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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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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 콩쿠르' 우승 조성진 실황, 11월 앨범으로 만난다

[메트로신문 장병호 기자]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국제 쇼팽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콩쿠르 실황 앨범이 11월 발매될 예정이다. 이번에 발매되는 앨범은 클래식 최고의 레이블인 도이치 그라모폰 레이블에서 최초로 발매하는 쇼팽 콩쿠르 실황 앨범이다. 한국인 우승자 조성진의 음악이 담기게 돼 기대가 크다. 조성진은 6세 때 피아노를 시작해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병행했다. 11세였던 2005년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했다. 2008년 '국제 청소년 쇼팽 콩쿠르' 최연소 우승, 2009년 '하마마쓰 국제 피아노 콩쿠르'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며 국제적으로 주목 받았다. 2011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3위에 이어 지난해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국제 피아노 콩쿠르' 3위를 차지했다. 이번에 조성진이 우승한 콩쿠르는 폴란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프레데릭 쇼팽을 기려 1927년 시작된 콩쿠르다. 러시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더불어 최고 권위의 대회로 손꼽힌다. 지금까지 쇼팽 피아노 콩쿠르의 주요 우승자로는 마우리치오 폴리니, 마르타 아르헤리치 , 크리스티안 짐머만, 윤디 등이 있다. 이들은 도이치 그라모폰과 계약해 활발한 음반 활동을 하고 있다.

2015-10-22 17:01:33 장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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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화백, 8월 뉴욕 자택서 별세

한국의 대표적인 여류화가 천경자(91)화백이 지난 8월 미국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숨을 거둔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10여 년부터 국내 미술계와 소식이 끊겼던 천 화백은 1년 전부터 생사 여부가 논란이 있었다. 천 화백의 맏딸 이혜선(70)씨는 22일 한 언로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난 8월 6일 새벽 5시쯤 현저히 맥박이 떨어지더니 의사가 보는 가운데 잠자는 것처럼 평안하게 돌아가셨다"면서 "어머니 시신은 화장해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극비리에 뉴욕의 한 성당에서 조용하게 장례를 치렀고 한국과 미국 양쪽에 사망 신고를 했다"고 밝혔다. 유골이 안치된 장소에 대해선 함구했다. 이씨는 뉴욕에서 함께 살며 천 화백을 간호해 왔다. 화가 천경자는 강렬한 채색화로 한국 화단에 큰 자취를 남겼다. 1972년 베트남전 당시 홍일점 종군화가로 맹호부대에 종군해 1주일간 M-16소총을 들고 꽃나무 그늘에 잠복하는 병사들, 연분홍 아오자이를 입고 자전거로 거리를 누비는 아가씨들을 많은 스케치와 담채 작품으로 남겼다. 타고난 글재주로 1955년의 '여인소묘' 등 단행본, 수필집, 신문잡지 연재 등을 통해 대중과도 호흡했다. 당대의 패션리더이기도 했던 그는 큰 키에 파격적인 색깔과 무늬의 옷, 뾰족한 하이힐, 머리를 둘러싸는 커다란 화관이나 얼굴을 감싸는 커다란 선글라스, 가늘게 그린 눈썹과 붉게 칠한 입술, 담배를 문 모습으로 주변을 압도했던 스타 화가였다. 김환기, 박고석, 최순우, 김흥수, 유영국, 김현승, 고은 등의 남성 예술인과 박경리, 한말숙, 전숙희 등 여성 문인들과 단짝이었으며 이덕화, 조용필 등 연예인들과 함께한 시간들도 사진으로 남아있다. 1924년 전남 고흥에서 군서기였던 아버지 천성욱과 무남독녀였던 어머니 박운아의 1남2녀 중 장녀로 태어난 천화백은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이 그림에 소질을 발견했고 졸업 후 의대에 가라는 부친의 권고를 뿌리치고 1941년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로 유학을 갔다. 1942년 제22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외할아버지를 그린 '조부(祖父)'가 입선하고 1943년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외할머니를 그린 졸업 작품 '노부(老婦)'가 입선하면서 화단에 들어섰다. 1952년 피란지인 부산에서 연 개인전에 나온 우글우글한 뱀 그림 '생태(生態)'로 일약 화단의 스타작가로 뛰어올랐다. 이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돼 있다. 국내 대표 여성작가로 승승장구했지만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 미인도 위작 사건'으로 미술관 측과 소송에 들어갔다 패소한 후 붓을 꺾고 맏딸 이혜선씨가 사는 뉴욕으로 떠났다. 1998년 11월 일시 귀국해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2003년 봄 뇌출혈로 병상에 누운 뒤 외부와의 접촉을 끊었다. 지난해에는 대한민국예술원이 천 화백에게 지급하던 수당 180만원을 중단하면서 생사여부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당시 맏딸 이혜선씨는 "어머니는 살아계시다"면서도 "어머니를 예술원 회원에서 제외해 달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 .

2015-10-22 11:53:53 염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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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영, CGV와 함께 인도네시아에 한류 전파

[메트로신문 장병호 기자] 배우 박보영이 CJ CGV와 함께 인도네시아에 한류 문화를 전파한다. CJ CGV는 오는 26일과 27일 이틀 동안 '제1회 인도네시아 토토의 작업실 영화제', 28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2015 한국·인도네시아 영화제'를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개최한다고 22일 밝혔다. 박보영은 이번 행사의 홍보대사와 특별 멘토로 참여할 예정이다. 박보영은 "'인도네시아 토토의 작업실'과 '한국·인도네시아 영화제'가 두 나라의 문화 교류 확대의 작은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며 "개인적으로도 현지 학생들을 격려하고 한류 문화의 전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삼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인도네시아 토토의 작업실 영화제'는 CGV 블리츠(blitz) 자카르타 그랜드 인도네시아에서 열린다. 지난 2년 동안 인도네시아 토토의 작업실을 통해 학생들이 완성한 작품 중 우수작 24편이 상영된다. '2015 한국·인도네시아 영화제'는 '10월 한국 문화의 달'을 맞아 열리는 행사다. 박보영 주연의 '돌연변이'가 개막작으로 상영되며 '암살' '스물' '국제시장' '베테랑' 등 16편의 최신 한국영화가 현지 관객과 만난다. 인도네시아 영화 5편도 스크린에 오른다. SM타운 콘서트와 한국의 오페라, 발레 등 공연 콘텐츠도 함께 상영된다.

2015-10-22 10:15:25 장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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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인터뷰] 클릭비, 그들이 13년 만에 완전체로 돌아온 이유

[메트로신문 장병호 기자] 클릭비(강후·오종혁·김상혁·우연석·유호석·하현곤·노민혁)의 완전체 컴백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반가움과 궁금증이 교차했다. 13년 만의 컴백은 반가웠다. 다만 90년대 스타들의 연이은 복귀를 보며 선택한 결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클릭비 멤버들은 "상업적인 성공을 생각한 컴백은 아니다. 팬들이 바란 만큼 우리도 무대 위에서 함께 하기를 갈구했다"고 입을 모았다. 13년 만에 다시 뭉친 이들 7명에게서 느껴진 것은 단 하나, 음악을 향한 강한 열정이었다. 1999년 데뷔한 클릭비는 댄스 중심의 아이돌 시장에 댄스와 밴드를 결합한 색다른 콘셉트로 주목을 받았다. '드리밍' '환영문' '백전무패' 등의 히트곡을 발표하며 많은 팬층을 확보했다. 그러나 2002년 이후 유호석·노민혁·하현곤이 탈퇴했고 다른 멤버들도 개인 활동을 하면서 클릭비는 추억 속의 그룹이 됐다. 그러나 이들 7명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언젠가 다시 뭉칠 것이라는 믿음으로 관계를 이어왔다. 13년 만에 다시 클릭비라는 이름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다. "개인 활동을 하면서도 저희 7명은 서로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어요. 그리고 오래 전부터 클릭비로 다시 뭉치자는 이야기를 했고요. 다만 멤버들이 군대를 가거나 각자 다른 소속사에 속해 있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각자 회사와도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는 나이가 됐잖아요. 그렇게 상황이 맞아떨어지면서 이렇게 여러분 앞에 다시 나오게 됐습니다." (김상혁) 클릭비의 컴백이 본격적으로 이야기되기 시작한 것은 2년 전 DSP 페스티벌을 통해서였다. 당시 군대에 있던 유호석을 제외한 6명의 멤버가 무대에 올랐다. 그때의 경험이 그룹 재결성에 대한 마음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마침내 7명이 다 모인 순간, 클릭비는 한 가지 질문과 마주하게 됐다. 바로 "클릭비다운 음악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이었다. "13년 만에 나오는 건데 클릭비의 음악은 무엇이고 어떤 색깔인지 고민이 됐어요. '백전무패'로 대표되기는 하지만 멤버 탈퇴 등으로 저희만의 색깔을 제대로 각인시키지 못했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1집부터 3집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맥락이 있다고 봐요. 바로 '밴드와 댄서의 조합'이죠. 오랜만에 나오는 만큼 팬에게도 보답이 될 수 있는 음악이길 바랐어요. 동시에 젊은 세대도 수용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자 굉장히 공을 들였습니다." (노민혁) 그렇게 완성된 클릭비의 신곡이 바로 '리본(Reborn)'이다. '다시 태어나다'라는 뜻의 제목처럼 클릭비의 새로운 변화와 도약을 담고 있다. 클릭비가 기존에 보여준 록 사운드에게 최신 트렌드인 힙합 리듬을 가미한 노래다. '리본'과 함께 발표하는 '보고싶어'는 사랑 노래인 동시에 팬들에게 바치는 노래이기도 하다. 김상혁은 "'처음 만난 8월 그날처럼'이라는 가사로 팬과 우리의 이야기를 은연중에 담았다"고 밝혔다. 오랜만의 컴백인 만큼 음원차트 성적이나 방송활동에 대한 기대도 생길 법 하다. 그러나 오종혁은 "클릭비라는 이름으로 음반 시장에서 경쟁을 하고 상업성을 높이기 위해 음원을 발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13년 동안 기다려준 팬을 위해, 그리고 7명 멤버 모두가 무대 위에 다시 서고 싶다는 뜻에서 결정한 컴백이기 때문이다. 7명이 뭉쳐서 만든 음악을 팬과 공유하기 위해 이들이 선택한 것은 바로 콘서트다. 다음달 20일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시작되는 콘서트는 예매 시작 2분 만에 전석 매진되며 변함없는 인기를 과시했다. 30대가 돼 다시 뭉친 이들은 가장 '클릭비다운' 음악을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7명이 계속해서 음악을 하기 위해 모인 거예요. 단발적인 활동이 되지는 않을 거예요. 앞으로 늙더라고 함께 하고 싶습니다." (오종혁) "팬들이 원한 것도 있지만 우리도 갈구했던 무대였어요. 최선을 다해 노래도 많이 발표하고 공연도 자주 하면서 꾸준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우연석) 사진/DSP미디어

2015-10-22 03:00:00 장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