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BC 등 싱가포르 '큰 손'들, K-스타트업 '주목'
[싱가포르=이세경기자] 싱가포르 내 자산 규모 2위 은행인 OCBC와 현지 벤처캐피탈(VC)들이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를 시작한다.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 한국벤처투자(KVIC), 우리자산운용, 은행권청년창업재단 디캠프 등이 현지 VC에 출자하고 이들은 그 자금을 활용해 한국 스타트업에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전체 투자규모는 최소 15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싱가포르로 선(先)지원을 통해 국내로의 투자 물꼬를 트고, 그들의 넘쳐나는 자금을 한국으로 끌어들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지희석 OCBC 산하 VC '라이온 엑스 벤처스' 한국사무소 대표는 "싱가포르는 세금과 규제가 낮고 안전한 시장으로 주목을 받으며 전 세계 자금이 빠르게 모이고 있는 반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싱가포르에 대한 관심이 뒤쳐진 상황"이라며 "이번 행사를 통해 양국의 교류와 투자가 활발해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디캠프, 싱가포르 진출 교두보 지난 14일 저녁 19세기 수도원으로 쓰이던 싱가포르의 고풍스러운 건물 '콜드웰 하우스'는 국내외 금융사와 VC 관계자 등 100여명의 사람들로 북적였다. 디캠프가 싱가포르에서 올해 두 번째 개최한 '모크토크(MokTalk)' 자리였다. 이번 모크토크에는 국내는 물론 싱가포르와 일본, 스위스 등 다양한 금융기관, 기업의 관계자들이 참여했고, 한국성장금융, KVIC, 우리자산운용 등이 처음으로 참여했다. 이들 기관은 글로벌 특화 펀드를 조성해 국내 스타트업들의 글로벌 투자금 유치나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우선 디캠프는 100억원 규모를 투자한다. 50억원을 싱가포르 VC로 출자하면 승수효과로 100억원의 투자가 국내 스타트업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KVIC의 경우 이와 유사하게 아시아를 포함, 글로벌 VC에 총 1억1100만 달러(약1481억원) 을 선출자 후 최소 이 금액 이상을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받기 위해 주관사 선정을 위한 입찰제안요청서(RFP)를 진행중이다. 이들이 싱가포르에 주목한 이유는 이곳이 아시아의 금융 거점으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안한 정치 상황에 중국과 홍콩을 떠난 자금이 싱가포르로 몰려든 원인이 가장 컸다. 싱가포르경제개발청(EDB)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기준 싱가포르 내 고정자산투자는 225억 싱가포르달러(SGD)로 전년(118억 SGD)보다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이 투자액 대부분은 미국(51%), 유럽(21%), 중국(9%)에서 들어왔고, 자국 투자자는 9%에 그친다. 일본의 자금도 싱가포르로 몰리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일본 기업의 투자가 가장 많이 증가한 국가는 싱가포르로 2019년 3조3133억엔(약 29조6270억원)에서 2023년 10조8543억엔(약 97조원)으로 3.3배 늘었다. 안전하고 기업 친화적인 환경도 큰 몫을 했다. 싱가포르 법인세율은 17%로 한국보다 8%포인트 낮고, 고정자산에서 발생하는 자본소득은 법인세 과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한, 투자가를 비롯한 모든 개인에 대해 양도소득세 및 상속·증여세가 없다. 외국인 소유권 제한이나 외환 송금 등에 규제도 전혀 없어 외국인의 투자가 자유로운 것도 장점이다. ◆싱가포르, K-스타트업 '관심' 이날 모크토크 현장에선 한국 스타트업 17곳이 차례로 자신의 회사를 소개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싱가포르에 현지 사무소를 이미 열었거나, 싱가포르 진출을 원하는 기업들이다. 싱가포르 은행인 OCBC와 현지 벤처캐피탈(VC)들 역시 투자 가치가 있는 한국 스타트업을 찾기 위해 참여했다.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싱가포르 VC들이 한국 스타트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거래소 윤성원 싱가포르지점 차장은 "싱가포르는 로컬 기업이 많지 않기 때문에 기업공개(IPO)도 적고 주식시장이 활성화 되지 않았다"며 "반면 한국 주식시장은 IPO가 많고 엑시트도 원활한 편이기 때문에 현지 VC들은 한국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고 투자 니즈도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싱가포르 정부가 추진하는 오픈이노베이션 정책으로 인공지능(AI)과 반도체·헬스케어 등 주요 기업들의 유치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추세다. 디캠프 김시완 싱가포르 센터장은 "싱가포르는 전자상거래 등에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AI와 반도체 등의 산업군은 약한 편"이라며 "이 때문에 이 분야에 유망한 한국 기업들을 싱가포르로 유치하려는 니즈가 높다"고 설명했다. 디캠프는 이번 교류를 시작으로 싱가포르의 자금을 한국으로 유치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밝혔다. 김 센터장은 "한국이 싱가포르 VC들에 먼저 출자하면 승수효과로 그 이상의 금액이 싱가포르로부터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이번 투자를 시작으로 한국 유망 기업들의 싱가포르 진출을 지원하고, 현지에 넘쳐나는 글로벌 자금을 한국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