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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신세철의 쉬운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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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경제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금융왜곡

경제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금융왜곡 금융시장이 거시경제 상황을 올바르게 반영하지 못하고 왜곡되면, 거품이나 역거품(reverse bubbles)이 형성되어 누군가에게는 초과이익을, 다른 누군가에게는 초과손실을 입힌다. 금융시장 왜곡은 부의 재분배 내지 경제적 불균형의 원인으로 작용하여 국민경제의 지속적 성장과 발전을 가로 막는다. 오늘날 한국경제 불확실성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경제 양극화 현상은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실물과 금융의 불균형에서 비롯되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 부작용과 후유증이 장기간 누적되어 오늘날 한국경제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갈수록 심화시켰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① 인체에 비유하면 혈압과 같아서 금리는 돈의 사용가격으로 높아도 문제 낮아도 문제다. 만약, 금리가 생산성보다 조금 낮으면 투자가 활성화되지만 지나치게 낮을 경우 과도소비, 과잉투자를 유발하여 나라경제를 피로하게 만든다. 반대로 금리가 실물부문의 한계산성보다 높게 형성되면 저축을 유도하지만 유망기업·성장산업까지도 자금조달 애로를 겪게 되어 투자위축을 초래한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과잉투자로 비롯되었던 IMF 구제금융사태가 진정되면서 한국경제는 당시의 고성장·고물가 상황을 무시하고 줄기차게 유동성을 팽창시키며 경기부양 정책을 펼쳤다. 혁신도시 개발에 따른 대규모 보상금과 함께 고삐 풀린 유동성은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주식시장, 부동산시장 투기를 부추겼다. 투기가 지나간 뒤에는 어김없이 비정상적 부의 재분배가 일어난다. 특별이익을 얻는 소수와 특별손실을 입는 다수가 나뉘어져 부가가치 창출과 관계없이 빈부격차가 심화되기 마련이다. ② 인체에 비유하면 체중과 같은 주가는 기업가치의 시장가격이다. 만약 주가가 기업의 (미래)가치보다 높게 형성되면 당해 기업이나 산업에 대한 자금조달을 용이하게 하여 투자가 활발해진다. 그러나 지나치면 주식시장 거품을 초래하고 결과적으로 다수의 투자자에게 손실을 끼치는 동시에 부실기업, 사양산업의 도태를 가로 막아 산업구조고도화를 지연시킨다. 반대로 주가가 본질가치보다 낮게 형성되면 역거품을 발생시키고 유망기업, 성장산업의 자금조달 기능을 위축시켜 경제를 침체에 빠지게 된다. 체중이란 무거워도 가벼워도 다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주가가 무조건 올라야 좋다는 맹신 나아가 미신 같은 것이 깊이 깔려 있다. 쉬운 예로, 2000년대 초반 정부는 벤처산업을 육성한다는 명분으로 있는 코스닥 시장의 거품을 조성하였다. 끝없이 달아오르던 코스닥시장 거품이 소강상태에 이르자, 엉뚱하게도 경제관료까지 나서서 “코스닥 시장이 저평가되었다”는 어처구니없는 망언을 하며 거품을 부추기다 수많은 투자자들을 절망에 빠트려 빈곤층으로 전락시겼다. 언젠가는 대통령 선거공약으로 코스피지수를 5,000으로 올리겠다는 망발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자산가격의 거품이 팽창되었다가 붕괴되면, 대체로 그 이전 가격보다 더 하락하는 역거품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드러커(P. Drucker)가 우려하였듯이 신기술산업에 거품이 크게 팽창되었다가 소멸되면, 대다수 투자자들의 손실도 그만큼 커지고 실망도 커진다. 신기술시장이 투자자들로부터 불신 받고 외면당하게 된다. 코스닥시장, 코네스시장 장기부진은 2000년대 초반 코스닥시장의 무자비한 거품으로 말미암아 커다란 손실을 입은 투자자의 신뢰가 오랫동안 회복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③ 인체에 비유하면 체력과 같은 환율은 통화의 상대가격이다. 적정 환율은 국제수지 같은 대외균형뿐만 아니라 물가안정 같은 대내균형을 달성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환율이 비정상적으로 높거나 낮으면 수출과 내수의 불균형 현상이 일어난다. 만약, 환율이 적정수준보다 낮으면 물가는 하향 안정되지만, 경상수지는 악화되기 쉽다. 반대로 환율이 정상수준보다 높으면 대외 가격경쟁력이 높아져 수출기업은 살찌지만 가계는 고물가에 시달려야 한다. 우리나라는 수출비중에 비하여 내수비중이 낮아 산업구조가 점점 취약해져가는 하나의 원인이다. 잠깐만 생각해보자.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2018년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경상수지 누적흑자가 GDP의 절반이 넘는 8천억 달러를 넘어섰다. 그 천문학적 규모의 경상흑자를 감안할 때 원화 가치는 크게 절상되었어야 마땅하다. 대미원화환율은 그저 그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그런데도 일각에서는 환율이 낮아서 수출이 안 된다고 한탄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다. 엉뚱하게 ‘환율주권’을 내세우며 원화절하(환율상승)를 부추기던 관료들은, 자국통화가 정당한 평가를 받도록 해야 하는 것이 통화주권이지 헐값으로 마구 깎아 내리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선진국보다도 높은 물가수준, 높은 실업률과 낮은 평균임금 수준의 기현상은 소비수요부진, 계층 간 갈등 같은 만병의 근원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경제 불확실성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경제양극화 현상은 금리·주가·환율이 (남의 나라가 아닌 우리나라의) 거시경제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경제정책의 수단으로 남용되는 순간부터 잉태되기 시작하였다. 더구나 툭하면 미국 금리가 올라야 핫머니가 빠져 나갈까 두렵다며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가는 올라야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편견에 사로 잡혀 있다. 기업이나 정부나 다 같이 가격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원화가치의 하락을 유도하려 했다. 금융시장이 실물부분의 성과와 미래를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비추어야 미래예측이 가능해지고 실물과 금융이 균형을 이루어야 국민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 [b]주요저서[/b] -우리나라 시장금리의 구조변화 -상장법인 자금조달구조 연구 -주가수익배수와 자본환원배수의 비교 연구 -선물시장 가격결정 -증권의 이론과 실제 -불확실성시대 금융투자

2018-06-14 17:39:15 최규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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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행운과 행복

이 세상에서 행운을 거머쥐거나 행복해지기 싫다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상당수 사람들이 행운과 행복을 마치 같은 것으로 착각하고 스스로 행복을 찾으려 노력하기보다, 가만히 앉아서 운을 탓하기도 한다. 무꾸리 같은 운세산업 종사자가 최소 5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까닭이다. 행운은 살별처럼 나타났다가 별똥별처럼 사라진다. 그러나 스스로 이룩한 행복은 사람마다 가슴 속에 언제나 남아 있다. 행복으로 다가가려는 바른 의지와 정직한 실천이야말로 빛나는 행복의 결정체다. 행운은 몰라도 행복은 준비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권리다. 행운은 어쩌면 공중누각 같은 것이어서 갑자기 찾아왔다가도 어느 순간 사라지기 쉽다. 노력하지 않고 얻은 것들은 진정한 내 것이 되지 못하는 까닭이다. 우연히 찾아오는 행운은 대개 물질적이라면 스스로 찾아가야하는 행복은 정신적이다. 물질세계의 가격은 어느 새 변하거나 없어지지만,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의 가치는 살아 있는 순간까지 우리의 뇌리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그러니 바르게, 보람차게 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머릿속이 아름다운 기억들로 채워져 자부심을 느끼게 되고 행복해질 수밖에 없다. 결과보다는 최선을 다하려는 과정에서 더 크게 느끼는 행복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오로지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노력으로 다가가, 자신의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 마음의 잣대는 사람마다 다르기에 누가 더 행복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예컨대, 헬리콥터를 타고 산 정상에 유유히 내린다면 멋지게 보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숨을 몰아쉬고 구슬땀을 흘리며 한발자국한발자국 올라가는 그 희열을 짐작하지 못한다. 어리석은 우리 인간이 소유욕, 권력욕, 명예욕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것들에 매달리다가는 자세가 흐트러져 행운이 와도 잡지 못하고 오히려 불행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낙하산을 타고 큰 자리를 차지하려는 그 순간에 가면이 벗겨져 제 자식한테까지 창피당하는 광경을 언론에서 가끔 봤을 것이다. “이상(ideal)없는 삶은 의미 없다”고 한 유진 오닐은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에서 욕심 많은 인간에게 “불행은 행운의 탈을 쓰고 온다.”고 하였다. 어쩌다 행운이 왔을 때는 더욱 겸손해져야 그 행운이 오래 머문다. 주변의 예를 들면, 평소 성품이 괜찮아보이던 사람이 어쩌다 돈을 벌거나, 뜻밖의 자리를 차지하면 감춰졌던 거지본성이 들어난다. 은혜는 내던지고, 그저 욕심만 내다, 변덕을 자주 부려 주위를 피곤하게 만들었다. 급기야 돈도 권세도 사람도 다 떠나갔다. 행복을 맞이할 자세를 가질 때, 행운도 잡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자기 확신이 있을 때 행복감도 커진다고 한다. 윤동주 시인도 그랬듯이 일찍이 맹자(孟子)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자세를 사람의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라 하였다. 아무나 생각할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니다. 짐작컨대, 그 분들은 명경지수처럼 맑은 마음가짐을 최고의 자존감으로 여긴 것 같다. 행복의 정복(The Conquest of Happiness)을 쓴 버트란트 러셀은 “행복이란 끊임없이 노력하여 쟁취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긍정적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나는 행복하다’는 자세로, 더 열심히 노력할 것이기에, 더 행복해질 것이다. 사랑의 축복은 상대의 결점이나 모자람을 서로 감싸주고 채워주려는 마음가짐이다. 다시 말해, 서로를 행복하게 만들려는 자세를 가지는 한 행복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다. 무엇이든 마주 들어주고 한걸음씩 함께 나아가려는 자세가 바로 행복의 첩경이다. 예로부터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신체에 깃든다.”고 하였다. 신체가 건강해야 행복의 원천인 정신도 건강해진다. 너희는 평균수명 100세 이상 시대를 살 것이다. 오래 사는 것보다는 건강하게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한데, 노후건강은 아무래도 스스로의 책임이다. 마음 건강, 신체건강을 위한 투자에 게으르지 마라. 튼튼한 몸은 바른 마음 즉 행복의 기틀이다. [b]주요저서[/b] [b]-불확실성시대 금융투자[/b] -우리나라 시장금리의 구조변화 -상장법인 자금조달구조 연구 -주가수익배수와 자본환원배수의 비교 연구 -선물시장 가격결정 -증권의 이론과 실제

2018-05-14 11:24:07 최규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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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코픽스금리 착시효과

[신세철의 쉬운 경제] 코픽스금리 착시효과 시중은행은 대체로 코픽스금리를 기준으로 신용도에 따라 α(가산금리)를 더하여 (변동)금리 대출금리 수준을 정한다. 따라서 코픽스금리는 은행의 자금조달원가를 충실히 반영하여야 한다. 가계나 기업경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여수신금리가 적정하게 결정되어야 금융중개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나라의 자금순환이 순조롭다. 그런데 코픽스 금리는 이자가 높은 종류의 예금만 반영하여 산출한다. 차지하는 예금 비중은 크면서도 이자는 거의 지불하지 않는 요구불예금과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 등이 제외되기 때문이다. 대출금리를 결정하는 금리수준을 판단함에 있어서 코픽스금리는 착시효과를 내는 셈이다. 코픽스금리는 은행연합회에서 9개 시중은행들이 제공한 자금조달관련 정보를 기초로 산출되는 자금조달비용 지수다. 은행이 자금조달에 드는 비용을 가중평균 방식으로 측정한 COFIX(cost of funds index) 금리는 시중은행 (변동)금리 대출금리의 기준이 된다. 코픽스 금리는 은행연합회에서 국내 9개 시중은행들이 제공한 정기예금, 정기적금, 상호부금, 주택부금, 양도성예금증서, 환매조건부채권매도, 표지어음매출, 금융채(후순위채 및 전환사채 제외)를 대상으로 산출한다. 여기에는 요구불예금 및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 등이 제외된다. 신규취급액 기준, 잔액기준, 단기의 3가지가 있다. 한국은행은 예금은행의 여수신금리 수준을 측정하기 위하여 가중평균 여수신금리를 산출한다. 그런데 문제는 여수신금리를 정확하게 산출해서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가중평균 총수신금리와 은행연합회가 작성하는 코픽스금리 수준은 커다란 차이가 난다. 2018년 2월말 현재, 중앙은행이 산출하는 잔액기준 총수신금리는 연 1.23%인데 은행 연합회가 발표하는 잔액기준 코픽스 금리는 연 1.75에 달하여 0.52%의 큰 차이가 난다. 두 금리 차이를 비율로 환산하면 무려 42 {=(1.75-1.23)/1.23} %나 된다. 두 금리 간에 차이가 이렇게 크게 벌어지는 까닭은 코픽스 금리에는, 자금조달비중은 크면서도 고객에게 금리를 사실상 지불하지 않는, 요구불예금 및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 등이 제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산출하여 발표하는 은행의 가중평균 총수신금리가 자금조달원가를 정확하게 표시하고 있다면, 코픽스 금리는 시중은행의 자금조달비용을 과다하게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가계대출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 금리가 금융기관의 실질자금조달비용보다 아주 높게 형성되어 있음을 감안할 때, 시중은행은 가산금리를 사실상 이중으로 받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가 있다. 쉽게 말하면 은행 예금이자의 높은 부분을 반영하여 산출되는 코픽스금리는 자금조달원가가 높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착시효과를 나타나고 있다. 결과적으로 가계의 이자상환부담을 무겁게 하는 반면 은행 수익은 높이 날게 하고 있다. [b]총수신금리와 코픽스 금리 추이[/b] 실제로 2018년 2월말 현재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잔액기준 총수신금리 평균은 1.23%에 불과한데 총여신금리는 3.56%에 달한다. 시중은행의 가중평균 대출금리가 예금금리의 무려 3배 가까이 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달리 표현하면 배꼽이 배보다 2배나 커서, 이익이 원가의 무려 2배나 되는 수준이다. 물론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법인인 은행의 이윤극대화 전략을 무시할 수 없다. 2017년 은행의 이자이익만 무려 37조원이 넘어간다는 보도가 있는데 이는 예대금리차를 지나치게 크게 벌어지게 하는 코픽스 금리의 착시효과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나라 상당수 가계가 대출 원리금 상환부담 가중으로 힘들게 하는 대가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어쩌면 금융기관이 가만히 앉아서도 이처럼 커다란 수익을 올리는 환경에 안주하다보니 우리나라 금융부문 대외경쟁력이 세계 최하위로 처지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도 드는 장면이다. [b]주요저서[/b] -우리나라 시장금리의 구조변화 -상장법인 자금조달구조 연구 -주가수익배수와 자본환원배수의 비교 연구 -선물시장 가격결정 -증권의 이론과 실제 -불확실성시대 금융투자

2018-04-22 17:44:19 최규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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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경제] 천민자본주의 위기

자본주의의 발달은 획기적 생산성 향상을 통해 인류를 기아에서 탈출시키고 풍요로운 황금시대를 구가하게 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노동과 자본이 대립을 극복하고 밀월이 이어지는 동안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와 상승작용을 하며 인류문화에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제42회 세계경제포럼(WEF)에서도 자본주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며 이미 중태에 빠졌다고 걱정하는 학자들이 많이 늘어났다. 지금과 같은 부의 편재 현상이 계속 진행된다면,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현상이 심화되어 자본주의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고 걱정한다. 자본주의 위기는 자본주의 자체에 내재하는 모순 때문인지 모른다. 자본주의(資本主義)라는 용어 자체에는 정신적 가치보다는 물질세계를 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물질주의는 탐욕스런 인간의 세계에서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돈만 벌면 된다는 천민자본주의(pariah capitalism)로 변질되기 쉬운 것이 사실이다. 자칫하다가 돈을 삶의 중심으로 여기고 돈을 신격화하는 배금주의에 빠질 수도 있다. 황금만능풍조가 만연하면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를 지탱해주는 공동체의식은 파괴되며 도덕과 윤리는 거추장스러운 치장으로 변하며 자본주의 질서는 위기를 맞는다. 우리나라의 어떤 최고위인사는 입으로는 마냥 '주님과 애국'을 외치지만, 그의 행실에서는 오로지 돈만을 신앙으로 여기는 천민자본주의 의식구조가 역력하게 드러나 보인다. 자본주의는 기업가의 야수적 충동(animal spirits)에 의하여 성장하고 확장되는데 끝없는 욕심을 내다보면 먹이사슬이 붕괴될 우려가 생긴다. 그럴 경우 정글도 황폐화되고 백수의 왕도 먹잇감을 구할 수 없게 된다. 자본주의는 1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부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생산은 늘어나는데 반하여 구매력은 급감하면서 위기를 맞았었다. 생산보다는 수요가 턱없이 부족하자 중상주의, 군국주의가 대두하고 대공황 사태, 1차, 2차 세계대전이 촉발되었다. 히틀러가 인플레이션의 양자라면, 마르크스-레닌은 빈부격차의 수제자들이다. 냉정하게 따진다면, 당시 유럽의 극심한 빈부격차는 공산주의를 생성시켜 비극적 한국동란의 먼 원인이 된 셈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위기론도 1%가 아닌 0.001% 이하의 극소수 사람들에게 소득과 소유가 몰리는 데서 비롯된다. 세계화로 그리고 정보화로 1등만이 살아남는 승자독식의 세상에서 글로벌 대기업이 전 세계 시장을 휩쓸면서 경제력집중 현상은 20세기 초기 상황보다 훨씬 더 심각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2011년에 10대 재벌 상장기업 매출액이 전 상장기업 매출액의 50%가 넘어서며 경제력집중 현상이 심각한 상황이 이르렀다. 2018년에도 10대 재벌비중이 상장기업 시가 총액의 50%를 넘어섰다. 붕어빵이든 눈깔사탕이든 특정 품목에 전념하여 최고의 품질로 세계시장을 장악한다면 오히려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몇몇 기업이 생산활동, 소비활동, 일상생활, 여가생활에 필요한 모든 품목을 전 방위에 걸쳐 다 차지하는 모습이다. 대기업집단이 의식주 분야는 물론 체육, 오락, 문화까지 거의 전 방위에 걸쳐 지배하고 있다. 일부 대기업은 지네발을 뻗어 순대와 떡볶이, 김밥까지 만들어 팔며, 영세 상인들이 허덕이는 막다른 골목까지 누비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어떻게 될까? 정보수집과 분석, 자금융통, 판매조직, 언론관리, 대정부 교섭능력(bargaining power)이 뛰어난 몇몇 대기업집단이 모든 생산수단과 유통경로를 장악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이 더 심각하게 진행되면 끝내는 먹이사슬이 끊어지는 후기 공룡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그 때 대기업집단들은 생활에 필요한 상품을 만들어도 살 사람이 없으니까 도리 없이 저들끼리만 서로, 사고팔고, 팔고사야만 하는 지경에 이를지 모른다. 좀 지난 이야기지만 유수의 경제단체가 낸 "위생과 대외경쟁력을 위하여 대기업이 두부를 생산하여야 한다."는 황당한 보도 자료를 감안할 때 이런 불상사는 까마득히 멀기만 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약육강식 논리의 성장지상주의자들이 간과하기 쉬운 사실은 소비수요기반이 약화되면 아무리 좋은 상품을 생산해봤자 소용없다는 점이다. 조금만 생각하면 분배가 잘 되어야 구매력이 살아나서 상품이 팔리고 다시 투자와 생산으로 연결되어 대기업도 튼튼하게 커갈 것이다. 성장과 분배는 톱니바퀴와 같다. 성장 없는 분배도 불가능하지만, 분배 없는 성장 또한 있을 수 없다. 성장이 분배의 아버지라면, 분배는 성장의 어머니가 되는 셈이다. 비행기의 좌우 날개 중에 둘 다 모두 튼튼해야 비행기는 높이 그리고 멀리 날아갈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생산과 소비에서 모든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혜택을 받을수록 자본주의는 더 오래 더 번창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주요저서 -우리나라 시장금리의 구조변화 -상장법인 자금조달구조 연구 -주가수익배수와 자본환원배수의 비교 연구 -선물시장 가격결정 -증권의 이론과 실제 -불확실성시대 금융투자

2018-04-08 18:01:48 최규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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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경제] 공동체 의식

[b]공동체 의식[/b] 오늘날 우리나라가 선진 경제권으로 진입하기 위하여 극복해야 할 「코리아 리스크」 중의 하나는 남의 불행이나 고통을 모른 체하며 애써 외면하는 일그러진 사회풍토다. 곳곳에서 공동선보다는 사익을 취하려는 기회주의와 함께 할 일을 찾기보다는 책임부터 회피하려는 보신주의가 판치고 있다. 이 같은 사회병리현상은 말할 것도 없이 경제 성장과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공동체의식 실종에서 비롯된다. 자본주의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개인도 잘 살고 사회도 발전하는, 동기양립(動機兩立)의 기본 원리가 공동체의식이다. 그 밑바탕에는 사회적 수용능력이 뒷받침되어야 개인이나 조직도 더불어 혜택을 본다는 외부효과(external effect) 논리가 깔려 있다. 좋은 상품도 구매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야 비로소 가치가 생긴다. 오늘날 공급과잉사회에서 불황 탈출은 생산능력 부족이 아니라 소비수요 부족에서 찾아야 한다는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다. 개개인이 열심히 일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사회에 기여하고 보상도 받게 되는 동기양립(incentive compatibility) 관행이 정착될 때 공동체의식이 배양된다. 불로소득이 넘치는 사회, 벌 받을 자가 상을 받고 상 받을 자가 벌 받는 사회,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고 공연히 파벌 감정을 조장하는 사회에서는 동기양립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될 수가 없다. 부정부패로 돈을 번 자들은 아슬아슬 했던 위험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인지 더 야박해지고, 낙하산을 타고 공짜로 감투를 쓴 자들은 체면을 버리고 더 무자비하게 칼을 휘두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파벌을 부추긴 자들일수록 기회주의 습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순식간에 변절하는 모습들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공직자 비리의 백과사전처럼 보이는 유력인사의 하수인들이 결국에는 서로 저만 살겠다고 서로 손가락질을 해대는 모습을 보자. 우리가 나라를 빼앗겼던 것도 따지고 보면 공동체의식이 파괴되었기 때문이었다. 가렴주구에 시달린 백성들은 초근목피로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데, 왕권을 확립한답시고 궁궐만 높이 세우려고 하니 공동체의식이 풍지 박산 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공동체의식이 매몰되면서 먹물 먹은 자들이 다투어 외세에 빌붙어 나라를 팔아먹는 비극적 상황이 전개되었다. 국민소득이 늘어나 세계 상위권으로 발돋움하여도 소외계층을 위한 기부금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물론 세금 문제만이 아니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으로 중산층이 엷어지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전체 소득이 늘어나는데도 빈곤층이 더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를 생각해보자. 부자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아지거나, 더 큰 부자들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극빈계층에 대한 기부금이 끊기고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더 많이 가질수록 더 인색해진다는 의미가 된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우리 속담은 살림살이가 넉넉해져야 인심도 후해진다는 뜻인데 이제는 반드시 옳은 말이 아니게 되었다. 탈무드에서도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일은 관용 내지 자비가 아니라 공동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납세의무나 국방의무처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 즉 정의라는 이야기다. 생각건대, 정의(justice)란 거창한 것이 아니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이는 "남의 자유가 보장되는 범위에서 비로소 나의 자유가 가치가 있다"는 자유주의 학파 논리의 근간이다. 조금만 생각하면, 더불어 살자는 공동체의식은 이웃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개개인 자신들을 위한 길임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천하장사라도 사회의 보호막 내지 안전망 없이는 오랜 생존이 불가능하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승자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말이지 어느 나라에 못지않게 자랑스러운 기억을 지니고 있다. 거대 유조선 침몰로 바다가 오염되어 어민들이 생활터전을 빼앗겼을 때, 바위에 들러붙은 기름 한 방울까지 닦아 내려는 자원봉사자들이 태안 앞바다로 구름같이 몰려들었었다. 말하지 않아도 우리나라는 저력이 있는 공동체가 분명하다. 우리나라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까닭은 그만큼 정의에 대한 내면의 욕구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주요저서 -우리나라 시장금리의 구조변화 -상장법인 자금조달구조 연구 -주가수익배수와 자본환원배수의 비교 연구 -선물시장 가격결정 -증권의 이론과 실제 -불확실성시대 금융투자

2018-03-23 10:08:48 최규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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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밥상머리 교육

[신세철의 쉬운 경제] 밥상머리 교육 너희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가족'과 같은 뜻인 '식구(食口)'란 한 집에서 끼니를 같이 하며 사는 인생의 동반자를 일컫는다. 따로 태어난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한 식구가 된다는 것은 곧 백년가약을 의미한다. 예나 지금이나 남편에게는 아내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 과거 농경사회, 단순재생산사회에서는 생산성이 낮아서 먹고 살기가 쉽지 않았다. 제 식구를 배고프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으로서 지켜야 할 큰 의무였다. 그래서인지 '밥 먹을 때는 개도 때리지 않는다.'처럼 먹는 일을 소중하게 여기는 속담이 우리나라에는 많았다. 결식이 아니라 과식이 건강의 위험이 된 오늘날에도 먹는 일은 변함없이 소중하다. 화목한 분위기에서 정갈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은 신체는 물론 정신건강의 필요조건이다. 가족이 식사를 하면서 나누는 대화는 가정의 뿌리를 굳건히 하는 핵심요소라고 생각한다. 밥상머리에서 인생을 이야기하고, 영혼을 맑게 하고, 미래를 가늠해 보는 대화를 나누는 습관은 너희 인생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이 함께하는 식탁에서는 대화가 절대 필요하다. 만약,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세상의 모습이나 사람 사는 이치를 깨닫게 하는 금언이나 시 구절을 찾아 식탁에서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 인간애 넘치는 밥상머리 대화는 이다음 태어날 아이들을 바른 품성을 가진 인격체로 키우는 첩경이 될 것이다. 아이들은 평소 부모의 행동거지를 저도 모르는 사이에 보고 배우기 마련이다. 식탁에 둘러앉아서 듣게 되는 부모의 대화 그리고 부모와 주고받는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가치관이 훗날 어린이 인격을 좌우할 것임은 너희가 더 잘 알 것이다. 식탁에서 부모가 자식들에게 보여주는 규범과 언행은 부지불식간에 아이들 뇌리에 뿌리내려 평생 동안 자리 잡는다. 인간관계나 인격의 형성은 타고난 천성 즉 유전적 요인보다는, 후천적 교육훈련 즉 환경적 요인이 더 크게 지배한다고 한다. 유교와 탈무드에는 가정교육을 특히 중요하게 여긴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밥상머리 교육이 중요한지 알면서도 그냥 지나치기 쉽다는 점이다. 가정교육에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쉬운 예를 들어보자. 여기저기 큰돈을 숨겨두고, 어쩌다가 높은 자리에 올라서도, 부정축재에 골몰했던 헤비급 인사가 제가 저지른 몰염치한 행각을 죄다 부인하고 있다. 그 뻔뻔한 거짓말이 세간의 웃음거리가 되는 줄을 그 자신만 모르는 것 같다. 비리의 만물상처럼 보이는 그 자는 언젠가 "나의 어머니는 나에게 정직하게 살라"고 가르쳤다는 거짓말(?)을 하여 기자들을 헛웃음 치게 했다고 한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면서 하는 그 이율배반의 말장난은 바로 제 어미를 욕하는 짓이다. 그의 지저분한 이름은 아마도 거짓의 대명사가 되어 후대에 남을 것 같기도 하다. 비극인지 희극인지 모를 이런 광경은 어두웠던 성장지상주의에서 배태된 사회병리현상도 하나의 원인이 되겠지만, 무엇보다 일그러진 가정교육에서 비롯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악스런 부모의 탐욕으로 넘치는 대화를 밥상머리에서 들으며 자란 자식들은 자신도 모르게 시커먼 욕심만 키워가기 쉽다. 부모는 자식에게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수치심이나 죄의식도 가르쳐야 한다. 사람이 다른 짐승들과 다른 점은 부끄러움을 알고, 스스로 죄를 두려워할 줄 안다는 점이다. 정갈한 식탁에 둘러앉아 자연에 대한 사랑, 세상살이에 대한 애정을 가지는 대화는 바로 행복의 원천이다. 그러니 서로 다른 일을 하더라도 둘이 시간을 맞춰, 기쁜 마음으로 같이 식사하는 기회를 가능한 많이 만들기 바란다. 행복한 식사가 너희 만남과 사랑을 아름답게 열매 맺게 하는 밑거름이다. 둘이서 먹고 싶은 음식을 찾아서 맛있게 먹는 일을 주저하지 마라. 너희에게 주어진 지금 이 순간, 순간이 바로 귀하고 귀한 시간이다. 식구가 모여 식사하는 것이 설레지도 즐겁지도 않을 때가 혹시라도 생긴다면, 가정생활 어딘가에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다는 신호로 생각하고 경계해야 한다. 사람이 살다가보면,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때도 있다. 무엇 때문에 넘어졌는지 생각해보고 치유해야 다시 넘어지지 않는다. 주요저서 -우리나라 시장금리의 구조변화 -상장법인 자금조달구조 연구 -주가수익배수와 자본환원배수의 비교 연구 -선물시장 가격결정 -증권의 이론과 실제 -불확실성시대 금융투자

2018-03-09 07:02:32 최규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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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잘못을 정당하게 지적해야!

[b]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잘못을 정당하게 지적해야![/b] 제왕적 지위에 있는 문화예술계 괴물의 허상을 벗겨내려는 피해자들의 희생과 결단이 없다면 유언비어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재계, 정계를 주름잡던 거물의 얽히고설킨 의혹을 털어놓는 하수인들의 행태는 사실상 예견되었었다. 두 가지 사건은 사회의 오염된 모습과 관련하여 연관성이 깊게 느껴진다. 한쪽은 자신의 체면 손상을 무릅쓰고 진실을 밝히려는 용기가 돋보이고, 다른 한쪽은 상전의 비리와 부정을 시인함으로써 자신에게 씌어진 굴레를 헐겁게 하려는 눈치가 엿보인다. 썩은 윗사람을 잘못 만난 탓인가? 아니면 흙탕물에 뛰어든 자신의 잘못일까? 뒤늦게라도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은 세상을 한 뼘이라도 더 밝아지게 할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끼리끼리 편을 가르며 특별이익을 은밀하게 나누어 가지려는 조직이나 사회에서는 진실을 말하는 일이 오히려 배신행위로 낙인찍히기 쉽다. 진실을 밝히기를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다보면 공공연하게 유언비어가 떠돌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런 환경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당당하게 내걸고 잘잘못을 바로 잡으려는 공동체의식은 실종되고 어둠 속에서 상대방을 남몰래 음해하는 투서가 난무하기 마련이다. 한 동안 우리나라에서 상영 금지되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1950년대 영화 '워터프론트(0n the Waterfront)'에 나오는 미국 "하류 사회"의 양심과 용기에 관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한때 프로복싱 유망주였으나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부두노동자가 된 테리(말론 브란드)는 악덕 노조위원장이 저지른 살인사건에 휘말린다. 부두노동자들의 인권이 유린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지의 성직자 배리 신부(칼 말든)가 양심에 호소하며 설득하자 테리는 번민한다. 진실을 증언하면 밀고자로 매도당하여 목숨을 보전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진실을 외면하자니 억울하게 죽은 사람에 대한 죄책감을 견디지 못한다. 테리는 "그 놈의 양심 때문에 미치겠다."라고 절규하며 방황하다가 마침내 법정에서 진실을 밝힌다. 어둠 속의 밀고자가 아니라 용기 있는 내부고발자가 된 셈이다. 사회의 밑바닥에서 몸부림치며 지키려한 그 거역할 수 없는 자부심이 지나간 "20세기 팍스 아메리카나"의 주춧돌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미국 경제에 큰 파장을 미친 엔론(Enron)은 포천지에 의하여 '96~'01 6년 연속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선정되었으며, 비즈니스위크지에 의하여 올해의 에너지 기업으로 뽑히기도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관계회사와의 허위, 내부거래를 통하여 장부상의 이익을 부풀리는 동안에 정작 CEO는 자기주식을 내다 파는 파렴치한 일들이 자행되었다. 겉으로 보는 화려한 모습과는 달리 속으로는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상장기업에 대한 투자자, 소비자의 불신이 확대되어 그 손실이 막대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만약 거짓과 부정을 보고 호루라기를 힘차게 부는 내부고발자가 제 때에 나타났다면 사회적 손실의 규모는 그처럼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다. 최고경영자가 종신형을 선고 받는 일도 막았을 것이다. 이 사건 이후 내부고발자 즉 "호루라기 부는 사람"에 대한 중요성을 더욱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장려하는 조치가 이어졌다. 외부 감시제도가 아무리 발달하여도 내부에서 직접 지켜보는 사람만큼 문제점을 똑바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직이나 우두머리의 부정, 비리를 용기 있게 신고하는 내부고발자(whistle blower)에 대한 신변안전 장치가 뒤늦게나마 논의되기는 하였으나 흐지부지된 느낌이다. 이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다가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진실을 밝히다보면 배신자로 손가락질을 당하거나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당하는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우리나라가 "투서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씻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하는 인사도 있다. 양심에 따라 진실을 말하려는 사람을 보호하고 격려하기보다는 오히려 배신자 내지 밀고자라는 멍에를 씌워 수렁에 빠트리는 사회분위기로 말미암은 사태라고 할 수 있다. 사실을 사실대로 이야기하는 것은 정직하고 용기 있는 시민만이 하는 것이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구약성서 레위기에 이런 구절이 있다. "너희는 마음속으로 형제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 동족의 잘못을 서슴없이 꾸짖어야 한다. 그래야 너희가 그 사람 때문에 죄를 짊어지지 않는다." 라고 하였다. 이웃이 잘못하였을 때 속으로 욕하지 말고, 잘못한 점을 지적하여 바로잡도록 할 의무가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는 근대 서구사회 시민정신(citizenship)의 기틀이 되었다고 판단된다. 잘잘못을 당사자 앞에서 정당하게 가리거나 지적하지 않고, 뒤에서 꾸미고 비난하는 자는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다. [신세철의 쉬운 경제] [b]주요저서[/b] -우리나라 시장금리의 구조변화 -상장법인 자금조달구조 연구 -주가수익배수와 자본환원배수의 비교 연구 -선물시장 가격결정 -증권의 이론과 실제 -불확실성시대 금융투자

2018-02-23 14:47:55 최규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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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행복의 조건

[b]행복의 조건[/b] 새 출발 하는 너희에게 서로 받들며 품격 있는 가정을 이루기 바라는 마음으로 몇 가지 당부하고자 한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건대,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세상은 오히려 권태로울 것으로 짐작한다. 무엇이든 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유토피아에서는 성취감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모자람을 채우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성취감을 느낀다. '생각하는 갈대'인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핵심요소는 바로 꿈꾸고, 도전하고, 성취하는 것이다. 다 알다시피, 플라톤은 '행복의 5가지 조건'에서 인간이 가지고 싶은 것은 조금은 모자라는 듯해야 사람들은 더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둘이서 부족한 무엇을 조금씩 채워가려는 의지를 갖추고 노력하는 과정 그 자체가 바로 행복의 원천이라 생각한다. 이인삼각으로 발맞추어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 기쁨은 몇 배로 커진다. 수명은 길어지지만 변화의 속도는 자꾸 빨라지는 미래사회에서 어떠한 상황이 전개될지 예측하기 힘들다. 불가측 한 세상에서 뒤처지지 않고 변화에 대응하려면 마음의 여유는 물론 경제적 여유도 필요하다. 적은 수입이라도 검소하게 살며, 저축을 생활화할 때, 여유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허황된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은 지금껏 본 일이 없다. 어김없는 세상 이치의 하나는 '돈이 돈을 벌고, 빚이 빚을 진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돈은 어떻든 늘어나지만, 빚을 지기 시작하면 빚이 홍수처럼 불어나기 쉽다' 친한 사이일수록 돈을 빌려주고 빌리는 일은 금물이다. 작더라도 빚보증을 서다가는 돈도 우정도 동시에 잃는다. 성경에도 "남의 빚보증을 서지 마라, 만약 네가 그 빚을 대신 갚지 못할 경우에는 네 보금자리까지 빼앗기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잠언 22장 26~27절) 연구결과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무엇인가 베푸는 습관을 지니면 지능이 발달하고 사회적응능력을 높인다고 한다. 세상을 따뜻하게 보려는 마음가짐 때문일까? 하여간 의지가 선하지 않다면 지식, 재산, 권력이 공동체에 기여하기보다 혼란과 해악을 끼치고 자신도 망가지기 마련이다. 선의지(善意志)가 없는 인사는 능력을 사리사욕 수단으로 남용하다 제 덫에 스스로 걸려들기 쉽다. 사회 곳곳에서 종종 나타나는 현상이다. 나의 작은 희생이 상대방에게 큰 혜택이 되면 그만큼 기쁨도 크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베풂의 가치는 커진다. 나누려면 먼저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여야 한다. 제 앞가림도 못 하면서 빛과 소금이 될 수 없다. 근검절약하는 자세에다 베푸는 기쁨이 더해지면 겹겹의 행복이 아니겠는가? 베풂은 남에게 도움이지만, 베푸는 마음은 자신의 기쁨이다. 칸트도 선한 의지야말로 행복의 필요불가결한 요소라고 하였다. 미완성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서로 의견이 엇갈릴 때도 있고, 이런저런 갈등도 일어날 수 있다. 때로는 대수롭지 않은 작은 상처가 깊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서로의 자존심을 지켜주려는 마음가짐을 가진다면, 아무리 문제가 꼬이더라도 스스로 풀린다. 상대의 자존심을 지켜 주는 것이 나의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라고 다짐한다. 남은 무시하면서 저만 치켜세우려는 어리석은 행태는 미련한 자의 오만이다. 그리고 편견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라고 그랬지! 그 말을 들으며 참 든든했다. 내 마음의 눈에는 둘이서 사랑하고 기뻐하는 모습이 환히 비친다.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항상 기도하겠다.

2018-02-08 17:20:45 최규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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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재력과 권력 그리고 법이 만났을 때 흔들리는 정의

[b]재력과 권력 그리고 법이 만났을 때 흔들리는 정의[/b]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디케는 오른손에는 칼을, 그리고 왼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 "저울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양심을 의미하고, 칼은 법을 어기면 베인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법을 다루는 자가 '커넥션'의 하수인이 되어 법을 왜곡하거나 남용할 경우, 결국에는 자신들의 심장도 찢길 것이다."라는 경고라고 한다. 정의의 여신 디케의 눈은 원래 가려져 있다고 한다. 법을 다루면서 이것저것 눈치를 보다가는 공정한 잣대를 들이대지 못한다는 뜻이다. 신화가 지배하던 고대사회에서도 이것저것 사정을 고려하다보면 법의 눈금을 엿가락처럼 늘어지게 할 우려가 있었던가? 그 아득한 옛날에도 돈이나 권력에 눈이 어둡다보면 선과 악을 구분하기 어려웠나 보다. 하물며 돈이면 무엇이든 다 된다고 생각하는 황금만능주의 사회에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언젠가는 정치권에서 횡령·배임죄를 저지른 대기업 총수의 집행유예를 금지하자는 입법을 추진하려 하자, 재변단체에서는 정치인의 범죄에 대해서도 같은 조치를 취하자고 맞받아쳤다. 일그러지고 뒤틀린 법의 눈금을 바로잡자는 논의가 돈과 권력의 주변에서 제기된 것은 우연인가 아니면 필연인가? 이 논의는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치유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지 못하고 흐지부지되었다. 유전무죄, 유권무죄 그 어두운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최근에는 권력에 기생하여 남다른 특권을 누리던 인사들이 오랏줄에 묶이면서 정치보복이냐 아니면 적폐청산이냐 하는 어이없는 논쟁이 벌어졌다. 법이 구부러지고 휘어져서 그때그때마다 잣대가 달라지면 옳고 그른 것, 허위와 진실, 선과 악을 분간하지 못하는 세상이 된다. 사람들이 가치관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거짓 신념"에 불타 만용을 부리기 쉽다.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틀린 것을 틀렸다고 분명하게 말하지 못 하는 환경에서는 어쩔 수 없이 사람의 도리가 아닌 '병든 의리, 깡패 의리'가 횡행하기 마련이다. 자연히 떳떳치 못한 무리들이 끼리끼리 커넥션을 만든다. 우리사회에서 걸핏하면 이른바 '뗏법'이 판치는 까닭은 법이 거미줄처럼 되어 잠자리가 날아가면 걸려들어 죽고, 짱돌이 날아가면 구멍이 뻥 뚫리기 때문이 아닌가? 온갖 지저분한 짓거리를 하고도 딴전을 피우거나, 조롱거리가 된 줄도 모르고 헛기침하는 유력인사의 주변에는 의례 법을 열심히 공부한 인사들이 우글거리는 까닭은 무엇인가? 처음에는 법을 지키려고 공부하다가도 급기야 법망을 교모하게 피해가며 법을 어기는 방법을 연구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누군가 특혜를 얻으면 다른 누군가는 그 이상의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세상 이치다. 법이 특정 커넥션의 세력을 확장하고 비리를 보호하는 도구로 전락하면 할수록 죄 없고 선량한 시민의 권리는 그만큼 위축되고 나아가 유린될 가능성이 커진다.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마지막으로 기대야 할 곳이 법의 심판임을 생각할 때, 법이 양심을 팔아버리는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어쩔 수 없이 훼손되기 마련이다. 법이 구겨지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면 그 재앙이 결국 사회 혼란으로 이어진다. 역사의 경험을 볼 때, 사회의 말기 증상은 언제, 어디서나 대부분 ① 극심한 부의 편재와 ② 종교의 극성과 타락 ③ (법)질서 문란으로 나타난다. 생각건대, 힘의 논리가 도덕성을 압도하고 준법정신을 제압하는 불상사가 너무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힘이 정의"라는 강자의 논리가 지배하다보니 상을 받을 자가 벌을 받고, 벌을 받을 자가 상을 받는 모습이 여기저기 보인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한정된 예산으로 불필요한 사업을 시행하게 되고, 쥐떼들이 들끓어 나라 살림에 구멍이 숭숭 뚫리기 마련이다. 부분과 전체의 비용과 편익을 고려하지 않는 유형무형의 막대한 경제적 손실은 결국 납세자 부담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남다른 혜택을 받은 인사들이 저들의 몫을 더 크게, 더 오래 챙기겠다며 물밑에서 무리를 이루는 '커넥션'이 생긴다. 그런 환경에서 법은 권력의 창이 되고 돈의 방패로 전락하기 쉽다. 이 불신과 불안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로지 만인이 법 앞에서 평등한 신상필벌의 제도적 장치를 확립하는 길 뿐이다. 커넥션의 우두머리라고 예외를 둔다면 어떻게 법의 정신이 살아날 수 있겠는가? '법의 정신'에서 몬테스키외(Charles L. J. de Montesquieu)가 말하듯이 법은 질서를 어지럽힌 사람들에게 상응하는 벌을 줘야 하는 대신에,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마지막 구원처가 되어야 한다. 갈 길이 멀기만 하다. [b]주요저서[/b] -우리나라 시장금리의 구조변화 -상장법인 자금조달구조 연구 -주가수익배수와 자본환원배수의 비교 연구 -선물시장 가격결정 -증권의 이론과 실제 -불확실성시대 금융투자

2018-01-26 12:00:50 최규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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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형평과 능률의 상관관계

[b]형평과 능률의 상관관계[/b]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 세상에서, 강자만이 살아남는 적자생존과 서로 돕고 돕는 공생관계 중 어느 쪽이 문명의 진화와 발전에 더 많이 기여하였을까? 분명한 사실은 먹이사슬이 튼튼해야 백수의 왕 사자도 살 수 있듯이 적자생존과 공생관계는 언뜻 대립되는 개념 같지만, 서로 떼래야 뗄 수 없는 보완관계에 있다. 농경사회 같은 단순재생산 사회에서는 서로서로 도와가는 상호수혜가 인류의 삶을 보다 여유 있게 만들었을 것이다. 해마다 생산량이 거의 일정하였던 시기에는 되도록 많이 나누어야 재화의 효용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대재생산 사회에서는 적자생존 원칙에 따른 인센티브 효과가 생산성을 더 높이고, 더 뛰어난 사람들이 더 많이 돈을 버는 과정에서 경제 성장과 발전이 추구된다. 생산성 향상이 지속되어야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삶도 더 윤택하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 발전과 더불어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향상되면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현상이 세계경제에 일반화되면서 생산보다는 분배가 차츰 더 중요해지고 있음을 인식하여야 한다. 경제적 인간들이 사는 사회에서 적자생존과 공생관계의 논리적 틀을 생각해보자. 먼저 적자생존 세계에서는 경제활동의 목표가 생산극대화를 통한 이익극대화에 있다. 개별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윤이,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는 생산이 중요하다. 이윤극대화 세계의 강령(code)은 '정글의 법칙'이다. 누가 만들든 관계없이 값싸고 품질 좋게 인식되는 상품만이 팔리는 냉정한 시장에서 개인의 이윤추구동기에 의하여 창출된 부가가치는 성장의 동력으로 작용하여 결국 사회전체의 이익으로 귀착된다. 이 과정에서 토지, 노동, 자본, 기술, 정보 같은 생산요소들이 부가가치 형성에 기여한 대가로 시장에서 지불되는 몫이 바로 제1차 분배다. 다음, 공생관계는 경제활동의 최종 목표를 효용극대화에 둔다. 경제의 대원칙은 '한계효용 체감법칙'이다. 배부른 사람들이 먹는 고급호텔의 상어지느러미 요리보다, 배고픈 사람들이 먹는 장터 순대국 한 그릇의 효용가치가 훨씬 더 크다. 여기서 제1차 분배의 결과 초래되는 불균형을 보완하는 제2차 분배가 활발할 때 비로소 그 사회의 효용극대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명제가 성립한다. 조세, 사회보장기구에 의한 보정적 재분배 즉 2차 분배는 사회의 총효용을 크게 하는 중요한 경제적 기능을 하고 있다. 모든 생산 활동의 궁극적 가치는 효용에 있다. 제2차 분배는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에게는 패자부활의 기회를, 그리고 경쟁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안전장치가 된다. 재분배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을 생산 활동에 참여하도록 유도하여 결과적으로는 생산극대화를 위한 조건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복지는 자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불확실성 시대에는 누구든 빈곤층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있음을 생각할 때 제2차 분배는 사회를 안정시키는 핵심기능을 한다. 제1차 분배시장 왜곡은 누군가의 손실과 동시에 누군가의 이익을 발생시켜 생산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 가격기능 즉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움직여야 할 시장이 가이드라인, 담합, 노조 압력 등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일그러질 경우 시장가격기능이 훼손되며 그 사회의 총생산은 쪼그라들고 결과적으로 총효용도 감소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제2차 분배 즉 보정적 재분배가 과다하면 근검절약 등 각 경제주체들의 경제적 동기를 상실하게 하여 삶의 기반을 근원적으로 흔들리게 할 수도 있다.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사회에서는 총생산도 총효용도 자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공생관계는 효용극대화, 적자생존은 생산극대화의 명제를 가진다. 생산 없는 효용은 불능이며, 효용 없는 생산이야말로 정말 무의미하다. 우리는 여기서 적자생존과 공생관계는 서로 보완 관계에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생산극대화와 효용극대화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생각할 때, 형평은 능률을 해치지 않으면서, 능률은 형평을 보완하면서 추구하는 사회가 최고선(the supreme good)을 달성할 수 있다. "생물의 세계에는 약육강식과 상호수혜(mutual benefit)의 두 가지 삶의 모습이 있다" 미시간대 자연사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크게 붙어 있는 이 표어는 동물의 세계보다는 만물의 영장들이 사는 인간사회에 더 커다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b]주요저서[/b] -우리나라 시장금리의 구조변화 -상장법인 자금조달구조 연구 -주가수익배수와 자본환원배수의 비교 연구 -선물시장 가격결정 -증권의 이론과 실제 -불확실성시대 금융투자

2018-01-12 09:21:35 최규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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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자세로 무술년(戊戌年) 맞아야

보수는 가치 있는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고 보전하겠다는 것이고 진보는 보다 더 가치 있게 변화와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뜻이다. 아무 것이나 욕심껏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지킬 가치가 있는 것을 지켜야 진정한 보수의 의미가 있다. 또 변화를 모색할 때는 과거나 현재보다 발전되고 더 가치 있는 길이어야 진보의 길이 빛나게 된다. 논어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불가분의 보완관계에 있음을 갈파하고 있다. 바로 “옛 것을 익히고, 새 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 는 구절이다. 배운 것을 때때로 익히고, 새롭게 터득해 가면 그 배움과 응용이 더욱 넓어지고 커져 귀감이 될 만하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고(故)는 예전에 배운 것이요, 신(新)은 지금에 새롭게 터득하는 것이라고 풀이된다. 온고지신의 자세로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이 각각 다른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빛나는 세기였던 르네상스는 온고지신의 시각으로 보수와 진보를 조화시켜 이 땅에서 ‘인간다운 인간‘의 부활을 이끌었다. 그 시대 인문주의자들은 "그리스 로마 시대에 인류가 최고의 문화를 달성했고 그 이후에는 점차 부패하기 시작하여 중세암흑사회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종전과 달리 역사를 종교적 연속선상이 아닌 사회 문화적 발전단계로 보고 “온고지신”의 자세로 고대 그리스 로마의 유산을 재발견하고 재생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테는 신곡(神曲)을 쓰면서 신보다는 인간의 이야기를 하였고,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는 고전을 일반대중도 접근할 수 있도록 속어로 정리했다. 이처럼 옛것을 가다듬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려는 태도는 이후의 예술, 과학 등 여러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쳐 빛나는 문예부흥(文藝復興) 시대를 이끌었다. 조금만 생각하면 보수와 진보가 본질에서 다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배운 것을 맹목적으로 외우고 그에 집착하여 서로 따지기만 하고 물고 늘어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조선시대, 유교를 빌미로 하여 골육상쟁이 그칠 날이 없었던 것은 온고지신을 외면하는 행위였다. 사이비 유학자들이 하찮은 사건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인 기사환국, 갑술옥사, 경신대출척 같은 옥사는 지키는 것도 나아가는 것도 없는 한낱 진흙탕 싸움이었다. 구한말 소위 수구파는 나라의 명줄은 생각하지 않고 가렴주구에만 눈이 멀어 있었다. 오히려 나라의 전통을 지키려 했던 우국지사, 독립군들은 당시 기득권과는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가늘어져 가는 나라의 명줄을 지키려고 헌신했던 이들이 바로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아닌가? 백범일지를 보면 그가 나라의 전통을 지키려 온 힘을 기우린 정통 보수주의자임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이에 반하여 신문물을 받아들여야 나라가 깨우칠 수 있다며, 침략의 야욕을 불태우는 외세에 기대어, 한탕하려든 소위 개화파 인사들은 어찌 되었는가? 초심은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나라의 흥망은 아랑곳하지 않게 되었다. 일신의 영달을 위하여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만신창이가 되어 매국노로 변하였다. 시류에 따라 탈바꿈을 거듭한 무항배(無恒輩)가 어찌 이들뿐이겠는가? 묵은 때와 먼지를 털어낼 생각을 하지 않고 “이대로” 가자고 하면서 제 이익에만 집착하면 억지 수구세력으로 전락하게 된다. 또 새롭게 가자는 길이 사람들을 더 피곤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면 그저 망나니가 될 뿐이다. 기회주의자들이 보수의 가면을 쓰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도 엿보이고, 또 막가파들이 진보의 탈을 쓰고 사람들을 우롱하는 행태도 자행되고 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은 이상은 없고 환상에 빠진 거짓 진보와 그저 약삭빠르기만 한 가짜 보수의 다툼에 따라 사람들이 엉뚱하게 편을 가르고 있다는 일이다. 쓸데없이 적대적 모습을 보이며, 까닭 없이 서로 미워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킬 것은 지키고 나아갈 것은 나아가야 더 큰 것을 이룩할 수 있다. 어느 사회에서나 보수와 진보는 견제와 균형을 위한 필요조건으로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같이 나아가야 한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찾으려면 온고지신의 자세가 절대 필요하다. 개인도 그리고 조직과 사회도 더 큰 성장과 더 조화로운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길이다. 온고지신의 자세로 새해를 맞이하자. [b]주요저서[/b] -우리나라 시장금리의 구조변화 -상장법인 자금조달구조 연구 -주가수익배수와 자본환원배수의 비교 연구 -선물시장 가격결정 -증권의 이론과 실제 -불확실성시대 금융투자

2018-01-02 06:53:41 최규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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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불확실성 시대의 투자전략

불확실성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 시작하면 실물부문보다 앞서 금융부문이 동요한다. 주식시장 불안정성이 커지며 외환시장이 흔들리고 채권시장에서는 신용경색 조짐이 나타난다. 때로는 시장 전체가 불확실성에 휩싸여, 징후단계 없이 금리·주가·환율이 동시다발로 요동친다. 우리나라는 주요 경제국의 상황 변동에 따른 외국인 포트폴리오 자금 유출입 같은 외생적 불확실성과 함께 내수기반 약화 같은 내생적 불확실성까지 겹쳐 있다. 기초경제여건 변화 없이도 시장심리 변화에 따라 시장이 급등락 할 위험과 불확실성이 상존한다. 불확실성은 크게 보아 시장심리 불안, 리스크 프리미엄 상승, 실물경제활동 위축 같은 3가지 경로를 통해 금융시장에 충격을 준다. ① 불확실성의 징후가 나타나면 무엇보다 먼저 투자심리가 위축된다. 불확실성이 커지는 환경에서는 근거 없는 낙관론이 팽배하여 위험을 하찮게 여기다가도 어느 순간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비관론에 휩싸여 위험회피성향이 크게 높아진다. 특히 군집본능(herd instinct)이 강한 사회에서 쏠림현상이 나타나면 불안심리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삽시간에 시장을 공황상태에 빠트리기도 한다. 투자자들의 탐욕이 순식간에 두려움으로 바뀌면서 다투어 위험자산을 처분하고 안전자산으로 몰려든다. ② 불확실성이 엄습하면 정보의 비대칭성이 확대되면서, 채권시장에서는 신용경색(credit crunch)에 따른 리스크 프리미엄이 높아져 시장금리가 폭등한다. 외환시장에서는 외국인 포트폴리오 자금의 유출입이 긴박해지며 환율 상승압력을 크게 받는다. 주가는 금리 상승으로 할인율이 높아지는 데다, 기대이익도 감소하여 이중으로 하락 압력을 받는다. 탐욕이 삽시간에 두려움으로 바뀌며 투매현상이 벌어져 주가는 내재가치 이하로 추락할 가능성이 커진다. ③ 불확실성은 경제주체들의 능동적 의사결정이나 적극적 경제활동을 망설이게 한다. 불확실성은 미래 전망을 흐리게 하여 기업가정신을 위축시켜 생산 활동을 저해하고 소비심리를 냉각시켜 기업이윤을 감소시킨다. 불확실성 증대는 금융시장에 이어 실물경제에 타격을 입히게 된다. 실례로 1997년 아시아 외환금융위기로 금리폭등, 환율급등, 주가폭락에 이어 실물경제는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였다. 위험과 불확실성은 저축과 투자를 연결하는 금융중개기능을 훼손한다. 기초경제여건 변화 없이도 시장심리 변화에 따라 금리·주가·환율이 급변동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내재가치 변동과 관계없이 주식시장, 채권시장, 외환시장이 까닭 없이 급등락을 반복할 가능성이 있다. 글로벌 불균형 상황이 전개되면서 불확실성의 그림자는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한국경제는 지나치게 많이 유입된 외국인 포트폴리오 자금의 유출입 같은 외생적 불확실성과 함께 빈부격차로 내수기반이 갈수록 취약해지는 내생적 불확실성까지 겹쳐 있다. 미래의 모습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가 쉽지 않은 정황이다. 게다가 의례 그래왔듯이 정치논리로 경제문제를 풀어가려는 움직임 또한 무시하지 못할 불확실성이다. 불확실성 시대에 투자전략의 기본은 말할 것도 없이 당해 자산의 내재가치와 시장가격의 변화를 꾸준히 관찰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자산운용의 기본전략이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라면 불확실성이 엄습하여 시장가격이 내재가치보다 크게 하락할 때 매입하고, 불확실성이 해소되어 시장가격이 내재가치와 균형을 회복하거나 더 높아질 매도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불안심리가 확대되어 주가가 내재가치 이하로 크게 하락할수록 시장을 멀리 바라보는 시각과 적절한 매수매도 시기 선택은 초과수익을 크게 거둘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시장에서 내재가치를 중시하는 투자관행이 널리 정착된다면 그 자체가 금융시장 불확실성을 줄이는 길이다. 불확실성이 어른거리다 사라지면 시장은 자동조절기능에 의하여 내재가치와 시장가격이 균형을 찾아간다. 금융개혁 내지 금융발전은 시장을 억지로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다. 실물부문과 금융부문이 균형을 이루도록 하여 시장에 스며든 불확실성을 최소화시키거나 중립화시키는 데서 시작된다. [b]주요저서[/b] -우리나라 시장금리의 구조변화 -상장법인 자금조달구조 연구 -주가수익배수와 자본환원배수의 비교 연구 -선물시장 가격결정 -증권의 이론과 실제

2017-12-22 10:28:06 최규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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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점점 낮아지는 돈의 영향력

[b]점점 낮아지는 돈의 영향력[/b] 산업구조가 복잡지면서 금융이 금리와 통화량을 조정하여 경제성장과 물가안정의 조화를 이루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술혁신이 가속화되면서 토지, 노동과 함께 재래식 생산요소의 하나인 자본이 부가가치창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1,000조가 넘어가는 단기 대기성자금이 부유하는 동시에 가계부채는 자영업자 대출을 포함하면 1,700조 원을 넘어섰다. 이처럼 금융자산이 늘어나는 동시에 금융부채도 늘어나는 상황에서 금리변동은 채권자와 채무자의 이해관계를 정면으로 엇갈리게 한다. 유동성관리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까닭은 과거 산업사회와 달리 통화정책의 파급경로와 효과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실물부분과 금융부분이 따로 따로 움직이는 현상이 자주 나타나기도 한다. 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생산요소 가운데 기술과 정보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자본의 비중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과거 산업사회에서는 대규모 시설과 장비를 동원하는 규모의 경제를 통한 대량생산 과정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였다. 그러나 미래사회는 아이디어나 기술만 있으면 조그만 창고에서 작은 자본을 가지고도,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다시 말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본(資本)보다는 기술과 정보가 더 큰 몫을 차지하는 시대가 되었다. 기업경영에서 자본의 영향력이 과거와는 사뭇 달라지고 있다. 돈의 영향력이 달라짐에 따라 금리나 유동성으로 경기를 조절하는 일이 쉽지 않아졌다. ② 유동성을 확대시켜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 현상이 이미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다. 돈을 많이 풀어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기술혁신으로 생산원가가 점점 낮아지는 데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로 유통단계가 줄어들어 중간마진이 없어지고 있다. 개방화가 진행되면서 역내·외 생산물 이동이 빨라져 일시적 공급 불균형에 따른 물가상승 현상도 줄어들었다. 독과점업자의 고가정책 횡포도 한계에 이르고 있다. 무엇보다도 물가가 오르기 힘든 가장 큰 원인은 빈부격차 심화로 돈이 돌지 않아 소비수요기반이 취약해졌기 때문이다. ③ 실물경제 상황과 관계없이 외국인포트폴리오투자(FPI) 자금이 빈번하게 유·출입되면서 금리·주가·환율이 거시경제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단기적으로는 기초경제여건 변화보다도 외국인들 움직임에 따라 채권시장, 주식시장, 외환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외부충격에 대비한다고, 시장을 억지로 끌어올리거나 억누르면 실물과 금융의 불균형으로 말미암은 차익거래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금융약탈자들(financial predators)은 실물과 금융의 괴리를 찾아 24시간 내내 지구촌 곳곳을 헤집고 다닌다. 금융과 실물이 따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1980년대 초반과 같이 물가안정만을 목표로 삼는 통화관리는 경제순환에 장애를 일으켜, 국민경제를 피로증후군에 빠지게 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거의 무제한으로 돈을 풀고도 또다시 고민하는 선진경제권 중앙은행들의 모습을 보자. 경제대통령이라 불리는 중앙은행 최고책임자들은 지옥문을 지키고 있다는「생각하는 사람」보다도 더 깊이 고뇌하는 모습이 보인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중앙은행이 우왕좌왕하거나, 뒷짐 지고 있으면 국민경제는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다. 때로는 두려워하기도 해야 하지만 때로는 결단력 있는 자세도 필요하다. 말할 것도 없이 그 결단은 어느 특정 집단을 위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경제대통령이 헛기침만 해도 시장이 동요한다. 그런데다 헛발질까지 하면 나라경제의 위험과 불확실성은 커지고 가계와 기업은 어리둥절하게 된다. 물가는 물가안정목표에 못 미치고, 성장률은 잠재성장률 수준을 넘지 못하는 데, 2017년 11월의 기준금리 인상이 과연 타당했는지 더 깊이 고민했어야 했다. 화폐가치 변동은 가계나 기업이 처한 상황에 따라 이해를 엇갈리게 한다. 경제가 복잡해지면 질수록 통화관리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분명한 사실은 거부가 일류호텔에서 제비집 요리를 먹을 때나, 아르바이트 학생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울 때나, 똑같이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돈을 내야한다. 자본이 생산 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변하고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특히 서민들에게 화폐가치 안정은 더할 수 없이 중요하다. [b]주요저서[/b] -우리나라 시장금리의 구조변화 -상장법인 자금조달구조 연구 -주가수익배수와 자본환원배수의 비교 연구 -선물시장 가격결정 -증권의 이론과 실제

2017-12-11 15:40:53 최규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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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저성장 저금리 시대의 화폐가치 보전

한국경제는 고성장 단계를 지나 저성장 구조로 이미 진입하였다. 전 세계적 공급과잉 상황에 더하여 빈부격차에 따른 유효수요 부족으로 저물가 바탕에서 벗어나기도 상당기간 쉽지 않을 것이다. 일시적 등락이 있더라도 저금리 기조가 정착되어 가는 모습이 뚜렷하다. 저성장·저물가·저금리 구조에서는 가계운용이나 기업경영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한다. 금리가 낮더라도 저물가로 화폐가치가 보전되니, 가계는 이자보다는 저축한 돈을 쪼개 쓴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기업은 미래 현금흐름이 보이지 않으면 레버리지 경영을 자제하여야 한다. 금리가 높아도 물가상승률이 더 높으면 이자까지 재투자하여도 돈의 가치를 보전하지 못한다. 반대로, 금리가 낮아도 물가상승률이 더 낮아지면 돈의 가치는 그대로 보전되거나 오히려 높아진다. 만약, 물가상승률이 높아 화폐가치가 큰 폭으로 하락하는 상황에서 금리가 높다고 좋아하는 것은 제 살 깎아 먹으면서 ‘공짜점심’으로 착각하는 것처럼 화폐 환상(money illusion)에 빠지는 일이다. 반대로 금리가 낮아져도 물가상승률이 더 낮아지면, 실질금리(명목금리-물가상승률)는 높아지므로, 금리생활자 입장에서도 저금리를 걱정할 필요 없다. 성장률이 저하되며 명목금리도 낮아지고 있지만, 물가 또한 낮아지고 있어 실질금리는 과거에 비해 오히려 높은 편이다. 물가상승으로 돈의 가치가 하락하는 시기와 달리 그 가치가 보전되는 시기의 경제적 선택은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저성장, 저물가, 저금리 시대에는 가계의 자산운용 패턴, 기업의 사업계획, 정부의 경제정책도 고성장, 고물가, 고금리 시대와는 달라져야 한다. 보통 소득의 일부분을 저축해야 하는 가계는 노후에 이자를 받아 생활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평생 저축한 돈을 쪼개어 쓴다.’는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여 투자하는 기업도 타인자본 사용을 되도록 억제하고 가능한 자기자본으로 안정적 수익이 예상되는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도 성장 목표를 무리하게 높게 책정할 경우, 작용보다는 부작용이 커지고 결과적으로 가계와 기업을 피로증후군에 빠지게 할 우려가 있음을 경계하여야 한다. 금리가 낮다고 해서, 투기적 투자를 선호하다가는 위험과 불확실성의 대가를 고금리시대보다 더 크게 치러야 한다. 고도성장시대에는 여기저기, 이것저것 먹을거리가 있지만 경제가 성숙기를 지나면 눈먼 돈도 없어지고 단번에 큰돈을 벌 수 있는 경로가 줄어든다. 저성장 저물가 상황에서 현금흐름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데도 막연히 큰돈을 벌려고 투자를 확대하다가 잘못될 경우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고성장, 고물가, 고금리 시대에는 돈의 가치가 빠르게 하락하니 공격적 투자로 성공하면 수지가 맞고, 설사 실패하여도 시간이 지나면서 빚 부담이 흐지부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저성장, 저물가 시대에는 사회전체의 수익성은 낮아지며, 시간이 지나도 부채의 가치가 줄어들지 않는다. 수익이 줄어드니 상환능력은 더 악화될 우려도 있다. 가계나 기업이나 위험부담능력(risk tolerance)을 넘어선 과다부채 그리고 과잉투자를 하다가는 영원한 패자로 전락할 확률이 높아진다. 생각건대, 한국경제의 뇌관이 되어가고 있는, 가계부채 누적은 각 경제주체들이 저성장기조에 들어서고 있다는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정부는 고도성장 타성에 젖어, 툭하면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억지 소비를 유도하는 등 국민경제를 피로하게 만들었다. 가계도 명목상 저금리(물가를 감안하면 사실상 고금리 상황)를 틈타 큰돈을 벌어보려고 이리저리 투기적 행태를 벌였기 때문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저금리시대에는 개인들이 (현재)소비를 해야 경제가 활발해진다는 절약의 역설(paradox of thrift)이 아니라 미래소비를 위해 티끌 모아 태산을 이루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저성장, 저물가, 저금리 시대에 소비수요를 억지로 부추기는 단기대책은 국민들의 노후시대를 빈곤절벽으로 이끄는 길이다. 저성장, 저물가, 저금리 시대에 큰돈을 벌겠다고 두리번거리기보다 적은 수입이라도 쪼개어 미래소비를 위해 꾸준히 저축하는 사람에게 여유 있는 삶이 기다린다. 금리가 낮아도 「돈의 가치 보전」이라는 장점 때문이다. (초)고령시대에 국리민복을 위한 길은 당장의 소비보다는 미래의 소비를 위한 저축 특히 장기저축을 유도하는 길이다. 언젠가는 어김없이 노인이 될 젊은이들은 출근길에, 손에 비싼 커피가 아닌 도시락을 들고 다녀야 옳을지도 모르겠다. [b]신세철 칼럼리스트 주요경력[/b] -성균관대 경제학, 서강대 경제대학원 금융경제학, 미시간주립대에서 선물시장 연구. -증권(금융)감독원 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역임 -KB자산운용 리스크 관리, 자산운용 책임자 -금융투자협회, 코스닥협회, 대한상사중재원, 호서대대학원에서 금융시장 강의 [b]주요저서[/b] -우리나라 시장금리의 구조변화 -상장법인 자금조달구조 연구 -주가수익배수와 자본환원배수의 비교 연구 -선물시장 가격결정 -증권의 이론과 실제

2017-11-27 11:04:30 최규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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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금리 딜레마

금융통화위원회는 대체로 물가가 불안하면 기준금리를 올리고, 경기가 침체되면 금리를 내렸다. 그런데 2017년에는 물가가 물가안정목표치에 미달하고, 경제성장률은 가까스로 잠재성장률 수준에 도달하고 있는데도 기준금리 인상 제스처를 보여 시장을 들뜨게 하였다. 미국금리 추가인상이 예정(?)되고 한국경제성장률이 3%에 다가서면서 금리수준 논쟁이 벌어졌다. 얼핏 들으면 금리인상 주장이 타당하게 들리기도 하고, 반대로 성급한 금리인상이 경기회복의 싹을 도려낼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국경제는 금리딜레마에 빠진 것인가? 하나, 먼저 기준금리 수준의 높고 낮음을 생각해보자. 과거 고성장 고물가시대의 경제상황에 견주어 보면 오늘날 저성장, 저물가 상황에서 기준금리는 저금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과거 성장률 7~8%, 물가상승률이 3~4%인 환경에서 기준금리 2~3%대는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였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교하면 성장률 2~3% 물가상승률 1%대에서 기준금리 1.25%는 그리 낮은 금리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모든 경제지표는 거시경제상황에 따른 상대적 균형을 생각해야지 과거의 타성에 젖어 절대적 잣대만을 들이대다가는 실수할 수 있다. 둘, 경제지표에 대한 착시 현상을 경계하여야 한다. 한국경제 아랫목은 델 정도로 뜨겁지만, 윗목에서는 고드름이 열리고 있다. 고드름을 못보고 아랫목만 만져보고 방바닥이 너무 뜨거우니 더 이상 불을 땔 필요가 없다고 하면 군맹무상의 어리석음을 저지르게 된다. 경제 운용에서 경계하여야 할 금기는 부분을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를 범하는 것이다. 2017년 현재 한국경제 성장률이 3%에 가깝다고 하지만 반도체 수출과 재정확대에 따른 일시적 현상인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상당수 가계와 중소기업이 체감하는 성장률은 오히려 제로수준에 가깝다는 사실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셋, 한쪽에서는 돈이 넘쳐나고 다른 한쪽에서는 반대로 부채가 점점 높이 쌓여가고 있다. 단기대기성 자금이 자그마치 1,000조원에 육박하고 있는 반면에 가계부채는 자영업자 대출을 포함하면 무려 1,700조원을 넘어서 연간 GDP 수준을 넘어섰다. 이 같은 사실은 한국경제에 돈이 돌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금리가 오르면 돈은 더 돌지 않게 된다. 오늘과 같은 비정상 상황에서 고금리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더 심화시킬 있다. 말할 것도 없이 현금성자산을 높이 쌓아둔 대기업은 금리인상을 기다리지만, 부채가 많은 중소기업이나 가계와 자영업자들은 금리인상을 두려워하고 있다. 넷, 경제성장률이 3%에 육박한다고 하는데 이는 경기과열이 아니라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회복하는 중이다. 물가 또한 물가안정목표(±2%)에 미달하고 있다. 시중에는 미국과 한국의 금리수준이 비슷해지거나 역전된다면 핫머니 유출이 걱정된다는 의견도 상당하다. 그러나 미국의 엄청난 경상수지 적자누적과는 반대로 우리나라는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누적으로 국제투자포지션(IIP)도 크게 개선되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는 2017년 현재 핫머니의 유입을 걱정하고 예방대책을 수립해야 하는 지경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핫머니 유출을 걱정하는 금리인상 논의는 헤아리기 어렵다. 2차 대전이후 독일연방은행이 가장 모범적으로 통화가치를 안정시켜 경제발전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는 까닭은 통화금융정책이 독일국민들로부터 이해와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평가된다. “중앙은행의 정책목표가 건강하고 개방된 사회에 잘 설명되고 논의되면 될수록 그 목표는 더 잘 달성될 것이다”라고 마쉬(D. Marsh)는 지적한다. 독일의 통화정책이 국민의 의지와 실물경제여건과 화합하며 펼쳐졌다는 이야기다. 실물과 금융부문을 연결하는 관건이 되는 금리는 「보이는 손(visible hand)」의 정책 도구가 아니라,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해 집합적으로 결정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금리가 부동산투기(?) 억제 같은 정책도구로 쓰인다면 그 부작용이 더 커져 국민경제를 위험과 불확실성에 빠지게 할 것임은 반복된 경험이 잘 말해주고 있다. 예컨대, 집값을 잡으려 기준금리를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이치와 다를 바 없다. 과거와 같이 금융이 정책도구로 남용되지 않기 위한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더 이상 강조할 수 없이 중요하고 또 중요하다.

2017-11-12 16:09:31 최규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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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이노믹스]플러스 섬 게임, 제로 섬 게임

[b]플러스 섬 게임, 제로 섬 게임[/b] 시장변동성이 클수록 본질가치를 중시하는 투자를 해야 적어도 손실을 피할 수 있는데, 대다수 개미투자자들은 단기차익을 노리는 투기에 열중하다 이래저래 피해를 당하기 쉽다. 투자는 기초경제여건내지 대상자산의 본질가치 상승에 따른 차익을 예상하고 사거나 파는 일이다. 투기는 본질가치와 관계없이 유동성 팽창 같은 시장심리 내지 수급요인에 변동에 따른 시장가격 변동으로 발생하는 차익을 기대하는 매매 행위다. 다시 말하면 투자는 시장 참여자 누구나 수익을 올리는 플러스 섬 게임이 될 수 있고, 투기는 누군가의 이익은 다른 누군가의 손실로 귀결되는 제로 섬 게임으로 정의 할 수 있다. 투자와 투기를 단정적으로 구분하기도 어렵고, 현실세계에서 투자와 투기행위는 동시에 그리고 연속하여 나타나기도 한다. 예컨대, 경기저점에서 유동성을 완화하면 풍부한 유동성이 실물시장보다 먼저 주식시장으로 유입되어 유동성장세가 벌어진다. 주가가 오르기 시작하면 대기성 부동자금이 몰려드는 쏠림현상이 나타나 거품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시중에 풀린 자금은 시차를 두고 실물시장으로 유입되어 실물경기를 자극하고 결과적으로 기업의 내재가치가 높아진다. 이 장면에서 투자와 투기의 경계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도박(gamble)은 막연하게 초과수익을 기대하는 것이다. 군집본능(herd instinct) 분위기에 휩쓸리는 뇌동매매는 투자도 아니고 투기도 아닌 일종의 도박이다. 도박장(house)에서는 일정비율을 비용으로 떼기 때문에 누군가는 그만큼 손해를 보아야한다. 예컨대, 카지노 룰렛 게임의 확률은 35/36로 배팅 금액의 1/36은 하우스 사용료로 지불하는 셈이다. 도박장 주인이 기계의 확률을 조작하면 파친코에서 돈을 잃을 확률은 더 높아진다. 여기서 투자는 플러스 섬(plus sum) 게임, 투기는 제로 섬(zero sum)게임, 도박은 마이너스 섬(minus sum) 게임에 가깝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투자와 투기의 경계를 구분하기 어렵듯이 투기와 도박의 차이를 확실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주식시장에서 손해를 보는 가장 큰 원인은 사람들이 내재가치를 중시하는 투자보자는 투기적 행위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휩쓸려 도박과 같은 뇌동매매 행태를 보이다가 애써 모든 돈을 허공에 쏟아버린다. 주가가 실물경제를 반영하여 움직인다고 가정하면, 경제는 진폭이 있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장하기에, 개별 주가는 몰라도 종합주가지수는 중장기적으로는 우상향(↗)하는 추세를 보여야 한다. 그러나 실제모습을 보면 경제여건의 변화와 상관없이 급등락을 반복하여, 코스피 지수나 코스닥 지수나 기형적 W자 형태를 보이는 경우가 흔하다. 시장이 본질가치 변화보다는 시장심리에 따른 쏠림현상으로 인한 거품 형성과 소멸로 널뛰기 현상이 반복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국제금융시장 환경이 불안하여 급등락이 빈번한 시장에서 정보의 수집· 분석 능력에서 뒤지는 개인이 무리한 투기거래를 하다가는 손실을 피하기 어렵다. 역으로, 누군가의 손실은 누군가의 이익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급등락이 심한 시장에서 초과수익을 올리는 기회도 있다. 이 세상 모든 쏠림현상은 고정되는 것이 아니고 시장자동조절 기능에 따라 제자리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누구나 싸게 사서 비싸게 팔고 싶어 한다. 훈련되고 인내심 있는 투자자는 시장가격이 내재가치를 밑돌 때 사서, 내재가치를 회복하거나 거품이 팽창하였을 때 팔 수 있다. 내재가치를 중시하더라도, 욕심이 지나치면 더 낮은 가격에 사려다가 매수기회를 놓치고, 더 높은 가격에 팔려다 매도기회를 놓치기 쉽다. 시장을 멀리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고 내재가치를 중시하는 선택을 해야 초과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신세철 칼럼리스트

2017-10-30 06:00:42 최규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