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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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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세계문학 파노라마] <18> 헤르타 뮐러의 '마음짐승'(1994년)

[안치용의 세계문학 파노라마] <18> 헤르타 뮐러의 '마음짐승'(1994년) -슬픈 창에서 내다보는 공포의 풍경 200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헤르타 뮐러(1953~)의 '마음 짐승'은 작가의 개인사가 녹아 들어간 자전적 소설로 독재자 니콜라예 차우셰스쿠 지배 시기 세상을 떠난 작가의 두 친구를 기린 작품이다. 뮐러는 차우셰스쿠의 24년 철권통치가 막내리기 2년 전인 1987년 독일로 망명했다. ◆차우셰스쿠 독재시기 개인적 비망록 뮐러는 독일어를 모국어처럼 쓰는 루마니아 사람이다. 프란츠 카프카가 독일어를 쓰는 체코인이었던 것과 비슷하다. 거대한 세력들이 각축한 중부 유럽에서 민족적 정체성과 국적의 불일치는 흔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루마니아는 로마에서 떠나온 로마 둔전병의 후예라는 상징성을 지닌다. 적잖은 세월이 흐른 데다 그곳이 민족 교류가 활발한 곳이어서 '로마의 후예'라는 말이 실질적 의미를 지니지는 않겠지만 따지고 들면 루마니아인은 원천적으로 고향을 떠난 사람인 셈이다. 뮐러의 가계는 조금 더 복잡해진다. 루마니아라는 근대국가에서 독일어를 쓰는 루마니아의 소수민족에 속한다. 그렇다고 뮐러를 독일인으로 볼 수는 없다. 자전 소설 '마음짐승'이 드러내듯 그는 루마니아인의 정체성을 갖는다. 물론 히틀러가 발호할 때 뮐러의 아버지가 나치에 부역한 데는 아무래도 소위 민족이라는 게 영향을 미치긴 했겠지만 그때는 민족과 국가의 개념이 혼란에 빠진 격동의 시기였다. 아버지가 독일어권에 속하는 아리안족의 이등 국민으로서 나치 행세한 것은 어머니가 (루마니아인이 아닌) 독일인이라는 이유로 옛 소련의 강제노역에 끌려가 희생한 것과 충분히 상쇄된다. 뮐러의 가계와 자신의 삶에 현대사의 비극이 이렇게 고스란히 투영됐다. 전체주의를 비판한 이 책을 읽을 땐 그러한 시대 배경을 참작해야 한다.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방식에서 이 책은 일인칭 시점을 취했다. '1984'와 다르다. '마음짐승'은 철저하게 역사적 관점에서 역사적인 사건에 휘말린 인물이 당대를 대표해서 관찰하고 기록한 결과이다. 역사성이 있지만, 개인성도 강하게 드러난다. 이 소설이 가진 강점이자 한계이다. 전체주의의 폐해를 확고하게 지적한 '1984'가 오세아니라는 가상의 국가를 배경으로 보편적 역사성의 시야를 표명한 것과는 비판 방식에서 온도 차이 같은 게 느껴진다. '마음짐승'은 20세기 특정 시기 루마니아의 특정 인물들이 겪은 이야기이다. '마음짐승'이 표현한 전체주의 폭압은, 예민한 청년들을 자살로 내모는 등 공포스러운 것이지만, 실제로 차우셰스쿠 정권에서 전체주의 국가기구를 통해 자행된 폭력은 소설보다 훨씬 잔혹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전체주의는 체계적이고 만연한 공포 시스템을 통해서 사회를 작동하지만, 그 공포 시스템에는 항상 구체적인 폭력의 본보기가 제시돼야 한다. 폭력의 본보기가 일상적으로 구축되어야 하고 이것에 근거한 공포와 복속의 시스템이 가동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그랬고 루마니아도 그랬을 터이다. '마음짐승'은 당시 서독으로 망명한 뮐러처럼 탈출에 성공한 사람들의 기록이 주가 되기에 전체주의의 폭력성이 낮은 수위로 묘사된다. 현실은 낮은 수위와 높은 수위의 억압이 공존하는 것일 텐데, 작가는 저지대의 풍경을 통해 그 뒤의 비극적 풍경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파시즘과 같은 독재체제가 국가를 운영할 때는 이데올로기적인 국가기구와 폭력적인 국가기구를 같이 작동하는데 두 기구는 나날이 거대 체계로 발전한다. 체제가 개인들을 통제하는 구조에서 국가기구들을 최고 압력으로 올리면 개인은 압착돼 소멸한다. 전체가 하나가 되고 하나가 전체가 되는 게 전체주의에서 흔히 표방하는 구호이다. 다만 '마음짐승'은 개인이 전체에 맞서 아직은 개인을 주장할 수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어 당시 루마니아의 전체주의가 어쩌면 정점에는 도달하지 않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리바이어던이 아닌 마음 속의 짐승 제목에서도 이런 생각이 든다. '마음짐승'에 해당하는 독일어 '헤르츠티어(Herztier)'는 마음(Herz)과 동물(Tier)을 합성했다. 전체주의와 관련해 가장 고전적인 동물은 성서에 연원이 있는 리바이어던이다. 리바이어던은 외부에 실재하는 거대 짐승이다. 제목의 'Herztier'는 심지어 전체주의에 복무한 소설 속 경감에게도 존재한다. '마음'은 개인의 영역인만큼 'Herztier' 또한 모든 개인이 다 갖는다. 작가는 리바이어던을 지목하지 않고 개인 영역의 'Herztier'를 다루는 형상화 전략을 선택했다. 그러다 보니 사회를 전체적이고 전면적으로 지배해서 개인들이 전혀 숨을 쉬지 못하는 공포스러운 전체주의 상황보다는, 오히려 혼란과 불안 속에 빠진 현대인의 실존적 모습과 흡사하다. 작가의 강점은 응축된 시정과 산문의 진솔함이다. 시의 기본은 비유이다. 시라는 건 디테일을 무시함으로써 디테일을 강하게 만드는가 하면 디테일을 강화함으로써 추상을 강화하기도 한다. 이런 두 경향을 결합해, 뚜렷한 스토리라인 곳곳에다 심리적인 묘사나 의식의 흐름을 적절하게 배치한다. 낮은 수위로 포착한 전체주의가 분위기로는, 이런 효과 때문에 더 공포스럽게 드러날 수 있다. 드러난 사실보다 풍기는 이미지가 훨씬 더 무시무시하다. 괴물과 싸우는데, 괴물이 끝까지 안 보이고 주변에 안개가 쌓여 있는 영화 '미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괴물 자체가 무섭지만 괴물의 정체를 몰라서 사람들은 점점 더 미쳐간다. 뮐러가 이 소설에서 전체주의의 공포를 그리는 방식은 '미스트'가 공포를 그리는 방식과 비슷하다. 공포의 시적 전개이다. 공포의 산문적 전개와 분명 다르다. 내용상으로는 전통적인 소설에 가깝다. '나'랑 같이 기숙사 생활을 하던 롤라가 무슨 사건에 휘말려서 자살한다. 자살할 때 '나'의 허리띠를 이용함으로써 롤라와 주인공 간의 연결고리가 생긴다. 이어 친구들이 나오고 그걸 계기로 전체주의와 대립 전선이 생기고, 친구들과 자기가 해고당하고, 누구는 거기서 죽고 누구는 떠나서 죽고, 그다음에 살아남은 자들이 얘기하는 구성이다. 이야기가 단순하기에 작가는 시공간의 전통적인 배열을 의미 단위별로 쪼갠다. 쪼개서 섞어버린다. 중요한 것은 섞는 기술이다. 중간에 이미 결론이 나와 있지만 어색하지 않다. 이 책은 전통적인 수미쌍관 구조로 앞과 끝이 연결된다. 흐름의 연결이 어색하면서도 자연스럽다. 작가가 하려는 말은 소설의 첫 문장 "침묵하면 불편해지고 말을 하면 우스워진다"에 함축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침묵하라는 비트겐슈타인의 제안이 유효하지 않은 게,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도무지 침묵할 수 없는 상황에 소설의 인물들이 놓여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자랑스럽지 않다.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어느 정도 사악함을 갖게 되기에. ◆작가의 고통을 외면할 우회로가 없다 이 소설을 두고 여백이 많다고들 한다. 내가 판단하기에 오히려 꽉 차 있기에 그런 느낌이 들지 싶다. '마음짐승'을 산문으로만 보면 여백이 많다. 산문의 측면에서 여백이 있게 끌고 나가면서 산문 곳곳에 시적인 서정을 꽉꽉 채워놨다. 따라서 여백이 많은 것 같으면서 동시에 꽉 차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소설이 어렵게 받아들여지고 전개의 미적거림이란 착시가 생긴다. 산문으로만 보면 시작과 끝이 너무 간명하다. 시적 할큄으로 꾸역꾸역 산문에 생채기를 내어놓았기에 독자는 텍스트를 뚫고 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작가의 고통을 독자가 외면할만한 우회로가 없다. 그렇게 결국 'Herztier'라는 것이 결국 뭐냐는 문제에 도달하면서 그게 누구나 가진 것으로 정의된다. 사회에 존재하는, 인간 외부에 존재하는 거악은 아니고, 누구나 마음 속에 가진 짐승인데, 그 짐승은 사회적으로 연대해서 공포 이외의 것을 만들기도 하기에 짐승의 야수성을 잘 극복하는 한 어쩌면 인간다움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끝까지 인간의 존엄한 생존을 기약할 수도 있다. 그러나 루마니아의 그 시기엔 그런 일이 가능하지 않았다. 철학적으로는 상당히 복고적인 성향이다. 현대 소설이지만 여전히 20세기 초중반의 틀에서 인간을 파악한다는 한계가 지적될 법하다. 특정 역사의 특정 개인의 삶에 집착하였기에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탁월한 소설인 이유는 철저하게 1인칭 시점에 입각해서 작가 자신이 던져진 역사적 국면에서 그 시공의 비극과 공포를 자신이 가진 산문적이고 운문적인 작가의 모든 역량을 투입해서 돌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역사소설이 아니라서 '1984'와 다른 전체주의를 다루는 방식의 독특한 성취를 해내었다. 내재적이고 동시에 초월적이란 뜻을 갖는 수학용어 '초한적'이란 표현을 쓰는데, 종교학이나 신학에서도 사용할 법한 이 어휘는 "초한적이라는 건 사라지지 않는 창문이야" 같은 예문에서 활용된다. 소설에서 친구는 이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누군가 뛰어내려서 그 너머로 가버리는 창으로 '초한적'이 구체화한다. 간단하게 얘기하면 이 소설은 그러한 특정한 창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본다. 특정한 창이 가진 명확한 전망이 소설에는 있다. 특정한 창이 가진 한계 또한 있다. 조감을 못 한다. 그러니 조감도를 못 그린다. 특정한 창을 통해서 세상을 보면 원근법과 초점이 분명해진다. 어느 창을 보느냐에 따라서 풍경이 달라진다. 어떤 곳에 있는 창에서 어떤 각도로 내려다보느냐 이런 것들이 그 창에서 보이는 풍경의 품질을 좌우한다. 이 소설은 뮐러라는 작가의 '초한적' 창이다. /안치용·인문학자 겸 영화평론가(ESG연구소장)

2022-06-30 13:16:24 박승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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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테일앤인사이트, '한살림' 차세대 마트솔루션 구축

식품유통 솔루션업체인 리테일앤인사이트는 한살림소비자생활협동조합연합회(이하 한살림)가 추진하는 차세대 마트솔루션을 구축한다고 24일 밝혔다. '한살림'은 조합으로 출발해 중간 유통과정을 줄여 수익성 확보에 성공하고, 지난 2021년 조사 결과 유기농 유통업체 1위를 기록한 우리나라 대표 생협이다. 성장세를 보이는 유기농 신선식품 시장에서 품질과 가격 모두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기반의 온-오프라인 통합 시스템이 필요했다. 이번 사업을 수주한 리테일앤인사이트는 평균 30여명의 개발자들이 1년 이상 투입되는 프로젝트인 만큼 산지부터 물류센터, 매장, 고객에 이르는 전체 프로세스의 혁신을 통해 한살림의 유통-물류 경쟁력을 개선할 예정이다. 한살림의 차세대 프로젝트는 산지 관리, 유통기한 및 이력 관리 등 친환경 식품 특성상 관리 요소가 많고, 산지부터 240여개 매장 간 공급망관리(SCM) 실시간 연동과 온-오프라인 통합을 위한 기반 구축이 필요하다. 리테일앤인사이트 김상일 ICT본부장은 "리테일앤인사이트가 보유한 유통 분야 최고의 IT기술력과 핵심 인력을 토대로 식품유통 솔루션 및 플랫폼으로 도약하려는 목표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2022-06-24 09:15:20 박승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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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세계문학 파노라마] <17>외젠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1948년)

[안치용의 세계문학 파노라마] <17> 외젠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1948년) -대머리 여가수의 단골 미용실은 어디일까 외젠 이오네스코(1909~1994년)의 희곡 '대머리 여가수'의 주인공은 대머리 여가수일까. 아니다. 아예 등장인물이 아니다. 대머리 여가수는 머리카락을 어떻게 손질할까. "그녀는 항상 같은 식으로 머리를 다듬는다."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는 등장인물, 언어, 형식의 모든 면에서 기존 연극의 문법을 파괴한 이른바 부조리극 또는 반연극의 효시가 된 작품이다. '대머리'와 '여가수'를 결합한 제목 자체가 작가의 지향을 드러낸다. ◆반연극 '대머리 여가수'는 1950년 초연(初演)하면서 '반연극(antitheatre)'이란 부제를 내걸어 제목에서 한 걸음 더 나가 '반(反)'이란 목표를 뚜렷이 했다. '안티(anti)'는 즉자에 대한 반동으로 나온 대자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둘은 같은 지평에 속한다. 만일 누군가가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보기에 따라 이미 이해하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작가가) 쓴 글이다. 소설 장르에서 등장한 반소설도 마찬가지이다.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이것이 이해의 지평 위에 확고히 서 있음에 관한 작가의 선언이다. 통상적으로 픽션을 정의할 때 현실에 있을 법한 가상의 현실이라고 한다. 사실 같은 비(非)사실이 픽션이고, 비사실 같지만 엄연한 사실인 것을 용어 자체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면 '안티픽션'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반연극이다. 의미의 지평은 확대된다. 의미가 통하지 않는 말을 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 앞서 설명한 대로 의미가 통하지 않는 말을 하니까 말인 거다. 의미가 통하게 말을 하든, 의미가 통하지 않게 말을 하든, 두 방식에서 모두 말을 하고 있다. 보편적인 논리의 체계가 작동한 시간과 공간, 등장인물을 조각내어 연결하면 '대머리 여가수'와 흡사한 결과물을 마주한다. A는 지금 회사에서 B에게 말하는데, 하는 말은 A가 1년 전에 C에게 술집에서 한 말이며, A와 '대화'하는 B는 1년 전의 주제와 지금의 주제를 번갈아 가며 말한다고 상상해 보면 된다. 기존의 전통 서사가 뉴턴적이라면, 반연극은 아이슈타인적이다. 많이 달라 보이지만 어쨌든 둘 다 세계에 관해 얘기한다는 게 공통점이다. 동음이의어와 각운이 활용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얘기해 볼 수 있다. 동음이의어를 사용한 언어의 유희인 'pun'은 기표와 기의가 분열한 상태로, 또는 분열함으로써 의미를 확장하고 생산한다. 각운이라는 건 한 단어의 끄트머리에다 쓴 사소한 운으로, 원초적인 울림에 호소하는 방식이다. 굳이 따지고 들자면 동음이의어는 의미의 무의미를 찾는 방식이고, 각운은 무의미의 의미를 찾는 방식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선취라기보다는 이 작품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포스트모던과 비슷한 외양을 취하지만 본질은 다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의미의 지평에서 (어디로?) 뛰어내리려고 한다면 반연극은 이 지평에서 (결코 알 수 없는) 의미에 집착한다. 반연극ㆍ반소설이나 부조리극, 실존주의 소설 등은 모더니즘의 한계를 마치 풍선이 터뜨릴 듯이 불어대며 도착적으로 확장할 뿐이다. 초현실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을 도식적으로 비교하면 초현실주의가 현실을 탈피하는 탈(脫)대상이라면, 포스트모더니즘은 탈(脫)주체이다. 초현실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이 드러나는 양상은 비슷할 수 있지만, 인식 체계는 다르다. '대머리 여가수'에서 이오네스코는 당연히 포스트모더니즘을 의식하지 않았다. 선행한 사조인 초현실주의는 참조하면서 초현실주의 표현의 부조리한 현상과 실존주의의 문제의식을 연관 지어 연극적인 양식으로 정형화하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탈(脫)대상화하면서 주체가 과잉되고 그러한 과정이 악순환에 빠져들며 결국 주체가 전복되는 상황 또한 그리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실존조의의 흔적 전통적인 서구의 형이상학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합목적론이 강세다. 세상은 인과관계로 이어지면서 목적에 맞춰서 구성돼 있다고 가정하고 맹목적으로 그런 생각을 수용하는 경향은 근대에 이르러 도전받는다. 데이비드 흄은 우리가 인과(因果)를 알 수 없고 인접(隣接)만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인접의 반복을 통해서 습관적으로 그것을 인과로 받아들일 뿐이다. 사실 엄격하게 또 정확하게 인과를 파악할 수는 없다. 인과를 추정하거나 인과라고 명명하는 것일 뿐이다. 목적론적 세계관에서는 우리의 세계를 합목적의 세계라고 일단 가정한다. 우리가 가정한 인과를 (우리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실제 인과라고 받아들이면서 세계 속에서 살고, 거기서 삶의 가치나 의미를 추구한다.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세계를 완전히 부인하는 것은 세계에서 사는 한 불가능하다.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 역시 완전한 부인으로 가지는 않았고, 목적론적인 기존 세계를 흄 식의 온건한 비판을 수용해 언어학적으로 풀어놓은 정도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한다고들 하지만, 사실은 다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개념이고, 이해를 못 했다는 이해에까지 도달할 수 있는 문장으로 작성돼 있기에 온건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를 '질서'라는 관점에서 코스모스라고 하고 코스모스 전에는 카오스가 있었다. 코스모스에 사는 우리에겐 코스모스가 카오스보다 좋다는 우열의 판단이 암묵적으로 존재한다. 카오스를 흔히 '무질서'로 이해하고 무질서를 정돈하여 질서를 세웠다고 보기 때문이다. 동시에 카오스는 무질서가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다른 질서라는 반박이 존재한다. 마치 장미화원과 들꽃이 만발한 들판처럼 코스모스와 카오스는 별개의 논리가 작동하는 별개의 질서라는 생각이다. 이오네스코의 세계는 카오스적인 세계를 전망하였을까. 아니다. 그는 코스모스적인 세계에 머물며 그 세계를 부분적으로 비틀어서 얘기하고 있다. 결국 실존주의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 책에 등장한 초인종 일화. "결론적으로 초인종이 울려도 (문밖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거군요"라고 대사는 형식논리학의 견지에서는 옳지 않다. 어떨 때는 누가 있고 어떨 때는 아무도 없다고 하는 건 순차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동시에 문 앞에 (초인종을 누른) 누가 있으면서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형식논리학의 질서를 파괴하는 듯 하지만 그렇다고 세계 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은 아니다. 그러나 이오네스코에게는 어쨌든 초인종을 누군 누군가가 문밖에 있다. 실존주의라는 건 잘살고 싶어서 안달하는 모습이다. 실존주의는 허무주의가 아니다. 실존의 의미는 결국 삶의 긍정과 반항을 통한 자기 존재의 확인이고, 유명하게 인용되는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의 장면처럼 칸트적인 물자체를 보면서 자아를 각성하는 모습이다. 이성적인 인간의 호소와 불합리한 세계의 침묵 사이에서 발생하는 부조리 앞에서 인간은 그 부조리에 반항하면서 삶을 꾸려나간다고 카뮈는 설명한다. 하나의 고정적인 사건이 아니라 인간의 호소와 세계의 침묵 사이에서 발생하는 관계가 부조리이다. 카뮈에게 부조리에 대처하는 방법은 반항이다. 부조리 앞에서도 끊임없이 주어진 바위을 밀고 언덕길을 올라갔다가, 고개를 넘어봤자 내려가면 다시 밀어야 할 줄을 알면서도 기꺼이 다시 밀 각오를 하는 것이 반항이다. '대머리 여가수'에서도 동일한 정조를 확인할 수 있다. ◆삶에 대한 집착과 애착 인간이 그냥 세계 앞에서 짜부라지는 게 아니라 신도 죽었고 뭐가 있는지 혹은 뭐가 들었는지 정확하게 모르는 세계 앞에서 인간이 호소한다. 호소하는데도 세계는 침묵할 뿐이다. 호소와 침묵 사이에서 부조리가 출현한다. 호소가 없으면 부조리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 부조리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삶의 모습이다. 실존주의는 부조리할 수밖에 없다. 실존주의는 부조리를 극복하지 않는다. 이 작품 속의 인물들은 실존적인 삶을 모색하고 있다. 형식논리학의 파괴와 주체의 파괴가 동시에 나타난 장면. 등장인물인 메리가 갑자기 "전 이분의 소방 호스였어요"라고 말한다. 인간의 물화가 너무 자연스럽다. 제목은 조금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 무의미의 의미를 통해서 의미가 무의미해지는 순환 구조가 발생하듯이, 대머리 여가수도 작가가 신경 쓴 제목임이 분명하다. 대머리 여가수를 형용 모순이라고 설명하는 사람이 있다. 그 당시의 여자는 대머리일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대머리 여가수는 형용 모순이고, 형용 모순인 사건을 갑자기 지칭하면서, 형용 모순의 항상성을 답답해하고 이러한 구조 속에서 그 모순을 상징화하며 제목으로 삼았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지금은 대머리 여가수, 머리를 빡빡 깎은 여자가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여자가 없었기 때문에 해석이 달라진다. 지금이라면 대머리 여가수라는 말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핑크 코끼리는 요즘 다이어트 중인가요? 지금에서야 이런 제목을 썼어도 무방하겠다. 대화가 단절된 혹은 일방의 대화만이 있는 인간관계, 인간의 물화와 소외, 일상 표면의 항상성과 이면의 불안이 우스꽝스러운 비극으로 표현된 작품이다. /안치용·인문학자 겸 영화평론가(ESG연구소장)

2022-06-23 14:58:35 박승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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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덕의 냉정과 열정사이] 정책의 딜레마

#. 딜레마(dilemma). 선택해야 할 길은 두 가지 중 하나로 정해져 있는데, 그 어느 쪽을 선택해도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되는 곤란한 상황이다. 진퇴양난, 궁지와 비슷하다. 윤석열정부가 지난 21일 내놓은 첫 부동산대책 가운데 분양가상한제 개편안이 그렇다. 추가 인상 비용을 분양가에 반영해 민간의 주택공급을 빠르게 하겠다는 취지였다. 건설업계는 대책을 기다리며 분양을 미뤄왔다. 하지만 정부 대책은 분상제 폐지는 커녕 분상제의 핵심인 택지비 산정방식도 빠졌다. 정부 개편안으로 새 아파트 분양가가 최대 4.0% 오를 것이란 분석이다. 이는 지난달 한국은행이 전망한 연간 물가상승률(4.5%)에도 미치지 못한다. 민간업체가 공급을 늘릴 유인이 부족하다. 정부 입장에선 분양가를 크게 올리면 실수요자들의 내집마련이 어려워지는 상황이 부담이었을 터. '대장동 1타 강사'로 유명세를 탔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도 묘안이 없었나 보다. 분상제를 폐지하자니 분양가가 턱없이 오를 것이 뻔하다. 그래서 분양가를 찔끔 올릴 수 있게 했다. 시장에선 분양가의 70% 가량을 차지하는 택지비는 놔두고, 미세조정만 했다고 꼬집었다. 향후 250만가구 공급에도 가시밭길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분상제 유지로 아파트 분양시장에선 '로또 청약'이 예상된다. 주변 시세의 80%에서 분양가가 정해지기 때문. 서울에서 신규분양 아파트에 당첨만 되면 아직까지 로또다. #.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금리 상승 시기에 금융소비자의 이자 부담이 가중되지 않도록 금융당국과 금융회사가 함께 협력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같은 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주요 시중은행장과 만난 자리에서 "예대금리 차(대출금리와 예금금리 간 차이)가 확대되면서 은행의 지나친 이익 추구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며 "취약 차주의 금리 조정 폭과 속도를 완화하는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주문했다. 대통령과 금감원장의 일침은 마치 대출금리를 내리라는 '압박'으로 비춰졌다. 금리는 시장에서 결정된다. 은행은 메뉴얼에 따라 금리를 결정한다. 대통령과 금융당국 수장의 발언은 자칫 시장 자율을 해칠 수 있다. 경기침체 등 위기가 오면 은행까지 부실 위험에 노출된다. 물 장사, 쌀 장사를 하는 사람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 목표다. 이자 장사를 하는 은행도 마찬가지다. 시장상황에 따라 시스템으로 금리가 정해진다. 은행 마다 금리가 다른 이유는 각각 조달금리나 자산 운용 방식의 차이 때문이다. 지나친 '관치'는 시장 자율을 해친다. 민간 주도 경제성장을 주문하면서 유독 금융권에는 박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금융시장도 국책은행(산업은행·기업은행·수출입은행)을 제외하면 민간이다. 주주는 대부분 외국인이다. 정부가 민간금융을 제어할 수록 시장은 왜곡된다. #. 집을 짓는 땅 매입 등 땅작업을 하는 시행사는 분양을 해서 이윤을 남겨야 한다. 시공사는 자재가격이 오른 만큼 건축비가 올라야 집을 짓는다. 그렇지 않으면 아파트를 지을 땅도, 시공사도 구할 수 없다. 집값을 잡으면서 공급도 늘려야 하는 정부의 딜레마다. 이자 장사를 하는 은행도 마찬가지다. 주주를 위해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윤 대통령과 이복현 금감원장이 취약계층의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는 취지로 금리 인하를 에둘러 표현했다. 시장 자율 때문에 직설화법으로 금리를 내리라고 할 수 없었다. 분양가상한제, 금리 모두 딜레마다. 어떤 선택을 해도 환영받지 못한다면 시장에 맡기는 정책이 정답이다. /파이낸스&마켓부장 bluesky3@metroseoul.co.kr

2022-06-23 07:05:55 박승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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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告] '100세 플러스 포럼' 시즌2, 7월19일 개최

메트로신문(메트로경제)이 오는 7월 19일(화) 오후 2시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2022 100세 플러스 포럼' 시즌2를 개최한다. 코로나19 사태 진정에도 국내외 경제는 불확실성이 커졌다. 특히 인플레이션에 따른 금리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금리인상기 재테크 전략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메트로신문은 지난 3월에 이어 '100세 시대 재테크 전략'을 모색하는 시즌2 포럼을 준비했다. 이번 시즌2에서는 금리 상승에 따른 주식시장을 전망하고, 100세시대 자산관리 전략을 제시한다. 코로나19 이후 불확실성이 커진 시대에 리스크 관리와 재테크 전략을 모색하는 자리다. 이번 포럼에선 증시 전문가인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반도체 애널리스트인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은퇴준비 전문가인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대표가 알토란 같은 강연을 펼친다. *행사명:2022 메트로 100세 플러스 포럼(시즌2) *주제:금리인상기 주식시장 전망과 100세시대 자산관리 *일시:7월 19일(화) 14:00~17:00(VIP 티타임 13:40~14:00) *장소:서울 명동 은행회관 2층 국제회의실(컨벤션홀) *방식:선착순 현장참가 신청 및 웨비나(온라인으로 진행) *문의 및 참가 신청:(02)721-9826, e-메일 forum@metroseoul.co.kr(사전등록 참가비 무료, 현장등록 5만원) *주최:메트로신문(메트로경제)

2022-06-21 10:15:05 박승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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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우산어린이재단, 신임회장에 황영기 전 금투협회장

아동옹호대표기관인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황영기 전 금융투자협회장을 제10대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신임회장으로 선임했다고 20일 밝혔다. 새 회장의 임기는 오는 8월 1일부터 시작한다. 황영기 신임 회장은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대학교 정치경제대학원(LSE)에서 경제학 재무관리 석사과정을 마쳤다. 이후 삼성증권 대표, 우리금융지주 회장, KB금융지주 회장, 금융투자협회 회장, 법무법인 세종 고문 등을 역임했다. 2020년에는 한미협회 회장으로 양국 간 우호협력을 위해 민간 외교에 앞장섰으며, ESG행복경제연구소 자문위원으로서 'ESG 경영 실천'을 주창하며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선도해 왔다. 특히 서울장학재단 초대 이사장과 한국장학재단 이사를 지내면서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등교육의 기회를 누리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 지원을 펼치며 대한민국 인재양성에 이바지했다. 금융투자협회장 재임기간 중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중증장애인시설 한사랑마을 봉사활동에도 참여하며 기부를 실천하는 등 아동 지원에 나섰다. 제10대 회장 선임을 위해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지난 2월 법인이사회를 통해 회장추천위원회를 구성했으며, 직원 의견도 반영해 전문경영능력 심사 항목을 수립하고 회장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은 후 공정한 심사와 절차를 거쳐 이사회 의결로 최종 선임했다. 차흥봉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대표이사 겸 회장추천위원회 위원장(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5개월간 공정한 인선 과정을 거쳐 다방면에서 뛰어난 능력과 성품을 갖춘 분을 선임했다"면서 "전문 금융인에서 이제는 아동옹호기관의 회장으로,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을 투명하게 이끌며 우리 아이들을 위한 길에 앞장서 주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오는 7월 27일 회장 이·취임식을 가질 예정이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은 이사회에서 선출하며 임기는 3년이다. 2회 연임이 가능하다.

2022-06-20 16:07:58 박승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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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세계문학 파노라마] <16>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1877년)

[안치용의 세계문학 파노라마] <16>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1877년) -도축용 도끼에 잘려나가는 인간의 머리들을 과학으로 그리다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에밀 졸라(1840~1902년)의 소설 '목로주점'은 자체로 훌륭한 문학작품이지만, '목로주점'이란 나무가 들판에 홀로 서 있는 게 아니라 숲을 이루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목로주점'은 '나나', '제르미날' 등과 함께 졸라의 '루공-마카르 총서'에 속하는 소설이다. 이 총서는 루공 가문과 마카르 가문의 후손의 이야기를 20권에 걸친 소설로 구성한 대기획물로 '목로주점'이 총서의 일곱 번째 작품이다. 오노레 드 발자크(1799∼1850년)의 '인간희극'에 비견된다. 물론 그렇다고 '목로주점'을 단독의 예술작품으로 읽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프랑스 제2제정시대의 파리 하층민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소설로, 그 자체로 높은 완성도를 달성했다. ◆사실주의의 주체가 만취하면? 국내에서는 '목로주점'과 '나나'가 유명하다. '나나'가 귀부인, 귀족, 음모, 몰락 등 전형적인 프랑스 소설의 소재를 다루었지만 '목로주점'은 계층 간 사다리를 치워버리고 밑바닥 인생만 집요하게 그리는 방식을 취한다. 사다리 위로 올라간 인물은 이 소설에서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졸라가 적용한 자연주의 방법론 때문이라고 해야겠다. 그는 "자연주의 소설은 과학이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소설에서) 유전과 환경이 인간의 지적이고 감정적 현실에 미치는 영향을 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적인 질서가 상대적으로 온존한 가운데, 존재하되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은 주체가 세계와 조화롭고 자연스럽게 융화하는 것을 고전주의가 그리려고 했다면, 고전주의에 반기를 든 낭만주의는 세계와 불화하는 주체가 세계와 맞서 (없는) 활로를 찾는 구조를 모색한다. 그러려면 당연히 계몽주의의 세례가 있어야 한다. '나'가 세계의 중심이다. 사실주의나 특히 사회주의 문학은, 택일하라면 '나'보다는 세계이다. 세계의 상을 충실하게 그려내려 노력하면서도 사회주의 문학은 낭만주의나 계몽주의를 통해서 발굴된 주체의 가능성을 보듬는다. 세계를 투영함으로써 자아나 주체의 변화를 촉발해서 다시 세계를 개조해 나가려는 욕망 같은 게 사회주의적인 틀이다. 같은 계열로 보이는 자연주의에서는 주체가 다시 희미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세계가 너무 강하다 보니 '나'는 그저 세계의 부속물이 된다. 조화롭지 않고 자연스럽지 않을 뿐이다. 자연주의는 이처럼 신적인 질서를 중심으로 한 고전주의와 기이하게 맞닿아 있다. 졸라의 생각으로 유전은 우리가 어쩌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신적인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환경은 사회적인 영역이 된다. 신적인 영역과 인간적인 영역이 주체에게 각인되고 주체에 영향을 미쳐서 지배당하는 주체의 양태를 표현한 게 자연주의인 셈이다. 사실주의를 계승 혹은 발전시켰다고 하지만 주체는 더 희미해지고 더 허약해진다. 사실주의의 주체가 만취하면 자연주의의 주체가 된다고 비유적으로 말할 수 있다. 졸라가 서 있는 소설론이다. ◆불편한 소설 이 소설은 공화파와 사회주의 언론으로부터는 인민을 모독했다고 공격을 받았고 대문호로 추앙받은 빅토르 위고는 "비참과 불행을 그토록 적나라하게 묘사할 권리가 (소설가에게) 있냐"고 비난했다. 졸라가 이러한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소설을 쓴 이유는 뭘까. 1877년 '목로주점'을 출간하면서 졸라는 서문에서 "나는 스스로를 변호할 생각은 없다. 내 작품이 나를 변호해줄 것이다. '목로주점'은 진실을 담은 작품이고, 거짓말을 하지 않은, 민중의 향기를 머금은 최초의 민중 소설이다"라고 말했다. 가난하고 술에 절었고 폭력이 난무하고 탈출구가 없는 전형적인 도시 하층민의 삶이 가난의 결과냐 아니면 그들이 그러한 인간이기 때문에 가난한 것이냐를 묻는다. 무책임한 얘기 같지만 두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나선형으로 꼬여 있다. 소설의 주인공을 한 명만 꼽으라 하면 세탁부 제르베즈다. 제르베즈의 인생은 22살까지와 22~40세까지의 두 개의 삶으로 나뉜다. 전반부에서 역경과 가난에도 불구하고 건실하고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건강한 인간형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제르베즈는 무너진다. 거기서부터 그가 의도치 않은 악인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악인이 되려는 아무런 의도가 없었다. 자발적인 사악함의 개입 없이 자연스럽게 악의 구렁텅이에 빠져 결국 선의 결여 상태가 되는 과정이 나온다. 일하고 먹고 잘 수 있고 아이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고 매 맞지 않고 자기 침대에서 죽는 게 제르베즈의 소원이다. 이 소박한 소원에 비해 과도하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전적인 요인이든 주변 사람들의 간계와 흉계에 의해서든 어느 순간 좌초한다. 자신도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폭력의 희생자이자 가해자가 되며 최악의 인간으로 잦아든다. 작가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보여줌으로써 사회를 고발한다. 유전과 환경이 인간의 지적이고 감정적인 현실에 미치는 영향을 그린다는 문학론이 그대로 관철된다. 다만 문학의 기능에서 증언하고 진단하는 것을 빼놓을 수 없다면 문학 너머에서 졸라는 사회개혁을 말한다고 봐야 한다. 왜 나불거리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냐고 종종 비난하는데, 어떤 부류의 사람에게는 나불거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실천이 된다. 작가가 이 부류의 대표적 인물이다. ◆'딜레마 게임'과 죽음의 헤피엔딩 소설에서 작동하는 전형적인 사회구조는 '딜레마 게임'이다. 등장인물들은 최선의 해를 찾아낸다. '딜레마 게임'의 전제는 게임의 플레이어를 서로 차단하는 것이다. a와 b가 제일 나은 선택을 찾아 나갈 때, a와 b가 차단돼 있다면 각자는 스스로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전체의 이익을 줄이게 되지만, 전체로도 개인으로도 손해를 보는 것이 '딜레마 게임'에서는 합리적이다. '딜레마 게임'에서 각각의 개인들은 공공선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합리적이지 않다. 공공선을 배제해야만 합리적이라는 게 '딜레마 게임'의 결론이다. 물론 플레이어는 공공선은 물론 합리성을 의식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이기심을 내세우지만 이기심을 밀고 나간 것이 가장 합리적임이 사후적으로 입증된다. 사악해지는 게 최선이다. 한데 바보처럼 제르베즈는 가끔 다른 선택을 내린다. 동화적인 구조도 보인다. 역경에 처하고 헤매다가 조력자가 나타나 극복하는 방식. 문제는 독사과를 먹이려는 사람은 너무 많고 집요한 반면 조력자는 너무 적다. 소설은 잔혹동화처럼 끝난다. 제르베즈가 죽고 그의 장례에서 "자 이제 행복할 거야 아름다운 그대 이제 잘 자"라고 누군가 말한다. 마침내 행복해진다. 작가가 전하는 유머일까. 그곳에서 행복하기 바라지만 그곳을 탈출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 구조이다. 죽어야만 행복해질 수 있는 역설적 해피엔딩. ◆룸펜 대 노동자 주인공들은 룸펜이다. 노동자가 아니다. 노동자가 발견된다면 노동자 계급의 언저리를 맴도는 인물 정도이다. 대부분 무위도식하는 룸펜 프롤레타리아이다. 전통적인 사회주의에서 룸펜 프롤레타리아는 혁명의 동력이 아니다. 이 사람들은 제정 시대에 사회주의 혁명에 반하는 세력으로 동원되곤 하였다. '목로주점'은 룸펜 프롤레타리아가 가진 즉자성과 비혁명성, 그리고 부르주아를 능가하는 속물근성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부르주아에게서 나타나는 허위의식과 속물근성이 있다면 여기도 마찬가지로 복제된 속물근성과 허위의식이 최악의 형태로 분출한다. 후대의 미국 소설 '분노의 포도'와 비교하면, '분노의 포도'의 등장인물들은 떠돌이들이긴 하지만 다 노동자이다.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고용주에 맞서 싸우고 임금 인상을 위한 스트라이크를 일으킨다. 마지막에 좀 작위적이긴 하지만 동지적인 유대, 세계시민적인 연대를 보여준다. 현실에서 보는 룸펜 프롤레타리아 계급에서는 그런 게 작동하지 않는다. 도둑, 극빈자, 창녀가 판을 치면서 하루하루 벌어먹고 "내일 일은 난 몰라요"하며 산다. 대미 또한 계급적 특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기 신체 결정권의 상실. 자살이 문맥에 따라 가장 존엄한 삶의 선택지라고 한다면, 그것은 자아를 잃어버린 사람이 선택할 수 없다. 노동을 잃어버리고 자아를 잃어버리고 결국 인간이 아닌 상태로 죽음을 맞는, 진짜 바닥에 도달한 삶을 그렸고, 마지막에 자연사한 제르베즈에게 "너는 행복해질 거야"라고 작가는 위로와 반어를 건넨다. 목로주점으로 번역된 불어(L'Assommoir)는 당시 속어로 노동자나 가난한 사람들이 독주를 마시는 선술집을 의미했고 단어 자체로는 원래 푸줏간의 도끼를 뜻했다. 짐승을 잡는 도끼에 잘려나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고 상상할 수도 있겠다. /안치용·인문학자 겸 영화평론가(ESG연구소장)

2022-06-16 14:20:19 박승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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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영그룹, 호국보훈의 달 '나라사랑' 재조명

부영그룹은 명절마다 군부대를 찾는다. 자매결연을 맺은 군부대 장병에게 위문품을 전달하고 격려하기 위해서다. 지난 2020년부터 코로나19로 직접 장병들을 찾진 못했지만 2000년부터 현재까지 부영그룹의 군부대 위문품 전달은 23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13일 부영그룹에 따르면 명절마다 군부대에 꾸준히 기증해 온 위문품은 8만6300세트에 달한다. 부영그룹은 1997년 육군 25사단을 시작으로 육군 22사단(1997년), 육군 8군단(1997년), 공군방공관제사령부(2010년), 육군 1군단(2017년) 등과 잇따라 자매결연을 맺었다. 부영그룹의 남다른 군 사랑은 창업주 이중근 회장의 의지다. 부영그룹은 이 회장이 직접 설립한 우정문고를 통해 '6·25전쟁 1129일', '광복 1775일', '미명(未明) 36년 1만2768일', '여명(黎明) 135년 4만8701일', '우정체로 쓴 조선개국 385년' 등의 역사서를 직접 펴내는 등 안보사명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 2015년에는 용산 전쟁기념관에 참전비를 만들어 기증했다. 참전비는 이 회장이 6·25전쟁 당시 목숨 바쳐 우리를 도와준 참전 21개국 용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2.7m 높이에 국가별 상징작품에 승리의 상징 월계관과 참전사항, 참전 부대마크, 참전규모 및 전투 기록, 참전 용사에게 바치는 글 등을 담아 제작·설치 기증한 것이다. 부영그룹은 2008년부터 2017년까지 국내 항공발전과 공군 사관생도 교육발전을 위해 공군사관학교 교육진흥재단에 총 6억원을 지원한 바 있다. 또 2019년 4월에는 공군본부가 운영하는 하늘사랑재단에 1억원을 기부했다. 한편 부영은 사회환원도 활발하다. 현재까지 기부한 금액만 9000억원에 이른다. 2014년에는 '국내 500대 기업 중 매출액 대비 기부금 1위 기업'에 오른 바 있다.

2022-06-13 16:30:57 김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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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덕의 냉정과 열정사이] 금융수장의 '행차'

#. 염자재자(念玆在玆). 그 자리에 앉힐 사람으로 적임자란 뜻이다. 지난 7일 지명된 김주현 금융위원장 후보자. 정통 경제관료로 통하는 김 후보자는 지명 이후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준비된 장관' 처럼 금융정책 청사진을 내놨다. 확실한 신호도 줬다.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상대 업종을 소유·지배하는 것을 금지하는 원칙)도 보완할 수 있다는 깜빡이를 켰다.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시그널이다. 외국계자본이 국내 금융산업을 지배하는 왜곡 현상을 막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가계부채와 소상공인 대출 만기 유예에 대해선 브레이크를 밟았다. 급격히 늘어난 가계부채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Global Debt)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세계 36개 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한국이 104.3%로 가장 높았다. 대출규제로 집값을 잡은 고승범 현 금융위원장의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다. 오는 9월까지 유예된 소상공인 대출 추가 연장에 대해선 반대 입장이다. 부실을 안고 가기에는 부담이란 뜻이다. 그럼에도 그는 "예외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어…부채대책 역시 상환능력을 만들어주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1300조원에 달하는 소상공인 대출을 한꺼번에 거둬들이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소상공인의 부채 연착륙을 유도할 대책을 내놓겠다는 뜻이다. 가상자산과 관련해선 입법을 빠르게 추진하겠다고 했다. 김 후보자는 금융위원장으로 하마평이 나올때부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금융정책을 고민했다는 후문이다. #. 부관참시(剖棺斬屍). 죽은 후에 생전의 죄가 드러나면, 무덤을 파헤쳐서 관(棺)을 쪼개고 송장의 목을 베는 형벌이다. 금융감독원장에 처음으로 검사 출신이 취임하면서 금융권에선 우려가 크다. 라임사태, 옵티머스 펀드사태를 다시 들여다 볼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미 벌한 사안에 대해 또다시 형벌을 내릴 수 있다는 걱정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펀드 사건별로 모두 종결되고 이미 넘어간 걸로 이해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사회 일각에서 문제 제기가 있는 것도 알고 있어 시스템을 통해 혹시 볼 여지가 있는지 잘 점검해보겠다"고 했다. 윤석헌 전 금감원장 처럼 '금융소비자 보호'를 명분으로 금융사에 대한 검사·제재를 강화할 수도 있다는 걱정도 있다. 취임사를 보면 윤 전 원장과는 거리를 두는 듯 하다. 이 원장은 "금융기관, 금융소비자와의 원활한 소통과 의견 수렴은 규제 완화와 시장 안정이란 목표 달성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라고 했다. 검사와 제재 강화보다는 규제 완화와 소통에 무게가 실렸다. #. 금융당국 수장인 김주현과 이복현의 행차가 시작됐다. 한쪽에선 검사 출신 쏠림인사를 비판한다. 하지만 정권을 잡은 쪽은 멈출 생각이 없다. 결국 인사의 성패는 결과다.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금융산업을 발전시킬수 있느냐다. 금융위는 금융정책을 맡고, 금감원은 금융권의 건전성 감독과 검사·제재를 담당한다. 그래서 금융위는 머리, 금감원은 팔과 다리로 비유한다. 한 몸이다. 머리는 정통 경제관료가 몸통은 검사 출신이 맡았다. 우려는 기우에 그치길 바란다.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금융당국은 신뢰를 잃는다. 금융산업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금융당국의 엇박자는 배가 산으로 가게 한다. 당국 간 협력과 소통이 중요하다. 두 수장 모두 그 자리에 적임자인지 수 개월내 판가름 난다. 기대해 본다. 위기를 극복할 '경제 원팀'의 호흡을, 두 수장이 외친 규제 개혁의 현실화를. /파이낸스&마켓부장 bluesky3@metroseoul.co.kr

2022-06-09 07:23:13 박승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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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테일앤인사이트, '2022 디지털유통대전' 참가

리테일앤인사이트는 산업통상자원부 주최로 오는 8일부터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2022 디지털유통대전 (Retail Tech Show)' 에 중소유통 빅데이터 전문기업 자격으로 참여한다고 7일 밝혔다. 이번 행사는 '유통의 미래(The Future of Retail)'를 주제로 정부와 업계가 함께 준비하는 민관 협업의 글로벌 행사로 진행된다. 리테일앤인사이트는 대한상공회의소와 함께 개발 중인 '유통데이터 서비스 플랫폼'의 실증기업 자격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2020년 기준 156조원에 이르는 국내 식품시장 중 지역마트(슈퍼마켓)를 통한 소비는 42.1조원 규모로 대형마트와 할인점(21.4조원)이나 편의점(13.3조원)보다 비중이 높다. 리테일앤인사이트는 클라우드 기반의 지역마트 솔루션을 개발해 그동안 대형 유통기업 중심으로 수집, 분석되던 유통 데이터의 범위를 전국 지역마트까지 확장할 기반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리테일앤인사이트 기술연구소 김현용 부장은 "전국 지역마트에 보급된 토마토솔루션의 판매시점정보관리시스템(POS), 전사적자원관리(ERP), 앱 등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유통 데이터를 통합해 스마트MD, 재고분석, 가격관리 등 상품 공급사와 지역마트를 위해 인공지능(AI) 기반의 다양한 분석 모델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2022-06-07 09:01:47 박승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