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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홍경한의 시시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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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외국인 기획자들의 ‘포트폴리오’로 전락한 비엔날레

2년 주기로 개최되는 국제미술전을 비엔날레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만 20여개가 운영되고 있다. 대표적인 비엔날레로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를 꼽는다. 국제적 담론생성 측면에선 제 기능을 못하지만, 오랜 역사를 지닌 데다 규모 및 예산 등에서 덩치가 작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다. 외국인 기획자들에 대한 선호도가 상당하다는 것도 닮은꼴이다. 광주비엔날레는 2008년 이후 줄곧 외국인 큐레이터를 빼놓지 않았다. 부산비엔날레 역시 2016년을 제외하곤 2010년부터 2018년까지 다른 나라 큐레이터가 전시감독을 맡았다. 대구사진비엔날레와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를 포함해 이들 비엔날레 또한 2020년 개최 예정인 행사에도 이미 외국인 기획자들을 감독으로 확정한 상태다. 동시대성이 강조되고 세계가 초단위로 연결되는 시대, 어느 나라 사람이 예술 감독을 맡느냐는 그리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2022년 카셀도큐멘타 전시총감독으로 선정된 '루앙루파'는 인도네시아 콜렉티브 그룹이고, 베니스비엔날레 국가관마저 외국 작가를 내세우는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단, 억대를 넘나드는 세금까지 쥐여주며 극진하게 모셔오는 이상 성과 여부는 따져봐야 한다. 안타깝게도 그동안 외국인 감독들이 내놓은 성적표는 볼품없었다. 대체로 동시대미술의 흐름과 예술담론의 틀을 제시하지 못했고, 실험적인 방법론을 통해 현대미술에 관한 의심할 수 없는 세계 문화예술의 각축장을 만드는 것에도 실패했다. 동시대예술의 혁신과 도전, 새로운 담론형성과 방향성 제시 측면 역시 희미했다. 그야말로 무색무취로 끝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역동적 파괴로써의 비엔날레는 고사하고 오히려 조직 내 갈등을 유발하거나 편협만 전시를 꾸리는 등 문제만 만든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14년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을 지낸 프랑스의 '올리비에 케플렝'이다. 당시 그는 출품작가 77명 중 26명을 자신과 동일한 국적의 작가로 채워 비엔날레를 '프랑스 작가전'으로 둔갑시켰다. 케플렝은 이 전시로 '보이콧'까지 선언된 전시감독 불공정 선임 논란과 더불어 프랑스 작가 특혜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2010년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을 지낸 '마시밀리아노 지오니'는 자신이 전시감독을 맡은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 단 한명의 한국작가도 초대하지 않아 입질에 올랐다. 광주와 30%가량이나 작가가 겹쳤지만 그는 "한국 작가에 대한 이해부족"을 이유로 철저히 외면했다. 그리고 지오니의 한국 작가 배제는 한국의 비엔날레가 국제적 큐레이터들의 '보따리 장사판'이 되고 있다는 지적에 불을 지폈다. 한국의 여러 비엔날레가 외국인 기획자들의 포트폴리오를 완성하기 위한 수단 혹은 더 넓은 무대로 진출하기 위한 '디딤돌' 역할만 하고 있다는 시선은 단지 곡해로 치부하기 어렵다. 앞서 언급한 '마시밀리아노 지오니'는 광주비엔날레 감독을 거쳐 베니스비엔날레로 직행했다. '오쿠이 엔위저'도 그랬다. 이외, 2014년 광주비엔날레 감독을 역임한 '제시카 모건' 등, 여타 외국인 감독들 역시 한국의 비엔날레를 통해 인지도가 높아지거나 문화 권력에 한층 더 다가설 수 있었다. 이들이 세계적인 디렉터로 주목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사실 한국의 비엔날레가 배경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역대 감독 모두가 자신의 경력에서 아주 중요한 시기에 예술 감독이 됐다."는 '마리아 린드' 2016 광주비엔날레 감독의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누구나 '하랄트 제만'내지는 '퐁튀스 훌텐'이 될 수는 없겠으나, 지난 시간 어떤 비엔날레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낸 외국인 기획자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늘날 한국 비엔날레들의 유별난 외국인 사랑은 기이하다. 전시의 질을 담보하는 최선의 카드인지 의심할만한 역사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에 대한 맹목적 구애는 꽤나 가난해 보인다. 행여 문화사대주의와 근거 없는 선민사상 아래 한국 기획자들의 문화적 역량을 스스로 폄하한 결과는 아닌지 모르겠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19-08-13 08:40:31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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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예술과 ‘집’

'집'은 사회 공동체의 기초단위로써, 몸과 마음의 쉼터라는 본래의 기능을 넘어 도시의 특질을 배양하는 공공 오브제이다. 동일한 사회문화적 문맥 내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다양성과 맥락을 담는 기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집은 너와 다른 지위와 신분을 나타내는 기준이면서 '부(富)의 차별화'를 위한 수단으로 존재한다. 물론 도시의 팽창과 물질화의 상징이자, 자발적 고립의 판옵티콘(Panopticon)의 세계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특히 빈부격차 및 인간성의 상실을 대리하는 기호인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예술가들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술가들에게 집은 미적 가능성을 덧칠할 수 있는 캔버스이면서 당대 현안을 소환하는 비판적 촉매이다. 정치적·사회적 배경 아래 벌어지는 인간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이고, 인류 공통의 이슈를 확장시키기 위한 방법에 있어서도 집은 중요한 요소이다. 실제로 집을 단지 거주의 개념이 아닌, 폭넓은 관점으로 해석하는 작가는 드물지 않다. 일례로 예루살렘 서안 출신의 예술가인 '에밀리 자키르'는 1948년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사라진 팔레스타인의 418개 마을을 기억하자며 집(마을)을 등진 이들의 이름을 적은 텐트를 설치했다. 2017년 카셀도큐멘타의 한 전시장에 선보인 이 작품은 사상과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 앞에 집을 잃어버린 사람들, 그 집과 함께 사라진 가족들의 이름을 새긴 일종의 묘비명이다. 중국 작가 '아이웨이웨이'의 '유랑하는 사람들'(2017)은 공산주의 정권으로부터 추방당한 예술가인 작가의 시각에서 난민과 이주민을 향한 공감과 연민을 녹여낸 작품이다. 특정한 정치적 상황을 말하기보단 인간이 처한 '새로운 난민의 조건'을 설명하는데 긴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이외에도 예술가들은 집이라는 명사를 통해 다양한 현실의 비극을 언급한다. 시리아 난민 소년이 익사한 레스보스 섬의 두 동강 난 나무배와 노로 만든 설치작품으로 정치적·사회적 박해와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인간을 묘사한 멕시코 작가 '기예르모 갈린도'를 비롯해 임시 거주형 콘크리트관 20개를 차곡차곡 쌓아 후기자본주의사회가 만든 위기를 표현한 이라크 출신 쿠르드족 작가 '히와 케이'의 설치작품 '우리가 숨을 내쉴 때' 등이 그렇다. 특히 지난 2011년 쓰나미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 인근 주민들이 방사능 오염물질을 피해 정든 집을 떠나 피난길에 오른 일본인들의 상황을 '후쿠시마 산책'(2018)이라는 제목의 작품에 담은 콜렉티브 그룹 '돈트 팔로우 더 윈드', 삶의 질조차 값으로 매겨지는 당대 구조를 비판하는 육효진의 '쪽방 프로젝트' 역시 동시대 인류사에서 기억해야 할 사회문제를 집과의 관계로 다룬 작업에 해당된다. 이들의 작업은 떠도는 이들과 집을 연계한 작업인 '마이클 윈터바텀'의 영상 '인 디스 월드'(2002)처럼 동시대 인류의 가슴 아픈 현재의 역사를 보여주며 집이라는 개념을 통해 인류의 상처와 아픔을 관조의 대상으로 삼는 현재를 통찰한다. 실종된 것이 단지 집이라는 장소 혹은 공간만은 아니라는 것을 독백처럼 내뱉는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여전히 우리 주변엔 한두 평 남짓한 공간에서 희미한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정치적·경제적·사회적 틈에서 무언가를 잃은 채 부유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다양한 문제의식을 시각화하며 현실에 개입하는 예술의 혁혁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나와 다른 환경에 처한 이들에 대한 공감도가 그리 높진 않기 때문이다. 단지 집만 놓고 보더라도 말이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19-07-28 13:22:29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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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기꺼이 포기할 것들

미술현장을 외면했다며 2013년 열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전에 몰려가 시위까지 벌였던 이들은 오늘날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한 달에 80만원도 안 되는 수입으로 생계를 꾸리는 미술현장을 대변하는 게 서울대 출신 작가들로 채워진 전시에 항의하는 일보다 가벼운 것일까. 대작 논란으로 사회를 시끄럽게 한 조영남 사건에는 성명서 발표와 고소까지 진행했던 미술단체들은 정작 설 자리를 잃어가는 중견작가들의 현실에 대해선 말이 없다. 누군가의 작업실엔 팔 그림이 없어 그림이 없고, 누군가의 작업실엔 퍽퍽한 삶을 사느라 그릴 시간이 없어 그림이 없는 양극화현상을 우려하는 이도 찾아보기 어렵다. 작가들이 유통시장에 직접 뛰어 들어 박리다매로 작품을 팔게 하는 기이한 양태를 조장해온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정책을 수년 째 접하면서도 한국 미술계 식자라는 자들은 별 다른 비판을 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들이 깔아 놓은 무대에 올라 원고료 몇 푼에 이름을 빌려주고 무색무취한 글을 통해 적당히 동조한다. 하긴, 문제가 있어도 유구무언하거나, 유사한 사안이라도 그때마다 다른 입장을 취하는 미술계 인사들의 모습은 하루 이틀 된 게 아니다. 일례로 '내 사람 심기'라는 구태의연한 정치권력의 독선에 대항한 사례로 남은 2013년 '부산비엔날레' 파행 사태 당시 문화예술단체를 비롯한 소장파 기획자 및 평론가들은 민주적 절차의 옹립과 원칙 추구를 외치며 감독 선임절차 과정에서 드러난 비민주적 양태에 보이콧(Boycott)까지 불사했다. 현 국립현대미술관 윤범모 관장도 그 중 한사람이었다. 한국큐레이터협회장이었던 그는 "미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한없이 부끄러운 사태"라며 절차적 투명성을 강조한 입장문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약 6년의 시간이 흘러 그 또한 불합리한 문화행정과 '코드 인사' 의혹의 주인공이 되었고, 절차적 정당성에 하자가 있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임명되었다. 하지만 이번엔 일부 작가들을 제외하곤 누구도, 어떤 단체도 반발하지 않았다. 2013년 당시 윤 관장과 함께 공정성과 투명성, 절차의 민주성을 외치던 이들조차 침묵의 터널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자신과 관계된 문제라면 기꺼이 누군가에게 맞서지만 누군가를 위해 맞서는 모습은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게 작금의 미술계이다. 보신주의적이거나 기회주의적인 태도가 몸에 밴 무능과 권태로운 욕망 외엔 물려줄 것이 남아 있지 않은 이들이 소위 동시대 한국 미술계를 이끈다는 사람들이다. 매번 이런 글을 써봐야 달라질 것 하나 없음을 알면서도 그들을 보면 문득문득 되묻게 된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집요하며, 시니컬한 이미지로 기억될 것을 모르진 않음에도 그 욕망의 분동에 비례해 책임감과 책무 또한 준수해왔는지 궁금해진다. 예술가들이 버틸 수 있도록 기반조성과 자생력 확보에 힘을 보탤 책임, 사회 속 예술의 위치를 견고히 다져야할 책무, 흔들림 없는 신념과 소신으로 건강한 미래를 지향하며 내가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비전에 공들일 책임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긍정적으로 읽히진 않는다. 그들의 궤적과 모든 태도의 중심에는 이해관계와 이익을 배제하지 않은 사적 혹은 공적 욕망이 들어 있었고, 그토록 되뇌던 정의로움을 포함한 부당함에 대한 분노조차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 혜택 앞에선 무용지물인 것이었다. 위치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면 기꺼이 포기할 것들이었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19-07-14 14:04:43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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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국립현대미술관, ‘민주주의’ 말할 자격 있나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술관은 무엇을 움직이는가-미술과 민주주의'를 주제로 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미술관의 연구기능을 강화하고 동시대 미술 담론 활성화 차원에서 시작된 연구 프로젝트의 세 번째 학술행사이다. 지난해 4월과 11월에 마련된 행사에선 각각 미술관의 주요 기능인 연구와 수집에 대해 다뤘다. 미술관 개관 50주년을 기념한 이번 심포지엄은 미술과 미술관에 민주주의를 묶었다. '현대미술관의 민주주의 실천'과 '현대미술의 민주주의 재현'이라는 큰 틀 아래 제도/기관, 사회정의, 지역/경계, 재현 이후 등을 소주제로 담았다. 모진 역사 속에서 힘겹게 민주주의를 성취해온 우리의 현실을 고려하면 사회적·정치적·초국가적 맥락에서의 미술과 미술관의 역할 및 민주화와 미술관의 다층적 관계성을 내세운 이번 심포지엄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민주주의가 작품 혹은 전시를 통해 어떻게 재현되어 왔는지를 세계사적 흐름에서 조명했다는 것만으로도 그 의의는 작지 않다.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이 민주주의를 화두로 한 심포지엄을 개최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선 냉소적이다. 민주주의의 절대 가치인 평등과 공정, 상식의 실현과 기회균등의 정당성 차원에서 의구심을 떨치기 힘든 절차로 임명된 윤범모 관장 체제하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이기에 그렇다. 지난 2월 임명된 윤범모 관장은 본래 공직자가 되기 위한 일종의 시험인 역량평가에서 탈락했다. 역량평가를 통과한 후보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인사권자였던 도종환 장관은 윤 관장에게 사상 처음으로 재평가라는 기회를 줬다. 그러자 정부가 정해놓은 인사를 밀어주려 한다는 특혜시비가 일었고 '코드 인사' 논란이 불거졌다. 논란의 중심에 선 윤 관장은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 속에서도 결국 임명장을 받아들었다. 평소 패거리 의식과 인맥 제일주의를 미술계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하며 '근친상간의 구조'라고까지 격하게 표현했던 그였지만 그때는 달랐다. 정작 자신의 문제 앞에서는 불공정 절차와 특혜의혹이 난무한 인선 과정에서 발을 빼지 않았다. 오랜 시간 부조리와 불평등, 반민주적인 것에 함몰되는 세태를 꾸짖던 진보 지식인이었던 그였기에 미술인들의 좌절과 실망은 컸다.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사퇴여론도 없지 않았다. 물론 문화예술기관장을 색깔, 코드, 인맥으로 꽂는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거셌다. 당시 윤 관장과 함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직에 응모하여 유일하게 역량평가를 통과했으나 석연치 않은 이유로 떨어진 이용우 전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는 "정부가 응시자들을 농락했다"며 "기회균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마련한 공개모집제도가 비공정성으로 얼룩졌다"고 거칠게 비난했다. 복잡하고 다양한 개념을 갖고 있지만, 결과보다 절차와 과정을 중요시하는 게 민주주의이고, 민주적 가치를 경시하는 반민주적인 사고와 행위에 대해선 관용을 베풀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권력을 배경으로 한 특수 이익이나 부분 이익을 배척하는 것 역시 민주주의이며, 자유와 평등, 공정, 의사결정의 민주성은 민주주의가 지켜야 할 가치이다. 하지만 윤범모 관장은 민주적이었다고 단언하기 곤란한 과정을 통해 관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6개월이 지난 현재 그가 수장으로 있는 기관에서 '미술 및 미술관과 민주주의'를 논하는 국제토론회를 열었다. 난 이 상황 자체를 꽤나 아이러니하게 바라본다. 한편으론 패널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현대미술관의 민주주의 실천과 사회정의가 과연 미술관 안으로도 향했는지, 시장 논리로 재편되는 미술관 담론을 말하기에 앞서 정치논리가 지배적인 현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이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19-06-30 13:17:26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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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범람하는 ‘아트페어’의 그늘

'아트페어(art fair)'란 말 그대로 그림을 팔고 사는 미술품 시장이다. 그림을 구입하고자 하는 이들은 누구나 칸막이 쳐진 작은 공간을 오가며 마음에 드는 작품을 구매할 수 있다. 흥정도 가능하고 때론 깎아도 준다. 콘텐츠만 미술일 뿐, 형식은 백화점이나 마트와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발표한 2017년 기준 미술시장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는 모두 49개의 아트페어가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단발성 아트페어와 전시 부대행사로써 진행되는 아트페어, 올해 신설된 아트페어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70여개 안팎을 넘나든다. 10여개에 불과하던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거의 '범람' 수준이다. 간혹 동시대미술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는 헛소리로 포장되곤 하지만 지극히 상업적인 행사인 아트페어에도 나름의 장점은 있다. 우선 한자리에서 다양한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다. 또한 중저가 작품들이 많아 비교적 부담 없이 작품을 구입할 수 있다. 판매에 따른 수입으로 작가들은 창작활동을 지속할 수 있다. 그러나 범람은 '침수'를 낳는다. 아트페어도 마찬가지다. 무분별한 난립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일단 미술이 기획의 형태로 생산되고 소통 및 소비되는 일이 비일비재해지면서 미술자체가 기획화 된다. 대중 취향에 호소하는 얄팍한 '상품'이 작품인 냥 둔갑되어 '값'과 '가치'의 차이를 희석시킨다. 이윤추구에 부응하는 욕망에 의해 예술작품이 재단되거나 계량되는 현상도 아트페어의 부작용이다. 행사의 특성상 '장식'에 준하는 작품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점은 예술향유의 편식마저 유도한다. 잘 팔리는 작가 혹은 그림이 예술가의 재능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거나, 예술작품에 대한 미적 기준조차 시장이 좌우하는 폐해도 가볍지 않다. 결과적으로 아트페어에는 장·단점이 공존한다. 점차 비대해지는 미술시장에 봉헌하는 작가들에 대한 시선도 엇갈린다. 민생고 해결에 있어 마땅한 대안이 없으니 시장의 역할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존재하는 반면, 시장부양에 비례해 상업적이지 않은 작가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균형론'도 만만치 않다. 흥미로운 건 이미 넘쳐나고 있음에도 지원이란 명목 아래 개인사업자들의 장사 내지는 포트폴리오 작성에 세금까지 투입하는 정부와 지자체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국내 10여개의 아트페어는 지자체가 주최한다. 아트페어가 교내에 침투한 첫 사례인 홍익대학교의 '캠퍼스 아트페어'는 서울시가 조성하고 있는 '캠퍼스 타운'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여기엔 모두 시민의 혈세가 쓰인다. 정부는 한 술 더 뜬다. 아트페어에 등급을 매겨 예산을 지원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작가들에게 직거래로 작품을 팔라며 판까지 깔아준다. 대표적인 사례가 문광부 산하기관인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하는 '작가미술장터'이다. 그동안 여러 지면을 통해 수차례 지적한 '작가미술장터'는 대중과 함께 하는 미술축제, 소통의 장이라는 그럴싸한 수사를 갖다 붙이지만 실상은 '판매'와 방문객 수에 사활이 걸린 행사이다. 여기선 작가들이 직접 고객과 직거래를 한다. 이때 창작자들은 싫든 좋든 갤러리스트나 딜러가 되고 거간꾼이 된다. 정부와 지자체는 자본과 가까워질수록 예술의 자율성은 저하된다는 사실을 옹호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반경영 마인드를 창의성과 독창성을 최상의 가치로 삼아 예술의 본질을 소환하고 진보된 예술향유를 이끌어야 할 예술경영으로 곡해한 채 동시대 미의식이 상업주의와 같은 선상에 놓는 과오를 자각 없이 설파한다. 대학은 더 이상 책을 들지 않으며 학생들에게 현장체험이라며 돈맛부터 보게 한다. 예술인복지와 창작지원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강력하게 주문해야 할 기성 작가들도 자신의 그림이 호텔 화장실 변기 위에 설치된 모습을 보면서도 자존심에 상처받지 않는다. 물론 사회적 의사로써의 예술이 곧 작품의 가격이라는 것도 잘 알지 못한다. 그러길 20여년, 변하지 않는 한국 미술계의 씁쓸한 그늘이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19-06-16 13:00:58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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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기대감 커진 ‘목판화비엔날레’

한국 현대판화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된 것은 1950년대 이후 국내 일부 작가들과 해외파들이 속속 신기술을 접하고 소개하게 되면서부터이다. 창작판화 110주년을 넘어선 일본이나 17세기부터 판화 황금시대를 구축해온 중국에 비해 출발이 훨씬 더뎠던 초창기 한국의 판화는 단순한 기법의 판화가 주류를 이루었고 사회적, 예술적 인식 역시 낙후되어 있었다. 그러나 내외적 빈곤에도 불구하고 한국 현대판화의 선각자들은 선진 기술과 기법을 신속히 받아들이면서 발전시켜 나갔다. 이러한 움직임은 판화부흥의 새로운 발판을 제공했으며, 1958년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한국판화협회』를 비롯해 1968년 『한국현대판화가 협회』가 창설되면서 판화의 현대화는 가속 페달을 밟게 되었다. 70년대와 80년대에 접어들면서 판화는 명실상부한 독자성을 획득한다. 제작 환경은 열악성을 면치 못했어도 70년대부터 생겨난 그룹들은 판화가 개성 있는 미술 분야로 자리 잡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80년대에는 『서울프린트』, 『프린트 미디어』, 『나무』, 『창작판화가회』, 『현대목판화회』 등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판화 보급운동에도 앞장섰다. 괄목할만한 현상은, 인식의 변화로 인한 전문적인 전시의 유치와 판화인구의 확산이었다. 1986년 처음으로 대한민국 미술대전에 판화부문이 새롭게 신설되었고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나 공간국제판화전, 한국현대판화가협회 공모전, 판화미술제 등을 통해 신진작가들이 배출됐다. 여기에 1993년 열린 '한국현대판화 40년' 전을 비롯해 1998년 개최된 '한국현대판화 30년' 전 등 굵직한 전시회가 연이어 추진되면서 국제화로의 교두보까지 마련했다. 이와 같은 80~90년대 판화부흥은 학계의 움직임과 맞물려 돌아갔다. 1988년 추계예술대학교와 홍익대학교에 국내 최초로 판화과가 신설되어 우수한 인재들을 양성했다. 성신여대, 서울대, 이화여자 대학원에도 관련 학과가 만들어져 체계적인 배움의 터전을 굳건히 함과 동시에 판화가 하나의 특정, 고유 예술로 편입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판화의 전성기는 짧았다. 1990년대 후반에 도래한 세계 경제 불황의 여파에 직격탄을 맞은 데다, 무차별적으로 상업판화를 양산한 소수의 화랑들과 공방들, 일부 의식 없는 작가들로 인해 판화의 이미지는 실추되었다. 그러나 판화계의 대응은 미약했다. 다행이랄까, 그럼에도 판화는 독자성과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전문성과 대중성 면에서 절정에 달했던 90년대와는 비교할 바가 아니지만, 일부 작가들과 지자체 및 단체의 노력과 관심 아래 조형영역과 표현영역에서의 고유한 색깔은 유지 할 수 있었다. 이 가운데 몇몇 지자체와 미술단체들은 동시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판화의 새로운 위상정립을 위한 고민을 현재도 멈추지 않고 있다. 시각적 향유를 넘어선 지적 깊이와 대중적 환기차원에서 판화의 또 다른 '진화'를 만들어 가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는 '울산국제목판화비엔날레'도 있다. 울산국제목판화비엔날레는 오는 7월 17일부터 울산에서 처음으로 진행되는 목판화 전문 격년제 국제행사이다. 지난 2012년 첫발을 뗀 이후 지난해까지 총 7회에 걸쳐 펼쳐진 '울산국제목판화페스티벌'을 보다 진취적인 국제 행사로 발전시키기 위해 올해부터 비엔날레로 형식을 변경했다. 비엔날레는 이전과 다른 역동적 파괴를 본질로 하며, 그만큼 해당 비엔날레에 대한 기대도 커졌다. 개념미술과 미디어아트의 범람 아래 예술의 외연 확장이 외면되지 않는 현실을 고려할 때 판화의 의미를 되묻고 목판화의 가치를 새롭게 정립하기 위해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물론 가장 투박하면서도 예민한 표현형식을 지닌 목판화로 어떻게 동시대 인류가 처한 다양한 문제를 번역하고 공론화하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지는 두고 봐야 할 과제이다. 또 하나, 적어도 비엔날레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된 이상 이전과 다른 그 무엇은 흥미로운 기대일 수밖에 없다. 다만 약 일주일에 불과한 전시기간은 못내 아쉽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2019-06-02 10:46:23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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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정치적 수단에 불과한 공동체와 미술

지정되거나 특정된 장소나 공간주변의 상태와 특징 등을 고려해 그 장소와 미술이 유기적 의미를 갖게 되는 미술이 '장소특정적미술'이다. 작품이 놓이는 물리적 장소는 물론, 개념으로서의 공간 그리고 어떤 상황에 비판적으로 반응하는 경우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국내에서 장소특정적미술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된 시기는 조형예술품의 설치가 의무화된 1990년대 중반이다. 당시만 해도 장소특정적미술은 단일 사이트 내 물리적 환경 개선이라는 틀에 머물렀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장소특정적미술은 공동체와의 협업이나 관계를 통한 '더 나은 삶을 위한 비전 제시'로 방향이 바뀌고 있다. 이른바 '공동체 기반 공공미술'이다. 일차원적 공공미술이 어떤 작품을 단지 실내에서 바깥으로 장소를 옮긴 것에 불과하다면, 공동체 기반 공공미술은 장소와 공동체를 비롯한 사회적·경제적·정치적·문화적 이슈들과 실제 사람을 근간으로 한다. 동일한 모더니티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한 '사회적 의사'로써의 미술에 무게를 둔다. 그러나 한국의 실정에서 공동체 기반 공공미술은 이론으로만 존재한다. 실제 사람이 참여해 협업하거나 관계 맺는 방식은 제한적으로만 이루어질뿐더러, 주체로서의 시민이 미술 형식을 빌려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현상은 보기 드물다. 당연히 미술이 언급할 더 나은 삶을 위한 비전 제시는 기대하기 어렵다. 대신 공동체 기반 공공미술은 기관의 선전 도구로 기능하며, 정치적 수단화 내지는 이데올로기의 재생산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접근방식 또한 과거의 공공미술 패턴을 따른다. 공원이나 공항에 미술작품을 앉히거나, 지하철에 미술작품을 들여놓는 등 공동체를 어미로 하지만 사실은 장식에 불과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지자체는 새로운 관료정책이라는 문제의식에 허약한 채, 어쩌면 각도가 다른 또 하나의 규범주의적 프로젝트일 수 있는 이벤트를 혈세를 써가며 무분별하게 양산하고 있다. 가시적 결과물이 뚜렷해 무언가 지역발전에 공헌했다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적합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들에 의해 공동체와 미술이 정치적 수단화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대도시를 벗어나면 더욱 심화된다. 미술에 관한 지자체장의 막연한 정책적 신념은 사회적 의사와 상관없는 공동체를 소환하며, 시민들의 삶과 직접 연관된 이슈에 관해 대화를 시도하긴커녕, 여전히 어떤 장소에 커다란 오브제 덩어리를 들여다 놓는 심미적 차원의 미술을 공동체 기반 공공미술로 착각한다.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공공미술은 미술품이 놓이는 장소와 사물에 대한 자각, 위치 변화에 따른 대상의 지위와 감각이 달라지는 공간의 맥락성을 중시한다. 삶의 장소에 흡수되어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미술, 미술 형식을 빌린 시민들의 직접적 예술실천을 통한 사회적·문화적·도시적 상호작용으로서의 긍정성에 방점을 둔다. 이는 예술의 일시적 소비나 미술의 자본화를 통한 거주민의 거주공간과 평온한 일상을 황폐화시키는 도시재생으로서의 쓰임새와는 결이 다르다. 장소와 공동체가 단지 미술가의 작업재료로 대상화되는 공동체의 소재화와, 익히 폐기되었어야 할 불순한 목적의 기념비를 생산하는 것과도 거리가 있다. 하지만 동시대 한국에서의 공동체 기반 공공미술은 그것이 어떤 이름(장소특정적미술, 관계특정적미술, 공공미술,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 커뮤니티아트 등등)으로 불리든 상관 없이 그 지역과 공간, 장소에 실재하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무관하게 행위되고 작동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 홍경한(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2019-05-19 14:41:38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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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한국판 ‘에치고 츠마리’는 가능할까

1977년 이후 독일 북부의 작은 도시 뮌스터에서 10년마다 펼쳐지는 '뮌스터 조각프로젝트'는 삶과 근접한 미술의 살아 있는 역사로써, 예술이 일상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지각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로 꼽힌다. 예술과 인간, 자연과 예술이 조화로운 미래의 공공미술을 논할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국제전이기도 하다. 2000년 시작된 '에치고 츠마리 트리엔날레'는 '뮌스터 조각프로젝트'의 일본판이다. 때문에 '에치고 츠마리' 또한 그곳(장소, 공간)에 거주하는 인간 삶과 밀접한 미술언어를 창조하며, 삶 속에서의 예술실천을 중시한다. 작품을 만드는 작가와 감상자로서의 주민이라는 예술주체의 구분 없이 작가와 주민이 동등하게 아이디어를 내고 주어진 자연과 환경을 무대로 사회적 문맥에 관여하는 작품을 생산한다는 게 특징이다. 일본은 유독 자연과 인간의 맥락에 주목하는 국제행사가 많은데, 1987년 시작된 '나오시마 프로젝트'도 그 중 하나이다. 나오시마 개발의 선구자인 후쿠타케 가문과 베네세그룹, 그리고 예술이라는 독창적인 콘텐츠와의 조화로움으로 완성된 이 프로젝트는 1997년부터 시작된 '아트하우스프로젝트'와 2010년 첫 삽을 뜬 '세토우치 국제 아트 페스티벌'과 함께 지금도 예술·자연·사람이 함께 살아 숨 쉬는 무대로 주목받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 번째는 예술과 일상은 평등하게 양립해야 한다는 목적의 동일함이다. 미술의 민주적 공유와 공동체와의 미적 협업을 전제로 한다는 것 또한 공통분모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벤치마킹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이 중 출산율 저하에 따른 인구 감소와 고령화에 의한 공동체 붕괴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의 여러 지자체를 비롯한 몇몇 국제행사들은 이 세 현대 미술제를 모델로 삼고 있다.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고 지역 및 관광산업 활성화, 도시재생의 현실적 대안으로 혹은 차용 가능한 새로운 미술 형식으로 바라본다. 흥미로운 건 넘치는 의욕과 달리 실체적 구현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로 제주도를 포함한 고흥군, 하동군 등 여러 지자체들이 현장을 견학하고 다양한 정보를 취합해 자신의 고장에 접목시키려 노력해왔으나 성공한 예는 거의 없다. 저마다 천혜의 자연이라는 자산과 잠재력을 내세우지만 '제2의 무엇'은 요원하기만 한 셈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우리에겐 '나오시마'처럼 수천억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오랜 기간 문화예술에 투자하는 기업 및 기관을 찾아보기 힘들다. '에치고 츠마리'의 저력인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지속 가능한 정책도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뮌스터'와는 달리 지자체장이 바뀌면 행사의 지속성은 불투명해지기 일쑤이며, 진두지휘할 예술감독이나 담당 공무원 임기 역시 1-2년을 넘지 못한다. 40여년 이상 이어지고 있는 '뮌스터 조각프로젝트'나, 약 20여 년 동안 한결같은 '에치고 츠마리', 30여년을 이어 온 '나오시마 프로젝트'는 길고 긴 투자와 인내, 협업의 산물이지 조바심에 급조된 행사가 아니다. 예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지역의 미래를 믿는 주민들과 열정적인 예술가들, 기관 및 기업의 협치와 상생으로 일군 공동지성의 결과물이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요소들이 충족될 때 비로소 한국판 '제2의 무엇'을 만들 수 있다. 무엇보다 자연을 살리고 예술로 사회에 공헌하고자 하는 의지와 소신, 지역의 풍토와 역사성에 대한 통찰, 고유 자원에 관한 민·관·예의 충분한 학습 및 대화의 과정이 필수이다. 특히 예술을 통한 공공의 선 구축이라는 확고부동한 명제가 없다면 단지 망상에 불과할 뿐이다. 망상은 실패의 학습이고. ■ 홍경한(미술평론가)

2019-04-21 14:43:30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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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생계 막막한 예술가들

지난 4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8 예술인 실태조사'(2017년 기준) 결과는 참담했다. 기존 문화예술인 실태조사를 전면 개편한 이후 처음 실시한 2015년과 비교해 나아진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예술인의 고용상황은 악화되었으며, 고용보험과 건강보험 가입률도 떨어졌다. 분야별 표준계약서 도입에 따른 계약체결 경험 상승과 부당계약체결 경험 등이 소폭 낮아졌고, 예술인 개인의 노력이 크지만 국내 예술가들의 해외 활동 기회가 조금씩 넓어지는 추세를 제외하면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가장 심각한 건 예술인 수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예술인이 1년간 예술 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평균 수입은 1281만원에 불과했다. 2015년 평균 수입은 1255만원이었다. 3년간 고작 26만원 늘어난 꼴이다. 물가상승률과 실제 사용 재료비를 빼면 사실상 마이너스다. 문제는 이 가운데 월 100만원 미만의 비중이 무려 72.7%에 달한다는 점이다. 5백만원 미만이라고 밝힌 예술가도 27.4%에 이르렀다. 특히 예술가 중 약 29%는 수입이 전혀 없었다. 이는 예술인의 절대다수는 생계의 고통을 넘어 생존까지 위협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창작의 산실인 개인 창작공간 보유율도 줄었다. 전체 응답자의 49.5%가 창작공간을 갖고 있다고 응답했으나, 이는 지난 2015년 결과(54.3%)에 비해 4.8%포인트 감소한 수치다. 그나마 창작공간을 보유한 예술가도 '자가' 형태보다 '월세' 형태가 많았다. 자가는 37.3%인 반면 '월세'는 44.5%로 나타났는데, 2015년 34.6% 대비 7.2% 증가했다. 예술인 '경력 단절' 현황도 좋지 못했다. 입문 이후 1년 이상 예술 활동을 포기한 상태인 '예술경력 단절' 경험자는 23.9%로, 2015년 15.9% 보다 훨씬 늘었다. 이들이 예술 활동을 포기하게 된 이유로는 예상대로 '예술 활동 수입 부족'(68.2%)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나머지는 질병, 출산·육아 순이었다. 이처럼 예술인들의 삶의 질과 창작환경은 3년 전과 비교해 건강해지지 못했다. 예술가 10명 중 6명은 수입이 아예 없거나 월 50만원도 되지 않는 벌이로 1년을 살고 있으니 문화예술강국 건설은 고사하고, 생활고로 배를 곯다 죽어나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예술인 사회안전망구축에 소홀한 건 아니다. 서민정책금융의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예술인생활자금융자' 등의 제도를 준비 중이며, 보편적 복지 차원에서 산재보험과 고용보험 가입률을 높이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예술인 복지법 제정을 비롯해, 창작대가 기준안 마련, 전속작가제도 시행 등, 예술인의 권익 보장을 위한 정부의 노력도 지속적이었다. 사회와의 협업을 기반으로 한 직무를 제공함으로써 적극적 예술인 복지를 실현하고자 마련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路(로)' 사업 역시 년차를 더하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고민한 시간에 비례해 예술인의 사회적 역할과 가치 확장을 위한 다양한 예술직무영역 개발이라는 긍정적 성과도 없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보다 실질적이면서 현장 중심의 정책에 속도를 내야 한다. 즉, 신개념 미술장터 운운하지만 시장 질서를 왜곡할 뿐만 아니라, 결국 작가들을 장사꾼으로 만드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작가미술장터'와 같은 무지한 정책은 폐지하고,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을 통한 창작지원금 확대, 지자체와의 협의를 통한 저가 예술인 임대 공간 확충 등의 현실적인 제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재외한국문화원 등을 거점으로 한 해외진출교두보 제공을 포함해, 코리안 아티스트 프로젝트와 동일한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 장치 유지, 한국 예술 글로벌 마케팅팀 신설, 추급권 도입, 각 지역 재단이나 문화회관 등과의 조율을 통한 매개자 양성 프로그램 기획 등도 궁극적으론 예술인 실태의 향후 결과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19-04-07 11:43:53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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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인간다움과 예술의 힘

대중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소식의 대부분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아름다운 미담보다는 불확실성과 불안을 무대로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들이다. 탐욕과 굶주림으로 빼앗고 빼앗기는 현실의 단면들이 주를 이루고, 증오와 폭력을 배경으로 죽고 죽이는 상황들이 일상을 이룬다. 사회의 축소판이랄 수 있는 온라인플랫폼에서도 증오와 폭력의 그림자는 짙다. 인간의 본성이 본래 사악해서든, 아니면 단지 주목받고 싶어서든 타자를 대상화한 노골적 혐오와 미움으로 새긴 글이 적지 않다. 경박한 욕망에 부역한 채 추상화된 진실성과 익명성에 동화된 타기(唾棄) 또한 거칠게 부유한다. 이처럼 자연자체를 제외하곤 방송, 신문, 온라인미디어 할 것 없이 숱하게 등장하는 세상사 속에선 선한 마음을 밑동으로 한 '인간다움'은 좀처럼 발견하기 힘들다. 존 레넌의 '이매진'은 여전히 상상에 머물며, 토마스 허쉬혼의 픽셀 콜라주처럼 오히려 모자이크처리 되지 않아야할 인간 존엄성을 비롯한 인간으로써의 품격, 교양 따위는 쉽게 읽히지 않는다. 하지만 의미 있는 예술은 이러한 현실과 상황에 저항하며 일그러진 시대 흐름에 문제의식을 투사한다. 예술가들은 폭력을 옹호하지 않으며, 어떻게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고찰한다. 또한 우린 누구인가라는 명제 아래 인간 공동체가 추구해야할 본질은 사랑과 희망, 서로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배려, 화해에 있음을 자신만의 문법으로 제시한다. 일례로 작가 에밀리 자키르는 '카셀도큐멘타14'(2017)에서 1948년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사라진 팔레스타인 마을 418개를 기억하자며 이들의 이름을 적은 텐트를 지었다. 행사의 성격을 고려할 경우 전쟁과 난민, 인종과 종교 등, 인류의 건강성을 해치는 다양한 갈등을 담고 있다고 여겨지지만, 넓게 보면 우리가 놓아서는 안 될 이타심과 경계 짓지 않는 삶이라는 화두가 중심이다. 작가 리밍웨이가 2013년 선보인 작품 '움직이는 정원'은 점차 희박해지는 사람사이의 순수한 감정을 다룬 작업이다. 갈라진 아스팔트 틈에 꽂힌 꽃을 가져가 모르는 이에게 '선물'하도록 한 이 작품은 그저 꽃을 전달하는 단순한 형식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진실한 교류와 관계 속에서 싹트는 인간다움의 소중함이 강하게 배어 있다. 비디오아티스트 빌 비올라의 2014년 작품 '순교자' 연작은 삶과 죽음이라는 초월적 세계를 언급하지만 인간의 의지와 행동, 희생의 숭고함에 관한 서술이기도 하다. 마치 성스러운 종교화를 대할 때의 느낌처럼 관람객을 경건함과 경이로움, 정화라는 씻김 속으로 밀어 넣는 이 작품은 가장 사실적이고 물질적인 재료를 통해 삶의 성찰을 강조하고, 지각할 수 있는 인간의 모든 가능을 응시한다. 이밖에도 인간 공동체가 추구해야할 진정한 가치란 무엇인지 되묻는 작가와 작품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들은 표현 방식에선 저마다 다르지만 레프 톨스토이가 『예술이란 무엇인가』(1898)라는 에세이에서 말한 것처럼 '예술은 사람과 사람을 결합시키는 수단'이라는 입장에 충실하다. 예술로 세계와 지역, 인종과 피부색, 권력과 신분의 유무 및 높낮이를 넘어 인류의 평등한 행복을 꿈꾼다는 측면 역시 공통되다. 물론 그 이면엔 인간이면서 인간답지 못한 예술가라면 그의 예술 역시 거짓에 불과하다는 냉정한 성찰도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참다운 예술은 동시대인들이 어떤 지점에서 세상을 바라봐야하는지를 일깨워준다. '인간다움'에 대한 자각을 소환하고 올바른 방향을 나타내어 보인다. 예술의 힘이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19-03-24 11:49:06 최신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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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재외기관까지 가세한 노동착취

미술인들이 자주 방문하는 미술정보 사이트에는 미술계 동정 외에도 공·사립 문화예술 공간에서 운영하는 공모가 매일 수십 건씩 등재된다. 전시에서부터 레지던시, 창작지원까지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전시기회가 변변치 않은 젊은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공모가 많다는 게 특징이다. 단순히 양적 측면만 따지자면 작가들의 창작발표의 기회가 꽤나 확장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구나 싶다. 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살피면 작가들을 상업적·행정 편의적 도구로 보는 듯한 느낌을 배제하기 어렵다. 자신들의 특정 목적을 위해 '기회'를 수단화 하고 있다는 인상도 없지 않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작가 A는 모 갤러리가 운영하는 신진작가 공모전에 지원해 선정됐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곧 전시를 포기해야 했다. 막상 선정되자 갤러리 측은 수백만 원 상당의 작품을 기증해야 한다는 황당한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는 공모 요강에 없었다. 설치조각을 주로 하는 작가 B는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에서 진행한 작가공모에 뽑혀 외국 전시를 앞두고 있지만 마음이 심란하다. 80만원도 안 되는 지원금으로 작품 운송은 물론 미국행 항공료와 재료비까지 해결해야하기 때문이다. 결은 다르지만 미술관도 작가들을 심적으로 불편하게 만들곤 한다. 과거 작가 C는 모 미술관으로부터 재능기부 형식으로 작품을 기증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보상이라곤 달랑 운송료뿐이었다. 작가비, 재료비는 지급되지 않았다. 작가는 잠시 갈등했으나 미술관 소장품이 된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은 채 결국 작품을 미술관으로 보냈다. A의 사례는 '선정 작가'를 빌미로 한 사실상의 대관이다. 말이 좋아 지원이고 선정이지, 실은 대관료에 상응하는 비용을 작품으로 받는 '꼼수'일 뿐이다. 난방비를 달라거나 도록은 반드시 자신들의 거래처에서 만들어야 한다 는 등의 온갖 소소한 명목으로 예정에 없던 비용을 청구하는 식의 흔한 '잔꾀'와 별 차이 없다. B는 올해 입법 예정인 문화체육관광부의 '미술진흥 중장기 계획'과 상충한다. 해당 계획에는 전시 참여 작가에게 창작에 소요되는 사례비, 작품 제작에 필요한 인건비 및 재료비, 현장설치비 등의 지급을 골자로 하는 '미술창작 창작보수제도'가 들어있다. 그런데 정작 문체부 산하기관조차 작가들을 착취하며 헐값에 이용하고 있다. C의 경우는 미술관의 권위를 이용해 소장품 목록을 거저 채우려는 질 나쁜 예다. 차후 합리적 지불에 제동을 거는 좋지 않은 기록이기도 하다. '미술관 프라이스'라는 해괴한 논리를 내세워 시장가의 절반도 되지 않는 금액으로 작품을 매입하는 것과 함께 사라져야할 적폐다. 작가에게 손실을 전가하고 대관 일정마저 거저 채우는 편법에 불과한 일부 갤러리들의 선정 작가 프로그램, 100만원도 안 되는 비용으로 전시공간을 채우면서도 국가의 문화예술품격을 논하는 정부기관, 직접 생산자로부터 노동의 성과를 무상으로 취득하려는 미술관. 전부는 아니겠지만 위와 같은 현상을 보고 있노라면 예술적 완성도를 위한 작가들의 기여도만큼 우리 미술계가 그들에게 합당한 대우를 하고 있는지 되묻게 된다. 한편으론 문화권력에 의한 잉여가치의 전유에 속절없이 끌려다닐 수 밖에 없는 작가들의 처지에 문득문득 씁쓸해진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19-02-24 15:48:40 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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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강화에 산다는 것

강화에 산다고 하면 다들 배산임수에 별장 같은 집에서 유유자적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그만 텃밭을 일구며 큰 개와 함께 뛰노는 상상을 한다. 열이면 열 모두 그렇다. 애석하게도 내 현실은 다르다. 난방비가 무서워 도시가스가 들어오는 아파트에 산다. 텃밭은커녕 제대로 된 화분 하나 없다. 큰 개를 키우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매일이 분주하기에 개를 위해 그러지 못한다. 고독사하는 개가 없을 리 없다. 이곳은 생활편의시설도 열악하다. 그 흔한 '이마트'하나 보기 힘들다. 금융은 '농협'이, 식자재유통은 '하나로마트'가 꽉 잡고 있다. 논밭 옆 '수협'이라는 괴이한 풍경도 여기의 특징이다. 할인매장은 '꼬끼오'가 터줏대감이다. 상호가 왜 저런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강화가 유독 닭과 친하다는 건 배달 앱만 열어봐도 알 수 있다. 거의 통닭의 무대다. 온갖 닭이란 닭은 시리즈로 다 있다. 이처럼 서울에 살던 시절 대비 강화의 삶은 생경하고 불편한 것투성이다. 그럼에도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자연' 때문이다. 아침저녁으로 들리는 온갖 새소리는 도시의 인공적인 소리들과 차원이 다르다. 도시에선 자취를 감춘 반딧불이도 간간이 눈에 띌 만큼 청정하다. 천연기념물인 강화갯벌 및 저어새번식지를 포함해, 읍에서 10분만 벗어나도 이곳이 과연 서울 근교인가 싶을 만큼 고은 자태의 산과 바다를 만날 수 있다. 문화적 맥락과 전통을 엿볼 수 있는 보물까지 풍부하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인 전등사엔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삼랑성과 대웅전, 약사전, 범종과 같은 국가지정문화재가 수두룩하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을 물리친 역사적 현장이기도 한 전등사는 조선시대 250년간 조선왕조실록과 왕실문서를 보관한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국보인 팔만대장경을 판각한 곳도 전등사다. 강화엔 우리나라 고인돌 가운데 가장 큰 것 중 하나인 부근리 고인돌을 비롯해, 전통 조선 한옥 구조물에 서양 기독교식 건축양식이 혼합된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세워진지 60년이 넘은 천주교 강화성당, 고려사 및 신동국여지승람에 단군이 천제를 올리던 곳이라 전해지는 마니산 참성단 등 역사 깊은 문화재와 유적이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미술공간도 꽤 된다. 강화읍 소재 '강화미술관'은 미술인들의 사랑방이다. 특이하게도 전등사는 2008년부터 정족산 사고에서 현대미술작가전을 열고 있다. 전원 유광상 작가의 '전원미술관'이나 천자문을 상설 전시하는 '심은미술관', 국내외 주요 작가들을 망라한 전시로 명성이 자자한 '해든뮤지엄' 등도 강화의 예술적 터전이다. 이중 2013년 개관한 '해든뮤지엄'은 웬만한 미술관 부럽지 않은 수준을 자랑한다. 숲 속에 위치해 특유의 고요함이 있는데다, 전시 내용도 좋아 미술 좀 안다는 이들은 반드시 거쳐 가는 곳이다. 넉넉한 하드웨어 못지않게 강화에는 상당수의 미술인이 거주한다. 어림잡아 100여명 이상은 된다. 대부분 작업에 매진하기 위해 복잡한 도시를 떠나 호젓한 곳에 터를 잡은 이들이다. 때문에 왕래는 드물지만 동일한 미술계 사람들이 한 지역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든든한 기분을 갖게 한다. 이와 같이 강화엔 숨겨진 문화예술이 많다. 하지만 강화를 매력적이게 만드는 문화예술적 배경 역시 자연이다. 과거 모네나 밀레, 추사가 그러했듯 예술가들은 그 천혜의 자연 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곡을 짓고 노래를 부른다. 나도 덩달아 쓰고 따라 부른다. 강화에 살면 절로 그리된다. 인간과 자연이 서로의 한 부분이 되고, 만물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삶, 그 맛에 강화에 산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19-02-10 14:16:15 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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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올해 눈에 띄는 전시들

공석 한 달이 넘은 국립현대미술관장. 하지만 신임 관장 발표는 깜깜무소식이다. 인사혁신처가 관장 인선절차에 돌입한 지난해 10월부터 계산하면 3개월째 빈자리다. 안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뒷말이 나오는 이유다. 신임 관장 인사는 지연되고 있지만 올해 예정된 전시들은 지난해와 거의 동일한 시기에 발표됐다. '올해의 작가상'처럼 관심도가 낮아지고 있는 기획도 없진 않으나 2019년 개최될 25개의 전시 가운데 몇몇 개는 국내 유일의 국립미술관이라는 이름값을 한다. 눈에 띄는 전시는 9월 개막하는 '광장'이다. '광장'은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자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을 맞아 마련된 대형 기획전이다. 이쾌대, 오윤, 김환기 등 작가 200명의 작품 500여점이 서울관, 덕수궁관, 과천관에서 연이어 선보인다. 대구 출신의 재일작가인 곽인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회고전도 시선을 끈다. 이번 전시엔 국내 및 일본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 200여점과 자료 100여점이 소개된다. 곽인식은 1970년대 일본 모노하(物派)에 큰 영향을 준 인물로, 그의 대규모 회고전은 1985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이후 34년 만이다. 이밖에도 국립현대미술관은 국내외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무대인 '불온한 데이터' 전(3월)을 비롯해, 1969년부터 1990년대 말까지 30여 년의 한국 비디오아트 역사를 조망하는 전시 '한국 비디오아트 6999'(11월)를 개최한다. 한국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김구림을 비롯한 백남준, 박현기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근대미술가를 소개하는 장도 선다. 바로 '근대미술의 재발견Ⅰ'(5월)이다. 요절 및 월북 등의 이유로 그동안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 한국 근대 미술가를 소개하는 시리즈 중 첫 번째이다. 3년마다 정기적으로 개최한다는 계획이다. 외국 작가들도 리스트에 올라 있다. 북유럽 전위예술그룹을 이끌며 사회 참여적 예술운동에 앞장서온 덴마크의 작가 겸 이론가인 '아스거 욘'의 국내 첫 전시(4월)와 'MMCA 커미션 프로젝트 : 제니 홀저' 전(11월)이 서울관과 과천관 야외공간에서 펼쳐진다. 제니 홀저는 사회·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를 텍스트 중심의 조형으로 다뤄온 미국의 개념미술가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외에도 올해엔 관심을 끌만한 전시가 전국에 포진해 있다. 우선 서울시립미술관에선 영국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전시(3월)가 관객을 맞는다. 130여점에 달하는 작품 수도 그렇지만 영국 테이트미술관과의 공동기획으로 알려져 주목도가 높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은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전(11월)을 진행한다. 그는 건물 외벽, 수영장, 승강기 등 일상의 친숙한 공간을 재현하되, 공간의 확장과 축소, 광학적 반사와 전도의 환영으로 관람객의 눈과 지각을 속이는 작업으로 유명한 아르헨티나의 대표작가다.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 관객과 잠시 조우한 적이 있다. 대구미술관에선 '알렉스 카츠'(2월), '박생광'(5월), 공성훈 작가의 개인전(10월)을 개최한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은 장욱진의 예술세계를 심도 있게 들여다보는 기획전을 포함해 젊은 작가들의 데뷔 무대로 각광받고 있는 뉴드로잉 프로젝트(2월)를 진행한다. 가파르게 증가하는 관람객 수만큼 뉴드로잉 프로젝트에 대한 신진작가들의 관심도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양구 군립 박수근미술관에선 3월 3일까지 '강원미술 100년 & : 이수억 탄생 100년'전을 연다. 강원미술의 역사와 흐름을 아카이브형식으로 조명하고, 강원도에 머물며 한국적 정서가 물씬한 작업을 남긴 한국 화단의 1세대 서양화가 이수억의 삶과 작품세계를 살펴보는 특별전이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19-01-20 17:16:35 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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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창작활동을 지속하는 방법

곧 졸업시즌이다. 대학들도 그 대열에 합류한다. 하지만 이미 많은 학생들은 학교 담장 너머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있지 않다. 지난 해 대학 강의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그들에게 졸업이란 그저 수족관을 벗어난 물고기처럼 숨 쉬기 힘들고 두려운 단어일 뿐이다. 미대 졸업생들도 마찬가지다. 사회 초년생 누구나 해당된다는 빚쟁이로써의 삶, 좁디좁은 취업문,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혼란스러움은 여타 학과 졸업생들처럼 심란함을 덧대는 원인이다. '새로움에 대한 설렘'은 박제화 된 표어에 불과하다는 것도 같다. 다른 게 있다면 미대 졸업생들의 경우 불안한 현실로 인한 예술의지의 실현 불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추가된다는 점이다. 또한 현장이 내놓는 선택지란 작업을 포기하거나 잇는, 꽤나 극단적이라는 사실이다. 허나 어느 것도 결정은 쉽지 않다. 특히 학창시절 몸과 마음을 바쳐 오직 그림만 그려온 입장에서 작업을 단념한다는 건 좌표 잃은 삶과 다름 아니다. 이에 나름 계획적인 이들은 경제적 보호망을 만든 후 작업을 계속 하겠다는 설계를 한다. 아르바이트를 통해 작업을 도모하고, 각종 공모전에 지원하며 창작의 불연속성을 제거하려 꿈꾼다. 그렇지만 그 구상의 구현 역시 만만치 않다. 아르바이트는 최저임금이다 뭐다 해서 하늘의 별 따기가 되었다. 넘치는 건 B급 공모전이고 입상해도 실망스럽기 일쑤다. 더구나 실력이 있다면 끌어 내리기 바쁘고 학연과 지연, 코드와 진영, 계파와 색깔, 물보다 진한 피가 성공의 주요 요소인 미술계에서 경제력마저 나약할 경우 작업의 연속성은 담보되지 못한다. 즉, 의욕과 의미만으로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졸업 후 작업을 계속해야겠다면 몇 개의 방법을 생각해볼 수는 있다. 경쟁률은 높지만 창작환경을 보장하는 레지던시 입주는 작업지속에 긍정적 계기를 마련해준다. 균형 잡기가 필요하나 상업적인 작품으로 민생고를 유지하면서 작가의식이 배어 있는 창작활동을 병행하는 것도 작업 잇기의 한 방식이다. 지방자치단체 산하 기관에서 운영하는 지원금 및 전시, 출판을 비롯해 예술인복지재단 같은 정부 기관의 다양한 복지혜택도 창작지속에 도움을 준다. 다만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고, 결산 시 부족한 1원을 찾기 위해 영혼을 상실하더라도 인내해야 한다. 지난 2일 문광부가 발표한 '예비 전속작가제 지원 사업' 등을 눈여겨봐도 된다. 작가 80명에게 10개월 간 월 150만원을 준단다. 단, 전시에 워크샵, 강의프로그램 등에 참석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다. 분기별 활동리포트까지 제출해야 한다. 이도저도 아니면 전미술인을 장사꾼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작가예술장터'에 좌판 깔면 된다. 그러면 푼돈이나마 만질 수 있을지 모른다. 대신 그 경력 어디에도 쓰기 어렵다. 이처럼 녹록하진 않지만 창작활동을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왜 예술을 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자문과 예술의 역할에 관한 뚜렷한 세계관, 가치관의 표상화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작업이 멈추진 않는다. 함께 할 사람들이 생기고 길을 찾게 된다. 그만큼 불명확한 미래도 거세된다. 참고로 보다 능동적인 창작활동을 원한다면 시야와 무대를 국외로 넓히는 게 현명하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작업환경 및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 현장의 건강도도 국외가 낫다. 기회 획득 측면에선 더욱 그렇다. 그리고 이왕 간다면 그곳에 뿌리내리길 권한다. 5~10년 유학하고 와봤자 다시 시작이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19-01-06 16:30:30 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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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예술과 노동의 가치

같은 한 끼의 식사라도 가난한 이들에겐 비싸다. 그 가여운 한 끼를 먹으면서 살아가는 노동자들은 쉬지 않고 일해도 가난을 면치 못한다. 예술가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문화적 기여도에 비례한 대우는 부족하며, 예술적 완성도를 위한 노동에서 또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기 일쑤다. 아니, 노동 가치에 대한 인정은 고사하고 200여개를 넘나드는 공사립미술관과 600여 갤러리에 몸담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나마 그 알량한 일자리조차 언제 잃어버릴지 모르는 불안을 항상 안고 살아간다. 전업창작자들과 매개자(비평가, 기획자 등)들 역시 연 평균 순수입 200만원대를 유지한 채 간신히 삶을 잇는다. 특히 청년예술가들은 예전보다 더 많이 노동하지만 받는 건 더 적은 소득불평등, 기회불평등, 분배불평등의 중심에 있다. 어쩌다 획득 가능한 것들마저 '재능기부'와 '열정페이'라는 미명 아래 부당함을 당연시 수용해야 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예술계에서 재능기부와 노동착취는 한 끗 차이다. 어떤 관점, 어느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동일한 재능, 노동, 능력이라도 사회적 기여인지 공짜노동 혹은 자원봉사인지가 달라진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판단은 대체로 권력과 지위 등 '가진 자'들의 몫이다. 예를 들면, 보상이라곤 달랑 운송료뿐이지만 미술관 소장품이 된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은 채 작품을 미술관으로 보내야 했던 한 작가의 사례가 그렇다. 언뜻 보기에 합의된 거래 같지만 실은 미술관의 권위를 이용해 소장품 목록을 거저 채우려는 질 나쁜 예에 불과하다. 차후 합리적 지불에 제동을 거는 좋지 않은 기록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술관이라는 권위를 내세워 예술노동의 교환가치를 재능기부로 미화한 사례라는 점이야말로 심각한 지점이다. 이밖에도 '민생고'를 이유로 유명작가들을 보조하며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무명작가들의 삶, 어시스턴트로 첫발을 내딛는 대학·대학원생에게 '배움'을 빌미로 가해지는 사실상의 무상노동, 경제적 우위에 있는 자본계급에게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인간의 수단화 및 도구주의적 인간관은 우리 주위에 흔하다. 누군가의 말처럼 노동 가치에 관한 소외의 의미적 전제조건은 노동착취가 의존하는 전제이다. 자본을 비롯한 온갖 권력에 의한 새로운 신분체제와 계급주의, 그로부터 생성되는 노동의의의 열악성은 지배적인 생산관계로서 실존하는 현상이다. 허나 사회가, 미술계가 무관심한 사이 가진 자들에 의한 잉여가치의 무상 전유는 속도를 내고, 누군가의 소중한 유무형의 자산과 재능을 무료로 사용하려는 변질된 노동인식과 계급의식을 바탕으로 한 유무형의 수탈은 갈수록 리얼리티를 띠고 있다. 여기에 시대의 양심이랄 수 있는 미술계 지식인들의 무관심과 제 살길 찾기에만 급급한 양태는 개선의 길을 제시하기는커녕 불합리한 예술계 노동체계 및 가진 자들에 의한 계급폭력의 역사를 끊지 못하는 또 하나의 배경이 되고 있다. 안타까운 건 그럼에도 돈 없고 배경 없이 흙 수저로 태어난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민생은 뒷전인 채 권력쟁투에 눈 먼 싸움질로 허송세월하면서도 세비에서만큼은 한 목소리로 '셀프인상'하는 국회의원들의 뻔뻔함조차 갖고 있지 않음을 자책하며 오늘을 '살아 넘기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애써 견디는 것이 전부다. 허긴, 소위 미술을 안다고 자처하는 자들까지 예술가에게 등급을 매긴 '미술창작대가기준안'을 제시하고, 미술생태에 대한 이해 없이 산술적 경력을 사례의 잣대로 삼는 현실에서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할까 싶기도 하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18-12-09 14:22:49 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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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떠도는 작가들

창작스튜디오는 예술가들이 예술 및 문화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일정 기간 작업실을 옮겨 작업하며, 입주 기간 동안 거주 및 제작비용과 설비, 시설 등의 지원을 받는 공간을 말한다. 작업실 지원에 기반한 창작스튜디오가 1년 단위 공간 제공이라는 형태로 절충되면서 레지던시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경우를 묶어 통상 ‘창작공간’이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 예술가 양성 및 창작 진흥을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국내 창작공간들은 짧으면 3개월, 길면 1-3년이라는 기간 동안 작가들에게 작업실을 임대한다. 4-5년 이상 머문 작가도 드물지 않은 일부를 제외하곤 국내 200여 안팎의 공사립 창작공간 대부분이 유사한 입주기간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의 많은 미술작가들은 찬바람이 부는 이맘때면 꽤나 분주해진다. 12월부터 새해 1-2월 사이 종료될 창작공간 입주기간에 맞춰 미리 다른 작업공간을 알아봐야 하고, 10-11월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창작공간 공모일정에 따라 서류 및 인터뷰 심사를 받는 시즌이기 때문이다. 창작공간 입주 공모 시기가 오면 작가들은 일단 작업을 멈출 수밖에 없다. 입주신청서, 포트폴리오, 작품 활동 계획서와 같이 작성해야할 서류가 많아 진중하게 앉아 뭔가를 그리거나 만들 짬이 없다. 더구나 과학이나 수학이 아닌 예술에서 어떤 작품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데도 이러이러한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는 계획을 세워야 하고, 학교에서조차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포트폴리오를 작성하는 일자체가 그들에겐 곤욕이다. 특히 많은 창작공간들이 요구하는 ‘지역연계’에 관한 아이디어는 그렇잖아도 어려운 계획서 작성을 더욱 힘들게 한다. 지역을 말하지만 지역에 정착하기 어려운 단기 입주를 통해 예술가들이 지역사회에 개입할 수 있다는 발상자체가 터무니없는데다, 작가가 오랫동안 지역에 거주하면서 작가 스스로 지역을 이해하고 주민과 호흡하며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 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그렇다. 그래도 선정되려면 주문한 양식에 맞춰 억지로라도 써야 한다. 단발성임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들의 지역참여가 시민 문화예술향유를 확장하고 도시재생이라는 보다 큰 흐름에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믿는 정부와 지자체, 위탁기관들의 막연한 정책적 신념을 거스르면 안 된다. 지역주민 및 학생과 연계한 미술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해야 하는 조건도 감수해야 하고, 예술과 작가자체가 특정한 목적을 위해 도구화할 소지 등을 생각할 여유는 없다. 서류도 서류지만 당락의 불안감도 붓을 들기 어렵게 하는 이유다. 선정되면 1년이라는 작업시간을 확보하지만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 대비책까지 고려해야 한다. 허나 대개 대안이 없다. 창작공간 입주를 희망하는 작가들의 다수는 물론 한국미술인 80%가량이 월 100만원 미만의 수입에 불과한 현실에서 개인용 작업실을 구하는 건 마음처럼 녹록한 게 아니다. 따라서 어떻게든 붙어야 한다는 초조함이 크다. 이런 현상은 해마다 되풀이 된다. 바늘구멍 같은 입주 가능성을 끌어안은 채 여기저기 공모에 응해야 하고, 선정되든 떨어지든 잠시 머물다 옮겨야 하는 도돌이표 같은 삶, 떠도는 삶을 반복해야 한다. 그렇기에 작가들에게 겨울은 유독 춥다. 유배지나 다름없는 곳에 위치한 창작공간일지라도 작업을 잇기 위해 입주를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은 싫든 좋든 미술계 유목민일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18-11-25 15:01:53 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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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원고료 2만원의 충격

몇 해 전, 모 지자체가 주최하는 미술행사의 주요 위원직을 맡은 적이 있다. 행사전반의 운영방향을 결정하고 예산까지 들여다보는 막중한 자리였다. 하지만 1년 만에 그만둬야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해 권력을 쥔 핵심인사에게 밉보여 그의 '패밀리'에서 제외되었다는 게 맞겠다. 당시 감정을 글로 옮기자면 그야말로 '씁쓸하거나 홀가분하거나'였다. 어딜 가나 존재하는 계파와 코드, 지연과 학연을 배경으로 한 패거리정치의 민낯에 씁쓸했고, 수정되지 않을 것을 느끼면서도 매번 부딪히고 좌절하던 과정을 그만해도 된다는 점에선 홀가분했다. 책임의 무게에 미치지 못하던 대가의 불균형을 더 이상 체감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것도 미련에서 멀어진 이유였다. 물리적 거리만 해도 하루를 온전히 소비해야 하는데다, 몇날 며칠의 연구와 고민을 거쳐 서너 시간 이상 회의 또는 토론에 임한 보수치곤 매우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이 중 미술매개자들을 대상으로 한 저임금 노동구조는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지난 4월 정부까지 나서 '미술진흥중장기계획'을 발표하며 비평가에 대한 처우개선 및 양성 기조를 밝혔지만 한해가 저무는 오늘까지도 달라진 건 별로 없다. 여전히 6000원 수준의 고료를 책정한 채 평론을 청탁하는 정부 및 지자체 산하기관이 드물지 않고, 각종 수당 역시 겨우 몇 만원에 불과한 곳도 수두룩하다. 심지어 한 달 내내 작성한 평론을 보냈더니 원고료로 달랑 2만원을 입금해 충격을 안긴 지역재단도 있다. 살아가는 곳은 현실인데 노동의 대가는 초현실주의적인 현재를 말하면 혹자는 '안하면 그만이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그렇다. 그런데 스스로도 민망해서인지 기관 담당자들은 대체로 섭외 승낙 후 또는 현장에서야 상세한 안내를 한다. 설사 알게 된들 돈 몇 푼에 연연하는 쫀쫀한 사람인 냥 취급될 듯싶어 평론가들의 다수는 노동의 값이 얼마인지는 따지지 않는다. 원체 돈 얘기를 꺼리는 미술계 분위기에다 무언가에 기여한다는 사명감, 책임감, 역할론 따위가 대두될 경우 마음과 달리 입은 더욱 무거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아니다싶어 공식적으로 항의한 경우도 있다. 전업비평가가 손에 꼽히는 상황을 인지한다면 현재의 얼토당토않은 보수체계는 개선되어야 마땅하고, 그러하지 못한다면 훗날 후배들에겐 선배들의 사례가 하나의 원칙으로 적용될 것이란 판단에 책임과 역할에 상응하는 대가를 달라고 요구한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기관 관계자들은 '행정'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개인적으로야 턱없이 부족함을 이해하지만 그 더디고 복잡하며 개념 없는 행정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보니 제대로 된 대가를 지불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행정을 바꿔야 옳은데 그조차 쉽지 않은 모양이다. 미술계 생태를 올바르게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행정이 전문성을 떨어뜨린다.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보수를 외면하는 정책자들의 낙후된 인식은 관련 인적 기반을 위축시키고 많은 부분을 아마추어화 한다. 물론 짜들은 인적 기반은 한국문화예술의 질적 경쟁력 면에서도 좋을 게 없다. 그러나 우리네 행정은 이런 자각에 인색한 게 사실이다. 공공기관들은 열정과 애정을 빌미로 한 재능기부라는 병풍 속에 전문가들을 앉히는 습관을 고쳐야 한다. 제대로 된 소명의식을 원한다면 그에 합당한 대우가 뒷받침되어야 하며, 그러려면 무엇보다 누군가의 경험과 지식, 노동과 시간은 공짜가 아님을 상기해야 한다. 특히 초라한 대가와 직함을 교환하느라 짐짓 모른 체 해온 미술계 문화곡예사들 또한 스스로를 성찰해야 옳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18-11-11 13:46:00 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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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지하철 공공미술의 문제

1974년 1호선이 첫 개통한 이래 40여년 이상 따분하고 무미건조한 공간으로 남아 있던 지하철에 심미성을 담보로 한 각종 미술작품들이 들어서고 있다. 최근 서울시가 추진 중인 '문화예술철도'처럼 이미 구체적으로 실행절차를 밟고 있는 예도 발견할 수 있다. 지하철이 생활 속 문화공간의 일부로 자리 잡게 된 배경에는 새로운 문화적 환경에 대한 도시민들의 욕구와 높아진 문화수준 및 향유에 관한 권리, 공공의 장소를 시각적으로 쾌적하게 만들어 가시적 성과를 도출하려는 일부 지자체장들의 정치적 의도 등이 복합적으로 놓여 있다. 즉, 더 이상 물리적인 기능으로서의 도시 환경에 만족하지 않게 된 시민의식의 변화와, 갑갑한 미술관에 들어앉은 권위적인 미술에 수동적이지 않은 문화태도, 임기 내 무언가 눈에 띄는 정책을 통한 치적을 갈망하는 정치인들의 욕망이 지하철 공공미술 확대와 유속을 빠르게 하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뜻 없이 정해놓은 지하철 노선도의 색깔처럼 정작 '미술'의 수용방식은 매우 단선적이다. 공공미술이 일상 속에 녹아든 시민 소통의 예술이라지만 어설플 땐 그저 '공해'일 뿐임을 증명하는 사례도 없진 않다. 그 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미술을 '장식'으로 보는 정책자들과 기획자들의 시각이다. 이는 미술을 공간을 위한 수단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실제로 건축물 미술작품제도가 그러하듯 지하철 미술의 적지 않은 수는 '환경미화'에 준한다. 미술이라는 언어를 통한 사회적 담론의 기제로 기능해야 하는 공공적 관심으로서의 미술과는 거리가 멀다. 미술의 접목을 '공공의 선'으로 착각하는 정치인들의 욕망도 문제이다. 이렇게 설치했으니 그렇게 느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은 시민들의 문화적 질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둔갑하고, 그 기대감은 다시 치적이 되어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토대가 될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 의해 강조되는 것은 미술로부터의 어떤 극적인 발화일 뿐, 미술 특유의 사회적?문화적 의제로서의 기능과는 무관하다. 그러다보니 창의적 문화생태계 조성이라는 그럴싸한 텍스트를 내세우고 있음에도 결과물은 늘 인공성이 넘치는 도시에 또 하나의 가공된 조경과 차갑고 인위적인 미술형식이기 일쑤다. 결국 지하철 공공미술의 현재는 관련법과 정책에 의해 인위적으로 이식된 제도적 공공성과 지역성이 간신히 결합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설치-감상'이라는 단순한 코드에서 자유롭지 못할뿐더러, 물리적인 완성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물론 사회공동체의 이슈를 시민 스스로 창출하는 단계엔 이르지 못한다. 그나마 지하철을 죽은 지하공간이 아니라 예술생산과 소비를 잇는 문화예술의 교량으로 바라보는 건 다행이다. 허나 지하철 공공미술이 나아갈 방향은 미술의 장식성을 벗어나 개인과 지역, 공동체 간 창의성과 통합성을 내세우는 문화적 공공성의 실현에 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미술을 매개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발언하며, 시대적 사안에 대해 논하는 공론의 장이 공공미술임을 기억해야 한다. 미술을 매개로 한 생산적 문화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공공미술의 참다운 역할이자 가치임을 상기해야 한다. 결과물은 뭔가를 보여주기 위한 조형에 불과한데도 온갖 미사여구와 의미를 덧칠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 아니라.■ 홍경한(미술평론가)

2018-10-28 13:44:03 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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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도시재생과 미술

최근 각 지자체마다 유행처럼 벌이고 있는 '도시재생'은 환경적, 공간적으로 쇠퇴한 지역을 개선하여 궁극적으론 쾌적한 도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지역을 만들자는 것에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도시재생은 도시의 역사적, 인문적 가치, 사회적 정체성과 모더니티까지 고민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여러 지자체들은 그 의미를 효과적으로 살릴 수 있는 여러 요소 중 하나로 공공미술을 꼽는다. 도시재생의 근간이랄 수 있는 담화와 의제 도출에서 빼어난 역량을 지니고 있는데다, 도시재생의 궁극적 목표인 살기 좋은 도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도시 구축에 필요한 중요한 알고리즘으로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시재생의 주요 무대인 공공의 장, 삶의 현장에서 대중과 시대적 사안에 대해 논할 수 있는 촉매로서 공공미술만한 것은 드물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접목해서 문제이지, 경험적 상호작용과 제도비평적 상호작용 등을 통해 도시와 인간에 대한 근본과 구조를 묻는 공공미술의 속성은 쇠퇴한 도시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거나 재생하는 방법으로서의 도시재생에 적합하다. 이처럼 공공미술은 물리적인 측면을 넘어선 사회·문화·의식적 기능회복이라는 사회적 측면과 도시경제 회복이라는 경제적 측면을 동시에 고려하는 통합적 접근방식의 정비 개념인 도시재생의 사전적 정의를 구현하는 데 알맞다. 다만 현재의 도시재생에서의 공공미술은 하드웨어적인 측면이 강하다. 말로는 도시커뮤니티 유지 및 활성화와 이해관계자간의 합의형성에 관한 의사결정시스템을 중시한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언어적 수사에 불과하다. 기껏해야 영국의 테이트모던이나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정도를 기준으로 삼거나 도시공간을 시각적으로 개선하는 데 필요한 장식 수준으로 이해한다. 이곳엔 도시재생에 있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익명의 대중이 어떠한 문제와 사안에 대해 직접 말하는 주체일 수 있도록 하는 것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억과 쟁점이 교차하는 사회적 논의의 매제로써의 공공미술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물론 도시재생 자체도 연관성 깊은 지속 가능한 도시와 건강한 도시생태 구축과는 무관하기 일쑤다. 도시재생은 결국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도시지향이라는 측면에서 도시재생과 지속 가능한 도시, 도시생태, 생태도시와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음에도 정작 드러나는 양태는 별개의 것인 양 읽힌다는 것이다. 따라서 향후 전개되어야할 도시재생은 공공미술의 특성을 십분 살려 공공성의 해석과 그에 따른 동시대성의 접목까지 고려하는 방향에서 설정되어야 마땅하다. 지금처럼 도시재생이든 지속가능한 도시든, 공공미술의 쓰임새는 넓은 반면 도시재생에서는 물리적 상황에 머물고 지속 가능한 도시에서는 도시생태를 보조하는 수단에 불과한 실정은 아니어야 한다. 특히 생태도시에 있어 미술의 개입은 부작용이 더 크다. 중요한 건 그게 무엇이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도시를 건설하려면 공간에 앞서 사람과 삶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것에 있다. 공공미술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물리적·심미적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소통의 매개라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또한 공공미술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명료한 개념 정립과 적용이 순차적이고 원만할 때 도시재생의 핵심가치인 새로운 역사와 문화성은 창출될 수 있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18-10-14 12:29:41 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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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부쩍 증가한 ‘북한’ 관련 전시들

불과 6년 전만 해도 '김정은 부인 리설주' 또는 그저 '리설주'로 표기하던 일부 언론은 이제 '리설주 여사'라며 높여 부른다. 김정은이 백두산에서 선보였다는 '손가락 하트'는 여러 SNS상에서 '파격', '최초'라는 이름 아래 친근함의 상징처럼 묘사되고 있다. 그곳에 고모부를 처형하고 이복형을 외국 공항에서 독살한 독재자 김정은은 없다. 수없이 많은 사람을 학살한 북한정권의 역사는 자취를 감췄다. 수백만 명의 아사자를 낳은 경제파탄의 주범, 최악의 인권국가인 북한은 그저 영화 '공작' 속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난다. 과거야 어쨌든 오늘의 북한은 자의반타의반으로 이미지 세탁에 성공하는 듯 보인다. 뭔가에 홀린 듯 김씨 세습 왕국이 단 2년 만에 '살가운 나라'처럼 꾸며지고 있으니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물론 이 모든 건 급변하고 있는 남북한 화해 무드 영향이 크다. 북한은 실리적 이익도 챙길 수 있을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는 4.27 남북 정상회담을 비롯해 3차 남북정성회담에 이르는 동안 철도, 도로, 건설, 관광 등 남북경제협력에 관한 다양하고 실질적인 플랜을 추진하기로 했다. 모두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국민혈세가 투입될 사업들이다. 그러나 정작 세금을 내야할 국민 동의에는 세심하지 못하다. 일단 저지르고 호소할 모양새다. 부쩍 달아오른 남북교류에 문화예술이 빠질 리가 없다. 10월로 계획된 평양예술단 서울 공연 추진, 2032년 올림픽 공동개최 유치 협력 등이 대표적이다. 블랙리스트 팔아 장관됐다고 수군댈 만큼 한국 문화예술계 민심은 흉흉한데 북한 인민들의 민심까지 읽고 오느라 수고한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얼굴을 내밀 행사들이다. 요즘 한국 미술계 역시 '북한'은 핫한 키워드이다. 그만큼 전시도 활발하다. 지역의 한 전시공간에선 남북 화가들이 그린 금강산 비경 전이 개최 중이다. 최근 막을 올린 한 아트페어는 북한자수의 최고봉이라는 평양수예를 포함한 북한미술품 100여 점을 선보인다. 모 미술관은 다음 달부터 북한 기행전을 연다. 이밖에도 북한을 다룬 사진전 등, 북한 관련 전시들이 앞 다퉈 포진하고 있다. 허나 '북한×미술'의 정점은 비엔날레다. 부산비엔날레 출품작의 적지 않은 수는 북한을 주제로 하고 있다. 전시 장소인 부산현대미술관 입구에서부터 전시장 내 구석구석까지, 북한을 다룬 작품은 쉽게 눈에 띈다. 조금 과장하면 "할 얘기가 북한 밖에 없나" 싶을 정도다. 광주비엔날레는 아예 섹션 하나를 북한 선전화로 채웠다. 북한 작가가 그렸다는 그림의 다수는 잘 그렸지만 좋은 그림은 아니다. 어색한 설정에 내용은 작위적이다. 사실주의 기법으로 북한이 처한 사실은 은폐하고 있음을 눈치 채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북한 관련 전시들의 공통점은 대체로 북한을 낭만적으로 다룬다는 점이다. 빼어난 자연풍경 뒤에 감춰진 현실은 언급되지 않으며, 단골 주제인 평화 및 안보가 통일과는 다른 개념이라는 것도 간과하거나 애써 우회한다. 또 하나의 유사점은 연구된 성과로서의 전시라기 보단 남북한 화해 분위기에 편승한 전시들이 주를 이룬다는 점이다. 1990년대 이후 간간이 국내 소개된 적은 있지만, 북한 관련 전시들이 이처럼 짧은 기간 내 갑자기 증가한 것도 최근의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문제는 깊은 철학과 창의성 없이 시류에 부합하는 전시는 의미 있는 가치를 생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대성을 고찰할 틈이 작고, 보여주기에 만족할 가능성이 크다. 그건 단지 이미지의 영역이다. 정치든 전시든 소비되고 휘발될 이미지의 범람은 여러모로 피곤하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18-09-30 13:11:38 최신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