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철의 쉬운 경제] 임금이 바뀌면 옥문을 연다?
[신세철의 쉬운 경제] 임금이 바뀌면 옥문을 연다? 중세사회를 악취 나는 암흑의 세계로 만든 것은 어둠 속에서 은밀히 거래되었던 면죄부(免罪符)였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진심으로 회개하면 하느님께서 죄를 사하여 주신다."고 하는데, 하느님을 대신해 타락한 사제가 돈을 받고 자비를 베푸는 허위와 위선의 세계가 되었다. 돈만 갖다 바치면 반인륜적 죄를 범하고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거들먹거리며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다. 그 대신에 돈과 줄이 없는 시민들이 죄를 뒤집어 쓸 위험이 도사렸다. 돈과 권력을 거래하며 사제는 양심을 팔고 죄인은 죄를 세탁하는 사회에서 어찌 인간의 존엄성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유전무죄, 유권무죄라는 말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절대 왕조시대에는 임금이 무엇이나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아무 제약이 없었다. '어리석은 백성'들은 임금의 행실에 대하여 그저 "성은이 망극합니다"라며 감복하는 척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악을 가리지 않고 벌주고 싶은 사람들은 벌을 주고, 상을 주고 싶으면 아무나 상을 주어도 어쩔 수 없었다. 조선왕조실록을 훑어보면 대부분 임금들이 민심을 외면한 걸로 보아 "민심은 천심"이란 말은 어찌 보면 그저 말에 그치는 겉치레에 불과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민심을 외면했기 때문에 불행한 임금이 많이 생기고 백성들은 고통을 받아야만 했었나 보다. 입법 행정 사법권을 한 손에 거머쥔 임금이 어질면 신상필벌 원칙을 지키려 한다. 누명 쓴 백성들을 찾아내어 풀어주고, 죄진 자에게 마땅한 벌을 주어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였다. 임금이 어리석으면 죄 없는 자 대신에 죄진 자를 풀어주어 범죄는 창궐하고 백성들을 불안에 빠트리기 마련이다. 대략 10년 전 일이었다. 어느 전직 고관이 "임금이 바뀌면 옥문을 연다."고 떠들었다. 낮 뜨거운 죄를 저지르고 감방살이를 하는 제 동료 선배들을 풀어주라는 압력이다.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서 무엇이든 대통령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죄인의 죄를 마음대로 줄여줄 수 있지만 엉뚱한 백성들의 심기는 불안할 수밖에 도리가 없다. 2022년 새 대통령 취임을 얼마 앞두고 전직 대통령이 갇혀 있는 옥의 옥문을 열어주는 조건으로 다른 거물이 옥살이 하는 옥문도 같이 열자는 불편한 거래가 논의되었다는 의혹이 있다. 일련의 사건들을 미뤄보건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출세하려 악다구니를 하는 까닭은 죄를 저지르고도 언제든지 옥문을 나설 특권을 누리려는 욕심도 있기 때문일까? 선량한 시민들의 아린 마음을 어떻게 달래려는지 모르겠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표상한다면 사면권은 억울한 이들에 한정하여 극히 제한되어야 한다. 만약, 새 대통령이 과거의 오염을 말끔히 씻어내기보다 감추려는 거래에 타협한다면 국민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주요저서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호모 이코노미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