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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안상미 기자의 '와이, 와인(Why, w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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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미 기자의 '와이, 와인(Why, wine)']<21>봄날 女心 저격 로제와인

로제와인의 매력은 다양함에서 나온다. 어느 와인도 같은 색이 없다. 양파 껍질부터 봄날 벚꽃 처럼 밝은 핑크에서 진한 자홍색까지 모두 가능하다. 로제와인은 레드와인의 포도 품종으로 만든다. 붉은색 껍질의 색이 와인에 스며든 것이라고 보면 된다. 포도즙이 껍질과 접촉하는 시간은 물론 포도품종 자체의 색, 와인메이커 등 다양한 요인들에 따라 색의 농도가 달라지게 된다. 프랑스 최초의 여성 마스터 오브 와인(MW)인 이자벨 르쥬롱은 "로제를 생산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의도'"라며 "로제를 위해 특별히 의도한 포도로 만들어야 최고의 로제 와인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샹파뉴 바롱 드 로칠드의 로제 샴페인 '샴페인 바론 드 로칠드 로제 NV'는 샤도네이와 피노누아 품종으로 만든다. 프랑스 샹파뉴 지역에서 최고로 꼽히는 프리미에 크뤼(1등급)와 그랑 크뤼(특등급) 지역에서 생산된 포도만 가지고 만든다. 연어색 핑크빛으로 섬세한 기포는 실 줄기처럼 지속된다. 섬세하면서 우아하다. 봄날 장미 꽃잎 향과 함께 산딸기, 레몬 등의 향이 복합적이다. 신선하지만 실크 처럼 입안에서 녹는 느낌으로 구조감도 풍부하다. 식전주로도 좋으며, 스시, 사시미, 붉은 참치와의 궁합도 훌륭하다. '디코이 로제'는 시라와 피노누아를 섞어 만든다. 드라이한 스타일을 살리기 위해 과실의 당도가 높아지기 전에 수확을 진행한다. 딸기와 수박의 향이 신선하게 느껴지며, 입안을 상쾌하게 만들어줘 음식과 함께 즐기기 좋다. 야외 피크닉 테이블에 오를 그릴 고기는 물론 샐러드, 스프링 롤과도 모두 어울린다. 마레농의 '페투라'는 깊은 연어색이다. 시라와 그르나슈 품종을 섞었다. 딸기 등 베리류의 향과 함께 약간의 향신료 아로마가 잘 어우러진다. 신선하지만 부드러운 스타일의 로제 와인이다. 대부분의 음식과 잘 어울리지만 특히 허브 샐러드나 치킨, 그라탕 등과 먹으면 맛있다. '몬테스 슈럽 로제'는 시라 품종만으로 만든 국민와인 몬테스의 로제다. 시라를 칠레에 처음 도입한 몬테스는 로제 와인도 시라로 만들었다. 칠레 콜차구아 밸리에 위치해 태평양에서 18㎞ 떨어진 포도밭에서 재배된 시라는 해풍의 영향으로 서서히 포도가 성장한다. 그 결과 로제 와인에 적합한 퍼플·레드빛과 좋은 산미, 신선한 과실미와 훌륭한 구조를 갖추게 됐다. 슈럽 로제는 매력적인 체리 핑크빛이다. 시라품종의특징인 양념류가 약간 가미된 붉은 과실의 풍미가 기분 좋게 뿜어져 나오며, 딸기와 장미, 오렌지 껍질 등의 향을 선사한다. 연어, 참치는 물론 파스타, 피자와도 잘 어울린다. 슈럽은 아기 천사를 말한다. 봄에만 만나볼 수 있는 '벚꽃 와인'도 있다. 벚꽃 와인은 화이트 품종인 코슈와 레드 포도 품종인 머스캣 베일리 에이를 섞어 만든 로제에 식용 벚꽃을 띄웠다. 달달한 스위트 로제 와인이다. 벚꽃이 피는 3~4월에만 한정으로 만들어져 판매된다. 알코올 도수가 낮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고, 김밥, 초밥, 샌드위치 등 피크닉 음식과 궁합이 좋다. , 자료도움=나라셀라

2019-03-21 15:04:23 안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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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미 기자의 '와이, 와인(Why, wine)']<20>봄을 부르는 뉴질랜드 소비뇽블랑

싱그러운 와인이 당기는 계절이 왔다. 특히나 아삭아삭, 푸릇푸릇한 뉴질랜드의 소비뇽 블랑은 봄을 닮았다. 뉴질랜드는 세계에서 가장 젊은 나라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 와인의 역사는 짧지 않다. 처음으로 뉴질랜드에 포도를 심은 이는 1819년 성공회 선교사인 사무엘 마스덴 (Samuel Marsden)다. 베이 오브 아일랜드 (Bay of Islands)가 시작이었지만 이후 포도밭은 초기 식민지 정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프랑스 탐험가 뒤몽 도르빌 (Dumont d' Urville)은 1840년 뉴질랜드를 방문하고서 "빛나는 화이트와인을 맛봤다"고 말하기도 했다. 뉴질랜드 와인의 긴 역사가 짧게 느껴지는 것은 국제 무대에 늦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유럽 포도 품종으로 와인을 만든 것은 1980년대부터다. 뉴질랜드 와인이 와인애호가들의 관심을 받은 것은 그보다도 늦은 1990년대다. 뉴질랜드는 화이트와인이 절대적으로 열세인 와인시장에서 화이트와인으로 유명세를 탔다. 바로 소비뇽 블랑이다. 비결은 기후와 스타일이다. 특히 소비뇽 블랑 명산지로 유명한 말보로는 시원하지만 충분한 햇빛, 낮은 강수량, 적당히 비옥한 토양이 조화를 이루며 뉴질랜드 만의 개성있고, 생글거리는 와인을 가능케했다.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은 오크통을 거의 사용하지 않아 과일의 풍미가 직설적으로 느껴진다. 이를 두고 와인평론가인 잰시스 로빈슨은 "한 번 맛을 보면 절대 잊혀지지 않는 맛"이라고 했고, 와인저술가인 오즈 클락은 "세상이 그동안 만들어내고자 시도했던 완전히 새롭고 눈부시게 성공적인 와인스타일"이라고 극찬했다. 뉴질랜드가 소비뇽 블랑을 대표품종으로 키워낸 전략도 주효했다. 마치 미국 나파밸리라면 카버네 소비뇽, 호주는 쉬라즈, 아르헨티나는 말벡이라고 떠오르는 것처럼 뉴질랜드 와인의 간판은 소비뇽 블랑이 됐다. 소비뇽 블랑은 지난 2016년 기준 뉴질랜드 와인 전체 생산량의 72%를 차지하며, 수출 비중 역시 86%에 달한다. 이렇게 인기를 끌다보니 지난 2007년 1만491헥타르였던 재배면적은 2016년 2만1400헥타르로 2배가 넘게 늘었다. 킴 크로포드의 '말보로 소비뇽 블랑'은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의 대표주자다. 새콤하고 자른 풀 향기가 정갈하다. 잘 익은 과일의 느낌과 산도가 적절히 조화를 이룬다. 입안을 편안하지만 은근히 채워주는 스타일로 식전주로 마시기 좋다. 샐러드를 비롯해 모든 해산물에 어울리지만 특히 굴과 먹을 때 궁합이 좋다. 끌로 앙리의 '쇼비뇽 블랑'은 다른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과 좀 다르다. 농도 짙은 맛과 더불어 신선미가 둥글둥글하면서도 끝까지 유지된다. 열대과일의 향과 맛이 산뜻하다. 빨리 마시면 신선미가 발랄하며, 5년 정도 보관했다 마시면 보다 깊고 부드러운 맛을 느낄 수 있다. , 자료도움=나라셀라

2019-03-14 15:45:25 안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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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미 기자의 '와이, 와인(Why, wine)']<19>오크릿지, 코러스가 메인보컬로

사실 첫 경험이 아닐 수 있다. 그간 수없이 마셨던 미국 와인 속에서 이미 여러번 만난 사이일 수 있다. 캘리포니아 로다이의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 오크릿지(Oak Ridge Winery·ORW)의 와인 얘기다. ORW는 1934년에 설립됐다. ORW 스티븐 메리트 부사장은 지난 5일 한국을 방문해 "로다이 지역은 덥지만 해풍이 아침저녁으로 열기를 식혀줘 대표적인 포도품종인 진판델 등을 재배하기 매우 이상적"이라며 "OZV, 올드소울 등의 자체 브랜드로도 성장세가 가파르지만 아직도 포도 생산량의 3분의 2는 나파밸리나 소노마 지역을 포함한 대형 브랜드에 팔고 있어 모르는 사이 이미 오크릿지 와인을 마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크릿지는 이전까지 자체 와인은 없이 대형 브랜드에 벌크로 납품만 했다. 이를테면 오랜 기간 동안 실력은 있지만 숨겨진 코러스 싱어였던 셈이다. 코러스 싱어가 이름과 얼굴을 드러낸 것은 2007년이다. 통상 해오던 벌크 계약을 놓치게 되면서 대량으로 남아버린 포도즙을 해결하기 위해 OZV란 자체 브랜드로 와인을 시장에 내놨다. OZV는 올드 진판델 바인의 약자다. 우연찮게 등장한 메인 보컬이지만 인기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OZV는 현재 미국에서 네 번째로 많이 판매되는 와인이며, 오크릿지는 연간 수출량이 가장 급등한 와이너리가 됐다. 매력은 첫번째는 진판델이라는 품종, 두번째는 오래된 포도나무를 뜻하는 올드바인에서 나온다. 로다이 지역에 와인 산업이 시작될 당시 가장 먼저 심은 묘목이 바로 진판델이다. 진판델은 로다이 지역을 상징하는 품종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품종 중 하나가 됐다. 사실 국내에선 아직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매콤한 한국 음식과 무엇보다 어울리는 와인 포도품종이 진판델이다. 매운 닭발이나 제육볶음 등 매운 육류와도 같이 마실 수 있다. 메리트 부사장은 "특히나 오크릿지의 진판델은 다른 미국 진판델 와인보다 알코올 도수가 낮은 편"이라며 "그만큼 더 마시기 편하고(easy drinking), 음식과 잘 어울린다"고 강조했다. 오크릿지는 125년 이상 된 오랜 수령의 진판델 나무까지 다양한 포도나무를 보유, 직접 관리하고 있다. 여러 품종을 섞는 블렌드 와인에도 수령이 50년 이상인 와인을 쓴다. 올드바인은 깊은 뿌리를 뻗어 과실이 골고루 익기 때문에 어린 나무에 비해 보다 진하고 깊은 맛을 낸다. 품질 기복도 적다. '올드 소울 올드 바인 진판델'은 50~75년 수령의 진판델 나무 과실을 선별해 만들었다. 부드럽고 기분좋을 정도의 타닌이 오랫동안 지속되며, 베리류와 함께 초콜릿 향도 은은하게 멤돈다. '올드 소울 카버네 소비뇽'은 깨끗한 과실 풍미가 집중됐지만 무겁지 않으며, 모난 부분이 없이 부드럽다. 구운 소고기나 돼지고기 요리와 먹으면 좋을 맛이다. 'OZV 진판델'은 올드바인의 풍부하고 다채로운 향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진판델 품종이 90% 이상이지만 타닌과 무게감을 주기 위해 쁘띠 시라를 5% 가량 섞었다. 'OZV 레드 블렌드'는 진한 체리향이 가장 먼저 맞아준다. 진판델을 포함해 카버네 쇼비뇽, 쁘띠 시라, 멀롯 등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네 가지 포도품종을 섞었다. , 자료도움=나라셀라

2019-03-07 14:55:02 안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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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미 기자의 '와이, 와인(Why, wine)']<18>오렌지와인이 뭐에요?

"오렌지로도 와인을 만들어요?." 오렌지와인이라고 내놨을 때 많은 이들이 보이는 첫 반응이다. 정답은 '노(NO)'. 오렌지로 만든 와인도 아니고, 스파클링와인에 오렌지주스를 섞은 미모사 칵테일도 아니다. 오렌지와인 역시 포도로 만든 사전적 의미의 그 와인이 맞다. 화이트와인의 일종이다. 오렌지와인이란 말은 색깔 때문이다. 우리가 색깔로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을 구분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오렌지와인이란 명칭 역시 너무나 당연하다. 오늘날 화이트 와인이 투명한 색을 내는 것은 청포도만 쓰기 때문이 아니다. 포도품종을 떠나 껍질, 씨 등 색깔을 낼 수 있는 것들은 버리고 즙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반대로 이 즙을 껍질 등과 접촉해 발효시키면 오렌지색 와인을 얻을 수 있다. 색깔은 밝은 노란색부터 짙은 호박색까지 다양하다. 접촉기간은 짧게는 몇 일부터 몇 달, 몇 년이 계속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오렌지와인은 레드와인의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화이트와인, 하이브리드 와인인 셈이다. 맛과 향도 딱 그렇다. 복합적이다. 열대과일부터 너트와 오렌지 껍질의 향도 지니고 있다. 포도껍질은 오렌지와인의 색을 진하게 만들었지만 타닌으로 맛에 무게감도 실어줬다. 우리가 레드와인을 마실 때 떫거나 치아 사이가 뭐가 낀 것같이 뻑뻑하게 느끼게 만드는게 바로 타닌이다. 만약 눈을 감고 먹는 다면 오렌지와인과 레드와인을 구별하기 힘들수도 있다. 오렌지와인은 시칠리아나 스페인, 스위스 등에서도 만들어지지만 주로 많이 생산되는 곳은 슬로베니아, 이탈리아 등이다. 내추럴와인과 함께 요즘 와인업계 대세라지만 오렌지와인은 여전히 흔한 와인은 아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이름이 많이 거론되는 것은 한식과의 궁합이 좋기 때문이다. 보통 와인과 같이 먹기 힘들다는 맛과 향이 강한 음식도 오렌지와인과는 어울린다. 카레를 비롯해 모로코 음식, 에티오피아 요리는 물론 김치같은 매운 한식, 낫토 등 발효식품이 많은 일본음식과 먹어도 훌륭하다. 타닌 등의 성분과 너트향 등은 오렌지와인을 소고기부터 생선까지 모두 어울릴 수 있게 해줬다. 새로운 트렌드처럼 보이지만 오렌지와인은 역사가 오래됐다. 내추럴와인과 마찬가지로 옛날 옛적부터 원래 먹던 와인이다. 다른 화학성분을 첨가하지 않고 온도조절 등 다른 개입없이 레드와인을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껍질 등에 접촉시키면 자연스런 오렌지색이 우러난다. 마스터 오브 와인(MW)이자 책 '내추럴와인' 저자인 이자벨 르쥬롱은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들에서 사람들의 잔에 담긴 화이트 와인이 왜 오늘날의 화이트와인처럼 투명하지 않고 오렌지색으로 보이는지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냐"며 "빛 때문도, 그림이 오래됐기 때문도 아니라 그 시대의 미켈란젤로와 같은 화가들은 정말로 오렌지와인을 마셨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2019-02-21 15:27:54 안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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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미 기자의 '와이, 와인(Why, wine)']<17>와인의 오래된 미래 '내추럴와인'

불투명하다. 때론 침전물이 떠다니기도 한다. 탄산이 느껴질 때도 있다. 기존 와인을 평가하는 기준에서는 완성품이라고 하기 어렵다. 근데 가격은 더 비싸다. 바로 내추럴와인이다. 와인리스트가 어느 정도 갖춰진 레스토랑이나 와인바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다. 최근 몇 년새 와인업계의 핫 이슈는 내추럴와인이다. 내추럴와인은 포도 재배나 와인 양조과정에서 따로 화학물질을 추가하지 않고 만든 와인을 말한다. 유기농 기법을 사용하는 오가닉, 바이오다이나믹 와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갔다고 보면 된다. 사실 새로운 작업이 아니다. 원래 와인이 그렇게 탄생했다. 포도를 따서 통에 넣고 으깨기만 해도 자연적인 과정을 거쳐 와인이 된다. 어찌보면 내추럴와인은 와인의 '오래된 미래'인 셈이다. 프랑스 최초 여성 마스터 오브 와인(MW)이자 책 '내추럴와인' 저자인 이자벨 르쥬롱은 "내추럴 와인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것이 본래의 와인인데 오늘날 드문 것이 되어버렸다"고 지적했다. 내추럴와인은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어느새 찾아보기 힘든 것이 되어 있었다. 포도재배부터 와인을 만드는 모든 과정을 완벽히 통제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시되면서 와인에는 자연적인 요소가 거의 남아있지 않게됐다. 와인을 보존하고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필수품으로 여겨졌던 아황산염 역시 내추럴와인은 필요하지 않다. 스스로 발효과정에서 생겨나는 소량의 아황산염이면 충분하다. 내추럴와인의 숨은 조력자는 포도밭의 미생물이다. 기술적인 도움에 의지하지 않고도 와인을 살아남을 수 있게 한다. 포도밭의 미생물은 포도를 따라 포도즙과 와인으로 들어간다. 내추럴와인이 짭짤한 미네랄감을 낼 수 있는 것도 흙의 성분이 그대로 전달된 덕이다. 맛이나 질감 역시 일반 와인에 비해 훨씬 더 다양하게 지닐 수 있다. 어찌보면 잘 정제된 고급와인보다 더 '테루아'를 잘 느낄 수 있는게 내추럴와인이다.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화한 와인.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실전은 또 다르다. 막상 불투명하고 흐릿한 액체가 든 와인잔을 보면 이걸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는 고민에 빠진다. 이럴땐 사과나 오렌지를 바로 착즙한 주스를 떠올려보자. 투명할 수가 없다. 과육이든 어떤 성분이든 '건더기'는 있게 마련이다. 와인 역시 거창한 것이 아니라 발효된 포도즙일 뿐이다. 내추럴와인의 찌꺼기도 알맞은 조건 하에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는다. 그러나 일부 내추럴와인 생산자들은 이 과정이 끝나기 전에 병에 담는다. 살아있는 와인이다보니 투명하게 내놨던 와인에 침전물이 다시 생기기도 한다. 르쥬롱은 "흐릿한 빛깔이 때로는 결함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탁한 사과 주스에서도 볼 수 있듯이 대부분의 경우에는 결함이 아니다"라며 "어떤 탁한 내추럴 화이트 와인들은 병을 따기 전에 흔들어 마시면 침전물이 와인 속에 고루 퍼지며 질감과 깊은 풍미, 전체적인 균형을 더해 일반 와인들보다도 맛이 더 좋아진다"고 조언했다.

2019-02-14 15:11:00 안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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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미 기자의 '와이, 와인(Why, wine)']<16>발렌타인데이엔 초콜릿만큼 달달한 와인

단 음식에는 달지 않은 음료를 곁들인다. 커피 역시 달달한 디저트의 맛과 향을 살려주기 위해선 아메리카노 등 '단쓴' 조합이 더 낫다. 와인에서는 이 공식이 깨진다. '단단'조합으로 달달한 디저트엔 달콤한 와인이 어울린다.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 만큼 달달한 와인이 함께 한다면 사랑고백의 효과도 배가 될 수 있다. 쌉싸름한 다크 초콜릿이라면 포트와인과 어울린다. 포트와인은 와인을 발효하는 중간에 브랜디를 첨가해 알코올 도수를 높인 주정강화와인이다. 알콜함량이 높은 브랜드를 넣으면 효모가 죽으면서 발효를 멈추고, 결과적으로는 잔류 당분이 높아진다. 단맛이 강하고, 숙성을 통해 부드러워진 포트와인은 식후 디저트용으로 아주 좋다. 특히 '다우 너바나 리저브 포트'는 초콜릿을 위해 태어났다. 다우의 와인양조 팀은 초콜릿과 가장 잘 맞는 포트와인을 만들기 위해 초콜릿으로 유명한 벨기에의 '플랑드르 테이스트 파운데이션(The Flanders Taste Foundation)'의 도움을 요청한다. 이들은 포트와인과 다크 초콜릿의 공통적인 풍미 요소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면서 꽃향기와 부드러운 탄닌감, 구조감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와인을 만들었다. 이 와인이 바로 다우 너바나 리저브 포트다. 흑장미, 바이올렛 등의 향기와 함께 달콤하지만 우아한 맛이다. 모든 초콜릿과 잘 어울리지만 특히 카카오 함량 60% 이상의 다크 초콜릿과 가장 이상적이다. 주정강화와인이라 알콜도수는 20도로 높은 편이다. 대신 일반 와인과 달리 세워 보관해도 되며, 오픈한 후에도 최장 한달까지 보관이 가능해 조금씩 디저트와 즐길 수 있다. 밀크 초콜릿엔 아이스와인이나 귀부와인, 말린포도로 만든 와인이다. 카카오와 우유의 부드러운 조화는 진한 풍미와 당도를 지닌 와인이 잘 어울린다. '돈나푸가타 벤리에'는 햇빛과 바람 등 자연에 의해 건조시킨 포도로 만든다. 황금색을 띠고 있으며, 입안에서는 말린 살구와 대추야자, 말린 무화과 등의 매력적인 풍미를 자아낸다. 화이트 초콜릿을 선물할 예정이라면 와인은 모스카토 다스티로 해야 한다. 화이트 초콜릿은 부드럽고 버터 풍미가 좋아 가볍고 달콤한 약 발포성 스파클링 와인이 맛을 좋게한다. '아랄디카 모스카토 다스티 돌체'는 프랑스에서는 뮈스캇으로도 불리는 모스카토 품종 100%로 만들어졌다. 대부분의 포도는 발효를 거치면 포도 본래의 풍미가 없어지는 반면 모스카토는 완성품인 와인에서도 마치 청포도를 직접 씹어 먹는 것처럼 선명하게 본연의 느낌을 유지한다. 아랄디카 모스카토 다시트 돌체 역시 청포도의 상큼이 살아있고, 강하지 않지만 지속성 있는 기포가 유쾌함을 준다. 알콜도수도 5도로 낮아 누구든 편하게 마실 수 있다. , 자료도움=나라셀라

2019-02-07 14:56:40 안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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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미 기자의 '와이, 와인(Why, wine)']<15>갈비찜엔 묵직한 말벡…고소한 전엔 리슬링

서양 음식은 코스 형식으로 한 번에 하나씩 나온다. 어울리는 와인을 고르기 쉽다. 에피타이저엔 상큼한 식전주를 곁들이고, 메인요리는 재료에 따라 레드나 화이트와인을 선택하면 된다. 우린 좀 다르다. 밥과 국을 필두로 온갖 메인요리와 반찬들이 그득하다. 특히나 다가오는 설 같은 명절에는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한 상 빼곡히 차려야 제 맛이다. 그러나 어울리는 와인을 내놔야 할 입장에선 푸짐할 수록 소위 '멘붕'이다. 한 상에 고기와 생선 등 그 재료 뿐만 아니라 갖은 양념이 어우러진다. '와린이(와인+어린이·와인초보자)'들이 공식마냥 생각했던 붉은 육류에는 레드와인, 흰색 육류나 생선에는 화이트 와인을 적용할 수도 없다. 맛도 적당한 염분에 매운맛, 단맛, 신맛, 쓴 맛까지 모두 한 상에 올라와 있다. 해법은 있다. 요리의 조리방법과 양념에 집중하는 방법이다. 먼저 갈비찜과 산적, 불고기와 같은 양념된 육류 요리다. 깊고 묵직한 레드와인이 짝꿍이다. 고기에 적당히 배인 불맛과 배 등의 과일이 포함된 양념의 부드러운 단맛, 고기를 씹을때 배어나오는 육즙의 풍미를 모두 배가시켜 줄 수 있다. '카이켄 울트라 말벡'은 아르헨티나 보증 품종인 말벡 96%로 만들어졌다. 꽉 차 있으나 무겁지 않고, 반짝이는 듯한 과실미에 입안을 조여주는 탄닌이 어우러진다. 모든 구운 고기는 물론 진한 양념의 요리와도 어울린다. '짐 배리 랏지힐 쉬라즈'는 호주 보증 품종인 쉬라즈 100%로 만들어졌다. 풍부하고 잘 익은 검붉은 열매류와 매콤한 향신료, 오크 숙성에서 얻어진 바닐라 느낌이 양념 육류과 좋은 궁합을 보여준다. 다음은 명절 음식으로 빼놓을 수 없는 전이다. 기름진 전 요리에는 산도가 높은 화이트 와인이 제격이다. 상쾌한 향과 기분 좋은 산도가 전의 느끼함을 잘 정리해 준다. '구스타브 로렌츠 리슬링'은 리슬링 100%로 만들어졌다. 매우 투명하고 밝은 노랑빛에 레몬 라임과 복숭아, 사과와 같은 과일의 향이 어우러진다. 풍성한 과실과 적당한 산미는 입 안을 신선하게 해주고, 알자스 리슬링 특유의 미네랄 풍미가 와인의 맛을 살려준다. 전 뿐만 아니라 차례상에 자주 오르는 생선찜과도 마시기 좋다. 고추 양념이나 김치 등의 재료가 듬뿍 들어간 요리에는 과일과 향신료의 맛이 나고, 다소 달콤한 느낌이 나는 와인을 고르는 것이 좋다. 맛이 진하고 걸쭉한 찌개에는 요리의 맛에 눌리지 않고 제 맛을 낼 수 있을 만큼 진한 와인이 필요하다. 명절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도록 온 가족이 함께 명절 음식을 만들면서 '카스텔블랑 엑스트라 브룻' 같은 유쾌한 스파클링 와인을 마시는 것도 좋다. 입 안을 섬세하게 가득 채우는 기포가 끊임없이 힘 있게 피어오르며 일하면서 지친 피로를 잠시나마 잊게 해줄 수 있다. 잘 익은 과일의 단맛이 가볍게 느껴지며, 긴 여운은 바삭하게 구운 빵을 연상시킨다. 식전주로도 훌륭하며, 대부분의 쌀 요리와 잘 어울린다. , 자료도움=나라셀라

2019-01-31 15:36:32 안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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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미 기자의 '와이, 와인(Why, wine)']<14>미국와인에 대한 오해와 진실

"미국 와인이 원래 이렇게 맛있었어요? 선물로 나파밸리 와인이 들어와서 먹었는데 깜짝 놀랐어요." "미국 와인은 저가(低價) 아니에요? 신세계 와인들은 진하게 텁텁하기만 하고 맛이 없던데." 얼마 전 저녁 모임에서 미국 와인이 화제로 올랐다. 프랑스 와인만이 최고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전 세계에 미국 와인을 알렸던 '파리의 심판'이 벌써 40년도 더 지났지만 여전히 미국 와인은 오해와 편견 속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다. 먼저 미국 와인은 역사가 짧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하지만 '거짓'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처음 와인이 만들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이다. 수도원에서 사용할 미사주와 식사용으로 만들어졌다가 1850년 골드 러시가 이어지면서 상업적인 와이너리가 본격 생기기 시작했다. 금주령으로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유럽의 고급 포도품종을 심고, 양질의 와인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꾸준히 이어져 왔다. 두번째 편견은 미국 와인은 맛이 다 비슷비슷하다이다. 이것도 '거짓'. 세부 산지나 생산자별로 차이점이 분명 있다. 캘리포니아, 워싱턴, 오레곤의 서부 3주와 동부의 뉴욕주 등은 보르도 스타일 와인(카버네 소비뇽·멀롯·보르도 블렌드)은 물론 부르고뉴 스타일 와인(피노 누아·샤도네이), 론 스타일 와인(시라·론 블렌드), 소비뇽 블랑, 리슬링, 일부 이태리 품종을 고루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 와인이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은 포도품종의 선택과 집중때문이다. 미국 와인생산량의 약 90%는 캘리포니아에서 나온다. 캘리포니아의 총 포도밭 면적 중에 카버네 소비뇽과 샤도네이가 심겨진 면적이 각각 약 30%와 60%에 달한다. 레드와인은 카버네 쇼비뇽이, 화이트 와인은 샤도네이가 주를 이루다 보니 소비자 입장에선 비슷하게 느낄 만도 하다. 생산량이 많은 와인이 해외 수출도 활발하다. 해외 소비자의 경우 품종 편향을 더 심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미국 와인은 테루아보다는 미국적 스타일을 더 강조한다. 이는 '진실'이다. 정확히는 과거엔 그랬으나 최근에는 다양하게 진화 중이다. 캘리포니아는 천혜의 일조량 덕분에 포도가 덜 익는 것을 걱정할 일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진한 과실의 맛과 향이 토양이나 품종에 따른 차이를 덮어버릴 때가 많았다. 특히 다수의 소비자가 찾는 와인의 스타일과 목표품질을 설정해두고 대량 생산에 나서는 미국적 마케팅의 영향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컬트와인과 소규모 부티크와인이 큰 인기를 얻은 것 처럼 개별 포도밭의 특성을 살린 와인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과도한 맛과 질감보다는 음식과 잘 어우러질 수 있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도 큰 변화다. 캘리포니아 와인협회는 "캘리포니아 와인은 한국 음식과는 태생적으로 유사성을 갖고 있어 좋은 짝이 될 수 있다"며 "한국 음식은 적당한 염분, 감칠맛 나는 매운맛, 부드러운 단맛 그리고 기분 좋은 신맛과 쓴 맛 등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풍부한 과일향, 균형 잡힌 산도, 둥글고 부드러운 질감을 갖춘 캘리포니아산 와인이 제격"이라고 조언했다. , 자료도움=나라셀라

2019-01-24 14:47:51 안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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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미 기자의 '와이, 와인(Why, wine)']<13>기해년엔 황금돼지 한 잔

이탈리아의 한 엔지니어가 가업을 이어받아 최고의 와인을 만들기로 했다. 이탈리아 와인 산지로 이름난 토스카나 끼안티 지역에서다. 전통 품종인 산지오베제로 유명한 곳이지만 엔지니어는 새로운 도전을 한다. 슈퍼투스칸 와인을 만들기 위해 국제 품종인 카버네 쇼비뇽을 심은 것. 슈퍼투스칸은 말 그대로 토스카나에서 만들어진 품질이 탁월한(super) 와인을 말한다. 몇 년을 기다린 끝에 첫 포도를 수확하려던 엔지니어는 그만 아연실색하고 만다. 전날 밤 야생 멧돼지들이 내려와 와인을 만들어야 할 포도를 모두 먹어 치우면서 그간의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화가 난 엔지니어는 멧돼지 사냥에 나섰고, 그 중 일부는 이들의 식탁에 올랐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카버네 쇼비뇽 품종의 포도를 실컷 먹은 멧돼지 고기가 너무나 맛있었다. 특별한 맛에 엔지니어는 이 포도로 와인을 만들면 최고가 될 것이란 확신을 갖게 됐다. 그렇게 '카스텔로 디 퀘르체토 치냘레'가 탄생했다. 멧돼지 습격사건 1년 뒤 1986년에 첫 빈티지가 나오자 특별했던 고기 맛처럼 와인에도 좋은 반응이 쏟아졌다. 와이너리 입장에서는 성공을 안겨준 행운의 돼지인 셈이다. 그래서 와인 이름도 멧돼지로 짓고, 와인 라벨에도 멧돼지를 그려 넣었다. 이탈리아어로 멧돼지는 '칭걀레'다. 와인 이름 '치냘레'는 멧돼지를 말하는 토스카나 방언이다. 와인 라벨에 그려진 멧돼지도 한 종류가 아니다. 역동성 있는 멧돼지 드로잉이 모두 6가지다. 6본입 케이스에는 각각 다른 6개의 멧돼지 라벨이 붙어있다. 연간 약 만 병 정도 생산되는 멧돼지 와인은 카버네 쇼비뇽과 멀롯을 9대 1로 섞었다. 달콤하게 잘 익은 윤택한 검은 체리와 열매과일의 느낌이 혀 안으로 미끄러지듯 흐른다. 담배향과 흙 내음, 감초 풍미도 느낄 수 있다. 와인은 힘있고, 농도도 짙지만 신세계의 카버네 소비뇽에 비해 덜 직선적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복잡하고 오묘한 맛이 조화를 이루며 20년 이상의 장기 숙성도 가능하다. '깜포 디 사쏘 인솔리오 델 칭걀레' 역시 멧돼지 한 마리가 와인 라벨에 그려져 있다. 칭걀레는 멧돼지, 인솔리오는 멧돼지들이 떼를 지어 뒹굴며 장난치고 목욕하는 습지란 뜻이다. 깜포 디 사쏘 인솔리오 델 칭걀레도 국제 품종으로 만들어졌다. 시라와 카버네 프랑, 멀롯을 각각 30% 안팎으로 섞었다. 감칠 맛 나는 과일적 풍미와 매끄러운 면감의 탄닌이 입안을 맴돌다가 에스프레스와 같은 여운으로 마무리된다. 사쏘레갈레 와이너리에서 만든 레드와 화이트와인엔 모두 황금돼지 얼굴이 라벨을 빛낸다. 토스카나의 새로운 와인산지인 마렘마를 느껴볼 수 있는 와인이다. 레드와인인 '사쏘레갈레 로쏘 마렘마 토스카나'는 전통 품종인 산지오베제와 국제 품종인 커버네 쇼비뇽을 절반 가량씩 섞었다. 부드러움과 동시에 입안을 쪼여주는 탄닌과 긴 여운이 인상적이다. 화이트와인인 '사쏘레갈레 베르멘티노'는 전통 품종인 베르멘티노로만 만들어졌으며, 레몬, 감귤, 복숭아 등의 향과 함께 지중해 허브의 향도 느껴볼 수 있다. 풍요와 풍요가 만났다. 기해년 (己亥年) 황금돼지 얘기다. 올해 와인셀러에는 금빛 돼지와인으로 복을 한가득 담아놔도 좋겠다. , 자료도움=나라셀라

2019-01-17 15:38:18 안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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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미 기자의 '와이, 와인(Why, wine)']<12>"사랑도, 와인도 시간이 필요해"

-영화로 맛보는 와인 ③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사랑도 와인 같아. 시간이 필요해. 숙성이 필요하거든. 그리고 시간이 지난다고 상하지 않거든." 사이가 멀어져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장'의 아내가 사랑 이야기에서 최고의 순간은 처음 몇 개월이라고 하지 않았냐고 묻자 장이 답한 말이다. 이런 깨달음에 그들의 사랑도 와인 처럼 시간을 견뎌내고 그윽한 향과 맛을 더하게 된다. 그들 뿐만 아니라 반감을 가졌던 아버지와도 10년 간의 시간을 켜켜이 쌓아 화해하고, 오해로 어긋났던 남매들도 숙성으로 제 맛을 내게 된 와인 처럼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프랑스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은 장남인 장과 둘째 '줄리엣', 막내 '제레미'가 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긴 부르고뉴 와이너리에서 함께 와인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렸다. 프랑스 동부에 위치한 부르고뉴는 최고의 와인이 생산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영화는 포도의 재배와 수확, 양조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부르고뉴의 아름다운 사계절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고요한 풍광과 달리 와이너리를 둘러싼 상황은 복잡하기 그지없다. 부르고뉴 포도밭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아버지가 세 남매의 공동소유로 남긴 와이너리의 가치는 60억원에 달하지만 상속세 5억원이 문제다. 뭐든 팔지 않으면 상속세를 낼 수 없고, 팔아버리기엔 할아버지 대부터 이어내려온 와이너리에 애정과 추억이 너무 많다. 영화적 설정 뿐 아니라 실제 최근 부르고뉴에서 많이 발생하는 문제다. 한 세대를 지나 증여나 상속이 많이 이뤄지고 있지만 폭등한 와이너리 가치에 비례해 세금부담도 커졌다. 와이너리를 지키려면 집이나 보관 중인 와인을 모두 팔아야 한다. 그거로도 모자라면 포도밭의 일부를 떼서 세금을 감당해야 한다. 세 남매가 고민 중인 해결책도 다르지 않다. 집을 팔려고 했지만 양조장이나 포도밭을 제외하고 집만 사겠다는 사람이 없고, 와인만 팔아서는 상속세 전부를 감당할 수 없다. 막내 제레미의 장인이 제안한 것처럼 실제로도 포도밭은 팔되 이전 소유주가 계속 포도 재배는 할 수 있도록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포도밭을 팔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서는 투닥거리면서도 와인에 대한 열정은 세 남매가 누구 하나 뒤쳐지지 않는다. 원제가 '우리를 이어주는 것(Ce qui nous lie)'이었던 것처럼 와인을 세 남매를 끈끈하게 엮어준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이들은 할아버지의 와인과 아버지의 와인을 맛본다. 같은 포도밭, 같은 양조장에서 만든 와인이지만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 그 맛은 다르다. 포도를 언제 수확할 지, 줄기를 어느 정도 제거하고 와인을 만들지, 오크통에 담긴 와인을 언제 병에 넣을지 등 끊임없이 이어지는 양조자의 판단에 따라 와인의 맛은 크게 달라진다. 세 남매는 서로 힘을 합쳐 둘째 줄리엣이 그만의 와인을 만들 수 있도록 와이너리를 지켜준다. 일 년 뒤 맛본 줄리엣의 와인은 차분하다. 한편으로 강하기도 하고. 셈세한 면도 있고, 복합적이다. 딱 줄리엣을 닮았다. "잊고 있었다. 프랑스 겨울은 끝이 없다는 것을. 땅을 일구다 보면 내 소유가 된 듯이 느껴진다. 땅문서나 재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땅이 내게 속한 듯한 느낌이 들 때면 나도 땅에 속해 있다는 게 보이기 시작한다." 장은 고백한다. 그가 어디에 있든 동생들과 와이너리와 연결되어 있음을.

2019-01-10 15:23:19 안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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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미 기자의 '와이, 와인(Why, wine)']<11>피노누아에 대한 예찬 '사이드웨이'

"재배하기가 힘든 품종이잖아요. 껍질은 얇지만 성장이 빠르고, 카버네와는 달리 아무 환경에서나 못 자라서 끊임없이 보살펴야 하고,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에서만 자라고. 인내심 없인 재배가 불가능한 품종이죠. 시간과 공을 들여서 돌봐줘야만 포도알이 굵어지고, 그렇게 잘 영글면 그 맛과 오묘한 향이 태고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줘요." 레스토랑 점원으로 일하는 마야가 영어교사 마일즈에게 "왜 피노누아를 좋아해요? 거의 광적이던데"라고 묻자 답한 말이다. 와인애호가들 사이에서 고전으로 꼽히는 영화 '사이드웨이'는 마일즈와 잭의 일주일 간의 여행을 그렸다. 잭의 결혼식을 앞두고 이들은 산타바바라로 떠난다. 산타바바라는 카버네 쇼비뇽으로 유명한 나파밸리보다 겨울에는 더 따뜻하고 여름에는 더 서늘해 온도에 민감한 피노누아가 잘 자란다. 보통 와인을 실컷 마실 여행이라면 나파밸리를 떠올리겠지만 피노누아에 푹 빠져있는 마일즈에겐 산타바바라가 최적의 여행지인 셈이다. 감성이 예민한 마일즈는 피노누아 처럼 까다롭다. 관심과 이해를 갖고 돌봐주는 이가 없는 마일즈는 그 맛과 향을 꽃피우지 못하고 인생 최악의 시기를 견뎌내는 중이었다. "우리 나이에 능력, 돈 없으면 도축장 직행할 소나 다름없어…반평생을 살고도 내세울 것이 없어. 난 창문에 묻은 지문 신세야." 마지막 희망이었던 책 출판도 무산된다. 마일즈는 더 이상 그의 책을 내줄 출판사가 없다는 말에 "버스매연 맛이야. 포도줄기를 제거하지 않고, 통에 담아 짓이겨서는, 구강 세척제보다 형편없어. 최악이야"라고 평한 와인을 바스켓 채로 들이마셔 버린다. 엉망진창인 삶과 최악의 와인 맛이 절묘하게 겹쳐지며 어느새 보는 사람의 입맛도 씁쓸해진다. 이런 마일즈에게 절망의 길이 아닌 다른 샛길, 사이드웨이를 열어주는 것은 바로 마야다. 마야는 와인에 빗대어 마일즈의 삶도 변화의 가능성이 있음을 말해준다. "나는 와인의 삶을 찬미해요.한 생명체가 포도밭에서 익어가는 모습, 비가 내리고 따사한 햇살, 와인이 만들어지고 숙성되는 오랜 세월동안 돌봐준 사람들. 또 와인은 변화무쌍하죠. 따는 시기에 따라 그 맛이 제각각이잖아요. 생명력을 가졌기에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죠. 당신의 슈발블랑 처럼 최고의 맛을 선사한 후 삶을 마감하죠." 마일즈가 가장 아끼는 와인은 슈발블랑 1961년 빈티지다. 결혼 10주년에 따려고 아껴뒀지만 이혼한 아픔이 여전한 마일즈에게 슈발블랑은 묵혀둔 숙제와 같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슈발블랑은 생애 한 번쯤 꼭 마시고 싶은 꿈의 와인이다. 가격도 그만큼 비싸다. 빈티지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수 백 만원을 호가한다. 슈발블랑은 특별한 날 따려고 한다는 마일즈에게 마야는 "그 와인을 따는 순간이 특별한 순간"일 것이라 한다. 과연 슈발블랑을 마시는 날이 특별한 날이 되었을까. 잭의 결혼식에서 전처를 만나고, 재혼에 임식소식까지 듣게된 마일즈. 여기서 마일즈의 아픈 가슴 못지않게 와인애호가들의 가슴도 찢어지는 장면이 나오게 된다. 마일즈는 패스트푸드점으로 달려가 슈발블랑을 테이블 아래 숨겨두고 콜라컵에 따라 홀짝거린다. 그렇게 슈발블랑은 플라스틱 컵 속에서 생을 마감하지만 마야에게 뛰어갈 수 있는 새로운 시작점이 될 수 있었단 점에서 보면 마일즈에게 특별한 순간을 선사했음이 틀림없다.

2019-01-03 15:28:56 안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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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미 기자의 '와이, 와인(Why, wine)']<10>연말엔 와인의 기적을

-영화로 맛보는 와인 ①와인미라클(원제: 보틀 쇼크) "드가는 물감을 썼고, 로댕은 구리를, 드뷔시는 피아노, 보들레르는 언어를 썼듯이. 앙리 자이에와 필립 드 로칠드는 포도를 사용했지. 훌륭한 와인은 훌륭한 예술이야." 나중에 파리의 심판으로 불리게 된 프랑스 와인과 미국 와인의 시음회를 기획한 스티븐 스퍼리어는 와인을 예술로 봤다. 와인샵과 아카데미를 운영했던 그는 스스로를 양치기에 비유했다. "나로 말하면 양치기지. 내 임무는 대중들에게 또 다른 형태의 예술을 알리고 길잡이를 해 잘 감상하게 해주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프랑스 와인만이 최고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전 세계에 미국 와인을 알리고 길잡이를 해줬으니 실제 훌륭한 양치기였던 셈이다. 영화 '와인 미라클'은 1976년 파리의 심판을 소재로 했다. 스퍼리어가 블라인드 테이스팅에 쓰일 미국 와인을 찾아 캘리포니아 나파밸리를 방문해 와인을 고르는 과정이 샤토 몬텔레나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화이트와인 시음회에서 프랑스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던 그 와이너리다. 사실 이 시음회는 프랑스와 미국 와인의 대결을 유도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 미국 와인도 주목할 만하다는 인정을 받게 하고자 했을 뿐 미국 와인의 우승은 그 누구도 예상을 못 했던 결과다. 영화의 원제는 보틀 쇼크(bottle shock)다. 원래 와인을 병에 넣거나 운반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와인의 색이나 맛이 달라지는 것을 말하지만 시음회의 결과가 충격적이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화이트 와인 중 1위는 미국 샤또 몬텔레나의 샤도네이 1973년 빈티지였다. 140점 만점에 132점을 받아 126.5점으로 2위를 차지한 프랑스 도멘 룰로 뫼르소 1등급 샴 1973을 압도했다. 뿐만 아니라 상위 5위 내에 다른 미국 와인의 이름이 2개나 더 있었다. 레드와인 역시 1위는 미국 스택스 립 와인셀라의 카버네 소비뇽 1973이었다. 2~4를 차지한 와인은 프랑스 샤또 무똥 로칠드, 샤또 몽로즈, 샤또 오 브리옹으로 모두 1970 빈티지였다. 5위는 또 다른 미국 와인 몬테벨로 1971이 차지했다. 오베르 드 빌렌 DRC(도맨 드 라 로마네꽁띠) 공동 소유자와 피에르 타리 보르도 그랑 크뤼 샤또 연합 사무총장, 오데뜨 칸 프랑스 와인전문지 편집장, 피에르 브레쥬 INAO 감사총괄 등 심사위원의 면면히 너무나 쟁쟁해 시음회 결과를 부정하기도 힘들다. 의외의 결과에 칸 편집장은 채점지를 돌려달라고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스퍼리어는 말한다. "우린 미신을 깨부셨어. 프랑스 와인만이 최고라는. 이게 끝이 아니야. 앞으로는 남미의 와인도, 호주와 뉴질랜드의 와인도 마시게 될거야." 2006년에는 파리의 심판 30주년 기념으로 다시 시음회가 열렸다. 프랑스 와인이 이길 거라고 확신했지만 이번에도 캘리포니아 와인이 이기고 말았다. 파리의 심판에서 1위를 차지한 샤토 몬텔레나 샤도네이와 스택스 립 카버네 쇼비뇽 한 병씩은 그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영구 소장품으로 진열됐다. 와인영화는 다 좋은데 보고 나면 와인 한 잔이 절실해 지는 것이 문제다.

2018-12-27 14:04:29 안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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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미 기자의 '와이, 와인(Why, wine)']<9>크리스마스엔 이 와인

연말에, 크리스마스까지 다가왔다. 가는 자리마다 와인이 빠질 리 없다. 크리스마스 와인으로 먼저 손 꼽히는 것은 아기 예수의 탄생 스토리를 담은 와인이다. 바로 프랑스 '부샤 뻬레 에 피스 빈 드 랑팡 제쥐'다. 라벨에도 아기 예수가 그려져 있다. 복잡한 이름이지만 어렵지 않다. 앞의 부샤 뻬레 피스는 이 와인을 생산한 와이너리다. 1731년 직물사업을 하던 미셸 부샤(Michel Bouchard)와 그의 아들이 설립한 곳이다. 프랑스에서 유명한 와인생산지인 부르고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이기도 하다. 원래 포도밭에 자갈이 많아 레 그레브(Les Greves)로 불렸다. 이름이 바뀐 것은 17세기다. 당시 와이너리 소유주이던 카르멜파 수도회가 당시 아기를 갖지 못했던 앤 여왕에게 "루이 14세를 출산할 것이다"라고 한 예언이 적중했다. 이를 두고 랑팡 제쥐(l'Enfant Jesus), 번역하면 아기 예수의 와인이라는 새 이름이 붙여졌다. '부샤 뻬레 에 피스 빈 드 랑팡 제쥐'는 부르고뉴 꼬뜨 드 본에서 생산된 피노누아 품종 100%로 만들어졌다. 사실 피노누아는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포도품종이 아니다. 까다롭지만 와인으로 만들어져서는 그 까탈을 보상할 만큼 우아하고 매력적인 맛을 발휘하게 된다. '부샤 뻬레 에 피스 빈 드 랑팡 제쥐' 역시 질감이 마치 아기의 피부와 같이 너무나 곱고 매끈해 한번 마셔보면 아기 예수의 와인이란 이름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이와 함께 세련된 풍미도 더해져 크리스마스를 맞아 칠면조 요리와도 잘 어울리며, 장기 숙성도 가능한 와인이다.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엔 별이 총총 뜬 밤이 그려진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돈나푸가타 밀레 에 우나 노떼'도 자리를 빛내기 좋다. 돈나푸가타는 와이너리를 말한다. 시칠리아 최고의 와이너리로 평가 받는 이 곳은 150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돈나푸가타라는 이름은 19세기 '피난처의 여인'이란 뜻으로 나폴리의 왕이었던 페르디난도 4세의 아내, 마리아 카롤리나가 나폴레옹의 군대를 피해 이 지역으로 피난을 왔던 사건에서 유래한다. 와인의 라벨에 총총거리는 별빛 아래 성은 시칠리아 지역으로 피난을 온 마리아 카롤리나 왕비의 궁전을 표현한 것이다. 밀레 에 우나 노떼는 천하루의 밤 (Thousand and one nights)이란 뜻으로 천일야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와인이다. 지역의 전통적인 품종인 네로 다볼라와 같은 포도밭에 수백년 이상 존재해온 토착 포도들을 함께 섞었다. 개성이 강하고 깊이 있는 지중해를 표현해낸다. 레드 체리와 감초를 연상하게 하는 풍미와 오랜 오크통 숙성의 매력적이며, 복합적인 맛을 가지고 있다. 굽거나 훈제된 소고기 요리에 잘 어울린다. 파티엔 스파클링와인이 빠질 수 없다. '카스텔블랑 까바 브룻'은 스페인에서 생산된 까바다. 스파클링 와인은 지역에 따라 생산방식에 따라 이름이 다른데 스페인인에서는 샴페인처럼 병에서 2차 발효를 하는 전통방식으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을 까바라고 부른다. 카스텔블랑은 이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로 하얀 성이라는 뜻이다. 눈 내리는 밤 파티의 분위기를 살리기 딱이다. 식전주도 좋고, 파스타나 리조또, 해산물 등과 잘 어울린다. , 자료도움=나라셀라

2018-12-20 16:04:19 안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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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미 기자의 '와이, 와인(Why, wine)']<8>정상에 서다 '슈퍼투스칸'

올해 와인스펙테이터(WS)가 꼽은 최고의 와인은 바로 이탈리아의 '테누타 산 귀도 사시까이아 2015'였다. 이른바 '슈퍼투스칸'의 원조로 불리는 와인이다. 지난 3년간 1위 독주를 달리던 미국 나파밸리 와인을 꺾고 슈퍼투스칸이 정상에 올랐다. 슈퍼투스칸은 말 그대로 이태리 중서부의 토스카나(Toscana)에서 만들어진 품질이 탁월한(super) 와인을 일컫는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세계 최고의 와인으로 꼽혔는데 등급이 최고인 DOCG(Denominazione di Origine Controllata e Garantita·원산지 통제 보증)가 아닌 DOC(Denominazione di Origine Controllata·원산지 통제)로 기재되어 있다. 이탈리아 와인 등급은 가장 아래부터 VdT-IGT-DOC-DOCG로 나뉜다. IGT(Indicazione di Geografica Tipica)는 특정 지역에서 만든 와인이며, VdT(Vino da Tavola)는 테이블와인으로 가장 아래 단계다. 사시까이아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DOC도 아닌 VdT 등급이었다. 산지오베제 같은 이탈리아 토착 품종으로만 만들어야 DOCG, DOC 등급을 받을 수 있었지만 사시까이아는 커버네 소비뇽을 주로 썼기 때문이었다. 국제적으로 널리 쓰이는 커버네 소비뇽, 멀롯 등의 품종 등을 쓰면 품질과는 상관없이 IGT나 VdT 등급으로 떨어지지만 전통보다는 품질에 승부를 건 와인이 바로 슈퍼투스칸인 셈이다. 고품질을 위해 국제품종을 선택했던 수퍼투스칸 바람은 토스카나 서편 해안가로부터 시작해 동쪽의 내륙지역으로 불어간 것에서 그치지 않고, 멀게는 북부의 피에몬테까지 불어가 이후 이탈리아 와인업계 전체에 근대화와 고품질의 추구라는 화두를 던지는 계기가 됐다. 품질 하나로 이탈리아 와인의 명성을 뛰어넘으면서 슈퍼투스칸 와인에는 볼게리DOC와 토스카나IGT라는 새로운 등급과 규정이 주어지기도 했다. '비세르노'는 오르넬라이아, 마세토를 잇는 차세대 슈퍼투스칸으로 꼽힌다. 세계적인 와인메이커인 미셸 롤랑이 함께해 풍부한 과일 향과 농도감 있는 스타일이다. 연간 2만 병만 소량으로 생산한다. '치날레'는 이탈리아어로 야생 멧돼지를 뜻한다. 커버네 쇼비뇽 90%에 멀롯 10%를 섞어 20년 이상 장기 숙성도 가능한 힘이 느껴지지만 신세계 카버네 소비뇽처럼 과하지 않다. '라 마싸'는 이탈리아 토종품종인 산지오베제를 중심으로 해서 이탈리아 와인의 매력을 최대한 살려낸 슈퍼투스칸이다. 산지오베제 70%와 멀롯 20%를 섞어 집중력과 섬세함을 동시에 갖췄다. '세떼 퐁티 오레노'는 멀롯 50%에 카버네 소비뇽 40%, 쁘띠 베르도 10%로 만들어졌다. 초콜렛 느낌과 함께 잘 익은 베리류의 풍미로 스테이크나 숙성된 치즈와 잘 어울린다. , 자료도움=나라셀라

2018-12-13 15:48:19 안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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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미 기자의 '와이, 와인(Why, wine)']<7>귓가에 속삭이는 와인 '그르기치 힐스'

자신의 존재를 알아달라며 소리지르는 와인이 있다. 향으로든 맛으로든 말이다. 반면 은은하게 다가와 귓가에 속삭이는 와인이 있다. 부러 찾아가 그 맛과 향에 집중하고 발견해줘야 하지만 풍부한 감성을 불러일으키며 빠져나올 수 없는 매력을 선사한다. 그르기치 힐스 이스테이트의 와인은 후자다. 장식적인 요소가 없다. 장식없이도 빛나려면 기반이 튼튼해야 한다. 땅에 집중하고, 제대로 포도농사를 짓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도 그래서다. 지난 4일 한국을 방문한 그르기치 힐스 이스테이트 이보 예라마즈(Ivo Jeramaz) 부사장은 "와인의 모든 풍미는 땅에서 나온다"며 "그르기치 힐스의 모든 포도밭은 유기농 공식 인증을 받아 다채로운 풍미는 물론 와인에 독창적인 개성을 불어넣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르기치 힐스에서 와인메이킹과 포도밭 관리를 맡고 있다. 사실 그르기치 힐스는 '파리의 심판'으로 더 유명하다. 당시 세계 최고로 꼽혔던 부르고뉴의 명 화이트 와인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샤또 몬텔레나의 와인메이커가 바로 그르기치 힐스의 설립자 마이크 그르기치다. 파리의 심판은 위대한 샤도네이는 부르고뉴에서만 만들어진다는 신화를 깨는 계기가 된 것은 물론 크로아티아 이민자인 그르기치가 본인의 와이너리인 그르기치 힐스를 세울 수 있도록 해줬다. 그르기치는 그저 자연과 포도나무가 내는 소리에만 귀 기울일 뿐이라고 말한다. 최고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연이 일하게 내버려두고, 사람은 최소한만 개입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철학은 양조자가 2대로 내려와도 변함이 없다. 예라마즈 부사장은 그르기치의 조카로 역시 크로아티아 태생이다. 그는 "위대한 예술품의 가치는 독창성과 개성에 있는 것처럼 그르기치 힐스는 완벽한 와인이 아니라 독창적, 개성적인 와인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매년 더 심오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샤도네이의 제왕'이라는 애칭에 걸맞게 '그르기치 힐스 이스테이트 나파 밸리 샤도네이'는 위대한 샤도네이의 3가지 요소인 섬세한 꽃향기와 풍부한 과실의 풍미, 미네랄을 모두 가지고 있다. 부르고뉴 샤도네이를 만드는 전통적인 방식을 그대로 따르지만 산도를 보존하기 위해 젖산발효는 하지 않는다. 소비뇽 블랑 100%로 만든 '그르기치 힐스 이스테이트 나파 밸리 퓌메 블랑'은 음식의 맛을 한 층 더해준다. 짭짤한 염분을 포함한 풍부한 미네랄 덕분이다. 필요이상의 날카로움 없이 긴 여운으로 10년 안팎의 장기숙성도 가능한 와인이다. '그르기치 힐스 이스테이트 나파 밸리 진판델'은 예라마즈 부사장이 꼽은 한식과 가장 어울리는 와인이다. 이방카 트럼프가 한국에 왔을때 청와대 만찬주로도 사용됐다. '그르기치 힐스 이스테이트 카버네 쇼비뇽'은 카버네 쇼비뇽에 메를로와 카버네프랑 등을 블랜딩했다. 10년 이상 장기숙성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져서 유연하고 부드러운 동시에 견고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르기치 힐스는 설립 초기부터 차입없이 자기자본으로만 와인을 만들어냈다. 나파밸리에서 비슷한 품질의 와인 대비 가격을 낮출 수 있었던 비결이다. 좋은 가성비 덕분인지 올해 그르기치 힐스의 수출 시장에서 한국이 1위로 올라서기도 했다. , 자료도움=나라셀라

2018-12-06 16:46:26 안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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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미 기자의 '와이, 와인(Why, wine)']<6>아르헨티나 말벡? 프랑스 말벡!

와인 포도품종 중 말벡이라고 하면 대부분 아르헨티나를 떠올린다. 자라기 좋은 환경에 말벡이 아르헨티나의 대표 품종이 되었지만 사실 말벡의 고향은 프랑스다. 말벡의 원산지는 프랑스 남부에 롯(Lot) 강이 흐르는 까오르(Cahors) 지역이다. 이 지역 중심에 위치한 라그레제트성에서 1503년 말벡이 처음으로 재배된다. 바로 샤또 라그레제트다. 당시 샤또 라그레제트 와인은 프랑스 르네상스를 이끈 프랑수아 1세(Francios 1)를 포함한 왕족과 귀족들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까오르의 인기를 시기한 보르도 와이너리들의 견제와 유럽에서 발생한 여러 전쟁들, 포도 뿌리를 병들게 하는 필록세라가 유럽을 덮치면서 프랑스에서 말벡은 잊혀지고 만다. 변화가 생긴 것은 명품 브랜드 까르띠에의 오너 알랭 도미니크 페랭(Alain Dominque Perrin)이 까오르 지역의 역사와 말벡의 매력을 발견하고, 1980년 샤또 라그레제트를 인수하면서다. 사업가이자 예술가의 성향을 지닌 그는 야생 넝쿨이 가득한 샤또와 정원의 복원 사업을 진행했고, 총 25년을 걸쳐 퇴색한 성을 현재의 장엄한 모습으로 탈바꿈시켰다. 여기에 최고의 와인 컨설턴트 미쉘 롤랑(Michel Rolland)이 합류하며 과거 까오르 최고의 말벡의 모습을 부활시키는데 성공했다. 샤또 라그레제트는 까오르에서 가장 비싼 말벡 와인인 르 피조니에(Le Pigeonnier)부터 오직 말벡에만 초첨을 맞춘 퍼플 말벡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말벡 와인을 내놓고 있다. 대표 와인인 샤또 라그레제트는 20~30년 수령의 포도나무에서 말벡을 선별해 수확하고, 새 오크통과 1년된 프렌치 오크통에서 숙성을 한다. 18개월 후에는 필터링 없이 병입하며, 강렬한 루비색에 코코아와 붉은 과일의 향을 풍부하게 낸다. 긴 숙성력을 가지고 있어 15년 이후까지도 와인을 즐길 수 있다. 샤또 라그레제트의 세컨 와인인 슈발리에 뒤 샤또 라그레제트는 15년 수령의 포도나무에서 선별 수확한 말벡을 모아 만든다. 12개월 동안 프렌치 오크통에서 숙성을 진행한 뒤 역시 필터링 없이 병입한다. 진한 붉은 색에 붉은 과일과 검은 과일이 함께 뒤섞인 향이 강렬하다. 양념된 갈비나 미트볼 파스타와도 먹기 좋다. 퍼플 오리지널 말벡은 샤또 라그리제트 포도밭을 상징하는 보라색을 이름으로 가졌다. 500년의 석회암지대 위에서 자라는 평균 20년 수령의 포도나무에서 열린 말벡으로 만들며, 저온침용으로 뚜렷한 보라색을 표현해냈다. 오리지널 말벡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말벡 특유의 붉은 과실의 향이 우아하게 느껴진다. 붉은 육류라면 어떤 것과도 어울리며, 크림파스타나 치즈와도 궁합이 좋다. , 자료도움=나라셀라

2018-11-29 11:28:27 안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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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미 기자의 '와이, 와인(Why, wine)']<5>로칠드가문의 이름을 걸고…샹파뉴 바론 드 로칠드

완벽한 유전자를 가진 이들이 결혼하면 어떤 아이가 나올까. 잘생긴 얼굴이나 재능이 있는 연예인을 보면 종종 우스갯소리로 하는 얘기다. 와인업계에서는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바로 '샹파뉴 바론 드 로칠드(이하 로칠드 샴페인)'다. 세계 최고 와이너리로 손꼽히는 샤또 라피트 로칠드와 샤또 무똥 로칠드, 샤또 클락이 샴페인을 만들기 위해 손을 잡았다. 모두 금융으로 이름난 로칠드 가문의 분파로 가문의 명예를 걸고 만든 샴페인 하우스인 셈이다. 와인병에도 가문의 다섯 아들을 뜻하는 다섯 개의 화살 문양이 새겨져 있다. 지난 19일 한국을 방문한 샹파뉴 바론 드 로칠드 프레데릭 메레스 제너럴 매니저(사진)는 "샴페인 시장은 소수 대형회사의 점유율이 높고, 패밀리 하우스는 많지 않아 분명 로칠드 샴페인이 공략할 수 있는 틈새시장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며 "샤또 무똥 로칠드와 로버트 몬다비가 1975년 손을 잡고 만든 오퍼스 원이 2010에서야 수익을 제대로 낸 것처럼 처음부터 25년 정도의 장기 비전을 보고 투자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로칠드 샴페인의 첫번째 키워드는 샤도네이다. 로칠드 샴페인의 샤도네이 비율은 이례적으로 높고, 전량 그랑 크뤼 밭에서만 조달한다. 높은 숙성력에 우아한 스타일을 낼 수 있었던 비결이다. 이게 마음먹는다고 다 되는 일이 아니다. 샹파뉴 지역에서 샤도네이 재배면적은 샴페인 총 재배면적 3만3000 헥타르 중 겨우 7000헥타르에 불과하다. 로칠드 가문의 든든한 자본과 프리미엄급만 소규모로 생산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두 번째 키워드는 시간. 6~9개월 동안의 1차 발표과정을 거친 이후 최소 3년 이상을 자체 저장고에서 병숙성한다. 여기에 매년 일관된 스타일의 품질을 얻기 위해 샹파뉴 지역 평균을 크게 웃도는 40% 이상을 이전 3년 안팎의 리저브 와인을 사용한다. 와인생산자 입장에서 보면 기다림은 곧 돈이다. 역시 로칠드 가의 든든한 뒷받침이 없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완벽한 유전자들이 모여 내놓은 결과물에 대한 느낌은 한 마디로 '외유내강'. 높은 샤도네이 비율로 여느 샴페인보다 맑고 여리여리한 빛을 낸다. 그러나 입안에 들어가서는 샴페인임에도 오래 숙성한 레드와인 못지않은 농축함과 강렬함에 여운이 오래 남았다. '샴페인 바론 드 로칠드 블랑 드 블랑 NV'는 샤도네이 100%로 만든다. 맑은 금빛으로 빛나는 버블과 함께 아몬드와 레몬의 향이 퍼진다. 풍미는 섬세하지만 단단하다. 입맛을 돋워줄 식전주로도 좋지만 랍스터 등 메인 해산물 요리와도 잘 어울릴 맛이다. '샴페인 바론 드 로칠드 브뤼 NV'는 샤도네이 60%와 피노누아 40%로 만든다. 배 같은 흰 과일향과 아몬드향이 어우러졌으며, 닭 등 흰육류와 먹기 좋다. '샴페인 바론 드 로칠드 로제 NV'는 샤도네이 85%와 피노누아 15%를 섞었다. 오렌지와 핑크가 중간쯤에서 만난 우아한 빛을 내며, 장미꽃과 딸기류의 향으로 디저트와도 궁합이 좋다. '샴페인 바론 드 로칠드 블랑 드 블랑 2008'은 2003년 설립 이후 처음으로 선보인 빈티지 샴페인이다. 보통 빈티지 샴페인은 작황이 최고인 해에만 선별적으로 만들어진다. 올해도 빈티지 샴페인의 탄생이 기대되는 해다. 메레스 매니저는 "올해는 포도의 품질 뿐 아니라 수확량도 뛰어났다"며 "아직 좀 더 봐야 하겠지만 빈티지 샴페인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물론 샹파뉴 지역의 최고의 빈티지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 자료도움=나라셀라

2018-11-22 15:15:43 안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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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미 기자의 '와이, 와인(Why, wine)']<4>샴페인, 잔에서 피어오르는 2억5천만개의 별

김 빠진 콜라는 있어도 김 빠진 샴페인은 없다. 탄산음료는 한 번 따라놓으면 금새 탄산이 날아가고 밍밍해지지만 샴페인은 곱고 섬세한 기포가 끊임없이 피어오른다. 기포에 이런 생명력을 심어준 것은 사람의 노력과 기다림이다. 스파클링 와인은 와인 중에서도 사람의 손때가 가장 많이 묻고, 기다림의 시간도 길다. 일반적인 와인은 한 번의 발효를 거치고, 짧게는 2~3개월에서 길게는 3년 정도의 숙성을 거치면 사람들에게 선보일 수 있다. 스파클링 와인은 차원이 다르다. 1차 발효를 통해 알코올을 얻고, 기포를 얻기 위해 다시 한번의 발효를 거쳐야 한다. 2차 발효는 낮은 온도에서 매우 더디게 일어난다. 화려한 거품옷을 입고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기다림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스파클링 와인의 최고봉인 샴페인의 경우, 2차 발효는 병속에서 최소 15개월 이상의 시간을 보낸다. 그 사이에 효모들은 생성된 거품으로 인해 높아진 압력을 못 견디고 조금씩 분해돼 특유의 풍미를 남기고 점차 사라지게 된다. 일부 샴페인 하우스에서는 2차 발효 및 병속에서의 숙성을 무려 10년 이상 시킨 후에 완성품으로 내어 놓는 경우도 있다. 단순한 술이 아니라 예술품이나 마찬가지다. 샴페인 앙리오가 그렇다. 부르고뉴에서 손꼽히는 와인생산자 부샤 페레 피스와 샤블리만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윌리암 페브르로 이름을 떠치고 있는 앙리오 그룹이 소유한 샴페인 하우스다. 샴페인 앙리오의 밀레짐 브뤼 2008은 무려 10년이나 되는 숙성기간을 거쳐 이제야 사람들에게 선보이게 됐다. 프리미에 크뤼와 그랑크뤼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들어 탄탄한 구조감과 섬세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상큼한 과일과 꽃에, 꿀과 설탕으로 졸인 레몬의 풍미까지 더해져 긴 여운이 부드럽게 이어진다. 오래 숙성된 샴페인만이 표현해 낼 수 있는 여유와 복합스러움이 있지만 특유의 힘찬 기포와 산미는 언제 마셔도 신선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샴페인 앙리오의 기본급인 브뤼 수버랭 NV는 과거 빈티지 와인을 약 30% 가량 섞어서 시간의 무게감을 입히고, 매년 품질도 균일하게 유지한다. 섬세한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기 위해 포도를 손으로 수확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특유의 부드운 화이트 와인 색을 표현하려면 포도 껍질의 색이 스며들지 않도록 일일이 손으로 포도를 따야 한다. 샴페인 트리보 역시 기술혁신을 위해 현대식 기계화 설비를 도입했지만 여전히 수확만은 손으로 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한다. 한 샴페인 생산자의 연구에 따르면 샴페인 한 병에는 약 2억5000만 개의 거품이 녹아있다고 한다. 어느덧 연말이다. 2억5000만 개의 별이 쏟아지는 특별한 순간을 경험하기 가장 좋은 때다. , 자료도움=나라셀라

2018-11-08 15:47:57 안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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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미 기자의 '와이, 와인(Why, wine)']<3>'카이켄' 칠레의 영혼이 아르헨티나 땅에 닿다

안데스 산맥의 양편인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오가며 사는 야생 거위가 있다. 칠레 원주민어로 '카이켄(caiquen)'이라 부른다. 카이켄을 똑 닮은 와인이 있다. 우리나라 국민와인으로 유명한 칠레 와이너리 몬테스(Montes)가 안데스 산맥을 넘어 아르헨티나 멘도자 지역에서 만들어서다. 와인 이름도 카이켄(KAIKEN)이다. 발음하기 쉽게 철자만 약간 바꿨다. 칠레와 아르헨티나는 안데스 산맥을 끼고 나란히 붙어 있다. 그러나 자연환경은 다르다. 칠레가 태평양 연안을 바탕으로 적당한 강수량과 온화한 기후인 반면 아르헨티나는 덥고 건조하다. 이런 멘도자의 개성이 아우렐리오 몬테스 회장을 거위 카이켄처럼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오가게 만들었다. 몬테스는 저가가 주류였던 칠레에서 처음으로 프리미엄 와인을 내세워 성공했던 것처럼 2001년 카이켄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부터 아르헨티나 최고의 와인을 목표로 했다. 몬테스의 그간 쌓은 기술력과 아르헨티나의 개성이 만나 만들어낸 와인이 바로 카이켄의 '마이(Mai)'다. 땅의 개성을 분석하는 것은 물론 포도 품종을 실제 재배하고 실험하는 데에 10년 가까운 시간을 투자한 끝에서야 생산이 됐다. 마이는 '첫번째(first)'를 뜻하는 원주민의 방언이다.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프리미엄 와인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이름에 그대로 담아냈다. 지난달 31일 한국을 찾은 토마스 마르코네띠 카이켄 수출담당 매니저는 "마이는 수령이 100년 이상된 고목에서 포도를 수확해 응집력과 집중력이 매우 뛰어난 와인"이라고 설명했다. 마이는 포도품종 중 말벡으로 만들었다. 깜깜한 자줏빛에 향은 과실 폭탄이 터지지만 부담스럽지 않다. 매끈하면서 고상하다. 100년 고목의 기다림만큼 여운도 길다. 화이트 와인 '카이켄 테루아 토론테스'는 하늘과 맞닿은 와인이다. 무려 해발고도 2000m 이상인 포도밭에서 만들어진다. 토론테스는 아르헨티나 토착 품종이다. 달달한 맛을 내는 모스카토 품종에서 뻗어나왔지만 토론테스는 달지 않다. 풍부한 꽃향기에 깔끔한 산미로 식전주로 마시기 좋다. 카이켄에서 몬테스의 알파 시리즈와 같은 등급은 울트라 시리즈다. '카이켄 울트라 카버네 소비뇽'은 그동안 가졌던 신세계 카버네 쇼비뇽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준다. 단순하고 진한 신세계 카버네 쇼비뇽이 아니라 복합적인 향에 부드러운 여성적인 카버네 소비뇽이다. 카이켄의 올해 포도 수확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시즌은 여느 때보다 건조했고, 온도도 평균을 웃돌았다. 수확량도 최고치였다. 다른 어느 때보다 최고로 응축된 맛과 향의 '마이'을 기대해도 좋다는 얘기다. , 자료도움=나라셀라

2018-11-01 14:38:45 안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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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미 기자의 '와이, 와인(Why, wine)']한국인은 화이트와인을 싫어한다?

"와인을 가지고 오는 손님들은 거의 대부분 레드와인을 들고 오시더라구요.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걸까요?" 와인을 직접 가져가도 무료로 서비스를 해준다는 콜키지 프리(corkage free) 레스토랑에 갔더니 셰프가 던진 질문이었다. 오랜 기간 이탈리아 현지 레스토랑에서 일했다는 그는 한국에 와보니 백이면 백 모두 레드와인만 가져오는 것이 너무나 이상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마시겠다며 가지고 간 와인도 모두 레드 일색이었다. 한국사람이 유난히 레드와인을 선호하는 것일까. 아니면 화이트와인을 싫어하는 것일까. 와인업계에서도 화이트와인의 판매는 풀기 어려운 숙제라고 한다. 화이트와인의 판매량은 여전히 레드와인 대비 절대적으로 약세다. 햇와인인 보졸레누보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한 레드와인은 프랑스 보르도를 거쳐 이탈리아와 미국, 칠레까지 스펙트럼을 넓혔지만 화이트와인은 제자리 걸음이다. 먼저 와인의 비싼 가격이 화이트와인을 소외시키게 된 출발점이다. 우리나라는 주류에 붙는 세금이 높은데다 유통구조도 복잡하다. 와인가격이 생산된 현지는 물론 일본 등 주변국보다도 유난히 비쌀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식전주로 화이트와인부터 시작해 디저트 와인까지 이어지는 서양의 코스 문화를 따라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 식사와 함께 와인을 마시는 경우 대부분 화이트와인을 생략하고 메인 요리에 맞춰 레드와인 두 세가지 만을 마시게 됐다. 건강 상식도 레드와인 선호에 한 몫을 했다. 와인 시장이 열리던 초기 와인업체들은 레드와인에 들어있는 폴리페놀 성분이 심장병을 예방하고 노화를 방지한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프랑스인들은 육식을 좋아하지만 와인을 자주 마시기 때문에 심장병 발생률이 낮고 장수를 한다. 바로 '프렌치 패러독스'다. 폴리페놀은 많은 가정에서 매일 저녁 와인 한 잔을 즐길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했지만 반대로 와인 선택의 범위는 레드에 한정시켜 버리고 말았다. 레드와인은 많이 마셔서 취하더라고 뭔가 건강에 도움이 될 거 같은데 화이트와인은 정말 술만 진탕 마시고 말았구나 싶은 찝찝한 느낌이랄까. 사실 한국 음식과 폭넓게 먹기 좋은 와인은 레드보다는 화이트다. 한식은 양념이 진해서 진한 레드와인이 어울릴 것 같지만 어느 음식이든 빠지지 않는 매운 맛에는 화이트와인이 소방수 역할을 해줄 수 있다. 명절 때 고소한 기름냄새를 풍기는 전과도 상큼한 화이트와인이 제격이다. 신선한 해산물이라면 날 것으로 먹어야 하는 우리에게 화이트와인은 환상적인 궁합을 선사할 수 있다. 건강상으로도 이점이 있다. 레드와인에 폴리페놀이 있다면 화이트와인에는 몸의 생기를 돋게 해주는 유기산이 있다. 식전주로 많이 쓰이는 이유다. 무거운 음식 없이 가벼운 과일이나 와인 자체만으로 먹기도 좋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대하와 전어, 굴 등이 제철을 맞았다. 화이트와인이 빛을 발하기 좋은 계절이기도 하다. , 자료협조=나라셀라

2018-10-25 11:26:22 안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