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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코너 > 김상회의 사주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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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도시에서의 물과 풍수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는 이미 수천 년 전에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말했다. 굳이 탈레스의 말이 아니어도 물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라는 건 상식의 문제이다. 사람은 먹을 것 없이 한 달을 버틸 수 있지만 물 없이는 3일을 넘기지 못한다고 한다. 식물도 동물도 물 없이는 생명을 유지하지 못한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사람이 기거할 곳을 찾는 풍수에서도 역시 물은 의미가 매우 크다. 다들 아시다시피 풍수에서 물은 재물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이 보이는 곳 물과 잘 어울리는 곳에 집짓기를 원한다. 전원주택을 짓는다면 물을 들이기가 훨씬 수월하다. 주변의 개울이나 계곡 또는 강을 풍수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 거주한다면 물을 풍수로 활용하기 힘들 수 있다. 대부분 아파트에 거주하고 물길은 그 위에 도로를 만들거나 집을 지어서 물을 보기가 어렵다. 이런 어려움의 대안으로 수조나 어항 물고기를 풍수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활용이 가능한 것은 수조나 어항을 작은 자연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아파트에 풍수를 고려한 수조를 놓을 때는 동쪽이나 북쪽을 좋은 방향으로 여긴다. 높이도 무조건 큰 것보다 1m 안팎이 좋다. 위치도 너무 높은 곳에 자리 잡지 않아야 한다. 물을 담아놓은 어항은 크기가 작아도 물을 어느 정도 보완하는 대체재로 많이 사용한다. 분재 역시 물의 대체재로 효과가 좋다. 촉촉이 물은 머금고 뿜어내는 형태로 집이나 사무실의 한쪽에 놓으면 좋다. 어항 속에 담아놓은 돌멩이 역시 물과 어우러져 풍수의 효과를 발휘한다. 도시에서 이런 대체재를 사용하는 것은 물을 보는 게 근본적으로 힘들어서이다. 그렇다고 재물을 상징하는 물의 풍수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경제적인 문제는 사람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 아닌가. 도시에 물은 없어도 유사한 효과를 가져올 방법은 다양하니 각자에게 유용한 대안을 찾으면 된다. 대안으로 재물을 불어올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다. 더구나 재물로 곤란을 겪고 있다면 풍수적으로 해결방안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적은 노력으로 집안의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다면 놓치기 아까운 선택일 것이다.

2019-11-14 06:40:37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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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재다신약 홍반장

젊은이들 사이에 '오지라퍼'라는 말이 유행이라고 한다. 오지라퍼는 우리나라 말 중에 오지랖을 영어처럼 쓰는 것이다. 오지랖은 사사건건 참견하는 것이니 오지라퍼는 이곳저곳 모든 일에 끼어드는 사람을 뜻한다. 이야기하기를 즐기고 호기심이 많고 배움에도 흥미가 많은 사람인데 흔히들 동네 모든 일에 상관한다고 홍반장이라 부른다. 홍반장은 재다신약일 가능성이 크다. 재다신약은 일단은 재성이 강하다. 돈을 많이 만지는 데 문제는 약하다는 것이다. 돈이 들어온다 해도 제대로 돈 관리가 되지 않고 장점을 살리기 힘들다는 데 있다. 본인의 의지가 있다고 해도 정작 자기는 강하지 못해 의지가 힘을 펴지 못한다. 뭔가를 해보려고 하지만 실행 역량이 약하다는 말이다. 말 그대로 오지라퍼로 끝난다. 이런 일 저런 일을 보는 눈이 있고 아는 게 많아 참견하지만 그뿐이다. 실제 소득은 없고 자기 주머니로 들어오는 것 역시 없다. 약한 사주이다 보니 배포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아는 걸 바탕으로 자기 사업을 벌이지도 못한다. 운세의 흐름을 타고 꽤 많은 돈이 손에 잡힐 때도 있다. 그러나 그 돈이 그대로 손에 남지 않는다. 일간이 통제되지 않아서 돈을 관리하는 능력이 부족해 마치 주먹 쥔 손에서 모래가 빠져나가듯 돈이 새어나간다. 이런 경우 팔자에서 강해지는 운세를 노려야 한다. 그런 운이 오면 큰 재물을 취할 수 있다. 평소 눈여겨보았던 사업을 하고 싶다면 힘이 강해지는 운세가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시기를 잘 맞춘다면 기대했던 이상의 목돈이 들어온다. 이렇게 돈이 들어오는 시기에는 흐름을 살짝 조절할 줄도 알아야 한다. 쌓이는 재물을 무조건 모으지만 말고 일부를 나눔으로 베푸는 것이다. 많지 않은 재물을 풀어 액운이 끼는 걸 막을 수 있다. 재다신약 사주는 이렇듯 운세 따라 치고 빠지기 전략을 펼쳐야 한다. 기민함을 보이지 못하면 재물을 살리기 힘들다. 전략 없이는 이런저런 일에 참견만 하는 오지라퍼로 끝나는 서러움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팔자를 살펴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2019-11-13 06:39:58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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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악플 자작자수(自作自受)

옛날에는 동네 우물가가 소문의 발원지일 것이다. 현대는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몰래카메라에 담겨 온 세상에 떠돌기도 하는 시대가 되었다. 말뿐만 아니라 모습과 행동거지까지도 보란 듯이 개방되는 시절이 되었으니 분명 즐거운 일은 아니듯 싶다. 무엇보다도 인간이 존재하는 한 악플과 같은 설난(舌亂)은 그 폐해가 자못 심각하여 인터넷 발달의 순기능까지도 회의에 빠지게 만든다. 옛날부터 삼재팔난에 관재구설이 있듯 인간 세상은 말로 겪는 화가 엄청나다. 남의 말을 하고 남의 흉을 볼 때의 재미가 상당한 것이 세간인지라 누구라도 사람 살이에서 구설의 주인공이 되어 보았으리라. 때로는 재미를 위해서 때로는 질시로 가십을 삼기도 한다. 합당한 비난을 악플이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자연스러운 인지상정인 것이다. 그러나 악플은 차원이 다르다. 잘못된 점을 바로잡기 위한 것은 충고라 하지 굳이 악플이라 표현하지 않는다. 옛 선비들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옳은 말이라면 상소를 올려 굳은 뜻을 피력했다. 그러나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려진 필명 뒤에서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고자 하는 뚜렷한 목적으로 비방을 하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비판과 비난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할 수밖에 없다. 석가모니부처님도 이 세상에 비난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라고 하지 않았던가. 예수님조차도 자기 죄가 없는 자는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 했듯이 말이다. 모든 만물이 다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며 온 세상의 꽃과 바람과 같은 형상들은 모두가 다 마음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어느 배우의 우울한 자괴감도 결국은 악플로 인한 것이라는 얘기이다. 모든 일이 다 마음이 만들어낸 환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해도 가슴 아픈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그러나저러나 악플을 다는 이들도 다 자신의 마음에 속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하리라. 분명히 자신이 짓고 자신이 받는 업의 이치 즉 자작자수(自作自受)란 것을 안다면 감히 악플을 즐기지는 못할 것이다.

2019-11-12 06:39:14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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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마음이 문제다

선종의 육조(六祖)인 혜능스님은 여러 일화가 있다. 어떤 두 사람이 절의 일주문 옆에 달린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을 보고 있었다. 깃발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한 사람은 바람이 흔들린다고 얘기했다. 다른 한 이는 깃발이 흔들리는 거지 저게 무슨 바람이 흔들리는 거냐고 했다. 마침 그때 혜능스님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스님. 저는 바람이 움직인다고 하고 이 사람은 깃발이 움직인다고 하는데 어떤 것이 맞습니까." 하고 물었다. 이에 "그건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단지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는 불교가 마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대표적이면서도 함축된 의미가 담겨 있는 일화다. 살아간다고 하는 존재로서의 실상을 얘기할 때 마음의 작용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보는 화엄사상의 요체가 있다. 인간이 바깥세상을 인식하고 살아갈 때 개체적 인간인 '나'라고 하는 존재에 있어 세상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이해하려는 데 대한 단도직입적인 인식론적 접근이기도 하다. 세상에 대한 이해를 불교적 관점에서 보자면 세상을 인식하는 매개체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이다. 즉 우리가 육처(눈 귀 코 혀 몸 뜻의 여섯 곳)를 통하여 보고 듣고 냄새 맡으며 맛을 알고 촉감을 느끼는 것으로써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 육처야 말로 세상을 알고 접하는 통로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석가모니부처님은 육처가 일어날 때 세상이 일어나며 육처가 일어나지 않을 때는 당연히 세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씀했다. 존재가 태어나면서 형성되는 여섯 감각기능이 대상을 접하면서 의식 즉 마음이 일어날 때 비로소 세상이 펼쳐지는 것이다. 세상을 아는 것은 오로지 마음인 것이다. 그러니 나의 마음이 없으면 세상도 없는 법이다. 마음이 세상을 고통이라 여기기도 하고 행복하다고 여기기도 하는 것이다. 극심한 인생사 고난도 어느 순간이 지나면 그땐 내가 왜 그랬을까. 하고 자문하기도 한다. 모두가 다 마음이 만들어낸 환(幻)이라고 유식학파(唯識學派)에서 주장한다.

2019-11-11 06:38:38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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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가정이 행복해지는 방법

언제부터인가 소통이 우리 사회의 큰 화두로 떠올랐다. 업무를 이유로 사람들이 모여서 일하는 직장은 이익 집단이고 서로의 목적이 다르다. 소통이 어렵기 마련이다. 그런데 소통 부재 현상은 가정에서도 드물지 않다. 사랑으로 감싸 안아야 할 가족끼리 서로 비난하고 감정 대립하는 일이 잦다. 가족의 불행은 불통에서 시작된다. 가족끼리 소통이 되지 않는 건 서로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겉으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소통이 잘되려면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팔자에서 재성을 봤을 때 남편은 정재이고 아내는 편재라면 재물을 대하는 방식이 다르다. 정재인 남편은 돈을 함부로 쓰지 않고 절약하면서 모으는 스타일이다. 안정된 수입을 가장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편재인 아내는 흥망의 부침이 있더라도 사업 같은 활동을 통해서 재물을 얻기를 원한다. 남편과 아내가 생각이 다르면 소통도 어렵다. 이럴 때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다. 사주가 다르면 타고난 성향이 다르며 가족이니까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렇지 않다. 가족이어도 개개인은 서로의 성향을 다르게 지닌 한 사람이라는 걸 먼저 이해해야 한다. 서로를 인정하지 않을 때 소통이 안 되고 불화가 시작된다. 다행인 점은 가족이기 때문에 서로의 입장을 알 수 있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도 쉽다. 먼저 할 일은 팔자에 따른 가족의 성향을 공유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갈등이 생길 때 잠깐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아내가 이런 성향이니 이런 말은 조심해야지.' '남편은 이것보다 저런 걸 더 좋아하겠구나.' 가족끼리 성향을 알고 있으면 이렇게 생각을 할 수 있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 가족 간의 불통은 생기지 않는다. 가족 사이에 감정대립이 심하고 싸움이 잦다면 이렇게 서로의 성향을 알아보는 게 필요하다. 서로의 스타일을 명확히 알려고 노력하고 알면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면 싸움이 없다. 사주팔자를 아는 것은 가정에 평화와 행복을 불러들이는 쉽고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2019-11-08 06:38:01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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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직업 바꾼 유학파의 길운

유학 갔다가 미국에서 요가강사로 이름을 굳힌 30대 중반의 여성이 상담을 왔다. 강의 요청을 받고 한 달 일정으로 한국에 왔는데 주변 사람이 추천해줘서 필자를 찾아 왔다고 한다. 팔자 구성을 보니 오행을 고루 갖춘 편안한 사주를 타고났다. 더구나 천을귀인이 조상 자리에 뿌리 있고 재성도 발달해서 누가 봐도 부러운 사주다. "부모님 덕을 많이 입으셨네요."라고 말을 하니 "역시 주변에서 권하는 것처럼 잘 짚어주시는군요." 하며 웃음을 건넨다. "금수저로 태어났고 부모님들이 아낌없이 이끌어주셨어요." 그렇다고 고생을 하지 않은 건 아니라는 말을 덧붙인다. 미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광고회사에 취업했을 때는 앞길에 성공 가도가 펼쳐졌다고 생각했단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연봉도 높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겼다. 몸이 망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다가 이게 맞나 싶은 생각에 회의가 들었다. 휴직을 선택하고 쉬다가 배운 것이 요가였다. 요가를 배우면서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걸 느꼈고 이게 내가 할 일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전문과정을 배우고 요가센터를 열었는데 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요가센터를 하나 더 늘리려고 해요. 아무래도 외국에서 하는 사업이라 어떨지 걱정이 되네요." 팔자에 충살이 없고 흉살이 없는 사주면 어떤 일을 진행해도 큰 어려움을 만나지 않는다. 지금 벌여놓은 요가센터는 사람들이 몰릴 정도로 인기가 좋고 앞으로 펼쳐질 대운도 좋은 방향으로 뻗어가는 기세를 보여주고 있다. 아주 적절한 시기인 것이다. 좋은 운세가 흐를 때는 그 운을 놓치지 않는다. 사업 확장을 고민하던 때에 한국을 찾게 됐고 때맞춰 필자를 찾아 상담을 받게 되어 운이 솟아나는 시기를 잘 맞추게 된 것이다. 교육이나 문화 쪽에서 일해야 뻗어가는 팔자인데 광고에서 요가센터로 전업한 것부터 행운이라고 할 것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운세에서 바랄 게 없는 형국이다. 이제 확장하는 요가센터를 어떻게 잘 운영할 것인가만 고민하면 될 것이다.

2019-11-07 06:37:18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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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미리 걸어 본 길

어김없이 입시의 계절이 왔다. 대학 합격 여부가 결정되는 내년 2월 말까지 부모들의 마음은 타들어 갈 수밖에 없다. 동분서주하며 자식이 좋은 학교 원하는 학교에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을 담은 한 어머니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상담을 청했다. 딸의 대학교 진학에 관한 고민이었다. 딸은 2년 전에 수능성적에 맞춰 대학교에 입학했다. 성적이 좋은 편이었지만 혹시나 해서 안전지원을 했다고 한다. 독일어를 전공한 딸은 1학년을 마치고 독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1년 예정이었는데 딸은 6개월도 지나지 않아 돌아오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학이 자기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교를 자퇴한 딸은 다시 대입 공부를 시작했다. 다행히 모의고사 성적이 잘 나와 기대가 크다. 원하는 학과에 충분히 입학할 만한 수준이어서 한시름 놓은 상황인데 엄마의 걱정은 같은 나이의 다른 아이들보다 너무 늦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항상 처지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에 걱정이 가득했다. 상담을 청한 어머니 사주를 우선 짚어 보니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자녀를 보는 궁이 시주인데 자녀가 영민하고 나중에 자기의 자리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게 보인다. 딸의 사주도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편관이 용신으로 머리가 좋고 일을 추진할 때 과감하다.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것도 두려워 않는다. 이런 사주이기에 독일까지 갔다가 스스로 돌아왔을 것이다. 자기의 길을 찾겠다며 과단성 있게 결심하고 즉시 귀국한 것이다. 이런 실행력도 펀관성의 사주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나이 들어보면 젊을 때의 2~3년은 사실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안다. 상담한 어머니도 그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라 부모의 입장이 되다 보니 걱정이 눈을 가린 것이다. 사람의 인생은 지금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앞으로의 행로이다. 딸은 대입이란 고비를 지나 잘 풀려나갈 운세를 보여준다. 미리 굽이진 길을 걸어 본 것이라 늦은 게 아니라 더 많은 경험을 했기에 더 탄탄한 길을 걸을 수 있다

2019-11-06 06:36:29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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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후천개벽 시대

기존의 주역에 대하여 '정역'(正易) 이란 명칭을 붙인 것은 자못 그 의미가 심오하다. 김일부 선생이 활동하던 구한말의 시대 상황은 실학자들의 저작 활동이 이어져 오던 때다. 저작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괘를 통한 수리(數理)로서 세계의 변화원리를 설명하는 것은 역수원리(曆數原理)로서 기본으로 삼는다. 비슷한 듯 다르다는 것이다. 기존의 주역사상에 대하여 후천개벽 사상을 강조하고 있다고 하는 데는 의견이 일치하다. 불교학과 주역을 비롯한 동양철학의 석학으로 알려진 탄허 스님도 그렇게 설명하신 것으로 기억한다. 역수원리가 무엇이던가. 수의 조합을 통해 세상이 형성되고 변화해 나가는 원리를 통찰한 것 아니겠는가. 거기에 더하여 개인의 운명 더 나아가 국가의 운명까지도 접목하여 응용되지 않는 곳이 없다. 넓게는 우주의 시간적 공간적 운행을 설명하기도 하고 가깝게는 인간의 삶이 어떻게 시간 속에서 영향을 받고 반응해 나가는지의 궤적을 그리는 것이다. 주역만으로도 충분해 보였던 세상에 대한 이해와 응용을 김일부라는 영적인 천재가 자신의 체득 논리를 정리하여 '정역'이라 이름을 붙인 것이다. 받들어져 온 주역에 의한 도식적 해석을 바로 잡는다는 의미에서 그리 이름 붙인 것으로 이해한다. 그토록 존경하는 소강절 선생의 매화 역수 또한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예측원리를 정리할 때도 주역을 근간으로 하면서 매우 뚜렷한 신적인 족적과 인상을 남겼다. 혁신적인 것은 후천개벽 사상을 보다 확실하게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천개벽 사상은 구한말 시대의 민중운동이라 할 수 있는 동학사상과 천도교 대종교 그리고 증산도에도 그 영향을 심대하게 끼쳤다고 얘기된다. 한때 관련 주장과 서적을 보자니 후천 변화된 세계는 평등과 자율이 보장됨은 물론 하느님과 상통하는 이상세계라 되어 있음을 보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천부경에서 보듯 또다시 하느님 사상을 보게 된다. 여기에서의 하느님은 최제우께서 '한울님'이라 지칭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과는 그 결을 달리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호칭이자 의미이다.

2019-11-05 06:35:49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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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세계사의 주역은 대한민국

지난 시절 1980년대 후반인가에 영국 언론에서 '5000년 동안 가난하게 살아온 한국인들이 불원간 구미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나라가 된다'고 보도됐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또 다른 언론에서는 '구미로부터 가르침을 받아온 한국이 오늘부터는 구미를 가르치게 됐다'고 했다. 또한 1980년대 중반에 '단'(丹)이라는 소설이 있었다.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한국이 머지않아 남북통일이 됨은 물론 한민족이 세계사의 주역이 될 것이라는 앞날에 긍정적인 시그널이 여러 분야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필자가 기억하기로 시작하는 근년의 우리 민족의 위대함 서막은 탄허 스님의 예언을 빼놓을 수가 없다. 월남전쟁에서의 미국의 패배는 물론 이런저런 세계사의 미래에 대한 굵직한 탁견을 주역을 근거로 하여 풀어 놓았다. 불교계를 뛰어넘어 사회적으로 석학이란 통칭을 얻으신 분이다. 특히나 주역에 해박하였던지라 김일부(金一夫) 선생의 정역(正易)을 보고는 기존의 주역과 비교하여 인류사적인 측면으로 세계의 변화를 추연해 낸 것은 탄복할 만한 일이다. 정역은 중국이 원류라고 주장하고 있는 주역 사상을 우리 민족 고유사상의 측면에서 수리(數理)의 시각을 더하여 재해석하였다고 평가되고 있다. 김일부 선생은 19세기 중후반대에 활동했던 사상가였다. 정역 사상은 복잡하게 흘러가던 조선의 정국 속에서 동학이나 대종교 등 당대의 여러 민족 종교의 이론적 바탕에 채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정역을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왜냐면 아무리 사주명리학이나 주역에 관심이 많아서 많은 공부를 한다 하더라도 정역의 내용을 해석한다는 것은 힘들다. 아무리 한문 실력이 좋다 할지라도 그 내용의 함축성을 정확히 풀이해내기엔 그 내용이 자못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알려진 바로는 김일부 선생의 개인적인 영적인 체험까지 녹아 있다 하니 이쯤 되면 내용적 완독이 되기 힘든 저서인 것이다. 무엇보다 주역(周易)은 제대로 주역의 모든 괘의 의미에 통달했다고 말할 만한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이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2019-11-04 06:35:08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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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때를 맞추면 풀린다

단풍이 물들었다. 산자락을 곱게 장식한 단풍이 TV를 타기 시작하면 주변에서는 단풍놀이 가자는 말이 부쩍 많아진다. 겨울도 멀지 않다는 의미이다. 아침 기온이 뚝 떨어졌고 산간지방에는 얼음이 언 곳까지 있다. 눈이 빨리 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아이들은 눈싸움하고 눈썰매를 타는 즐거운 생각이 머리에 가득할 것이다. 단풍놀이는 이렇게 가을이 되어야 가능하고 눈싸움은 눈이 내리는 겨울이 되어야 할 수 있다. 그런데 단풍놀이를 봄에 가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눈싸움을 한여름에 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자연의 흐름인 계절처럼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일에도 그에 맞은 시기가 각각 있다. 결혼할 때는 두 사람의 사주에 따라 좋을 때가 언제인지 봐야 한다. 사업은 시작하는 시점의 운세에 따라 재물의 향방이 달라진다. 그래서 인륜지대사인 결혼은 좋은 날을 택일하려는 사람들의 상담이 끊이지 않고 사업을 할 때는 운세를 묻는 사람들이 많다. 결혼은 당장 혼례가 문제가 아니라 그 이후의 일이 더 중요하다. 어떤 결혼생활을 유지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행복과 불행이 갈라지기 때문이다. 한 해를 더 기다려야 결별 수를 피할 수 있다는데 그때 결혼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사정이 있어서 그렇겠지만 불행을 불러들이는 그때의 선택이다. 팔자에는 운세가 꺾이는 시기인데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하겠다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운이 꺾이는 시기에 사업을 펼치면 인생을 늪으로 밀어 넣을 수 있다. 결혼이나 사업은 인생 전체가 걸린 일이다. 자칫하면 삶 전체를 흔들어 놓는다. 그래서 모든 일에는 때가 중요하고 더구나 큰일을 앞뒀을 땐 꼭 운세와 맞는 때를 찾아야 한다. 봄에는 단풍을 보는 때가 아니고 여름에는 눈이 없다. 봄에 단풍놀이를 떠나고 여름에 눈싸움을 꿈꾸면 불확실한 현실만 남는다. 돈도 버리고 몸만 고생하는 일이 벌어질 게 뻔하다. 세상일은 좋을 때가 따로 있고 운세가 조화를 이루는 시기가 바로 그때이다. 때만 맞추면 어떤 일이든 절반은 풀린 것이다.

2019-11-01 06:34:2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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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리더의 자격

예측의 공식인 명학에서는 사회적으로나 조직의 리더가 되는 사람들은 오행(五行)적 특징이 있다. 리더의 말을 찾아보면 지도자 지휘자 수령이라 칭해진다. 즉 팔자에서 펼쳐지는 운기에서 일반적으로 양간 일주면서 신강사주인 동시에 신실이 강한경우로 본다. 그러면서 천덕(天德) 월덕(月德)이 있는 경우는 반장을 하더라도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리더가 되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리더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작게는 초등학교 한 반의 반장에서부터 작은 마을의 이장 군대의 작은 분대장 더 나아가 연대장 등등 이다. 기업으로 치자면 한 회사의 대표이사나 기업 총수 정부 조직은 기관장 그리고 크게는 한 나라를 책임지는 총리 대통령까지 리더의 급과 자질은 단체나 조직의 성격에 따라 너무나도 다양하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규모라 할지라도 리더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리더가 된다는 것은 힘만으로도 되는 것이 아니고 책임도 따른다. 그러기에 권한도 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종종 그 권한과 권위에만 초점을 맞추어 그저 높은 자리를 탐내고 추잡한 싸움을 멈추질 않는다. 특히나 남자들은 권력에 대한 무한한 잠재적 동경이 있는 지라 칼날 끝의 꿀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핥으려 하는 것이다. 전 세계의 역사를 두고 볼 때도 숱한 왕좌 싸움은 그 얼마나 많았던가. 나라나 기업을 막론한 어떤 조직이든 최고 지휘권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권모술수와 암투가 끊이질 않음은 명약관화한 사실 아니던가. 어이됐거나 권한을 가진 자 그래서 리더가 되기를 자처하는 자들은 올바른 결정을 위해 자신에 대해서 엄격하고 늘 깨어있어야 함을 알아야 한다. 자리의 무게를 알고 그에 걸맞은 책임을 기꺼이 행하는 자야말로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래야 리더가 된 책임을 다할 수 있는 법이리라. 일각에서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속이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행하는 처세에 능란한 이들이 많은 듯하다. 특히나 현대는 인터넷이 발달하다보니 유명인들일수록 과거에 한 이율배반적인 말이나 행동의 궤적들이 대중에게 보여지곤 한다. 따져보면 권력이나 왕좌는 인기나 볼거리가 아닌 것이다. 기업 조직 국민에 대한 신뢰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부끄러움이 따르고 지도력을 의심하게 되고 염치실종이 된다면 단점 없는 사람이야 어디 있겠는가마는 이리 되면 참다운 리더가 될 수 있을까.

2019-10-31 06:19:15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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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고난시에는 기도가 제일 쉽다

살아가다 보면 뜻대로 안 되는 것이 허다하다. 어떨 때는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하지 못하는 절체절명의 고난이 있기도 할 것이다.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 전란 속의 군인들이나 민간인들은 목숨을 부지하는 단 하나 외에는 다른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것이다.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천재지변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런 고난에 비해서 일상사를 살아가면서 겪는 희로애락이 교차하는 괴로움은 사실 고통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사치라고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러니 마음자리 하나 바꾸면 세상이 달라지는 고(苦)는 단지 마음장난일수도 있다. 어쩌면 인생에 대한 겸손함을 잃지 않는 태도 그리고 감사함만 가질 수 있어도 단박에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의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은 나를 둘러싼 여러 불리한 외형적 요건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스스로의 정신력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리하여 이치를 알고 이치를 조금은 깨친 이들은 기도를 권하는 것이다. 기도를 통해 마음에 힘을 얻게 되는 것이 기도의 가장 큰 효능이기 때문이다. 기도에는 참회와 발원이 빠질 수가 없다. 진정한 참회는 자신의 아만과 허상을 보게 만들며 더 나아가 주변의 사람과 사람들에게 자애의 마음이 일어나게 한다. 또한 자신 내면의 힘을 끌어내는 자석의 역할을 하며 어떠한 어려움이라도 능히 기쁘게 이겨내리라는 각오를 다지게 한다. 이러한 마음의 자세는 거의 순교자의 마음과도 같아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푸른 싹을 틔우는 보리 잎과도 같은 것이다. 고난을 희망으로 바꾸고 보람된 결과를 맺게 하는 자산이 되는 것이다. 기도의 힘은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하고 결실을 얻는데 고통스럽다고 아우성을 치면서 정작 삼일 칠일도 기도를 하지 못하겠다고 한다면 이는 말로만 고통스럽다고 외치는 투정에 불과한 것이다. 하루에 잠시 시간을 내어 정말 진실 되게 기도를 해보라. 어느 날 맑고 푸르른 하늘을 바라다 보라. 어쩌면 형체가 나타나기도 할 것이며 음성이 공중에서 들리기도 할 것이다. 이는 진정 자신을 사랑하며 겸손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자신에 대하여 솔직한 사람은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기도를 통해 마음자리가 선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면 운명도 판세도 좋은 방향으로 달라진다. 그러니 기도가 제일 쉬운 일 아니겠는가.

2019-10-30 06:18:28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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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진실함이 가장 큰 부적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여러 현상과 체험의 관점에서 보자면 신명의 존재나 가피에 대하여 여러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타당할 수 있다. 물질적 존재를 가진 차원에서는 흔히 말하는 몸을 초월한 현상들을 이해되지 않는다 해서 무조건 부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귀신을 보았거나 그 기운을 느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진 않지만 실제로 사진을 찍었다 해도 조작으로 의심 받는 상황이다. 눈으로 본 사람도 있지만 없고 다만 느낌으로 감응하는 것인데 그리고 그 느낌도 자기 착각과 자기 최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빙의현상을 보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서양에서도 카톨릭 전통에서는 귀신 잡는 사제라 하여 일부 신부들을 교육을 시켜 흔히 말하는 신들린 신도들이나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퇴마와 관련된 공식적인 부서가 있는 것은 분명 귀신으로 통칭되는 존재들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꽤 오래 전에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컬트 영화인 '엑소시스트'는 실 사례를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진 영화이다. 이 외에도 다수의 사례가 영화로 책으로 소개돼왔다. 아이를 선녀가 데려다준 태몽은 정부의 중책을 맡거나 학문적 업적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꿈을 통해 이미 돌아간 부모나 조상들을 뵈면 반드시 어떤 메시지를 받기도 한다. 작정기도를 하는 경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거나 꿈에 불보살님이 나타났다는 등의 여러 계시를 받는다. 감응을 받는 경우 역시 마음이 지어낸 것이라 한들 어쩌겠는가. 단순히 인간의 상념과 기대가 각자의 무의식 속에서 꽃을 피워 형상화한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빙의에 노출이 잘되는 사람들이 있다. 심술궂은 신명의 기운이 아주 쉽게 흡착되는 경우는 스스로 우울해하는 사람들과 자만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고 보면 가할 것이다. 기실 삿된 기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진실하고 겸손한 사람들이다. 겸손한 이들은 경거망동 하지 않는다. 큰 욕심을 내지 않는다. 헛된 것을 바라지도 않으며 공짜를 원하지도 않는다. 이치에 어긋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신명들 역시 기도나 굿을 통해 도움을 준다 해도 인연상 타당한 경우에 효험을 발휘할 뿐이며 신명의 세계도 다양한 차원이 있을 것이다. 각각의 차원에 통하는 원칙과 기준이 있다고 보는 것이니 진실함과 성실함을 위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함부로 삿된 기운이 범접치 못하는 것이다.

2019-10-29 06:17:45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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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귀신의 유무를 따지기 전에

논어에 보면 공자의 제자 중에 한 사람인 계로가 묻는다. 유교에서는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보니 결국은 귀신을 섬기는 것이 아닌가 싶었던 듯하다. 그래서 귀신을 섬기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를 물은 것이다. 그런데 공자는 사람도 섬기는 것도 어려운데 어떻게 귀신을 섬기겠는가 하고 대답한다. 그러자 계로가 다시 죽음에 대해 묻자 공자는 답을 하길 삶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죽음을 알겠느냐고 되묻는 것이었다. 이러한 공자의 대답은 매우 현실적인 감각에서 나온 것이다. 막연히 귀신이나 죽음에 대한 개념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하고 대신 살아 있는 현실과 현실 속의 인간관계에 대해 더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어차피 태어나면 죽음은 실에 바늘처럼 따라 오는 것 굳이 애써 고민하고 상념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현실에 충실 하라는 지극히 실용적인 대답이다. 그러나 실제로 공자는 귀신의 존재를 인정한 사람이다. 유교는 지극히 현실적인 가르침을 표방하기에 당장 지금 인간적 삶에 표준을 맞춘 것일 뿐 공자는 곳곳에서 귀신에 대한 조심스러움과 공경의 예를 가벼이 여기지 않은 흔적이 곳곳에 나타난다. 제사의 형식과 절차가 철저히 유교적이다. 유교적 관점에서는 존재가 특히 사람이 명을 마치면 몸은 쓰러지지만 정신은 혼백(魂魄)이 되어 혼은 하늘로 가고 백은 땅으로 흡수된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제사 때 향을 피우는 것은 하늘로 간 혼백이 흠향하길 바라는 것이요, 땅에 술이나 물을 뿌리는 것은 흙으로 돌아간 백에 공경의 예의를 올리는 의미인 것이다. '혼불'이라는 소설에 보면 주인공인 청암부인이 명을 마치자 망혼의식으로 혼불을 보내는 모습이 묘사된다. 철저히 유교의식인 것이다. 예를 갖추어 혼을 하늘로 보낸다. 어느 의식에서든 혼백으로 나타나는 고인이나 조상은 전생에 존재했던 실존 집안 식구 아는 사람의 동일시이다. 또한 이루어질 수 있는 어떤 일거리의 상징일수도 있다. 음력 시월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월상달이라 한다. 추석 차례가 지난 후 대부분의 곡식을 거둬들인 후 하늘문도 열리는 때를 즈음하여 조상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예의를 올리는 행사가 된다. 알거나 모르거나 인연이 없거나 있거나 천지의 인연 닿는 신명들께서 행운을 주시고 횡액을 막아주시기를 기대하며 올리는 고사가 시월상달기도이다.

2019-10-28 06:17:02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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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덫을 조심하라

세상은 정글이라는 말이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여 사회생활에 첫 발을 딛을 때 그래도 보호를 받던 학교의 품을 떠나는 사회 초년생들에게 던지는 화두와도 같은 말이다. 정글에 들어가면 온갖 독충과 맹수들이 드글거리며 먹잇감을 찾고 있는 것처럼 생존경쟁의 최전선에 뛰어들게 된다. 마치 열대 정글에 들어온 것처럼 조심하라는 경고를 담고 있다. 그러나 사회는 정글은 맹수들의 모습으로 다가오기 보다는 친절을 가장한 능란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후배 직원이나 동료에게 조언을 해주는 척하면서 경계심을 허물게 하여 약점을 잡기도 한다. 뭔가 만만하거나 어수룩하다 싶으면 자기 일을 떠넘기기도 하다가 공은 가로 채는 동료나 상사도 있다. 필요한 경우에는 달콤한 칭찬으로 공연히 사람을 부추겼다가 정작 도움이 필요하거나 할 때는 바로 안면을 바꾸기도 한다. 이러한 일이 비단 회사나 조직생활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고 조금만 사람이 모여도 보여지는 다양한 군상의 백태이다. 기실 짐승보다도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법 없이도 사는 선량한 사람들과 그 선량한 사람들을 이용하려는 세력들이 도처에 공존하는 것이다. 밤과 낮이 서로에게 의지하듯 선과 악 역시 공존하는 것이 이치인 것이다. 그러나 열 사람이 도둑 하나를 잡는 것이 쉽지 않듯 누군가 사악한 사람들의 표적이 된다면 피해를 당하지 않을 요량이 없다. 이러한 불운을 피하는 방법은 무엇보다도 공연한 친절이나 사탕발림을 멀리해야 한다. 뭔가 조금만 돈이 있다는 낌새를 보이면 분명 사회에서 통용되는 범위 이상의 이익을 얘기하며 접근할 것이다. 이런 제안은 십중팔구 덫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고수익 보장 다단계 사업도 누가 얼마를 투자해서 얼마 만에 큰돈을 벌었는지 속삭일 것이다. 특히나 노인들이 혹시나 하며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이면 세류를 알지 못하는 촌스러운 사람 보듯이 할 것이다. 그러나 체면 상해할 필요가 없다. 상대방은 투자를 종용하여 바로 우리 마음속의 허영을 건드려 허세 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때로는 미인계도 쓸 것이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는 속담이 있지만 이들의 웃음은 돈을 끌어내기 위한 자신들의 실적을 위한 가면일 뿐이니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인연이 끊긴다 해도 덫을 피해 가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2019-10-25 06:16:02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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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신구의 삼업이 삶의 차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근대 유럽의 철학자인 데카르트가 말하긴 했다. 그의 이러한 사유의 명제를 "신은 존재한다" 라는 명제와 결합시켰다고 어느 수필가가 쓴 글을 읽어본 적이 있다. 이는 신의 존재를 인정하기 위한 방식으로 존재의 명제를 귀결시킨 것이라고 본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실존에 대한 확인을 하는 방식으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심하고 있고 그 의심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의식하고 있다는 것으로써 "나" 라는 존재가 여기에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만큼은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내가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가장 단순한 것이라는 논리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명제했다고 한다. 그런데 필자는 이러한 주장을 읽으면서 마치 화두선을 설명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화두선의 가장 일반적인 공안 중의 하나가 "이 뭣꼬?" 이다. 지금 숨 쉬고 화내고 먹고 하는 이 '나' 라는 존재가 뭐냐는 물음이다. 그러나 잘 먹고 잘 자고 잘 입는다 해서 우리의 존재가 행복한 것은 아님을 조금만 생각을 더 해보면 알 수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A.H. Maslow)는 인간은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로부터 출발하여 궁극적으로는 자아실현의 욕구까지 여섯 단계로 보았다. 그의 욕구단계 이론을 통해 모든 욕구가 충족된 후에 마지막으로 가지는 욕구가 자아실현의 욕구라 했다. 이에 반해 기원전 삼사백년 전의 사람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목적적 존재로서의 자신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최대한 유감없이 발휘하는 것을 자아실현으로 보았다 한다. 결국은 비슷한 맥락의 의미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생리적 욕구를 뛰어 넘는 것이다. 즉 성경에도 나오듯 사람이 빵으로서만 살 수 있음이 아니라는 것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에서 말하고 있는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야 말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가장 고귀하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지를 매우 짧게 한 마디로 표현한 것이라 본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하고 있는 말 행동 뜻(생각)인 신구의 삼업은 존재하는 것이다. 산다는 과정에서는 물론 이거니와 존재가 윤회를 하는 끊임없는 존재의 연속성 과정에서 어떠한 차원의 존재성으로 살아가게 될지를 가늠하게 하는 종자이자 에너지로 차곡차곡 쌓여지기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19-10-24 06:15:06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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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마음은 용광로

역경을 견디면서 삶은 시작되고 변화에서 비결을 찾는다고들 한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만큼 변덕스럽고 빠르게 변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별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사라졌다 다시 일어나곤 한다. 그래서 마음을 알고 다스릴 줄 아는 자가 깨달음을 얻은 자이기도 할 것이다. 도교나 불교철학을 받아들인 동북아의 대표 주자인 중국이나 우리나라는 마음의 작용에 주안점을 두었다. 생각 하나가 일어나는 그 순간을 '심찰나'(心刹那)라 하여 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는 그 순간을 포착해 보면 십육분의 일 또는 십팔분의 일초 정도의 속도로 마음이 움직인다고 설명하고 있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며 존재의 실상에 대해 뭔가 철학적인 고찰을 하기 시작한 것이 유럽의 근대 철학의 효시라고 본다면 이미 이천 육백년 전에 붓다는 마음의 작용을 통해 존재의 실상을 확연히 통찰한 것이다. 데카르트의 이 말은 존재의 사유에 대한 각성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대부분 우리 인간은 진실한 사유로서의 생각보다는 변덕스런 생각의 노예일 때가 많을 것이다. 여기서부터 발전하여 석가모니부처님 입멸 후 일, 이 삼백년이 지나면서부터 태동하기 시작한 부파불교들에서는 이론적으로도 존재와 윤회의 근간을 밝히기 시작했다. AD 1세기를 전후하여서는 반야와 화엄사상이 구체적으로 틀을 갖추고 확고해지기 시작했다. 후에 구사론이며 유식론까지 확립되면서 불교사상은 존재의 실상을 철학적 논리적으로 펼쳐나간 것이다. 이러한 주장들은 현대과학에서 밝힌 양자역학과 합치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불교사유의 과학성까지 입증되기에 이른 것이다. 결론은 마음은 용광로와 같다는 것이다. 양자역학에서 증명되듯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양자의 운동성처럼 마음의 움직임 역시 그러한 것이다. 이 마음의 작용을 안으로 끌어들여 가만히 지켜볼 줄만 안다면 진정 안과 밖이 합일이 되는 경지에 이를 뿐만 아니라 마음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생로병사의 근본적 존재적 괴로움을 벗어날 뿐만 아니라 어떤 경계에도 흔들리지 않는 대자유를 얻는 다는 것이니 펄펄 끓는 용광로에서 평화로운 호수로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지혜의 완성이자 깨달음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2019-10-23 06:25:13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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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방편과 사술(詐術) (2)

전통적인 샤머니즘 풍속은 세계 곳곳에 각 나라의 문화와 풍습을 지니고 전승되어오고 있다. 물론 근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그 위세가 줄어들긴 했지만 전통 카톨릭 국가들에서도 매직 우먼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크리스탈 점을 치기도 한다. 점성술로써 궁금한 미래를 예측하기도 했던 것이다. 동북아국가인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 일본 그리고 히말라야 근처의 티벳이나 부탄, 네팔과 같은 나라에서는 국가적 대사를 앞두고서 큰 사찰의 린포체가 신탁점을 공식적으로 치기도 한다. 우리나라 역시 샤머니즘 전통이 강한 나라였다. 그러던 것이 기도의식을 구식관습으로 치부하는 경향에서인지 어느 때부터인가 샤머니즘에 의한 무속인들의 사회적 인식이 점차 낮아진 것도 사실이다. 때때로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속담처럼 되는 점사라면 일개 실력 없이 월급만 타려는 직업인과 다를 게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신명의 뜻과 말을 전하는 진정한 무속인 종교인들은 바른 말을 전하지 않고 사욕을 챙긴다면 곧 점사력및 능력의 말씀도 흔히 말해지는 '신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체험한다고 한다. 방편의 긍정적 의미가 무색하게 사람들을 미망에 빠뜨리는 경우 역시 보게 되기도 한다. 가정사 문제나 연애사 등으로 마음이 산란해진 사람들에게 실제적 효험과는 상관없이 어려운 상황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몇 년 전엔가 어느 직장에서 회계 일을 보는 여직원에게 근 수십억에 달하는 굿값과 점사비를 받은 여자 무속인이 구속된 기사도 뉴스에 나온 적이 있다. 각각의 처한 어려움에 따라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을 쓰는 효용이 방편인데 이러한 선한 뜻을 사술로 전락시키는 일도 발생된다. 세상에는 물리적 세상과 비물리적 세상이 공존한다는데 기도는 달콤하거나 저주의 관습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구식관습이라 할지라도 의식을 거행하는 기도에는 기적적인 일들이 발생한다. 반드시 신의 응답이 있게 되며 의식에서 기도의 힘이 미쳤다고 하는 것이다. 기도에 힘을 쏟아 개개인의 힘을 증폭시키는 면이 있고 신의 섭리로 원하는바 에너지를 증폭시켜 거대한 변화를 만든다. 수수께끼 같은 얘기이겠으나 백투터퓨쳐가 있듯이 예측 예언은 있는 것이다.

2019-10-22 06:24:33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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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영웅과 간웅

천기를 얻고 사회적 실력으로 얻는 지배자 최고의 자리를 그저 최고의 호사와 권력을 누리는 자리로 안다면 이는 큰 오산이다. 그들은 수시로 자신이 올바른 판단을 하고 있는지 자문하며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을 멈추지 않는다. 옛 왕이나 황제들이 국사(國師)를 가까이 하여 의견을 경청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최고의 위치에 올라간 사람들은 그 자리가 얼마나 외롭고 두렵고 고독한 자리인지를 알 것이며 특히나 왕이나 황제의 자리가 대표적일 것이다. 황제의 앞에서는 항상 달콤한 칭송의 말만을 내뱉지만 정작 나라의 안위를 위하기보다는 자신과 자신이 속한 소속 파의 입지를 견고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황제 역시 절대지존의 자리일지라도 항상 역모나 반란 독살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음 편할 날이 없는 자리라는 것을 알건만 만인지상(萬人之上)이라는 유혹은 아버지나 형제를 죽여서라도 얻을 만큼 치명적인 것이다. 세계의 수많은 왕좌가 그러한 피비린내 나는 권좌 다툼의 결과로 얻어지곤 했다. 역사가들은 현재 중국을 가장 중국다운 모습으로 기틀을 잡은 때를 당나라로 뽑곤 한다. 당고조 이연의 아들인 당태종 이세민은 태자로 세워진 형을 척살하고 본인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전형적인 왕좌 찬탈의 경우이다. 그러나 그는 진정한 리더는 어떠해야 했는지를 알았다. 정치가요 전략가였던 그는 아버지인 이연을 도와 수나라를 무너뜨리고 당나라를 세우는데 혁혁한 역할을 하였으며 스스로의 능력과 힘을 알았기에 천하를 한 번 힘 있게 다스려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황제로서의 임무수행은 오늘날의 중국의 정치와 통치체제의 모범이 되는 기틀을 확립했다고 칭송받고 있다. 그 유명한 정관정요(貞觀政要)를 확립함으로써 스스로의 재세기간은 물론 면면히 이어지는 중국의 통치철학을 공고히 한 것이다. 그렇기에 형을 척살하고 선왕을 겁박하여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나 후인들은 당태종을 가리켜 영웅이라 칭하지 간웅이라 칭하지 않는다. 본인 스스로도 왕좌를 쟁취하기까지 그 과정이 험했음을 알기에 더욱 치열하게 바른 정치를 하려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자리에 걸맞은 훌륭한 정치를 폈기에 지금까지도 중국 역사상 손꼽는 3인의 황제에 든 것이다.

2019-10-21 06:23:56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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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사주속으로] 역을 통한 운명의 보합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승리한다는 얘기다. 이런 의미는 흔히 말하는 정보싸움이라고도 명명할 수가 있겠다. 정보 싸움을 말하자니 몇 년 전의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바둑 구단과 알파고의 바둑대전을 떠올리게 된다. 기계가 발달했다 한들 인간이 만든 기계가 어찌 인간을 이길 수 있겠는가 하고 바둑 구단의 승리를 확신했던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큰 충격에 빠졌던 그 때를 잊을 수가 없다. 컴퓨터의 알고리즘을 통해 기본적인 원리는 물론 수많은 학습과 경우의 수를 입력하여 온갖 변수에 대응하는 시스템을 심었다. 그러한들 자기를 만든 인간의 생각을 읽고 한 수 더 위에서 춤추던 알파고의 인공지능은 그를 만든 인간 세계를 섬뜩하게 만들었다. 인공지능은 사람이 움직이는 대로만 하는 로버트와 다르게 스스로 생각해서 사람과 같이 행동 할 수 있다고 했지만. 놀램은 어쩌면 감정이 배제된 스스로 진화하는 알고리즘 체계로서 자기를 만든 인간을 파멸로 이끌 것만 같은 두려움과 함께 마치 검으로 흥한 자 검으로 망하듯이 말이다. 전통적인 전쟁이나 전투의 경우 이길만해서 이기는 싸움은 처음부터 승패를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의 묘미는 이길 줄 알았는데 지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 질 줄 알았는데 이기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활약에서는 이러한 변수를 기대하는 것은 아예 해당이 되지 않는다는 자괴감을 들게 한다. 불가에서는 사마타수행의 도가 높아지면 여섯 가지 신통 즉 초능력을 얻는데 그 중의 하나가 타심통이다. 육신통에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신통인 타심통과 더불어 과거와 미래를 아를 아는 숙명통과 천안통도 해당이 된다. 팔자는 천지자연과 우주의 생성과 변화하는 과정을 기호로 특정 짓고 변환하여 인간의 운명론을 추론하는 학문이다. 일종의 전통적 알파고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러나 학은 인간의 삶을 돕고 유익하게 하고자 함이 가장 큰 의의다. 그런데 컴퓨터를 통한 인공지능의 역할은 그 윤리적 의의가 어떠한지 아직은 의문이 간다. 인간의 운명을 추론함에 글자와 통변을 통해 천지의 지혜와 감성이 녹아있다고 보는 것은 아전인수 격 감성일까?

2019-10-18 06:23:09 메트로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