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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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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세계문학 파노라마] <12>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1933년)

[안치용의 세계문학 파노라마] <12>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1933년) 혁명이란 뜨거운 상황을 통해 포착한 인간 조건과 인간 존엄 소설 '인간의 조건'(La condition humaine)은 1927년 3월 21일 밤 10시 30분에 이야기가 시작한다. 르포와 유사한 기술방식을 취하면서 국공합작의 혁명군이 지방정부를 정복하고, 다시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이 반혁명을 일으켜 공산주의자들을 몰살하는 과정을 그린, '4·12 상하이 쿠데타'라고 하는 특정한 시대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한국어로는 제목이 동일한 한나 아렌트의 정치철학 에세이집이 앙들레 말로(1901~1976년)의 이 소설 못지않게 유명하다. ◆'싯다르타'가 될 뻔한 '싯다르타'와 다른 소설 이 소설에서 다룬 인간의 조건은 예컨대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 처럼 흔히 짐작함 직한 포괄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인간의 조건을 다룬다기보다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면서 동시에 구체적인 삶의 조건 안에서 인간이 자신의 조건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가 제시한 일종의 인간 조건 같은 것과 다르다. 상황 속 인간의 '존엄'과 '고뇌'와 연결지어 소설은 인간의 조건을 운위한다. 소설에서 인간의 조건을 직접 언급한 대목을 살펴보자. "인간이 단 하나밖에 안 가진 목숨을 어떤 사상을 위해서 버리다니 인류의 독특한 어리석음이라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이 질문에 주인공 '기요'의 아버지이자 지식인으로 캐릭터가 설정된 '지조르'가 "그렇습니다. 인간으로서 조건을 견뎌내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겠죠"라고 대답하며 인간의 조건을 거론한다. 이어 그는 "인간이 이해를 뛰어넘어 기꺼이 목숨을 내던지려고 하는 모든 사상은 이 조건의 바탕을 인간의 존엄이라는 것 위에 놓고 그 올바름의 증명을 막연하게나마 지향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여기에 해당하는 사상으로는 노예에게 그리스도, 시민에게 국가, 노동자에겐 코뮤니즘이 제시된다. 소설이 천착한 인간의 조건은 인간다움을 결정하는, 즉 이렇게 해야 인간이다라고 하는 그런 막연하지만 정체성이라고 할 것의 조건이라기보다는, '어떤' 인간이 되기 위해서 꼭 해야 할 의무의 의미로 쓰이는 듯하다. 의무를 조건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소설 속 문장으로는 "인간 세계에서 인간 이상의 것이 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 인간의 조건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가 가장 명시적으로 제목의 뜻을 진술한다. 그러려면 인간이 가진 한계의 목록을 내어놓아야 한다. 어떤 고양된 인간다움에 도달하는 과정 또는 결과를 보여주려면 무엇에서 벗어나야 하는지를 정의해야 한다. 그러나 한계만을 논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조건'은 'from'과 'to'를 혼용한다. 또한 문맥에 따라서는 인간 조건이라는 말을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볼 수 있다. 소설이 암시한 '정의'와 살짝 결이 다르게 인간의 조건은 인간이 존엄해지는 'to'의 의미로써 종종 사용된다. 존엄하기 위해서 인간은 고뇌해야 한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남의 목소리는 귀를 통해서 듣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파악하여 재단하고 정제할 수 있지만, 자기 목소리는 자기의 목구멍을 통해서 듣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기의 목소리를 타인의 목소리 처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정제할 수 있는 고뇌를 통해서 자신의 존엄을 인정함으로써" 'to'의 의미로 인간 조건에 도달하게 된다. 여기까지라면 '인간의 조건'은 '싯타르타'와 비슷한 소설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특정한 중국 역사의 시기에 국공합작과 반혁명이 일어나고 이 과정에서 흑과 백이라는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 사람들이 선택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극한에 몰린 인간이 어떻게 선택하는가, 경계에 있는 게 아니라 경계를 넘어섰을 때 그들이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 또는 존엄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선택하는가를 보여준다. 보편적인 인간론을, 양자택일의 선택지밖에 없는 혁명이라는 구체적이고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선택해서 존엄을 성취하는지를 통해 보여준다. ◆'to'만 존재한다면 소설의 등장인물은 각각 하나의 전형이다. 앞서 언급한 '지조르'와 '기요' 외에 '첸', '카토프', '메이'가 주요 인물이다. 프랑스인 아버지(지조르)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낭만적인 지식인 혁명가 기요는 한자로 '청(淸)'이다. '청(淸)'이란 이름을 택한 데에, 또 중국 피가 섞이지 않은 혼혈을 중국 역사를 다룬 소설의 주인공으로 다룬 데에 아무 의미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기요의 아내 메이는 독일인이고 카토프는 러시아인으로 직업혁명가이다. 국공내전은 세계혁명의 무대이자 인종과 무관한 보편적 인간 조건을 설정한다. 혁명가들에게 공통적으로 죽음이 주어지고, 기요뿐 아니라 모두가 죽을 때에 맑은 존엄의 양식을 취한다. 그들은 느닷없이, 망설임 없이 죽어버린다. 죽음에 도달하는 스토리텔링이 약하다고 판단할 법도 하다만, 소설이 다룬 사태의 죽음 성격이 그러하여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변론할 수 있지 않을까. 기요는 자기 몫의 청산가리를 주저 없이 털어먹어 자기 존엄을 확인한다. 의학도이기도 한 카토프는 주변 동지들에게 청산가리를 모두 나눠줘서 그들이 존엄한 방식의 죽음을 선택하도록 돕는다. 대신 자기에게 주어진 개 같은 죽음, 혹은 고통스런 결말을 기꺼이 감수한다. 죽음에서도 타인을 배려한다. 고통을 통한 존엄의 승화가 죽음의 장면에서 카토프를 통해 표현된다. 첸도 자살하는데, 장제스 암살을 기도하다가 실패하고 거사 현장에서 하반신이 날아간 상황에서 스스로 총을 자기 목구멍에 집어넣어 방아쇠를 당긴다. '인간의 조건'은 공산주의 이념에 애정을 가지고 접근한다. 공산주의가 다수의 인권과 존엄을 존중할 수 있는 보편적인 체제로 설정돼 있어, 흑과 백의 선택밖에 없을 때 많은 사람이 공산주의를 떠받들다가 스스로 그 이념을 위해서 죽어가는 형태를 취한다. 살아남은 인물은 메이와 지조르이다. 매력적인 꼰대 지식인으로 묘사된 은퇴한 대학교수 지조르는 처음부터 아편에 의지하면서 시대와의 불화를 견뎌낸다. 더불어 선지자다운 면모를 유지한다. 성서의 선지자들은 그들의 배면에 신이 있어서 선지자로서 삶을 버틸 힘을 얻었다. 반면 지조르와 같이 고뇌와 고독밖에 없는 격변기의 공산주의자 지식인에게는 그런 힘이 없었고 절대고독 앞에서 자신의 신념을 담대하게 선언하고 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지켜내게 한 유일한 힘은 아편이었다. 필부와 다름없는 인간 조건으로 인간 조건을 넘어서 보편을 설파하는 역설이 지조르에게 나타난다. 지조르에게서 인간 조건에 관한 'from'과 'to'가 동시에 나타나는 변증법적 종합을 목격한다. 나약했지만 그런 방식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고, 마지막에도 아들이라는 이념의 혈연, 자기 인생의 의미, 또는 인생의 동지가 죽어버린 상황에서 아들을 넘어서 전우의 시체를 넘어서 앞으로 나아가는 전사적인 이미지로 비약하지 않고, 또다시 아편에 의지해서 뒤에서 머물러버린다. 그런 결말이 나쁘지 않았다. 인간 조건이라는 게 항상 'to'만 있는 게 아니다. 'to'를 지향하지만 'from'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이중적인 존재로서 끝내 우리는 'from'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to'만 존재한다면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었을 것이다. 지조르라는 인물이 매력적인 이유는, 신플라톤주의 도식을 쓴다면 '일자(Hen)'를 향한 'to'라는 지향과 'from'이란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기에, 보편적인 인간의 지향과 개별적인 한계, 그리고 인간 모두가 가진 성취와 좌절을 두루 성찰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노인과 여자 지조르와 관련해서 실천 방식의 다양성으로 그를 포용할 수 있을까 하는 다소 사변적인 토론이 가능하다. 끊임없이 아편에 의지하는, 즉 'from'의 인간 조건에 구속되어 있지만 또한 끊임없이 'to'라는 인간 조건을 이야기하는 유형의 지식인도 필요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빨치산이 되거나 빨치산을 죽여야 하는 선택 외에 다른 선택이 없는 순간이라면 선택해야 한다. 성서 표현으로는 장사 지낼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죽은 자들끼리 장사 지내게 하고 갈 길 떠나야 하는 상황이다. 소설의 지조르 또한 장사 지낼 사람들에게 맡겨두고 떠나야 하였을까. 내가 지금보다 많이 어렸을 때 생각은 지조르가 한심한 늙은이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비겁이 일상인 나이가 되어서인지 장사를 지내며 아편 정도를 피울 권리 비슷한 게 지조르에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기울어진다. 그것 또한 인간 조건의 하나가 되어야 하지 않나. 메이라는 등장인물은 지금 관점에서는 마뜩잖은 캐릭터이지 싶다. 혁명가라는 성격이 주어졌지만 메이는 혁명가라기보다는 혁명가 아내의 모습을 노정한다. 같은 혁명가인 다른 주요 인물들이 장엄한 죽음을 맞이하지만 메이에게는 혁명가의 아내로 살아남아 상처를 극복하고 마치 순정만화 주인공 캔디처럼 의연하게 이겨내는 삶을 말로는 펼쳐놓는다. 메이가 유기적으로 전체 구조에 끼어있지 못한 채 계속 서걱거린다는 느낌을 받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물론 메이의 생존을 이유로 해피엔딩 혹은 희망이라는 해석 또한 가능하고 존중되어야 한다. 아무튼 그 뜨거운 혁명의 시대는 가고, 지조르 또한 아편 속에 잦아들었을 텐데, 메이는 어떤 삶의 흔적을 남겼을까. 혹은 어떤 삶이 가능한 것으로 주어질 수 있었을까. /안치용·인문학자 겸 영화평론가(ESG연구소장)

2022-05-12 09:04:21 박승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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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덕의 냉정과 열정사이] 초심, 욕심, 의심

#. 초심(初心). 처음 부장(부서장)이란 직책을 맡았을 때다. 가장 가까웠던 형님은 초심을 잃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늘 겸손하라고 했다. 그렇게하면 실패하는 부서장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 언론사의 부서장도 그럴진대, 회사의 임원이나 최고경영자(CEO)는 어떨까. 늘 미래를 준비하고 실천하는 자리다. 어떤 환경에서도 실적이란 부담감을 떨쳐내야 자리를 지킬 수 있다. 하물며 한 나라의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은 어떠한가. 많은 권력과 함께 책임과 비판이 따른다. 부서장이나 CEO는 바꾸면 된다. 시기도 기간도 상관없다. 대통령은 다르다. 탄핵이나 불의의 사고 외에는 바꿀 수 없다. 아직까지 성공한 대통령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는 만들어질까. 5년간 초심을 유지해야 가능하다. 시작은 매끄럽지 않다. 장관 임명 등 출발부터 늦어지고 있다. 첫걸음이 진보와 보수 모두의 박수를 받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끝은 달라지길 바란다. 진영을 떠나 박수 받으며 떠날 수 있다면 절반의 성공이다. #. 욕심(慾心). 분수에 넘치게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다. 제20대 대통령이 취임했다. 아직도 논공행상이 한창인 모양이다. 며칠전 저녁자리였다. 윤 대통령과 벗이라는 이유로 여기저기서 전화를 받는다고 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욕심을 내는 것이다.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인연이 있는 사람을 찾아 도와달라고 한다. 욕심이다. 제대로된 실력과 인품을 갖췄다면 그럴 필요없다. 미리 찾을 일이다. 지역과 학력을 떠나 오로지 전문가를 찾는다는 것이 새 정부다. 어설프게 줄을 대다간 오히려 역풍 맞는다. 명예마저 실추된다. 진심 정권 창출에 기여했다면 더 겸손해져야 한다. 그것이 새 정부의 성공을 돕는 것이다. 논공행상은 5년 내내 이뤄진다. 찾을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주먹구구, 비전과 철학이 없는 인사는 정권의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다. 욕심 있는 사람을 버리고, 전문가를 써야 한다. 일에 대한 욕심이 중요하다. #. 의심(疑心). 확실히 알 수 없어서 믿지 못하는 마음이다. 어떤 일에 확신이 없을 때 주로 생긴다. 삶은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다. 인사도 마찬가지다. 누구를 등용하는냐에 따라 과정과 결과가 달라진다. 최근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은 엄중하다. 원화값과 주식이 떨어지고 물가와 금리는 오르고 있다. 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래서 경제는 원팀이 중요하다.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 인사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경제수석과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금융위원장, 금감원장의 손발이 맞아야 한다. 눈빛만 봐도 알아차릴 수 있는 호흡이 중요하다. 금융권은 제대로된 금융당국 수장을 원하고 있다. 금융위원장까지 윤곽이 나왔다. 마지막 퍼즐은 금감원장이다. 전 정권에선 최흥식 원장(11대)과 김기식 원장(12대), 윤석헌 원장(13대)을 거쳐 정은보 원장(14대)이 금감원을 맡았다. 3년 임기를 채운 사람은 윤 원장이 유일하다. 문제는 금융권의 불만이 많았다는 것. 검사와 제재가 3년 내내 이뤄졌다. 진행 중인 소송도 많다. 소비자보호와 내부통제미비를 명분으로 금융회사 CEO를 옥죄었다. 앞으로 달려가기도 바쁜데 발목이 잡혔다. 금감원의 건전성 종합검사가 진행됐지만 한 은행에선 수 백 억원대의 횡령사건이 일어났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CEO를 잡겠다는 감독당국이 돈을 빼돌린 직원을 못잡은 꼴이다. 새 정부의 첫 금감원장은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와야 한다. 초심은 흔들리지 않아야 하고, 욕심은 버려야 한다. 그리고 의심은 사라져야 한다. /파이낸스&마켓부장 bluesky3@metroseoul.co.kr

2022-05-12 06:00:29 박승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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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산업센터 드라이브인 램프 넓어진다

차량을 건물 내부로 진입시키는 방식인 지식산업센터의 드라이브인(drive-in) 시스템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화물차량의 적재함이 점점 커지면서 지식산업센터의 지상·지하 주차장까지 진입하는데 필요한 경사로인 램프(Ramp) 폭을 넓히고 층고를 높게 설계하는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는 것. 특히 주변에 산업단지 배후수요를 겨냥해 공급되는 제조형 지식산업센터의 경우 대형 화물차량의 진입이 가능하도록 최대 7m의 램프 폭을 적용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램프 폭이 넓을수록 회전반경이 커져 운전하기에 편리하고 안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건물 층고도 6m 안팎으로 설계하면서 높은 공간을 필요로 하는 윙바디 하이탑차의 하역작업에도 편의성을 높이고 있다. 화물차량을 호실 앞으로 진입시켜 상하차 작업이 가능한 도어투도어(Door to Door) 시스템에서 도어의 가로·세로 길이도 커지는 추세다. 업계 관계자는 "드라이브인 및 도어투도어로 연결되는 호실은 분양 때마다 완판되고 있다"며 "제조형 지식산업센터의 경우 램프폭, 층고, 대형 화물차 진입여부 등이 주요 선택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고양시 향동지구 5블록에서 램프 폭 3.8m에 지상 12층까지 2.5톤 차량 진입이 가능한 지식산업센터가 분양에 성공하면서 드라이브인 시스템이 더욱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는 더욱 진화된 드라이브인 시스템을 적용한 지식산업센터가 분양된다. 현대건설이 내달 전철1호선 세마역 바로 앞에 공급하는 '현대프리미어캠퍼스 세마역' 지식산업센터는 램프 폭 최대 7m로 설계돼 5톤 화물차량이 지상 10층까지 올라갈 수 있다. 대형 화물차량의 안전한 운행을 위해 입구와 출구를 달리하는 일방통행(원웨이) 램프로 설계한 것도 눈길을 끈다. 대부분의 호실 앞에 주차는 물론 하역작업이 가능한 도어투도어 시스템도 적용된다. 분양 관계자는 "주변에서 들어선 삼성전자 LG전자 등의 낙수효과로 13개 산업단지가 조성돼 있다"며 "경기 남부의 첨단산업벨트가 구축되면서 지식산업센터 수요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2022-04-27 16:21:43 박승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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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세계문학 파노라마] <11> 치누아 아체베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1958년)

[안치용의 세계문학 파노라마] <11> 치누아 아체베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1958년) 서구 제국주의에 침탈당해 몰락한 슬픈 아프리카의 초상 치누아 아체베(1930~2013년)가 28살에 첫 소설로 쓴 작품인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아프리카 탈식민주의 문학의 고전으로 전 세계에서 1000만부가 넘게 팔렸다. 폭력적인 서구 세력의 침탈에 대항해 부족의 문화와 풍습을 지키려는 한 남자의 모습을 중심으로 아프리카 원주민의 생활과 문화가 서구 세력에 압도되어 서서히 몰락하는 과정을 그렸다. ◆Things fall apart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라는 소설 제목은 예이츠의 시에서 따왔다고 한다. 영어로는 '씽즈 폴 어파트(Things fall apart)'이다. 한국어 제목이 대체로 무난하게 번역된 것 같으나 원제와는 뉘앙스가 다른 점은 어쩔 수 없다. 'Things fall apart'가 이 소설의 주제 의식을 더 잘 드러낸다. 제목이 그렇듯,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영어로 된 아프리카 소설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을 영문학으로 봐야 하는가, 아프리카 문학으로 봐야 하는가. 영어라는 언어를 사용했으니 결국은 영문학에 포섭되지 싶다. 물론 두 가지 성격이 모두 있다. 아체베는 나이지리아 사람이지만, 기독교인으로 서구 정신에 익숙하고 영어를 잘 쓰기 때문에, 아프리카의 현상을 영어로 소설화했을 때 세계적인 확장성을 갖는다. 그렇지만 문학이라는 게 꼭 사실의 단순 전달만은 아니기에, 예컨대 한국어로 쓴 한국 문학이 우리 공동체의 전통과 정조를 담아내는 것과는 다른 경로를 취한, 세계성에 정향(定向)한 이 소설의 개념화 이면에서 아쉬움을 발견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언어 측면에서 오리엔탈리즘의 한 형태가 아닌가 하는 그런 고민. 나아가 언어를 넘어선 오리엔탈리즘이 이 소설에서, 이 작가에서 어떻게 반영되고 극복되었는가에 관한 궁금증은 불가피하다. 이 소설은 다큐멘터리 또는 르포적인 성격이 강한데, 현실에 존재하는 소재 자체가 너무 뚜렷할 때 또는 현실이 그 자체로 문학적일 때 '가공'은 최소에 머물고 제대로 된 전달이 중요해진다. 그랬을 때 작가라는 프리즘은 과연 오리엔탈리즘과 얼마나 간격을 유지했는지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오리엔탈리즘은 서구가 동양을 열등한 존재로 고착하는 사고의 틀이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정의한 것이 오리엔탈리즘의 일반적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다. 하나는 서구에서 동양을 바라보는 원형 오리엔탈리즘이고, 두 번째는 복제된 오리엔탈리즘이다. 복제된 오리엔탈리즘은 영국 등 서구 열강의 식민지 지배를 통해 제삼 세계 내부에서 대리인으로 육성된 내부의 지배 계급이 가지는 서구적 사고 체계를 말한다. 제삼 세계 지식인은 대부분 복제된 오리엔탈리즘으로 무장하기 마련이고 한국에서도 그랬다. 이 시기 제삼 세계의 지식인에게는 기본적으로 큰 균열이 있다. 세계를 바라볼 때 근대화라든지 근대성이라든지 하는 것과 결부된 근대 국가 모델 외에 대안이 없기에, 그 방향으로 가야 하기에, 미래는 서구에서 찾아진다. 반면 극복해야 하는 내부의 봉건성은 자기 민족과 연결된다. 그렇다고 자기 민족을 버리고 서구를 무조건 모방하면 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서양인이 아닌, 서양인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 서구화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살아가는 땅에서 자신들의 전통과 자신들의 유대관계, 자신들의 공동체, 즉 자신들의 플랫폼 속에서 서구와 연결된 근대화를 추구해야 했기에 자기 민족과 연결된 봉건성이 족쇄처럼 따라온다. 그 균열 속에서 제삼 세계 지식인이 흐느적거린다. 아체베의 이 소설에서는 흐느적거림 속에서 중심을 찾으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자기 민족 안에 존재한 유대와 애정, 공동체성을 지켜내려는 따뜻함과 관계에 대한 애착까지 버리면서 서구화로 가야 하는 건 아니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이 문제를 지적한다. 단순히 영어로 쓴 소설이고 오리엔탈리즘의 흔적이 있어 서구가 이 소설에 열광했다고 판단한다면 단편적인 이해이다. 상당히 힘 있게 그리고 술술 읽히는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으로 풀어가면서 전해야 할 메시지는 메시지대로 잘 담아낸 소설이다. 앞서 언급하였듯, 소재 자체가 훌륭하기에 재능 있는 작가가 사건에 적절한 수준으로 잘 가필함으로써 가독성이 뛰어나고 메시지가 뚜렷한 작품을 산출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사건 구성 말고도 심리 묘사나 전개가 탁월하다. 첫 작품인데 노련한 소설가인 양 질질 끌지 않는다. 느릿한 전개가 없고 사건이 일상적인 흐름에서 생생하게 그려진다. 총 맞아 죽을 땐 갑자기 총에 맞고, 도끼로 찍어 죽일 땐 건조하게 또 순식간에 도끼를 휘둘러버린다. 그 일이 일어나게 된 당사자의 심리 상태를 충분히 묘사하였기에 사태를 단순하고 간명하게 처리해도 독자는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조지프 콘래드의 커츠와 치누아 아체베의 오콩코 조지프 콘래드는 영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이다. 콘래드 자체는 폴란드 사람으로 아체베처럼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다. 영문학의 고전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과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을 비교해보자. '암흑의 핵심'의 커츠와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의 오콩코라는 인물에는 모두 제국주의 및 오리엔탈리즘이 개입한다. 오콩코나 커츠 둘 다 소외와 비극의 주인공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오콩코는 오리엔탈리즘 시각에서 오리엔탈리즘 내부에서 겪는 소외고, 커츠는 밖에서 오리엔탈리즘 안으로 뛰어 들어와서 겪는 소외다. 소외와 비극이 일어나는 현장은 오리엔탈리즘 안, 정확한 표현으론 오리엔탈리즘 이념이 기본값으로 깔린 아프리카 안이다. 오콩코와 커츠가 각자의 텍스트 안에서 아프리카라는 공간에 자리하면서 그 시대 그 공간의 특성상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비슷한 양상을 노정한다. 다만 두 사람에겐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정점으로 치닫기 전의 모습이 투영된다. 주인과 노예가 변증법적 전환 과정, 혹은 지양하기 직전까지 변증법적 축적의 양상을 보여주며 오콩코는 내부인으로, 커츠는 외부인으로서 각각 겪은 비극을 그렸다는 차이를 드러낸다. 오콩코와 커츠는 둘 다 문학의 영웅이란 공통점을 지닌다. 흔히 희생양 이론에서 말하는 사회적 맥락과는 다르지만 둘 다 일종의 희생양이다. 둘 다 사회적인 희생양이라기보다는 자발적인 희생양의 길을 걷고, 자기 운명에 희생되는 구조를 취한다. 그리스 비극에서 제시되는 숭고한, 무결한 인간이 아니며 적잖은 결함을 지녔다는 점에서 비극의 주인공이지만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과 다르다는 공통점도 목격된다. 다른 한편으론, 인간적인 결함을 지닌 인간이 통상 그러하듯 빠른 이해타산 속에서 남들처럼 시류에 편승하고 바뀌는 세상에 적응하면서 다른 길을 얼마든지 걸어갈 수 있었지만, 두 소설의 주인공은 그렇게 살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역설적으로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과 닮았다. 결함은 단지 운명으로 향하는 이정표에 불과했다. 동시에 내면의 두려움과 항상 대면하고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존엄한 인간으로 싸웠다는 점에서 그들은 근대적이고 실존적인 영웅이다. 자기도 모르게 주어진 운명이 그리스 비극의 특징이라면, 오콩코나 커츠에게 드리운 운명은 굳이 스스로 찾아가지 않아도 될 운명을, 남들이 권하지 않고 회피하는 운명을 기를 쓰고 자발적으로 찾아가는 운명이다. 그럼에도 오콩코나 커츠가 인간적인 결함을 넘어서 마주하는 결말에서는 그리스 비극과 비슷한 숭고함을 느낄 법도 하다. 운명에 맞서는 인간의 모습을 숭고하다고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식민주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의 시대 배경이 19세기 말이고 소설의 발표 시기는 1958년이니, 두 시기를 유의할 필요가 있다. 19세기 말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시대의 절정이고, 1958년는 신식민주주의 시대에 해당한다. 소설 속 시대에서는 서구 외세와 제삼 세계의 민족 혹은 지역의 주체 사이의 갈등이 중요한 이슈였다. 내부와 외부의 갈등이 주요 모순인 19세기말과 달리 소설 발표 시기인 1958년의 신식민주주의 시기엔 외세와 민족 자결을 주창하는 주체 간의 갈등이 온존하지만 그것이 약간 뒤쪽으로 물러나게 된다. 외세로부터 훈련받은 제삼 세계 내의 비(非)서구 대리인이 제삼 세계의 새로운 주인으로 등장하면서 독립과 매판성을 동시에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제삼 세계 민족의 여망과 괴리되는 현상을 보인다. 작가는 자기의 시대와 소설 속 시대를 겹쳐보며 착잡한 심정으로 소설을 썼을 것이다. 아체베는 이 두 가지를 뒤섞어서 소설로 구현한다. 1958년 시점에서 19세기 말을 그렸기 때문에 제국주의의 폐해는 물론 나이지리아 내부의 부족 간, 인종 간, 종교 간 내부 갈등의 모습이 균형감 있게 표출된다. 남성성 및 여성성과 관련한 제삼 세계의 가부장제, 이념대립이 투사된 세대 갈등, 나이지리아 방식의 기독교 수용 등 많은 거대 담론이 삶의 풍경을 통해 서글픈 모습으로 소화되어 소설로 형상화한다. 오리엔탈리즘의 간편한 안티테제는 구조주의인데, 형상화 과정에서 아체베는 구조주의 관점을 불가피하게 채택하는 듯하다. /안치용·인문학자 겸 영화평론가(ESG연구소장)

2022-04-21 09:17:05 박승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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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덕의 냉정과 열정사이] 수요와 공급의 법칙

#. 2년 동안의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도 국내 골프장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절대적으로 골프인구(약 515만명)가 늘었고, 하늘길이 막힌 탓도 있다. 하루 1만5000명~2만명이 해외에서 골프를 쳐야 하는데 이들이 국내에 머물면서 생긴 일이다. 물들어 올 때 노 젓는다고 했던가. 골프장 '악덕 대주주'는 돈을 단단히 챙겼다. 그린피를 올리고, 음식값을 올려서 배를 불렸다. 대부분 사상 최대 실적이라고 한다. 코로나19로 한 명이 빠지면 3명이 4명 값을 내라고 '갑질'을 했다. 한 명이 빠진 것은 모르겠고, 그린피는 4명이 친 만큼 내라는 억지였다. 공정위의 직권조사를 차치하더라도 이젠 정신 차릴 때가 됐다. 그간 많이 드셨을 터. 세금혜택까지 누리는 대중제 골프장에서 일어나는 그런 갑질도 얼마 남지 않았다. 시장은 언제나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존재한다. 수요가 많으면 공급자가 헤게모니를 쥔다. 하지만 해외 하늘길이 열리면 공급이 넘칠 일이다. 서비스를 다양화하거나 값을 낮춰 손님을 모실 날이 머지 않았다. #. 최근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이 화두다. 물가도 수급이다.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공급망 혼란에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까지 더해져 전 세계 물가가 급등하고 있다. 기름값, 음식값 등 안 오른 것이 없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신 통계에 따르면 38개 회원국의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7.7%였다. 걸프전 직전인 1990년 12월 이후 31년 2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회원국 모두 공급이 부족하니 손 쓸 수 없는 일이다. OECD 회원국의 2월 에너지 가격은 26.6%, 식품 가격은 8.6% 급등했다. 우리나라 3월 물가상승률은 10년 만에 처음으로 4%대로 올라섰다. 최근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린 이유다. 연내에도 두 세 번 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이 연말까지 한꺼번에 0.5%포인트(p)를 올리는 '빅스텝'을 통해 1.9%까지 올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우리나라의 현재 기준금리는 연 1.5%다. 미국과의 금리 역전현상에 놓이지 않기 위해선 최소 0.25%p씩 두 번은 올려야 하는 상황. 돈은 금리가 높은 곳으로 흐른다.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국내에 들어왔던 돈이 떠난다. 우리나라가 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제 금리인상은 피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이다. #. 지난 18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됐다. 인원, 영업시간 제한이 사라졌다. 2년 1개월간 이어진 지루한 거리두기가 없어진 것. 흩어져야 사는 시대에서 다시 뭉쳐야 사는 시대가 온 걸까. 일상으로의 회복이다. 마지막까지 버틴 소상공인이 이젠 활짝 웃었으면 좋겠다. 다행히 거리에 사람이 늘었다. 음식점도 활기를 찾고 있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는 젊은이들도 반긴다. 하지만 실제 거리두기 해제 효과는 엇갈릴 전망이다. 잘 되는 집과 안되는 집으로. 손님이 넘쳐 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으로. 음식점의 경우 맛있거나 가성비가 높거나 친절하지 않으면 외면당한다. 다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시작된 셈이다. 휴대폰 주문 대신 직접 방문하는 수요가 늘어날 게 분명하다. 그렇게 되면 배달 전문 음식점이나 배달업계는 수요 감소가 불가피하다. 재택 근무 등으로 오래 갈 것 같았던 호황이 주춤하거나 끝날 수도 있다. 세상엔 빛과 그림자가 존재한다.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 다음을 준비하거나 상황변화에 대처하지 않으면 주저 앉는다. 골프, 물가, 자영업 모두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존재하는 냉혹한 현실이다. /파이낸스&마켓부장 bluesky3@metroseoul.co.kr

2022-04-21 06:00:15 박승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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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면적 5만평 이상 '지식산업센터' 눈길

1000가구 이상의 대단지 아파트처럼 연면적 16만5000㎡(약 5만평)가 넘는 대규모 지식산업센터에 관심이 쏠린다. 기업이 입주하면서 생활권이 형성되는 대규모 지식산업센터의 경우 '랜드마크' 효과로 시세 상승을 기대할 수 있어서다. 관리비가 상대적으로 적고 시세 상승이 기대되는 대단지 아파트처럼 수요자를 유입하는 효과가 있다는 분석이다. 또 대규모 지식산업센터에는 대개 기숙사가 들어서 입주업체의 복지 만족도를 높일 수 있고 높은 층고, 넓은 대지 면적을 활용해 드라이브인, 도어투도어 시스템도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올 상반기에는 수도권에서 연면적 23만여㎡(약 7만평) 안팎의 매머드급 지식산업센터가 공급될 예정이어서 수요자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전철1호선 세마역에서 약 120m 거리인 오산시 세교동 일대에 다음달 분양예정인 '현대프리미어캠퍼스 세마역'은 연면적 23만여㎡ 규모로 국제규격 축구장 32개 크기에 달한다. 최대 층고 6m, 램프폭 7m로 설계해 지상 10층까지 대형 5톤 트럭도 건물 내부의 호실 앞까지 진입할 수 있다. 전철1호선 군포역 인근에서도 대규모 지식산업센터가 나올 예정이다. 지하 4층, 지상 29층에 연면적 24만여㎡ 규모로 조성되는 '군포 트리아츠' 지식산업센터다. 남양주 다산 지금지구에선 지하 3층, 지상 8층으로 들어서는 연면적 19만여㎡ 규모의 '엠큐브 스퀘어 다산'이 홍보관을 열 예정이다. 고양 덕은지구에서 나오는 '아이에스 동서'도 연면적 19만여㎡로 대규모 지식산업센터로 꼽힌다. 분양 관계자는 "대규모 지식산업센터의 경우 건물 내에서 추가 매매나 임차에 나서는 경우도 생기면서 가치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2022-04-20 11:10:46 박승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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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마트 플랫폼 리테일앤인사이트, 대규모 채용

지역마트 기반 O2O플랫폼 '토마토(TOMATO·Tomorrow Mart Today)' 운영사인 리테일앤인사이트가 대규모 상시 채용을 선언했다. 솔루션 도입 매장 증가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모집 분야는 ▲기획과 마케팅 ▲솔루션 영업 ▲IT기획 및 솔루션 개발 ▲플랫폼 운영 ▲AI-블록체인-빅데이터 등 신기술 분야 연구인력 중심이다. 솔루션 영업의 경우 수도권 외에도 대구·부산·대전·광주 등 주요 지역에 사무실을 오픈하고 현지 인력을 채용할 계획이다. 리테일앤인사이트의 '토마토솔루션'은 클라우드 기반에서 스마트POS·전사적자원관리(ERP)·키오스크·앱이 완벽히 구동되는 IT기술이다. 물류센터 없이 전국 동네마트를 기반으로 1시간 안에 신선식품 배송이 가능한 모델이다. 작년에 토마토솔루션을 출시한 리테일앤인사이트는 현재까지 2000개의 마트에 해당 솔루션을 보급해 2021년 예비 유니콘 기업으로 선정된 바 있다. 리테일앤인사이트 성준경 대표는 "토마토솔루션이 빠르게 확산되는 배경에는 초기부터 IT전문가와 유통 전문가 등 인재들이 합류한 덕분"이라며 "솔루션의 빠른 보급으로 B2C(기업과 소비자 간)플랫폼과 B2B(기업과 기업 간)플랫폼 기반이 갖춰져 현재 90명 수준인 인력을 오는 2023년까지 200명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2022-04-14 09:36:17 박승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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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세계문학 파노라마] <10>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1955년)

'롤리타'는 20세기 문학에서 논란이 된 작품을 거론하면 반드시 포함되는 작품이다. 12살 소녀를 향한 중년 남자의 사랑과 욕망을 담은, 언어의 마술사 블라디미르 나보코프(1899~1977년)의 이 소설은 판매금지를 거쳐 베스트셀러가 돼 '롤리타 콤플렉스'라는 용어를 탄생시켰고, 1967년 스탠리 큐브릭 감독에 의해, 1997년 에이드리언 라인 감독에 의해 두 번 영화로 만들어지는 등 예술과 대중문화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성의 자기결정권의 범위와 문학의 형상화 소아성애와 관련한 논의의 핵심은 성의 자기 결정권인데, 크게 사회학이나 인류학 측면에서 보는 것과 문학 관점에서 보는 두 가지가 있다. 전자의 관점에서는 소아성애가 당연히 무조건 부인돼야 한다. 근대국가의 성립과 함께 개인의 교육과 성 취향이 국가 차원의 시스템과 기준에 맞춰 정비된다. 성인으로 인정하는 나이, 결혼할 수 있는 최소 나이를 국가가 정했다. 과거 개별적인 수준에서 또 개인차에 의해서 어떤 곳은 폭력이 개입하고 어떤 곳에는 권력이 개입하고 어떤 곳에서는 (쌍방의) 자기 결정권이 개입해서 소아성애가 일어났지만, 지금은 공식적으로 또 규범상 금지되었다. 사법체계가 동원되는 획일적 기준을 국가 혹은 사회가 설정하였기에 더는 자기 결정권에 속하지 않게 됐다(근대국가를 벗어나 구조주의의 상대주의 프리즘이 작동하면 논의를 새로 시작해야 한다). 동성애와는 논의 차원이 다르다. 예를 들어 어느 작가가 말했듯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자기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하여도, 소아성애는 결정권 보유나 합의와 무관하게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로 국가 시스템이 공공연하게 결정한 상태에 해당하여 '권리'가 유보된다. 문학에서는 다른 논리가 등장한다. 나보코프는 "더러운 것들과 아름다운 것들이 만나는 지점을 발견하고 싶었는데 찾지 못했다"고 하였다. (근대)국가나 사회 시스템이 아무리 특정한 것을 금지하더라도 문학은 그러한 거대 체계에서 어긋난 양상을 형상화하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소설 속 험버트와 롤리타의 성의 자기 결정권은, 문학에 복무한다는 전제하에서 존재할 수 있다. 험버트가 롤리타의 법률상 아버지이자 보호자로서 법률상 딸인 롤리타와 성적으로 서로 소통하는 상황이 현실이라면 범죄이자 성적 착취이지만, 문학에는 인간 욕망의 그런 양상마저 그려낼 자유가 부여된다. 그런 불편한 것들을 그려낼 때, 불편한 것들을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잘못하면 외설이 되고 잘하면 예술이 된다. 불편한 것들을 보여주면서 인간 욕망이 체계와 부딪혀서 인간의 가치 존엄성 의미 등을 그 마찰 속에서 드러내는 게 아니라, 그저 선정이나 관음, 상업 수준으로 끝나면 외설이고 넘어서면 예술로 불리게 된다. '롤리타'는 혹독한 평가를 거쳐 '넘어선 것'으로 살아 남았다는 게 문학계의 일치된 의견이다. 소아성애를 다룬 외설이 아니라 인간을 탐색한 문학이다. "더러운 것들과 아름다운 것들이 만나는 지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문학의 기능이기도 하면서 결국 우리가 살아갈 때 추구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중년 남자가 롤리타 같은 여자를 사랑하는 일은 확실히 금단의 영역이지만, 문학 밖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고 그게 모두 사랑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문제행위로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자동으로 사랑이 아닌 걸로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인 책임 너머에 존재하는 불완전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인간'마저 부인할 수는 없다. 문학은 이러한 '인간'을 이야기함으로써 인간 존재를 확인하는 다소 불편하고 번거로운 과정을 거친다. ◆자기혐오와 냉소의 살짝 웃기는 분열 소설에서는 소아성애와 근친상간이 겹쳐진다. 롤리타가 근친상간이란 말을 쾌활하게 내뱉는가 하면 작가는 근친상간 대신 근친상간의 패러디라는 말을 쓴다. 사실관계를 따져보면 둘이 피가 안 섞였고 부녀로 생활한 지 한 달이 안 됐기에 명백한 근친상간은 아니다. 근친상간의 구조 안에 소아성애를 끌어들이는 증폭에서, 즉 일종의 유머 또는 거리감에서 자기혐오와 냉소가 뿜어져 나온다. 작품성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해학이 느껴지는 구조와 정교한 문체를 통해 심리적인 기쁨을 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롤리타가 험버트에게 자기라고도 부르고 아빠라고도 부른다. 이중적인 존재로 분열한다고 말해야 하지만, 이게 조금 웃기는 분열이다. 훌륭한 문학에서 이중성 속의 분열은 자신이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어난 괴로운 분열이다. 여기서는 아빠의 역할이라는 가상의 존재와 자기에게 현존한 소아성애가 분열하는 구조여서 이중성이 약간 허위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유를 찾자면 작가의 삶과 살짝 관련되지 싶다. 작가는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이다. 흔히 말하는 신세계와 구세계의 분열이 그에게서 목격된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가 구세계에서도 러시아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19세기 말 20세기 초반에 유럽엔 난민이 넘쳐났다. 그때도 국경 같은 건 명확했지만, 국경 내에서 국민을 통제하는 방식엔 약간 여유가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에 러시아에서 일어난 볼셰비키 혁명으로 쫓겨난 사람들은 러시아 왕족이나 귀족이어서 다른 유형의 난민에 비해 과도적이지만 대우를 받았다. 물론 그렇다 하여도 난민이란 정체성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러시아에서 귀족 혈통으로 자라다가 볼셰비키 혁명을 통해서 자기 조국을 떠난 나보코프는, 유럽에서 다시 한 번 미국으로 넘어가는 이중 난민을 경험한다. 작가 자신의 주변인·경계인의 경험이 작품에 반영되어 험버트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거의 유사하게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망치로 발자크와 고리키와 토마스 만을 부수리라 소설의 효용과 관련하여 나보코프는 '롤리타'에 교훈을 심어놓지 않았다. 외설이 아니지만 반면교사를 만든 것도 아니다. 소아성애와 유사 근친상간 소재의 소설이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는 소설에서 캐릭터의 심리적인 완결성을 구현하는 데에 집중했다. "언젠가는 누군가 망치를 들고 나타나서 발자크와 고리키와 토마스 만을 힘차게 때려 부수리라." 작가의 이 말은 소위 리얼리즘으로 추앙받는 작가들을 '심리적인 것'으로 넘어설 수 있다는 생각을 표현했다. 타협해서, 문학의 망치는 발자크와 고리키와 토마스만의 망치만이 있는 것이 아니며, 나보코프의 망치도 있다라고 말해도 좋겠다. '롤리타'를 두고 포스트모더니즘을 많이 거론한다. 발간시기(1955년)로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운위하기에 조금 빠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서막이라고 할까. 기술 방식에서 소위 '메타'적인 게 많이 나타난다. 소설에 작가가 끼어들어서 독자한테 말을 걸고, 괄호 치고 엉뚱한 얘기도 한다. 현실과 픽션 사이의 구분을 흐트러뜨리면서 서사적인 흐름을 방해하고 분열시키는 것이 아마 포스트모더니즘 기법에 해당할 것이다. 변호사의 서문과 나중에 그것을 뒤집는 작가의 글을 붙이는 소설의 구성 방법도 전통적이지 않고, 의도하지 않았을 포스트모더니즘 효과를 거둔다. ◆예술이라는 피난처 험버트와 롤리타의 (일방적인, 혹은 위계에 의한?) 사랑의 도피는 롤리타의 도주로 막을 내린다. 3년 추적 끝에 험버트는 퀼티라는 사람으로 밝혀지는 연적을 찾아내어 롤리타를 가로챈 벌(?)로 그를 살해하고 자신은 투옥된다. 인생을 롤리타에게 쏟아부은 험버트는 더는 님펫이 아닌 롤리타로부터 판정을 받는다. 롤리타는 "그 사람은 내 가슴에 상처를 남겼고 아저씨는 내 인생에 상처를 남겼을 뿐"이라고 말한다. 씁쓸하고 아름답지 않은 현실의 확인임이 분명한 이 판정이 험버트에게 무슨 의미일까. 한참 시간이 지나서 뜬금없이 연적을 죽이는 것만이 험버트에게 그의 사랑의 무게를 입증하는 유일한 방도였을까. 액션 영화에서 나타나듯 깔끔한 억지스러움 대신, 약간 코믹하고 더 현실감 나는 느낌으로 이 장면이 그려진다. 그들은 초라하게 씩씩대고 싸우며 결투다운 결투를 해내지 못한다. 총을 잘 쏘지도 못하는 가운데 어렵사리 도달한 찌질한 결말을 통해 험버트는 무엇인가를 증명해 내었다고 하겠다. 그것이 사랑일까, 인생일까, 아무것도 아닐까. "예술이라는 피난처를 떠올린다. 너와 내가 함께 불멸을 누리는 길은 이것뿐이구나, 나의 롤리타"라는 소설 속 대사는, 결국 애초의 논의, 즉 문학의 현실개입을 소환한다. 소설에서 험버트가 한 말이지만 험버트의 얘기가 아니라 작가가 롤리타와 험버트라는 사람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통해 불멸의 예술적 성취를 이루는 길이 이 소설이라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영어 소설 중 가장 유명한 도입부로 알려진 '롤리타'의 첫 문장을 기억하는 게 나쁘지 않겠다. 결말은 어차피 해피엔딩일 수 없었다. "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롤―리―타. 세 번 입천장에서 이를 톡톡 치며 세 단계의 여행을 하는 혀끝. 롤. 리. 타. 그녀는 로, 아침에는 한쪽 양말을 신고 서 있는 사 피트 십 인치의 평범한 로. 그녀는 바지를 입으면 롤라였다. 학교에서는 돌리. 서류상으로는 돌로레스. 그러나 내 품안에서는 언제나 롤리타였다."(민음사 번역본) /안치용·인문학자 겸 영화평론가(ESG연구소장)

2022-04-14 08:58:37 박승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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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외곽순환 순차 개통…지식산업센터 외연 커질 듯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 경기 남부권 구간이 지난달 말부터 잇따라 개통되면서 지식산업센터 시장에도 지형변화가 예상된다. 오산~이천 등 연내에 3개 구간이 개통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인근에 활성화돼 있는 지식산업센터가 제2순환고속도로 개통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른 동탄, 오산 등으로 외연이 확장되고 있다.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는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외곽으로 총 263㎞를 11개 구간별로 공사 중이다. 동탄~봉담, 봉담~송산, 송산~안산, 인천~김포에 이어 경기 남부권 3개 구간이 연내 개통된다. 이 가운데 화성 동탄신도시와 오산시에서 용인을 거쳐 경기 광주시 곤지암을 잇는 이천~오산 구간이 착공 5년 만에 지난달 21일 개통됐다. 경부고속도로 정체구간을 거치지 않아도 돼 통행시간은 기존 65분에서 33분으로 단축된다. 이천~오산에 이어 화도~양평구간이 오는 6월 개통 예정이며 안산~인천 구간 가운데 안산~시화MTV(멀티테크노밸리) 구간도 올해 안에 차량 운행이 시작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경기 남부권인 시화MTV~안산~송산~봉담~오산~이천을 잇는 구간(79.6㎞)이 연결된다"며 "물류비용 절감효과가 예상되면서 교통요지에 지식산업센터 공급이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에서 동탄~봉담 구간이 가장 빠른 2009년 개통돼 동탄신도시에 지식산업센터가 대거 공급된데 이어 이번에 통행이 시작된 이천~오산 구간 가까이에서도 지식산업센터가 조성되기 시작한다. 이천~오산 구간의 북오산IC에서 자동차로 약 5분 거리인 전철1호선 세마역 인근에 들어서는 '현대프리미어캠퍼스 세마역' 지식산업센터가 대표적이다. 분양 관계자는 "단지에서 1국도가 가깝고 북오산IC에서 동쪽으로 약 3㎞ 거리인 동탄나들목을 통해 경부고속도로와 연결된다"며 "대형 트럭을 이용한 물류수송에도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2022-04-11 11:16:07 박승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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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덕의 냉정과 열정사이] 자율주행과 가상자산

#. 돈과 시간, 공간을 재편할 '자율 주행차'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실제 상용화는 가깝지 않지만 미래의 현실이다. 다만 시간의 문제다. 일부에선 자율자동차의 부작용을 우려한다. 경로 조작을 통한 물품 탈취, 고의적인 교통사고 유발, 운송직 일자리 감소, 마약 등 위험물 운반 등이 예상된다. 그렇더라도 자율 주행차 연구가 멈출 개연성은 낮다. 딥테크 전문가인 에릭 레드먼드는 '앞으로 10년 부의 거대 물결이 온다'란 책에서 자율 주행차가 연평균 130만명(전 세계 기준)에 달하는 교통사고 사망자를 줄일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려스런 부작용에도 자율 주행의 성공을 확신했다. #. 가상자산(암호화폐) 시장도 마찬가지다.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이미 투자시장이 형성됐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의 '2021년도 하반기 가상자산사업자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가상화폐 거래소에 등록한 사람은 전 국민의 29.5%인 1525만명. 실제 거래 참여자는 경제활동인구의 19.8%인 558만명이었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 시가총액은 지난해 말 기준 55조2000억원. 일평균 거래 규모는 11조3000억원이었다. 지난해 코스피시장 일평균 거래금액인 15조4000억원의 73% 수준이다.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 됐다는 의미다. 그래서일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크게 4가지의 공약을 내놨다. ▲코인 투자 수익 5000만원 비과세 ▲이용자 보호에 초점을 둔 디지털자산 기본법 제정 ▲국내 가상화폐공개(ICO) 허용 ▲대체불가능토큰(NFT) 활성화를 통한 신개념 디지털자산시장 육성 등이다. 현재 가상화폐 양도·대여 소득은 기타소득으로 분류돼 250만원(기본 공제금액)을 초과한 소득에 대해 20% 세율로 세금을 내도록 명시돼 있다. 가상화폐 과세 시기는 내년 1월 예정이다. 반면 주식투자 소득은 금융투자소득으로 분류돼 5000만원까지 공제받는다. 가상화폐 소득과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윤 당선인 측은 가상화폐 소득을 '디지털자산 소득' 등으로 새롭게 신설해 과세할 방침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 우리나라의 가상화폐 시장은 정부보다 시장이 먼저 움직인 측면이 강하다. 정부의 '외면' '무시' 속에 시장이 형성됐다. 가상자산 시장에선 정부에 규제해 달라고 요구할 정도였다. 정부는 부랴부랴 은행연계 실명계좌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금세탁 방지를 위해 특정금융정보법을 통해 지난달 25일부터 트래블룰(가상자산 이전 시 정보 제공 의무)을 시행했다. 국내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그러다 보니 외국인은 국내 시장에서 플레이 할 수 없다. 현재 원화 가상화폐 거래는 국내 거주자만이 가능하다. 시장에선 외국인의 국내 시장 참여를 원한다. 외국인이 국내 시장에서 거래하면 시장이 커질 수 있다는 것. 물론 자금세탁 등 불법거래를 막을 장치가 필요하다. 안전장치를 마련해 그들이 뛰어 놀 수 있게 하면 된다. 힘들거나 방해되는 일이 있더라도 할 일은 마땅히 해야 한다는 뜻으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라는 속담이 있다. 외국인 투자자가 무서워 '쇄국정책'을 편다면 우리 자본시장이 그만큼 '작은 경기장'이 될 수밖에 없다. 불법과 투기를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를 통해 그들이 들어오게 해야 한다. 너무 앞선 이야기일까. 갈 길이 멀다. 업계에선 '디지털자산(암호화폐) 기본법'부터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암호화폐 사업 또는 영업을 위한 뚜렷한 법적 근거가 없어서다. 다가올 미래라면 새 정부가 나서야 한다. /파이낸스&마켓부장 bluesky3@metroseoul.co.kr

2022-04-07 06:00:15 박승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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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지속가능금융…기후은행 선도"

전 영란은행 총재이자 UN기후행동 금융특사인 마크 카니는 최근 열린 '아시아 지속가능금융 포럼(ASFF·Asia Sustainable Finance Forum) 2022' 기조연설에서 "지속가능한 미래로 전환하는데 있어 아시아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글래스고 탄소중립 금융연합(GFANZ)은 아시아 지역과의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16조 달러 이상 투자를 통해 탄소중립을 실현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금융위원회가 주최하고 스탠포드대와 KAIST가 주관해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이번 포럼의 주제는 '기후혁신을 위한 다음 과제(Next Steps for Climate Innovation)'였다. 산업은행이 기후은행(Climate Bank)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한 포럼이란 평가가 나왔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개회사에서 "대표 기후은행으로서 인내자본(patient capital)을 지원하고 있으며, 'KDB탄소 넷제로'를 통한 기후기술 육성과 'KDB 탄소스프레드'를 활용한 공정 개선과 글로벌 기후금융을 주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포럼에서 마누엘라 페로 세계은행 부총재는 "장기 기후 위험 지수에 따르면 세계에서 기후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된 20개국 중 6개국이 아태지역에 있다"면서 "세계은행은 배출량이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개발도상국에서 혁신적이고 값비싼 기술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지원정책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 카니 금융특사는 특별대담을 통해 "학술계, 산업계, 금융계, 정부가 통합된 목표로 협업할 때만이 탄소중립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포럼을 준비한 에이커스 위정연 대표는 "UN기후행동 금융특사인 마크 카니와 KDB산업은행 이동걸 회장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기후금융 현안을 논의한 특별대담은 현장 참가자는 물론 온라인으로 참여한 전 세계인으로부터 많은 화제를 모았다"고 설명했다.

2022-04-04 13:29:17 박승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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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세계문학 파노라마] <9>슈테판 츠바이크의 '감정의 혼란'(1927년)

[안치용의 세계문학 파노라마] <9> 슈테판 츠바이크의 '감정의 혼란'(1927년) 어둠의 결함이 아침노을을 보는 호명의 방법은 '감정의 혼란'은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인 1927년에 발표된 독일(어) 소설이다. 19세기 말부터 1차 세계대전 전까지의 '벨에포크(belle 'poque·좋은 시대라는 뜻)'가 끝나고 나치의 득세를 앞두고 힘든 세상의 문이 열릴 때 나온 작품이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태어난 슈테판 츠바이크(1881~1942년)는 독일어를 쓰는 유대인으로 나치의 핍박을 피해 달아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감정의 혼란'은 동성애를 소재로 한 본격 퀴어소설이다. 당시로선 소재면에서 매우 충격적인 소설이었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혼란스러운 주제인 동성애를 나름으로 정색하고 다뤘다. 대표적으로 비슷한 시기인 1930년에 발표된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동성애를 코드로 활용하며 암시한 것과 달리 정공법을 취했다. ◆보편적 성애라는 표현은 가능한가 남자에 대한 남자의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보편적 사랑으로 여겨지는 이성애와 대비시킨다. '감정의 혼란(Verwirrung der Gefuhle)'이라는 제목 자체가 남자 간의 사랑을 불편한 것으로 전제하는 듯하다. 감정으로 인해 분열하고 분열 속에서 실존적 위기를 겪으며 거기서 어떻게든 삶의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인간의 존엄성과 연결된다. '비록' 남자로서 남자를 사랑하지만, 그 모습에서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 보편적인 인간의 한계, 인간의 좌절과 추락을 그린다. 동성애를 소설의 소재로 삼되, 그것이 보편성의 주제로 받아들여지도록 형상화하는 데 역점을 뒀다. 소설의 마지막까지 동성애인지 이성애인지 잘 구분되지 않았다는 독자가 있었다는 사실에서 작가의 노력이 어느 정도 문학적인 성취로 이어진 듯하다. 이 소설에서 어떤 게 특수성이고 어떤 게 보편성인가를 따져보는 다른 관점이 가능한 듯하다. 동성애를 특수성으로 보고 이성애를 보편성으로 보는 상투적인 구분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이성애를, 우리가 많이 목격하고 있기에 어느 정도는 보편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엄밀하게 말해 그저 숫자가 더 많다는 이유만으로 한쪽이 보편성을 갖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소설의 확실한 표명은, 교수에게 주어진 상황이 보편성의 맥락에 처한다는 사실이다. 즉, 교수는 동성애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고, 그런 측면에서 보편적인 자아의 모습을 구현한다. 교수 부인도 이성애자로 그런 (자아의) 성적 성향을 명백히 밝힌다. 소설에서 또 분명한 것은 교수 부부 두 사람의 욕망 실현이 저지된다는 점이다. '보통명사'로 주어진 교수와 교수 부인은 각각 확정된 성적 성향을 지닌 보편적인 자아이다. 그 보편성은 보편성을 실현할 수 없는 불안정한 구조에 던져져 있다. 그것이 그들이 좌절하고 절망하는 이유이고,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이 겪는 문제이기도 하다. 성적 취향이 문제가 아니라 좌절이 문제다. 물론 사회적으로 금지된 교수의 동성애 성향은 분열이라는 근본적 고통의 원인을 제공한다. 주인공 혹은 화자인 롤란트는 자신이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 극 중에서 확신하지 못하고, 따라서 자신의 감정도 확신하지 못한다. 성적 취향에 관한 정체성을 모르거나 확립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성애이든 동성애이든) 교수 부부의 확정된 성 취향이 보편성의 모습이라면 롤란트는 특수성의 단계에 처했다고 말하는 방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고유명사로 보통명사 초점 흐리기 소설의 화자가 분명한 가운데 등장인물의 호명 방법이 다른 점이 흥미롭다. 핵심 등장인물 셋 가운데 고유명사는 하나고 나머지 둘이 보통명사로 처리됐다. 소설은 고유명사의 등장인물을 내세운 1인칭 시점이지만, 변형된 1인칭 시점이라고 해야겠다. 여기서 소설의 제목에 든 '혼란'의 주체가 누구이냐고 묻는다면, 흔히 교수를 '혼란'의 주체로 언급하는데 나의 대답은 롤란트이다. 롤란트만이 고유명사로 호명되었기 때문이다. 고유명사 옆에 보통명사를 배치한다는 것은 카메라 앵글에 비유하여, 고유명사를 포커스인하고 나머지를 죽여버린 것임을 의미한다. '보통명사의 사람'은 책상, 나무 등과 다름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유일한 고유명사(롤란트)가 하나 있다는 것은 주체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그 주체가 갖는 감정의 혼란을 롤란트를 통해 그려냄으로써, 나무 책상과 마찬가지로 교수와 교수 부인을 롤란트의 인생 어느 시점에 존재한 풍경의 구성물로 격하한다는 시사이다. 보통명사로 호명된 두 사람의 '혼란'은 무엇일까. 교수와 교수 부인에게서 표명된 것은 혼란보다는 분열이다. 이들에게 문제는 실현되지 않는 욕망과 그 앞의 좌절이다. 롤란트는 자기가 상대하는 사람에 대한 감정이 동경인지 사랑인지 확인 또는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혼란을 겪는다.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지 없을지 결단할 수 없어서 혼란을 느낀다. 즉 사랑 자체의 판단에 앞서 동성애라는 사랑의 방식 앞에서 망설인다. 교수나 교수 부인은 자신의 감정을 확신한다. 제자를 사랑한다. 제자를 사랑하지만, 사랑해서는 안 될 것 같다고도 생각한다. 감정에 확신이 있지만, 그것을 관계에 집어넣는 것에 대해 두려움과 불안을 품는다. 롤란트가 불확정한 자아의 혼란을 겪었다면 이들은 자아의 분열을 드러냈다. "남자가 남자에게 바치는, 끝끝내 충만할 수 없는 정신의 정열은 대체 어떻게 해야 완전한 실현을 이룰 수 있을까요? 그런 정열은 정신이 그러하듯이, 항상 흐르고는 있지만 영원히 만족될 수 없으며, 완전히 흘러 버릴 수도 없는 그런 것입니다."('감정의 혼란') ◆신낭만주의 교수가 셰익스피어를 사랑하는 인물로 그려진 것과 관련해서 생각을 밀고 나갈 영역이 있다. 소설이 발표될 무렵 독일을 중심으로 융성한 문예사조를 신낭만주의라고 부른다. 낭만주의는 역사에서 반복해서 나타났다. 보편적인 정신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낭만주의라는 말을 쓰는가 하면 특정한 문학이나 예술, 정신의 흐름을 지칭하기도 한다. 후자 의미의 낭만주의는 서구에서 두 번 정도 등장한다. 처음에는 고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낭만주의가 나오는데, 인간 이성의 지배를 선언한 계몽주의를 반대하며 인간의 주체성과 존엄성을 새로운 방식으로 강력하게 요청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다음에 사실주의(나아가 자연주의까지)가 등장하고 다시 이것의 반동으로 새롭게 나타난 낭만주의는, 당시의 과학적 발견, 과학적 합리주의가 인간의 이성을 과하게 강조하고, 이성 외의 측면을 도외시한 것을 비판한다. 신낭만주의다. 신낭만주의는 표현주의 및 인상주의와 연결된다. 크게 보아 신낭만주의 흐름에 위치한 이 소설에서 셰익스피어는 주요한 모티브로 언급된다. 왜 하필 셰익스피어일까. 고전주의는 그리스·로마를 중시하고 낭만주의는 고전주의의 그러한 태도에서 떠난다. 소설에서 계속 셰익스피어를 얘기하는 교수를 중심으로 논의해 보자. 고대 그리스에서 말하는 비극의 주인공은 숭고한 사람이고, 본인에게서 비롯되지 않은, 운명 같은 자신 바깥의 요인으로 인한 결함 아닌 결함 때문에 고통받는다. 교수는 동성애 성향과 관련해서 자신에게서 비롯된 결함인지 아닌지 추정하기 힘든 '결함'을 갖고 있어서 그리스적이지 않고 고전적이지도 않다. 동성애 성향 자체가 인간의 결함을 의미한다는 뜻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적 시선이 그랬다는 말이다. 당시의 규범으론 그것은 운명이 아니라 개인의 '결함'이었다. 그리스가 숭고함의 결함을 이야기하는 반면 '감정의 혼란'에서는 어둠의 결함을 말한다. 분열을 일상적으로 수용하며 자기의 어둠까지 안고 살아가고, 자신의 욕망이 부정당한 상황에서도 새로운 상황에 부딪혀 부질없는 희망을 품는다. 그리스의 고전문학과 비교하여 셰익스피어 문학에 (현대의 관점에서) 대중성이 자리한다고 할 때 희망이 없고 자신을 부정해야 하지만 그래도 새로운 희망을 계속 품는 분열된 모습을 그리기 위해서는 그리스 비극보다는 셰익스피어의 대중적인 비극의 성격이 더 잘 부합하지 않았을까. 글쓰기와 관련해서 예컨대 프랑수아즈 사강 같은 프랑스 작가가 사랑을 감각적이고 놀라운 표현으로 그렸다면, 츠바이크는 보다 본질적이고 공감력이 큰 표현을 쓴다. 연애나 만남의 결정적인 장면을 일상적인 구성을 통해 잘 드러내어, 말하자면 예로든 사강에 비해 감각적인 면이 좀 떨어지지만 보편적인 공감을 끌어내는 데에는 더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흔히 운위되는 '독일 문학'과는 거리가 느껴져 적어도 이 소설만으로는 일도양단으로 오히려 프랑스 문학에 더 가까워 보인다. 모종의 편견이지만 '독일 문학'은 보통 '생생(vivid)'하지 않고 흐릿하며 영화화보다는 낭송에 더 어울릴 것 같다. '감정의 혼란'은 소설을 읽을 때 영화로 보는듯하다. 소설 속 등장인물의 감정이 뚜렷하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휴고 폰 호프만슈탈 등 신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작가 츠바이크는 전기 작가로 유명하다. "자유 의지와 맑은 정신으로" 아내와 함께 자살을 결행함으로써 주변인으로 죽었다. 브라질에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고향에서 버려진 난민으로 삶을 마감했다. "여러분은 이 길고 어두운 밤 뒤에 마침내 아침노을이 떠오르는 것을 보시길 빕니다. 성급한 사나이는 먼저 떠나가겠습니다"는 유서를 남긴 자유주의자의 소설 '감정의 혼란'은 혼란과 분열을 얘기하지만 종국엔 자유를 말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안치용·인문학자 겸 영화평론가(ESG연구소장)

2022-03-31 10:27:00 박승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