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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필의 청론탁설]청와대 여야 정례회동 반드시 실행하라

지난 주 10일 오전 청와대에서는 모처럼 의미 있는 웃음이 나왔다. 박근혜대통령 주재로 여야 국회 원내지도부가 한 자리에 만나 시종 화기애애한 회동을 가졌다. 이 날 모임에는 박 대통령 초청 형식으로 새누리당에서는 이완구 원내대표와 주호영 정책위의장,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박영선 원내대표와 우윤근 정책위의장이 참석했다. 회동 초부터 따뜻한 덕담을 나누며 비교적 환한 모습으로 예정시간 45분 보다 훨씬 긴 1시간 25분이나 국정현안을 논의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야당 지도부와 자리를 함께한 것은 지난해 9월16일 국회 사랑채에서 김한길(당시민주당 대표)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와 가진지 10개월 만에 이뤄진 것이다. 그 때에는 시종 긴장감속에 '어색한 만남'이었지만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국정현안을 놓고 '생산적 만남'으로 평가 받고 있다. 특히 이번 청와대 여야 원내 지도부 회동을 계기로 박 대통령은 '정례화'를 제안해 앞으로 여야 당대표를 포함한 확대회의가 성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를 지켜보는 대다수 국민들은 우리 정치가 '불통'의 장벽을 넘어 '소통'으로 이어지고 '대립과 정쟁'이 아닌 '상생의 정치'로 국리민복에 다가갈 전환점이 되기를 갈망하고 있다. 다행히 이번 모임에서 국정현안의 많은 부분에 조율이 이뤄졌지만 장관 인사에서 야당의 주장을 적극 수용한 박 대통령의 용단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이후 국정수행능력, 특히 인사문제에서 깊은 상처를 받았다. 때문에 '콘크리트 지지율'이 40%대로 무너졌다. 보수의 대 이탈이라는 적신호마저 나왔다. 이러한 가운데 지금까지 보여준 박대통령이 마이웨이 정치행보에 변화를 준 것은 다행이다. 지금부터 박 대통령은 '마음의 문'을 열고 대화정치를 앞장서서 추진해야하며 야당도 책임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진정성에 무게를 두고 실천에 옮겨야 수권정당으로 거듭 날 수 있다. 지금 우리경제는 두말할 나위 없이 장기저성장의 그늘 속에 서민경제가 바닥을 헤매고 있다. 이러한 판에 뜻하지 않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 난지 석 달이 됐는데도 대다수 국민들이 아직까지 트라우마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국민정서를 여야 정치권은 직시하고 거듭나서 보다 생동감 있는 정치력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청와대 여야지도부 정례 회동을 반드시 지켜 그야말로 '상생의 정치'를 열어 나가야 한다. /언론인

2014-07-13 10:22:07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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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무기 개발기지가 들어설 뻔했던 서울대공원 터

지난 1984년 문을 연 과천 서울대공원은 동물원을 비롯해 식물원과 현대미술관, 산림욕장과 캠핑장 등 다양한 시설로 시민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곳은 '무기 개발기지'가 들어설 뻔했던 곳이기도 하다. 지난 1960년대 베트남에 국군장병을 파병해두고 있던 박정희 정권은 '자주국방'에 신경을 써야만 하는 상황을 맞았다. 과연 빠져나올 수 있을지 없을지 장담하기 힘든 베트남전의 수렁 속에서 집권한 리처드 닉슨 미국대통령이 '닉슨 독트린'을 제기하고 나선 탓이다. 닉슨 독트린의 주요 내용은 '미군은 더 이상 세계경찰이 아니며, 미군은 앞으로 아시아에 대한 개입을 축소한다, 미국은 원조만 제공할 테니 아시아 국가들은 방위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미군이 철수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낀 박 정권은 핵무기를 포함한 신무기를 자체 연구 개발하기로 결정한다. 그 개발기지를 세우기 위해 매입한 땅이 바로 지금의 서울대공원 터였다. 박정희의 군사쿠데타 동지이기도 했던 김재춘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한국과 미국의 미묘한 관계와 국제적인 상황 등을 고려해 경기도 과천에 약 2백만 평의 땅을 매입하라고 했다고 한다. 다만 미국 정보기관이 눈치 챌 위험이 있으니 극비에 추진하라는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북한과의 국지적 충돌이 점증하는 상황에서 정권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그러나 신무기 개발기지는 끝내 그곳에 들어서지 않았다. 면밀히 조사해 보니 그곳은 북한 미사일의 유효 사거리 안에 들어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신무기 개발기지는 휴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대전에 들어섰는데, 그 마저도 이후 들어선 전두환 정권 때 미국의 압력을 받으면서 곧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원래의 과천 터에 들어선 것은 북한 평양동물원의 규모를 능가하는 지금의 서울대공원이었다. 남북간의 군사 대결이 동물원 규모 대결로 바뀐 셈이었다. 마냥 즐거운 놀이공원 같지만 그 속에는 얼마 오래 되지 않은 한국현대사가 숨어있다. /'다시,서울을 걷다' 저자

2014-07-10 14:16:02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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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칼국수는 왜 여름이 맛있을까?

한여름 햇볕이 하얗게 내리쬐는 날이나, 장마철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에는 햇감자 큼직하게 썰어 넣고 송송 썬 애호박으로 고명을 얹은 칼국수가 입맛을 당긴다. 윗도리 흠뻑 젖도록 땀 뻘뻘 흘리며 칼국수 한 그릇 비우고 나면, 더위가 땀과 함께 씻겨 나간 것처럼 몸과 마음마저 개운해 진다. 그런데 칼국수는 왜 여름이 맛있을까? 요즘은 계절의 구분이 없지만 칼국수는 전통적으로 여름에 먹는 별미였다. 지금은 겨울별미였던 냉면과 자리바꿈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여름에 뜨거운 칼국수를 먹는 것은 이열치열의 전통과 함께 칼국수가 밀가루 음식인 것도 이유 중의 하나였다.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는 여름 별식으로 밀가루 음식을 먹었다. 우리는 여름철에 칼국수, 수제비를 먹었고 특히 비오는 날에는 기름에 지진 밀가루 부침개를 별미로 친다. 중국도 마찬가지여서 속담에 "여름 국수, 겨울 만두"라고 했는데 쌀밥보다 밀가루를 주식으로 삼는 중국 북방에서도, 여름이면 특히 더 국수를 즐겨 먹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왜 여름에 밀가루 음식을 더 찾았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전통 의학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우리 동의보감을 비롯해 동양의 의학서들은 하나 같이 밀은 성질이 차가운 곡식으로 번열(煩熱), 그러니까 가슴이 답답하고 괴로운 신열, 무더위 때문에 생기는 열기를 없애준다고 했다. 동시에 조갈(燥渴), 입안이 마르는 갈증을 해소해주고 소화를 돕는다는 것이다. 더위를 식혀주고 갈증을 없애주는데다 소화에도 좋다니 더운 여름날 먹기에 딱 좋은 음식이다. 밀은 또 가을에 심고, 겨울에 자라서 봄에 이삭이 패고 여름에 추수를 하는 곡물이니까 밀가루 음식은 갓 추수한 여름이 제일 맛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밀보다는 보리를 주로 심었기 때문에 밀가루를 '진(眞)가루'라고 부를 정도로 밀이 귀했다. 그러니 오랜 세월 여름에 어쩌다 먹는 칼국수나 수제비는 여름철 진미로 한국인의 유전자 속에 깊숙이 자리매김했을 듯싶다. /음식문화평론가

2014-07-09 10:22:49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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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인문학산책]상상력과 비판의식

"달도 떨어지는가?" 뉴턴의 질문이었다. 사과 이야기는 지금껏 유명하나, "달의 낙하"에 대한 뉴턴의 생각은 일반에게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파격적인 발상은, 당시의 세계관에 정면 도전하는 것이었다. 천체의 운동은 중력 같은 지상의 법칙과는 무관하다고 여기는 시대에 뉴턴은 이걸 우주로까지 확장했다. 달은 지구를 향해 떨어지고 있지만 지구는 자전하는 곡면이기 때문에 낙하운동이 상쇄된다는 것이 그의 논지였다. 결국 달은 지구를 향해 계속 낙하하지만 궤도를 도는 위성처럼 움직이는 셈이다. 17세기에 살았던 뉴턴의 이러한 상상과 계산의 일치는 이후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원리의 출발점이 된다. 이 뉴턴의 이론은 이후 우주의 시공간이 휘어져 있다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의해 한계가 드러난다. 태양이 있는 자리는 그 태양의 존재 때문에 움푹 들어가 있고,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경사면을 따라 지구가 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빛도 그 휘어진 면을 따라 경로가 생겨난다. 이 이론 이전에 아인슈타인은 이제는 상식이 된 시간의 속도가 가진 상대성과 함께, 물질이 원자의 분열로 에너지로 바뀌고 거꾸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규명해냈다. 이렇게 되면 바윗덩어리도 빛나는 광선으로 변할 수 있게 된다. 물질과 에너지의 관계에 대한 엄청난 발상의 혁명이었다. 그런데 하이젠베르크는 물체의 속도와 위치를 동시에 알지 못한다고 해서 다시 충격을 주었다. 물질운동의 정확한 계산이 가능하다고 본 아인슈타인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논리였다. 그러나 원자 크기 이하의 영역에서는 측정을 위해 광자를 쏘는 순간, 관찰하려는 대상의 움직임은 교란되어 그 위치가 달라지고 만다. 측정 자체가 불확정적인 상태를 만든다는 것이다. 인간사회도 다르지 않다. 누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나의 행동은 이전과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세상이 움직이는 방식에 대한 과학적 이해는 끊임없이 달라져 온 것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상상력에 의해 인식하는 방법이 계속 새롭게 만들어져 온 것이다. 그 어떤 것도 비판과 수정이 금지된 도그마가 될 수 없다. 우주의 법칙에 대한 과학도 그런데, 하물며 인간사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기존질서를 뛰어넘는 상상력과 비판의식은 그래서 모든 교육의 핵심가치다. 이걸 억압하는 정치와 교육은 "중세(中世)의 감옥"일 뿐이다. /성공회대 교수

2014-07-06 16:24:28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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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몽유도원도' 속을 거닐다

부암동을 걷다 보면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자연이 살아 있는 걸 느낄 수 있다. 창의문 같은 운치있는 조선시대 문화재를 비롯해 백사실 등 깊은 산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계곡이 온전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처럼 신록이 푸르게 물들면 마치 조선시대의 산수화 속에 들어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서울 사대문 안팎이 막개발로 황폐해진 지금도 그 정도의 느낌을 받을 정도인데 과연 조선시대에는 어땠을까? 지금으로부터 567년 전 화원 안견이 '몽유도원도'를 완성해낼 때 배경으로 삼은 곳이 바로 부암동 남서쪽의 무계동 계곡이었다.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으로부터 자신이 꿈 속에서 노딜던 무릉도원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달라는 명을 받은 뒤 단 사흘만에 완성해 낸 건데, 섬세한 붓놀림과 파격적인 구도 면에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에 필적한다는 평을 받는다. 아마 지금처럼 여름을 맞은 무계동 계곡의 환상적인 모습을 보았기 때문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상상해 본다. 요즘에도 직접 부암동을 찾아 무계동 계곡 쪽으로 걸어 들어가다 보면 안평대군이 살았던 집터를 만날 수 있다. 한쪽에 '무계정'이라고 새긴 바위도 남아 있는데 당시의 모습을 어렴풋하게나마 그려볼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이런 부암동의 고즈넉한 풍광이 저스스로 유지되어 온 것은 아니다. '청와대 경호'라는 군사적인 목적에 개발이 지연된 탓도 있지만 주민들의 노력도 큰 몫을 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지난 2009년, 안평대군 집터 근처에 1,700여 제곱미터 면적의 공영주차장을 건설하려고 했던 적이 있다. 이때 주민들이 "주차장이 부족해 당장은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역사적이며 문화적인 면에서 그곳에 주차장을 만드는 것은 안 된다"고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재개발과 재건축을 신성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역사와 문화 경관을 위해 당장의 편리함을 유보하는 태도는 사뭇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번 주말, 몽유도원도 원본은 일본에 있어 직접 보기 힘들지만 대신 부암동을 찾아 실제의 몽유도원도 속을 걸어 보는 건 어떨까. 안평대군 꿈 속의 무릉도원은 멀리 있지 않다. /'다시,서울을 걷다' 저자

2014-07-03 13:05:5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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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전국에서 제일 맛있는 오이지

여름철 입맛 없을 때 최고의 밥반찬은 오이지였다. 지금은 어느 음식이고 계절에 관계없이 먹을 수 있으니 계절음식의 소중함이 예전처럼 피부에 와 닿지 않지만 냉장고가 귀했던 시절에는 집집마다 장마와 삼복더위에 대비해 오이지를 담갔다. 오이지와 관련해 몇 가지 의외의 사실이 있는데 우리 조상들이 먹었던 최초의 김치는 바로 오이지였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뿐만 아니라 인류가 처음으로 먹었던 저장채소는 소금에 절인 오이지 또는 식초에 절인 오이 피클이다. 일반적으로 최초의 채소 절임은 고대 시집인 시경에 보이는 것을 최초로 본다. "밭두렁에 오이가 있는데 깎아서 절인 후 조상님께 바치자"라는 구절이다. 절인다는 표현으로 김치 저(菹)라는 한자를 썼고 절이는 채소가 오이 과(瓜)였으니 바로 오이지다. 물론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경에 나오는 오이는 지금의 오이와는 다르다. 지금의 오이는 기원전 2세기에 동양에 전해졌으니 시경의 오이는 동아시아에서 토종으로 자라는 참외 종류였을 것이다. 과일인 참외로 오이지를 담갔다니까 지금은 낯설고 이상하게 들리지만 사실 옛날 참외는 과일이자 채소이며 양식이었다. 어쨌든 오이지의 역사는 이렇게 뿌리 깊은데 그중에서도 전통적으로 맛있다고 소문난 오이지가 있었다. 용인 오이지로 해동죽지)에서 조선의 음식명물로 꼽았다. 용인에서 나는 오이와 마늘, 파로 오이지를 담그면 부드럽고 맛이 깊을 뿐만 아니라 국물은 시원하고 단 것이 사탕수수 즙보다도 뒤지지 않는다며 극찬을 했다. 용인 오이지가 얼마나 유명했는지는 18세기 중반, 증보산림경제에는 담그는 법을 별도로 적어 놓았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소금을 묽게 탄 다는 것, 오이를 반복해 뒤집는다는 것 외에는 별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용인 오이지가 별미로 소문이 났으니 해동죽지에서는 맛의 비밀을 용인에서 재배한 오이에서 찾았다. 지금은 명맥이 끊겼다는 용인 오이지의 맛이 궁금해진다. /음식문화평론가

2014-07-02 10:34:44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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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인문학산책]정치의 위기, 삶의 위기

"강자의 지배가 곧 정의다"라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고대 사상가는 플라톤이다. 그는 국가와 정치의 정당성에 대해 질문했다. 정의가 힘에 의한 지배로 받아들여질 경우, 약자들의 목소리는 짓밟히게 되어 있다.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것이 정치의 목적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말한다. 선은 정치의 목표이자 그런 정치가 인간의 행복이라는 걸 일깨운 것이다. 정치와 국가는 정의로운 세상과 좋은 삶을 보장해나가는 역할을 해나가지 못할 때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1930년대 영국의 지식인 사회를 대표한 정치학자 해롤르 라스키는 민주주의가 위협받으면서 파시즘의 도래가 내다보이자, 치열하게 논전을 펼친다. 그는 "부당한 질서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지식인들이 이에 대하여 침묵한다면, 그것은 도덕적 마비와 지적 황폐에 기여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의 위기는 인간과 그 공동체에 중대한 위협으로 작용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 암살당했으나, 스웨덴이 여전히 사랑하는 정치가 올로프 팔메 총리는 자신의 신념을 정치의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관철시켜나간 인물이다. 그는 현실을 내세워 자기가 소중하게 여기는 철학과 가치를 희생시키지 않았다. 정의로운 세상, 좋은 삶에 대한 의지를 굳건히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베트남 전쟁, 남아공의 인종차별 체제 아파르트헤이트 등에 대한 국제적 사안에도 용기 있게 발언했다. 스웨덴이 중립국가라는 점을 떠올린다면 그의 이러한 태도는 예상을 넘는 것이었다. 그러나 팔메는 이렇게 말했다. "작은 나라인 우리의 영향력은 미약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류의 평화와 중재, 민주주의, 사회정의를 위한 노력까지 작은 것은 아닙니다. 중립은 침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는 스웨덴의 교육은 "비판적인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것"이라며, "완벽한 체제는 없기 때문에 비판적 시민이 끊임없이 정치를 감시하고 새로운 의견을 제시해야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과 소통하지 않은 채 신뢰를 상실해가고 있고, 민주주의와 교육에 대한 철학이 없는 곳에서는 정치가 무너지고 인간의 삶도 흔들린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시민이 주체가 된 "정치의 복원"이 절박해지고 있다. /성공회대 교수

2014-06-29 18:25:39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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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지하철 '두줄서기' 이젠 결론내자

"에스컬레이터는 빨리가기 위한 시설이 아닙니다. 두 줄로 서서 안전하게 이용하세요" 지하철 이용자들에게는 10년 가까이 매일 마주치는 익숙한 안내문구다. 그러나 '두 줄 서기'의 호응도가 높아지기는커녕 영 신통치 않다는 것을 누구나 느낀다. 아무리 동참을 호소해도 외면받기 일쑤다. 특히 출퇴근시간의 경우 '두 줄 서기'보다는 '외 줄 서기'가 지하철 문화의 대세임을 부인할 길이 없다. '두줄서기'가 버림받는 이유는 뭘까? 불편하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 서울메트로등은 시민들이 안전하게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라는 취지에서 '두줄서기 운동'을 펴고 있다. 켐페인을 벌이고 홍보활동을 강화하고 있으나 반응은 언제나 시큰둥하다. 에스컬레이터 한줄은 서고 한줄은 이동하도록 공간을 확보해놓아야하는데 두 줄 모두 봉쇄(?)돼 있으면 빨리 갈수없어 시간지체가 불가피하다는 것. 두줄서기의 취지에 공감해 참여하려해도 다른 사람들의 눈총이 따가워 엉거주춤 한줄서기 행렬로 옮겨간 경험도 많은 사람들이 갖고있다. 한쪽 공간을 막고 버티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통행에 불편을 주지말자는 배려에 우선권이 주어진 결과다. 그렇다면 안전보다는 남에 대한 배려를 우선하는 '한 줄 서기'를 그냥 방관해야만하는가. 더 이상 이런 엉거주춤한 상태로 유지되는 것보다는 결론을 냈으면 한다. 사고를 예방하고 안전을 도모하기위해 '두 줄 서기'가 필요하다면 대대적인 대국민 캠페인을 전개해 정착되도록해야하지 않을까 한다. '한 줄 서기'로 인한 역주행이라든지 급정지등의 대형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설득하고 불가피성을 알려야한다. 특히 세월호 사건이후 안전에 관한한은 예외없이 대응책이 마련되고 있는 마당에 하루 700만명이상이 이용한다는 서울 지하철 에스컬레이터가 위험운행을 강행하고 있다면 말이 안된다고 본다. 안전이 보장되려면 불편은 감수해야만 한다. 서울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서 있으면 평균 약 40초,올라가면 약 20초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과거 강원도 오지 커브길에서 자주 보았던 "5분 빨리가려다 50년 빨리간다"는 교통 표지판이 생각난다. '20초의 빠름'에 집착하기에 우리 인생은 너무 길지 않은가. 이충건 (편집위원)

2014-06-29 14:23:41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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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필의 청론탁설]규제개혁 시계 왜 멈추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혁신 핵심과제로 삼은 규제개혁의 시계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20일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 주재로 규제개혁을 위해 민관 합동 '끝장 토론'까지 벌였으나 3개월이 지난 지금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4.16 세월호 참사'에 가려진채 추진력 자체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주 이승철 전경련 전무는 기자 간담회를 갖고 "정부는 연말까지 규제 10%를 줄이겠다고 했지만 1만 5308개였던 규제 건수가 규제개혁 끝장 토론 후 오히려 2건이 더 늘어났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가 규제개혁, 창조경제, 공공혁신 등 경제 살리기 위한 핵심 이슈를 국민들에게 잘 알렸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집행하는지는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예정대로 규제개혁을 순조롭게 추진했다면 최소한 전체의 2~3%에 해당되는 300~400건 정도는 줄였어야 했다. 지금과 같은 상태가 이어진다면 오히려 역주행 할지도 모른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국가개조의 핵심인 '관 피아'척결도 인적청산과 함께 규제개혁이 뒷받침 돼야 보다 효과적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규제가 곳곳에 도사리면서 '관 피아'를 키워 왔기 때문이다. 지금 각국은 규제개혁을 경쟁이나 하듯 혈안이 되어 있다. 영국은 '규제 총량제'를 도입해 'One-in, Two-out'로 하나를 늘리면 두 개를 줄여나가는 정책을 펴고 있다. 늘어나는 정부의 규제가 기업부담이 커지고 경제 활력을 떨어뜨린다고 보고 지난 2006년부터 규제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해오다 2011년부터는 아예 규제 총량제를 실시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규제여부가 불투명한 사항을 확인해주는 '그레이스 존 해소제도'까지 만들어 기업을 돕고 있다. 이는 "애매할 경우 허용해준다"는 정책이다. 호주의 경우, 지난 3월 26일 불필요한 1000여개 법안과 관련된 행정규제 9500개를 없앴다. 더욱이 연간 의회회기 이틀을 '규제폐지의 날'로 정해 하반기에 시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세월호 참사로 안전 분야는 규제가 더욱 강화될 전망이지만 환경을 제외한 다른 분야는 특단의 혁파가 요구된다. 지금 정홍원 국무총리가 헌정사상 처음으로 사의를 표명한지 60일 만에 유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렇지만 정부는 국가개조를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하고 그 가운데 경제혁신의 핵심과제인 규제개혁을 조금도 늦춰서는 안 된다. /언론인

2014-06-29 10:28:56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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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파헤쳐진 내시 묘역

2년 전 서울 은평구 진관내동에서 북한산 의상봉을 오를 때 약 3만 제곱미터의 땅이 파헤쳐져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문제는 그곳이 단순한 산자락이 아니라 국내 최대 규모이자 가장 오래된 조선시대 '내시'들의 집단묘역이 있던 곳이었다는 점이다. 파헤쳐지기 전까지 모두 45기의 묘가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광해군 시절인 지난 1621년에 처음 묘비가 세워진 정2품 자헌대부 김충영의 묘로, 그는 왕과 왕비의 명령을 출납하는 승전관을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석이나 상석에 관직이 기록된 것만도 14기가 있었으며 내시부의 최고 관직인 종2품 상선의 묘가 5기, 종1품 승록대부의 묘도 2기나 됐다. 그러나 후손들이 한 조경업자에게 4억8000만 원을 받고 땅을 넘기면서 그렇게 갈아엎어지고 만 것이다. 내시의 양자로 이어진 후손들이 자신들의 선조가 내시라는 점을 부끄럽게 생각한 것이 큰 이유였고, 이 집단묘지자 지정문화재가 아니어서 상대적으로 매각이 어렵지 않았던 점도 사태를 부추겼다. 당시 사건은 한 집안의 집단묘지가 없어진 것 이상의 안타까움을 몰고 왔다. 그곳에 안장된 이들 가운데 김성휘나 박민채, 오준겸 등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에 활동 기록이 남아 있는 인물도 있던 데다 내시들의 부인도 사대부의 부인이 받는 정경부인에 봉작됐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비문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내시들의 인물사 연구는 물론 당대의 풍속사 연구에도 귀중한 사료가 되는 것들이었지만 그렇게 갑작스럽게 파헤쳐지면서 모두 흘러간 옛 일이 되고 말았다. 현재 남아 있는 내시의 묘는 은평구 이말산에 있는 4기를 비롯해 도봉구 초안산과 쌍문동, 강남구 신사동, 경기도 고양과 남양주, 양주, 용인, 그리고 경북 청도에 남아있는 것 등 극히 소수다. 그마저도 언제까지 남아 있을 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다. 사대부의 경우와 달리 내시의 묘와 관련해서는 후손들이 부끄럽다는 이유로 쉬쉬하거나 없애버리는 통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시라는 존재가 단순히 거세를 해 남성성을 잃은 사람이 아니라 왕조 경영에 필수불가결한 전문가 집단이었다는 것을 아무리 강조해도 후손들이 갖고 있는 마음의 벽을 깨기란 쉽지 않아 보이다. 그나마 남아 있는 몇 기의 내시 묘지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 지 걱정되는 이유다. /'다시 서울을 걷다'저자

2014-06-26 15:24:04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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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필의 청론탁설]진보 교육감들 정치적 중립부터 선언해야

'6.4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전국 시도광역단체교육감 선거에서 진보성향의 교육감이 석권해 교육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전국 17곳 가운데 절대다수인 13곳이 전교조 출신을 비롯해 진보성향의 후보가 당선됐기 때문이다. 서울을 비롯해 전체의 84%에 해당되는 초중고 학생들의 교육환경이 진보세력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이러한 가운데 진보성향의 교육감들이 탄원서까지 내면서 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취소'를 제기했으나 지난주 19일에 열린 서울행정법원에서 패하고 말았다. 따라서 교육계가 갈등의 골이 한층 깊어질 것은 불을 보듯 환하다. 패소 판결 후 전교조 지도부는 단식농성 등 총력 투쟁을 이미 선언했다. 이제부터 진보세력의 교육감들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만일 이들의 손을 계속 잡아준다면 교육현장은 유례없는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따라서 진보성향의 교육감들의 리더십은 지난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만일 계속해서 소수의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하면 지지해준 유권자에 대한 배신이 된다. 사실 이번 선거에서 진보성향의 교육감이 대거 당선된 것은 보수 성향의 후보들이 갈라진 점도 있지만 현재의 교육환경에 대해 불만도 표심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득표율은 33.5%에 불과하다. 결국 전체의 3분의 2에 해당되는 유권자는 전교조를 미덥지 않게 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전교조 출범 25년만의 대승이라고 자축에만 젖을 일이 아니다. 진보성향의 교육감들은 먼저 이념투쟁을 종식하고 정치적 중립을 선언해야 한다. 좌편향에 따라 '이명박 정권'때는 '쥐박이'라고 폄하하면서 조롱하고 지금 '박근혜 정부'에서도 기회만 있으면 흔들고 있다. 여기에 더해 진보성향의 교육감은 전교조=진보=좌편향?종북과 같은 등식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김일성 추모제'는 고사하고 '빨치산 교육'에 이르기 까지 전교조의 종북 활동은 이제 거의 고착상태가 되어 버렸다. 이 바람에 학부모는 물론 대다수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이점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노선이 정리돼야 '참 교육' 실천에 믿음이 간다. 진보성향의 교육감이 내세우는 참교육 내용도 대다수 국민이 공감할 수 있도록 전면 수정해야 옳다. 특히 학생들의 인권을 지나치게 내세워 교권이 무너지고 인성교육이 퇴보하고 있는 점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다 국민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올바른 역사교육의 길도 열어야 한다. 그래야만 진보성향 교육감들의 등장이 신선해진다. /언론인

2014-06-22 10:59:12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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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한국 철도의 시발지 쇠뿔고개에서

인천시 창영동에는 우각현, 우리 말로 '쇠뿔고개'라 불리는 야트막한 언덕이 하나 있다.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지금으로부터 한반도 최초의 철도, 바로 '경인선' 기공식이 열린 곳이다. 공사를 시작한 것은 1897년 미국인 제임스 모스에 의해서였으나 자금난으로 철도 부설권이 일본인에게 넘어가면서 경인선은 결국 1899년 일본인의 손으로 완성됐다. 철도와 기차는 근대성의 상징이었다. 그 전까지 다소 불명확했던 시간 관념이 시와 분 단위까지 명확해지는 계기가 됐고 국제적으로는 '세계 표준시'도 만들어졌다. 사람과 물자의 대량 수송도 가능해졌으며 정보 교류의 측면에서도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그러나 이 땅에 놓여진 철도는 근대성을 실어나르기보다는 '침략과 수탈의 수단'으로 이용된 측면이 크다. 그들은 철도 용지를 거의 무상으로 이용했고 철도 용품이나 영업이익에 대해서는 세금 한 푼 내지 않았다. 건설 과정에서 논과 밭의 곡물을 마음대로 베어내는 등 수많은 횡포를 부리기도 했다. 임금 부분에서도 일본인 노동자가 하루 60~100전을 받은 반면 같은 일을 한 조선인 노동자가 받은 임금은 그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1904년 경기도 시흥 주민 만여 명이 당시 군수와 그의 아들을 살해하기까지 한 이유도 그런 횡포에 있었다. 일본은 그렇게 놓은 철도를 이용해 이 땅에서 생산된 쌀과 목재, 석탄 등 농수산품에서부터 지하자원까지 각종 자원을 일본으로 반출해 갔다. 예컨대 철도를 이용해 약탈해 간 쌀의 양이 1911년 7만6천여 톤에서 27년 뒤인 1938년에는 약 14배인 108만7천여 톤으로 증가하는 등 수탈량은 해가 갈수록 늘어만 갔다. 대륙 침략을 위한 발판으로 이용된 것도 물론이다. 그런 아픔을 안고 탄생한 한국의 철도…. 그러나 지금은 국토가 그렇듯 철도 역시 남북으로 단절된 상태다. 끊겼던 경의선과 동해선이 지난 2009년 연결되기는 했지만 다시 쓸모 없는 철도마냥 버려져 있는 게 현실이다. 애초 수탈과 침략을 목적으로 놓여진 철도였지만 남북을 오가며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오는 메신저가 될 가망은 없는 것일까. 쇠뿔고개에서의 잡감은 그래서 더 쓸쓸한지도 모르겠다. /'다시 서울을 걷다'저자

2014-06-19 14:30:46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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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눈칫밥 먹는 주제에 상추쌈까지 ...

상추쌈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가장 한국적인 정서의 음식이다. 예전부터 농부의 밥상에서부터 구중궁궐 대왕대비의 수랏상에도 올랐다. 신분의 높낮음을 떠나서 누구나 상추쌈을 즐겨 먹었는데, 우리가 얼마나 상추쌈을 좋아했는지 고려 때는 원나라에까지 소문이 났다. 지금은 퇴색한 용어가 됐지만 가히 한식 세계화의 선구자였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쌈 싸먹기를 좋아한다. 영조 때의 실학자 이익이 성호사설에서 조선 사람은 커다란 잎사귀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쌈을 싸먹는다고 했을 정도다. 상추를 비롯해 호박잎, 배춧잎, 깻잎과 곰취는 물론 미나리, 쑥갓, 콩잎으로도 쌈을 싸 먹는다. 김과 미역, 다시마 같은 해초 역시 쌈 싸먹는 재료로 빠지지 않았으니 우리는 유별나게 쌈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은 상추쌈이다. 성호 이익은 집집마다 상추를 심는 까닭은 쌈을 먹기 위한 것이라고 했으니 조선시대에 벌써 상추쌈은 국민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상추쌈은 한입 가득 싸서 볼이 메어져라 먹어야 제 맛이다. 때문에 점잖은 체면에는 먹기 어려웠을 것 같지만 왕실 최고 어른인 대왕대비도 상추쌈을 즐겼다. 승정원일기에 숙종 때 대왕대비인 장렬왕후 수라상에 상추가 올랐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조리를 하지 않았으니 쌈을 싸먹기 위한 것이다. 다만 이어지는 내용은 실수로 상추에 담배 잎이 섞여 들어갔으니 담당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숙종은 그럴 것까지 없겠다며 용서를 했다. 순조의 장인으로 세도정치를 시작한 김조순 역시 상추쌈을 즐겼다. 여름날 불암천에 천렵을 가서 갓 잡은 생선회를 안주 삼아 술 한 잔 기울이며 상추쌈에 밥을 싸먹었다는 글을 남겼다. 이렇게 왕실 최고 어른부터 막강한 세도가는 물론 농부에 이르기까지 모두 상추쌈을 즐겼던 것인데 우리의 상추쌈 사랑은 속담에서도 확인된다. "눈칫밥 먹는 주제에 상추쌈까지 먹는다"는 말이 그 말이다. 상추쌈이 맛있는 계절이다. /음식문화평론가

2014-06-18 10:31:39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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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승 거둔 류현진, "한국-러시아전 라커에서 TV 보면서 응원하겠다"

"새로 추가한 구종이 잘 통해 자주 던지겠다. 내일 우리 축구 대표팀 첫 경기는 라커에서 TV 중계를 보면서 응원하겠다." 16일(현지시간) 미국 LA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콜로라도 로키스와 경기에서 시즌 8승을 거둔 류현진(27·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또 "좌타자를 상대로 하드 슬라이더를 던져 효과를 봤고 마지막 타자를 잡아낸 것도 그 구종이었다"며 "최근 던지기 시작한 하드 슬라이더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월드컵 축구 본선 조별리그 첫 경기에 나서는 한국 축구 대표팀에 대해 "다치지 않고 잘 하리라 믿는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다음은 연합뉴스와 가진 일문일답 내용이다. --오늘 경기 소감은. ▲구속 잘 나와 편했다. 상대 팀에서 나한테 강했던 1, 3번 타자를 잘 막아서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 --콜로라도가 5연승에 팀 타율이 3할 이상 상승세였는데. ▲크게 신경 안 썼다. 상대 팀이 상승세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불리할 것 같아서 일부러 신경 안 썼다. --고비를 삼진으로 넘겼는데 삼진을 노린 승부였나. ▲1회 2사 2, 3루 때는 삼진으로 이닝을 마치려는 생각으로 승부했다. 1회에 인정 2루타가 나오는 바람에 실점없이 넘기는 행운도 따라줬다. --새롭게 구사하는 구종(커터성 슬라이더)은 효과적인지. ▲오늘도 좌타자 상대로 던져 효과를 봤고 마지막 타자 잡을 때도 그 공을 던졌다. 아무래도 구종 하나가 추가하면 타자들이 공략하기는 더 힘들지 않겠나. 새로 추가한 구종이 잘 들어가고 있어서 앞으로도 계속 던지겠다. --시즌 전에는 구종 추가에 대해 부정적이었는데. ▲사실 새로운 것도 아니다. 슬라이더인데 좀 더 구속이 빠른 것일 뿐이다. 나는 그냥 슬라이더라고 여긴다. --허니컷 투수 코치한테 배운 것 맞는지. ▲부상자 명단에 올랐을 때 그립, 던지는 방법 등을 허니컷 코치에게 배웠다. --신시내티에서 패전 투수가 된 뒤 등판인데 부담은 없었나. ▲그다지 부담은 없었다. 신시내티에서 패전 투수가 됐을 때도 그저 한번쯤 질 때가 됐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오늘은 타자들이 점수도 많이 내줘서 더 편했다. --홈런 맞은 것은 실투였나. ▲바보같이 던졌다. 높은 공으로 스트라이크 많이 잡아서 그걸로 삼진 잡으러 던진 공이었는데 던지는 순간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아쉬움도 컸다. --내가 잘 던지면 내일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를 치르는 한국 축구 대표팀에게 힘이 될 수 있겠다 그런 생각했나. ▲내일 로커에서 열심히 응원하겠다. 로커에 응원용 빨간 티셔츠도 미리 준비해놨다. --축구 대표팀에게 응원의 말 해달라. ▲잘 하리라 믿는다. 좋은 성적 났으면 좋겠다. 좋은 성적 내려면 안 다치는 게 중요하니 몸 조심들 하시라고 당부드리고 싶다.

2014-06-17 15:44:29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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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인문학산책] 하나님의 뜻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모세는 어느 날 떨기나무가 있는 곳에서 불길이 이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기이하게도, 떨기나무가 타지 않고 그대로 있지 않은가? 순간, 그곳에서부터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의 백성들이 비통하여 아우성을 치는 구나. 네가 가서 이들을 구하라." 신의 뜻은 히브리인들이 제국의 지배 아래 고통을 겪으며 사는 것에 있지 않았다. 이들에게 자유의 미래가 열리도록 일으켜 세우는 것에 있었다. 모세는 그 일을 감당하도록 부름 받은 하늘의 사제였다. 그가 이집트 제국으로 돌아가 나일 강에 지팡이를 담그자 강이 피가 되어 흐른다. 나일 강은 고대 이집트 문명의 젖줄로, 제왕의 권력과 부의 근원으로 떠받들려 졌던 대하(大河)다. 그러나 모세는 그 권력과 부의 밑바닥에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폭로한 것이었다. 누구의 피였던가? 인간을 노예로 부리고 그들을 계속 희생시키는 현실을 하나님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이 장면에 압축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후 대탈출을 하게 되는 히브리인들에게 하나님은 "내가 너희들을 저 압제의 굴레에서 해방시킨 하나님 여호와다"라고 일깨우신다. 자유와 해방의 절대자에 대한 기억을 이들의 집단의식으로 형성하는 과정이었다. 이 기억과 뜻을 마음과 몸에 새기는 인간과 집단은 결국 떨기나무의 불꽃이 된다. 하나님과 자신을 일치시키는 신앙의 결과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본 떠 창조되었다는 믿음 대로다. 떨기나무는 미디야 광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키가 낮은 덤불숲 나무였다. 그건 힘이 없는 히브리 백성들의 처지 그대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에 하늘의 뜻이 타오르면, 광채와 불길이 일어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성서의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신을 드러낼 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대로의 형상을 취하시기 때문이다. 떨기나무 불꽃은 예수시대에 성령의 불로 모습을 바꾼다. 인간은 신의 뜻을 받아 살면, 그런 빛과 뜨거움을 지닐 수 있는 존재다. 모세의 시대 이후 출현한 예수가 회당에서 읽은 성서 이사야서의 핵심은 "갇힌 자를 풀어주고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이었다. 이사야서를 통해 하나님이 보여주신 세상은 사자와 양들이 함께 뛰놀며 누구도 다른 이를 해치지 않는 평화의 나라였다. 자유, 해방, 그리고 평화의 하나님은 압제, 속박, 전쟁의 현실과 맞서신다. 결코 그 반대가 아니다. /성공회대 교수

2014-06-15 13:52:05 메트로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