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오의 신비한 심리사전] 이별의 뇌과학
"네가 없으면 세상이 다 사라질 줄 알았어."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조제가 털어놓는 이 한마디는, 이별을 앞두거나 이미 겪은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감정의 농도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사랑이라는 바다를 함께 헤엄치던 두 사람이 헤어진 뒤, 조제는 현실의 차가운 모래사장 위에 홀로 남겨진다. 이별은 그렇게, 하나의 우주가 통째로 사라지는 경험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더 잔인한 건 그 이후일 수 있다. "언젠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 다시 고독해지고,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조제에게 담담히 이별을 전하고 돌아서는 여자 친구와 함께 걷던 길에서, 배우는 대본에도 없던 장면에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그것이 연기일지라도 감정의 깊이를 감당하지 못할 수 있다. 조금은 건조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는 뇌과학적으로도 설명되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상실의 순간 우리의 뇌는 실제 신체적 고통과 유사한 반응을 보인다. 뇌 영상 연구에 따르면 이별 후 활동이 증가하는 영역은 바로 전측 대상회(anterior cingulate cortex)와 섬엽(insular cortex)이다. 이 두 부위는 원래 신체의 통증을 처리하는 영역인데, 이별이라는 정서적 고통을 겪을 때도 동일하게 반응한다. 뇌는 마음의 상처와 몸의 상처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별은 정말로 '아픈' 것이다. 또한, 애착과 관련된 도파민 회로 역시 큰 충격을 받는다. 연인과의 관계에서 자주 활성화되던 보상 시스템-특히 중뇌의 복측 피개 영역(VTA)과 측좌핵(nucleus accumbens)-은 그 대상이 사라지자 일종의 금단증상처럼 갈망과 혼란을 일으킨다. 마치 중독자가 약을 잃었을 때처럼, 뇌는 "그 사람을 다시줘!"라고 절규하는 셈이다. 이별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이 건조한 과학 이야기가 몸으로 다시 느껴질 것이다. 함께 지낸 장소, 공유한 물건들, 익숙한 냄새 하나까지도,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계속해서 예측하는 뇌의 회로 때문이다. 이 예측이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다시 잊고 있던 이별의 고통을 마주하게 된다. 또한, 함께 한 기억과 장소를 떠올릴 때 작동하는 신경세포들은 단순한 슬픔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는 뇌가 방향을 잃고 재정비에 애를 먹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별 후 흔히 나타나는 '멍함',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느낌', '기억력 저하' 등은 해마(hippocampus)와 전두엽(prefrontal cortex)의 연결이 약화되면서 생기는 인지 기능의 변화다. 그렇다면 이 고통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다행인지 혹은 잔인한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뇌는 유연한 기관이다. 반복되는 감정과 생각에 반응하며 구조를 조금씩 바꿔나간다. 이를 독자도 들어왔을 '가소성(plasticity)'이라고 부른다. 애도란 결국, 사라진 대상이 차지하던 뇌의 회로를 다른 방향으로 연결해나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상실을 겪은 사람들에게 산책, 글쓰기, 새로운 취미, 친구와의 대화 같은 일상을 권유하는 이유는, 새로운 회로를 만들어 마음의 회복을 돕기를 의도한 것이다. 조제가 끝내 자신의 삶을 향해 한 걸음 내딛었듯이, 뇌도 이별의 고통을 '경험'에서 '기억'으로 옮겨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는 배운다. 상실은 끝이 아니라 다시 살아갈 줄 아는 능력을 키우는 통로라는 것을. 그리고 몇 번을 이별해본 사람들은 "언젠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라는 말이 얼마나 잔인한 것이지 알게 되기도 한다. 그게 무엇이던 어쩌면, 마음이 뇌보다 먼저 아파한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조용히, 그러나 끈질기게 회복을 준비하고 있다. 조제처럼, 언젠가는 다시 바다를 바라볼 수 있도록. 그리고 그것이 인생이고 또 그게 이별임을 이별을 경험한 사람들은 대부분 알게 되는 것이다. /진성오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