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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홍경한의 시시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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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폐기되고 훼손되고…절실한 '작가 미술품 보관시설'

작가로서의 삶은 가시밭길을 걷는 그것과 다름 아니다. 본래 창작이란 것 자체가 고통과 번민을 수반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운명처럼 외면하지 못한다. 허나 경제적 궁핍함이라는 현실적인 측면이 덧대어질수록 예술가로서의 여정이 참으로 쉽지 않다는 것을 재차 자각하곤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젊은 작가들의 경우 작업공간과 시설을 사용할 수 있는 130여개의 레지던시 및 창작공간이 있고, 다양한 공모와 프로젝트, 전시들이 '청년작가지원'이라는 명분 아래 시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 또한 엄혹한 무한경쟁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으나 어쨌든 간신히 숨 쉴 수 있는 틈은 있으니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중견작가들은 그 어느 곳 하나 마땅히 기댈 데가 없다. 화력이 높던 낮던 소위 잘나가는 작가가 아니라면 전시 기회가 협소한 현상은 어차피 오십보백보이고, 창작스튜디오에 지원하고 싶어도 후배들 눈치부터 보인다. 지원금 수혜를 받기 위한 면접 자리에선 '이 나이에 뭐 했나' 싶은 자괴감부터 밀려오며, 40년 이상 그림만 그린 이들조차 연수입이 534만원에 그치는 상황이니 빈곤함 측면에서 또한 나을 게 없다. 아니, 오히려 이들은 많은 부분에서 내외적 소외감을 느낀다는 게 맞다. 그런데 눈에 잘 띄지는 않으나 그 어떤 것 못지않게 작가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고민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작품보관'에 대한 문제다. 이는 신진 및 원로 할 것 없이 세대를 관통하는 공통의 근심으로, 관념 차원이 아니라 현실세계에 여실히 침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찰의 필요성이 있다. 실제로 얼마 전 만난 한 원로작가는 "언제 세상과 이별할지 알 수 없는데, 저 많은 작품들을 어떻게 해야 모르겠다."며 수심 가득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나름 한국 현대미술사에 이름을 올린 작가임에도 "수장고를 갖춘 미술관 기증도 쉽지 않고 자식들에겐 짐이나 될 테니 죽기 전에 태워버려야지 어쩔 수 있나"라는 말을 독백처럼 내뱉었다. 작품보관 문제는 젊은 작가들도 피해가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작가들은 생활공간과 작업공간, 수장고가 분리되지 않아 창작의 질적 저하에 무방비하다. 운이 좋아 창작공간에 입주했다 손쳐도 1년 남짓 머무르다 옮기는 일을 반복할 때마다 늘어난 작품을 버릴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뜻밖의 갈등을 겪는다. 보관시설에 대한 수요가 높을 수밖에 없는 중견 작가들의 상황도 난처하긴 매한가지다. 어려운 살림에 간신히 작업실을 구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작품을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아 전전긍긍하는 사례가 적지 않고, 작품 보관용 창고 등을 얻으려 해도 만만치 않은 비용에 이도저도 못하기 일쑤다. 체계화된 습도, 온도, 단열, 내화, 수납 등을 생각한다는 건 언감생심이다. 이쯤 되면 다작(多作)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작가들의 자조는 수긍할 만하다. 공공의 자산인 미술품이 소리 없이 폐기되거나 훼손되는 환경을 정부가 개선해줘야 한다는 주문 역시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정부는 '작가 미술품 보관시설'에 대한 작가들의 절실함을 알고 있을까. '미술진흥 중장기 계획'(2014)에 작가 작품 보관시설 조성을 포함시킨 것을 보면 알긴 아는 듯싶다. 하지만 포퓰리즘에 입각한 주먹구구식 정책들이 그러하듯 계획 종료 시점을 코앞에 둔 현재까지도 구체적인 실현성은 찾기 힘들다. 실현은커녕 별 관심조차 없어 보인다. 전국에 거미줄처럼 퍼져있는 각 지역문화재단을 '작가 미술품 보관시설' 운영의 주체로 삼아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보관, 출납하며 차후 기증과 소장을 구분해 용도를 명료하게 하거나 미술은행 역할을 맡아 작가 작고 시 유족들에게 임대수익을 돌려주는 방식 등의 적절한 대안이 있지만 논의는 이뤄지지 있지 않다. 순수 보관 역시 전국 유휴공간 및 국공립대학을 활용하는 방법 등을 고민할 만하고, 경우에 따라선 온라인플랫폼을 구축해 보관 작품을 판매까지 가능하게 할 수 있으나 이 또한 거론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말만 꺼내놓고 지지부진한 이유는 '예산'이라는 장벽 탓이 크다. 하지만 최순실 연루 예산의 절반만 써도 싹 해결될 일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결국 의지의 문제지 예산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2016-12-18 11:06:19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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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취임 1주년, 마리 관장은 무엇을 했나

지난 2014년 10월, 서울대 교수 출신의 정형민 전 관장이 학예사 부당 채용 파문으로 직위 해제된 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뽑는 1차 공모가 실시됐다. 하지만 문체부는 거의 1년 가까이 질질 끈 끝에 공모에 응한 이들을 모두 부적격 처리해 논란을 야기했다. 당시 최종후보에 오른 한 인사는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에 대해 '문사코'(문화계 사이코패스)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문체부는 "적극적인 업무추진력, 창의성과 혁신적 마인드 등 변화와 진취성이 요구되는 국립현대미술관장의 업무를 수행하는 데는 다소 미흡하다고 판단, 최종적으로 재공모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2차 공모가 시작됐다. 그런데 때를 같이해 미술계엔 묘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핵심은 외국인 관장을 뽑기 위해 1차 관장 공모에 나선 지원자들을 죄다 탈락시켰다는, 일명 '외국인 관장 내정설'이었다. 그러나 미술계 분위기는 대체로 '설마'에 가까웠다. 물론 이 '설마'라는 부사에는 충분히 예상되는 소통의 어려움, 문체부가 주체화 및 내실화에 반하는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내재되어 있었다. 허나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지난 2015년 12월, 김종덕 전 장관은 '미술계에 만연한 학연, 지연으로 인한 폐단'을 언급하며 결국 한국미술 역사상 처음으로 국립현대미술 관장에 외국인인 바르토메우 마리 리바스 전 스페인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MACBA) 관장을 임명했다. 문화계 국정농단을 주도한 차은택의 대학원 스승이자 그가 조감독으로 일했던 광고제작사 '영상인' 대표였던 인물이 미술계 내 학연, 지연 폐단을 말하는 모순 속에서 빚어진 결과였다. 그로부터 다시 1년이 흐른 현재, 선임 과정에 대한 루머는 사그라진 대신 마리 관장이 일군 성과에 관한 의문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즉, 곧 취임 1주년을 맞이하지만 대체 그동안 마리 관장은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미술계 안팎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지적의 기저엔 관장이 외국인이어서 안 될 이유는 없으나 외국인이어야 할 이유 역시 없었던 지난 1년여의 시간에 대한 반추가 놓여 있다. 또한 마리 관장의 활약과 약속들을 확인하는 게 쉽지 않다는 현실도 투사되어 있다. 사실 마리를 굳이 관장에 임명한 표면적인 배경엔 그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한국미술의 우수성을 해외에 알리자는 목적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리 가시적이지 않다. 본인이 직접 밝힌 공공프로그램 연구 확대, 전시기획과 소장품 수집에 관련한 새로운 정책 마련, 세계 유수의 기관과 국제적인 협력, 국내 예술계와 비 예술계를 아우르는 창의적인 파트너십 구축 등에서도 체감온도는 높지 않다. 더구나 "한국 현대미술의 특수 상황을 서술할 고유한 어휘와 한국적 서사구조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을 실을 만한 밑그림도 보이지 않는다. 미술관을 국제적인 작가·큐레이터·비평가들과 교류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 재능 있는 사람들의 집결지가 되도록 할 것이라는 다짐 역시 선명도가 낮다. 오히려 국내 미술생태에 거의 무지한 인사들이 주요 위치에 앉아 국립현대미술관의 위상을 추락시키고 전시 내용도 부실해지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마리 관장은 취임시기부터 "1년 안에 한국어로 대화하겠다"는 약속을 자주 내비쳤다. 그러나 이 또한 실현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옆에는 늘 전문임기제 6급 공무원에 준하는 '전담통역사'가 따라다니고 있다. 물론 이 통역사는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준다. 고작 관장과의 원만한 소통을 위해 통역사 월급까지 세금으로 내주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일부에선 한국적 정서는커녕 말조차 제대로 못하는 이에게서 한국미술의 차별화와 세계 속 한국미술을 희망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른다며 '하야(?)'까지 표명하고 있다. 마리 관장의 임기는 2018년 12월 13일까지이다.

2016-12-04 11:37:24 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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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천박한 가치와 경박한 미술시장

[홍경한의 시시일각] 천박한 가치와 경박한 미술시장 작품이 '상품'처럼 취급될수록 예술의 가치는 곤두박질친다. 아직 무르익지 않은 작가들을 시장판으로 내몰수록 철학적 사고 대신 얄팍한 자본논리부터 익히는 위험에 노출되며, 예술을 매개로 사회와 인류공동의 화두에 끝없이 질문하는 미학적인 태도에 앞서 '취향공동체'에 읍소할수록 미술의 하향평준화는 더욱 심화된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권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재)예술경경영지원센터 등의 정부 및 산하기관들을 앞세워 대중 눈높이에 맞춘 행사에 막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 미술시장진흥을 기초예술 보호로 오판한 듯 '융단폭격'에 가까운 미술시장정책을 펼쳤고, 돈을 쥐고 흔들며 현장에 개입해 미술의 역할을 심미적, 장식적 환경조성으로 변질시켰다. 일례로 박근혜 대통령 지시사항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2014년 발표한 '2014-2018 미술진흥중장기 계획'은 작가보수제도(Artists' fees) 도입과 학예사제도 개선 추진, 사립미술관 100개소 내외에 체험·교육프로그램 지원 등의 일부를 제외하곤 거의 미술시장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국내아트페어 지원', '해외 유수 아트페어 유치 지원', '전국 미술장터 개설', '아트페어와 연계한 실험·비영리 전시 지원' 등 한두 개가 아니다. 여기에 설립 목적에 위배되는 '창작스튜디오 아트페어 개최'까지 덧대면 '미술진흥중장기계획'은 사실상 '미술시장진흥중장기계획'에 가깝다. 최근 들어서도 정부는 작가와 갤러리의 해외시장 진출을 돕겠다는 취지로 '코리아 갤러리 위캔드', '해외 아트페어 참가 지원 공모', '우리 동네 아트페어' 등의 다양한 행사를 통한 시장중심정책과 지원에 열정을 쏟아 붓고 있다. 기존 아트페어와 달리 창작자와 직거래로 작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한 '작가미술장터'와 같은 직거래 형식의 행사에도 혈세를 아끼지 않는 중이다. 유휴공간을 미술거점으로 삼는 '작은 미술관 조성 사업' 등의 몇몇을 제외하곤 그야말로 '미술의 상업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실천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환경이 비판 없이 습속 되고 순환될수록 미술의 깊이와 다양성이 거세된 국민들의 편향적 미술소비가 강화된다는 점이다. 또한 현실과 개인의 삶 사이의 관계를 지각과 감수성의 층위에서 창조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세계와 삶에 대해 매개하는 미술의 본원적 가치마저 외면하는 현상을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미술인들의 소득과 관계되는 자유와 권리에 대한 인정 및 관심을 부정해서도 안 되지만, 그것이 곧 단순산업생산과 구별되지 않는 지점을 가리키는 게 아님을 망각해서도 안 된다. 달리 말해 시장정책도 필요하나 그것에 견줄만한 기초예술정책의 현실화, 최소한 시장에 목매지 않아도 미술 활동이 가능한 복지환경 역시 필요하다. 결국 절대적 균형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정부의 시장중심형 정책들을 보노라면 뭔가 바람직한 길을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니, 무너진 기초예술과 붕괴된 예술현장을 살리는 대안으로 '경영'과 '시장'을 내세우는 행태에서 오히려 천박하다는 느낌이 크다. 사회적 의사표시로서의 미술의 경제성이 곧 미술품의 가격임을 모른 채 '제품'을 찍어내는데 급급한 일부 미술인들도 얇기로는 매한가지다. 미술의 상징가치를 상품가치로 탈바꿈시키거나 그저 재화획득을 위한 하나의 콘텐츠로 전락시키는 것이 궁극적으론 예술의 자율성 박탈임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왜 미술은 상업성을 띠면 안 되느냐고 묻는 단천함, 미술인을 유통업자 혹은 장사꾼으로 둔갑시키는 정부정책에 자각이 없다는 것에서 특히 그렇다.■ 홍경한(미술평론가·칼럼니스트)

2016-11-20 15:20:13 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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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어느 기업의 착한 지원

[홍경한의 시시일각] 어느 기업의 착한 지원 지난 3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5년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미술인들의 연평균 수입은 고작 600만 원대에 불과하다. 믿기지 않겠지만 월급이 아니라 연간 소득이다. 원로 작가들의 처지도 나을 게 없다. 60대 이상 예술인 및 40년 이상 그림만 그린 이들조차 한해 벌이라봐야 각각 300만원과 500만 원대에 그친다. 이는 그림을 그린 경력과 수입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문제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미술인들의 실상은 그리 나아진 게 없다는 데 있다. 아니, 지표로만 보면 오히려 악화일로에 있다. 2007년 6천억 원을 넘던 시장규모는 현재 3천억 원대로 쪼그라들었고 2006년 약 70% 가량의 미술인들이 월 평균 129만원을 벌었다면, 지금은 그것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러니 작가들의 입에서 "생계가 아닌 생존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이 나오는 게 이상할리 없다. '혹한기'에 가깝다는 비명을 엄살로 치부하기도 어렵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일부 개인과 기업을 주축으로 창작환경 개선을 위한 관심과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국내 중견작가 중 몇몇은 후원자들로부터 매달 일정한 금액의 경제적 지원을 받는 대신 미술 강의, 전시 투어, 작품 기증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서로 소통하는 사례를 만들어가고 있다. 작가는 안정적인 창작을, 후원자들은 예술 공헌과 국가문화경쟁력에 이바지하는 상생의 표본으로 평가받고 있다. 기업 중에도 예술을 사회적 공공재로 보고 미술인들을 지원하는 예가 있다. 국내 첫 '아티스트 프로모션사'인 '아트와(ARTWA)'는 생활고에 억눌려 자신이 가진 재능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는 작가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지원프로그램을 구동시키고 있다. 이제 갓 반년 남짓한 역사를 지녔지만 전시기획, 아카데미, 출판사업 등의 여러 사업 분야를 통한 실질적인 지원정책은 벌써부터 많은 미술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실제로 이 회사는 작가들이 민생고에 대한 고민 없이 그림만 그릴 수 있도록 작품을 구입해주는가 하면, 매월 수백만 원에 달하는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다. '가능성' 있는 미술인들을 발굴해 창작활동 증진을 위한 아카이브 및 화집 출판, 국내 외 아트포럼 참여 및 개최, 국내 및 해외 저명한 비평가들과의 만남을 통한 실질적인 크리틱의 기회도 제공 중이다. 지방 거주자처럼 특별한 경우 작업실까지 마련해주고 있다. 최근엔 내부검토와 미술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사진의 이갑철, 회화의 김명규, 회화와 설치를 넘나드는 디황, 조각의 전경선 등, 모두 4명의 작가를 주력작가로 선택해 국내 및 해외 개인전 지원은 물론, 해외아트페어에 참여할 수 있는 무대제공, 컬렉터와의 연결과 미디어 홍보까지 도맡고 있다. 그야말로 작가는 작품제작에만 매진하면 되는 구조다. 흥미로운 건 예술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는 미술인들의 삶을 존중하고 수익창출 수단이 아닌 한국의 이머징 아티스트(emerging artist)들이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발판으로서의 '아트와(ARTWA)'라는 설립 개념이다. 단지 말뿐이 아니라 해외전시개최 등의 다양한 실행을 겸하고 있는 이 개념은 작가들과의 평등한 파트너쉽을 형성하는 중요한 텃밭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술인들로부터의 인정과 진정성을 획득하는 원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아직은 소수지만 예술을 매개로 호흡하고 지원에 대한 최대의 수확을 이타적 만족감이라 여기는 개인과 기업들의 움직임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있다. 또한 굳이 미술이어야 할 까닭이 없음에도 미술인들과 장기적, 전략적 상생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그들의 관심과 노력은 자발적 사회공헌이라는 점에서 격려 받을 이유로 부족함이 없다.■ 홍경한(미술평론가·칼럼니스트)

2016-11-06 14:13:26 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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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비정상 혼(魂)의 세태

현 정권의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 일가와 측근들이 대한민국을 흔들어놓고 있다. 일개 여인이 자신의 패거리들과 함께 공사 구분 없이 국정에 개입해 제 마음대로 세상을 난도질한 수어지친(水魚之親)의 막장이다. 허나 그릇된 유유상종의 폐해는 경제계와 학계를 비롯해, 예술판도 예외로 두지 않는다. 발화지점과 규모, 결은 다를지라도 이곳 역시 정치력과 연줄, 학연, 지연 등에 따라 될 일도 안 되고 안 될 일도 된다. 일례로 대중가수가 어느 날 갑자기 한국 전통문화를 다루는 문화재단의 사장으로 임명되고, 후원회장이 이사장으로 변신한다. 아마추어 예술가가 느닷없이 문화예술기관 대표이사로 둔갑하기도 하며, 검증되지 않은 인물이 미술기관 수장도 맡는다. 이 중심엔 숙주로 삼는 권력이 있고, 작던 크던 그저 '자리'에 오르는데 얼마만큼 기여했느냐와 친밀도라는 가장 가치 있는 조건이 놓여 있다. 외적으론 투명성과 공정성을 기준으로 한 인사 공모를 거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많은 국공립 예술관련 기관장이나 중요한 보직에 앉은 어느 누군가는 정치력과 연줄의 부산물이 아니라고 단정하지 못한다. 사실상 이미 내정(內定)되어 있음을 확신하게 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고, 설마 했던 소문이 실체화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 모든 것들은 곧잘 교주와 신도 마냥 지자체장의 측근이거나 동기동창 또는 정치적 동반자, 가신들, 퇴직 공무원들의 보은용으로 귀착된다. 물론 당연히 우선해야할 능력 및 전문성은 후순위거나 아예 자격으로 치지도 않는다. 실력, 경험, 비전 제시 등의 표어는 언제나 박제된 용어일 뿐이다. 그러니 이곳에 문화와 예술이 있을 리 없다. 짬짜미한 욕망과 자리만 있다. 허긴, 예술의 가치마저도 시스템 아래 '만들어지는' 판국에 인사인들 공명정대하게 이뤄지겠냐만, 문제는 높던 낮던, 작던 크던 끼리끼리 다 해 먹는 작당의 문화가 생각 이상으로 비판 없이 무감각하게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예술가의 작품성과 발전 가능성을 말하고 그 의도와 가치에 대해 고민하며 질문해야하는 선정 및 지원 심사에서조차 누구누구 아느냐 따위의 질문이 등장한다. 같은 학교 출신이기에 혹은 제자이기에 뽑아야 한다는 족보타령도 나온다. 심지어 성별이라는 생물학적 이유마저 당락의 잣대가 된다. 그야말로 혼(魂)이 비정상인 이들이 창조하는 부끄러운 양태들이다. 때와 장소를 구분 못하는 사사로움에 매립되고 계선(系線) 체계가 무너지면 간신은 들끓고 역량을 갖춘 인재들은 자릴 뜬다. 그래도 세상의 정의로움과 기회의 공정함을 믿는 한줌의 선량한 기대마저 희석된다면 긍정적인 미래는 쉽게 개방되지 않는다. 정치든 경제든 사회든 예술이든 다 마찬가지다. 그런 차원에서 권력의 최정점과 연관된 최순실 게이트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턱도 없는 사람일지라도 측근 하나 잘 만나면 그 자체로 권력이 되어 세상을 마음껏 갖고 놀 수 있는 현실을 증명했다는 점, 줄과 라인을 중시해온 대한민국의 오랜 근친문화의 부작용을 상징한다는 점, 실력 보다 인맥, 능력에 앞서 누가 배경인지가 삶에 있어 더욱 소중한 가치임을 보여준 기표라는 점에서 고찰할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걱정스러운 건 이런 역사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달라질 리도 없다는 데 있다. 변화를 꿈꾸기엔 너무 머리 와 있다는 것도 근심이다. 정말 간절히 원하지 않아서, 우주가 나서서 도와주지 않아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2016-10-23 11:51:40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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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송은문화재단의 아쉬운 결정

㈜삼탄의 유상덕 회장은 1999년부터 송은문화재단을 이끌어오며 신진작가들의 전시 활동을 꾸준히 지원해 왔다. 2001년 제정한 송은미술대상을 통해 그룹 뮌, 최선, 권준호, 손동현 같은 작가들을 발굴했고, 2010년 설립된 복합문화공간인 송은아트스페이스를 통해선 한줌의 무대조차 아쉬운 작가들에게 알찬 전시기회를 제공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유 회장은 지난달 22일 25년 역사를 지닌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에 국내 12번째 인사로 선정됐다. 다른 장르도 아니고 미술에, 그것도 굳이 관심 두지 않아도 누가 뭐랄 수 없는 예술에 투자해온 것에 비하면 조족지혈일 수 있지만 유망한 젊은 작가를 육성 지원하는 등 한국 미술문화 발전에 기여해온 그동안의 노력과 수고를 작게나마 보상 받은 셈이다. 그러나 얼마 전 유 회장은 오는 2019년 강남 청담동 부지에 들어설 새로운 미술관 설계를 스위스 듀오 건축가인 자크 헤어초크와 피에르 드 뫼롱 건축사무소에 맡기기로 결정해 아쉬움을 남겼다. 한국의 미술관 건축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고양시킨다는 점에서 긍정적일 수 있지만 우리나라 건축가를 세계적인 건축가로 부각 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린 선택이라는 점에서 섭섭한 느낌도 없진 않다. 물론 그동안 한국의 문화공간의 뼈대가 외국인들 손에서 일궈진 사례가 한둘이 아니므로 유 회장의 결정을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다.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인 로랑 보두엥이 설계를 맡은 이응노미술관, 안도 타다오의 성격이 짙게 묻어나는 제주 본태박물관 등이 모두 외국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서울대미술관이나 백남준아트센터 등도 마찬가지다. 하나같이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일본 건축가들의 손을 거쳤다. 하지만 브랜드와 명망성에 가려 제대로 된 가치구분이 희미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자하 하디드의 동대문디자인프라자(DDP)는 주위 경관과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지역의 역사성과 동떨어진 건축물이라는 논란을 불러왔으며, 마리오 보타와 장 누벨, 렘 쿨하스가 공동으로 설계한 삼성미술관 리움은 구조면에서 비싼 이름값에 부응하는지 의문이라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을 전후로 외국 유명인들의 이름을 내건 건축물은 하나의 유행처럼 번졌다. 다른 사회권의 문화가 자신이 속한 문화보다 우월하다 여긴 채 무비판적으로 동경하며, 자신의 문화와 자산에 대해서는 업신여기는 '문화사대주의'라는 지적도 나왔지만 지금은 전국 어디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을 만큼 흔해졌다. 그러니 새롭게 건축할 미술관 프로젝트를 스위스 건축듀오에게 맡기기로 한 유 회장의 선택을 특정해 힐난할 명분은 없다. 다만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송은문화재단은 재능 있는 우리나라 인재들의 기회창출의 장이자 홀로서기를 뒷받침해온 거점이었다는 점에서 심리적 거부감은 있다. 일부러라도 한국 건축가들에게 비전과 가능성의 계제로 삼도록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기대와 바람, 그것이 다른 곳도 아니고 우리 작가들에게 꾸준히 '지원'과 '육성'을 도모해온 '송은'이기에 기회 없는 예술가들의 허기를 알아달라는 주문이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 기대란 게 일방적으로 쌓아놓고선 왜 부합하지 않느냐고 불만을 터뜨리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여태 해온 것도 대단한데 외국인에게 건축물 설계를 맡긴다하여 나무라는 것은 다소 가혹하다는 시선도 있을 수 있다. 허나 새로운 모험이 사례 없는 사례를 만들 수 있음을 희망한 게 잘못은 아니다.

2016-10-09 13:36:27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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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예술을 위한 삶, 삶을 위한 예술

얼마 전 한 지인은 "요즘 미술계를 보면 마치 연예계 같다"며 "보여주는 것에 능숙한 작가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예술 자체도 지나치게 경량화 되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되물었다. 이에 필자는 그저 단면(斷面)이라고 대답했다. 예술의 가치 옹립에 묵묵하게 임하는 작가들도 많을 뿐더러 시대를 날카롭게 반영하고 질문하는 작품 역시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특히 거북하고 불편한 것들을 끌어와 공론화 하거나 논의의 매제로 삼는 이들을 지지하는 부류도 있음을 강조했다. 허나 말은 그리했어도 구조와 가치관의 변화, 현상 등을 종합하면 그가 미술계를 연예계로 비유한 것이 과한 건 아니다. 부분을 전체로 확대해석한 측면이 있지만 미술계에도 이미 유사한 구조가 존재해 왔음을 부정할 순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발에 채일 정도로 흔한 각종 미술공모전은 방송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등용 프로그램과 별 차이가 없으며, 다양한 시상제도와 지명도 높은 공간에서의 전시는 스타를 배출하는 여타 시상식 및 무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무명생활을 벗어나 어떻게든 성공의 사다리를 움켜쥐려는 구성원들이 없다고 보기 힘든 것이나, 기회의 구조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재주와 노력 외에도 자본과 네트워크, 프로모션 등이 오늘을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삶에 있어 외면하기 어려운 조건인 것 또한 (굳이 비교하자면)연예계와 닮았다. 흥미로운 건 이런 구조와 환경에 대한 미술계 구성원들의 사고와 접근 방식이 유연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중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삶의 수단'으로 삼는 작가들의 변화된 가치관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실제로 근래 젊은 작가들에겐 팬시제품을 만들던 상업성에 함몰되던 '작가'라는 고전적 프레임 안에서 행해지는 비판과 지적 따윈 개의치 않는다. 심지어 일부는 계량화가 가능한 욕망의 수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데에도 자연스럽다. 즉, 승자에 의해, 당락에 따른 결과가 보다 상위에 진입할 수 있는 주요 경력으로 가시화되고 실질적 보상으로 귀결되는 사회적 원리에 대한 거부감이 점차 옅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런 오늘을 불편해 한다. 미술이 산업화되면서 더욱 견고해지는 시스템, 미술이라 하여 예외로 두지 않는 자본주의의 횡포에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그것들이 남긴 얼룩에 자발적으로 의탁하는 작가들을 비판한다. 경제적 불평등과 시장가치의 숭배를 비꼰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황금변기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넓은 관점에서 삶을 위해 예술을 도구화하던, 예술을 위해 삶을 헌신하던 그건 단지 선택의 문제일 뿐, 선악은 없다고 여긴다. 철학자 혹은 선비처럼 행세해야 진정한 예술가로 대접받는 냥 착각하는 것보단 솔직한 게 낫고, 예술가는 고상해야한다거나 세상일에 초연하여야 한다고 믿는 오랜 기풍보단 현실적인 태도를 존중한다. 다만 호불호는 있다. 때문에 작품을 출세의 기저요, 물질적인 교환의 대상으로만 치부한다면 거리를 둔다. 인정은 하지만 그를 창작가라고 부르진 않는다. 적어도 아직까진 집단의 공통지나 대중 정서와 타협하지 않는 것, 취향공동체가 만든 틀과 그것을 수완 좋게 활용하는 이들이 원하는 것을 기능공처럼 만들어 내지 않는 것, 문화적, 교양적 포만감을 채우기 위해 예술을 찾는 이들을 멀리하는 것에 시선이 간다. 구식사고라 해도 어쩔 수 없다.

2016-09-18 14:01:33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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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창작레지던시'의 그늘

레지던시란 일정 기간 동안 작가에게 작업공간을 지원하는 현재진행형 예술창작지원 프로그램을 가리킨다. 즉, 창작 진흥을 목적으로 예술가에게 작업실과 시설을 제공하는 것이 레지던시인 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대 후반 처음 등장한 이후 2016년 현재 공사립 포함 130여개의 레지던시 혹은 창작공간, 창작스튜디오가 이름만 달리 한 채 존속되고 있다. 그러나 약 20여년이 넘는 역사를 지녔음에도 여러 창작 거점공간들은 여전히 본래의 설립취지가 무색할 만큼 지역 내 다중적 이해관계가 얽힌 기초문화시설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부는 지역 권력자들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은 수구공간으로 전락하고 있을 뿐더러, 저급한 시장논리를 접목시키거나 창작스튜디오의 대외적 효과가 강조되는 가시적 이벤트에 작가들을 동원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그 중에서도 짧으면 3개월, 길어야 1~2년 머무는 입주 기간은 레지던시 작가들에게 가장 심각한 불만사항으로 꼽힌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넉넉하지 않다는 이유가 크지만 짐을 풀자마자 다시 싸야 하는 처지에서 진득한 예술창작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 입주 경험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어느 곳이나 하나 쯤 있는 기획인 '지역연계', '시민참여프로그램' 등도 작가들을 곤혹스럽게 하는 원인이다. 사실 이러한 프로그램의 태동에는 세금이 투입되니 만큼 예술가의 재능을 지역기반조성 및 시민 예술 공유에 써야 한다는 정책자들의 단순한 발상이 녹아 있다. 예술가들의 지역 공헌이 궁극적으로 도시재생 및 문화예술 향유 확대에 효과적일 것이라고 믿는 정부와 지자체들의 막연한 신념도 하나의 배경이다. 그러나 단기 거주에 머물 수밖에 없는 생태에서 주민들의 삶을 이해하고 협업하며 조력한다는 건 애초 말이 되질 않는다. 이는 기관 종사자나 작가 모두 알고 있다. 그럼에도 순수창작공간을 넘어 '주민문화시설'을 지향하는 정책기조는 무언가 가시적 결과를 강요한다. 그러니 창작공간들이 행하는 지역연계, 시민참여프로그램이란 그저 뭔가 그럴싸한 형식적인 아이템에 불과하기 일쑤다. '유배지'를 연상케 하는 창작공간의 위치도 문제로 거론된다. 실제로 대부도 인근에 자리 잡은 경기창작센터나 이천의 금호창작스튜디오 등은 끔찍한 위치로 유명하다. 고압 송전탑이 지나는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도 그리 좋은 장소라고 보기 어렵다. 특히 이곳은 서울시립미술관 운영이라는 브랜드에 걸맞지 않게 딱히 차별화된 공간이라는 여운도 주지 못하고 있다. 인지도가 아까운 케이스다. 유휴시설, 폐교활용이 60%에 달하는 공간 활용현황 또한 썩 긍정적이지 않다. 대체로 산업화와 도심화 정책에 밀려 용도 폐기된 기존 공간을 재사용하고 있어 문화근접성이 상당히 불편하다. 이 부분에서 우린 정부와 지자체, 기업들이 대략 어떤 공간들을 그동안 예술가들에게 할애해 왔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밖에도 전문성 부족한 스텝과 관료화, 대동소이한 프로그램, 레지던시가 대안적 권력으로 작동하는 구조 등도 한국 창작스튜디오의 난감한 현주소를 가리킨다. 여기에 간혹 능력 있는 기관 종사자들이 좀 잘해보려 해도 사사건건 간섭하는 '높은 분들'이 적잖아 제대로 된 방향설정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비록 작업실 마련, 네트워크 형성, 전시 기회, 지원금 한 푼 등이 아쉬운 탓에 많은 작가들이 지원하는 레지던시지만, 위와 같은 양태들에 대한 총체적 고민이 없는 한 한국 레지던시들은 고만고만한 차원을 면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레지던시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이 유효하지 않다면 우리네 창작공간들은 오늘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질 못할 것이다. ※홍경한은 미술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자문위원, 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 박수근미술상 운영위원, 서울시립미술관 전시평가위원 등을 지냈다. 미술월간지인 미술세계, 퍼블릭아트, 경향아티클에서 편집장을 맡아왔으며 대림미술관 사외이사로 있다. 대구신문, 메트로신문, 주간경향, YTN 등에 매달 고정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2016-08-21 08:35:49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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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국민을 바보로 만든 '입'

최근 미술계를 둘러싼 온갖 사건과 의혹이 이어지면서 대중들의 의구심도 부쩍 늘었다. 많은 이들은 조영남 대작(代作) 논란을 가리켜 "대신 그린 그림에 작가는 사인만 하는 게 정말 미술계 관행이냐"고 물었고, 천경자 '미인도' 위작 논쟁과 이우환 위작 의혹이 불거졌을 땐 (미술계에)위작과 대작이 판치는 게 사실인지 되묻는 이들도 꽤 됐다. 그때마다 필자는 "미술계하고는 거의 상관없는 자들에 국한된 예"임을 분명히 했다. 대다수 미술인과는 거리가 먼 현상이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미술계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몇몇의 발언을 문제 삼을 땐 보다 긴 호흡과 설명을 필요로 했다. 일례로 조영남 대작 관행을 변호하는 말이 나왔을 당시엔 자의반타의반 거의 해명에 가까운 모양새를 취해야 했다. "직접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예술가의 지위를 누리는 소수"가 어째서 모든 예술의 가치방식을 규정하는 건 아닌지를 길게 진술해야 했으며, 불신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정통회화와 개념미술, 앤디 워홀과 솔르윗, 데미안 허스트와 데이비드 호크니의 사례를 비교제시 하는 등, 이해를 돕기 위한 과정을 지난하게 되풀이하곤 했다. 여기에 동시대미술의 경향과 흐름, 상품과 작품, 결과와 과정, 저작권 문제까지 일일이 쉽게 풀어 공유하는 것 역시 녹록한 건 아니었다. 이 모든 게 그저 주관을 진리라 착각하는 그들의 '입' 덕분이라 치부할 수 있었지만 그렇기엔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고갈시켰다. 그러던 중 또 하나의 '입'이 미술계와 국민을 반편이로 만들었다. 바로 한 학원 강사의 엉터리 '조선미술사' 강의였다. 수능 사회탐구 영역 강사인 그는 정치, 경제, 역사를 넘나들며 학문의 탈경계 및 해체(?)를 몸소 실천해 왔다. 그러더니 어느 날부턴 느닷없이 '진짜 그림 보는 법'을 알려준다면서 조선미술사로까지 영역을 넓혔고, 기어코 대형 사고를 쳤다. 잘못된 정보를 사실인 냥 방송에서 고스란히 노출시킨 것이다. 그는 생존 작가의 작품을 조선말기 화가 오원 장승업의 작품이라며 열변을 토했다. 영화 소품용 모작도 오원의 것으로 소개했다. 특히 검산 행차도를 담은 '산궁수진'이나 한유(韓愈)의 시(詩) '투계'를 제화로 한 작품 등, 다양한 산수화와 영모화, 화조도를 남긴 신윤복을 두고 기생 그림이나 그린 풍속화가라고 곡해하더니 급기야 보물 제527호인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에 대해선 '위작' 의혹을 주장하기도 했다. 멀리만 느껴지던 그림이야기에 답답해하던 이들은 시원시원한 그의 '입'에 열광했다. 하지만 이내 자신들이 바보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가 내뱉은 미술사는 비전공자에 의한 근거 없는 확신에 불과했고 실제와 어긋난 미술사를 새로운 미술사처럼 소개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터무니없던 강의는 미술계에도 엄한 불똥을 튀겼다. "미술계에 얼마나 인재가 없으면 거짓 전문가들이 방송에서 미술사를 가르치느냐"는 조롱이 적잖이 쏟아졌던 탓이다. '입'만 살아 있는 이들의 공통점은 경험부족을 책으로 메꾸되, 궤변을 달변으로 포장해 판다는 것에 있다. 자신이 말하는 것은 참됨이요, 그것에 반하면 무지하다 비웃는다는 점, 항상 가르치려는 자세에 익숙하다는 사실도 또 하나의 공통분모다. 허나 한낱 도랑에 불과한 지식장사치들의 '입'은 가볍다. 바닥이 금방 드러난다. 그럼에도 미술계 안팎에서 발을 빼진 않으며 늘 시끄럽게 배회한다. 그에 비례해 아무 죄 없는 미술계 신뢰도까지 뚝뚝 떨어지고 있다. ※홍경한은 미술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다. 미술전문지인 월간 '미술세계' 편집장, 월간 '퍼블릭아트' 편집장, 월간 '경향아티클'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비평과 강의, 방송과 집필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16-06-13 11:01:46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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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예술가들은 정말 잘 먹고 잘 살았나

조수에게 그림을 대신 그리게 하는 대작(代作)이 '관행'이라는 조영남의 해명은 때 아닌 '미술계 관행' 논란을 촉발시켰다. 미학을 전공한 진중권은 앤디 워홀 등을 언급하며 미술계 대작은 '관행'이라 못 박은 반면, 여타 미술전문가들과 작가들의 다수는 미술공동체 내 윤리적, 상식적 규범을 관통할 만큼 광범위한 관습적 전례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일각에선 몇몇의 섣부른 오지랖 때문에 작가들은 마치 남이 그린 그림에 사인이나 하는 부류인 냥 대중인식이 왜곡될 수 있다며 우려했다. 그런데 이번엔 "(반 고흐를 빼곤)예술가들 중에서 고통스럽게 작업하는 사람은 없고, 다들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진중권의 인터뷰 발언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말은 "작가가 홀로 고통스럽게 완성해 가는 과정을 높이 사기에 '작품'이라고 높여주는 건데 다른 작가에게 맡겼다면 그것은 '제품'이 아니냐"는 앵커의 질문에 나온 대답이었다. 진중권의 발언을 접한 작가들은 "최근 듣고 본 중 (예술인에 대한)가장 무지하고 잔혹하고 냉소적인 말"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필자 역시 의아하긴 마찬가지였다. 어쩐 일인지 그와 내가 아는 현장과 현주소, 지식과 경험 모두에서 너무 큰 거리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주장과는 달리 예술가의 상당수는 작업에 있어 창작의 고통과 현실적 고통이라는 이중고에서 자유롭지 못해왔다.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내려놓은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비롯해 창작의 불가능성에 괴로워하다 죽음을 예상하며 자원입대한 대실 해밋, '고통을 안고 쓴다'는 말로 산고 속에서 작업했음을 고백한 한강, 자살로 생을 마감한 마크 로스코 역시 작업과정에서의 고통이 빚은 결과였다. 예술가들이 겪는 고통에는 경제적 고통도 만만치 않다. 미술사에 등장하는 그 많은 예술가 중에는 삼순구식(三旬九食)의 삶을 보낸 예가 그렇지 못한 사례보다 훨씬 많으며, 지금도 약80%의 미술인이 연간 수입 600만 원대에 불과한 현실 앞에 놓여 있다. 수입이 아예 없는 예술인도 36.1%에 달한다. 그야말로 우리나라 예술인의 절대 다수는 (잘 먹고 잘 살았기는커녕)생존조차 위협받는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술가들의 적지 않은 수는 그 직업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이유로, 자유를 지향한 죗값으로 형벌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작업의 연속성을 끝없이 흔드는 고통의 다양한 진원을 통고의 시간으로 메운 채 창작을 위해 물리적, 정신적 자산을 끝없이 소모하고 있다. 그런데도 진중권은 "예술가들 중에서 고통스럽게 작업하는 사람은 없고, 다들 잘 먹고 잘 살았다"고 했다. 몰라서 한 말인지, 아니면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림을 '직접 그리지 않아도 예술가의 지위를 누리는' 소수가 반드시 모든 예술의 가치방식은 아니며, 그것이 미술계 관례 혹은 보편적 맥락은 더더욱 아님에도 '관행'이라 간주한 것은 부적절했다. 이전과 다른 미술의 정의가 동시대미술계 한쪽에서 배회하고 있음을 부각시키기 위해 예술가들이 느끼는 작업의 고통까지 싸잡아 평가 절하한 것도 옳지 않았다. 특히 오만이든 편견이든, 적어도 그 발언들이 예술가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밑동으로 한 것은 아니라는 여운은 지울 수 없다. 굳이 "(조영남의)작품을 씹는 작가들이라고 뭐 대단한 작품을 만드는 건 아니다"라며 2절까지 덧댄 것을 보면. ※홍경한은 미술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다. 미술전문지인 월간 '미술세계' 편집장, 월간 '퍼블릭아트' 편집장, 월간 '경향아티클'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비평과 강의, 방송과 집필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16-05-29 11:38:11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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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취업률에 눈 먼 정부, 붕괴되는 상아탑

[홍경한의 시시일각] 취업률에 눈 먼 정부, 붕괴되는 상아탑 예술이나 철학이 사라진 대학, 참된 진리와 삶의 가치를 가르치지 못한 대학에서 배출된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사유는 희미해지고 사고는 미약하며 사물과 자연, 인간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지 않게 될 것이다. 성숙한 비판적 미래는 망상에 불과해질 것이 자명하다. 허나 우리네 정부와 대학은 그 무참한 길을 기꺼이 걷고 있다. 요즘 대학을 두고 '학문의 전당'이요 '상아탑'이라 부르는 이는 없다. 그보단 '취업인력양성기관'이자 대기업에 인력을 송출하는 새로운 형태의 '하청업체'라는 게 알맞다. 아니 '프라임사업(산업교육연계활성화선도대학)'과 같은 정부의 투전판을 기웃거리느라 자신들의 역할까지 내팽개친 '이익집단'이라는 게 옳다. 실제로 동시대 대학들의 목표는 학문의 순수이념 지향과 교육이 아니다. 연구와 진리탐구를 통한 참된 지식인 배양과도 거리가 멀다. 그들이 매달리는 건 오로지 '취업률'이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직장인을 공급하는 게 최대의 선이다. 대학에서 취업률을 최고의 사명으로 삼았다는 건 대량소비·대량생산 시대에서 사람마저 하나의 구조적 소비물로 인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기업을 주주로 상정한 채 상품을 조달하는 자발적 도급의 위치에 서있음을 뜻한다. 여기다 대고 자유와 자발성을 통한 교육과 연구의 일치를 이루는 대학, 사회적·문화적 공기로써의 대학을 주문하는 건 우둔하다. 그런데 대학을 이 지경으로 만든 건 정부다. 교육부가 재정지원을 이유로 대학평가를 하는데 있어 최우선 고려대상이 취업률인데다, 최근 커다란 논란을 불러온 프라임사업 역시 그 핵심은 취업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러 대학들이 '올바른 인재=취업'이라 착각하는 것도 어찌 보면 이상하지 않다. 그렇다고 인문사회, 예술 등 애초 취업과 무관한 학과에마저 통폐합과 폐과라는 끔찍한 칼질을 해댐으로써 교육의 다양성을 변탈하고, 창의적 인재발굴의 책임을 자발적으로 내려놓는 비탄한 현실이 합리화될 순 없다. 학교교육에 시장원리를 도입시키는 개념 없는 정부나 당장 눈앞의 돈에 어두워 획일적 인간상을 찍어내는 대학을 관용의 시각으로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 고등교육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점에서 천번 만번 욕을 먹어도 싸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다. 왜냐하면 대학 본연에 대한 고찰이 우선되어야 대학지배구조의 혁신적인 패러다임을 생성할 수 있지만 기업경영식 운영에 목매는 현재로선 개선을 기대하기란 요원한데다, '대학은 학문의 요람'이라는 사회적 의식이 해체되는 한 양식적 평가를 앞세워 간섭해온 정부 정책에 대한 저항이 불가능한 탓이다. 담론의 학풍과 도야의 길을 외면한 채 출세 지향적 교육관을 조성하고, 지식생태계와 기초학문이 말살된 곳에서 참다운 자아실현, 최소한의 휴머니티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높은 연봉과 세속적 신분 상승만을 목적으로 하는 대학에서 한 국가의 동량지재(棟梁之材)를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더구나 기업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무궁한 상상력과 발상의 동력을 지닌 인문사회 및 예술의 싹을 잘라낸다면 문화강국이라는 꽃은 절대 피울 수 없다. 하지만 정부와 대학은 '취업률'이라는 미명 아래 학생 교육권 침해를 넘어 기초학문과 순수예술을 임의로 축소 및 파괴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기업의 시녀를 자처하며 시장자본주의를 학내로 끌어들이느라 혈안이 되고 있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다. ※홍경한은 미술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로, 대림미술관 사외이사, 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 박수근미술관 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다. 월간 미술세계 편집장을 거쳐 퍼블릭아트 편집장, 경향아티클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자문위원, 서울시립미술관 전시평가위원, 경향신문 고정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KBS라디오를 비롯한 여러 방송과 강의, 주간경향, YTN, 메세나, 모닝캄, 대우증권 등 다양한 매체에 고정적으로 문화예술관련 글을 쓰고 있다.

2016-05-15 10:09:07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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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학술회의차 우연히 찾게 된 '도박의 마을' 강원랜드. 입장권을 구입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입장순서를 기다리는 인파로 야단법석이었다. 더구나 평일이었음에도 모니터엔 4500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이미 장내에 자릴 잡은 사람의 수다. 흥미로운 건 입장료였다. 카지노의 본고장 라스베거스에도 입장료 따윈 없다. 아마 공공기관을 출입하는데 돈 내라고 하는 나라는 한국 외, 몇 없을 것이다. 이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카드를 내밀었다가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사행산업은 카드결재가 안 된단다. 오로지 현금만 받고 전부 국고로 귀속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입장권이 곧 입장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이번엔 보안검사다. 검은 양복에 이어폰을 꽂은 이들로부터 신분증과 얼굴을 대조당하고 가방검사에 금속탐지기까지 통과해야 했다. 잠재적 범죄자처럼 취급되어 불쾌했지만 다들 고분고분했다. 어이없게 징수되는 세금에 대한 조세저항도 없었다. 그야말로 순한 양처럼 굴었다. 온갖 고행 끝에 드디어 입장. 눈앞에 펼쳐진 강원랜드는 목숨을 건 사투의 장이자 모순과 비극으로 점철된 세계였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교차되는 곳이었고, 살아 있는 인간들이 좀비처럼 배회하는 무대였다. 특히 최저임금 6030원을 벌기 위해 1시간을 꼬박 일해야 하는 바깥세상과는 너무 다른 통화가치, 현존 최고의 권력이자 비참의 근원인 돈이 강원랜드에선 시답잖게 취급된다는 점도 극명한 모순의 한 예였다. 물론 카지노 입장권 판매처와 도박중독 상담센터가 마주하는 야릇함, 화려한 실내와는 달리 죽은 도시처럼 적막한 사북 풍경, 어떤 이에겐 막장이고 누군가에겐 일확천금을 꿈꾸는 파라다이스라는 것도 이율배반적인 광경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허나 진정한 역설은 강원랜드 주변 각각의 신(scene)이 전혀 상관없을 듯한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데 있다. 즉, 탄광으로 운영되던 시절 갱도 바람을 흘려보내던 풍도(風道)가 도가의 풍도(지옥)를 재현하고 있듯, 점차 참학한 공간으로 변해가는 문밖세상이나 모든 것을 탕진해 지옥의 감문(監門) 앞에 선 자들의 영역이나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례로 게임테이블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 줄달음치는 군중은 매사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초상을 빼닮았다. '대박'에 대한 열망은 불확실한 가능성에 미래를 걸 수밖에 없는 동시대인들의 삶과 흡사하고, 간혹 죽음의 문지기와 대면하는 모습에선 '공허한 환상'의 그림자가 얼마나 가혹한지 엿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곳에선 살아도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상황이 '도박공화국' 내에만 한정된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말할 권리가 있으나 입 닫고 살아야 하는 통제의 그늘, 능력보다 출신 및 자본이 우선하는 구조, 약자를 향한 있는 자들의 극악한 '갑질'이 판치는 사회, 결코 침몰할 수 없는 기억 속에서 흐느끼는 이들만 보더라도 강원랜드는 단지 살아 있어도 죽은 곳이자, 죽어서도 죽지 못하는 사회의 축소판일 뿐이다. 그래서일까, 강원랜드를 벗어나며 문득 스친 생각은 세상이 말하는 지상 부처의 요람이란 카지노처럼 편향적 평가와 인지적 오류를 환상이 아닌 리얼리즘으로 둔갑시킨 것일 따름, 실은 섬부주(불교에서 인간세계를 의미) 지하로 뻗은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너나 나나, 우리 모두. ※홍경한은 미술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로 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 박수근미술관 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다. 월간 미술세계 편집장, 월간 퍼블릭아트 편집장, 월간 경향아티클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자문위원, 서울시립미술관 전시평가위원, 경향신문고정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지금은 KBS라디오를 비롯한 여러 방송과 강의, 주간경향·YTN·메세나·모닝캄·대우증권 등 다양한 매체에 고정적으로 문화예술 관련 글을 쓰고 있다.

2016-05-01 14:33:03 송병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