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올 장밋빛 전망 사라졌다
"국외 플랜트 사업이 글로벌 경기 둔화로 부진했다. 작년에 수주도 많이 떨어지고, 추가 원가가 발생해서 영업이익도 안 좋아졌다."(상장사 A업체 CIO) "전망 자체가 무의미 한 상황이다. 길게 보고 투자를 해야하는 데 당장 주머니 걱정이 앞선다."(B 제조업체 CEO) 상장사들이 잿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세계적인 경기 불황과 미국의 금리 인상 등에 상장기업들이 영업실적 전망을 대폭 낮추고 있다. 매년 화려하게 포장된 전망치를 내 놓아 '양치기 소년'이라는 비아냥 속에서 자신감을 잃지 않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장밋빛 사라진 2016년 전망 주식시장은 끊임없이 미래의 기업 실적을 추정한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그 역할을 한다. 애널리스트들이 쓴 실적 예측 답안지를 보고 펀드매니저들은 주식을 사고판다. 지난 8일 지난해 4·4분기 실적을 내놓은 삼성전자의 올 1·4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전분기 대비 각각 7~10% 감소한 5조6000억원대로 추정되고 있다. 분기 영업이익 6조원대 사수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반도체와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가격이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도 주주 중시 경영 차원에서 연초에 한 해 영업실적 전망을 내놓는다. 그리고 그 답안지를 채점하는 때가 어닝(실적 발표) 시즌이다. 답안지보다 좋은 실적이 나오면 주가는 더 오르고, 거꾸로 실망스러운 내용이 발표되면 떨어진다. 가이던스는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것으로 '희망치'에 불과하지만 국내 기업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는 평가다. 1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자동차는 올해 501만대 자동차 판매를 목표한다고 공시했다. 내수에서 69만3000대, 해외에서 431만7000대 판매를 계획했다. 이는 지난해 전망치 505만대 보다 4만대가 줄어든 것이다. 기아자동차도 올해 판매 목표를 지난해 전망치 보다 3만대 줄인 312만대로 제시했다. 내수에서 52만5000대, 해외에서 259만5000대 판매를 계획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최근 세계 경제는 중국의 경기 둔화와 저유가,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신흥 시장의 불안 등으로 저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이같은 새해 판매 목표를 밝혔다. 한국가스공사는 올해 영업실적으로 매출액 21조5366억원, 영업이익 8579억원이 전망된다고 공시했다. 이는 유가를 배럴당 53달러,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210원으로 본 운영계획을 토대로 전망한 것이다. 이는 지난해 매출액 33조8606억원, 영업이익 8736억원 전망 보다 대폭 낮아진 희망치다. 조선사들은 더 위축됐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목표가 매출 21조6396억원, 수주 195억달러다. 이는 지난해 매출 목표였던 24조3259억, 수주 229억5000만달러보다 각각 2조7000억원, 34억달러를 낮춰잡은 것이다.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은 '우리만의 현대정신'을 강조하면서 "언제까지 우리가 과거의 향수만을 이야기하며 살아야 하나. 우리가 잠시 게을렀고 그래서 이렇게 힘든 시기를 겪는 것이라고 생각하자"며 열정과 신뢰로 일터를 바꾸자고 독려했다. 현대미포조선도 올해 매출 희망치를 3조7000억원으로 제시했다. 지난해 3조5500억원 보다 소폭 늘어 난 것이다. 수주 목표는 30억 달러로 같다. 현대미포조선은 주요지표 예측치와 사업환경을 감안해 제시한 전망치라고 설명했다. ◆시장도 어려운데, 국회까지 발목 잡아 주요 대기업은 2016년 성장률이 3%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6년 경영환경조사 결과(285개사 응답), 응답기업의 90.2%가 내년도 성장률이 올해에 이어 3.0% 미만이 될 것으로 응답했다. 이는 정부, 한국은행 등 주요기관의 전망치보다 낮은 수치이다. 경영상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기업들이 꼽은 것은 '내수·수출 동반 부진에 따른 매출 감소'(48.1%), '중국 등 해외시장 경쟁심화'(21.1%), '원자재가 등 생산비용 증가' (10.2%) 순이었다. 스테판 디크 무디스 부사장은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10%를 차지해 왔던 대중국 수출실적이 최근 크게 둔화됐다"며 "수출 감소분을 정부 지출이나 민간 투자·소비 등으로 메워야 하는데 이 부분들도 단기간 내 늘어나긴 어렵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시장 환경이 최악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한 해법으로 기업 구조조정과 투자 확대 등을 들고 있다. 하지만 국회에 관련법이 발이 묶여 옴짝 달싹 못하고 있다. 전경련 홍성일 재정금융팀장은 "대내외 여건이 어려운 가운데 기업 경쟁력 강화와 고용창출을 위한 사업구조재편, 노동개혁 법안 처리로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경제 활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개혁이 미뤄질 경우 국가 신용에 금이 갈수 있다고 경고한다. 무디스가 한국 신용등급을 'Aa2로 올릴 때 도 "한국 정부가 일관된 정책 입안과 효과적인 집행으로 제도적 역량을 확충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