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철의 쉬운 경제] 모자람이 행복의 뿌리?
지난 연말 여의도 금융회사 창구에서 노신사가 수십 개의 통장을 차례로 내밀면서 긴장하며 무엇인가 불안해하였다. 그 얼마 전 허름하게 차린 이가 푼돈(?)을 저금하면서 얼굴 가득히 미소를 지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도 흐뭇했던 장면과 대조적이었다. 사실, 무엇이든 마음대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유토피아에서는 만족을 느낄 수 없고 자칫 권태를 느끼기 쉽다. 모자람을 채워가려는 신선한 의지와 당당한 도전보다 더 중요한 무엇이 있을까? 플라톤은 '행복의 5가지 조건'에서 인간이 욕망하는 무엇들이 조금은 모자라는 듯해야 행복하다고 하였다. 재물, 명예, 재능, 용모, 체력 등을 추구하는 과정이 모두 다 가지기보다 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이렷다. 생각건대, 사람 사는 세상에서 진리가 무엇인지 헤아리기 어렵듯이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지인들 사이에도 완벽을 추구하는 척하는 인사를 만나면 금방 피곤해져 피하고 싶다. 사실, 모자라면 아쉽지만 넘치면 만족감보다도 피로감이 넘친다고도 한다. 쾌청한 날씨를 좋아하면서도 구름 한 점 없이 맑기만 한 날씨가 오래 계속되면 웬일인지 비와 바람을 기다린다.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리면 두 팔을 벌려 비를 받아들이며 반가워하지만 며칠만 계속내리면 다시 푸른 하늘을 그리워한다. 인생살이 쉬지 않고 겪어야 하는 희로애락도 마찬가지다. 변화도 없고 새롭게 도전할 건더기를 찾지 못할 때 인간은 의지가 약해지고 성취감도 느끼지 못한다. 칸트도 그리고 니체도 수차례 강조하였듯이, 어릴 때부터 무엇인가 선의지善意志)를 지니면 지능이 발달하고 변화에 대한 적응능력을 높인다고 한다. 베풀려는 마음은 혼자만이 아니라 세상을 더 멀리 더 따뜻하게 만들기 때문이라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선의지가 없으면 지식, 재산, 권력이 공동체에 혼란과 해악을 끼치다가 급기야는 자신도 망가지는 광경을 수시로 목격할 수 있다. 누구나 나름대로 가진 능력을 오남용하다가는 급기야는 제 덫에 스스로 걸려들기 마련이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눈길이 자주 가는 대목은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知足不辱 知止不殆. 노자, 도덕경44장)"는 교훈이다. 말할 나위도 없이, 세상사 크고 작은 화근은 모두 만족을 모르는 데서 시작된다. 물론 사단칠정에 시달리는 인간으로서 욕망으로부터 벗어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감히 등대지기가 되어 먼 바다를 보며 시를 읽고 싶었으나 그 거룩한(?) 꿈을 이루지 못했다. 멋진 등대를 찾아 키웨스트까지 갔었지만, 등대 근처에 가면 지금도 가슴이 설렌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헤매는 까닭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인지 모르겠다. 주요저서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호모 이코노미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