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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홍경한의 시시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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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차라리 오지마라

전시기획자들이 감동받는 경우는 작품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보는 관람객을 만날 때이다. 그렇기에 얼마 전 깜깜한 공간에서 1시간도 넘는 영상작품을 네댓 번이나 시청하던 일부 관람객의 모습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반면 채 30분도 안 되어 100여 점이 넘는 작품들을 모두 봤다며 출구로 나서는 사람들도 있다. 아마도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거나 '안 봐도 다 아는' 부류일 것이다. 작품해석에 있어 나와 다른 내공을 지닌 것이니 섭섭할 것도 없다. 다만 동시대 미술의 흐름과 경향을 파악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예술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정책에 반영해야 함에도 그저 시끌벅적하게 나타났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정치인들을 만나는 건 노곤하다. 그 의미 없는 행차에 비례한 실망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난 14일,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강원국제비엔날레'를 찾았다. 전시장을 방문한다는 정보는 당일 아침에서야 전달됐다. 이건 거의 통보였다. 미리 알려줬으면 어땠을까 싶었지만, 나랏일로 바쁜 사람이니 그냥 그러려니 했다. 필자는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를 놓고 고민했다. 일단 거주지에서 전시장이 위치한 강릉까진 멀어도 너무 멀었다. 또한, 그게 어디든 정치인들의 방문은 대체로 형식적이었다. 그 때문에 굳이 가깝지도 않은 길을 나서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부랴부랴 300㎞를 달려갔다. 장관이기 이전에 예술인이니 뭔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고, 젊은 시절 닳고 닳도록 읽은 '접시꽃 당신'으로 인한 '팬심'도 서울~양양 간 고속도로를 달리게 된 이유였다. 도종환 장관은 시리아 작가인 압둘라 알 오마리와 태백 출신인 고(故) 정연삼 작가, 장지아 작가 등 몇몇 작가의 작품에 시선을 두었다. 질문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는 질문은 놀랍게도 "비엔날레 주제가 뭐죠?"였다. 비엔날레에서 주제란 행사 전체를 관통하는 개념이고, 전시의 성격을 묶는 핵심 키워드이다. 그런데 그는 3층 전시장을 모두 돌아볼 때까지도 알지 못했다. 이는 마치 시낭송회에서 시를 읊고 있는 시인이 누구인지, 어떤 시를 썼는지 깜깜한 채 듣고 있는 것과 같다. 장관은 결례한 것이 맞다. 장관이 들릴 행사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도 제공하지 않은 보좌관들은 직무유기에 가깝다. 다른 이들도 아닌, 동계올림픽을 대표하는 문화예술행사에 문화예술 관련 주무 부처 관계자들로 왔기에 그렇다. 난 그때야 왜 장관의 입이 유독 무거운지 알아차렸다. 물론 약간의 대화도 있었다. 하지만 총감독 앉혀 놓고 약 30분 동안 '그들끼리' 나눈 얘기라곤 산불뿐이었다. 내용만 보면 문체부 관계자들은 비엔날레가 아니라 산림청이나 소방청을 방문했어야 했다. 필자는 누구보다 깊게 예술을 이해해야 할 직업인으로 정치인을 꼽는다. 늘 예술과 예술가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 법률·정책·방침 등이 현실적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들의 태도는 오히려 일반인보다 못하다. 영상작품 하나 끝까지 보지 않을뿐더러, 작가들과의 만남조차 마련하지 않는다. 의례적으로 왔다가 서둘러 자리를 뜬다.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정치인은 가급적 전시장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관심도 없는데 왜 세금 들여 전시장을 찾나. 맞이하는 이들도 힘들다. VIP 의전이라는 전근대적 악습을 되풀이하는 것도, 국민의 공복을 국민이 모셔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죄다 마음에 안 든다. 홍경한(미술평론가·강원국제비엔날레 예술총감독)

2018-02-18 10:39:24 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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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한국 문화예술행정의 수준

문화예술을 경제적인 잣대와 행정편의로만 접근하는 사례는 국내에 드물지 않다. 때론 자의적으로, 혹은 시민들이 조금만 불평불만을 늘어놓아도 철거해버리는 행정 관계자들의 예도 흔하다. 지난 2007년 작가 이반 씨는 통일부 의뢰로 도라산역 통일문화광장에 만해 한용운의 생명사상 등을 담은 14점의 벽화를 설치했다. 하지만 정부는 채 3년도 지나지 않아 '역의 분위기와 맞지 않다'며 해당 벽화를 일방적으로 철거 및 소각해버렸다. 작가는 거세게 반발해 소송에 나섰다. 그리고 2015년 8월 대법원은 "원작자 동의 없는 예술작품 폐기는 위법"이라며 "국가가 이씨에게 1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2013년 3월 세계적인 건축가로 꼽히는 리카르도 레고레타(멕시코, 작고)가 남긴 마지막 건축물인 제주도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더 갤러리)'가 모 기업에 의해 강제 철거되었다. 멕시코 정부와 건축학계는 물론 시민들까지 나서 내부를 관람할 수 있는 아시아 유일의 작품이라며 철거를 만류했지만 불법건축물, 해안 조망 등의 이유를 내세운 행정과 기업의 방침을 꺾을 순 없었다. 결국 '더 갤러리'는 무너졌다. 그 자리엔 호텔이 세워졌다. 이후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축물을 철거한 기업과 제주도는 끊임없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구 제주대학 본관 건물을 철거(1995년) 한 경력(?)을 갖고 있던 제주도는 문화예술에 대한 시각이 안일하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무지한 행정의 총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은 최근에도 벌어졌다. 지난해 12월, 부산 해운대구는 해운대 해수욕장에 2010년 설치된 데니스 오펜하임(미국, 작고)의 유작 '꽃의 내부'를 유족도 모르게 철거 및 폐기해 커다란 논란을 낳았다. 작품을 관리해온 해운대구청 관광시설관리사업소 측은 부식과 민원 제기를 폐기의 이유로 들었다. 바닷가에 있다 보니 훼손 정도가 심했던 데다가 대중성이 낮다는 일부 주민들의 요구가 작품을 내다 버린 배경이었던 것이다. 허나 해운대구청의 처사는 반문화적이자 공공미술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야만적 행정의 한 사례다. 본래 있던 장소에서 이동하는 것도 작가나 유족의 의견을 거쳐야 하는데, 심지어 저작권자와도 상의 없이 분해해버린 것은 작품을 가로등이나 환기구마냥 단순한 시설물 정도로 이해하고 있음을 드러냈을 뿐이다. 민원을 철거의 이유로 삼았지만 이 또한 납득하긴 어렵다. 공공미술 작품은 공공의 재산이고, 주인은 시민 모두이다. 따라서 정 철거해야 했다면 그에 합당한 공공의 의견을 물었어야 했다. 그러나 해운대구청은 그런 절차 없이 일부 민원의 말만 수용해 세계적인 작가의 유작을 부숴버렸다. 1970년대 뮌스터 시(市)는 시민들이 조지 리키와 헨리 무어의 작품에 반감을 갖자 설득에 설득을 거듭했다. 문화계 관계자들까지 적극 나서 예술작품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담론으로까지 이끌었다. 오늘날 국제적인 문화예술행사로 거듭난 '뮌스터조각프로젝트'는 그렇게 탄생했다. 하지만 뮌스터의 예는 우리에게 너무 먼 얘기다. 한국 문화행정가들의 예술에 대한 인식과 수준이란 유치찬란한 지역 토산품을 상징하는 조형물 앞에서 지들끼리 모여 희희낙락하는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부해도 미술감상이나 해석하는 방법에 대해 교육받은 적은 없으니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말이다.

2018-01-21 14:49:03 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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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혈세 낭비 황당 조형물

'공공미술'은 건축물을 빛내는 보조수단이 아니다. 단순히 미적 상품으로만 기능하는 '장식'이나 홍보물은 더더욱 아니다. 공공미술은 삶의 장소에 흡수되어 대중과 상호작용하는 미적 촉매이며, 공공의 실제적 참여 아래 생산 가능한 공론의 창구다. 이것이 동시대 공공미술의 정의이고 나아갈 방향이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공공미술'에 대한 개념은 '환경조형물' 수준을 넘지 못한다. 환경조형물이 공공미술이고 공공미술이 곧 환경조형물이다. 건물 앞에 멍청하게 서 있는 조각이나 벽화 따위의 조형예술품을 생각하면 된다. 환경조형물의 세계는 코미디다. 건축주는 조형물에 대한 이해와 참여 동기가 부족한데 법은 세우라고 강요하고, 강요된 조형물시장은 저예산 고품질을 내세운 '브로커'들의 놀이터가 된지 오래다. 건축주의 부당한 리베이트와 심의 담합이라는 각종 비리를 포함해 제작비용이 설치비용보다 낮은 시각공해물이 양산되는 것도 결국은 시대흐름에 맞지 않는 법 때문이다. 조형성과 내용을 보면 황당함 그 자체이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만들었을까 싶은 조형물들이 넘쳐난다. 획기적인 아이디어인 냥 기안을 올렸을 사람이나 그게 좋다고 허락한 채 예산까지 집행한 사람들의 머릿속이 궁금해지는 작품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 이상 어떻게 더 요염할 수 있을까 싶은 증평인삼 조형물이나, 엄청나게 큰 '대게'를 들고 있는 남자를 묘사한 영덕 대게 조각, 군위군 대추모양의 화장실 조형물 등이 그렇다. 그래도 이들은 1천억 원을 들여 부산판 자유의 여신상을 만들겠다는 부산광역시나 이벤트에 불과했던 역사를 되도 않을 정체성으로 둔갑시킨 소양강 '마릴린 먼로' 조각(강원도 인제), 엽기적인 신체절단물에 가까운 싸이 '말 춤' 조각(서울시 강남구) 보다는 낫다. 대게 조각은 너무 거룩한 나머지 어이없는 웃음을 주고, 인적 없는 공원에 19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설치했지만 아무도 찾지 않는 대추탑과 대추화장실조형물은 무모한 발상과 측은한 결과에 왠지 모를 숙연함부터 앞서기 때문이다. 최근 선보인 인천공항 조형물도 비판에서 피해갈 수 없다. 제2터미널 진입로에 세워진 이 20억 원짜리 황금조형물은 지난 2016년 발표된 인천국제공항 신청사 공공조형물 당선작으로, 가방을 매고 끄는 남녀가 마주치듯 걷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문제는 덩치만 클 뿐 특별할 것 없는 시각에다 깊이 없는 작품성, 주변공간과 조화롭지 못한 황금색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유명 작가인 자비에 베이앙의 스타일과도 겹친다는 것 역시 지적의 대상이다. 특히 문화적 지평으로서의 공공미술로는 한계가 있어 최종 심사 당시 심사위원 다수가 설치에 이의를 제기했음에도 그대로 진행되었다는 점은 논란의 불씨로 남아있다. 조형물이 공공미술로써 역할하려면 익명의 대중이 어떠한 문제와 사안에 대해 직접 말하는 주체여야하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억과 쟁점이 교차하는 사회적 소통의 매제가 되어야 한다. 미술이라는 언어를 통해 사회적 담론의 기제로 기능해야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줄곧 공공미술로 편입되어 온 한국의 '환경조형물'에는 실제 사람이 없는 대신 대상화된 타자와 시각적 지배문화만 존재한다. 공동체에 의견을 묻고 협업해야 하며 '더 나은 삶을 위한 비전'을 제시해야 하지만 문화적 권위에 기댄 폭력성만 부유한다. 그런데 그처럼 폭력적인 작품이 전국에 1만 5천개나 있다. 황당한 조형물만큼 황당한 현실이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18-01-07 11:39:20 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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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생존의 값

술 한 잔 마시지 못하는데다가 온전히 작품 이야기에만 몰입할 수 없는 '뒤풀이'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부담되는 시간이다. 하지만 세상사 내 뜻대로만 되지 않듯 가끔은 그 부담스러움을 이겨내야 할 때도 있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마침 저녁 먹을 시간도 된데다 부득불 같이 가자는 지인의 청도 있고 해서 어찌어찌 하다 보니 주요 미술행사 뒤풀이에 참석하게 됐다. 덕분에 전시만 보고 귀가해 모처럼 발 뻗고 자려던 본래 계획은 어그러졌다. 뭔 밥집이 그리 멀고도 먼지, 유독 걷기 싫어하는 두 다리를 애써 위로하며 지인의 뒤꽁무니를 한참이나 좇아 찾아간 식당은 한눈에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았다. 분위기가 남다른 것이 분명 자주 가던 'OO천국'이나 'OO나라'와는 격이 달랐다. 안내한 공간에 들어서니 이미 기업 경영주를 비롯해 미술계에서 나름 내로라하는 이들이 모여 있었다. 미술에 대한 가치관과 구조를 바라보는 시각이 워낙 달라 깊이 있는 대화까진 나눠본 적 없지만 좁디좁은 미술판이기에 평소 안면은 트고 지내는 사람들이 다수였다. 데면데면한 공기가 썩 기분 좋은 것은 아니었으나 밥만 먹고 가자는 생각에 인내하며 서둘러 식사가 나오기를 고대했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차려졌다. 때깔도 좋은 것이 가짓수까지 많아 임금님 진지상이 이럴까 싶을 만큼 잘 꾸려진 밥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혹시나 싶어 살짝 엿본 가격도 매우 비쌌다. 이제 숟가락을 들고 입에 넣기만 하면 되는 상황. 헌데 문득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건 바로 작가들은 생계를 고민하는 현실에서 정작 본인들이 제외된 채 이처럼 잘 먹고 사는 현실이 과연 옳은가라는 자문이었다. 왜냐하면 참석자 대부분이 작가들의 작품을 매개로 살아가는 이들이었던 탓이다. 더구나 불과 한 시간 전만해도 당장 그림 한 점을 팔지 못해 민생고를 염려하던 작가들을 만났고, 다 잘 될 것이라고 위로했다. 그런데 몇 십분도 지나지 않아 식사 한 끼에 어지간한 봉급쟁이는 엄두도 못 낼 가격대의 밥을 먹는다는 것은 양심상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가 지불할 밥값은 작가들 '생존의 값'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작가들의 환경과 교차되던 화려한 식사도 신경 쓰였지만 같은 자리에 있던 미술인들의 럭셔리 코스프레 자체도 못마땅했다. 비록 일부에 해당되는 사례겠으나 가난하기로 따지자면 예술 장르 중 1-2위를 다투는 미술계 종사자들이 마치 매일 수라상이라도 받는 듯한 모양새는 그야말로 목불인견이었고, 설사 이것이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라면 구조자체가 정상이라 할 수 없었다. 특히 미술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재벌가 관계자들이 소싯적 백일장 타령을 하며 아는 척하는 것도 모자라, 그 되도 않을 얘기에 박수쳐주는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불쌍한 자세도 자리에 머물지 못하도록 했다. 그 눈꼴신 장면을 보지 않으려면 밥이고 뭐고 서둘러 일어나는 게 상책이었다. 결국 못 참고 식당에서 나왔다. 며칠 뒤 혹자에게 이 얘기를 전했을 때 그는 현실을 부정한 자격지심이거나 열등감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 자격지심일 수 있다. 내가 이해하는 현실과 그가 말하는 현실 간 격차가 존재함도 알고,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이 곧 사람대접의 기준임을 모르지도 않는다. 열등감이라 해도 할 말 없다. 허나 그게 뭐든 체질상 안 되는 건 그냥 안 되는 거다.

2017-12-10 13:24:54 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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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관심 절실한 미술매개자

매해 주요 언론이나 전문지 또는 협회·기관에선 정기적 혹은 비정기적으로 신진 미술평론가를 공모, 선정한다. 하지만 선정된 평론가가 동일계에 온전히 안착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름만 그럴싸하게 '미술평론가'이지, 실제론 많은 이들이 언제 등단했는지도 모를 만큼 기억 속에서 빠르게 사라지고 말며, 상의 후광은 그리 길지 않다. 일례로 몇 해 전 모 협회에서 미술평론상을 수상한 한 젊은 평론가는 현재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 대체로 평론은 미술전문지들이나 언론매체, 전시기관들과 미술단체의 청탁·기획에 의존하는데, 그는 그 어느 곳에도 접근하기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어가던 평론저널과 몇몇 학술지에서의 활동 역시 민생고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능력이나 역량을 가늠할 기회조차 쉽게 주어지지 않고, 빈곤한 삶을 잇는 건 기획자들도 마찬가지다. 과거 필자가 잡지 편집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한 큐레이터는 지면을 통해 "큐레이터는 대부분이 고학력자이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보다 못한 월급을 받으면서 누구보다 많은 시간 업무에 매달려야 한다."며 "미술생태계에서 대부분 '을'의 역할을 하는 계약직 회사원"이라고 토로했다. 우리나라에는 자칭 타칭 수백여 명에 달하는 이들이 '미술평론가'라는 직함을 새긴 명함을 들고 다니지만 생존에 대한 고민 없이 오로지 평론만 하는 평론가는 숫자와 무관하다. 기획자들의 형편도 매한가지다. 무대는 빈약하고 딱히 비중 있는 위상도 주어지지 않기 일쑤다. 실제로 한국에선 꽤 많은 기획자가 배출되고 있으나 그 인력과 지성이 효율적으로 활용되는 창구는 협소하다. 직업으로써 신분을 유지하기란 무척 어려울 뿐더러, 어찌어찌 지원금을 받아 전시를 꾸린들 생활의 고통을 극복하긴 요원하다. 아니, 제 돈까지 넣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데에는 전문성 부재가 일차적 원인이다. 자신만의 시각이 희미한 기획과 글을 양산하거나 동시대미술의 흐름과 경향을 읽지 못하는 것이 한 예다. 이중 평론의 경우 사고의 확대와 새로운 층위의 담론형성이 불가능한 함량 미달의 글을 뽑아 등단시키는 시스템도 문제로 지적된다. 공모라고 해봤자 대부분 지원자는 손가락에 꼽아 애초 변별력이 낮다. 그러나 재능 있는 인재를 육성하지 못하는 구조야말로 그들의 좌초를 가속화시키는 가장 큰 배경이다. 수준 있는 논제와 전시를 발표해온 평론가와 기획자들이 아예 없진 않음을 고려한다면 그들이 적절한 의제설정자로 위치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데 현실은 엇박자를 그린다는 것이다. 미술계에선 작가 못지않게 열악한 연구 환경 및 노동에 대한 대가가 얇은 미술매개자들에 대한 보호 장치가 필요함을 내외적으로 꾸준히 요구해 왔다. 이에 인천아트플랫폼이나 금천예술공장 등, 일부 지자체 산하 기관은 이론과 기획자들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특히 문광부는 '국제문화교류 전문인력 양성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예술 전문기획자를 해외에 파견하는 프로그램도 구동 중이다. 하지만 아직까진 담론생산자로 자리매김하는 데에는 불충분하다. 글을 쓰거나 전시기획으로 먹고 산다는 건 여전히 아득하다. 예술창작의 사회적·문화적 가치증대와 선순환의 중요성을 이해한다면 미술매개자들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들의 관심 또한 보다 깊어져야 한다.

2017-11-26 11:19:59 김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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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어느 화랑주인의 행보

미술계는 작가들이 있기에 구동된다. 현실적인 측면도 그렇다. 그들이 작품을 만들거나 전시를 하게 되면 화방은 물론, 액자집, 도록제작업체, 운송을 업으로 하는 이들이 수입을 얻는다. 큐레이터, 평론가 등도 작가들이 존재하기에 민생고를 해결할 수 있고 직업의 의미와 역할도 강조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선 미술관 및 화랑, 창작공간들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직업이 교차하는 장(場)이지만 그들에게도 작가들의 비중은 매우 크다. 창작자들이 생산하는 작품 없이는 좋은 콘텐츠도, 전시도, 공간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작가들은 창작활동 자체만으로도 주변을 살린다. 그러나 정작 작가들은 늘 생존의 고비를 넘나든다. 주는 만큼 받는 구조가 아닌 탓이다. 물론 교류의 결이 반드시 흑백으로 구분되진 않는데다 각자의 기여도가 다르지만, 시쳇말로 작가들 때문에 먹고 살면서도 그들에게 환원해야 한다는 인식이 희박한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그 많은 화랑 가운데 소위 메이저라 불리는 화랑들 또한 작가들에 대한 인심이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다. 매해 수십 내지는 수백억 원의 매출을 올리면서도 그들을 위한 지원은 그리 가시적이지 않은 탓이다. 이런 현실에서 몇 해 전 문을 연 '서울예술재단'의 행보는 눈에 띈다. 40여 년 동안 '표갤러리'를 운영해온 표미선 대표는 작가들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고 창작 의욕을 고취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한 끝에 지난 2015년 신문로에 '서울예술재단'을 설립했다. 2009년부터 6년간 한국화랑협회장을 지내며 직접 보고 느낀 열악한 미술환경을 개선하고 미술향유 인구 확산을 위해 사재 10억 원을 출연해 만든 비영리법인이다. 이제 3년의 역사에 불과함에도 서울예술재단은 작가와 콜렉터, 비평가, 기획자 간 상호교류를 도모하는 플랫폼으로서의 구색을 빠르게 갖춰가고 있다. 누구나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도록 재단을 사랑방처럼 꾸몄고, 후원자들과 미술계 구성원들이 자연스럽게 마주하게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이 중 신진작가 및 기획자들을 대상으로 한 '포트폴리오박람회'와 '전시기획자박람회'는 호응도가 높은 핵심 프로그램이다. 전문가 리뷰와 심사를 곁들인 '포트폴리오박람회'는 잠재력과 가능성을 갖춘 작가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 당시부터 시행해온 인재육성 프로그램이다. 올해 초 시작된 '전시기획자박람회'는 취약한 환경에 놓인 매개자 발굴을 위해 마련한 무대다. 이 두 행사는 창작비와 전시를 동시에 지원해 '기회'가 부족한 젊은 작가들과 기획자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허나 표미선 대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최근 평론가와 중견작가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방안을 또 다시 모색하고 있다. 비평집 발간과 중견작가 컬렉션이 그 예다. 혹자는 서울예술재단을 놓고 화랑 특유의 상술이 '재단'이라는 그럴싸한 옷을 입은 게 아니냐는 오해를 한다. 돈 많은 이가 벌이는 여가(餘暇) 쯤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없진 않다. 하지만 화랑업을 그만두었을 때 일생을 함께한 미술계에 무엇을 어떻게 환원할 수 있을까에 관한 표 대표의 고민은 진중하다. 그 진중함이 침실전문 유통회사인 '이브자리'를 비롯한 지인들의 도움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배경이다. 표 대표의 행보는 적어도 대가 없는 부의 이전에나 골몰하는 모습들과는 색깔이 다르다. 그리고 이 다른 색깔은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할 이유다. 관심을 가져야 서울예술재단과 같은 '이로운' 공간들도 늘어난다.

2017-11-12 14:27:55 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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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잠잠할 날 없는 부산비엔날레

임동락 전 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장이 지난 19일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올해 4월 연임에 성공한지 불과 6개월 만이다. 임기도 1년 이상 남았다. 하지만 작가들에게 지급된 작품보수비를 되돌려 받았다는 '국·시비 보조금 횡령' 의혹은 결국 그를 불명예 퇴진으로 내몰았다. 부산비엔날레의 명성에 흠을 남긴 임 전 위원장의 퇴진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오래 전부터 바람 잘 날 없는 부산비엔날레라는 시선의 중심에 서 있어 왔기 때문이다. 일례로 임 전 위원장 운영체제에서 부산비엔날레 진두지휘한 윤재갑 전 2016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현 중국 하오아트 뮤지엄 관장)은 지난 2월 임 전 위원장의 전횡을 폭로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사퇴를 촉구했다. 당시 윤 감독은 언론에 배포한 자료를 통해 "임동락 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장은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도 안 되고, 절대 해서도 안 되는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며 "임 위원장 때문에 독립성과 공공성이라는 부산비엔날레의 기본 원칙과 존립 근거가 모두 파괴됐다."고 주장했다. 자료에는 직원들에 대한 폭언과 인격비하 외에도 위원장이 작가 섭외 명목으로 외국 출장을 다니고 직접 작가들을 선정했다는 주장도 들어 있었다. 감독의 고유권한인 작가선정에 개입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 방법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윤 전 감독에 의하면 임 전 위원장은 전시감독의 공식 메일에 몰래 들어가 어떤 상의도 없이 자신이 원하는 작가에게 공식 초청 레터를 발송했다. 그리고 해당 작가는 그 해 전시에 참여했다. 이밖에도 임 전 위원장은 수영강변 조각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설계도만 보고 뻥튀기 한 니콜라스 쉐퍼(프랑스, 작고)의 작품을 설치해주는 대가로 수영구에 위치한 고려제강에 거액의 기부금을 요구해 진위 및 가치 논란과 함께 권한 남용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뿐 아니라 단순 통·번역 일에 직계 자녀를 공개채용절차 없이 채용한 후 전문 큐레이터에 맞먹는 급여를 지급해 구설수에 올랐다. '국·시비 보조금 횡령' 의혹은 그 뒤에 벌어졌다. 의문스러운 기증서약서 허위 작성, 기증 작품에 대한 거액의 재료비 지급, 회계 집행과 인사 등의 문제까지 거론하면 2015년 첫 임기를 시작해 약 3년 동안 잇달아 온갖 추문에 오르내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지난 19일 부산지역 11개 문화예술인 단체들은 임 전 위원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부산문화예술인들이 단체행동에 나선 건 비엔날레 전시감독 선임 갈등이 빚어진 2014년 6월 이후 두 번째이다. 임 전 위원장을 둘러싼 부산비엔날레 사태를 바라보는 미술인들은 씁쓸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집행위원장에게 부여된 과도한 권한을 견제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가하면 일부에선 이번 사태를 서병수 부산시장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2월 전임 전시감독이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임 전 위원장에 대한 문제를 공론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재선임시킨 당사자가 바로 서병수 시장이기 때문이다. 잠잠할 날 없는 부산비엔날레를 두고 한편에선 지연과 학연, 코드와 보은에 휘둘리는 지역 환경을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한다. 지역에선 나름 권력 꽤나 지닌 일부 정치권력과 문화권력이 그들만의 울타리를 만든 후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폐쇄적인 문화정책을 주도해 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부산비엔날레 조직위원회가 2011년부터 독립 격년제로 열어 온 '바다미술제'에서 부산 지역 인사들이 주요 자리를 꿰차 왔음을 확인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광주비엔날레와는 달리 부산비엔날레 이사회는 거의 100% 부산인사들로 채워져 있다. 2010년 부산비엔날레에는 부산지역 전시감독이라는 희한한 직책을 만들기도 했다. 보다 지엽적인 '관계성'도 부산비엔날레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에 한 몫 해왔다. 전시 개막을 불과 3개월을 앞둔 시점에서 집행위원장 사퇴라는 홍역을 치른 2014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 선정 파행 사태가 대표적이다. 당시 오광수 집행위원장은 예술 감독 선정위원회로부터 가장 많은 득표를 얻어 향후 부산비엔날레를 이끌 감독으로 선임이 확실시됐던 예정자를 뒤로 물린 채 계획에 없던 '공동감독제'를 고집해 파란을 일으켰다. 절차무시와 보은으로 의심되는 인사를 '끼워 넣기'했다는 의구심은 '보이콧'의 불씨였다. 이처럼 끼리끼리 운영과 독단, 그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희박한 상황에서 부산비엔날레의 방향을 말하는 건 무리다. 폐쇄적인 구조에서 국제전으로서의 위상을 바라는 건 애초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스템에 직접 이의를 제기한 인사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부산비엔날레는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내쳤고 잘라냈다. 그리고 귀담아 듣지 않은 결과는 오늘이 말해주고 있다. ■홍경한(미술평론가·칼럼니스트)

2017-10-29 12:16:06 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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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난해한 현대미술, 어떻게 이해할까

미술자체는 보편적으로 존재해 왔으나 사용하는 미술언어는 지역, 문화, 사회, 역사, 구성원들 간 공통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기에 현대미술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내 눈높이와 맞지 않아도 얼마든지 예술이 될 수 있으므로 관람객이 느끼는 현대미술에 대한 난독은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과거의 잣대를 적용하기 곤란할 만큼 다원화된 시대에서 어떤 게 예술이고 사물인지를 구분하려는 시도는 사실상 효과적이지 못한 결과를 얻기 일쑤다. 무가치한 예술에 이데올로기를 부여해 가치로 둔갑시키는 자들을 비난할지언정 모든 것이 ‘초미적’으로 변해버린 현상까지 부정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예술과 근접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라면 미의 과도함으로 인해 미술의 미적 가치를 판단할 수 없게 되었고 그것이 결국 대중의 무관심에 불을 지핀 예술생태에 허탈감을 느낄 수는 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예술이 있기에 되레 예술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당대 미술은 끊임없이 융합되고 결합되며, 해체되면서 동시에 구축된다. 이것이 진화인지 아닌지, 진보인지 퇴보인지의 여부는 나중의 문제다. 중요한 건 동시대미술은 더 이상 유일성이나 원형, 본질의 가치를 신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고급스러운 것과 저급한 것, 엘리트와 대중 간 거리감의 생성과 층위를 의미 없게 바라본다는 점이다. 예술적 도그마가 살아 숨 쉬던 100년 전과 달리 지금은 절대적인 것도, 시공간의 분별, 역할의 구별조차 무의미하긴 매한가지다. 물론 ‘예술은 세상에 대한 반응’이라는 메를로 퐁티의 주장처럼 오늘날의 미술 또한 인간 삶의 텃밭인 지리적, 역사적, 사회적인 틀에 안주할 수밖에 없지만 예술의 자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움직임은 그 어느 때보다 활동적이다. 국가주의, 통합주의, 전체주의와 같은 획일적 맥락은 더 이상 인정받지 못한다. 그리고 이 탈주의 맥락에는 공동체의 의식을 반영한 제도, 상품, 자본, 노동 등 인간 삶을 지배하고 포획하는 모든 것이 포함된다. 다만 원본과 복제가 구별되지 않는 영역을 숙주로 삶과 이미지가 복잡하게 교차한 채 지도가 영토에 선행하는 상황에서도 예술주체의 평등화는 꽤나 흥미로운 지점이다. 실제로 동시대미술에서 관람객은 겉으로나마 작가와 동일한 위치에 서길 요구받는다. 그들은 예술가로부터 이양된 예술행위와 가치구분의 당당한 중심이지 변방이 아님이 강조된다. 최소한 이전과 전혀 다른 미적 경험을 창출하는 주어임엔 틀림없다. 이처럼 오늘날의 미술은 타자의 개입과 개방성, 다양한 스토리가 내재된 각기 다른 군도의 공존적 집합 아래 다양하게 겹쳐지며 통합이 아닌 차이를 이어나간다. 선을 넘나드는 탈경계화와 융복합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과 새로운 모더니티를 창출하는 것에 방점을 둔다. 심지어 지금으로부터 약 반세기 전 모더니즘이 온 유럽에서 창궐할 당시 예술가들이 주안점을 두었던 재현과 구현의 대상인 현실은 물론, 오랜 시간 인식을 지배해온 이성과 진리조차 하나의 알고리즘으로 본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후기구조주의로 대변되는 탈근대, 즉 모더니즘의 이름으로 갖춰진 온갖 형태로부터의 일탈이자 오늘날 미술의 또 다른 모습이다. 예술의 역사상 그동안 매우 중요하게 다뤘던 형식은 이제 미적 경험의 우위에 서지 않는다. 미적체험의 가능성까지 스스로 획득하는 시대에서 형식이란 그저 새로운 예술적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과 개체별 삶이 투사된 미적 경험의 연속성을 복원하기 위한 시도에 머물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양태를 고찰하는 것이야말로 동시대미술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2017-10-15 13:20:31 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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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거꾸로 가는 '광주비엔날레'

[홍경한의 시시일각] 거꾸로 가는 '광주비엔날레' 아트선재센터 관장을 지낸 김선정 씨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딸이자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의 부인이다. 소위 재벌가 출신의 인사이다. 미술계 일부에선 귀가 닳게 '화려한 네트워크', '국내 최고 아트파워' 등의 수식어로 치켜세우는 공인이다. 그런 그가 지난 7월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재)광주비엔날레재단 이사회는 광주문화예술계와의 연관성, 폭 넓은 네트워크, 전문성, 경영능력 등을 선임 배경으로 꼽았다. 명실 공히 동시대미술의 최전선을 다루는 국제행사의 전권을 쥔 셈이다. 흥미롭게도 김 대표는 자리에 앉자마자 유례없는 논란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됐다. 첫 번째는 김 대표의 '연봉 포기' 소식이었다. 10년 이상 국고를 지원받은 행사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국제행사일몰제'에 광주비엔날레가 포함되어 예산이 삭감되자 연봉을 받지 않겠다고 시(市)에 통보했다는 것이다. 김 대표의 연봉은 1억 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분명 선의였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연봉 포기 소식을 접한 미술계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필자 역시 긍정과는 거리가 있었다. 예산부족이 문제라면 방만한 부분을 정리하고 내실을 기하는 게 옳지, 새로운 형태의 '재능기부'는 적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급여를 받아야 생활할 수 있는 구성원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발상이었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에 취약한 미술계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더구나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했다면 아름다웠을 미담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감동적인 희생'은 다소 신파적으로 변질됐다. 윤장현 광주광역시장은 지난 7월 한 언론과의 대화에서 김 대표를 가리켜 "실력은 물론 행사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개런티까지 포기하는 인성을 갖춘 인사"라며 한껏 칭찬했다. 김 대표가 연봉 포기를 제안하더라도 적극 반려해야할 사람이 되레 인성 운운하며 정책적 자찬을 늘어놓은 것이다. 연봉을 포기하지 않는, 아니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인성은 대체 어떤 인성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결과적으로 좋지 않은 학습효과를 남긴 김 대표의 연봉 포기에 이어 최근엔 광주비엔날레재단이 또 하나의 이슈를 제공했다. 바로 재단 대표이사인 김 대표에게 사실상의 예술총감독까지 맡겼다는 사실이다. (재)광주비엔날레는 지난 11일 다수 큐레이터제를 도입하고 민주·인권·평화의 거점으로서의 광주를 재조명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제12회 광주비엔날레 기본 구상안'을 발표했다. 사상 처음으로 재단 대표이사가 총괄 큐레이터를 겸임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한국 비엔날레 역사상 경영 수반인 재단 대표가 사실상의 실무 책임자인 예술총감독까지 겸한 사례는 없다. 일본 후쿠오카 트리엔날레처럼 학예실에서 관장하는 국제행사는 있어도 견제 부실과 권력집중을 우려해 일개 개인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하진 않는다. 세계 유수의 비엔날레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로 카셀 도쿠멘타의 대표이사 아네트 쿨렌캄프(Annette Kulenkampff)는 얼마 전 대표이사의 역할에 대해 묻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대표이사는)도쿠멘타가 성공적으로 열리기 위한 모든 조율에 관여한다고 보면 된다. 단, 예술적인 부분은 전적으로 예술 감독에게 책임이 있다." 경영과 전시, 디렉터와 큐레이터 등은 각자의 역할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지며 분리를 통해 균형을 이루는 것이 발전 동력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광주비엔날레는 김 대표에게 인사권과 예산권은 물론 전시기획의 권한까지 모두 넘겼다. 광주비엔날레는 개인의 것도, 재단의 것도 아니다. 광주만의 것은 더더욱 아니다. 대한민국의 것이고 국민의 것이며 우리 모두의 것이다. 지금까지 쏟아 부은 수백억의 세금만 해도 그렇고, 한국이 낳고 기른 아시아 최초·최고의 비엔날레라며 상찬해마지 않았던 기록과 역사만 봐도 그렇다. 행여나 광주비엔날레가 온전히 자신들 것이라는 오판을 하면 안 되는 이유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광주비엔날레는 거꾸로 가는 듯한 인상이다. 그 어느 때보다 '광주'라는 지역성에 함몰되는 듯한 설정도 그렇고, 특정인에게 모든 권력을 몰아주는 것도 그렇다. 설사 개인과 장소가 매우 특출하거나 특정적이라도 개인과 지역은 단지 발화의 동기이자 에너지이지 전부가 아님을 망각하고 있다. 결은 다르지만 내년도 비엔날레 주제로 경계와 지정을 넘나드는 '상상된 경계들'(Imagined Borders)이라는 철지난 화두를 꺼내든 것 또한 역류의 증거다.

2017-09-17 13:11:27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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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휴식 없는 삶

[홍경한의 시시일각] 휴식 없는 삶 '강원국제비엔날레 2018' 사무국이 위치한 춘천까진 자동차로 왕복 5시간 가까이 걸린다. 원체 멀기도 한데다 최근 교통량이 부쩍 증가한 춘천-양양 간 고속도로를 관통해야하는 탓이다. 그래도 주말이나 휴가시즌보단 낫다. 지난여름 경험해보니 출발시간은 있어도 도착시간은 없더라. 많은 시간을 도로에 저당 잡힌 채 새벽에 출발해 깜깜해진 이후에야 귀가하는 일상의 반복은 에너지를 고갈시킨다. 정신과 육체의 건강에 이롭지 않다. 때문에 의욕과는 달리 집에선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모든 물리적 여백을 소진한 후 남는 건 오로지 황금 같은 주말에 대한 기대와 '휴식'에 대한 염원뿐이다. 그러나 주말인들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휴일엔 휴일대로 또 다른 일들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건 간혹 업무의 연장이거나 개인적인 상황들로 채워진다. 어쩌다 생기는 공백 역시 내 몫과는 거리가 멀다. 문자와 전화는 평일과 휴일을 구분하지 않으며, '카톡'이나 페이스북 메신저 또한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댄다. 별 시답잖은 내용으로 새벽에 전화해 불운한 긴장감을 조성하거나 감옥 같은 '단톡방'에 밤낮 구분 없이 초대되는 예도 적지 않다. 이 가운데 어떤 이의 발화로 시작된 카톡 수다는 거의 재앙에 버금간다. 탈출하자니 티가 나는 바람에 괜스레 언짢게 할까 싶고, 끝없는 주절거림을 넋 놓고 보자니 이 귀한 시간에 뭐하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그야말로 갈등과 고통의 씨앗이다. 최악은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온 불청객으로 인해 뜻하지 않은 관광가이드 역할까지 맡는 경우이다. 강화도에 4년 가까이 살고 있지만 사실 난 강화도에 대해 잘 모른다. 5000원이면 볼 수 있는 작은영화관이 있다는 것도 근래에 알았고, 그 유명하다는 마니산, 고인돌엔 근처도 안 가봤다. 당연히 맛집 따윈 알 턱이 없다. 하다못해 바로 옆집인 미술관과 박물관도 있다는 것만 인지하고 있을 정도다. 그런 이에게 가이드란 게 말이 되나. 하루라도 조용한 곳에서 쉬고 싶다는 욕망이 서울을 떠나게 했고, 나만의 고요함을 얻기 위해 최소한 하루 300킬로미터를 오가야하는 물리적 부담도 감수했다. 하지만 세상사 어느 하나 내 뜻대로 되는 것 없듯, 어쩌면 가장 쉬울 법한 삶의 질을 위한 휴식 또한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이런 현실이 비단 내게만 국한되는 것일까. 아닌 듯싶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다수는 휴식 없는 삶에 지쳐있다. 우린 모두 한시도 휴대폰을 놓지 못하는 노모포비아에 가깝고,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그 짙은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상대에 대한 역지사지를 바라면서도 원만한 사회적 관계를 위해 눈치 봐야하는 상황들도 숱하다. 소통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배려 없는 행태들에 익숙해져야만 하며, 공동체 내에서 살아가기 위해 혹은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쉼을 반납하는 입장에도 서투르지 않아야 한다. 이런 현실에선 어쩌다 맞는 여유로움은 무기력하게 느껴진다. 잠시 멈춤은 되레 밀려남으로 자각된다. 경쟁과 성취, 초조함과 조바심, 강요되는 공감 아래 쉬면서도 움직임을 필요로 하는 순간으로 메워진다. 허나 이 모든 것은 삶의 질과 발전을 저해한다. 생의 즐거움을 잃어 가는 삶을 부추긴다. 휴식은 일보다 중요하다. 사람들은 일하기 위해 쉬기보단 쉬기 위해 일한다는 게 옳다. 휴식이야말로 삶의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덧댈 수 있는 시간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 있는 삶이다. 베로네제의 '가나의 결혼식'(1562~1563)이나 르누아르의 '보트 파티에서의 오찬'(1880~1881)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나와 가족을 돌아볼 수 있는 작은 기회가 요구될 뿐이다. 이에 국가는 정치, 제도, 법률을 통해 휴식 있는 삶을 권장해야 한다.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에서 개인은 이룰 수 없는 이상이다. 다행히 청와대는 지난 8월 청와대 직원의 연가사용 활성화 및 초과근무를 축소하도록 하는 등, 정부기관을 중심으로 '휴식 있는 삶'을 선도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아직 구체적 방안은 나오지 않았지만 노동의 권리 못지않게 휴식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의지와 문제의식을 담았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왜냐하면 휴식 없는 삶을 산다는 건 인간답게 사는 게 아님을 인식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2017-09-03 14:47:21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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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부담스러운 뒤풀이 문화

[홍경한의 시시일각] 부담스러운 뒤풀이 문화 10여 년 전, 한 지인의 모 미술상 수상을 기념하는 뒤풀이에 휩쓸리듯 참석한 적이 있다. 오랜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겠다, 부어라 마셔라 할 것이 뻔해 솔직히 처음에는 어떻게든 가지 않으려 갖은 '꼼수'를 부렸다. 그러나 인정(人情) 탓에 결국 자리 하나를 턱하니 차지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몸과 정신이 분리된 채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 참으로 곤혹스러운 시간이었다. 다들 몽롱한 상태에 젖어들었는데 알코올 알레르기가 있는 나 홀로 또렷한 정신으로 멀뚱거리자니 일각 여삼추(一刻 如三秋)요, 잔뜩 취한 누군가가 다가와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얘기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려주던 상황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히 지루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한참 지나서야 자리가 파했고, 난 비로소 해방됐다. 빼앗긴 주권을 다시 찾기까지 36년이라는 긴 세월을 이겨낸 광복의 기쁨이 이런 것일까 싶을 정도로 되찾은 자유로움이 주는 만족감은 컸다. 그러면서 그날의 기억은 잡지 마감하랴, 강의하랴 기타 등등 여러 일로 인해 자연스럽게 잊혔다. 며칠 후, 그 지인으로부터 참석해줘 고맙다는 전화를 받았다. 늘 그렇듯 이런 저런 대화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날의 고통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심지어 머리카락이 희한하다는 이유로 어떤 덜떨어진 교수에게 멱살까지 잡힌 봉변마저 함구했다. 술에 취하면 거름 밭의 돼지로 돌변하는 사람을 친구로 둔, 억세게 운 나쁜 자신에게 놀랄까 싶었기 때문이다. 아니, 정작 놀란 건 나였다. 시상금으로 받은 거액을 그날 뒤풀이 비용으로 모두 소진했다는 것이 그랬고, 덕분에 아내한테 온갖 잔소리는 다 들어야했다는 후일담이 그랬다. 그의 아내는 작업하는 남편과의 삶을 숙명처럼 여기며 살아온 이였는데, 그런 그가 화를 냈다는 건 상서롭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후문으론 뒤풀이로 시상금을 탕진한 그날 이후 부부의 가치관은 '자식들 때문에 산다'로 변했다고 한다. 한참이 지난 일화지만 다시 꺼낸 이유는 단순하다. 아무리 봐도 그때나 지금이나 미술계 뒤풀이 문화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것. 실제로 지금도 매주 수요일 사간동이나 인사동에 가면 인근 식당과 주점에는 미술인들로 넘쳐난다. 그림이 팔릴지 장담할 수 없음에도 끝까지 남아 뒤풀이 비용을 대는 또 다른 10여 년 전의 지인 같은 이들도 만날 수 있다. 어느 동네든 전시가 열리는 첫날의 풍경은 온 나라가 대동소이하다. 문제는 이처럼 미술계 관습처럼 여겨온 먹고 마시기식 뒤풀이 문화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전시 작가가 모든 것을 부담하는 관행 역시 벗어나야 한다. 혹자는 그깟 밥한 끼 갖고 뭘 그리 야박하게 구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으나, 그게 또 그렇지 않다. 망조 들린 로마처럼 '빵과 서커스'가 넘치는 세상이지만 작가들의 삶은 되레 팍팍해졌음을 고려하면 밥숟가락 하나 더 놓는 것도 녹록하지 않은 탓이다. 생각해보라, 미술인 년간 평균 수입이 600만 원대인데 밥값으로 한 번에 수십만 원에서 백만 원 단위를 지출한다는 게 타당한지. 뒤풀이 대신 작품을 놓고 가볍게 차 한 잔 마시며 진중하게 대화해도 좋고, 작고 알찬 토크나 비평 시간을 공유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수입과 지출이 현격히 불균형한 작가들의 현실을 알고 있다면 뒤풀이 비용을 혼자 책임지게 하는 일은 당연히 없어야 한다. 그나마 미술계 한쪽에선 변화의 물꼬가 조금씩 트이고 있어 다행이다. 작가와 관객이 교감할 수 있는 시간으로 마지막을 장식하거나 아예 뒤풀이를 생략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축하해주러 온 주변 작가들 또한 동병상련의 마음 아래 뒤풀이는 생략한 채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작은 소품을 구입하는 가하면, 어쩔 수 없이 뒤풀이를 하게 되어도 비용은 각자 낸다. 다만 이런 현상이 아직은 보편적이지 않다. 여전히 우리 주변엔 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뷔페식 상차림도 부족해 2차로 우르르 몰려다니며 먹으러 왔는지 작품 보러 왔는지 모를 현상과 쉽게 마주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이 또한 적폐다.

2017-08-20 11:05:04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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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거리 벗어난 '뱅크시', 그 어색함

[홍경한의 시시일각] 거리 벗어난 '뱅크시', 그 어색함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에 위치한 한 갤러리에서 '뱅크시(Banksy)' 작품전이 열리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이 전시는 영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뱅크시의 벽화를 찍은 영국 작가 마틴 불(Martin Bull)의 사진전에 가깝다. 깔끔한 전시장에 내걸린 작품들도 마틴 불의 사진과 뱅크시의 벽화를 실크스크린으로 복제한 것들이 주를 이룬다. 사실 일반인들에겐 낯설 수도 있지만 뱅크시는 영국 출신의 얼굴 없는 아티스트로, 미술계에선 꽤나 높은 인지도를 자랑한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그래피티(graffiti)를 통해 인류공통의 문제들을 도발적이고 풍자적으로 표현해왔다. 불특정 다수가 오가는 '거리'에서 동시대 다양한 사안들을 들춰내며 미술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질문해 온 작가이기도 하다. 나이가 몇 살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명확하지 않은 '익명성'을 무기로 한 그의 거침없는 질문 속에는 불합리한 세계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일례로 장갑차와 무장한 병사들을 포진시킨 그림 'Have A Nice Day'는 살기 위해 죽이거나 죽여야 살아갈 수 있는 합법적 살생의 아이러니를 기호화한 작품이며, 잭 베트리아노(Jack Vettriano)의 그림 '노래하는 집사'를 패러디한 작품은 원자력 폐기물을 비밀리에 매장해온 강대국들의 악행을 알린 작품이다. 뱅크시는 경제대국의 약소국에 대한 침탈, 전쟁포로에 가한 반인권적 처사에 항의하거나 전쟁과 폭력에 항거하는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에 관한 공격도 지속적으로 이어왔다.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그림을 모방한 작품 '나이트 호크'는 우월주의에 빠진 영국을 비꼰 사례이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건설한 가자지구 국경의 한 벽에 그린 '페인트 통을 들고 있는 소년'은 정치, 종교, 민족의 문제를 넘어 평화와 상생을 말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뱅크시의 예술을 상징하는 주요 작품으로 거론된다. 뱅크시의 예술 속에는 자본주의의 폐단과 불평등을 건드리는 날카로운 시선도 들어 있다. 네이팜탄에 놀라 발가벗고 길 위를 내달리던 장면을 촬영한 닉 우트(Nick Ut)의 1972년 사진 '네이팜탄 소녀(전쟁의 공포)' 킴 푹(Phan Thi Kim Phuc)을 맥도널드의 손에 이끌려 걸어 나오는 장면으로 치환하거나, 풍요롭게 식사하는 백인 주위에 굶주린 아프리카 사람들을 배치해 자본주의 체제의 괴이한 공생을 보여준 '소풍', 쇼핑카트에 창을 던지는 인류의 모습을 옮긴 '사냥'이라는 작품으로 현대물질문명을 시니컬하게 다뤘다. 미술의 상업화와 미술의 권위에 대한 조롱 또한 그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이다. 대영박물관과 뉴욕현대미술관에 몰래 걸었던 '원시인 마켓에 가다'와 '토마토 캠벨스프 깡통'은 가짜와 진짜도 구분하지 못하면서 허세를 부리는 미술계의 권위를 비웃는 작품으로 꼽힌다. 지난 2010년 발표한 다큐멘터리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는 '돈에 절어 있는' 동시대미술계를 가장 핵심적으로 함축해 놓고 있다. 이처럼 뱅크시는 부조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세상을 줄곧 고발해 왔다.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설치작품에서 느껴지는 유머러스함 속 날카로운 역설마냥 촌철살인 같으면서도 능청맞은 태도 아래 페이소스로 가득한 세상에 일침을 가했고, 돈과 권력, 신제국주의와 쇼비니즘(chauvinism)에 치우친 세태 및 유무형의 세속적 가치에 속박되어 있는 인간사를 염려해 왔다. 물론 그의 비판적 견해는 미술자체에 대해서도 동일했다. 피에르 만초니(Piero Manzoni)의 1961년 작품 '예술가의 똥'이 자본에 점령당한 예술을 지적했다면 뱅크시는 일련의 작품들로 비릿한 돈에 덧칠된 욕망과 조작되는 미술 생태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즉, 한스 하케(Hans Haacke)가 가난한 노동자를 착취한 돈으로 그림을 구입하는 일부 비윤리적인 명품기업들의 '위선적 돈질'에 야유를 보낸 것처럼 뱅크시 또한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와 같은 작품으로 예술성이나 미학적 가치가 아닌, 돈과 미디어에 의해 예술과 예술가가 만들어지는 구조를 조소했다는 것이다. 뱅크시는 이 모든 것을 주변 환경까지 고려된 그래피티로 담아냈다. 인지와 자각의 넓은 공유를 위해선 온전히 벽화여야 가능했고 벽화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따라서 특정한 공간에서 떼어내 갇힌다는 것은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장소성이야말로 뱅크시 예술의 실체이자 고유한 미술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사진으로 만나는 뱅크시의 벽화란 어색하기만 하다.

2017-08-06 14:07:08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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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자본의 망령과 예술

[홍경한의 시시일각] 자본의 망령과 예술 동시대미술은 다양한 스토리가 내재된 각기 다른 군도의 공존적 집합을 불러들여 새로운 관계를 맺고 통합이 아닌 차이를 잇는다. 장르, 학제 간 경계조차 무의미한 연속적 개입과 침투를 고의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예술의 의사소통 방식과 내용, 형식을 담보한다. 그리고 그 자체로 이전과 전혀 다른 미적 경험을 유도하거나 낯선 예술적 체험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런 작업들은 시각적, 개념적 어려움을 양산하는 탓에 가끔 외면의 대상이곤 하지만 누군가에겐 삶의 과정과 연관된 기억과 경험을 소환 혹은 복원하는 계기로 작동한다. 이전엔 알 수 없었던 상호성을 체득하는 자유로움의 장이자, 예술가들에게 그 무대가 갖는 의미는 미술자체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미술인들은 간혹 예술이라는 언어의 육화된 의미를 배척하는 지점에서 깨어나는 자본의 망령들에게 한없이 너그러워지기도 한다. 다만 이 기괴한 상품가치로서의 망령들은 다른 군도의 공존적 집합을 잘못 해석한 결과이기 일쑤다. 어쩌면 척박한 생태를 핑계 삼은 내적 게으름과 안일함이 무의식을 뚫고 태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숨이 턱턱 막힐 것 같은 불안한 현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제도적 체념, 생존의 절박함도 상품으로써의 망령이 활개 치는데 한 몫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다양한 모습과 이름으로 변신한 채 이내 현세를 지배하는 자본의 망령은 생각보다 잔인하다. 어떤 합당한 명분에도 냉정한 태도를 내보인다. 이성과 논리, 특유의 감성을 삭제시키고 불특정 다수의 지지 속에서 헛헛한 욕망을 사육한다. 급기야 정신을 포박하고 야금야금 예술가들의 생명까지 갉아먹는다. 실제로 자본의 망령은 철학적 빈곤함이 부유하는 것들, 숫자만 늘여놓아 애써 먼 길을 찾아간 이들을 맥 빠지게 하는 것들을 내놓도록 만든다. 단지 철지난 양식들을 발작하듯 재연하거나 과거의 형식을 마구잡이로 뒤섞어 놓은 것들, 깊이 없음을 뻔뻔하게 자인하는 결과물을 토해내도록 유도한다. 심지어 예술의 종말을 통해 예술이 비로소 자유를 획득했음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들마저 마구잡이로 생산한다. 한마디로 그 어떤 가능성도 인정되는 시대에서 놀랍도록 진부하고 획일적인 것들을 내건다. 결국 자본의 망령은 곧 소진해버릴 물질을 선물하지만 예술의 근본적인 역할과 기능에 대한 미학적 감수성을 거둬들이고 구태의 반복, 새로움에 대한 외면에 지속성을 부여한다. '내가 이러려고 미술가가 되었나'라는 뒤늦은 후회를 비웃으며 조변석개하는 소비취향이 권력임을 자인케 한다. 그럼에도 혹자는 이와 같은 현상을 '놀이'로 대응할 수 있고 놀이의 성과로 휘발성 강한 팬덤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놀이란 실은 공유될만한 자기연민과 실패를 그럴듯한 변명 아래 정당화하는 방어기제이거나, 잘해봤자 기형적 제도를 살짝 비트는 수준일 뿐이다. 본질의 변화는 그 정도로 이뤄지지 않는다. 예술가가 신뢰할 수 없는 대중적 속성에 삶을 의탁한다는 것, 경박한 자본주의에 몸과 정신을 떠맡기면서도 잘못되었음을 느끼지 못함은 결국 예술작품에 내재된 고유한 역할이 어떻게 성공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가에 관한 고민의 결여를 완성한다. 예술본질의 추구를 멀리하며 단발성 풍요로움에 삶을 할애할수록 우리가 그토록 지키려했던 예술가적 권위는 무너진다. 허나 작금 한국 미술계에서 엿보이는 일련의 흐름은 음습하고 괴기한 저택을 빠져나와 먹잇감을 찾아 배회하는 자본의 망령들에게 좋은 숙주가 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자박으로 인한 일시적 안락함과 물질을 얻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내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2017-07-09 11:41:29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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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베니스비엔날레와 동네미술제

[홍경한의 시시일각] 베니스비엔날레와 동네미술제 '물의 도시' 베니스에서는 현재 제57회 베니스비엔날레(5.13~11.26)가 한창이다. 전시를 보기 위한 미술인들의 대이동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베니스비엔날레를 돌아 본 필자도 그 중 한 명이다. 하루에 20킬로미터 이상을 걸어야했을 정도로 고된 여정이었으나, 예전엔 잘 보이지 않던 특징들을 보다 명료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는 건 나름의 수확이었다. 1895년 이탈리아 국왕 부처의 제25회 결혼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베니스 시(市)가 창설한 베니스비엔날레는 120년이 넘는 역사만큼이나 다양하고 오래된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과거 파리박람회의 운영 방식을 차용해 국가관과 주제전(현대미술전)이 양립한다는 점이다. 1960년대 중단됐다 1986년 부활한 수상제도 역시 여타 비엔날레와의 차이다. 1907년 이후 10만평에 달하는 카스텔로 공원(Giardini di Castello) 내에 둥지를 튼 영구국가관과 수상제도는 국가 경제력에 의한 '반(反)예술평등'을 자극하고 '미술이 올림픽이냐'는 비아냥거림의 이유이기도 하지만, 각 문화예술 강국을 중심으로 한 미술흐름과 경향을 엿볼 수 있다는 장점을 동시에 지닌다. 미술의 순수성을 설파하는 듯싶지만 사실상 정치와 자본, 권력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도 국가관이 내재한 흥미로운 지점이다. 반면 총감독의 예술적 지향점에 의해 자유롭게 전개되는 주제전(장소는 폐공장인 아르세날레(Arsenale)로, 이곳에도 국가관이 있다. 영구국가관에 터를 잡지 못한 국가들이다)에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예술적 필요들을 전략적으로 보여준다. 지역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인사들의 참견이나, 지자체의 예산으로 지역에서 열리니 주제, 수준 고려 없이 지역 작가들을 무조건 참여시켜야 한다는 한국식 억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 인종을 넘어 오로지 동시대미술이 언급해야 할 이슈는 무엇인지가 핵심이다. 베니스비엔날레의 두 번째 특징은 재정의 30%를 개인 스폰서가 후원한다는 사실이다. 거의 100% 국민세금(국비와 도비, 시비)으로 치러지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문화예술에 대한 기부가 일상화된 유럽에선 충분히 가능한 현상이다. 후원자들은 미술에 대한 지원을 기업과 가문의 자랑으로 여기며 국민들은 그들을 사회적 존경의 척도로 삼는다. 나머지 70%는 일반기금과 자산이익금으로 조달된다. 베니스비엔날레의 세 번째 특징은 비엔날레를 하는지 마는지 시민들은 알지도 못하는 한국과는 다르게 비엔날레가 열리면 도시전체가 미술관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비엔날레 개막과 더불어 도시에는 수십여 개의 위성전시들이 개최되고, 베니스 운하를 포함해 400여개가 넘는 다리 사이사이, 거리와 옛 건축물 곳곳에서도 제한 없는 예술행위들이 펼쳐진다. 베니스비엔날레 네 번째 특징은 현대미술의 변화를 상징하고 공인하는 무대라는 것에 있다. 일례로 베니스비엔날레 설립 당시 주요 목적은 시장 창출이었지만, 미술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차원에서 1960년대 말 상업성은 완전히 배제됐다. 비엔날레에 곁가지로 페어를 갖다 붙여 죽도 밥도 아닌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현재의 우리나라와는 반대다. 예술의 역할에 대한 자문도 베니스비엔날레를 특징짓는 요인이다. 베니스비엔날레는 1972년부터 주제전을 시행하며 인류 공통의 문제에 직접적으로 다가서기 시작했다. 칠레의 자유회복과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독재에 저항한다는 의미에서 전시자체를 통째로 헌정한 1974년 비엔날레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예술이 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선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지자체장의 정치적 성과주의 혹은 지역 미술인들의 헤게모니 장으로 이용되는 경향이 없지 않다. 보편적 참여주의를 내세우지만 알고 보면 자신의 몫을 챙기기에 급급한 소수 문화 권력자들의 그릇된 양태도 녹아 있다. 어쨌든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눈에 띄는 위 몇몇 가지는 베니스비엔날레가 '상파울루비엔날레', '휘트니비엔날레', '카셀도쿠멘타'와 함께 세계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행사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한 배경이다. 완전하진 않아도 15세기 이후 다소 부진했던 문화예술 강국으로서의 이탈리아를 재조명하게 만든 원인이기도 하다. 한편 베니스비엔날레의 역사는 우리에게 비엔날레의 조타가 어떤 방향으로 맞춰져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나침반과 같다. 만약 그 검증된 나침반 위에 우리만의 성격을 얹힌다면 한국의 비엔날레들도 세계 속 문화예술의 리더로 위치하는 게 그리 어렵진 않을 것이다. 물론 비엔날레를 한낱 '동네미술제'로 이해하는 이들에겐 백번 말해봐야 소용없기 일쑤지만.

2017-06-25 12:43:37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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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동물농장' 같은 아트페어

[홍경한의 시시일각] '동물농장' 같은 아트페어 '아트페어'는 미술이라는 이름 아래 펼쳐지는 가장 시장친화적인 행사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 아트페어라 해도 미술관급 작품들이 즐비하다. 단지 시장에 나왔을 뿐, 작품성과 예술의 다양성이 배제되진 않는다. 기획 또한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려 하기 보단 그들의 문화예술인식을 높이기 위한 방향에서 설계된다. 다소 실험적인 작품들도 과감히 선보인다. 심미적인 것도 많으나 메시지에 방점을 둔 작품들을 찾는 것 역시 수월하다. 때문에 유수의 외국 아트페어에선 단순히 작품을 사고파는 마켓이라는 느낌 보단 어떤 가치까지 고려한다는 인상이 크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아트바젤 홍콩(Art Basel in Hong Kong)'이다. '아트바젤 홍콩'은 그저 그렇던 '홍콩아트페어'를 인수한지 고작 4년 만에 아시아 최대의 미술장터로 올라섰다. 성장의 배경엔 '아트바젤 홍콩'을 이끄는 스위스 바젤 팀의 오랜 경험과 무관세 경제자유지구라는 내외적 환경이 놓여 있다. 그러나 치밀한 기획력, 갤러리 및 작가들에 대한 엄격한 심사, 컬렉터와 일반 관람객 간 철저히 분리된 서비스, 스위스 금융그룹 UBS와의 끈끈한 파트너십, 수준 높은 작품, 수십여 개가 넘는 동시다발적인 행사와 관광을 결합한 시너지 창출에 관한 꼼꼼한 전략도 '아트바젤 홍콩'이 세계적인 아시아중심페어로 자리매김하는데 있어 중요한 동력이었다. 그렇다면 동아시아권에서 가장 먼저 아트페어를 출범시킨 우리나라의 사정은 어떤가. 안타깝게도 '아트바젤 홍콩'의 뒤꽁무니만 좇기에 급급하다. 40여개에 달하는 페어가 난립하고 있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기 때문이다. 기획은 차마 '기획'이라고 말 할 수 없을 만큼 참담하고 작품의 질 역시 재고해볼 여지가 충분하기 일쑤다. 대중의 각기 다른 취향을 포섭하기 위한 다양성 따윈 생각하기도 힘들다. 어느 땐 온통 과일가게 같거나 정육점 같고, 또 어느 땐 질 낮은 짝퉁 마블 코믹스(marvel Comics)의 엉성한 무대 같은 여운을 심어주기도 한다. 문제는 아트페어라는 행사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별로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최근 돌아본 한 페어는 거의 '동물농장'이나 '캐릭터 페어'에 가까웠다. 전시장 구석구석 자리 잡은 건 사자, 사슴, 곰, 토끼 등이었고 전시장 한쪽에는 정체불명의 캐릭터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런 공간에서 '아트바젤 홍콩'이나 '메세 바젤(Messe Basel)'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미학적인 작품이나 사회적 역학관계 속 예술의 본질에 질문하는 작품을 만나는 건 사막에서 우물을 발견하는 것만큼 쉽지 않다. 인테리어업자나 상품 생산자라 부르면 딱 맞을 무늬만 작가들이 후기모더니즘을 병풍삼아 예술인 냥 하는 게 전부다. 궁금한 건 어째서 이런 현상이 그 오랜 시간 아무렇지도 않게 이어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장기적 계획 없이 당장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일부 화상(畵商)들의 비사업가적 마인드부터 들여다보게 된다. 그들은 같은 소비재라도 예술은 결이 다르다는 것을 외면한 채 최소한의 소명의식도 내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작가들에게 돈을 거둬 페어에 참여하는, 땅 집고 헤엄치기 식 일부 영업갤러리들의 행태까지 보인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사고가 꽤나 세련된 '아트비즈니스적'인 것으로 착각한다. 또 하나의 이유는 생존의 낭떠러지로 내몰린 작가들의 상황이다. 작품을 팔지 않으면 도무지 먹고 살기 힘든 작가들에게 아트페어는 유일한 출구다. 그러니 뭔가 좀 팔린다 싶으면 죄다 대중취향에 아부하는 오브제를 내걸면서 작품이라는 이름으로, 작가라는 고귀한 명사를 빌려 쓴다. 여기서 그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술가인지 아닌지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은 스스로 부끄러워하는지 정도다. 만들어진 것을 누군가 구입하는 것과 구입할 수 있도록 읍소하는 것 간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인식하는가도 하나의 구분점이다. 아트페어는 분명 미술품을 매매하는 시장이지만 그것 자체로 의미의 완성은 아니다. 매매가 기획의 전부가 아니게 된 시대에서 대중취향을 단정해버리는 작품으로 승부하겠다는 과거의 발상으로는 더 이상 진일보가 어렵다. 미술이라는 범주에 같이 놓인다고 해서 대중언어에만 치우친다면 예술가의 생명력도 길지 못하게 된다. 길게 보고 멀리 가려면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2017-06-11 10:13:55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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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제비엔날레 초대 예술총감독에 홍경한 미술평론가

강원국제비엔날레 초대 예술총감독에 홍경한 미술평론가 평창비엔날레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강원국제비엔날레 초대 예술총감독 자리에 미술평론가 홍경한(47)씨가 올랐다. 강원국제비엔날레를 주최하는 강원국제미술전람회민속예술축전조직위원회는 지난 4월 25일 이사회를 통해 평창비엔날레를 강원국제비엔날레로 변경·의결하고, 5월 초부터 예술감독을 공개 모집했다. 이후 심사를 거쳐 홍 평론가를 예술총감독으로 선정하고, 지난 30일 열린 제 26차 이사회에서 이를 승인했다. 홍 총감독은 월간 미술잡지 '미술세계' 편집장을 비롯해 월간 '퍼플릭아트' 편집장, 월간 '경향아티클' 편집장 등을 역임한 저널리스트 출신의 미술평론가로, 현대미술에 대한 식견과 경험, 현장 감각을 두루 갖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대림미술관 사외이사, 국립협대미술관 정책자문위원, 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 서울시 미술관·박물관 등록 심의위원 등으로 활동했으며, 오는 2018년 2월부터 개최되는 '강원국제비엔날레'의 운영과 대외협력, 홍보 등을 총괄 담당한다. 홍 총감독은 "상생과 화합, 차이의 극복과 연대라는 평창동계올림픽의 정신 아래 동시대미술이 인류공통의 문제 앞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되묻는 작업들을 선보일 계획" 이라며 "미술언어를 통한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평창비엔날레는 평창동계올림픽을 문화올림픽으로 승화시킨다는 취지에서 20013년 시작됐다. ※홍경한 예술총감독 주요약력 -월간 미술세계 편집장 -월간 퍼블릭아트 편집장 -월간 경향아티클 편집장 -대림문화재단 사외이사 -서울특별시 미술관·박물관 등록 심의위원 -인천아트플랫폼 운영자문위원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 자문위원·박수근미술상 제정 운영위원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자문위원 -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 -서울시립미술관 예술총감독

2017-05-30 20:04:04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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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재능기부'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

지난해 5월 조영남 '대작' 논란이 발생했을 당시 많은 이들을 분노케 한 건 그의 대작 의혹이나 미술계 대작 관행 발언만이 아니었다. 작품 하나를 만들어주고 받은 보수가 고작 10만원에 불과했다는 한 무명작가의 주장이야말로 의분심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조영남 씨 자신은 작품 한 점에 수백, 수천만 원에 거래된다고 알려져 있는데 90%이상 그림을 그려준 이에겐 고작 1점당 10만원을 줬다는 건 누가 봐도 노동착취였을 뿐만 아니라, 자본에 의한 인간의 수단화, 도구주의적 인간관을 읽을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내용과 성격은 다르지만 최근 '흉물' 시비를 낳은 '서울로7017' 설치 작품 슈즈트리(shoes tree)도 예술노동의 대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소위 '재능기부' 형식으로 만들어진 탓이다. 실제로 슈즈트리 제작을 의뢰한 서울시는 높이 17m 길이 100m에 달하는 이 대형 설치 미술 작품을 만드는 데 약 1억 원의 예산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 1억 원에 작가의 몫은 없었다. 지적이 일자 서울시는 예산 구조상 작가 개인에게 대금을 지불할 방법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절차상의 흠은 없을지 몰라도 '슈즈트리'를 만든 작가의 재능기부는 개인이 지닌 재능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의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즉, 재능기부가 오랜 경험과 전문성을 헐값에 구입하고 예술가를 착취하는 도구로 전락한 현실에서 이름 값 좀 하는 예술가의 재능기부와 재능기부를 당연한 듯 여기는 서울시의 행태는 오히려 그동안의 나쁜 관행을 잇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미술계만 해도 재능기부 관련 나쁜 관행의 선례는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과거 한 조각가는 모 미술관으로부터 재능기부형식으로 작품을 기증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보상이라곤 운송료뿐이었다. 작가는 잠시 갈등했지만 미술관 소장품이 된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은 채 결국 작품을 보냈다. 이는 미술관의 권위를 이용해 소장품 목록을 거저 채우려는 질 나쁜 예이면서 차후 합리적 지불에 제동을 거는 좋지 않은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결은 같지 않지만 미술관이 '미술관 프라이즈'라는 괴상한 논리를 내세워 시장가의 절반도 되지 않는 금액으로 작품을 매입하는 것이나, 몇 만원 내외의 초현실주의적인 원고료로 비평을 써달라는 기관, 부산비엔날레처럼 물리적 거리가 예사롭지 않은 곳까지 불러놓곤 겨우 몇 만원 내외의 회의료를 지급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모두 공익을 앞세워 소중한 재능을 무료로 사용하려는 변질된 기부개념이 작동한 우리 미술계의 악습이다. 이밖에도 자본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직접 생산자로부터 노동의 성과를 무상으로 취득하는 행위는 우리 주변에 흔하다.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왜 돈에 연연하느냐는 식의 괴이한 발상도 드물지 않다. 서울시만 해도 '슈즈트리' 외, '서울로 7017'이라는 이름과 브랜드 이미지(BI) 역시 재능기부를 통해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원순 시장이 워낙 기부를 좋아한다는 건 잘 알려져 있지만 상습적 행정원리로 비춰지는 건 문제가 있다. 물론 사회기여로서의 기부, 진지한 여가라고 할 수 있는 자원봉사, 일상에서 쉽고 재밌게 '나눔'을 행하는 '이지 오블리주(Easy Oblige)', 스스로 행하는 재능기부 자체는 격려할 만하다. 자발적 나눔이 증가하고 나무뿌리처럼 넓고 깊게 뻗어나간다면 기부는 사회적 갈등과 불균형을 해소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이타심의 가장 직접적 실천이라는 점에서 기부문화는 장려되어야 옳다. 다만 재능기부까지 경쟁시켜 심사하는 경우에서처럼 순수한 재능기부를 악용하는 자들에 의한 인식적 폐단과 답습을 고려해야 하고, 재능기부는 공짜라는 비생산자들의 그릇된 의식을 부추기는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명망 있는 생산자들의 태도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뜻과 다르게 누군가는 예술노동의 대가를 무시하는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는 데다, 합당한 비용을 요구하는 후배 또는 다른 예술가들을 향한 불편한 관습의 생성에 힘을 보태는 '몹쓸 기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17-05-28 13:54:31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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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예술과 액세서리

얼마 전 모 미술관에 근무하는 한 지인은 “미술관이 돈 있는 사람들의 놀이터 같다”며 머잖아 그만 두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작품 소장, 교육, 연구라는 미술관의 기본적인 역할에 충실하지도 않을뿐더러, 예술자체를 품위 있는 척 포장하는 ‘액세서리’ 정도로 여긴다는 의미였다. 그의 푸념은 안타까움을 불러왔지만 그렇다고 버텨보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아니, 예술과 예술 공간을 처세와 고상함을 꾸미는 사적 도구로 여기는 곳에 오래 있어봤자 남는 건 피폐해진 정신일 것이라 오히려 그만두라고 조언했다. 그것도 하루라도 빨리. 경제적 상황이 그리 좋지 못한 예술가들에게 수준 높은 미적 태도와 인문학적 지식을 겸비한 자본주들의 관심은 때로 마른 땅을 적시는 단비와 같다. 특히 요즘처럼 예술가로서의 삶이 위태로운 시대에서 남다른 예술 안목을 지닌 부호들의 지원과 애정은 창작의 지속성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모든 후원과 지원이 공익적이거나 순수한 것만은 아니다. 그것에도 거죽의 명분과 내용은 각기 다르게 존재하며, 긍정과 부정이 동시에 부유하거나 동기에 따른 차이가 이입되어 있다. 이는 메세나(mecenat)의 기원으로 꼽는 로마시대는 물론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메디치 가문을 위시한 이사벨라 데스데,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와 같은 여러 역사적 인물들이 예술지지자로 나섰던 르네상스시대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잊힌 고대세계의 문화(고대 그리스 로마)에서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찾으려 했던 14세기 이후의 르네상스가 제대로 꽃을 피울 수 있었던 배경엔 당시 권력 핵심이었던 교회와 도시국가를 지배하던 영주들, 그리고 경제력을 갖춘 일부 가문들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당시 권력자들은 단테를 비롯한 인문주의자들에 의한 인문 열풍에 힘입어 고대의 예술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예술창작을 적극 후원하고 나섰다. 때문에 고작 200여년 남짓한 시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문화예술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후원의 배경엔 개인의 영웅화와 가치실현의 인위성도 들어 있었다. 역사에 흔적을 남기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예술 후원과 권세를 널리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예술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가문의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키고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미술의 시각적 권위(기념물이나 초상화, 역사화 등)를 이용했다. 도시공국의 유력 가문들은 다른 도시국가와의 원만한 외교를 위해 예술가들을 이용하기도 했다. 취약한 정통성을 확보하고 권위를 획득하려는 목적에 따라 예술 사랑을 내세운 예도 있다. 외교무역과 금융업으로 부를 축적한 거상(巨商)들이 고대의 조각품을 소유하는 것으로 자신의 부와 명예를 과시하기에 바빴던 사례가 그 하나이다. 흥미로운 건 그때나 지금이나 예술을 고상함과 품격을 유지하는 '장식' 정도로 여기는 이들이 드물지 않다는 점이다. 일부 기업들은 천한 장사치의 이미지를 감추기 위해 찬란한 예술의 후광을 ‘하얀 가면’처럼 여기며, 허세 차원에서 혹은 그 세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예술 공간을 짓고 그림을 구입한다. 누군가는 지식과 역사, 인류사의 전당인 미술관의 가치를 등진 채 탈세의 목적으로, 부의 조건 없는 이전 창구로 공간과 미술품을 악용한다. 물론 보편적이지 않아 그렇지, 문화향유 확대라는 공공적 관점으로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예술품을 수집하는 이들도 있다. 예술 지원은 기념비적인 예술의 탄생을 예고케 하며 문화예술의 틀과 미래마저 바꿀 수도 있다는 점을 인지한 이들도 드물지는 않다. 허나 아직도 우리 사회엔 지역 유지로 행사하기 위한 도구로 미술관을 운영하는 이들이 있고, 미술관 운영에는 별 관심이 없으면서 관장이라는 직함에 따른 사회적 평가에 고무되어 미술관을 유지하는 듯한 느낌을 심어주는 곳도 없는 건 아니다. 비록 소수일지라도 그들에게서 체감되는 사실은 예술을 천박하고 세속화된 욕망의 수단으로 삼거나 창작환경의 열악성을 자신의 불편한 예술취향에 대한 호불호로 허용하고 있다는 것을 남들은 다 알고 있음에도 정작 자신만 모른다는 점이다. 내부에서 보면 되레 그들 자체가 문화 인식적 액세서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2017-05-14 11:53:12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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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찬밥' 면치 못한 대선후보 문화예술 공약

최근 가가호호 발송된 '제19대 대통령 선거 선거공보'에는 각 후보들의 공약과 정책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하지만 그들이 적시한 공약의 대부분은 안보와 경제, 사회, 복지 등에 국한될 뿐 문화예술에 대한 언급은 아예 없다. 주요 후보들의 4차례 TV토론에서도 문화예술은 빠졌다. 오는 5월 2일 한 번의 토론이 더 남아 있지만 역시 문화예술은 열외다. 두어 시간 남짓한 공적인 채널에서조차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문화예술은 후보들마다 운영 중인 누리집에서도 마찬가지 대우를 받는다. 구석구석 뒤져봐도 관련 시책은 찾기 어렵고, 있다 해도 존재감은 초라하다. 심지어 안철수 후보의 누리집에선 '기타' 부분을 클릭해야 '예술분야'가 등장한다. 사회 갈등 해소의 참다운 묘약이자 문화강국의 디딤돌이 되어줄 예술과 예술인들에 대한 정책은 이처럼 뿌옇고 뿌옇지만 불행 중 다행이도 순전한 누락은 아니다. 다만 대체로 두루뭉술하고 허약하다는 게 문제다. 일례로 지난 4월 25일 한국문화경제학회와 입법조사처 공동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차기 정부 문화정책' 세미나 자료를 보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문화예술 공약으로 '예술인 문화 복지 사각지대 해소'와 '예술인 창작권 보장'을 내세웠다. 4월 29일 공개한 공약집 '4대 비전 12대 약속'엔 '문화유산가치 제고' 및 '지역 간 문화 격차 해소', '공정한 문화산업 생태계 조성' 등도 포함되어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문화가 있는 삶의 구현', '문화산업발전의 지속 가능성 확보', '관광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선진화' 등을 주요 문화예술 정책으로 내걸었다. 공약집에는 그 하위 카테고리로 '문화예술공정화 특별법 제정', '문화예술 공공기관 예술인 중심 자율기구화', '문화기본권 보장 정책 수립과 실행', '예술인에 대한 사회보장 확충' 등을 올려놓고 있다. 바른정당의 유승민 후보는 '문화민주주의'와 '한류산업 육성', '장애인 문화예술 활동 확대' 등을 관심정책으로 내놨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문화예술인 노동기본권 보장', '문화예술정책 및 재정의 정의로운 전환' 등을 관련 정책으로 꼽았다. 그러나 이들이 앞세운 공약의 다수는 이미 지적되어온 문제들을 재차 짚어내는 수준에 불과해 깊이가 없다. 한국 문화예술계는 어떤 문제를 거론하는 단계를 넘어 그 문제에 관한 대안이 절실한 시점이지만 각 대선 후보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방법론은 꽤나 기초적, 원론적이다. 재탕, 중복 공약들도 넘친다. 문재인 후보의 '예술인 창작권 보장'이나, '생활문화육성',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 등의 공약은 이미 지난 2012년 제18대 대통령 후보 당시 밝힌 10대 문화공약 중 하나로, 진일보한 측면이 약하다. 안철수 후보의 '문화예술인 근로조건 개선' 등은 사실상 타 후보들의 '문화 복지'와 '문화예술인 노동기본권 보장'의 테두리 내에 든다. 그의 또 다른 공약인 '문화콘텐츠 저작권 강화'나 유승민 후보의 '청년일자리 창출 사업 추진' 역시 지난 대선 때 회자된 아이템이다. 특히 유승민 후보와 심상정 후보가 언급한 '문화민주주의', '문화예술정책 및 재정의 정의로운 전환'은 지나치게 피상적이고, 문재인 후보의 '한류 르네상스 실현'과 유승민 후보의 '한류산업 육성'은 민간에서 시작된 흐름에 편승하려다 용두사미로 끝난 이전 정권의 정책을 반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루한 측면이 있다. 딱히 누구라고 할 것 없이 10여년 이상 되풀이되고 있거나 겹치는 공약들이 드물지 않은 현상은 예술인 실업급여제도 도입, 예술인 4대 보험 지원, 공정계약 보장, 문화격차 해소, 지역 문화 활성화, 문화재 보존 관리 등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하나같이 설득력 있는 재원 조달 방법을 내놓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듯 변별력이 희미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정권이 바뀌어도 문화예술 공약이 지속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중요하고 여전히 개선해야할 필요성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얼마든지 문제 개선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전현직 국회의원, 당대표 등을 지낸 후보들이 고루 포진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지금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야말로 평소엔 무관심으로 일관하다 55만 명으로 추정되는 예술인들의 표를 의식하면서 새롭지도 않은 카드를 누차 꺼내들고 있는 셈이다.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 공약을 제외하곤 가치 구분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내용, 독자성을 따질만한 문화예술정책이 드물다는 건 밝은 미래의 실질적 근원인 문화예술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결여되어 있음을 반증한다. 우리네 삶의 질을 풍요롭게 제시하며 인류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해온 예술에 대한 낮은 의식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일부 문화예술인들은 개인 혹은 단체를 구성해 특정 후보들을 지지하는 등, 대통령 만들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짝사랑도 이런 짝사랑이 없다.

2017-04-30 16:10:07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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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국립현대미술관 마리 관장의 변명

지난해 말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미국의 팝아트 작가인 '앤디워홀'과 영국의 '리처드 해밀턴', '피카소' 등의 서양 거장들의 전시를 2017~2018년 순차적으로 선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마리 프로젝트'라 이름 붙인 이 전시들은 발표한지 불과 두어 달도 채 되지 않아 줄줄이 엎어져 전시파행 논란을 일으켰다. 2월 열릴 예정이던 '앤디 워홀의 그림자들'전은 개막 코앞에 이르러 진행이 중단됐고, 2018년 선보일 계획이었던 '피카소와 전통예술'전도 취소됐다. 여기에 4월 개막을 예고한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1938-1965)'전 역시 개막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시점에서 갑작스럽게 미뤄졌다. 파행이 잇따르자 마리 관장에 대한 미술계 여론은 취임 초기보다도 훨씬 나빠졌다. 언론의 질타가 이어졌고 일부 미술인은 국격을 손상시켰다며 마리 관장에게 손해배상까지 청구해야한다는 격앙된 반응까지 보였다. 그러자 마리 관장은 최근 적극 해명에 나섰다. 하지만 일부 매체에까지 소개된 내용은 말이 해명이지 사실상 변명과 다름없었다. 일례로 마리 관장은 '앤디 워홀의 그림자들'이 무산된 이유로 미래 사업에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어려운 운영시스템과 예산 과다를 들었다. 즉, 통상 1년 단위로 전시 계획을 잡아야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구조상 미리 전시기획을 짜놓을 수 없고, 그래서 중국에서 열리고 있던 전시를 가져오기로 했지만 막상 개인전에 8억 원의 예산을 사용하려니 부담스러워 전시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2018년 개최하겠다고 공언한 '피카소와 전통예술' 전시가 물 건너간 것도 돈 문제로 넘겼다. 2017년 기준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예산이 총 88억 원인데, 적게는 20억 원에서 많게는 30억 원이 투입되는 피카소 전이 미술관 운영에 부담을 줄 수 있어 취소했다는 것이 요지다. 전시가 미뤄진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1938-1965)'에 대해선 반출 승인과 포장 지연이 원인이라고 밝혔다. 전시가 무산된 이유에 관한 해명 혹은 설명의 글에서 받은 인상은 굴비 엮듯 취소 및 연기되며 관장 자질 논란까지 몰고 온 전시파행이 자신 탓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전시가 약속대로 열리지 못한 원인으로 운영시스템과 예산문제를 꼽았을 뿐 미술관 수장으로서의 책임의식 부분에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 않았다. 프로답지 못한 전시기획에도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예산이 미술관에 부담이 되는지 여부도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시를 추진하다 뒤늦게 포기를 선언하는 행태나, 작품 선정 및 통관 일정 등의 기본적인 사항마저 협의되지 않은 채 말부터 앞선 경솔함 등은 그의 해명 어디에도 녹아 있지 않다. 그는 "외부에서 재원지원을 받아 부족한 예산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전시를 진행했다)"는 어이없는 발언도 해명에 덧붙였다. 이 말은 재정의 취약함을 알면서도 전시를 추진했다가 막상 마음처럼 되지 않자 전시를 덮은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는 달리말해 상황이 불충분하면 언제 어떤 전시든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국민과의 약속을 이처럼 쉽게 뒤집는 양태는 전문 기획자로서의 자세라고 판단하기 힘들다. 어쨌든 현 시점에서 마리 관장 스스로 호언했던 전시들은 무엇 하나 제대로 지켜진 게 없다. 이미 상업기획사들이 숱하게 우려먹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이템, 적어도 동시대미술의 최전선을 비춰야 할 국립현대미술관이 다루기엔 적절하지 않은 작가들의 전시조차 채 무위에 그쳤다. 그에 비례해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신뢰도 추락했다. 그렇지만 전시 파행이 마리 관장만의 책임은 아니다. 실무진들도 비판의 대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두 번도 아니고 관장의 이름을 내건 전시들이 연거푸 실없이 처리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관장의 역량을 보완해줄 이들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탓이다. 관장이 뭘 잘 몰라 실수라도 할라치면 주변에서 보태거나 빼줘야 하는데 그런 일련의 프로세스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요즘은 국립현대미술관을 말할 때마다 소통부재가 언급되고 학예실장과 팀장들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쓴 소리가 심심찮게 나온다. 새롭지도 않은 전시를 기획해 놓고 성사도 못시키는 일개 화랑만도 못한 현재를 질타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이러다 능력 없는 자들이 세금으로 월급 받으면서 공공기관에 눌러앉아 폼만 잡는다는 얘기라도 들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2017-04-16 14:42:52 송병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