인류의 스승들이 등장하고, 세상은 진화하고 발전했다. 태양은 매일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녹슨 시간을 비우고 새 시간을 채워주는 빛의 경이! 태양은 변함없이 떠올랐지만 그것을 미처 몰랐다. 눈부시도록 그 가르침을 비춰 줬건만 알지 못했다. 썰렁한 선술집의 달력을 유난히 무겁게 하는 건 인쇄 박힌 숫자 아래 펜으로 꼭꼭 눌러 쓴 또 다른 숫자들. 얼핏 보아 이 집 가계부다. 공과금, 월세값, 돼지고기 물량과 가격 같은 수치일 것이다. 여러 겹으로 동그라미를 표기한 날짜는 사랑하는 가족 누군가의 생일일 게다. 선술집의 달력이 왠지 기특하다. 달력 찍어내는 소리가 예전만 못한 디지털 시대에 점방 맨 중앙 벽면에 메뉴판처럼 떡하니 붙어 있으니 말이다. 내 어릴 적엔 더 기특하고 고마웠다. 교과서 겉 부위가 닳을세라 겉장을 싸는 덮개가 돼주곤 했다. 허전한 벽면을 즐겁게 채워주기도 했다. 여행이 흔치 않던 그 시절엔 월별로 계절별로 잘도 구성한 열두 폭의 국내 명소 풍경은 색다른 구경거리였다. 여기가 어딘가요? 첫 말문을 트게 하는 물꼬였으며, 소통의 창구였다. 달랑 한 장을 남긴 달력. 찬바람이 불어오자 시계추처럼 일렁인다. 지나온 세월의 흔적이 물결친다. 한해를 마무리한다는 게 이렇게 쓸쓸한 것인가. 얼마 후면 종이든 디지털이든 새 달력 앞에서 세상은 달뜰 것이다. 모두가 새로운 꿈과 희망을 안고 출발점에 서니 그럴 터다. 사계절이 수놓는 열두 고갯길과 강을 굽이치며 저마다의 삶의 일기를 써내려갈 것이다. 변함없이 한결같은 얼굴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내년 이맘때 이 시간이 어떻게 기억될까.

2017-12-06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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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정부' 통한 성장..예산안 통과, 본격 시동거나

문재인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이 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큰 정부'를 통한 성장에 본격적인 시동이 걸리게 될 지 관심이 모아진다. 비록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지난 4일 여야3당 원내대표 협상 끝에 도출한 '잠정 합의문' 내용을 부정하며 '반쪽 본회의'를 통해 통과되긴 했지만, 예산안이 통과된 이상 정부의 정책 드라이브에는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특히 이번 예산안 협상 과정에서 여야가 핵심 쟁점으로 삼았던 공무원 증원 규모,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일자리안정자금, 법인세 인상 등이 기존 정부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정부의 정책에 무리가 없을 것을 예상되기 때문이다. 우선 공무원 증원 규모를 보면 정부가 제시했던 내년 1만2200명을 증원 규모는 9475명으로 2725명 줄이는 수준에 그쳤다. 이 정도의 증원 규모는 정부의 원안에 담긴 효과보다는 다소 떨어지겠지만, 정부의 경제기조인 '소득주도성장'의 물꼬를 트기에는 충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야당인 국민의당은 예산안 협상과정에서 공무원 증원 규모는 9000명이 적당하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일자리안정자금의 경우에도 이번 예산안 통과로 인해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정책을 진행하는데 있어 '저항'을 최소화하고, 다음 단계의 정책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당초 정부가 제시했던 것처럼 일자리자금으로 약 3조 원(2조9707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면서 최저임금 정책에 대한 기업들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게 됐고, 정책 시행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또한 법인세 인상, 소득세 인상, 아동수당 도입, 기초연금 인상 등도 통과되면서, 우리 사회 구조적 차원의 큰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은 정부 주도의 성장 즉, '큰 정부'를 통한 성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부터 정부 주도의 소득주도성장 모델을 강조해왔다. 1호 공약인 '공공일자리 81만 개 달성, 임기 내 공무원 증원 17만9000명'도 이 모델의 맥락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보수 진영에서 주장하는 시장 주도형 성장 모델은 현재의 청년 실업, 경제성장, 양극화 등 지표들을 통해 적합한 모델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됐다는 것이 지난 대선 기간 동안 토론회 등을 통해 밝힌 문 대통령의 생각이다. 이미 기형적인 모양을 띄고 있는 시장 상황에서는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으며, 적극적인 정부 개입을 통해서만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밝혀 온 적극적인 정부 개입은 시장 압박, 규제 강화 등 시장 위축을 야기시키는 방법이 아니라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만들고, 더불어 국민 소득을 높여 국가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구상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대통령선거가 급작스레 진행됨으로써 지난 몇 달간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보수 진영의 반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새로운 정책 시행에 필요한 예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22일 11조3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이 편성되기는 했지만, 새 정부의 정책을 온전히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때문에 이번 예산안 통과는 제대로 된 새 정부 정책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문 대통령의 선거 캐치프레이즈였던 '나라다운 나라' 만들기의 출발점이 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2017-12-06 05:30: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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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찐빵

내 눈이 변덕스러운 걸까? 한동안 단풍 풍경에 젖어 있던 내 시선은 얼마 전부터 뜨뜻한 김이 모락거리는 것들에 자꾸 쏠린다. 가을철 내내 눈에 띄지 않던 뜨끈한 어묵과 가락국수에 시선이 오래 머문다. 찬바람이 몹시 불던 날, 색 바랜 낙엽이 펄펄 내리던 가로수 길옆 찐빵 집도 허연 김을 퍼내고 있었다. 계절 대목을 맞아 후끈 달아오른 커다란 양은솥! 입이 함지박만 해진 아주머니가 솥뚜껑을 열어젖히자 뜨거운 김이 확 밀려오는 게 찐빵이 저토록 뽀얗다. 솔직히 찐빵의 맛 차이를 잘 모른다. 부드러운 팥소와 쫄깃한 식감을 내는 비법이 어쩌고 저쩌고 해도 내겐 이 세상 모든 찐빵이 다 맛있다. 어쩌면 추억의 맛으로 먹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 추억의 찐빵에는 포만감, 웃음, 친구, 이웃, 이야기 같은 질료들이 버무려져 있다. 아련한 이런 추억이 행여 잊힐세라 그 흔한 찐빵이 늘 허기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뜨거운 김이 풀풀대는 찐빵! 한입 가득 베어 물면 열기가 입안을 훅하고 퍼지며 잠자던 추억이 깨어난다. 예닐곱 살 때였을 것이다. 낙엽이 뒹굴던 신작로 옆 공터에 무슨 잔치가 열렸더랬다.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꽤 많았던 걸 보면 결혼식 피로연 같기도 하다. 복닥거렸다. 가마솥이 대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동네 아이들은 개중 하나에 꽂혔다. 두 개의 돌 위에 걸려 있는 거무죽죽하게 그은 가마솥! 투박한 솥은 마치 기차가 먼 길을 달려와 이제 막 종착역에 도착한 것처럼 숨을 고르며 수증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솥뚜껑 개봉을 기다리며 침을 꼴딱거렸다. 드디어 솥뚜껑이 열리자 자욱한 김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수년 전 새벽녘 잔잔한 호수 위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물안개를 바라보며 그 김이 오버랩이 됐다가 사라짐을 느꼈다. 김이 모락거리던 찐빵은 아이들 마음만큼 부풀어 있었고, 아이들 수만큼 많았다. 하얗고 둥그스름한 게 어른 손바닥 크기만 했다. 때 묻은 손에 고스란히 전해진 찐빵. 그 뜨거운 찐빵은 식을 때까지 손바닥 위에서 공중제비를 해야 했지만, 호호 불어가며 맛있게 먹던 기억이 아련하다. 꿀맛이었다. 눈빛마다 포만감과 행복감이 그렁거렸다. 그 눈빛들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시절엔 그랬다. 먹을 게 넘쳐나는 요즘 세태는 맛 표현을 입으로 하지만 그 시절엔 눈빛으로 말했더랬다. 누군가 맛있니? 물어오면 아이들은 안달이 난 그 궁금증까지 속으로 삼켰다. 맛있다! 소리만 들어도 덩달아 배부를 것 같은 그 감탄조의 느낌 한마디를 애써 표출하려 들지 않았다. 먹을 게 귀하던 시절엔 그렇게 하는 것이 상대에 대한 배려이고, 미덕이라고 배웠다. 그건 옳은 얘기이기도 했고, 그른 판단이기도 했다. 느낌표가 그렁거리는 그 눈빛이 대놓고 맛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어찌 표현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외려 그 느낌표에 담긴 맛을 캐내느라 더욱 꼴딱거려야 했던 시절이었다. 요즘 들어 찐빵 냄새가 그렇게 향수를 자극할 수가 없다. 한입 베어 물 때 풍겨오는 찐빵만이 지닌 독특한 냄새, 어릴 적에 이게 뭐지? 킁킁거렸던 밀가루 익은 냄새다. 찐빵을 먹을 때마다 그 냄새를 더듬곤 한다. 추억을 먹는 것이다. 한갓진 시골길을 걷다가 찐빵 집이 불쑥 나타나면 반갑고 고맙다. 걸음을 떼지 못한다. 김이 모락거리는 낡은 양은솥이 정겹게 다가온다. 동네 아이들이 그곳에서 수런댄다면 왠지 낯설지 않는 이야기가 꽃필 것만 같다. 야! 뜨끈한 찐빵이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배고팠나보구나 한 개 더 줄 테니 뜨뜻할 때 많이 먹어 하는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이어질 것이다. 겨울 무드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게 되는 찐빵 집은 언제나 이런 추억의 날개를 펼치게 한다.

2017-11-29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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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눈 내리는 날

첫 눈은 과연 내렸을까? 안 내렸을까? 엊그제 서울지역의 첫 눈이 화제가 됐다. 그 진위를 둘러싸고 청춘 남녀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했더랬다. 국지적으로 옮겨 다니며 흩날리다 이내 종적을 감추니 무슨 용빼는 재주로 눈의 신출귀몰을 따라잡을까. 목격담은 무성했고, 궁금증은 증폭됐다. 하얀 눈발이 날리는 날 만남을 약속한 청춘들은 서울기상관측소 분석원의 입을 쳐다봐야 했다. 그곳 송월동에서 관측되는 값이 공식 기록이니 그 판정을 기다려보자는 거였다. 기상청은 눈을 부릅떠야 했고, 맨눈으로 확인하고서야 첫 눈 강림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보다 아흐레 빨랐으며 평년 대비 나흘 일찍 내렸다고 공식 발표했다. 논쟁은 곧 마침표를 찍었고, 그 발표 이후 청춘 만남은 얼마나 성사됐는지? 기상청이 이런 궁금증까지 일일이 확인해줄 수야 없지만 논쟁이 뜨거웠던 만큼 부지기수였을 터다. 첫 눈은 비단 청춘들의 낭만 얘기만은 아닐 것이다. 남녀노소 누구든 눈마중에 대한 감정이 비슷하다. 모든 가슴에 내린다. 눈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처음부터 계산에 두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해맑은 얼굴로 불쑥 찾아오는 깜짝 이벤트. 가슴 깊숙한 곳에 조용히 다가와 속삭여줄 것 같은 밀어. 차갑고 아린 곳을 따스하게 덮어주는 어떤 마음. 권위주의적 의식 없이, 가식 없이, 욕심 없이 순백으로 다가오는 어떤 정겨움. 아무리 뒹굴어도 차갑지 않는 뽀송뽀송한 카펫. 팍팍한 우리네 삶을 눈부시도록 환하게 밝혀주는 미소. 그래서 두근거리는 가슴에 감탄사로 꽃피는 느낌표들! 눈이 선사하는 또 하나의 선물은 고갈되지 않는 동심. 내가 눈과 오래전부터 친구가 된 까닭이다. 내 어릴 적 고향에는 눈 구경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눈이 송이송이 하얀 솜으로 내린다는 걸 음악책을 통해 놀랍게 알았고, 세상에 눈밭이 존재한다는 걸 동화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다. 펑펑 내리는 눈을 실컷 맞고 싶은 시절이었다. 그 꿈을 도화지에 실현했더랬다. 상상의 날개를 한껏 펼쳐 그렸다. 눈송이는 무더기무더기로 내렸고, 눈사람은 늘 집채만 했다. 내 어릴 적 친구인 눈의 이미지는 이렇게 별천지였지만 그리움이 배어 있었다. 꿈속에서도 친구를 만나곤 했다. 친구는 마음껏 뒹굴 눈밭을 펼쳐주었다. 그곳에 핀 눈꽃송이를 만지면 푸근하고 따스했다. 친구의 삶은 정중동(靜中動)의 세월이었다. 중학교 때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교훈. 무슨 일이든 묵묵히 성취하라고 강조하셨다. 그러고 보니 눈은 기척을 내는 법이 없다. 생색내듯 요란하게 소리 내지 않는다. 비와 바람에겐 정말 미안한 얘기지만. 친구는 늘 그랬다. 조용히 소복소복 내려와서는, 경이! 신비! 같은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새로운 세상 풍경을 선사했다. 번잡하고 시끌벅적한 도시를 고즈넉하게, 꼬불꼬불한 산길의 한갓진 마을은 외려 도시의 축제처럼 화사하게 수놓았다. 살면서 한번 쯤 상대방 입장이 되어보라는 가르침의 죽비다. 순백의 눈은 편견이 없다. 최첨단 고층의 마천루든 산동네의 초라한 오막살이집이든 차별 없이 골고루 덮어준다. 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뜨뜻한 이불일 것이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시절 수북수북 내리는 눈송이를 보면 이상하리 만치 위로가 됐다. 그것은 눈송이에 기쁨, 설렘, 축복 같은 따스한 언어들이 스며있을 거라는 기대가 우리네 가슴 저변에 자리하고 있는 까닭이다. 어쩌면 눈의 마술적 의미에 조마조마한 마음을 대입해 녹이고 싶어 함이었는지도 모른다. 눈은 합격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해줄 것만 같은 희망이었고, 갈망이었다. 드디어 내일 수능이다. 고생한 보람이 좋은 결실로 나타나길 기원해본다.

2017-11-22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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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김장철 풍경

벌써 김장시즌인가? 집근처 난전에 벌여놓은 채소가 그렇다고 손짓한다. 보자기 좌판 위에 무청이 줄느런히 포개져 있다. 무청과 촌수가 어슷비슷한 배추 겉대도 후줄근히 늘어져 있다. 그 좌판 앞에 쪼그리고 앉아 무청을 다듬는 할머니의 굼뜬 손길. 이 셋은 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한가롭고, 그러나 안쓰럽게 보이는 그 풍경을 따사롭게 쬐여주는 햇볕이 너무도 반갑고 고맙다. 그 다소곳한 난전에 장보러 나온 아주머니들이 빼꼼히 끼어들면 장터는 복닥거린다.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는 허허하게 웃고 있었다. 잘 팔리느냐고 여쭙자 돌아오는 대답이 엉뚱하다. 그렁저렁 팔리긴 하는데 사람 보는 게 더 재미있다고 하신다. 그 정겨운 말이 왜 이리 슬프게 들렸는지 모르겠다. 사람을 만나 말문을 여는 게 즐거울 만큼 정녕 외로웠던 걸까? 그래서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나온 걸까? 누군가 무청으로 요리하는 비책을 물어올 양이면 그렇게 표정이 밝을 수가 없다. 할머니에겐 난전이란 삶의 얘기꽃을 파는 동네 사랑방이었다. 김장대목을 맞은 장터엔 그러나 정작 있어야 할 배추와 무가 없다. 휑하다. 어지간해선 온라인 장터에서 절인 배추를 배달 주문해 김장을 담그는 세태니 당연한 귀결의 풍경일 것이다. 그 공허함이 무색했는지 할머니는 무청과 배추 겉대를 가리키며 이게 요즘 상전 대접을 받는다고 추켜세운다. 어릴 적 장터에선 공짜로 얻곤 했는데 지금은 팔고 있다며 할머니는 멋쩍어하신다. 오랜 세월 무청과 배추 겉대와 함께 했을 할머니의 모습에서 어느 옛 김장 장터를 보았다. 내 어릴 적 김장철엔 장터마다 배추와 무가 산더미같이 쌓였다. 층층이 포개 수북수북했다. 집집마다 김장을 적게는 수십 포기씩, 식솔이 많은 댁네는 백 수십 포기까지 담갔으니 그랬을 것이다. 담벼락 같은 배추더미에 사다리가 걸쳐지면 금세 동났다. 장정들이 배추를 주고받으며 손수레에 실었다. 배추와 무는 하늘을 날아다녔다. 바닥을 드러내면 배추에서 떨어져나간 겉대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다듬고 남은 무청이 나뒹굴었다. 줍는 게 임자였지만 남아돌았다. 사람들은 무청과 배추 겉대를 주웠다는 말끝에 붙이는 수식어엔 슬픔이 스며있었다. 거친 흙바람과 거센 비를 견뎌온 흔적. 푸르죽죽한 무청과 배추 겉대에는 아픔이 보인다. 허연 무와 노란 배추 속살을 보호하려 안간힘을 썼으니 거죽이 성할 날이 없었다. 그래서 무와 배추 속살은 달고 부드러웠지만 겉대들은 늘 쓰고 거칠었다. 사람들은 질기다고 온갖 투정을 부렸지만 막장 메뉴로 식탁을 지켜왔다. 겉대들은 흙바람이었고, 배고픔이었으며, 모진 세월이었다. 김장을 마치고 나오면 늘 천덕꾸러기 처지였던 겉대들. 이제 그 푸석거리고 시들하던 겉대들이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한 웰빙 라이프 메뉴가 되고, 그래서 구하기 힘든 품귀 상품이 되고, 돈이 됐다. TV 화면을 보니 강원도 어느 농가에선 주객이 전도됐다. 무청을 사면 무가 덤으로 얹어진다는 게 이 농가의 마케팅 전략이란다. 무청을 겨우내 말리면 시래기. 누렇게 변신할 즈음 상품의 부가가치가 깡충 뛴단다. 그 농가에선 무청이 상품이고 무가 부속물이다. 그러고 보면 김장 겉대들은 참 겸손하다. 삶이 힘들었지만 내색하지 않았고, 몸값이 뛰었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토속적인 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다. 은근하고 웅숭깊다. 늘 한결같다. 주린 배를 채워주던 구황음식 시절이나, 웰빙식품으로 등극한 지금이나 찬물에 몸을 풀어 따스한 국과 탕이 되어준다. 모나지도 않다. 모든 음식에 어울린다. 된장을 풀면 기막히게 구수한 맛을 낸다. 겉대들은 우리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걸 이렇게 가르침으로 보여준다.

2017-11-15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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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동심의 세계

그건 단순한 삽화가 아니었다. 파란 하늘을 훨훨 날고 있었다. 강바람이 불자 더 높이 오르려 연실을 팽팽하게 당겼다. 그 연실을 풍성하게 감은 얼레를 풀자 가오리연은 긴 꼬리를 흔들며 춤췄다. 일전에 봤던 한강변의 연날리기 풍경이다. 얼마나 사무치던 한 폭의 삽화이던가. 내 어릴 적 추억의 삽화에도 강변은 등장한다. 길게 뻗은 강둑은 연을 띄우는 활주로였다. 강둑의 동네 아이들은 바람길을 꿰차고 있었다. 전속력으로 달음박질해 연을 하늘 높이 잘도 띄웠다. 그런 내 추억의 삽화 속에는 그러나 얼레가 없다. 둘둘 말은 종이가 그것을 대신했다. 물레방아처럼 돌아가는 나무얼레! 연실을 광폭으로 감고 풀며 연을 띄우는 광경이 무척 부러웠다. 당겨 감으면 연은 솟았고, 상승 기류를 탈 즈음 따르르 풀면 더욱 높이 날았다. 곧 한 점이 됐다. 그 가물거리는 점이 되돌아오면 마치 미지의 세계를 다녀온 것처럼 기특했다. 새들과도 정답게 얘기를 나누었을 거라는 상상도 했다. 얼레를 몹시도 갖고 싶어 했던 예닐곱 살 때의 삽화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지금에 와서 왜 이리 설레고 가슴이 뛰는 걸까. 그것은 어쩌면 내 추억의 삽화 속에 비워뒀던 여백에 얼레를 꼭 그려 넣고 싶었던, 그 잠자는 동심이 불쑥 깨어난 까닭일 것이다. 하늘 속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연. 왜 사람들은 연을 띄울 때 사연을 실어 보내는지? 그 이유를 그날 절절이 느꼈다. 저물녘에 퍼드덕거리는 소리가 스치듯 들렸다. 비둘기 떼가 자우룩이 스쳐 갔지만, 나는 하늘 높이 날고 있는 저 아득한 연에 넋을 놓고 있었다. 바람을 타고 춤추는 가오리연. 시간의 자유란 이런 것일까. 연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얼굴 그대로 시간 밖에서 날고 있었다. 연을 응시하며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내 어린 시절 못다 채운 그 사무침을 하늘 도화지에 그려본다. 얼레를 자유자재로 돌리며 연을 날리는 강둑 위의 내 모습을. 연실은 연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풀고도 남을 만큼 넉넉했다. 얼레를 당기자 연은 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올랐다. 오랜 숙원이 이제야 이루게 됐다는 듯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 연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릴 적 아름다운 추억은 세월이 흘려도 세태가 변해도 결코 새롭게 재해석할 수 없다고. 덧셈과 뺄셈 논리가 난무하는 세상 셈법이 함부로 끼어들 수 없는 맑은 영혼의 영역이기에 그럴 것이다. 시간이 멎은 삽화! 그 시간 속에 웅크리고 잠자는 동심을 언제부터 깨우고 있었던 걸까. 아련함만 켜켜이 쌓여가는 가슴 한 켠을 얼마 동안 애타게 노크하고 있었던 걸까. 동심은 그러나 늘 바쁜 일상에 떼밀려 잃어버린 시간 속을 배회해야 했다. 세월의 뒤안길로 밀려난 동심! 요즘 그 동심의 세계를 찾아 나선 어른들이 많다는 소식이다. 어린이의 전유물이던 장난감과 캐릭터용품을 수집하는가 하면 그림, 피아노, 태권도, 무용을 배우고 더러는 학습지까지 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어른들을 가리켜 키덜트(Kidult)라고 부른다. 어린이(Kid)와 어른(Adult)의 합성어다. 이 신조어는 관련 마케팅이 나올 만큼 고전이 된 지 오래고, 키덜트문화가 신문화의 한 영역으로 자리매김했다니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사람들이 이따금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려는 건 어린 시절의 미완성된 삽화를 완성하려는 자유 영혼의 회귀본능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린 시절에 품었던 꿈과 희망이 꿈틀거리고 있음이다. 그 본능이 살아 약동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부풀 일이다. 팍팍한 일상에 지친 마음을 토닥토닥 어루만져 주는 동심의 향수. 그 동심이 오감을 거쳐 가슴까지 벅차오르면 넉넉하고 따스한 삶의 향기로 변할 것이다. 세상을 열정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삶의 원동력 말이다.

2017-11-08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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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아침에 만나는 원두커피의 설렘

날씨가 꽤 쌀쌀해졌다. 며칠 후면 겨울이 시작됨을 알리는 입동(立冬). 베란다 통유리창 너머로 흩날리는 담갈색 낙엽이 그 색온도를 표현하고 있다. 까치 한 마리가 추위를 체감했는지 잔뜩 목을 움츠린 채 종종걸음을 친다. 나무둥치에 구르는 마른 낙엽 위로 기다랗게 비쳐 드는 아침 햇살이 무척 반갑다. 이런 풍경엔 김이 모락거리는 원두커피가 제격이다. 햇살과 커피는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둘의 공통점은 금방 나온 신선함과 따사로움일 것이다. 출근하기 전 내 즐거운 일과 중 하나가 원두커피를 내리는 일이다. 수동식 핸드밀로 커피콩을 가는 것이 퍽 원시적이어서 좋다. 서걱서걱 맷돌로 가는듯한 소리와 쪼개진 알갱이 속살에서 묻어나는 깊고 은은한 향이 태고의 자연으로 데려가게 한다. 고깔모양의 드리퍼에 꽂은 종이필터. 거기에 분쇄된 커피를 소복이 담고 뜨거운 물을 천천히 부으면 구워지는 빵처럼 부풀어 오른다. 가슴 설레듯 부푼 커피 알갱이들. 물의 무게로 그것을 내린 게 원두커피의 맛이랬다. 이즈음 온기를 머금은 커피향이 온 집안에 기분 좋게 맴돈다, 맛은 어떨까? 아침마다 이런 기대 섞인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커피를 내리는 수고로움을 즐기는지도 모른다. 하루를 산뜻하게 시작하는 그 첫 실마리를 원두커피가 풀어주는 것이다. 원두커피의 맛은 원두의 품종, 생두의 볶음 정도, 물의 온도, 물 내리는 속도에 따라 천차만별로 나타난다. 여기에 날씨, 분위기, 기분, 감성까지 더해지면 커피 맛의 범위는 방대해진다. 눈금이 각기 다른 미각은 또 어떤가. 종이필터로 내린 커피는 그래서 매번 첫 느낌의 설렘으로 다가온다. 맛은 크게 쓴맛, 신맛, 단맛. 이 맛 속성이 어쩜 우리네 삶과 많이 닮았을까 싶다. 혹자는 쓴맛이 커피 본연의 맛을 좌우한다고 했더랬다. 커피도 사람처럼 쓴맛을 봐야 감동적인 맛을 낼 수 있다는 얘기로 읽힌다. 내 추억의 커피는 맛만 쓴 게 아니었다. 새내기 기자 시절이었다. 다방커피가 호황을 누리던 시절, 한국계 미국 군의관을 이색 인물로 선정해 인터뷰하러 갔다가 커피로부터 쓴맛을 봤다. 거실의 탁자 위에 대형 머그잔이 올라왔다. 그렇게 큰 찻잔은 처음 봤다. 지금의 대형 테이크아웃 종이컵 정도는 될 것이다. 갈색 빛이 도는 커피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양은 엄청났다. 내 눈엔 한 바가지쯤 돼 보였다. 찔끔 담긴 다방커피 찻잔에 익숙했으니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그가 대뜸 갓 볶아 구수할 거라고 했다. 대관절 뭘 볶았다는 건가? 그 말을 해석하는 그 짧은 순간, 내 눈은 크림과 설탕을 찾아 탁자 위를 헤매고 있었지만 그것은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그때 아메리카노를 처음 맛봤다. 크림을 달라고 하지 않았던 게 천만다행이다 싶다. 모르긴 해도 지금 그 커피를 맛봤더라면 감탄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을 것이다. 생두를 갓 볶아 내린 커피였으니 향과 맛이 얼마나 신선하고 그윽했을까. 그 커피는 생활철학 하나를 가르쳐 주었다. 선입관을 갖지 말라는 것. 다방커피에 길들여진 선입관은 그 신선한 원두커피 앞에서 미각과 후각을 무디게 했던 거다. 선입관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그 추억이 아련하게 밀려와서일까. 커피향의 여운이 오래 남는다. 빡빡한 일상에 여유와 재충전을 얻게 해주는 향기. 눈을 지그시 감으면 마음은 작은 호수가 되고 소담한 숲이 된다. 커피에는 사랑과 위로가 담겨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사람과 자연에 대한 시선이 따스해진 까닭일 것이다. 이런 커피의 고부가가치를 높이는 건 향기와 맛을 어떻게 느끼느냐에 달렸다. 바스락거리는 낙엽과 맑은 햇살, 그리고 향긋한 커피의 앙상블이 아침을 상큼 발랄하게 한다.

2017-11-01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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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눈물겨운 도시락

저녁식사를 할 무렵, TV의 광고 한 장면이 친숙하게 다가온다. 내레이션이 그런다. '밥이 답이다'라고. 쌀소비촉진캠페인 카피인데, 그 말이 아련한 추억 속으로 이끈다. 그도 그럴 것이 수북이 담긴 고봉밥이 등장하니 옛 정취가 묻어난다. 까마득히 잊고 지내다가도 고봉밥이나 도시락 장면이 스치면 불쑥 눈가를 적시게 하는 추억! 그러고 보니 세상이 참 많이도 변했다. 쌀 소비를 위해 피부에 좋다고 어필하는 화면 속 밥과 내 유년시절의 밥 풍속도가 딴판이어서다. 유년시절, 밥은 이 세상 최고의 보약이었다. 추억은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언제부터인가 점심때가 되면 교실 밖을 나가는 친구가 있었다. 도시락을 싸오지 않아서다. 왜 도시락을 싸오지 않느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늘 '배부르다'였다. 불룩한 배를 보여주기까지 했다. 아이들은 젓가락을 건네기도 했지만 그는 힘없이 손을 가로저었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무슨 변고라도 있는 걸까? 먹을 게 없던 시절, 아이들은 그 본질적인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 진실을 알려준 건 운동장 한 모퉁이에 설치된 수돗가였다. 아이들이 도시락을 먹는 동안 친구는 고개를 모로 젖힌 채 콸콸거리는 맹물을 마시고 있었다.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살기 위해 입을 오물거리며 밥처럼 먹고 있었던 거다. 마디숨을 몰아쉬면서. 아이들은 교실 창밖 너머로 그것을 목도하고 있었다. 친구는 며칠 후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아, 어쩌다 그 장면이 떠오르면 우울해지기에 가슴 바닥으로 밀어 넣지만 눈시울에 뜨거움이 배어나오곤 한다. 얼마나 배를 곯았던 걸까. 내가 철이 들었을 땐 수돗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곳이었다. 동네 공원 수돗가에서 손 씻는 아이들을 보면 그 친구가 오버랩 되곤 한다. 그 친구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그 때 그 시절을 되짚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밥은 먹었니? 가 인사였던 그 시절, 물힘으로 한나절을 버텨온 친구. 뛰놀다가 배고프면 수돗물로 힘을 충전하는 건 흔한 풍경이었다지만, 친구의 도시락 허기증은 눈물 나는 역사 그 자체였을 것이다. 쌀이 귀하던 시절, 밥 짓는 풍경은 색달랐다. 솥의 맨 아래층에 꽁보리를 앉히고 그 위에 쌀을 얹어 밥을 지었다. 가부장적인 집안에서는 어른 밥과 아이들 밥 색깔이 달랐다. 어른 밥은 고봉으로 꾹꾹 눌러 담은 새하얀 쌀밥이었다. 쌀밥은 부의 상징이었기에 집안의 대표주자인 가장만큼은 그랬는지 모른다. 아이들 밥은 거무스레했다. 쌀밥은 드넓은 꽁보리 밭에 잔설처럼 희끗거렸다. 아이들의 시선은 늘 어른 밥에 꽂혔다. 그렇게 윤기가 자르르 흐를 수가 없었다. 아이들의 입안은 더욱 자르르 윤기나게 침이 괴였다. 어른들은 알아차리고 있었다. 어른들은 늘 밥을 남겼다. 밥상을 물리면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아이들의 그 여분까지 고려했는지 쌀밥은 산더미처럼 높아가는 것만 같았다. 찬도 거의 남아 있었다. 조기며, 고등어며, 갈치며 노릇노릇한 생선구이는 아이들 몫이 됐다. 가시가 잘 발라진 채 고스란히 있곤 했다. 어른들은 헛기침을 밥상너머로 퍼내며,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보곤 흐뭇해했다.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될 즈음 더러는 한동안 밥을 먹을 때 무심결에 몇 숟가락을 남기곤 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네 어른들의 밥 남김에서 알게 된 깊은 헤아림을, 애틋한 흔적을 그리워함일 것이다. 밥에는 장마와 태풍, 땡볕을 견뎌온 쌀 생성 과정의 인고(忍苦)가 살아 있다. 밥에는 물결치는 세파를 이겨낼 천연 보약이 들어 있는 것이다. 먹을 게 넘쳐나는 요즘이지만 밥은 여전히 몸의 보약이자, 삶에 보약이다. 저녁밥을 먹으며 새삼 밥의 소중함을 느껴본다.

2017-10-25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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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걷는다는 것은

산의 표정이 생기발랄해졌다. 계절 변화에 수줍음을 타던 산들이 설렌 마음을 기어이 색깔로 표출했다. 나보란 듯이 산봉우리마다 울긋불긋 단풍으로 염색했다. 더러는 계곡을 타고 내려와 아래 마을의 길섶까지 단풍 물감을 뿌려놓았다. 서울 도심의 동네 산들도 점점 엷어지는 연초록색 바탕의 큰 화폭에 형형색색 단풍으로 수북수북 수놓을 태세다. 며칠 후면 물색 좋은 색동옷을 차려입고 나와 절정에 오른 자태를 한껏 뽐내며 우리를 깜짝깜짝 놀라게 할 것이다. 먼동이 틀 무렵, 왜 그렇게 그날은 가슴 설렜는지 모르겠다. 그건 아무도 호흡하지 않은 숲 공기를 마시며 거니는 호사를 누린 때문만은 아니었다. 장엄하게, 그러나 조용히 날개를 펴는 가을의 향연을 직접 보고, 맡고, 들을 수 있어서일 것이다. 그날 동네 산속은 단풍의 역사가 이제 막 이뤄지려 하고 있었다. 나무 둥치에 누운 낙엽들은 그 예고편이었다. 얼마나 가을앓이를 한 것일까. 갈색으로 바싹 마른 모습. 낙엽들은 마치 오랜 이야기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여명의 산속은 아늑했다. 바람도 쉬는 것 같았다. 꼬불꼬불 이어지는 흙길. 아득한 것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파스텔 풍경이다. 나무숲 사이로 고운 색깔이 언뜻언뜻 보인다. 단풍 빛이다. 간밤에 몰래 물들였을 것이다. 숲속에 맑은 햇살이 퍼지자 푸른 잎 가운에 핀 꽃송이처럼 그렇게 화사할 수가 없다. 풀벌레도 감탄했는지 찌륵찌륵 목청을 돋우며 정적을 깬다. 저 멀리에서 가랑잎 구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산중의 쓸쓸함과 정겨움이 동시에 와락 밀려온다. 언제 이런 풍경을 또 볼 수 있을까 싶어, 숲길은 길었지만 아껴가며 걸었다. 따로 정해놓은 목적지가 없으니 걸음이 이렇게 방만할 수가 없다. 발길 닿는 대로, 기분 내키는 대로 걸었다. 걷다가 나도 모르게 낙엽 하나를 줍고 있었다. 마음도 어느덧 정처 없는 낙엽처럼 가을앓이를 한 탓일 게다. 메마른 걸 보니 여름날 그 지독한 장맛비에 잔가지와 함께 산화한 낙엽일 것이다. 마른 입살 안에 힘줄처럼 갈래갈래 뻗은 관다발의 잎맥이 어쩜 숲길을 빼닮았을까 싶다. 한 가운데 잎맥을 사이에 두고 양 옆으로 수 개의 관다발이 뻗은 숲길 모양. 낙엽은 이런 길의 원리를 어떻게 알았을까? 샛길을 빠졌더라도 종내 한 가운데 길에서 만나는 것을. 사람의 만남이라는 것도 이런 궤적을 그리려는 본능이 꿈틀거린다. 만남 하나하나가 그래서 소중하다. 허투루 할 일이 아니다. 만남의 길에서 사랑이 묻어오고, 사연이 묻어오고, 희로애락이 묻어오고, 추억이 묻어오는 것이다. 걷는다는 것은 어쩌면 이런 순간들을 만들고, 가꾸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낙엽에는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뒤안길만 있는 게 아니다. 희망이라는 언어가 숨 쉰다. 잎을 떨군 그 가지에 따스한 봄날 새싹을 틔울 것이라는 기약이랄까. 낙엽이 앙탈을 부리지 않고 내려오는 까닭일 것이다. 앙상한 가지들이 매서운 추위를 견뎌내는 것도 그런 언덕이 있음이다. 사람들이 사색하며 걷는 것도 따분한 굴레와 번뇌를 떨궈내고 새로운 동력을 찾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울긋불긋한 단풍 길을 걷는 것은 그 변화하는 색감을 느끼고자 함일 것이다. 길은 희한하게도 지루하거나 싫증나지 않는다. 코스모스길이든, 억새풀길이든, 가로수길이든, 숲길이든 계절따라 풍경이 다르거니와 걸을 때마다 매번 다른 생각의 지도를 그리게 하기 때문이다. 걸어온 길만큼 아기자기한 이야기꽃이 피어나는 것이다. 길은 한 번도 내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지만 걷는 의미를 깨우쳐주었다. 소슬한 바람결에 낙엽이 흩날리는 가을의 숲길. 햇살이 저만치에서 그림자 하나씩을 이끌고 걸어가는 사람들을 따사롭게 덮어주고 있었다.

2017-10-18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