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깊은 人터뷰]싱가포르 기업 비반스 "신장 투석 환자의 편안한 일상을 위한 혁신"
신장 투석은 신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몸에 쌓이는 노폐물과 독소 등을 인공적으로 제거하는 치료 방법이다. 신장 이식 대기 시간이 길거나 이식 대상이 되지 않는 말기 신장 질환 환자들에게, 투석은 유일한 희망이지만, 가혹한 치료법이기도 하다. 병원에서 진행하는 혈액투석의 경우, 환자들은 최소 주 3회 병원을 찾아 하루 4~5시간 투석을 받아야 한다. 격일로 병원을 오가며 하루 반나절을 꼼짝없이 붙들려 있는 셈이다. 집에서 받는 복막투석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의료기관을 오가지 않을 뿐, 매일(주 7회) 하루 10~12시간 기계와 연결해 투석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장 투석 환자들에겐 집이나 병원을 벗어나는 장거리 여행은 꿈같은 얘기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장 질환으로 인한 투석 환자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신장 투석 환자는 48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2010년보다 2.4배 늘어난 규모다. 특히 이 가운데 80%는 병원에서 진행하는 혈액투석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싱가포르 헬스케어 스타트업 '비반스(Vivance)'는 일찌감치 이러한 문제들에 주목했다. '왜 환자들이 병원 치료에 의존하는 대신, 집에서 편안하게 투석 치료를 받을 수는 없을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모든 전자 기기가 혁신을 거듭해 온 지난 수십 년간, 신장 투석을 위한 의료 기기는 첨단 기술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전 세계 환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지만, 이들은 여전히 전통적인 치료법에 의존해 삶의 질은 포기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도 지켜봤다. 싱가포르 투아스(Tuas) 지역에 위치한 비반스 본사에서 만난 수레샤 벵카타라야(Suresha Venkataraya) 대표(CEO·사진)는 "비반스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혁신적인 가정용 투석장치를 개발하게 됐다"며 "환자들의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아줌과 동시에 의료 시스템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솔루션을 제공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 현행 치료 시스템의 문제는 뭔가. "말기 신부전 환자 가운데 병원을 찾는 투석 환자 비중은 88%에 이른다. 가정 투석에 비해 치료비용도 훨씬 비싸고 병원을 오가야 하는 환자들의 불편함도 커진다. 이러한 비효율성은 의료시스템의 재정 부담 증가로도 이어지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환자 1인당 연간 평균 투석 지출액이 9만 달러(약 1억3000만원)에 달한다." - 가정 투석을 늘리면 되지 않나. "실제로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이 가정 투석을 늘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병원 내 투석이 줄고 가정 치료를 선호하는 방식으로 전환이 됐다. 하지만 여전히 장애물이 많다. 가정 내 복막투석은 365일, 하루 최소 10시간이 소요된다. 한번 치료를 하는 동안 10~12리터의 용액을 써야 한다. 이 용액은 대체로 한 달에 한번 배달되기 때문에 가정에는 최대 400kg에 달하는 용액을 저장해 둘 공간이 필요하다. 스스로 투석을 하기 때문에 사전 교육을 받아야 하는 문제, 10시간 넘게 움직일 수 없는 불편함, 복막염 등 감염 위험에 대한 두려움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비반스는 환자들을 편안하고 안전한 '가정 투석'으로 이끄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비바컴포트(Viva Komfort)' '비바컴팩트(Viva Kompact)' '비바커넥트(Viva Konnect)'라는,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비바컴포트는 투석액을 직접 생성하는 혁신적인 자동 투석 시스템이다. 비반스 사무실에서 본 비바컴포트는 허리 높이 정도로, 침대 옆 수납장 정도 크기였다. 비바컴팩트는 한층 더 혁신을 이룬, 초소형 복막투석기다. 어깨에 직접 메어보니 3kg 내외로 무게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든 투석을 받을 수 있어 말기 신장 질환 환자들도 장거리 여행이 가능한 세상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비바커넥트는 의료진이 환자를 원격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질병 위험을 예측하는 인공지능(AI) 기반 모델을 포함해 선제적이고 개인 맞춤화된 치료를 가능하게 한다. - 비바컴포트는 뭐가 다른가. "비바컴포트는 투석 액을 스스로 생성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을 갖춘 투석기다. 기존 가정용 투석 장치는 하루에 약 3개의 무거운 투석액 팩(6리터 2개, 2리터 1개)을 필요로 하지만, 비바컴포트는 1리터 농축액이 담긴 팩 하나로 충분하다. 나머지 필요한 투석액은 수돗물을 이용해 자체적으로 생성한다. 소모품의 90%가 줄어드는 혁신이다.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것은 물론, 플라스틱 폐기물과 물류 부담도 줄일 수 있다. 비바컴포트의 또 다른 핵심 가치는 감염 위험 관리 기능이다. 복막투석 환자들은 기기와 연결하거나 분리하는 과정에서 감염에 대한 불안을 자주 느낀다. 이 투석기는 통합된 자외선(UV) 소독 모듈을 통해 이러한 오염 위험을 줄여준다. 환자들이 치료 중에도 시스템에서 자유롭게 분리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에 투석 중 이동에 대한 불안감을 낮춘다. 또한 비바커넥트를 통해 감염 위험을 실시간 모니터링할 수 있으며, 감염이 위험이 높을 경우 병원에 신속하게 보고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 비바컴팩트의 경쟁력은 뭔가. "비바컴팩트는 환자들의 평범한 일상을 되찾아줄 수 있는 더욱 획기적인 제품이다. 이 투석 기기는 특허 받은 '흡착제' 기술을 사용, 복막의 노폐물을 제거하고 오염된 투석 액을 다시 깨끗한 용액으로 실시간 재생한다. 이 때문에 복막투석은 1회 3리터의 용액만으로도 어디서든 수행할 수 있으며, 기존의 12리터 치료와 동등한 투석 효과를 발휘한다. 기기 자체의 무게는 약 3kg으로 어깨에 간편하게 멜 수 있을 만큼 작고 휴대가 용이하다. 비바컴팩트가 있다면 투석 환자들의 장거리 여행도 충분히 가능해진다." - 제품 상용화는 언제쯤 기대할 수 있나. "시장 특성상 규제가 엄격하고 임상 시험이 필수이기 때문에 명확한 상용화 일정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향후 18개월 내에 비바컴포트에 대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위한 임상시험을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비바컴포트는 글로벌 최대 시장인 미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 시장으로 진출할 계획을 갖고 있다. 세계적으로 가정 내 복막투석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데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 등 신흥시장의 경우 재택 치료 중심 정책의 도입이 가속화 되는 것도 긍정적인 요소다. 한국 시장 진출도 고려하고 있다. 국내 투석이 필요한 신장 질환 환자 수는 현재 1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10년 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비반스의 진출은 한국 만성 신장 질환 환자들에도 새로운 희망이 될 전망이다. - 시장 잠재력은 얼마나 있다고 보나. "앞으로 당뇨병, 고혈압, 고령화 인구 증가로 신장 투석 환자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경우 투석 환자는 2024년 57만4400명에서 2035년에는 약 70만2000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는 이 중 약 15~20%가 가정 치료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가정 투석 치료 시장은 100억 달러를 넘어서고 있으며, 향후 수 년간 약 10%의 연평균 성장률(CAGR)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비반스 제품의 혁신적인 특성을 고려할 때, 이 시장에서 상당한 시장 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 진출 계획도 있나. "물론이다. 진출은 당연히 고려하고 있으며 이미 한국 기업들의 투자도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투석 인구가 거의 100만명이 넘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 의료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국가의 경우, 복막 투석 확산을 가속화 하여 잠재력이 높은 시장으로 보고 있다." - 비반스의 최종 목표는 뭔가. "비반스는 환자들을 위한 혁신을 만들어 가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신장 투석 관련 의료기기는 혁신에서 소외된 탓에, 전 세계 말기 신장 질환 환자들은 생존을 위해 일상을 포기하는 일을 당연하게 여겨 왔다. 비반스는 환자들에게 편안한 삶을 되찾아줌과 동시에, 국가의 의료 재정 부담을 함께 낮추는 지속가능한 혁신을 앞으로도 계속 이뤄나갈 계획이다." /이세경기자 seilee@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