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기업 구조조정에 불안한 회사채 시장
#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현대그룹 본사. 현대상선은 이날 사채권자 집회를 열고 다음 달 7일 만기가 도래하는 1200억원의 공모 회사채에 대해 만기를 3개월 연장하는 안건을 논의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에 따라 현대상선이 내달 7일까지 회사채를 상환하지 않으면 연체료를 부담해야 한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이날 만기 연장 안건의 부결 직후 현대상선에 대한 '조건부 자율협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회사채 시장이 구조조정 한파에 잔뜩 움츠러들고 있다. 동양, STX, 대우조선해양 등 믿었던 대기업마저 줄줄이 무너지는 모습을 본 투자자들은 부실기업의 신용등급 변화를 예의 주시하며, 선뜻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신용경색이 확대된다면 경기회복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걱정한다. ◆취약업종 및 그룹들, 등급 불일치 21일 한국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35개 기업에서 신용등급 불일치(split)가 발생했다. 대부분이 '강등 후 등급이 엇갈린'(split rating) 사례였다. 이중 유효등급 'A-' 기업이 8곳으로 가장 많았다. SK케미칼은 신평사별 평가가 A0~A-로 엇갈렸다. 등급전망도 안정적, 부정적 등급이 동시에 있다. 두산중공업은 A-~A0사이의 평가를 받고 있다. 등급전망은 신평 3사 모두 부정적이다. 부정적인 전망의 두산은 A0와 A-로 신평사별 등급 평가가 달랐다. 대림산업의 신용등급도 A0~A-로 엇갈린다. 엔에치개발은 A0와 A-등급을 받고 있다. 등급전망은 안정적이다. 와이티앤과 매가마트 역시 A0와 A-로 평가가 갈렸다. 'A0' 기업도 7곳이나 됐다. 대림코퍼레이션의 신용등급은 A0~A+등급을 받고 있다. 효성캐피탈은 A0~A- 등급과 안정적, 부정적 전망이 혼재한다. LS엠트론에 대한 등급평가는 모두 안정적이지만 신용등급은 A+~A0를 받고 있다. 한국토지신탁도 A0~A-의 신용등급을 받았다. 등급 전망은 안정적, 긍정적 평가가 이다. 한화손해보험은 A0~A-등급이 혼재해 있다. 현대증권 김수연 연구원은 "취약업종과 그룹들의 재무구조 악화 등과 동반해 나타나는 불일치 현상은 등급이 낮을수록, 크레딧 훼손에 대한 우려와 관심이 큰 기업을 중심으로 주로 나타난다"면서 "대부분은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는 방향으로 불일치가 해소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추락하는 신용등급, 한국경제에 부메랑 신용등급 강등도 이어지고 있다. NICE신용평가는 두산(A, 안정적→A-,부정적), 두산중공업(A, 안정적→A-, 부정적), 두산인프라코어(BBB+, 안정적→BBB, 부정적), 두산엔진(A-, 부정적→BBB+, 안정적), 두산건설(BBB-, 안정적→BB+ , 하향검토) 등 두산그룹 계열 5개사에 대한 신용등급을 일제히 한 단계씩 하향 조정했다. 국내 증권사의 신용등급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한국기업평가는 '증권사 리스크 확대와 신용등급 전망'을 주제로 크레디트 세미나를 열고 "ELS 같은 파생상품 발행과 PF 우발채무 확대로 국내 증권사들의 리스크가 확대일로에 있다"고 진단했다. 무디스는 최근 LG전자와 포스코 신용등급 전망도 '부정적'으로 하향조정했다. HMC투자증권 박진영 연구원은 "한계기업들의 구조조정 이슈가 지속됨에 따라 투자자들은 우량물에 몰리고 있다"면서 "현대상선의 회사채 만기연장 실패로 비우량 회사채에 대한 투자심리 개선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신용등급이 강등되면 기업들은 당장 자금 조달 비용이 많이 늘어난다. 재계 한 재무담당 부서장은 "대기업이라고 해도 신용등급이 A- 이하면 회사채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기가 쉽지 않다. 경기전망이 어두운 가운데 조달 금리까지 높아지면 경영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불안감을 전했다. 기업 신용리스크는 가계나 국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도 크다. '신용등급 하락→투자 위축→실적 악화→소비 위축→경기 침체'의 악순환 고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원인이 복합적인 만큼 그 해법을 찾기도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언 발에 오줌 누기'식 대응보다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주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