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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홍경한의 시시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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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잠잠할 날 없는 부산비엔날레

임동락 전 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장이 지난 19일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올해 4월 연임에 성공한지 불과 6개월 만이다. 임기도 1년 이상 남았다. 하지만 작가들에게 지급된 작품보수비를 되돌려 받았다는 '국·시비 보조금 횡령' 의혹은 결국 그를 불명예 퇴진으로 내몰았다. 부산비엔날레의 명성에 흠을 남긴 임 전 위원장의 퇴진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오래 전부터 바람 잘 날 없는 부산비엔날레라는 시선의 중심에 서 있어 왔기 때문이다. 일례로 임 전 위원장 운영체제에서 부산비엔날레 진두지휘한 윤재갑 전 2016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현 중국 하오아트 뮤지엄 관장)은 지난 2월 임 전 위원장의 전횡을 폭로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사퇴를 촉구했다. 당시 윤 감독은 언론에 배포한 자료를 통해 "임동락 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장은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도 안 되고, 절대 해서도 안 되는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며 "임 위원장 때문에 독립성과 공공성이라는 부산비엔날레의 기본 원칙과 존립 근거가 모두 파괴됐다."고 주장했다. 자료에는 직원들에 대한 폭언과 인격비하 외에도 위원장이 작가 섭외 명목으로 외국 출장을 다니고 직접 작가들을 선정했다는 주장도 들어 있었다. 감독의 고유권한인 작가선정에 개입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 방법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윤 전 감독에 의하면 임 전 위원장은 전시감독의 공식 메일에 몰래 들어가 어떤 상의도 없이 자신이 원하는 작가에게 공식 초청 레터를 발송했다. 그리고 해당 작가는 그 해 전시에 참여했다. 이밖에도 임 전 위원장은 수영강변 조각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설계도만 보고 뻥튀기 한 니콜라스 쉐퍼(프랑스, 작고)의 작품을 설치해주는 대가로 수영구에 위치한 고려제강에 거액의 기부금을 요구해 진위 및 가치 논란과 함께 권한 남용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뿐 아니라 단순 통·번역 일에 직계 자녀를 공개채용절차 없이 채용한 후 전문 큐레이터에 맞먹는 급여를 지급해 구설수에 올랐다. '국·시비 보조금 횡령' 의혹은 그 뒤에 벌어졌다. 의문스러운 기증서약서 허위 작성, 기증 작품에 대한 거액의 재료비 지급, 회계 집행과 인사 등의 문제까지 거론하면 2015년 첫 임기를 시작해 약 3년 동안 잇달아 온갖 추문에 오르내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지난 19일 부산지역 11개 문화예술인 단체들은 임 전 위원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부산문화예술인들이 단체행동에 나선 건 비엔날레 전시감독 선임 갈등이 빚어진 2014년 6월 이후 두 번째이다. 임 전 위원장을 둘러싼 부산비엔날레 사태를 바라보는 미술인들은 씁쓸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집행위원장에게 부여된 과도한 권한을 견제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가하면 일부에선 이번 사태를 서병수 부산시장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2월 전임 전시감독이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임 전 위원장에 대한 문제를 공론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재선임시킨 당사자가 바로 서병수 시장이기 때문이다. 잠잠할 날 없는 부산비엔날레를 두고 한편에선 지연과 학연, 코드와 보은에 휘둘리는 지역 환경을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한다. 지역에선 나름 권력 꽤나 지닌 일부 정치권력과 문화권력이 그들만의 울타리를 만든 후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폐쇄적인 문화정책을 주도해 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부산비엔날레 조직위원회가 2011년부터 독립 격년제로 열어 온 '바다미술제'에서 부산 지역 인사들이 주요 자리를 꿰차 왔음을 확인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광주비엔날레와는 달리 부산비엔날레 이사회는 거의 100% 부산인사들로 채워져 있다. 2010년 부산비엔날레에는 부산지역 전시감독이라는 희한한 직책을 만들기도 했다. 보다 지엽적인 '관계성'도 부산비엔날레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에 한 몫 해왔다. 전시 개막을 불과 3개월을 앞둔 시점에서 집행위원장 사퇴라는 홍역을 치른 2014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 선정 파행 사태가 대표적이다. 당시 오광수 집행위원장은 예술 감독 선정위원회로부터 가장 많은 득표를 얻어 향후 부산비엔날레를 이끌 감독으로 선임이 확실시됐던 예정자를 뒤로 물린 채 계획에 없던 '공동감독제'를 고집해 파란을 일으켰다. 절차무시와 보은으로 의심되는 인사를 '끼워 넣기'했다는 의구심은 '보이콧'의 불씨였다. 이처럼 끼리끼리 운영과 독단, 그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희박한 상황에서 부산비엔날레의 방향을 말하는 건 무리다. 폐쇄적인 구조에서 국제전으로서의 위상을 바라는 건 애초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스템에 직접 이의를 제기한 인사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부산비엔날레는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내쳤고 잘라냈다. 그리고 귀담아 듣지 않은 결과는 오늘이 말해주고 있다. ■홍경한(미술평론가·칼럼니스트)

2017-10-29 12:16:06 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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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난해한 현대미술, 어떻게 이해할까

미술자체는 보편적으로 존재해 왔으나 사용하는 미술언어는 지역, 문화, 사회, 역사, 구성원들 간 공통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기에 현대미술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내 눈높이와 맞지 않아도 얼마든지 예술이 될 수 있으므로 관람객이 느끼는 현대미술에 대한 난독은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과거의 잣대를 적용하기 곤란할 만큼 다원화된 시대에서 어떤 게 예술이고 사물인지를 구분하려는 시도는 사실상 효과적이지 못한 결과를 얻기 일쑤다. 무가치한 예술에 이데올로기를 부여해 가치로 둔갑시키는 자들을 비난할지언정 모든 것이 ‘초미적’으로 변해버린 현상까지 부정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예술과 근접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라면 미의 과도함으로 인해 미술의 미적 가치를 판단할 수 없게 되었고 그것이 결국 대중의 무관심에 불을 지핀 예술생태에 허탈감을 느낄 수는 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예술이 있기에 되레 예술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당대 미술은 끊임없이 융합되고 결합되며, 해체되면서 동시에 구축된다. 이것이 진화인지 아닌지, 진보인지 퇴보인지의 여부는 나중의 문제다. 중요한 건 동시대미술은 더 이상 유일성이나 원형, 본질의 가치를 신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고급스러운 것과 저급한 것, 엘리트와 대중 간 거리감의 생성과 층위를 의미 없게 바라본다는 점이다. 예술적 도그마가 살아 숨 쉬던 100년 전과 달리 지금은 절대적인 것도, 시공간의 분별, 역할의 구별조차 무의미하긴 매한가지다. 물론 ‘예술은 세상에 대한 반응’이라는 메를로 퐁티의 주장처럼 오늘날의 미술 또한 인간 삶의 텃밭인 지리적, 역사적, 사회적인 틀에 안주할 수밖에 없지만 예술의 자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움직임은 그 어느 때보다 활동적이다. 국가주의, 통합주의, 전체주의와 같은 획일적 맥락은 더 이상 인정받지 못한다. 그리고 이 탈주의 맥락에는 공동체의 의식을 반영한 제도, 상품, 자본, 노동 등 인간 삶을 지배하고 포획하는 모든 것이 포함된다. 다만 원본과 복제가 구별되지 않는 영역을 숙주로 삶과 이미지가 복잡하게 교차한 채 지도가 영토에 선행하는 상황에서도 예술주체의 평등화는 꽤나 흥미로운 지점이다. 실제로 동시대미술에서 관람객은 겉으로나마 작가와 동일한 위치에 서길 요구받는다. 그들은 예술가로부터 이양된 예술행위와 가치구분의 당당한 중심이지 변방이 아님이 강조된다. 최소한 이전과 전혀 다른 미적 경험을 창출하는 주어임엔 틀림없다. 이처럼 오늘날의 미술은 타자의 개입과 개방성, 다양한 스토리가 내재된 각기 다른 군도의 공존적 집합 아래 다양하게 겹쳐지며 통합이 아닌 차이를 이어나간다. 선을 넘나드는 탈경계화와 융복합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과 새로운 모더니티를 창출하는 것에 방점을 둔다. 심지어 지금으로부터 약 반세기 전 모더니즘이 온 유럽에서 창궐할 당시 예술가들이 주안점을 두었던 재현과 구현의 대상인 현실은 물론, 오랜 시간 인식을 지배해온 이성과 진리조차 하나의 알고리즘으로 본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후기구조주의로 대변되는 탈근대, 즉 모더니즘의 이름으로 갖춰진 온갖 형태로부터의 일탈이자 오늘날 미술의 또 다른 모습이다. 예술의 역사상 그동안 매우 중요하게 다뤘던 형식은 이제 미적 경험의 우위에 서지 않는다. 미적체험의 가능성까지 스스로 획득하는 시대에서 형식이란 그저 새로운 예술적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과 개체별 삶이 투사된 미적 경험의 연속성을 복원하기 위한 시도에 머물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양태를 고찰하는 것이야말로 동시대미술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2017-10-15 13:20:31 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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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거꾸로 가는 '광주비엔날레'

[홍경한의 시시일각] 거꾸로 가는 '광주비엔날레' 아트선재센터 관장을 지낸 김선정 씨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딸이자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의 부인이다. 소위 재벌가 출신의 인사이다. 미술계 일부에선 귀가 닳게 '화려한 네트워크', '국내 최고 아트파워' 등의 수식어로 치켜세우는 공인이다. 그런 그가 지난 7월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재)광주비엔날레재단 이사회는 광주문화예술계와의 연관성, 폭 넓은 네트워크, 전문성, 경영능력 등을 선임 배경으로 꼽았다. 명실 공히 동시대미술의 최전선을 다루는 국제행사의 전권을 쥔 셈이다. 흥미롭게도 김 대표는 자리에 앉자마자 유례없는 논란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됐다. 첫 번째는 김 대표의 '연봉 포기' 소식이었다. 10년 이상 국고를 지원받은 행사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국제행사일몰제'에 광주비엔날레가 포함되어 예산이 삭감되자 연봉을 받지 않겠다고 시(市)에 통보했다는 것이다. 김 대표의 연봉은 1억 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분명 선의였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연봉 포기 소식을 접한 미술계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필자 역시 긍정과는 거리가 있었다. 예산부족이 문제라면 방만한 부분을 정리하고 내실을 기하는 게 옳지, 새로운 형태의 '재능기부'는 적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급여를 받아야 생활할 수 있는 구성원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발상이었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에 취약한 미술계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더구나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했다면 아름다웠을 미담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감동적인 희생'은 다소 신파적으로 변질됐다. 윤장현 광주광역시장은 지난 7월 한 언론과의 대화에서 김 대표를 가리켜 "실력은 물론 행사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개런티까지 포기하는 인성을 갖춘 인사"라며 한껏 칭찬했다. 김 대표가 연봉 포기를 제안하더라도 적극 반려해야할 사람이 되레 인성 운운하며 정책적 자찬을 늘어놓은 것이다. 연봉을 포기하지 않는, 아니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인성은 대체 어떤 인성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결과적으로 좋지 않은 학습효과를 남긴 김 대표의 연봉 포기에 이어 최근엔 광주비엔날레재단이 또 하나의 이슈를 제공했다. 바로 재단 대표이사인 김 대표에게 사실상의 예술총감독까지 맡겼다는 사실이다. (재)광주비엔날레는 지난 11일 다수 큐레이터제를 도입하고 민주·인권·평화의 거점으로서의 광주를 재조명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제12회 광주비엔날레 기본 구상안'을 발표했다. 사상 처음으로 재단 대표이사가 총괄 큐레이터를 겸임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한국 비엔날레 역사상 경영 수반인 재단 대표가 사실상의 실무 책임자인 예술총감독까지 겸한 사례는 없다. 일본 후쿠오카 트리엔날레처럼 학예실에서 관장하는 국제행사는 있어도 견제 부실과 권력집중을 우려해 일개 개인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하진 않는다. 세계 유수의 비엔날레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로 카셀 도쿠멘타의 대표이사 아네트 쿨렌캄프(Annette Kulenkampff)는 얼마 전 대표이사의 역할에 대해 묻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대표이사는)도쿠멘타가 성공적으로 열리기 위한 모든 조율에 관여한다고 보면 된다. 단, 예술적인 부분은 전적으로 예술 감독에게 책임이 있다." 경영과 전시, 디렉터와 큐레이터 등은 각자의 역할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지며 분리를 통해 균형을 이루는 것이 발전 동력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광주비엔날레는 김 대표에게 인사권과 예산권은 물론 전시기획의 권한까지 모두 넘겼다. 광주비엔날레는 개인의 것도, 재단의 것도 아니다. 광주만의 것은 더더욱 아니다. 대한민국의 것이고 국민의 것이며 우리 모두의 것이다. 지금까지 쏟아 부은 수백억의 세금만 해도 그렇고, 한국이 낳고 기른 아시아 최초·최고의 비엔날레라며 상찬해마지 않았던 기록과 역사만 봐도 그렇다. 행여나 광주비엔날레가 온전히 자신들 것이라는 오판을 하면 안 되는 이유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광주비엔날레는 거꾸로 가는 듯한 인상이다. 그 어느 때보다 '광주'라는 지역성에 함몰되는 듯한 설정도 그렇고, 특정인에게 모든 권력을 몰아주는 것도 그렇다. 설사 개인과 장소가 매우 특출하거나 특정적이라도 개인과 지역은 단지 발화의 동기이자 에너지이지 전부가 아님을 망각하고 있다. 결은 다르지만 내년도 비엔날레 주제로 경계와 지정을 넘나드는 '상상된 경계들'(Imagined Borders)이라는 철지난 화두를 꺼내든 것 또한 역류의 증거다.

2017-09-17 13:11:27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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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휴식 없는 삶

[홍경한의 시시일각] 휴식 없는 삶 '강원국제비엔날레 2018' 사무국이 위치한 춘천까진 자동차로 왕복 5시간 가까이 걸린다. 원체 멀기도 한데다 최근 교통량이 부쩍 증가한 춘천-양양 간 고속도로를 관통해야하는 탓이다. 그래도 주말이나 휴가시즌보단 낫다. 지난여름 경험해보니 출발시간은 있어도 도착시간은 없더라. 많은 시간을 도로에 저당 잡힌 채 새벽에 출발해 깜깜해진 이후에야 귀가하는 일상의 반복은 에너지를 고갈시킨다. 정신과 육체의 건강에 이롭지 않다. 때문에 의욕과는 달리 집에선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모든 물리적 여백을 소진한 후 남는 건 오로지 황금 같은 주말에 대한 기대와 '휴식'에 대한 염원뿐이다. 그러나 주말인들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휴일엔 휴일대로 또 다른 일들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건 간혹 업무의 연장이거나 개인적인 상황들로 채워진다. 어쩌다 생기는 공백 역시 내 몫과는 거리가 멀다. 문자와 전화는 평일과 휴일을 구분하지 않으며, '카톡'이나 페이스북 메신저 또한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댄다. 별 시답잖은 내용으로 새벽에 전화해 불운한 긴장감을 조성하거나 감옥 같은 '단톡방'에 밤낮 구분 없이 초대되는 예도 적지 않다. 이 가운데 어떤 이의 발화로 시작된 카톡 수다는 거의 재앙에 버금간다. 탈출하자니 티가 나는 바람에 괜스레 언짢게 할까 싶고, 끝없는 주절거림을 넋 놓고 보자니 이 귀한 시간에 뭐하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그야말로 갈등과 고통의 씨앗이다. 최악은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온 불청객으로 인해 뜻하지 않은 관광가이드 역할까지 맡는 경우이다. 강화도에 4년 가까이 살고 있지만 사실 난 강화도에 대해 잘 모른다. 5000원이면 볼 수 있는 작은영화관이 있다는 것도 근래에 알았고, 그 유명하다는 마니산, 고인돌엔 근처도 안 가봤다. 당연히 맛집 따윈 알 턱이 없다. 하다못해 바로 옆집인 미술관과 박물관도 있다는 것만 인지하고 있을 정도다. 그런 이에게 가이드란 게 말이 되나. 하루라도 조용한 곳에서 쉬고 싶다는 욕망이 서울을 떠나게 했고, 나만의 고요함을 얻기 위해 최소한 하루 300킬로미터를 오가야하는 물리적 부담도 감수했다. 하지만 세상사 어느 하나 내 뜻대로 되는 것 없듯, 어쩌면 가장 쉬울 법한 삶의 질을 위한 휴식 또한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이런 현실이 비단 내게만 국한되는 것일까. 아닌 듯싶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다수는 휴식 없는 삶에 지쳐있다. 우린 모두 한시도 휴대폰을 놓지 못하는 노모포비아에 가깝고,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그 짙은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상대에 대한 역지사지를 바라면서도 원만한 사회적 관계를 위해 눈치 봐야하는 상황들도 숱하다. 소통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배려 없는 행태들에 익숙해져야만 하며, 공동체 내에서 살아가기 위해 혹은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쉼을 반납하는 입장에도 서투르지 않아야 한다. 이런 현실에선 어쩌다 맞는 여유로움은 무기력하게 느껴진다. 잠시 멈춤은 되레 밀려남으로 자각된다. 경쟁과 성취, 초조함과 조바심, 강요되는 공감 아래 쉬면서도 움직임을 필요로 하는 순간으로 메워진다. 허나 이 모든 것은 삶의 질과 발전을 저해한다. 생의 즐거움을 잃어 가는 삶을 부추긴다. 휴식은 일보다 중요하다. 사람들은 일하기 위해 쉬기보단 쉬기 위해 일한다는 게 옳다. 휴식이야말로 삶의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덧댈 수 있는 시간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 있는 삶이다. 베로네제의 '가나의 결혼식'(1562~1563)이나 르누아르의 '보트 파티에서의 오찬'(1880~1881)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나와 가족을 돌아볼 수 있는 작은 기회가 요구될 뿐이다. 이에 국가는 정치, 제도, 법률을 통해 휴식 있는 삶을 권장해야 한다.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에서 개인은 이룰 수 없는 이상이다. 다행히 청와대는 지난 8월 청와대 직원의 연가사용 활성화 및 초과근무를 축소하도록 하는 등, 정부기관을 중심으로 '휴식 있는 삶'을 선도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아직 구체적 방안은 나오지 않았지만 노동의 권리 못지않게 휴식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의지와 문제의식을 담았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왜냐하면 휴식 없는 삶을 산다는 건 인간답게 사는 게 아님을 인식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2017-09-03 14:47:21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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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부담스러운 뒤풀이 문화

[홍경한의 시시일각] 부담스러운 뒤풀이 문화 10여 년 전, 한 지인의 모 미술상 수상을 기념하는 뒤풀이에 휩쓸리듯 참석한 적이 있다. 오랜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겠다, 부어라 마셔라 할 것이 뻔해 솔직히 처음에는 어떻게든 가지 않으려 갖은 '꼼수'를 부렸다. 그러나 인정(人情) 탓에 결국 자리 하나를 턱하니 차지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몸과 정신이 분리된 채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 참으로 곤혹스러운 시간이었다. 다들 몽롱한 상태에 젖어들었는데 알코올 알레르기가 있는 나 홀로 또렷한 정신으로 멀뚱거리자니 일각 여삼추(一刻 如三秋)요, 잔뜩 취한 누군가가 다가와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얘기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려주던 상황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히 지루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한참 지나서야 자리가 파했고, 난 비로소 해방됐다. 빼앗긴 주권을 다시 찾기까지 36년이라는 긴 세월을 이겨낸 광복의 기쁨이 이런 것일까 싶을 정도로 되찾은 자유로움이 주는 만족감은 컸다. 그러면서 그날의 기억은 잡지 마감하랴, 강의하랴 기타 등등 여러 일로 인해 자연스럽게 잊혔다. 며칠 후, 그 지인으로부터 참석해줘 고맙다는 전화를 받았다. 늘 그렇듯 이런 저런 대화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날의 고통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심지어 머리카락이 희한하다는 이유로 어떤 덜떨어진 교수에게 멱살까지 잡힌 봉변마저 함구했다. 술에 취하면 거름 밭의 돼지로 돌변하는 사람을 친구로 둔, 억세게 운 나쁜 자신에게 놀랄까 싶었기 때문이다. 아니, 정작 놀란 건 나였다. 시상금으로 받은 거액을 그날 뒤풀이 비용으로 모두 소진했다는 것이 그랬고, 덕분에 아내한테 온갖 잔소리는 다 들어야했다는 후일담이 그랬다. 그의 아내는 작업하는 남편과의 삶을 숙명처럼 여기며 살아온 이였는데, 그런 그가 화를 냈다는 건 상서롭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후문으론 뒤풀이로 시상금을 탕진한 그날 이후 부부의 가치관은 '자식들 때문에 산다'로 변했다고 한다. 한참이 지난 일화지만 다시 꺼낸 이유는 단순하다. 아무리 봐도 그때나 지금이나 미술계 뒤풀이 문화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것. 실제로 지금도 매주 수요일 사간동이나 인사동에 가면 인근 식당과 주점에는 미술인들로 넘쳐난다. 그림이 팔릴지 장담할 수 없음에도 끝까지 남아 뒤풀이 비용을 대는 또 다른 10여 년 전의 지인 같은 이들도 만날 수 있다. 어느 동네든 전시가 열리는 첫날의 풍경은 온 나라가 대동소이하다. 문제는 이처럼 미술계 관습처럼 여겨온 먹고 마시기식 뒤풀이 문화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전시 작가가 모든 것을 부담하는 관행 역시 벗어나야 한다. 혹자는 그깟 밥한 끼 갖고 뭘 그리 야박하게 구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으나, 그게 또 그렇지 않다. 망조 들린 로마처럼 '빵과 서커스'가 넘치는 세상이지만 작가들의 삶은 되레 팍팍해졌음을 고려하면 밥숟가락 하나 더 놓는 것도 녹록하지 않은 탓이다. 생각해보라, 미술인 년간 평균 수입이 600만 원대인데 밥값으로 한 번에 수십만 원에서 백만 원 단위를 지출한다는 게 타당한지. 뒤풀이 대신 작품을 놓고 가볍게 차 한 잔 마시며 진중하게 대화해도 좋고, 작고 알찬 토크나 비평 시간을 공유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수입과 지출이 현격히 불균형한 작가들의 현실을 알고 있다면 뒤풀이 비용을 혼자 책임지게 하는 일은 당연히 없어야 한다. 그나마 미술계 한쪽에선 변화의 물꼬가 조금씩 트이고 있어 다행이다. 작가와 관객이 교감할 수 있는 시간으로 마지막을 장식하거나 아예 뒤풀이를 생략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축하해주러 온 주변 작가들 또한 동병상련의 마음 아래 뒤풀이는 생략한 채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작은 소품을 구입하는 가하면, 어쩔 수 없이 뒤풀이를 하게 되어도 비용은 각자 낸다. 다만 이런 현상이 아직은 보편적이지 않다. 여전히 우리 주변엔 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뷔페식 상차림도 부족해 2차로 우르르 몰려다니며 먹으러 왔는지 작품 보러 왔는지 모를 현상과 쉽게 마주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이 또한 적폐다.

2017-08-20 11:05:04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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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거리 벗어난 '뱅크시', 그 어색함

[홍경한의 시시일각] 거리 벗어난 '뱅크시', 그 어색함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에 위치한 한 갤러리에서 '뱅크시(Banksy)' 작품전이 열리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이 전시는 영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뱅크시의 벽화를 찍은 영국 작가 마틴 불(Martin Bull)의 사진전에 가깝다. 깔끔한 전시장에 내걸린 작품들도 마틴 불의 사진과 뱅크시의 벽화를 실크스크린으로 복제한 것들이 주를 이룬다. 사실 일반인들에겐 낯설 수도 있지만 뱅크시는 영국 출신의 얼굴 없는 아티스트로, 미술계에선 꽤나 높은 인지도를 자랑한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그래피티(graffiti)를 통해 인류공통의 문제들을 도발적이고 풍자적으로 표현해왔다. 불특정 다수가 오가는 '거리'에서 동시대 다양한 사안들을 들춰내며 미술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질문해 온 작가이기도 하다. 나이가 몇 살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명확하지 않은 '익명성'을 무기로 한 그의 거침없는 질문 속에는 불합리한 세계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일례로 장갑차와 무장한 병사들을 포진시킨 그림 'Have A Nice Day'는 살기 위해 죽이거나 죽여야 살아갈 수 있는 합법적 살생의 아이러니를 기호화한 작품이며, 잭 베트리아노(Jack Vettriano)의 그림 '노래하는 집사'를 패러디한 작품은 원자력 폐기물을 비밀리에 매장해온 강대국들의 악행을 알린 작품이다. 뱅크시는 경제대국의 약소국에 대한 침탈, 전쟁포로에 가한 반인권적 처사에 항의하거나 전쟁과 폭력에 항거하는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에 관한 공격도 지속적으로 이어왔다.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그림을 모방한 작품 '나이트 호크'는 우월주의에 빠진 영국을 비꼰 사례이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건설한 가자지구 국경의 한 벽에 그린 '페인트 통을 들고 있는 소년'은 정치, 종교, 민족의 문제를 넘어 평화와 상생을 말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뱅크시의 예술을 상징하는 주요 작품으로 거론된다. 뱅크시의 예술 속에는 자본주의의 폐단과 불평등을 건드리는 날카로운 시선도 들어 있다. 네이팜탄에 놀라 발가벗고 길 위를 내달리던 장면을 촬영한 닉 우트(Nick Ut)의 1972년 사진 '네이팜탄 소녀(전쟁의 공포)' 킴 푹(Phan Thi Kim Phuc)을 맥도널드의 손에 이끌려 걸어 나오는 장면으로 치환하거나, 풍요롭게 식사하는 백인 주위에 굶주린 아프리카 사람들을 배치해 자본주의 체제의 괴이한 공생을 보여준 '소풍', 쇼핑카트에 창을 던지는 인류의 모습을 옮긴 '사냥'이라는 작품으로 현대물질문명을 시니컬하게 다뤘다. 미술의 상업화와 미술의 권위에 대한 조롱 또한 그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제이다. 대영박물관과 뉴욕현대미술관에 몰래 걸었던 '원시인 마켓에 가다'와 '토마토 캠벨스프 깡통'은 가짜와 진짜도 구분하지 못하면서 허세를 부리는 미술계의 권위를 비웃는 작품으로 꼽힌다. 지난 2010년 발표한 다큐멘터리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는 '돈에 절어 있는' 동시대미술계를 가장 핵심적으로 함축해 놓고 있다. 이처럼 뱅크시는 부조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세상을 줄곧 고발해 왔다.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설치작품에서 느껴지는 유머러스함 속 날카로운 역설마냥 촌철살인 같으면서도 능청맞은 태도 아래 페이소스로 가득한 세상에 일침을 가했고, 돈과 권력, 신제국주의와 쇼비니즘(chauvinism)에 치우친 세태 및 유무형의 세속적 가치에 속박되어 있는 인간사를 염려해 왔다. 물론 그의 비판적 견해는 미술자체에 대해서도 동일했다. 피에르 만초니(Piero Manzoni)의 1961년 작품 '예술가의 똥'이 자본에 점령당한 예술을 지적했다면 뱅크시는 일련의 작품들로 비릿한 돈에 덧칠된 욕망과 조작되는 미술 생태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즉, 한스 하케(Hans Haacke)가 가난한 노동자를 착취한 돈으로 그림을 구입하는 일부 비윤리적인 명품기업들의 '위선적 돈질'에 야유를 보낸 것처럼 뱅크시 또한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와 같은 작품으로 예술성이나 미학적 가치가 아닌, 돈과 미디어에 의해 예술과 예술가가 만들어지는 구조를 조소했다는 것이다. 뱅크시는 이 모든 것을 주변 환경까지 고려된 그래피티로 담아냈다. 인지와 자각의 넓은 공유를 위해선 온전히 벽화여야 가능했고 벽화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따라서 특정한 공간에서 떼어내 갇힌다는 것은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장소성이야말로 뱅크시 예술의 실체이자 고유한 미술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사진으로 만나는 뱅크시의 벽화란 어색하기만 하다.

2017-08-06 14:07:08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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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자본의 망령과 예술

[홍경한의 시시일각] 자본의 망령과 예술 동시대미술은 다양한 스토리가 내재된 각기 다른 군도의 공존적 집합을 불러들여 새로운 관계를 맺고 통합이 아닌 차이를 잇는다. 장르, 학제 간 경계조차 무의미한 연속적 개입과 침투를 고의적으로 허용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예술의 의사소통 방식과 내용, 형식을 담보한다. 그리고 그 자체로 이전과 전혀 다른 미적 경험을 유도하거나 낯선 예술적 체험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런 작업들은 시각적, 개념적 어려움을 양산하는 탓에 가끔 외면의 대상이곤 하지만 누군가에겐 삶의 과정과 연관된 기억과 경험을 소환 혹은 복원하는 계기로 작동한다. 이전엔 알 수 없었던 상호성을 체득하는 자유로움의 장이자, 예술가들에게 그 무대가 갖는 의미는 미술자체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미술인들은 간혹 예술이라는 언어의 육화된 의미를 배척하는 지점에서 깨어나는 자본의 망령들에게 한없이 너그러워지기도 한다. 다만 이 기괴한 상품가치로서의 망령들은 다른 군도의 공존적 집합을 잘못 해석한 결과이기 일쑤다. 어쩌면 척박한 생태를 핑계 삼은 내적 게으름과 안일함이 무의식을 뚫고 태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숨이 턱턱 막힐 것 같은 불안한 현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제도적 체념, 생존의 절박함도 상품으로써의 망령이 활개 치는데 한 몫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다양한 모습과 이름으로 변신한 채 이내 현세를 지배하는 자본의 망령은 생각보다 잔인하다. 어떤 합당한 명분에도 냉정한 태도를 내보인다. 이성과 논리, 특유의 감성을 삭제시키고 불특정 다수의 지지 속에서 헛헛한 욕망을 사육한다. 급기야 정신을 포박하고 야금야금 예술가들의 생명까지 갉아먹는다. 실제로 자본의 망령은 철학적 빈곤함이 부유하는 것들, 숫자만 늘여놓아 애써 먼 길을 찾아간 이들을 맥 빠지게 하는 것들을 내놓도록 만든다. 단지 철지난 양식들을 발작하듯 재연하거나 과거의 형식을 마구잡이로 뒤섞어 놓은 것들, 깊이 없음을 뻔뻔하게 자인하는 결과물을 토해내도록 유도한다. 심지어 예술의 종말을 통해 예술이 비로소 자유를 획득했음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들마저 마구잡이로 생산한다. 한마디로 그 어떤 가능성도 인정되는 시대에서 놀랍도록 진부하고 획일적인 것들을 내건다. 결국 자본의 망령은 곧 소진해버릴 물질을 선물하지만 예술의 근본적인 역할과 기능에 대한 미학적 감수성을 거둬들이고 구태의 반복, 새로움에 대한 외면에 지속성을 부여한다. '내가 이러려고 미술가가 되었나'라는 뒤늦은 후회를 비웃으며 조변석개하는 소비취향이 권력임을 자인케 한다. 그럼에도 혹자는 이와 같은 현상을 '놀이'로 대응할 수 있고 놀이의 성과로 휘발성 강한 팬덤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놀이란 실은 공유될만한 자기연민과 실패를 그럴듯한 변명 아래 정당화하는 방어기제이거나, 잘해봤자 기형적 제도를 살짝 비트는 수준일 뿐이다. 본질의 변화는 그 정도로 이뤄지지 않는다. 예술가가 신뢰할 수 없는 대중적 속성에 삶을 의탁한다는 것, 경박한 자본주의에 몸과 정신을 떠맡기면서도 잘못되었음을 느끼지 못함은 결국 예술작품에 내재된 고유한 역할이 어떻게 성공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가에 관한 고민의 결여를 완성한다. 예술본질의 추구를 멀리하며 단발성 풍요로움에 삶을 할애할수록 우리가 그토록 지키려했던 예술가적 권위는 무너진다. 허나 작금 한국 미술계에서 엿보이는 일련의 흐름은 음습하고 괴기한 저택을 빠져나와 먹잇감을 찾아 배회하는 자본의 망령들에게 좋은 숙주가 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자박으로 인한 일시적 안락함과 물질을 얻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내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2017-07-09 11:41:29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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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베니스비엔날레와 동네미술제

[홍경한의 시시일각] 베니스비엔날레와 동네미술제 '물의 도시' 베니스에서는 현재 제57회 베니스비엔날레(5.13~11.26)가 한창이다. 전시를 보기 위한 미술인들의 대이동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베니스비엔날레를 돌아 본 필자도 그 중 한 명이다. 하루에 20킬로미터 이상을 걸어야했을 정도로 고된 여정이었으나, 예전엔 잘 보이지 않던 특징들을 보다 명료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는 건 나름의 수확이었다. 1895년 이탈리아 국왕 부처의 제25회 결혼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베니스 시(市)가 창설한 베니스비엔날레는 120년이 넘는 역사만큼이나 다양하고 오래된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과거 파리박람회의 운영 방식을 차용해 국가관과 주제전(현대미술전)이 양립한다는 점이다. 1960년대 중단됐다 1986년 부활한 수상제도 역시 여타 비엔날레와의 차이다. 1907년 이후 10만평에 달하는 카스텔로 공원(Giardini di Castello) 내에 둥지를 튼 영구국가관과 수상제도는 국가 경제력에 의한 '반(反)예술평등'을 자극하고 '미술이 올림픽이냐'는 비아냥거림의 이유이기도 하지만, 각 문화예술 강국을 중심으로 한 미술흐름과 경향을 엿볼 수 있다는 장점을 동시에 지닌다. 미술의 순수성을 설파하는 듯싶지만 사실상 정치와 자본, 권력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도 국가관이 내재한 흥미로운 지점이다. 반면 총감독의 예술적 지향점에 의해 자유롭게 전개되는 주제전(장소는 폐공장인 아르세날레(Arsenale)로, 이곳에도 국가관이 있다. 영구국가관에 터를 잡지 못한 국가들이다)에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예술적 필요들을 전략적으로 보여준다. 지역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인사들의 참견이나, 지자체의 예산으로 지역에서 열리니 주제, 수준 고려 없이 지역 작가들을 무조건 참여시켜야 한다는 한국식 억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 인종을 넘어 오로지 동시대미술이 언급해야 할 이슈는 무엇인지가 핵심이다. 베니스비엔날레의 두 번째 특징은 재정의 30%를 개인 스폰서가 후원한다는 사실이다. 거의 100% 국민세금(국비와 도비, 시비)으로 치러지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문화예술에 대한 기부가 일상화된 유럽에선 충분히 가능한 현상이다. 후원자들은 미술에 대한 지원을 기업과 가문의 자랑으로 여기며 국민들은 그들을 사회적 존경의 척도로 삼는다. 나머지 70%는 일반기금과 자산이익금으로 조달된다. 베니스비엔날레의 세 번째 특징은 비엔날레를 하는지 마는지 시민들은 알지도 못하는 한국과는 다르게 비엔날레가 열리면 도시전체가 미술관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비엔날레 개막과 더불어 도시에는 수십여 개의 위성전시들이 개최되고, 베니스 운하를 포함해 400여개가 넘는 다리 사이사이, 거리와 옛 건축물 곳곳에서도 제한 없는 예술행위들이 펼쳐진다. 베니스비엔날레 네 번째 특징은 현대미술의 변화를 상징하고 공인하는 무대라는 것에 있다. 일례로 베니스비엔날레 설립 당시 주요 목적은 시장 창출이었지만, 미술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차원에서 1960년대 말 상업성은 완전히 배제됐다. 비엔날레에 곁가지로 페어를 갖다 붙여 죽도 밥도 아닌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현재의 우리나라와는 반대다. 예술의 역할에 대한 자문도 베니스비엔날레를 특징짓는 요인이다. 베니스비엔날레는 1972년부터 주제전을 시행하며 인류 공통의 문제에 직접적으로 다가서기 시작했다. 칠레의 자유회복과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독재에 저항한다는 의미에서 전시자체를 통째로 헌정한 1974년 비엔날레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예술이 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선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지자체장의 정치적 성과주의 혹은 지역 미술인들의 헤게모니 장으로 이용되는 경향이 없지 않다. 보편적 참여주의를 내세우지만 알고 보면 자신의 몫을 챙기기에 급급한 소수 문화 권력자들의 그릇된 양태도 녹아 있다. 어쨌든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눈에 띄는 위 몇몇 가지는 베니스비엔날레가 '상파울루비엔날레', '휘트니비엔날레', '카셀도쿠멘타'와 함께 세계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행사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한 배경이다. 완전하진 않아도 15세기 이후 다소 부진했던 문화예술 강국으로서의 이탈리아를 재조명하게 만든 원인이기도 하다. 한편 베니스비엔날레의 역사는 우리에게 비엔날레의 조타가 어떤 방향으로 맞춰져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나침반과 같다. 만약 그 검증된 나침반 위에 우리만의 성격을 얹힌다면 한국의 비엔날레들도 세계 속 문화예술의 리더로 위치하는 게 그리 어렵진 않을 것이다. 물론 비엔날레를 한낱 '동네미술제'로 이해하는 이들에겐 백번 말해봐야 소용없기 일쑤지만.

2017-06-25 12:43:37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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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동물농장' 같은 아트페어

[홍경한의 시시일각] '동물농장' 같은 아트페어 '아트페어'는 미술이라는 이름 아래 펼쳐지는 가장 시장친화적인 행사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 아트페어라 해도 미술관급 작품들이 즐비하다. 단지 시장에 나왔을 뿐, 작품성과 예술의 다양성이 배제되진 않는다. 기획 또한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려 하기 보단 그들의 문화예술인식을 높이기 위한 방향에서 설계된다. 다소 실험적인 작품들도 과감히 선보인다. 심미적인 것도 많으나 메시지에 방점을 둔 작품들을 찾는 것 역시 수월하다. 때문에 유수의 외국 아트페어에선 단순히 작품을 사고파는 마켓이라는 느낌 보단 어떤 가치까지 고려한다는 인상이 크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아트바젤 홍콩(Art Basel in Hong Kong)'이다. '아트바젤 홍콩'은 그저 그렇던 '홍콩아트페어'를 인수한지 고작 4년 만에 아시아 최대의 미술장터로 올라섰다. 성장의 배경엔 '아트바젤 홍콩'을 이끄는 스위스 바젤 팀의 오랜 경험과 무관세 경제자유지구라는 내외적 환경이 놓여 있다. 그러나 치밀한 기획력, 갤러리 및 작가들에 대한 엄격한 심사, 컬렉터와 일반 관람객 간 철저히 분리된 서비스, 스위스 금융그룹 UBS와의 끈끈한 파트너십, 수준 높은 작품, 수십여 개가 넘는 동시다발적인 행사와 관광을 결합한 시너지 창출에 관한 꼼꼼한 전략도 '아트바젤 홍콩'이 세계적인 아시아중심페어로 자리매김하는데 있어 중요한 동력이었다. 그렇다면 동아시아권에서 가장 먼저 아트페어를 출범시킨 우리나라의 사정은 어떤가. 안타깝게도 '아트바젤 홍콩'의 뒤꽁무니만 좇기에 급급하다. 40여개에 달하는 페어가 난립하고 있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기 때문이다. 기획은 차마 '기획'이라고 말 할 수 없을 만큼 참담하고 작품의 질 역시 재고해볼 여지가 충분하기 일쑤다. 대중의 각기 다른 취향을 포섭하기 위한 다양성 따윈 생각하기도 힘들다. 어느 땐 온통 과일가게 같거나 정육점 같고, 또 어느 땐 질 낮은 짝퉁 마블 코믹스(marvel Comics)의 엉성한 무대 같은 여운을 심어주기도 한다. 문제는 아트페어라는 행사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별로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최근 돌아본 한 페어는 거의 '동물농장'이나 '캐릭터 페어'에 가까웠다. 전시장 구석구석 자리 잡은 건 사자, 사슴, 곰, 토끼 등이었고 전시장 한쪽에는 정체불명의 캐릭터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런 공간에서 '아트바젤 홍콩'이나 '메세 바젤(Messe Basel)'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미학적인 작품이나 사회적 역학관계 속 예술의 본질에 질문하는 작품을 만나는 건 사막에서 우물을 발견하는 것만큼 쉽지 않다. 인테리어업자나 상품 생산자라 부르면 딱 맞을 무늬만 작가들이 후기모더니즘을 병풍삼아 예술인 냥 하는 게 전부다. 궁금한 건 어째서 이런 현상이 그 오랜 시간 아무렇지도 않게 이어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장기적 계획 없이 당장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일부 화상(畵商)들의 비사업가적 마인드부터 들여다보게 된다. 그들은 같은 소비재라도 예술은 결이 다르다는 것을 외면한 채 최소한의 소명의식도 내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작가들에게 돈을 거둬 페어에 참여하는, 땅 집고 헤엄치기 식 일부 영업갤러리들의 행태까지 보인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사고가 꽤나 세련된 '아트비즈니스적'인 것으로 착각한다. 또 하나의 이유는 생존의 낭떠러지로 내몰린 작가들의 상황이다. 작품을 팔지 않으면 도무지 먹고 살기 힘든 작가들에게 아트페어는 유일한 출구다. 그러니 뭔가 좀 팔린다 싶으면 죄다 대중취향에 아부하는 오브제를 내걸면서 작품이라는 이름으로, 작가라는 고귀한 명사를 빌려 쓴다. 여기서 그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술가인지 아닌지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은 스스로 부끄러워하는지 정도다. 만들어진 것을 누군가 구입하는 것과 구입할 수 있도록 읍소하는 것 간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인식하는가도 하나의 구분점이다. 아트페어는 분명 미술품을 매매하는 시장이지만 그것 자체로 의미의 완성은 아니다. 매매가 기획의 전부가 아니게 된 시대에서 대중취향을 단정해버리는 작품으로 승부하겠다는 과거의 발상으로는 더 이상 진일보가 어렵다. 미술이라는 범주에 같이 놓인다고 해서 대중언어에만 치우친다면 예술가의 생명력도 길지 못하게 된다. 길게 보고 멀리 가려면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2017-06-11 10:13:55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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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제비엔날레 초대 예술총감독에 홍경한 미술평론가

강원국제비엔날레 초대 예술총감독에 홍경한 미술평론가 평창비엔날레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강원국제비엔날레 초대 예술총감독 자리에 미술평론가 홍경한(47)씨가 올랐다. 강원국제비엔날레를 주최하는 강원국제미술전람회민속예술축전조직위원회는 지난 4월 25일 이사회를 통해 평창비엔날레를 강원국제비엔날레로 변경·의결하고, 5월 초부터 예술감독을 공개 모집했다. 이후 심사를 거쳐 홍 평론가를 예술총감독으로 선정하고, 지난 30일 열린 제 26차 이사회에서 이를 승인했다. 홍 총감독은 월간 미술잡지 '미술세계' 편집장을 비롯해 월간 '퍼플릭아트' 편집장, 월간 '경향아티클' 편집장 등을 역임한 저널리스트 출신의 미술평론가로, 현대미술에 대한 식견과 경험, 현장 감각을 두루 갖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대림미술관 사외이사, 국립협대미술관 정책자문위원, 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 서울시 미술관·박물관 등록 심의위원 등으로 활동했으며, 오는 2018년 2월부터 개최되는 '강원국제비엔날레'의 운영과 대외협력, 홍보 등을 총괄 담당한다. 홍 총감독은 "상생과 화합, 차이의 극복과 연대라는 평창동계올림픽의 정신 아래 동시대미술이 인류공통의 문제 앞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되묻는 작업들을 선보일 계획" 이라며 "미술언어를 통한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평창비엔날레는 평창동계올림픽을 문화올림픽으로 승화시킨다는 취지에서 20013년 시작됐다. ※홍경한 예술총감독 주요약력 -월간 미술세계 편집장 -월간 퍼블릭아트 편집장 -월간 경향아티클 편집장 -대림문화재단 사외이사 -서울특별시 미술관·박물관 등록 심의위원 -인천아트플랫폼 운영자문위원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 자문위원·박수근미술상 제정 운영위원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자문위원 -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 -서울시립미술관 예술총감독

2017-05-30 20:04:04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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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재능기부'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

지난해 5월 조영남 '대작' 논란이 발생했을 당시 많은 이들을 분노케 한 건 그의 대작 의혹이나 미술계 대작 관행 발언만이 아니었다. 작품 하나를 만들어주고 받은 보수가 고작 10만원에 불과했다는 한 무명작가의 주장이야말로 의분심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조영남 씨 자신은 작품 한 점에 수백, 수천만 원에 거래된다고 알려져 있는데 90%이상 그림을 그려준 이에겐 고작 1점당 10만원을 줬다는 건 누가 봐도 노동착취였을 뿐만 아니라, 자본에 의한 인간의 수단화, 도구주의적 인간관을 읽을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내용과 성격은 다르지만 최근 '흉물' 시비를 낳은 '서울로7017' 설치 작품 슈즈트리(shoes tree)도 예술노동의 대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소위 '재능기부' 형식으로 만들어진 탓이다. 실제로 슈즈트리 제작을 의뢰한 서울시는 높이 17m 길이 100m에 달하는 이 대형 설치 미술 작품을 만드는 데 약 1억 원의 예산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 1억 원에 작가의 몫은 없었다. 지적이 일자 서울시는 예산 구조상 작가 개인에게 대금을 지불할 방법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절차상의 흠은 없을지 몰라도 '슈즈트리'를 만든 작가의 재능기부는 개인이 지닌 재능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의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즉, 재능기부가 오랜 경험과 전문성을 헐값에 구입하고 예술가를 착취하는 도구로 전락한 현실에서 이름 값 좀 하는 예술가의 재능기부와 재능기부를 당연한 듯 여기는 서울시의 행태는 오히려 그동안의 나쁜 관행을 잇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미술계만 해도 재능기부 관련 나쁜 관행의 선례는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과거 한 조각가는 모 미술관으로부터 재능기부형식으로 작품을 기증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보상이라곤 운송료뿐이었다. 작가는 잠시 갈등했지만 미술관 소장품이 된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은 채 결국 작품을 보냈다. 이는 미술관의 권위를 이용해 소장품 목록을 거저 채우려는 질 나쁜 예이면서 차후 합리적 지불에 제동을 거는 좋지 않은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결은 같지 않지만 미술관이 '미술관 프라이즈'라는 괴상한 논리를 내세워 시장가의 절반도 되지 않는 금액으로 작품을 매입하는 것이나, 몇 만원 내외의 초현실주의적인 원고료로 비평을 써달라는 기관, 부산비엔날레처럼 물리적 거리가 예사롭지 않은 곳까지 불러놓곤 겨우 몇 만원 내외의 회의료를 지급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모두 공익을 앞세워 소중한 재능을 무료로 사용하려는 변질된 기부개념이 작동한 우리 미술계의 악습이다. 이밖에도 자본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직접 생산자로부터 노동의 성과를 무상으로 취득하는 행위는 우리 주변에 흔하다.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왜 돈에 연연하느냐는 식의 괴이한 발상도 드물지 않다. 서울시만 해도 '슈즈트리' 외, '서울로 7017'이라는 이름과 브랜드 이미지(BI) 역시 재능기부를 통해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원순 시장이 워낙 기부를 좋아한다는 건 잘 알려져 있지만 상습적 행정원리로 비춰지는 건 문제가 있다. 물론 사회기여로서의 기부, 진지한 여가라고 할 수 있는 자원봉사, 일상에서 쉽고 재밌게 '나눔'을 행하는 '이지 오블리주(Easy Oblige)', 스스로 행하는 재능기부 자체는 격려할 만하다. 자발적 나눔이 증가하고 나무뿌리처럼 넓고 깊게 뻗어나간다면 기부는 사회적 갈등과 불균형을 해소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이타심의 가장 직접적 실천이라는 점에서 기부문화는 장려되어야 옳다. 다만 재능기부까지 경쟁시켜 심사하는 경우에서처럼 순수한 재능기부를 악용하는 자들에 의한 인식적 폐단과 답습을 고려해야 하고, 재능기부는 공짜라는 비생산자들의 그릇된 의식을 부추기는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명망 있는 생산자들의 태도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뜻과 다르게 누군가는 예술노동의 대가를 무시하는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는 데다, 합당한 비용을 요구하는 후배 또는 다른 예술가들을 향한 불편한 관습의 생성에 힘을 보태는 '몹쓸 기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17-05-28 13:54:31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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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예술과 액세서리

얼마 전 모 미술관에 근무하는 한 지인은 “미술관이 돈 있는 사람들의 놀이터 같다”며 머잖아 그만 두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작품 소장, 교육, 연구라는 미술관의 기본적인 역할에 충실하지도 않을뿐더러, 예술자체를 품위 있는 척 포장하는 ‘액세서리’ 정도로 여긴다는 의미였다. 그의 푸념은 안타까움을 불러왔지만 그렇다고 버텨보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아니, 예술과 예술 공간을 처세와 고상함을 꾸미는 사적 도구로 여기는 곳에 오래 있어봤자 남는 건 피폐해진 정신일 것이라 오히려 그만두라고 조언했다. 그것도 하루라도 빨리. 경제적 상황이 그리 좋지 못한 예술가들에게 수준 높은 미적 태도와 인문학적 지식을 겸비한 자본주들의 관심은 때로 마른 땅을 적시는 단비와 같다. 특히 요즘처럼 예술가로서의 삶이 위태로운 시대에서 남다른 예술 안목을 지닌 부호들의 지원과 애정은 창작의 지속성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모든 후원과 지원이 공익적이거나 순수한 것만은 아니다. 그것에도 거죽의 명분과 내용은 각기 다르게 존재하며, 긍정과 부정이 동시에 부유하거나 동기에 따른 차이가 이입되어 있다. 이는 메세나(mecenat)의 기원으로 꼽는 로마시대는 물론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메디치 가문을 위시한 이사벨라 데스데,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와 같은 여러 역사적 인물들이 예술지지자로 나섰던 르네상스시대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잊힌 고대세계의 문화(고대 그리스 로마)에서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찾으려 했던 14세기 이후의 르네상스가 제대로 꽃을 피울 수 있었던 배경엔 당시 권력 핵심이었던 교회와 도시국가를 지배하던 영주들, 그리고 경제력을 갖춘 일부 가문들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당시 권력자들은 단테를 비롯한 인문주의자들에 의한 인문 열풍에 힘입어 고대의 예술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예술창작을 적극 후원하고 나섰다. 때문에 고작 200여년 남짓한 시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문화예술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후원의 배경엔 개인의 영웅화와 가치실현의 인위성도 들어 있었다. 역사에 흔적을 남기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예술 후원과 권세를 널리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예술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가문의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키고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미술의 시각적 권위(기념물이나 초상화, 역사화 등)를 이용했다. 도시공국의 유력 가문들은 다른 도시국가와의 원만한 외교를 위해 예술가들을 이용하기도 했다. 취약한 정통성을 확보하고 권위를 획득하려는 목적에 따라 예술 사랑을 내세운 예도 있다. 외교무역과 금융업으로 부를 축적한 거상(巨商)들이 고대의 조각품을 소유하는 것으로 자신의 부와 명예를 과시하기에 바빴던 사례가 그 하나이다. 흥미로운 건 그때나 지금이나 예술을 고상함과 품격을 유지하는 '장식' 정도로 여기는 이들이 드물지 않다는 점이다. 일부 기업들은 천한 장사치의 이미지를 감추기 위해 찬란한 예술의 후광을 ‘하얀 가면’처럼 여기며, 허세 차원에서 혹은 그 세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예술 공간을 짓고 그림을 구입한다. 누군가는 지식과 역사, 인류사의 전당인 미술관의 가치를 등진 채 탈세의 목적으로, 부의 조건 없는 이전 창구로 공간과 미술품을 악용한다. 물론 보편적이지 않아 그렇지, 문화향유 확대라는 공공적 관점으로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예술품을 수집하는 이들도 있다. 예술 지원은 기념비적인 예술의 탄생을 예고케 하며 문화예술의 틀과 미래마저 바꿀 수도 있다는 점을 인지한 이들도 드물지는 않다. 허나 아직도 우리 사회엔 지역 유지로 행사하기 위한 도구로 미술관을 운영하는 이들이 있고, 미술관 운영에는 별 관심이 없으면서 관장이라는 직함에 따른 사회적 평가에 고무되어 미술관을 유지하는 듯한 느낌을 심어주는 곳도 없는 건 아니다. 비록 소수일지라도 그들에게서 체감되는 사실은 예술을 천박하고 세속화된 욕망의 수단으로 삼거나 창작환경의 열악성을 자신의 불편한 예술취향에 대한 호불호로 허용하고 있다는 것을 남들은 다 알고 있음에도 정작 자신만 모른다는 점이다. 내부에서 보면 되레 그들 자체가 문화 인식적 액세서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2017-05-14 11:53:12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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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찬밥' 면치 못한 대선후보 문화예술 공약

최근 가가호호 발송된 '제19대 대통령 선거 선거공보'에는 각 후보들의 공약과 정책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하지만 그들이 적시한 공약의 대부분은 안보와 경제, 사회, 복지 등에 국한될 뿐 문화예술에 대한 언급은 아예 없다. 주요 후보들의 4차례 TV토론에서도 문화예술은 빠졌다. 오는 5월 2일 한 번의 토론이 더 남아 있지만 역시 문화예술은 열외다. 두어 시간 남짓한 공적인 채널에서조차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문화예술은 후보들마다 운영 중인 누리집에서도 마찬가지 대우를 받는다. 구석구석 뒤져봐도 관련 시책은 찾기 어렵고, 있다 해도 존재감은 초라하다. 심지어 안철수 후보의 누리집에선 '기타' 부분을 클릭해야 '예술분야'가 등장한다. 사회 갈등 해소의 참다운 묘약이자 문화강국의 디딤돌이 되어줄 예술과 예술인들에 대한 정책은 이처럼 뿌옇고 뿌옇지만 불행 중 다행이도 순전한 누락은 아니다. 다만 대체로 두루뭉술하고 허약하다는 게 문제다. 일례로 지난 4월 25일 한국문화경제학회와 입법조사처 공동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차기 정부 문화정책' 세미나 자료를 보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문화예술 공약으로 '예술인 문화 복지 사각지대 해소'와 '예술인 창작권 보장'을 내세웠다. 4월 29일 공개한 공약집 '4대 비전 12대 약속'엔 '문화유산가치 제고' 및 '지역 간 문화 격차 해소', '공정한 문화산업 생태계 조성' 등도 포함되어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문화가 있는 삶의 구현', '문화산업발전의 지속 가능성 확보', '관광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선진화' 등을 주요 문화예술 정책으로 내걸었다. 공약집에는 그 하위 카테고리로 '문화예술공정화 특별법 제정', '문화예술 공공기관 예술인 중심 자율기구화', '문화기본권 보장 정책 수립과 실행', '예술인에 대한 사회보장 확충' 등을 올려놓고 있다. 바른정당의 유승민 후보는 '문화민주주의'와 '한류산업 육성', '장애인 문화예술 활동 확대' 등을 관심정책으로 내놨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문화예술인 노동기본권 보장', '문화예술정책 및 재정의 정의로운 전환' 등을 관련 정책으로 꼽았다. 그러나 이들이 앞세운 공약의 다수는 이미 지적되어온 문제들을 재차 짚어내는 수준에 불과해 깊이가 없다. 한국 문화예술계는 어떤 문제를 거론하는 단계를 넘어 그 문제에 관한 대안이 절실한 시점이지만 각 대선 후보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방법론은 꽤나 기초적, 원론적이다. 재탕, 중복 공약들도 넘친다. 문재인 후보의 '예술인 창작권 보장'이나, '생활문화육성',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 등의 공약은 이미 지난 2012년 제18대 대통령 후보 당시 밝힌 10대 문화공약 중 하나로, 진일보한 측면이 약하다. 안철수 후보의 '문화예술인 근로조건 개선' 등은 사실상 타 후보들의 '문화 복지'와 '문화예술인 노동기본권 보장'의 테두리 내에 든다. 그의 또 다른 공약인 '문화콘텐츠 저작권 강화'나 유승민 후보의 '청년일자리 창출 사업 추진' 역시 지난 대선 때 회자된 아이템이다. 특히 유승민 후보와 심상정 후보가 언급한 '문화민주주의', '문화예술정책 및 재정의 정의로운 전환'은 지나치게 피상적이고, 문재인 후보의 '한류 르네상스 실현'과 유승민 후보의 '한류산업 육성'은 민간에서 시작된 흐름에 편승하려다 용두사미로 끝난 이전 정권의 정책을 반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루한 측면이 있다. 딱히 누구라고 할 것 없이 10여년 이상 되풀이되고 있거나 겹치는 공약들이 드물지 않은 현상은 예술인 실업급여제도 도입, 예술인 4대 보험 지원, 공정계약 보장, 문화격차 해소, 지역 문화 활성화, 문화재 보존 관리 등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하나같이 설득력 있는 재원 조달 방법을 내놓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듯 변별력이 희미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정권이 바뀌어도 문화예술 공약이 지속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중요하고 여전히 개선해야할 필요성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얼마든지 문제 개선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전현직 국회의원, 당대표 등을 지낸 후보들이 고루 포진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지금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야말로 평소엔 무관심으로 일관하다 55만 명으로 추정되는 예술인들의 표를 의식하면서 새롭지도 않은 카드를 누차 꺼내들고 있는 셈이다.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 공약을 제외하곤 가치 구분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내용, 독자성을 따질만한 문화예술정책이 드물다는 건 밝은 미래의 실질적 근원인 문화예술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결여되어 있음을 반증한다. 우리네 삶의 질을 풍요롭게 제시하며 인류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해온 예술에 대한 낮은 의식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일부 문화예술인들은 개인 혹은 단체를 구성해 특정 후보들을 지지하는 등, 대통령 만들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짝사랑도 이런 짝사랑이 없다.

2017-04-30 16:10:07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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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국립현대미술관 마리 관장의 변명

지난해 말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미국의 팝아트 작가인 '앤디워홀'과 영국의 '리처드 해밀턴', '피카소' 등의 서양 거장들의 전시를 2017~2018년 순차적으로 선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마리 프로젝트'라 이름 붙인 이 전시들은 발표한지 불과 두어 달도 채 되지 않아 줄줄이 엎어져 전시파행 논란을 일으켰다. 2월 열릴 예정이던 '앤디 워홀의 그림자들'전은 개막 코앞에 이르러 진행이 중단됐고, 2018년 선보일 계획이었던 '피카소와 전통예술'전도 취소됐다. 여기에 4월 개막을 예고한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1938-1965)'전 역시 개막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시점에서 갑작스럽게 미뤄졌다. 파행이 잇따르자 마리 관장에 대한 미술계 여론은 취임 초기보다도 훨씬 나빠졌다. 언론의 질타가 이어졌고 일부 미술인은 국격을 손상시켰다며 마리 관장에게 손해배상까지 청구해야한다는 격앙된 반응까지 보였다. 그러자 마리 관장은 최근 적극 해명에 나섰다. 하지만 일부 매체에까지 소개된 내용은 말이 해명이지 사실상 변명과 다름없었다. 일례로 마리 관장은 '앤디 워홀의 그림자들'이 무산된 이유로 미래 사업에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어려운 운영시스템과 예산 과다를 들었다. 즉, 통상 1년 단위로 전시 계획을 잡아야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구조상 미리 전시기획을 짜놓을 수 없고, 그래서 중국에서 열리고 있던 전시를 가져오기로 했지만 막상 개인전에 8억 원의 예산을 사용하려니 부담스러워 전시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2018년 개최하겠다고 공언한 '피카소와 전통예술' 전시가 물 건너간 것도 돈 문제로 넘겼다. 2017년 기준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예산이 총 88억 원인데, 적게는 20억 원에서 많게는 30억 원이 투입되는 피카소 전이 미술관 운영에 부담을 줄 수 있어 취소했다는 것이 요지다. 전시가 미뤄진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1938-1965)'에 대해선 반출 승인과 포장 지연이 원인이라고 밝혔다. 전시가 무산된 이유에 관한 해명 혹은 설명의 글에서 받은 인상은 굴비 엮듯 취소 및 연기되며 관장 자질 논란까지 몰고 온 전시파행이 자신 탓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전시가 약속대로 열리지 못한 원인으로 운영시스템과 예산문제를 꼽았을 뿐 미술관 수장으로서의 책임의식 부분에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 않았다. 프로답지 못한 전시기획에도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예산이 미술관에 부담이 되는지 여부도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시를 추진하다 뒤늦게 포기를 선언하는 행태나, 작품 선정 및 통관 일정 등의 기본적인 사항마저 협의되지 않은 채 말부터 앞선 경솔함 등은 그의 해명 어디에도 녹아 있지 않다. 그는 "외부에서 재원지원을 받아 부족한 예산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전시를 진행했다)"는 어이없는 발언도 해명에 덧붙였다. 이 말은 재정의 취약함을 알면서도 전시를 추진했다가 막상 마음처럼 되지 않자 전시를 덮은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는 달리말해 상황이 불충분하면 언제 어떤 전시든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국민과의 약속을 이처럼 쉽게 뒤집는 양태는 전문 기획자로서의 자세라고 판단하기 힘들다. 어쨌든 현 시점에서 마리 관장 스스로 호언했던 전시들은 무엇 하나 제대로 지켜진 게 없다. 이미 상업기획사들이 숱하게 우려먹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이템, 적어도 동시대미술의 최전선을 비춰야 할 국립현대미술관이 다루기엔 적절하지 않은 작가들의 전시조차 채 무위에 그쳤다. 그에 비례해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신뢰도 추락했다. 그렇지만 전시 파행이 마리 관장만의 책임은 아니다. 실무진들도 비판의 대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두 번도 아니고 관장의 이름을 내건 전시들이 연거푸 실없이 처리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관장의 역량을 보완해줄 이들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탓이다. 관장이 뭘 잘 몰라 실수라도 할라치면 주변에서 보태거나 빼줘야 하는데 그런 일련의 프로세스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요즘은 국립현대미술관을 말할 때마다 소통부재가 언급되고 학예실장과 팀장들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쓴 소리가 심심찮게 나온다. 새롭지도 않은 전시를 기획해 놓고 성사도 못시키는 일개 화랑만도 못한 현재를 질타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이러다 능력 없는 자들이 세금으로 월급 받으면서 공공기관에 눌러앉아 폼만 잡는다는 얘기라도 들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2017-04-16 14:42:52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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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무덤 같은 '조각공원', 질 낮은 '테마공원'

[홍경한의 시시일각] 무덤 같은 '조각공원', 질 낮은 '테마공원' 전국에는 많은 수의 조각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적어도 각 지자체마다 한두 개씩은 설치할 만큼 인기 있는 아이템이다. 그러나 이들 공원은 대체로 일관성이 없거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공통된 주제가 희미하다. '조각공원'이라는 명칭이 유일한 통일감을 제공할 뿐 그저 다양한 작품들을 중구난방 늘어놓은 수준이 태반이라는 것이다. 작품의 질도 천차만별이다. 일부 조각공원의 경우 지나치게 대중적 취향에 맞추다 보니 예술적 가치란 놀라울 정도로 낮다. 가끔 세계적인 조각가 운운하는 문구도 보이지만 이는 조각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시민들을 유혹하는 미사여구에 불과하다. 작품성 역시 논하기조차 부끄러운 것들이 다수에 달한다. 조각품을 통해 미적 체험을 유발하고, 체험의 극대화를 위한 다양한 동력 행사들이 구동되어야 마땅하나 지자체 어느 조각공원에서도 그런 기획들을 접하는 건 쉽지 않다. 유명하다는 조각공원 또한 일정한 프로그램 없이 그저 여기저기 작품들을 을씨년스럽게 배치해놓고 만 경우가 일반적이다. 때문에 우리나라의 조각공원은 '조각무덤'에 가깝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인근 관광지의 이미지를 연계·반영하며 지역적 특성을 적절히 배합시키려 노력한 예도 있다. 소위 조각공원만큼 지자체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테마공원'이다. 하지만 이 또한 지역재생과 관광인프라 조성을 위한 적절한 환경과 질을 담보하지 못하긴 매한가지다. 일례로 얼마 전 논란이 된 군위군 '대추 테마공원'에는 지역 특산물인 대추를 형상화한 조각 작품들이 서너 개 들어서 있다. 높이 11m에 달하는 대추조형물(대추탑)을 비롯해 과일대추로 유명한 왕대추 조형물도 앉혀 놨다. 최근엔 새로운 형식의 조형물(?)이라는 '대추 화장실'까지 추가했다. 군위군의 대추공원은 지역 특산물인 명품 대추를 홍보하기 위해 지난해 완공됐으며, 의흥면 수서리 부지 9142㎡에 약19억 원의 사업비를 들였다. 그러나 이곳에 설치된 조각 조형물들은 다소 키치적인데다, 외부인을 끌어 모을 조경 및 휴게시설, 조망시설, 위락시설 등은 거의 없다. 이름만 공원이지 벌판에 대추나무 몇 그루와 조형물을 설치한 게 전부다. 인구 2000여 명이 거주하는 외딴 시골에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찾을지도 미지수다. 이처럼 개성 부족한 조각공원과 테마공원은 사실상 예산 낭비의 전형으로 꼽힌다. 지역민조차 비판하는 군위군 '대추 화장실'이 그 예다. 3개의 대추알을 늘어놓은 이 화장실은 7억 원이라는 귀한 몸값을 자랑하지만 시각적으로는 '추의 미'와 이웃한다(좋게 말해 그렇다는 것이지 솔직히 흉물스럽다). 그럼에도 연간 자체 수입 220여억 원에 불과한 군위군은 3.3㎡에 1700만원에 달하는 예산을 쏟아 부었다. 군위군의 재정자립도는 14%로 전국 꼴찌다. 그렇다면 국내 조각공원과 테마공원들의 현실이 이처럼 초라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공원에 대한 전문적 이해와 지식 없이 조성만 하면 지역중흥이 저절로 이뤄질 것이라는 지역 정치인들의 막연한 기대심리가 문제다. 자발적 시민발의라는 절대적 명제는 외면한 채 임기 중 뭐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공무원들의 조급한 마인드와 전시행정이 원인인 셈이다. 또 하나는 미흡한 설계다. 조각공원이든 테마공원이든 그것이 공원이라면 다양한 생태적, 문화적, 풍토적 가치를 일상에서 환기할 수 있도록 제시하고, 효과적인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계획이 섬세하게 구현되어야 하지만 실제론 주먹구구식이기 일쑤다. 그마나 홍보조차 변변하게 하지 않는다. 때문에 개장한지 몇 년이나 지났음에도 하루 방문객이 두 자리 수를 넘지 못하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우리의 조각공원 또는 테마공원들이 그 의미와 역할에 충실하려면 물리적 만족감을 넘어 사회적 의미로 상승될 수 있는 시민합의 및 구조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근대식 토목주의를 버리고 처음부터 문화적 향유와 교육적 측면까지 고려대상으로 삼아야 옳다. 명확한 콘텐츠와 흥미로운 프로그램, 서비스시설에 대한 관심도 필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 모든 것이 원활하게 이뤄질 때 다양한 양식과 형태를 내포한 넓어진 공간개념으로서의 공원, 시민들의 삶이 투영된 공원이 생성될 수 있다. 지자체들이 그토록 원하는 세수증가와 관광인프라 확장, 지역 활성화도 그때서야 비로소 기대 가능하다. 허나 지금처럼 무덤 같은 '조각공원'과 질 낮은 '테마공원'으로는 어림없는 바람이다.

2017-04-02 12:05:23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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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싸구려와 껍데기들

예술가들의 책무는 시대정신과 예술가치의 선상에서 예술의 정의를 끝없이 재생산하는 것에 있다. 예술존재에 대한 미학적 태도와 고민을 통한 새로운 규정을 제시하는 것 역시 예술가들이 해야 할 일이다. 즉, 예술가란 작품인체 포장된 '물건'을 만드는 자가 아니라 예술이 예술로서 존재할 수 있는 방식과 이유를 스스로 재규정하는 자를 일컫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오늘날 '작가'라는 명사에는 취향공동체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이들도 다수 끼어 있다. 미적 수준이 곧 위선적 교양인 이들에게 아양 떠는 대가로 몇 푼의 돈을 받는 '장식품 생산자'도 포함된다. 심지어 직접 '유통'에까지 뛰어 들어 '판매'에 열을 올리는 장사치들도 이젠 작가다. 그야말로 작가 인플레다. 작가 인플레를 주도하는 부류는 유행 중심의 미술, 소비 지향적 미술, 시장 중심적 미술 추구로 예술의 예술에 의한 예술적 방법론을 방해한다. 금전을 숭배하는 싸구려 철학으로 미술자체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연구, 무게감 있는 시대담론 형성마저 저해한다. 물론 미술이 스스로 미술일 수 있는 근거를 배제함으로써 미술작품이 단순한 인테리어용품과 어떤 차이를 갖는 것인지 규명할 수 없게끔 헷갈리게 하는 것도 그들의 특징이다. 문제는 오로지 타인의 지갑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중에 아부하는 '아무나 작가들'의 습성이 어떤 거름장치 없이 미술공동체에 스며들면서 휘발성 강한 '상품'을 진정한 예술인 냥 대우하거나 치부되는 상황이 보편화되어 간다는 점이다. 심지어 예술가를 정의하는 새로운 잣대로 시장에서의 능력과 가능성을 옹립시키기까지 한다. 이는 중요한 시대와 역사, 문화적 담론생산자로서의 작가적 위치를 약화시킴은 물론, 풍요로운 동시대미술의 다양성을 획일화하고 왜곡하는 작가 과잉의 폐해라고 할 수 있다. 심각한 건 이러한 폐해가 갈수록 견고해지고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별 볼일 없는 작품성임에도 상업적 기념비를 획득한 혹자들은 마켓에서의 영화(榮華)가 훗날 미술사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식의 황망한 믿음을 예비 작가들·학생들에게 심어준다. 일부는 성과주의에 미쳐있는 일부 정부기관들의 지원에 힘입어 시장에서의 성공을 미술계 전반으로 옮겨오거나 배양함으로서 미술의 가치 옹립과 아무 상관없는 오염된 예술관, 상업주의와 포퓰리즘을 대중에게 광연하게 전파한다. 불행히도 오염된 예술관의 확장에는 미술관들도 거든다. 주지하다시피 오늘날의 미술관은 더 이상 미적 가치체계를 획득하고 규정하는 공간이 아니다. 엘리트적이고 교육적인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일반 대중문화에서는 찾기 힘든 작품을 전시하고 창조의 자율성을 유지시킬 수 있음을 자발적으로 증명해야하지만, 미술관 또한 상업적광고와 대중주의에 침몰되어 있을 뿐이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예술의 정의를 끝없이 재생산하는 참다운 예술가들의 책임과 의무에 대한 고지 및 후원 대신 거대 갤러리와 진배없이 대중의 취향에 문을 열어 브랜드화하고, 마케팅, 대기업과의 파트너십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에 더 많은 공을 들인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마치 동시대미술의 최신 흐름인 냥 질서를 부여하면서 미술계와 국민들을 호도하고 기만한다. 정부의 그릇된 가시적 결실주의와 미술관으로서의 역할이 뭔지 모르는 미술관, 창작자들까지 유통시장에 손을 뻗거나 졸업 전부터 '돈 맛'에 길들이기 급급한 학교가 미래의 예술상을 지배하는 사이, 정작 창작에 있어 각인해야 할 많은 것들은 외면된다. 민생고해결을 위한 최소한의 선택이 아닌 한 미술의 가치와 시장의 가치를 명료하게 구분하고 있는 작가들을 점점 더 변방으로 밀어낸다. 반면 미술이 기획의 형태로 생산, 소통, 소비되는 중심에 예술가가 있어야 한다고 착각하는 작가들은 그만큼 늘어난다. 사교와 부르주아적 품위유지에 부역하는 수가 증가할수록 천박한 미술상황은 더욱 상스러워지며, 이윤추구에 부응하는 투자가치에 의해 예술작품이 재단되거나 계량되는 구조 역시 보다 굳건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지금도 유효하다. 작금 우리 앞에 놓인 미술계 현주소다. 그런데도 어느 누구하나 말 하지 않는다. 지적도 없고 개탄도 없다. 허긴, 이미 싸구려와 껍데기들이 장악한 판에서 뭔 말인들 귀에 박힐까 싶지만.

2017-03-19 11:52:49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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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문화예술계에 드리운 '사드' 먹구름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가운데 한국 문화예술계의 피해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국 영화 및 드라마의 방송 중단, 연예인 출연 중단에 이은 출판계약 잠정 연기·보류, 한국작가들의 전시 불허 및 통관 지연, 비자발급 거부 등 중국정부의 보이지 않는 보복성 조치는 외교와 군사, 경제 분야를 넘어 문화예술계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일례로 3월에 예정되어 있던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중국 구이양(貴陽)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불발이나, 중국의 비자발급 지연에 따른 소프라노 조수미의 중국 내 주요 도시 순회공연 취소,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의 상하이발레단 출연이 흐지부지되었다는 소식은 이미 언론을 통해 잘 알려진 사례다. 올해 국내 국공립미술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한·중 수교 25주년 기념 전시회 무산도 대표적인 사드 보복의 일환으로 확인됐다. 이 행사는 경기도미술관 외에 경남도립·제주도립·수원시립·청주시립미술관이 참여하는 대규모 전시였으나 개막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중국 측의 일방적인 불참 선언으로 행사를 접어야 했다. 언론에는 보도되지 않았지만 문화예술을 유질(留質)화 한 중국의 앙갚음은 현장에서 훨씬 광범위하고 미시적이다. 일례로 최근 한 미술평론가는 자신의 저서를 중국어와 영어 번역본으로 출간하려던 계획을 잠정 보류했다. 출간을 위한 편집 작업까지 마쳤지만 중국 정부로부터 출간허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2월엔 중국의 한 유명 컬렉터의 방한이 전격 유보됐다. '큰손'으로 꼽히는 이 컬렉터는 한국 작가의 작품을 대량 구입하기 위해 작가 작업실을 방문하는 등의 구체적인 계획까지 보내왔으나 갑자기 철회의사를 밝혀 그동안 거래 성사를 위해 공을 들였던 갤러리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갤러리 측은 그 원인을 작금 팽배해진 사드 갈등에서 찾았다. 이밖에도 한국 작가들이 중국 내 전시와 판매 관련해 통관과 비자발급 문제로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심지어 중국은 자국 내 갤러리와 미술관들의 한국 작가 전시까지 개입,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한중 간 문화예술교류는 악화일로가 예상되고 있다. 사실 사드 문제는 국론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서둘러 배치를 결정한 우리 정부의 미숙한 행태에 1차 원인이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냉정하고 객관적인 판단 아래 진행해야 했으며, 복잡하고 예민한 주변정세를 다양한 외교 채널을 통해 효과적으로 풀어내는 지혜가 필요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모든 면에서 만족스럽지 못했다. 건강한 내부 토론과정이 생략된 것은 물론 자국 이익을 중시하는 국가들 간 이해와 조율, 설득에도 실패했다. 중국의 반발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됐다. 그렇더라도 가치중립적인 문화예술마저 볼모로 잡은 중국의 양태가 합리화되는 건 아니다. 예술은 정치를 담을 수 있어도 예술이 정치적 수단 혹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폭력적 수법으로 사용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현재의 처사는 비겁하다 못해 저열하다 해도 무리는 없다. 특히 앞에서는 대외협력을 강조하면서 뒤로는 제재를 노골화하는 중국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은 그야말로 옹졸한 작태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중국의 졸렬함도 그렇지만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고 있음에도 천하태평인 우리 정부의 안일한 마인드에 있다. 사안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밝힌 대안이라곤 고작 검토, 모색, 예의주시, 고심 등의 한가로운 말들뿐이다. 더구나 문화예술에 대한 언급은 아예 없다. 중요한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항상 그랬지만 그들 머릿속엔 대체 무엇이 들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2017-03-05 11:35:54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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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어느 작가의 지난 2년

유명 작가인 A는 B작가와 일면식조차 없었다. B의 작품을 제대로 본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A는 B가 자신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단정했다. 작품 해석은 물론 같은 재료와 방법론을 구사했다며 공공연하게 밝히기까지 했다. 필자의 시각은 그렇지 않았다. 둘 다 누구든지 인용 가능한 공유저작물에 흔한 오브제를 부착하는 방식의 작품들이기에 가시적 오해의 가능성이 없진 않으나, 개념이 달랐고 내용도 달랐다. 심지어 접근 방향 및 표현방식에서도 교차점은 빈약했다. 때문에 눈에 비춰진 단순 유사성만으로 표절이라기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A는 B가 자신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굳게 믿은 나머지 보도자료를 작성해 여러 언론에 배포했다. 동시에 B의 전시를 진행 중이던 C갤러리에 이메일을 보내 전시를 취소하라며 압박을 가했다. 필자는 의아했다. 표절이라 보기엔 심도 있는 고찰이 누락되어 있었던 데다가 표절 의혹만으로 실명까지 거론하며 동네방네 공표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쉽게 납득되질 않았다. 아니, 한번 표절 작가로 인식되면 작가 생활에 치명적일 뿐만 아니라 상당히 오래 걸려야 회복된다는 점에서 조심스럽지 못한 처사는 꽤나 우려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언론보도는 가혹한 일상을 만들었다. 여기저기서 A의 주장을 담은 기사가 쏟아졌고 B는 하루아침에 표절 작가로 낙인찍혔다. SNS에는 '썩 좋은 수준이 아닌' B가 A를 '벗겨 먹었다'는 치욕스러운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미 홍보까지 진행된 전시를 멈출 수도 없고 A의 표절 주장을 무조건 무시하기도 찜찜했던 갤러리는 전시일정 축소와 함께 이례적으로 '갤러리에 손해가 발생하면 B가 책임지겠다'는 계약서를 요구했다. B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굴욕이었다. 이 와중에도 A는 전시가 진행 중인 갤러리에 B가 자신의 작품을 2005년경부터 표절했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거듭 발송했다. 그는 3류의 감성, 3류의 정신과 태도를 가진 사람의 전시를 취소하지 않은 건 유감이라고 적었다. 여기엔 타인의 발언을 인용해 "표절을 습관적이고 의도적으로 하는 사람", "깜이 아닌 사람" 등의 비하적 표현도 포함되어 있었다. B 작가는 어째서 자신에게 이처럼 부적절한 일이 발생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모멸감에 괴로웠지만 무엇보다 30년 작가로서의 삶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고통이야말로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이에 B는 고민을 거듭하다 A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오해가 있다면 풀어 보려는 마음에 만남을 시도했으나 거부당한 이후였다. 법정에선 A가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갤러리에 압력을 넣게 된 동기와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이 다뤄졌다. 사달의 원인인 표절여부도 중요한 쟁점이었다. 그리곤 오랜 시간이 흘러 드디어 선고가 나왔다. B의 승소였다. 법원은 표절 문제에 대해 B가 A의 작품방법의 독창성을 도용하였다는 A의 표현은 진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나아가 업무방해와 명예훼손도 인정했다. 하지만 A는 항소했다. B의 표절은 진실한 사실이며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도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길고 긴 법정다툼이 이어졌다. 그 사이 해가 세 번이나 바뀌었다. 결과는 이번에도 B의 승소였다. 항소심 법원의 판단은 필자의 예상과 같았다. B가 사용한 작품 이미지는 누구나 패러디할 수 있고, 표현방법 역시 보편적이라는 점을 들어 A의 표절 주장을 일축했다. 갤러리에 이메일을 보낸 행위는 B의 인격적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며, 전시업무를 방해한 것으로 봤다. 상습적 표절자라는 주장 역시 진실한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오히려 법원은 A가 B에 대해 매우 감정적이고 비하적인 표현을 동원하여 B를 자신의 작품을 비롯해 제3자의 작품까지 표절해온 상습적 표절자로 비난한 것은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위법한 공격'에 해당한다며 1심보다 무거운 시선을 덧댔다. 그리고 그렇게 약 2년간 이어진 어느 작가의 법정공방은 일단락됐다, 1심과 2심 모두 승소함으로서 B는 최소한의 명예를 회복했다. 하지만 느닷없이 표절작가로 둔갑된 채 지내야 했던 지난 시간은 보상받지 못했다. 수면제 없이는 잠을 청할 수 없었던 실체적 삶, 아픔을 끌어안고 살아야 했던 그 많은 세월은 이미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물론 A도 남을 것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시간과 금전, 막대한 감정소비가 이뤄졌다. 아쉬운 것은 만약 A가 조금만 더 신중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그랬다면 작품의 표현형식과 지향점이 다름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고 소송까지 가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정말이지 약간만 사려 깊었다면 누군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거나 스스로 피폐해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다 지난 일이지만. 한편 필자는 이번 표절 논란을 지켜보며 소통이 부재한 사회, 갈수록 모질고 혹독해지는 미술계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영 개운하지 않았다. 표절 여부를 가리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게 사람인데 그게 또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에 씁쓸함을 느꼈다. 예술도 결국은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사람의 것이거늘.

2017-02-19 13:17:04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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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예술'로 짓는 연홍도와 양구군의 꿈

일본 시코쿠 가가와현에 위치한 나오시마는 한때 미쓰비시제련소의 쇠퇴와 환경오염으로 썩어가는 섬이었다. 그러나 산업폐기물만 가득 쌓인, 보잘 것 없는 도서 중 하나였던 이 섬은 19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며 많게는 100만 명이 찾는 '예술의 성지'로 탈바꿈했다. 우리나라에도 예술을 통해 한국판 나오시마를 꿈꾸는 섬이 있다. 바로 전남 고흥군 '연홍도'이다. 소록도를 잇는 거금도 끝자락에 위치한 연홍도는 현재 섬 전체를 미술관으로 가꾸는 프로젝트가 한창이다. 이미 섬 미술관으로는 국내 유일의 연홍미술관이 터를 잡았고 인근 금당도와 비견도 절경을 만날 수 있는 산책길이 마무리됐다. 아기자기한 작품들과 담장벽화는 물론 섬의 역사와 주민들의 모습을 꾹꾹 담은 사진박물관 시설작업을 마쳤다. 연홍도 프로젝트는 지난 2015년 전라남도가 추진한 브랜드 시책사업 '가고 싶은 섬'에 선정되면서 시작됐다. 먼저 100여명의 주민들이 '예술섬' 만들기에 팔을 걷어붙였고, 고흥군의 행정과 예산이 덧대어지면서 주목받는 섬으로 급부상했다. 고흥군은 내년 말까지 예산 약 40억 원을 들여 한국판 나오시마의 꿈에 한발 더 다가선다는 계획이다. 연홍도가 국내 최초의 '섬 미술관'을 지향한다면 강원도 양구군은 내륙 최초의 '군(郡) 미술관화'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여타 지자체에선 보기 드물게 군 전부를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만들기 위해 오랜 기간 다양한 기획과 투자, 협업이 이뤄져 왔기 때문이다. 양구군의 '군 미술관화' 프로젝트의 변별점이자 특징은 고흐의 마을 아를이나, 샤갈의 마을 생폴 드 방스처럼 한국 근대미술의 거장이며 가장 한국적인 작가로 인정받는 박수근 화백이 놓여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양구군의 '군 미술관화'는 '군의 박수근 미술관화'와 갈음된다. 사실 양구군의 이 야심찬 프로젝트는 박 화백의 고향이자 예술적 기원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동력으로 한다. 강원도 유일의 공립미술관인 박수근미술관이 건립된 2002년부터 그려진 밑그림의 결과다. 다만 보다 세밀하게 구도를 짜고 색을 입힌 건 현 전창범 양구군수가 취임한 지난 2006년 이후이다. 전 군수는 성공적으로 평가받는 동서고속철도 개통 확정, 수박·멜론·곰취·시래기 등 지역 특산물의 명품 브랜드화 외에도 스포츠 마케팅을 통한 지역경제활성화에 공을 들여왔다. 한편으론 경제적 지표 이상으로 예술적 지표에 대한 애착 역시 강하게 내보였다. 그리고 그 의지와 열정은 '군 미술관화' 프로젝트라는 개념 아래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10여 년 동안 양구군은 박수근을 중심으로 한 '군 미술관화' 사업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박수근의 삶과 예술을 기리고 우수한 작가를 발굴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2016년 '박수근미술상'을 제정했고, 박수근의 호를 딴 미술인공동체인 '미석예술인촌' 조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엔 박수근 미술체험마을 조성사업을 비롯해 박수근 광장 조성, 아트로드 조성, 정림리 예(藝)풍경 마을 조성사업 등의 여러 도시계획플랜 등을 구체화하며 '군 미술관화' 사업을 본궤도에 올려놓고 있다. 이중 정림리 예풍경 마을 조성사업은 박수근이 태어나고 자란 정림리 마을을 그의 삶과 예술세계가 묻어나는 예술가 마을로 만들기 위한 기획이다. 연홍도와 양구군의 사례는 지역 발전의 한 축으로 '예술'을 선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기존 자연생태와 문화자원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도 공통분모다. 하지만 연홍도와 양구군 모두 아직 해결해야할 과제가 남아 있다. 우선 예술을 통한 특화정책의 효율성은 20~30년이 지나야 비로소 빛을 발한다는 점에서 군수나 시장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을 행정의 일관성 및 끈기가 요구되며, 미적 가치가 곧 주민들의 삶의 질이라는 공동체의 인식도 필요하다. 또한 환경개선 수준에서 벗어나 예술을 통한 정서적 교감에 방점을 두어야 하며, 건축물을 짓는 등의 하드웨어 못지않게 그것을 운영할 전문 인력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주민들과 예술가들 간 끈끈한 조력관계 형성, 수준 높은 작품 소장과 대시민 교육, 창의적 아이디어 등의 효과적인 예술적 생산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특히 지자체의 밝은 미래를 위한 치밀한 계획과 예산, 구성원들의 헌신적인 노력 등, 민·관·예가 어우러진 공동지성이야말로 한국판 나오시마와 생폴 드 방스라는 꿈을 현실화하는 결정적 요소이다. 지금까지 전국의 지자체에서 유사한 사업들을 숱하게 진행했지만 변변한 성공사례가 없었던 이유는 예술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지 못하거나 지속성과 인내의 결여, 아니면 위에 열거한 그 어느 하나가 누락되었기 때문이다.

2017-02-05 11:52:28 송병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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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미술계 만연한 회의감과 패배감

역사적으로 우리나라 정치사회 제도는 다양한 질곡의 시간을 건너면서 많은 부분에서 수정, 재고되어 왔으나 미술계는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주도세력들의 추악한 커넥션과 욕망에 의해 갈수록 부패해졌다. 여기에 천민자본주의, 물신숭배주의, 고약한 배금주의를 숭배하는 시대흐름은 미술계 구성원들에게마저 기회주의적 풍토와 권력에 아부하는 습성을 심어놓았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미술을 이끌어 온 단체들의 미술운동, 어떤 기관의 수장을 맡은 이들 중에는 미술인과 미술계를 위한다기 보단 개인, 혹은 화단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다투고 반목해온 반문화적 권력투쟁에 가까운 것들이 더 많았다. 맑고 청렴하며 민주적인 듯 비춰지는 교묘한 상징과 기호로 인해 착각을 진실이라 수용했을 뿐, 실은 공공의 이익에 앞서 사익을 투영한 사례 역시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화단, 학계, 비평계, 시장의 최고 권력자로 등극해 있다. 자신들의 비전문성을 학위나 직책 등으로 위장한 채 미술제도에 영향력이 지대한 이들과의 음성적인 교류를 통해 주요 기관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며, 제도를 사유화, 도구화하며 정부나 자본주 등 투자 주체들의 입맛에 따라 움직이는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가끔은 불미스러운 행태가 드러나기도 했지만 그것이 그동안 견고하게 유지해온 특별한 위치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지인 혹은 가솔들을 제도권에 입성시키고, 미성년자를 성적대상화 해 음란한 상상력을 표출해도 절차적 정당성 내지는 예술로 포장하면 그만이었다. 사적 입신을 위해 동료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공동정범에 가까운 막역지우가 실리를 위해 어느 한쪽이 변절하는 도의적 그릇됨을 목도하면서도 화제와 비판은 잠시였을 뿐 결국 시간은 언제나 그들 편이었다. 야망을 감추기 위한 허구의식을 간파하지 못하는 사이 혹은 보이지 않는 것을 등한시하는 사이 그들의 확고한 위치는 더욱 굳건해졌다. 그만큼 구성원들의 세밀한 관찰과 저항, 의견 표출이 동반되어야 했으나 희미함 또는 무력했다. 심지어 치열한 현장에서 일궈진 미술의 가치를 폭 넓은 문화가치로 전이시켜 구성원에게 공급하고 그들의 문화향유와 욕구를 다시 미술현장으로 이끌어야 하는 미술계 주역으로서의 책임마저 우리 스스로 도외시했다. 물론 이러한 배경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무언가를 이룰 수 없다는 자괴감, 미술작품이 단순한 장식품들과 어떤 차이를 갖는 것인지 규명할 수 없도록 만든 자본주의의 폐단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특히 끼리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판에서 상식과 정도란 무의미하다는 누적된 회의감이 녹아 있다. 오늘날 우리 미술계에서 미술과 현상, 미술과 사회, 미술과 시대에 관한 담론형성과 미술과 삶에 대한 치열한 논의는 더 이상 보기 힘들어졌다. 미술구조는 권력과 자본을 쥐고 있는 이들에 의해 주도되는 악순환 속에 있으며, 불행히도 그들이 제공하는 개념과 잣대에 따라 미술의 가치와 미술의 의미, 정의 및 질서까지 규정되고 있다. 문제는 그 자체로 미술계 구성원에게 심리적 계급주의를 심어주고 패배감을 안겨도 변화의 단초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대안은 변별력을 상실했으며, 일그러짐을 일그러졌다 말 할 인물도 없다. 설사 있다 해도 폄하하기 바쁘다. 여기엔 딱히 이유가 없다. 그냥 내가 아니기에 싫을 따름이다. 어쨌든 으레 '희망'을 말하는 새해가 밝았지만 시대의 사상과 정신을 조형적 문맥으로 끊임없이 재생산해야할 미술, 그리고 그 미술을 미술답게 옹립시킬 수 있는 혁신적, 전투적 주인공이어야 할 미술인들의 다수는 여전히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다. 어쩌면 변질된 흐름에 익숙한 채 또는 예의 그 불안정함과 막연함을 안은 채 정초를 걷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7-01-15 16:28:39 송병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