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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신세철의 쉬운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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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①

[신세철의 쉬운 경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① 벌써 오래전, 미시시피 강 하류 뉴올리언스에 있는 '욕망의 거리'에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가다, 무슨 까닭인지 내리기 싫어 멈칫거린 적이 있었다.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욕망에 빠져들면 헤어나기 쉽지 않다'는 가르침을 받은 셈이라며 혼자서 멋쩍게 웃었다. 욕심이 많으면 그에 비례하여 불만도 커지게 되므로 과다한 탐심은 불행의 원인이 되다가 지나치면 급기야 악의 근원으로 변질된다. 누구나 자주 들어왔듯이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가져온다."(야고보서 1장 15절)고 하였다. "탐욕은 목숨을 해치는 죄악이므로 어진 사람일수록 탐욕을 멀리한다(嗜欲賊害命 故慧不貪欲. 법구경 惡行品)"고 하였다. 욕망은 개인이나 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바탕이 되기도 하지만, 탐욕으로 변하면 일을 그르쳐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하는 비극의 원인이 된다. 예로부터 "욕심을 따라 함부로 날뛰는 마음을 바로 잡아 지키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라고 하였다. 만족을 아는 것이 가장 큰 지혜라고 하였다. 동서양의 경전이 강조하는 지혜는 결국 탐심(貪心)을 경계하라는 말씀이라 짐작된다. 인간의 본질 또는 본능으로써 욕망은 이성보다는 감성이 지배하기 쉽기에 섣불리 제어하거나 지배하기가 어렵고 어려운 일이다. 아집과 미혹(迷惑)을 뿌리치지 못하고 매달리다 보면 다가가기는커녕 오히려 멀어지기 쉽다. 생각건대, 욕망의 노예 상태를 벗어나서 욕망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를 찾으려면 불가에서 추구하는 이상세계인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러야 할지 모른다. 가지가지 번뇌와 미몽으로부터 벗어나 해탈에 이르는 길은 아무나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그 아까운 인생을 '타락한 돈과 '욕망에 늪'에 빠져든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서로 털고 털리는 금고털이들의 배신과 우정을 그린 영화 이탈리안 잡(Italian Job) 이라는 영화를 보면 대체로 이런 뜻의 대사가 줄거리를 이끈다. "사람은 원래 선하지만 그 안에 욕망이 숨어들면 씻어내기가 어렵다." 탐욕의 소용돌이에 일단 빠져들기 시작하면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를 되찾기가 좀처럼 어렵다는 뜻인가? 미래를 여유롭게 살고 싶을수록 더 새겨들어야 할 말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욕망을 조금씩이라도 내려놓으려는 마음가짐을 가지려면 무엇보다 먼저 자신을 믿은 자기신뢰(self-reliance)가 필요하다. 자신과 자신의 의 바른 의지를 굳게 믿는데 망설여야 할 무엇이 있겠는가? 남을 속이기시작하면 결국 자신을 속이게 되어 자신도 믿지 못하게 되는 이치는 어긋남이 없다. 주요저서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2020-10-28 09:44:59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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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사마천의 경제제민 교훈 ②

[신세철의 쉬운 경제] 사마천의 경제제민 교훈 ②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먼저 사람 사는 세상이치를 거슬리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무릇 모든 일은 미리부터 예측하며 준비하여 때를 놓치지 말라고 하였다. 물 흐르듯 해야 하는 경세제민 원리를 터득하여야 기회를 적기에 포착할 수 있고, 재산을 크게 얻으면 본업에 충실하라고 했다. 다시 말해 비상한 재주와 수단으로 얻은 재산은 정상 방법으로 유지해야 오래 간다는 뜻이다. 제사지낼 형편도 되지 않게 가난하다면 육체노동을 해서 돈을 벌고, 얼마간 자산을 모으면 늘리는 방법을 찾아야하고, 재산을 넉넉하게 축적하면 투자기회를 관찰하다 용단을 내려야 한다. 생계를 여유롭게 유지하는 바른 길은 근검절약이지만, 큰 부자가 되려면 최선을 다하면서 기회가 오면 남다른 승부를 내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 옛날 변화가 그리 심하지 않는 단순 재생산 사회에서도 부를 얻는 데는 정해진 방법이 따로 없고,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재물에는 주인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하였다. 현명한 사람들은 위태롭지 않은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넉넉한 생활을 하더라도 위험관리를 해야 한다는 점은 변함없다. 예컨대, 열심히 일하여 집을 마련하여 노후에 나름대로 편하게 살려고 하다가도 세금 폭탄이 떨어지면 집을 줄여야 한다. 중개수수로, 이사비용, 양도소득세, 취득세, 등기비용 같은 비용을 제외하면 제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어 낭패당할 수 있으니 미리 대비하여야 한다. 평소 성심성의껏 일하면서 재능을 갖추고 기다려야 기회가 오지 아무 때나 오지 않는다. 그냥 놔두면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무리 없이 작동될 시장을 억지로 끌어올리거나 마음대로 억누르려는 아마추어 발상은 시장을 아예 망쳐버리기 쉽다. 임시변통 묘수를 부리지 말고 사람 사는 평범한 이치를 존중하라는 사마천의 지혜는 현대에서도 변치 않는 교훈이다. 사마천 이전에도 공자는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며 혹독한 세금은 호랑이보다 무서워 백성들이 도망가니 나라가 융성할 도리가 없다고 하였다. 화식열전에서 "군자가 부유해지면 덕을 즐겨 행하지만 소인이 부유해지면 그 힘을 휘두르려고만 한다."며 마음을 닦지 못한 인간에게 재물은 오히려 독이 쉽다고 경고하였다. "일 년만 머물 곳이라면 곡식을 심고, 십년 머물 곳에서는 나무를 심고, 백 년을 살 곳이라면 덕(德)을 심으라."고 강조하였다. 결국 성숙한 인간관계를 가져야 재물의 가치도 늘어나고 재물의 주인인 사람의 품격도 높아진다는 의미가 아닐까? 사기는 인간사회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물질세계와 정신세계의 대립과 갈등을 다각도에서 묘사하였다. 고대사회 인간들의 갖가지 욕망과 갈등에 대한 대서사시가 변화무쌍한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귀감이 되는 까닭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의 심성'은 그리 크게 변하지 않기 때문일 터이다. .주요저서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2020-10-20 10:28:25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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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사마천의 경세제민 교훈 ①

[신세철의 쉬운 경제] 사마천의 경세제민 교훈 ① 물 흐르듯 순리에 따라야 하는 경세제민(經世濟民) 원리를 인류 역사상 맨 처음 풀어낸 이는 사마천이다. 사기(史記) 129편, 재화의 생산을 늘리고 가치를 높이는 화식열전(貨殖列傳)에서 국가를 부강하게 하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려면, 먼저 세상이치를 거스르지 말라고 했다. 백성들을 억지 논리로 설득하고 거짓으로 감화시키려 들지 말고 인간의 자연스러운 심성과 욕망을 존중하라는 뜻이다. 무릇 재화의 가격은 수요·공급에 따라 오르고 내려야, 재화의 생산이 늘어나고 필요한 곳으로 이동하면서 국리민복이 신장된다는 이치다. 절대권력 시대에도 인간의 욕망을 거스르지 말고 조화시켜야 나라 살림살이가 순조로워 진다고 가르쳤다. 사마천(司馬遷)은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봐야지, 백성들의 눈과 귀를 억지로 가리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무엇이든 억누르거나 끌어당기지 말아야 백성들이 편해진다. 국가경영에서 최선은 잘 먹고 잘 살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편하게 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을 존중하는 것이다. 차선은 백성들이 스스로 이익을 찾도록 가르쳐야 물자 생산이 늘어난다. 차차선책은 백성을 깨우쳐 제 갈 길을 찾도록 돕는 일이다. 차악의 시책은 백성들을 옭아매어 마음대로 못하게 하는 규제하는 것이다. 최악은 백성들과 다투며 세금을 무겁게 하여 괴롭히는 행동이라고 경계하였다. 사마천은 절대권력 시대인 한나라 무제(武帝) 때에도 권력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해야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백성들을 이리저리 옭아매거나 혹독한 세금으로 백성을 괴롭혀가며 흥한 나라는 아무데도 없다. 명령하고 통제하지 말고 사람들이 각자 능력에 따라 원하는 것을 얻도록 하여야 농공상이 자연스럽게 분업구조를 이루어내고 생산이 활발하다고 하였다. 백성들을 잘 살게 하려면, 각자가 원하는 물자를 스스로 노력하여 구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수요공급에 따라 가격이 오르고 내리게 나둬야 필요한 물자를 스스로 가려서 만들어 내고, 필요한 곳으로 유통시켜야 물자의 가치를 높여 생산을 북돋운다. 가격이 끝없이 오르거나 내리는 일은 절대로 없으니 가격을 통제하지 말고, 재화가 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놔두어야 도(道)에 부합하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하였다. 백성들이 나름대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도록 해야 쌀과 소금, 목재 같은 물자를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다. 생각건대, 이리저리 통제하여 위정자의 뜻대로 하려는 사회주의, 포퓰리즘 독재국가들이 초단기는 몰라도 중장기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이치를 까마득한 그 옛날에 가르쳤다. 관리가 청렴해야 자리를 오래 지킬 수 있고, 상인도 신용을 지켜야 더 많은 부를 얻듯이 인간들이 움직이는 동기는 대부분 이익을 얻고자 하는 데 있다고 하였다. 호모이코노믹스(homo economics)의 심성을 아담 스미스 국부론보다 이미 4반만년 전에 피력하였다. 왕도 제후도 대부도 본능적으로 재물과 이익을 추구하는데, 하물며 일반 백성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탓하면 나라가 제대로 설 수 없다고 하였다. 연못이 깊으면 물고기가 살고, 산이 깊어야 짐승이 서식할 수 있듯이 백성들이 삶의 여유가 있어야 인의(仁義)의 바탕이 생긴다는 점을 미리부터 피력하였다. 백성들을 가난하게 하면서 말로만 인의를 따져 받자 오히려 인심만 잃는다. 마치 정의를 부르짖으며 약자를 유혹하여 재물을 챙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뜻이렷다. 동서고금 역사를 보면, 임금이 백성들을 보석처럼 대하면 백성들은 제 목숨을 초개처럼 여기고 충성하기 마련이다. 국리민복의 왕도가 그렇다. 주요저서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2020-10-07 13:58:44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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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소수의 기회, 다수의 위기 ③

[신세철의 쉬운 경제] 소수의 기회, 다수의 위기 ③ 2000년대 초반, 폐기처분한 낙하산에서 빼낸 부품으로 새 낙하산을 만들어 납품한 사건이 적발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만약 제 자식이 낙하산병이라면 헌 자재로 낙하산을 만들어 위기일발에 빠지게 할 부모가 어디에 있겠는가? 세상만사 무엇이든 역지사지로 접근하면 문제가 일어날 수 없을 뿐 아니라, 설사 문제가 생겨도 해결방안을 금방 찾아낼 수 있다. 역사의 경험으로는 후진국에서 발생하는 상당수 사회·경제적 불확실성은 낙하산인사에서 비롯된다. 19대 대통령 선거 토론에서 낙하산인사를 방지하기 위하여 '인사추천실명제'를 도입하여 후세에 심판받도록 하겠다는 장면에서 박수를 쳤었다. 더하여 그 후보가 자랑스러운 낙하산부대 출신이어서 낙하산이 부실할 때의 위험천만함을 잘 인식하겠기에 소수에게 기회를 주면서 다수를 위기에 빠지게 하는 '낙하산 인사 리스크'가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 기대하였었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낙하산 인사가 과거에 비하여 더욱 심해졌다는 보도가 가끔 나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큰 힘을 쥐면 여기저기서 간특한 무리들이 몰려들어 둘러싸기 때문에, 사람의 진면목을 꿰뚫는 시각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한다. 오죽하면 공사가 분명한 "관운장도 아첨꾼에게는 속았다"는 설화가 등장하겠는가? 제나라 권력을 장악하기 직전 자신에게 화살을 쏘아 위기일발 지경에 이르게 했던 원수나 다름없었던 정적 관중을, 사심 없는 포숙아(鮑叔牙)의 추천을 받아들여, 요직에 등용한 제환공(齊桓公)이 도량 넓은 지도자일까? 아니면 한 때 죽이려고 했던 정적을 도와 제나라를 춘추5패(春秋五覇)로 우뚝 서게 한 관중이 우람한 거목일까? 영웅이 영웅을 알아보는 눈을 가졌기에 영웅들이 서로 만나 큰 역사를 창조했다. 그들은 군신간의 사적 관계보다 나라에 대한 대의를 더욱 중하게 여겨 위업을 달성했다고 판단된다. 냉성금(冷成金)은 저서 변경(辨經)에서 "절대 권력을 가진 봉건 황제들은 국가를 자신의 가정으로 여기면서도 잘못된 책임은 제 자신에게 돌리려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도 그들 자신들도 타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견제와 균형 원리'를 무시하는 조직이나 사회는 쉽사리 부패하기 마련인데, 잘못에 대한 책임지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잘못을 고치지 못하여 오래 지탱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후진사회일수록 '삼권분립(separation of powers)'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잊혀져가는 용어가 되고 있다. 역사의 경험을 보면,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물불 가리지 않고 추종하는 간신배들은 이리저리 뱃속을 채울 기회가 많아지니, 오히려 쾌재를 부르기 마련이다. 물론 겉으로는 아침저녁으로 국민여러분을 외치며 애국을 강조하지만 그들의 속셈은 엉뚱한 데 있다. 그들보다는 외려 배움도, 줄도, 말재간도 없는 보통사람들이 지도자들의 앞날을 더 걱정한다. 지도자가 잘 되어야 조직과 사회가 튼튼해져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덜해지기 때문이다. 2020년 광복절 기념사에서 헌법 제10조가 정하는 "행복추구권'을 모든 국민에게 부여하겠다."는 대통령 선언이 귓전을 울렸다. 낙하산 인사가 없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인가? 주요저서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2020-09-17 14:52:26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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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소수의 기회, 다수의 위기 ②

선거는 시대의 관심사가 여론으로 표출되고 공약으로 결집되어 투표로 판가름 나면서 그 사회가 나아갈 방향이 제시되는 순기능이 있다. 지역과 국가가 추구하여야 할 새로운 가치관이 거리낌 없이 논의되는 축제마당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내편과 네편을 구분하는 득표 전략을 벌이면서 선거가 한자리 얻으려는 인사들의 줄서기 무대로 바뀌고 그 결과 낙하산인사 리스크가 커지게 되었다. 선거가 정책방향과 이를 실천할 능력을 가진 인물을 검증하는 행사가 아니라 「편 가르기」 싸움터가 되면서 어중이떠중이들이 줄타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정치철학 또는 후보자에 대한 신뢰보다 잿밥에 눈이 어두운 떼거리들이 꾸역꾸역 몰려들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조직과 사회의 번영보다 패거리의 영달이나 이권을 우선적으로 챙기려드는 (병든)의리가 횡행하면서 엽관주의(獵官主義), 편파주의(cronyism)가 극성을 부린다. 건달들에게 힘을 실어주면 겉으로는 물불가리지 않고 충성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친구여 한탕하자"며 이리저리 눈이 벌게져 이권을 쫓는다. 슬기로운 지도자는 아랫사람 능력을 제대로 펼치도록 적재적소에 배치하려 하지만, 욕심이 눈을 가려 남을 믿지 못하는 우두머리는 제 식구 감싸기에 전전긍긍한다. 탐욕이 넘치는 우두머리가 제 패거리만 중용 하고 조직이나 사회가 아닌 개인에게 충성을 강요하면서 "인사가 만사"라는 헛소리를 하는 광경도 벌어진다. 간특한 무리들에게 무거운 감투를 씌워주다 세상을 어지럽히고 자신도 패망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동서양을 막론한 역사의 오랜 경험이다. 다시 말해, 패거리들의 맹목적 충성경쟁에 득의양양해하는 줏대 없는 우두머리가 결국에는 제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 정해진 순서다. 그런 환경에서 소신 있는 인물들은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장막 뒤로 사라지기 마련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는 '그레샴의 법칙'은 후진사회 시장바닥만이 아니라 후진국 공직사회에서 딱 들어맞는 말이다. 예로부터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는 가난하고 천하게 사는 일이 부끄럽지만, 나라에 도가 없을 때 부유하고 귀하게 되는 것이 오히려 부끄럽다(邦有道 貧且賤焉 恥也, 邦無道 富且貴焉 恥也. 논어, 泰伯 제8)고 하였다. 조직과 사회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낙하산 인사야말로 공동체이익보다는 사리사욕을 쫓게 유도하는 길이다. 낙하산 인사는 줄을 잡은 소수에게는 한 밑천 잡을 기회가 되지만, 대다수 시민들에게는 위기'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자. 조선중기 이후 세도가들이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 벼슬자리를 팔아 잠시 영화를 누리는 대가로 그 후손들은 결국 남의 나라 노예로 전락하였다. 탐욕에 넘치는 탐관오리들에게 감투를 씌워주고 가렴주구를 방관하여 백성들을 괴롭히고 나라를 흔들리게 하는 것은 미필적 고의를 넘어선 범죄다. 주요저서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2020-09-09 10:42:53 최규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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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소수의 기회, 다수의 위기 ①

소인배가 어쩌다 큰일을 맡으면 과대망상에 빠져 제대로 된 의견을 들으려하지도 않고, 듣지도 못한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잘못을 깨닫지 못하니 잘못의 잘못이 더해져 혼란의 혼란이 가중되기 마련이다. 춘추시대 제나라 관중(管仲)은 "군자를 대우하지 않는 일은 작은 잘못이지만, 소인을 중용하여 큰일을 맡으면 돌이키지 못할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역량이 모자라고 시야가 좁은 인사가 큰 힘을 얻어 으스대다보면 잘잘못을 구분하지 못할 뿐 아니라 설사 잘못을 알더라도 인정할 소갈머리가 없으니 멋대로 밀어붙이려든다. 조그만 성과는 제 생색내기에 급급하고, 커다란 실패는 남의 탓으로 돌리다보면 부지불식간에 갈등과 대립이 조성되어, 뭣이 옳은지 그른지를 모르는 국면이 된다. 나라를 지키는 용사들이 공중에서 뛰어 내릴 때 낙하산이 부실하여 제대로 펼쳐지지 않으면 젊은 사자들의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다. 정말이지 낙하산을 만들 때나 접을 때는 나라를 지키는 간성(干城)들의 고귀한 목숨을 책임진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정성을 다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생각할 때, 우리 사회가 무기력하면서도 피곤해지고 있는 까닭의 하나는 낙하산 인사가 오랫동안 이어졌기 때문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무능력한데다 책임감도 없는 인사들이 '안전낙하산'을 타고, 요직을 차지하다보면 사회기강은 해이해지고 사회적 수용능력은 마모되어가기 마련이다. 공개경쟁을 거쳐 오랫동안 한 우물을 파온 전문가들 앞에 난데없이 나타난 무뢰배들은 부끄러워하거나 자중하기는커녕 이러저러한 '네트워크'를 뽐내며 조직을 휘젓기 마련이다. 도덕성도 없고 문제의식도 없는 싸구려 인사들이 돌아가며 이런저런 중책을 차지하는 사태는 헤어진 헝겊으로 나라의 동량들이 탈 낙하산을 만드는 일처럼 위험천만한 일이다. 낙하산을 타고 내린 인사들은 정치적 이해나 사리사욕을 위해 뛰지 국리민복을 위해 일처리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전문지식이 필요한 분야에 관련지식도 없는 엉터리 인사들이 요직을 차지하는 낙하산인사의 피해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대하다. 무임승차(free riding)한 엉터리 인사들이 완장을 차고 날뛰다보니 거꾸로 전문가들이 이들의 비위를 맞추는 서글픈 광경도 간단없이 목격되고 있다. 이리저리 눈치나 보다가 벼락감투를 뒤집어 쓴 주구들이 날뛰면 날뛸수록 조직과 사회는 흔들리고 무기력해진다. 낙하산은 장돌뱅이들 소수에게는 큰 기회가 되지만 관련자 다수에게는 위기로 작용한다. 그들이 삼삼오오 모여 "친구여 한탕하자"며 뛰는 동안에 질서는 무너지고 살림살이는 멍이 들고 구멍이 난다. 그 옛날 폐쇄사회에서는 경쟁이 나라 안으로 제한되어 있어서 낙하산 인사의 폐해가 그리 심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개방경제 체제에서는 그 폐해가 누적되면 국가경쟁력은 날개 없이 추락할 밖에 도리가 없다. 주요저서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2020-08-26 09:26:22 최규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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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높아지는 불신장벽 ②

궤변가 선동가들의 작태를 보면 일부러 대립과 갈등을 조성하여 적을 만드는 대가로 더 많은 "적의 적"을 만들어 내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수작들이 보인다. 사람들 사이에 불화를 고의로 조성하여 성장잠재력을 무너트리는 이들이야말로 바로 공공의 적(public enemy)이 아닌가?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우매하다고 여기는 국민들을 쇼의 소품으로 여기는 것처럼 비친다. 이들의 주장을 보면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이요, 견강부회의 억지를 부리고 있다. 각주구검(刻舟求劍)이란 흐르는 강물에 빠트린 물건을 찾겠다고 떨어트린 자국을 뱃전에 표시하는 일이다. 정선 아우라지 나루에서 숟가락을 떨어트리고 송파나루까지 흘러온 배 밑에서 건져내라고 사공들을 들볶는 일과 다를 바 없다. 가당치도 않은 말을 억지로 끌어다 붙여 저보다 힘이 없는 사람에게 억지 주장을 강제로 주입하려는 견강부회(牽强附會) 짓거리며 전후좌우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을 속이려는 행각이 아닌가? 문제는 이들이야 말의 성찬을 나누는 것으로 허기를 채우면 그만이지만, 거짓말에 거짓말이 섞여 퍼지다 보면 이와전와(以訛傳訛)라고 하여 사람들이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어느 것이 가짜인지 어느 것이 진짜인지를 구분하지 못하게 되다보면 사람들이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 모르게 되는 희극이 벌어지면서 가치관의 전도와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 살다가 보면 멀쩡했던 사람이 어느 사이에 몽매한 가치관을 가지고 그릇된 신념에 차서 공연히 눈을 부라리는 경우를 보게 된다. 주관 없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다 자신도 모르게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혀 선량한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는 것이다.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에리히 프롬 (E Fromm)은 궤변가, 선동가들은 처음에는 대중에게 아부하다가 어느 결에 대중을 우매하게 보며 업신여긴다. 결국에는 스스로 대중보다 더 우매하게 된다고 한다. 우매함을 넘어 마음의 병이 들어 사이코 패스로 변하는 모습도 보인다. 세상이 제 것이라고 생각하고 제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니 어찌 정상 사고를 한다고 하겠는가?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지고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며 겸손하였어도 막상 가지고 갈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마지막까지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그들의 주장이 옳고 그른지를 가늠하기 이전에 무엇인가 걱정되고, 피곤한 까닭은 무엇인가? 아마도 나 자신부터 불신시대, 불통사회의 타성에 젖어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아무리 쓸모없는 의견이라도 상대방이 왜 그런 의견을 제시하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보고 고민하는 자세가 나 자신부터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간 쓸데없는 말잔치에서 보여주는 그칠 줄 모르는 적대감과 불신의 에너지를 생산적 방향으로 전환해 낼 수는 없을까? 주요저서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2020-08-05 13:52:49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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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높아져가는 불신 장벽 ①

[신세철의 쉬운 경제] 높아져가는 불신 장벽 ① 우리 사회에서 토론하는 모습을 잠시나마 들여다보면 대체로 세 가지 공통된 특징이 보인다. ① 상대방의 이야기는 가짜뉴스라고 단정하고 전혀 믿으려들으려 하지 않고 자신만이 옳다는 주장만 늘어놓는다. ② 상대방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중간에 끼어들어 엉뚱한 말을 하여 김을 뺀다. ③ 상대가 말하는 동안 딴청을 부리다가 갑자기 언성을 높인다. 문답과 토론이란 어떤 문제를 발전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보다 나은 발전적 해결방안을 탐색해 보는 데 의의가 있다. 국민들이 뽑은 선량(選良)과 최고지도자가 뽑은 국무위원이 문답하는 과정을 어쩌다 시청하면 그야말로 '가관(可觀)'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들의 논쟁이랄까 말싸움을 듣다 보면 상대편은 무조건 불신하고 몰아붙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그저 임기응변과 말주변 좋은 사람이 상대를 제압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들이 사람들의 표상이 되고, 여론을 이끌고, 나라살림을 맡은 지도층이라고 생각하니 미래가 어떻게 될지 두렵다는 느낌까지 들 때도 있다. 선량과 고관들의 문답 모습을 보다보면 우리 사회가 깊은 불신의 늪에 빠져있음을 금방 느끼게 된다.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상대가 하는 말은 '거짓뉴스'로 단정하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도 '팩트체크'를 해봐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니 무슨 토론이 되겠는가?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하였는데 어찌된 셈인지 지도층인 그들로부터는 예의를 전혀 찾을 수 없다. 높은 사람들이 이것저것 다 믿지 못하는 세상이라면 우리들은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른다. 질의문답 과정을 보면서, 그들이 자다가도 외치는 국민들은 사실상 안중에도 없음을 느낄 수 있다. 우리 속담에도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고 개 눈에는 개만 보인다고 하였듯이 제대로 보이는 것이 없다보니 자신 외에는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은 모두 쇼로 여기는 버릇이 생긴 까닭이 아니겠는가? 단지 "너는 지고 나는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래지향적 문제 해결에는 관심이 없고 막무가내 자신이나 자신의 편이 이겨야 한다는 아집에 사로잡혀 있다. 옳고 그른 것을 찾아내어 발전적 방향을 모색하기보다 온통 "네 편과 내편은 다르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보니 상대방은 무조건 잘못했다는 네 탓이라는 억지논리를 개발한다. 시작이나 끝이나 거의 같은 말을 나열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평행선을 달리기가 일수다. 상대방을 막무가내 불신하다 보면 결국에는 자기 자신도 불신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에게 큰일을 맡기다가는, 큰일 나겠다는 생각까지 들 때가 있어 안타깝다. 주요저서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2020-07-27 13:52:45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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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솔로몬의 영광과 지혜 ②

[신세철의 쉬운 경제] 솔로몬의 영광과 지혜 ②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의 반지에 새겨졌다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금언은 승리의 순간에는 자만심을 경계하고 패배의 순간에도 절망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승패가 일상생활처럼 되어 있는 바둑기사들 사이에는 담담한 승리에 못지않게 의연한 패배가 더욱 중요하다고 한다. 일승일패에 일희일비하며 생사를 걸다가는, 바둑 고수가 되더라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전문 해설자 중에는 엉뚱한 실수로 대국에서 진 선수는 집에 돌아가서 밤잠을 못 이루거나 상당기간 슬럼프에 빠질 것이라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강자가 되려면 그 실수와 억울함을 극복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되지 않을까? "남을 이기는 자는 강한 자이지만 자기를 이기는 자는 더 강한 자다."라는 솔로몬의 교훈은 승리뿐만 아니라 패배도 의연하게 받아들여야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쉴 새 없이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다가 어느 순간 마각이 들어나 파렴치범이 되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저명인사들의 심리를 어떻게 해석하여야 할까? 이들은 아마도 일시적으로 남을 이기기는 하였어도 제 자신은 이기지 못한 불행한 인간들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다보니 갖가지 욕심을 하나도 뿌리치지도 못하고 이것저것 다 붙잡으려다가 일을 그르친 때문이 아니겠는가? 생각건대, 권력과 명성과 재물을 모두 다 거머쥐려는 본능을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진정한 의미에서 강자의 자세인지 모른다. 물론 어리석은 인간이 이것저것 다 움켜쥐려는 욕망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기란 어려운 일이다. 욕망의 주인이 되어 욕망을 조절할 수 있는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를 누리는 일이 아무에게나 가능한 일은 아니다. 신은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매우 많이 주고, 또 넓은 마음을 주어 바닷가 모래같이 하니 솔로몬의 지혜가 동쪽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급의 모든 지혜보다 더 뛰어나 그 이름이 사방 모든 나라에 들렸더라(열왕기상 4장 29~30)"고 하였다. 솔로몬의 지혜를 배우고 구하려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그 화려한 예루살렘 궁전 주변은 구름 같은 인파로 들끓었다고 한다. 사치의 극을 다한 탓인지 '솔로몬의 영광'은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그 아들 대에 이르러 이스라엘 왕국은 쪼개지기 시작하였다. "들에 핀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지 생각해 보아라. 그것들은 애써 일하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온갖 영화를 다 누리던 솔로몬조차 백합꽃 한 송이만큼 차려 입지 못했다."(마태복음 6장 28~29)라고 하였다. 대자연에 대한 초월자의 사랑과 의지를 담아 낸 것 같은 이 대목은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의 존귀함을 강조하였다고 할 수 있다. 백합은 오늘날에도 여기저기 변함없이 피어나고 있다. 주요저서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2020-07-13 10:31:5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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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솔로몬의 영광과 지혜 ①

인류 역사상 가장 화려했었다는 솔로몬의 영광은 지금 어느 곳에서도 자취조차 찾을 수 없지만 솔로몬의 지혜는 사람들 가슴과 가슴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오랫동안 땀 흘려 쌓아올린 부귀영화도 깜빡할 사이에 한 줌 바람에 실려 흩날려 가는 광경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는가보다. 솔로몬의 영광과 지혜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은 무엇일까? 인생살이에서 물질세계도 무시할 수 없이 중요하지만 행복과 불행은 정신세계에 보다 큰 영향을 받는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행복이란 따지고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가슴속으로 느끼는 것이어서 어떻다고 단정하지는 못한다. 부귀공명, 무병장수를 추구하며 최선을 다하려는 것이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의 어쩔 수 없는 속성이다. 조금만 멀리 생각해보면, 인간이 누리는 부귀영화 그 자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것을 추구하거나 잃어가는 과정에서 드러나게 마련인 인간적 자세랄까 사람 됨됨이일 것이다. 최선을 다한 노력 끝에 성공한 사람들은 그 결과 쌓아 올린 재물이나 명성보다는 그 과정에서 기우린 혼신의 노력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모습이 엿보인다. 재물과 명성보다는 땀으로 쌓아올린 성공의 과정을 더욱 자랑스럽게 가슴에 새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자랑스러운 기억의 주인이 되는 경우다. 반대로 무엇인가 움켜쥐고 놓치지 않으려 허둥거리며 비인간적 행동을 하였을 경우 부끄러운 가슴의 응어리는 지우려고 애써도 좀처럼 지워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쉽게 말해, 부끄러운 기억의 노예가 되는 셈이다. 진정한 행불행은 결과보다는 과정에 있다는 이야기다. 성공의 결과에만 지나친 미련을 가지고 집착하다보면 무리수를 두게 되어 자랑이 아니라 오히려 부끄러운 행적을 남기게 된다. 사실이지 잃어버린 재물이나 권력 또는 명성보다는 그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과정에서 보였던 수치스러운 행실이 사람들을 더 괴롭히는 듯하다. 이런저런 간접경험을 보면 유한한 인간세계에서 편법이나 변칙으로 획득한 승리가 아니라 깨끗한 패배가 더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성공과 실패는 그때그때 엇갈려 지나가지만 페어플레이 정신은 일단 망가지면 다시 회복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 아니겠는가? 사람은 본래부터 맑은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지만 일단 구정물이 흘러 들어가기 시작하면 전처럼 맑아지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선의지(善意志, guter wille)를 가르치고 심어주는 부모의 노력이 절대 필요하다. 주요저서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2020-06-26 09:47:31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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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동기양립 프레임 ②

사회를 활기차게 움직이게 하려면 무엇보다 우선하여 동기양립(動機兩立) 대원칙을 확립하여야 한다. 한국경제는 강한 신분상승욕구에 따라 절대빈곤단계는 빠르게 극복했지만 의식구조 나아가 사회발전이 뒤따라 주지 않아 동기양립 프레임 구축이 어려워지고 있다. 사회보상체계, 신상필벌 원칙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에 선진국 진입 문턱에서 그치지 않는 힘자랑과 그에 따른 불신 진통을 겪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누군가는 더 차지하려 하고, 다른 누군가는 거저 얻으려는 공짜 심리가 팽배하는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기업이나 조직에서는 유능한 인재에게 비리를 은폐하거나 정당화시키는 작업을 시키는 일이 보통이다. 그런 환경에서는 조직과 사회보다는 실력자를 위하여 일하여야 요직을 차지할 수 있는 '하수인문화'가 발호하기 쉽다. 비밀유지 비용과 함께 발각되면 벌을 받아야 하는 위험부담과 심리적 불안감까지 생각하면, 막대한 생산비가 들어가는 셈이다. 은폐와 밀고, 협박과 무마에 따른 유발범죄가 발생할 위험도 결국 그 사회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다. 개인의 비극이면서 사회가 부담하는 막대한 손실이다. 그 같은 노력을 기술혁신에 기울여 생산 활동에 집중한다면 생산성 향상이 가속화될 것이다. 그 어떤 상품을 생산하더라도 가장 싸게, 가장 좋게, 가장 빠르게 만들어내는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사익과 공익이 상충되는 일이 잦아지면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조직과 사회는 흔들려 생산성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불공정거래, 뇌물, 낙하산인사로 얻는 떳떳치 못한 오염된 돈은 그 몇 배의 사회적비용(social cost)으로 전가된다. 엉터리 인사가 높은 자리에서 재물과 권력을 누리는 대신에, 조직을 뒤엉키게 만들거나 질서를 어지럽히는 폐해는 사회 전 분야로 크게 번져 나간다. 낙하산 인사가 심했던 금융부문 경쟁력이 세계 하위 수준이라는 세계경제포럼(WEF)의 평가는 무엇을 뜻하는 걸까? 동기양립 틀이 희미해지는 환경에서는 사람들이 맡은 일에 열중하기 보다는 이권을 찾으려 여기저기 두리번거려 생산성이 저하될 것임은 뻔한 이치다. 사회보상체계가 적정하게 작동되어야만 각 경제주체들이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어 성장과 발전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열심히 연구하고 노력하여 정당한 과정을 통해 성과를 낸 사람에게 적정한 보상을 하는 동기양립 프레임 구축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절대 선이다. 근로자나 기업가나 일하는 사람들을 모두 신나게 만드는 핵심 과제라 할 수 있다. 근로의욕과 기업가정신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하는 경쟁 분위기를 조성할 때 경쟁력은 저절로 향상된다. 국리민복을 위한 길은 무엇보다 개인도 잘 살고 사회도 발전하는 동기양립 프레임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주요저서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2020-06-10 09:30:52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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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동기양립 프레임

가계와 기업이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조직과 사회에 기여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아야 마땅하다. 역으로 조직과 사회가 성장하고 발전하면 구성원의 후생과 복지가 향상되어야 바람직하다. 열심히 일하는 만큼 대우 받는 사회보상체계가 확립되어야 동기양립(incentive compatibility) 프레임이 정착되어 개인의 삶은 건강하게 안정되고 나라경제는 튼튼하게 발전한다. 나라가 부강해지는 국리(國利)와 대다수 시민들 삶이 풍요로워지는 민복(民福)이 동행하여야 지속적 성장과 발전이 가능하다. 국리민복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어느 한쪽으로 편중되면 전체주의 아니면 포퓰리즘 국가로 타락하여 성장과 발전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여 성장잠재력이 급격히 저하된다. 동기양립 예를 들어보자. 축산업자가 기술혁신을 통하여 사람들이 좋아하는 삼겹살을 더 좋게, 더 싼 값으로, 더 많이 생산하면 사회의 후생복지가 그만큼 늘어난다. 사육업자는 흑자가 늘어나며 고용도 늘리고 사회 후생 증대에 이바지한다. 사익과 공익이 합치되어 너도나도 맡은 일에 자부심을 가지면 사회전체의 경제적 성과도 커지는 동시에 사회적 갈등과 대립도 줄어든다. 강조하지 않아도 시민정신도 건강하게 피어오를 것이다. 가계와 기업의 부가가치 창출 능력 향상과 사람들의 의식구조 나아가 사회발전이 동반되어야 공급과 수요가 균형을 맞추면서 경제는 성장하고 발전한다. 아무리 뛰어난 자질과 능력이 있어도 사회가 동반하여 성장하고 발전하지 않으면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만약, 빌 게이츠가 아프리카 오지에 태어났다면 그만한 부를 쌓으면서 사회에 공헌하는 일은 아예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하지 못한다."는 우리 속담이 있지만, 빈곤은 개인의 능력부족 때문인가? 아니면 그 사회의 구조적 모순 때문인가? 소득수준이 절대 낮은 아프리카에서 가난하게 사는 까닭이 둔하고 게으른 탓만은 아니다. 남이 싫어하는 허드렛일 품삯이 소위 "품위 있는 일"에 비해 비슷하거나 외려 높은 북구에서 가난하게 사는 까닭이 일할 여건이 나쁘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소비수요기반이 약하면 새로운 아이디어로 좋은 제품을 생산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옛날 전제국가, 농경사회라면 몰라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자든 소비자든 혼자서 잘사는 일은 불가능해졌다. 총공급 증가로 더 많이 생산된 재화들이 소비자들에게 골고루 나뉘어져야 경제순환이 순조롭게 되면서 총효용도 증가되어야 성장잠재력도 확충된다. 사회보상체계가 우그러진 사회에서는 열심히 일해도 보통사람들의 살림은 피어나기 어려운 반면에 특정 소수는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산다. 억울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상황이 장기화되면 국가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어렵게 된다, 불공정한 사회에서 크고 작은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누군가 특혜를 누리면 다른 누군가는 그만큼 억울해하면서 질서의식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주요저서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2020-05-20 10:35:16 최규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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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려면 ②

"부자가 천당에 가기는 낙타를 타고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어렵다"는 금언은 그 옛날 단순재생산 사회에서는 지극히 타당한 가르침이었다. 남의 몫을 가로채거나, 일을 시키고 품삯을 떼어먹으면 지옥에 가게 된다는 경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확대재생산 사회에서는 연구노력, 기술혁신을 통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사회에 공헌하며 돈을 벌 수 있다. 덕을 많이 쌓고 이웃을 도우면 천당이나 극락을 간다고 가정할 경우, 현대사회에서는 기업가정신이 투철한 기업인에게 그 문이 활짝 열려있는 셈이다. 생산성이 높아지는 사회에서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회가 그만큼 커졌음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부자가 모두 다 천당이나 극락에 가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청업체 허리 분지르기, 정경유착과 부정부패, 담합과 부당공동행위, 자산은닉과 조세 포탈 같은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한 부자들에게 바늘구멍은 닫혀 있다. 아무리 마술을 부린다고 해도 그 좁은 바늘구멍을 통과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부자라고 돈 자랑하면서 가난한 친구나 친척 심지어 최상의 예의를 갖춰야 할 사돈의 돈까지 가로 채려는 인간들이 가야할 곳은 천당이나 극락의 반대편임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 사회에서는 과속성장 과정에서 공동체의 이익과 배치되더라도 사리사욕을 취하려는 천민자본주의도 함께 뿌리 내린 것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부자를 속으로 부러워하면서도 겉으로는 손가락질 하는 아이러니가 생겨나기도 했다. 미래를 기약하려면, 구슬땀을 흘리며 남다른 상상력을 짜내어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사회에 기여하면서 부를 쌓아 올린 부자를 본받으려는 젊은이들이 많아져야 한다. 부자보다도 부를 쌓아 올리는 과정에서 아무나 기우릴 수 없는 불굴의 노력을 존경하고 또 부러워하는 풍토도 형성되어야 한다. 단 한사람도 고용해본 일이 없는 개인생각으로도, 최선을 다하여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과정 그 자체가 더 없는 기쁨이므로 바로 천당이나 극락세계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고용효과를 내고 그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직간접으로 기여하니 더 말할 필요 없다. 가장 바람직한 선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저기 두리번거리지 않고 정당한 노력을 기울이도록 유도하여야 생산성을 향상시켜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스스로 귀감을 보이며 혼신의 노력 끝에 청부(?富)를 쌓아 올린 부자를 존경하여야 경제성장과 발전의 밑바탕이 흔들리지 않는다. 이승에서 기뻐하고 저승에서도 기뻐하고(今歡後歡) 선을 행한 사람은 두 곳에서 기뻐한다(爲善兩歡) 선을 행한 자체로 스스로 기뻐하고(厥爲自祐) 복을 받아 더더욱 기뻐한다(受福悅豫) 法句經, 제1 쌍서품, 18 주요저서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2020-05-06 14:02:1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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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려면 ①

이 세상에서 천당이나 극락 가기를 염원하지 않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 부처님 사촌동생을 비롯하여 어느 누구든 부자 되기 싫다는 사람도 그리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부자도 되고 천당이나 극락세계에 가고 싶어 하는데, 부자가 천당에 가는 길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처럼 불가능하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였다. 생각건대, 같은 부자라 하더라도 그 옛날 농경사회 같은 단순재생산사회의 부자와 오늘날 확대재생산사회의 부자들은 그 뿌리부터 다르다. 이제는 부자들도 천당이나 극락으로 갈 수 있다는 논리를 들여다보자. 오늘날에는 부자가 되어야 할까? 천당에 가야할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다.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마가복음, 10장 25)는 성경구절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탐욕의 뒤 끝이 좋지 않다는 교훈을 준다고 판단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혼란스럽기도 했던 이 가르침은 물질적 부자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 마음속 한 귀퉁이에 한 가닥 위안으로 작용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과거, 단순재생산 시대에서는 가뭄과 홍수가 들지 않는 한, 해마다 생산량이 거의 변함이 없었다. 남달리 큰 부를 축적하는 것은, 봉건사회가 아닌 '자본주의 윤리' 잣대로 본다면, 자랑이 아니라 오히려 수치였다. 연간 산출량이 일정한 농경사회에서 근검절약을 통하여 작은 부자가 될지는 몰라도, 큰 부자가 되려면 최소한 자기 몫을 더 크게 나누거나 남의 것을 가로채지 않으면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나눌 것이 일정한 상황에서 누군가가 더 많이 가지면 다른 누군가가 덜 가져야 하는 것은 빤한 이치다. 단순재생산 사회에서 제 배만 채우려는 탐관오리들이 나라를 흔들리게 하다 망하게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오늘날 확대재생산 시대에는 기술혁신을 통하여 부가가치 창출에 크게 기여할수록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으므로 부자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에 크게 기여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상품을 만들어내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자신도 부자가 되는 일석삼조의 좋은 일을 하는 셈이다. 정당하게 부를 일군 부자가 많아지면 새로운 생산 활동을 위한 자본이 축적되고 이를 통하여 경제의 성장과 발전이 이루어지므로 그 자체가 공동선(共同善)이며 사회정의다. 봉건사회에서 진정한 의미의 귀족이란 적의 침입으로부터 평민, 농노들을 보호하려 자신의 목숨을 건 기사들이다.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구태여 귀족을 꼽으라면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사회에 공헌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고용하여 그 가족들을 먹여 살리면서, 자신도 정당하게 부를 축적하는 기업가들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누군가를 먹여 살리는 일보다 더 고귀한 무엇이 어디 있겠는가? 주요저서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2020-04-20 10:04:15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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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명예와 명성 사이에 ②

세상이 타락하다보면, 자신이 할 일을 남에게 대신 시킬 수도 있고, 남이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처럼 꾸밀 수도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내면세계를 움직이는 자아의식(自我意識)까지 대신하여 새겨 달랄 수는 없다. 어리석은 인간이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면서도 막상 내면을 장식하는 명예는 단련시키지 않는 이율배반 행동을 저지르기 쉽다. 명성은 쉴 새 없이 돈 자랑을 하면서도 구걸 하며 다니는 '부자거지'의 외면 모습과 같을지도 모른다. 허상일 수 있는 명성을 쫓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발을 헛디디기 마련이다. 이런저런 유명세를 탔던 인사들이 남의 관심에서 벗어나면 어느 사이에 공황상태에 빠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꽤 오래 전 장관자리에서 갑자기 밀려난 인사를 그 며칠 후 만났는데, 눈동자를 180도로 굴리며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연신 살피는 모습을 보고 측은지심을 감출 수 없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마도 명성에 버금가는 명예가 뒷받침되지 못했기 때문 아니었는가? 헛된 명성을 맹목적으로 쫓다 보면 자신만이 아니라 남에게도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다. 바지 속에 오물이 묻으면 보통사람들은 훌훌 벗고 씻어내지만, 명성에 전전긍긍하는 인사들은 그 오물을 억지로 감추려다보니 고약한 냄새를 오랫동안 풍기고 다닌다. 바지가 강제로 벗겨질 때까지,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준다. '권위주의 쇼맨십'에 젖어 허위의식에 둘러싸인 인사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따져보면, 순간의 명성을 위해서 평생 동안 간직할 명예를 거침없이 버리는 행동이야말로 '적자인생'으로 치닫는 비경제적 행실이다. 생각하는 갈대라고 하는 인간은 궁극적으로는 마음 속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것이지 남들이 일시적으로 알아주는 허영심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명예는 맨 얼굴이라면 명성은 화장하거나 변장한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맨얼굴은 자신의 삶이고 변장한 얼굴은 타인을 위한, 타인의 삶일지도 모른다. 명예와 명성 모두 보이지 않는 마음속에 있는 것이지만, 명예는 보다 정신적인 것에 가깝다면, 명성은 물질적인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명예로운 사람은 이 세상 파도에 휩쓸리지 않지만, 명성을 탐닉하다가는 이리저리 자화자찬의 파도, 자기기만(自己欺瞞)의 물결을 타다가 어느 순간 균형을 잃기가 쉽다. 허황되면서도 변화무쌍한 세상인심을 이리저리 따라가다가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기가 얼마나 어려울까 생각해보자? 평소, 생계가 어려운 종업원에게는 야박하고, 가난한 이웃에게는 인색하면서 거금을 모아서 유명 단체나 학교에 기부하고 세상에 이름을 날리는 일은 명성을 쌓는 일인가? 아니면 명예를 높이는 길인가? 자신을 내세우고 싶어 하는 인간이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굳이 숨기기란 그리 쉽지 않다. 생각건대,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마태복음 6장 3절)"는 성경 구절은 여러 갈래로 해석할 수 있다. 아마도 남의 혀끝에서 맴도는 헛된 명성을 위하여 가슴속 보석 같은 명예를 손상시키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말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 경구인지 모른다. 어느 한 순간에 훅 날라 가버릴 명성을 높이 쌓으려 아등바등하는 태도야말로 비경제적 자세가 아닐 수 없다. '인간적 너무나 인간적' 도리를 다하며 자신도 모르게 명예를 쌓아가는 마음과 행동이야말로 '경제적 정말 경제적' 자세가 분명하다. 여유로운 마음, 긍정적 자세야 말로 인생의 최종 목표인 행복으로 들어서는 관문이기 때문이다. 주요저서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2020-04-02 13:38:05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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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명예와 명성 사이에는 ①

명예(Honor)는 스스로 갈고 닦는 생활을 하다보면 자신의 마음속에 저절로 새겨져 쌓이는 자부심이어서 엿가락 늘리듯이 마음대로 늘리지도 못하고 화장하듯 분칠할 수도 없다. 명성(Reputation)은 자신에 대한 타인의 평가로 까닭 없이 요란하게 색칠되다가도, 이유 없이 시꺼멓게 먹칠되기도 한다. 명예와 명성은 부분적으로 같기도 하지만 근본부터 다른데도, 많은 이들이 명예와 명성을 혼동하고 있다. 명예는 스스로의 절제된 자세와 행동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되기에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명성을 얻고 지켜나가려면 나 아닌 사람들의 눈과 귀를 자극하고 혀를 움직이게 하는 노력을 이중 삼중으로 기우려야 하지만, 어느 순간 비눗방울 날라 가듯 흩어져버린다. 서로 결합해 살아야 하는 공동사회(Gemeinschaft)의 일원으로서 사회적동물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 남의 시선이나 평판을 무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다 보면, 허위의식에 빠져 쓸데없는 덧칠을 하다가 스스로 체면을 구기기가 쉽다. 언제가 있었던 유명인사의 박사논문표절(?)과 학위취소판정, 그리고 불복소송제기라는 일련의 사태는 수치심이나 죄의식을 상실해가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그의 명성과 어울리지 않는 자만심의 상처 사이에서 상당히 고민 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마음속 명예보다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따지며 명성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양심, 윤리, 도덕 같은 인간의 기본 도리는 거추장스러운 장식물로 변하기 쉽다. 그러다 보면, 20세기 중반 리스만(D. Riesman)이 지적한 바와 같이, 사람으로 하여금 양심에 어긋나거나 그릇된 행동을 스스로 제어하거나 불의에 저항하게 만드는 수치심이나 죄의식이 없어지게 된다. 그 대신 자신의 실체가 대중에게 들어날까 두려워 불안해하고 번민하게 된다. 그 이전 19세기말 니체는 "헛된 명성을 즐기는 자는 한편으로는 자기기만(self-deception)에 도취되어 있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본 모습이 밝혀질까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히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는 "가짜 유언장으로 상속받은 재산의 소유자와 같다" 하였다.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로 여기도록 스스로를 오도하고 그릇된 신념을 덧칠하여 억지로 정당화하려는 행위가 자기기만이다. 땀 흘리지 않고 재물을 쌓아 올린 인간이 감추려면 감출수록 마음구석, 무의식세계에서는 불행의 바이러스를 스스로 배양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불가에서는 깨닫지 못한 자가 스스로 깨달은 것처럼 으스대며 남을 속이려는 행태를 용서받지 못할 '대망어(大妄語)'라고 경계한다. 명성을 팔아 사람들의 판단을 그르치게 하는 사이비 교주나 혹세무민하는 궤변가들은 이승이 아니더라도 다음 저승 가서는 벌을 받게 될 거라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주요저서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2020-03-24 12:46:08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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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혜성처럼 유성처럼 ②

솔로몬의 영광은 자취도 찾을 수 없는데, 솔로몬의 지혜는 사람들 가슴과 가슴 속으로 전해져 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인간이 쌓아 올린 부와 권력 그리고 명성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희미해져가지만, 이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참된 인간상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주고 가슴을 데워주기 때문일까? 사회가 메말라가며 딴 곳을 쳐다보면서도 가슴 속에 간직하여야 할 소중한 그 무엇인가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일까? 마찬가지로 부와 권력을 다투는 과정에서 튕겨 나왔던 모진 행실, 각박한 군상(群像) 또한 시간이 지나도 뇌리에서 지워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이 각인되는 경우도 있다. '생각하는 갈대'라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슴으로 느끼고 뇌리에 새기는 일보다 더 오래 남을 무엇은 없을 터이다. 세월이 흘러 세상의 모습이 온통 바뀌어도 사단칠정(四端七情)을 가진 인간의 본바탕은 변하지 않는다. 기존의 질서보다 개인의 자유의지를 중시하는 니체(F. W. Nietzsche)도 "사람의 심성은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200년 후에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불가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유의지를 누릴 수 있다"는 의미와 같은 것은 아닐까? 바람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싶다 하더라도, 생각과 행동의 뿌리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깔려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뜻일 터이다? 물론 더 소중한 저마다의 의지와 가치들은 동틀녘에도 해질녘에도 바뀌지 않고 파릇한 샛별처럼 가슴 속에서 반짝일 게다. 혜성같이 나타났다 유성처럼 사라지는 인생을 덧없다며 미련을 가진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 드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하며 애태워 봤자 변하는 것은 없다. 그런데도, 나는 가슴 속에 새겨져 길이 남을 그 무엇들을 하찮게 여기면서 살아온 미련퉁이란 말인가?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어느 새 녹 쓸어 가는 것들에 집착하고 있었던 허깨비였다. 쪼그마한 일에 연연하며 힐끔거리다 정작 간직하여야 할 무엇들을 놓쳐버린 쭉정이가 분명하다. 이 돌이키지 못할 미련에서 탈출하는 비상구는 어디에 있을까? 후회스러운 일, 불유쾌한 인상, 기분 나쁜 소동 따위를 기억의 저수지에서 밀어낼 묘책은 없을까? 아무래도 뾰족한 도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머릿속을 푸르른 순간들, 최선을 다했던 순간의 성취감, 만나면 그냥 기분 좋은 사람들과의 화음(和音)으로 채워가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런 일들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내려는 노력 또한 소중하지 아니할까? "오늘 밤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주요저서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2020-03-09 11:36:07 최규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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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혜성처럼 나타났다 유성처럼 ①

[신세철의 쉬운 경제] 혜성처럼 나타났다 유성처럼 ① "한 점 부끄럼 없이" 짧은 생을 살아간 윤동주 시인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라며 고뇌했다. 무심히 빛나는 별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반짝일 터이고,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들은 불가불 다 사라지지만, 무한한 우주와 유한한 세상이 어쩌면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강조하였다는 짐작이 간다. 알폰스 도오데의 동화 '황금 두뇌를 가진 사나이'에서 한 번 써버리면 다시는 채워지지 않는 "머릿속 황금"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 처음 읽었을 때는 언뜻 인간의 존엄성 또는 자부심 같은 그 무엇이라고 어렴풋이 짐작하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황금이 바로 사정없이 무자비하게 흘러가는 시간임을 느끼게 되었다. 간밤의 취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작취미성 상태에서 선잠이 반쯤 깨었다. 마음도 몸도 편안하게 쉬지 못하고 뒤척이다 보니 수 십 년 전 있었던 일과 바로 엊그제 일이 한꺼번에 겹쳐졌다가 흩어졌다가 다시 겹쳐지고 흩어진다. 까마득한(?) 옛날과 바로 조금 전 간밤에 있었던 일화와 토막 이야기들이 순간 순간에 교차되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였다? 시간이 이토록 빨리 지나가니 얼떨결에 제행무상이라는 사치스러운 감정에 휩싸였다. 세월의 수레바퀴는 그야말로 "화살보다도, 아니 번개보다도 더 빨리 달리고 있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황금보다 소중한 시간이 이다지도 빨리 지나가다니 이 무슨 안타까움인가? 살기 위하여 황금으로 된 두뇌를 조금씩 떼어 가면 떼어갈수록 살아 있는 시간이 다해가는 동화 속 '황금 두뇌를 가진 사나이'에게 남게 되는 것은 오로지 이런 저런 '기억의 저수지'뿐이 아닐까? 여러 나라 속담에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하였다. 그러나 번개처럼 사라지는 세월의 흐름을 생각해 볼 때, 아무리 비싼 가죽과 큰 이름이라도 저마다 가슴 속에서 빛나는 아름다운 '기억의 보석'과는 어떠한 경우라도 도저히 견줄 수 없을 것이다. 아득한 과거로도 또 머나먼 미래로도 여행할 수 있는 머릿속 기억의 저수지와 상상의 나래를 푸릇푸릇 향기롭게 채워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람에 따라 가치관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공자님 사촌 동생이라도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저마다 소중하게 여기는 그 무엇이 각기 다른데 자신의 생각과 가치를 남에게 주입하려들거나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인간은 자유로운 영혼이 마음껏 춤출 때 비로소 행복을 느끼는 데, 획일적 가치관의 굴레를 씌우는 일은 '인간적인 정말로 인간적인' 모습이 아니라는 뜻이다. [b]주요저서[/b]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2020-02-19 16:05:54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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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생각하는 갈대'라고 한다면, 사람이 지향해야 할 최우선 가치는 마음의 평화일 것이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경제적 동물이 되어야 하지만 욕심이 지나치다보면 정말 소중한 정신적 자산을 지켜내지 못한다.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은 자신에 대한 긍지, 사회와의 신뢰감이 두터워질수록 마음의 부자가 되면서 긍정적 자세로 세상을 보게 되어 여유도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절대빈곤을 벗어나면서 재물의 많고 적음에 비례하여 성취감이나 행복감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돈과 권력에 집착하다보면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미사여구와 호언장담을 하며 애써 우월감을 과시하려하지만 그 뒤안길에는 삭막한 바람에 흩어지는 낙엽처럼 쓸쓸한 장면들이 언뜻언뜻 비친다. 인생을 항해하는 수단과 목적이 뒤바뀌었기에 겉모습과 달리 그 내면세계는 불안과 번민에 휩싸이게 된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 벌어지는 정신적 빈곤의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탐욕이다. "사람들이 자꾸 더 많은 돈을 거머쥐려고 하는 까닭은 다른 사람들도 더 많이 돈을 가지려 한다."고 생각하는 심리적 압박이 큰 원인이라고 심리학자들은 분석한다. 물질만을 쫒으면서 상대와 비교하다보면 마음이 메마를 수밖에 없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맹수들도 제 배가 부르기만 하면 먹잇감이 지나가도 괴롭히지 않는다. 생각하는 인간이 때로는 생각하지 못하는 짐승의 사는 모습을 배워야만 할 때도 있다는 장면이다. 사회적 동물은 공동체를 떠나서는 생존이 절대 불가능한데도 욕심으로 허둥지둥하다보면 공동체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기 쉽다. 심하면 공익을 해치면서 사리사익을 취하려는 천민자본주의에 물들어 오랫동안 쌓아온 인간적, 사회적 신뢰관계까지 한순간에 무너트리고 스스로 무너지고 만다. 예로부터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가난하고 미천해도 즐겁고,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부자가 되고 귀하게 되어도 근심한다고 하였다(知足者 貧賤亦樂, 不知足者 富貴亦憂)." 사회적 동물이면서, 생각하는 갈대인 인간에게 행불행은 마음먹기 달렸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하여도" 긍정적 시각이 쌓여 열정적 에너지가 쌓이기 시작하면 정신적 여유도 다가오고 나아가 경제적 여유도 뒤따른다. 평범하더라도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마음의 부자로 여유 있게 사는 인생이 보람찰까? 부와 권력을 쌓아놓고 전전긍긍하는 인생이 대단할까? 돈이나 권력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소중한 가치를 돈 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자세를 가지는 순간부터 근심걱정 그림자는 차츰 멀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경자년 새해! 우리들 모두의 가슴 속에 마음의 평화를 지켜내고 나아가 마음의 부자가 되겠다는 다짐부터 해보자. [b]주요저서[/b]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2020-02-04 12:47:3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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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금리 차이와 환율 변동 ②

[신세철의 쉬운 경제] 금리 차이와 환율 변동 ② 금융시장에서는 24시간 거래를 통하여 기대수익률이 어디서나 같게 수렴할 때까지 실시간으로 변동한다. 가능한 높은 가격에 팔고 낮은 가격에 사려는 시장청산(market clearing) 과정이 이어지며 비정상적으로 높거나 낮은 금리·주가·환율은 시차는 있더라도 결국에는 제자리를 찾아가기 마련이다. 금리가 거시경제여건을 적정하게 반영한다고 가정하면 효율적 시장에서 환율의 (예상)변동폭은 상대국과 금리 차이만큼 변동되어야지만, 단기에 있어서는 금리와 환율은 인과관계 또는 상관관계가 없는 것처럼 무작위로 변동하기도 한다. 그래서 "환율은 귀신도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외국인 포트폴리오투자(FPI) 자금은 상대국과 금리 차이, 환차익을 고려하여 차익거래(arbitrage trading) 기회를 수시로 노린다. 금리와 환율이 거시경제상황을 제대로 반영하고 못하고 상대국 간 금리 차이와 환율의 예상 변동률이 어긋나게 되면 차익을 노리는 핫머니의 유출입이 빈번해지며 거시경제여건 변동 없이도 시장을 교란한다. 그런데도 엉뚱하게 '환율주권'이라는 명목아래 환율을 인위적으로 조율하려 하다가, 핫머니의 빈번한 유출입을 초래하여 경제성장 과실 상당부분을 외국투기세력에게 빼앗긴 것이 한국경제의 오랜 경험이다. 쉬운 예로, 1997년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로 환율상승 압력이 거세어지는 가운데, 이성을 잃은 막무가내 외환시장 개입으로 외화보유고가 바닥이 나면서 원화가치 평가절하(환율상승)를 예상한 거주자 외화예금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막상 IMF 사태가 터져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한 다음에는 (환율하락을 예상한) 외화예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당시 외환시장 진입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남다른 시장정보를 독점한 누군가가 위기를 이용하여 초과수익을 누린 셈이다. 대다수 국민들을 쓰라리게 한 국가부도 위기가, 금융시장정보를 거머쥔 내부자로 추정되는, 검은 손들에게는 손쉽게 거금을 거둬들이는 기회로 작용하였다. 시장에 개입하여 거시경제여건과 어긋나게 임의로 금리나 환율을 올리거나 내리는 시장개입은 그때마다 투기세력에게 초과수익의 기회를 제공한다. 게다가 특정 정책목표를 위한 시장개입은 경제적 불확실성을 높여 가계, 기업으로 하여금 합리적 경제행위를 저해하고 투기적 행위를 유도하여 성장잠재력을 해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가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에 무려 1조 달러 가량의 경상수지 흑자를 이룩했지만, 2020년 현재 실질 대외지급능력인 순국제투자포지션(순대외금융자산)은 5천억 달러 정도에 불과한 까닭은 인위적 '환율주권' 정책의 부작용이 커다란 원인이라고 판단된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를 한 셈이다. [b]주요저서[/b]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2020-01-20 09:39:43 메트로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