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人 머니 산업 IT·과학 정치&정책 생활경제 사회 에듀&JOB 기획연재 오피니언 라이프 CEO와칭 플러스
글로벌 메트로신문
로그인
회원가입

    머니

  • 증권
  • 은행
  • 보험
  • 카드
  • 부동산
  • 경제일반

    산업

  • 재계
  • 자동차
  • 전기전자
  • 물류항공
  • 산업일반

    IT·과학

  • 인터넷
  • 게임
  • 방송통신
  • IT·과학일반

    사회

  • 지방행정
  • 국제
  • 사회일반

    플러스

  • 한줄뉴스
  • 포토
  • 영상
  • 운세/사주
오피니언>칼럼
기사사진
[안상미의 와이 와인]<254>한 귀퉁이 접힌 명함을 받는다면?…'RSRV'

<254>메종 멈 'RSRV' 1800년대 사교장이라고 연상해보자. 만나는 이들과 콜링 카드를 교환한다. 지금으로 치면 명함인데 받고 보니 한 쪽이 접혀있다. 웃으며 사과의 뜻을 받아들인다. 무슨 수수께끼 같겠지만 그 옛날 서구에서 상류층들이 메세지를 주고 받는 방식이었다. 서로 지켜야할 에티켓이 엄격했고, 사람들 앞에서 체면 구기기를 죽기보다 싫었했던 시절 얘기다. 왼쪽 위에 한 귀퉁이가 접혀있다면 이별이다. 오른쪽 위에가 접혀있다면 방문했었다는. 아래 양 귀퉁이가 접혀있다면 무도회에 같이 가자는 말이고, 오른쪽이 얇게 접혀졌다면 사과의 뜻을 전한다. 샴페인 하우스에서도 이런 메세지가 통했다. 하우스 주인들은 최고의 품질이다 싶은 샴페인은 시중에 풀지 않고 소수 VIP나 친한 지인들을 위해 저장고에 쟁여뒀는데 이들은 직접 방문해 와인을 잘 받았다는 표시로 카드 한 쪽을 접어놓고 갔다. 특별한 이들을 위해 'ReSeRVed' 혹은 'RSRV'로 표시된 와인이 세상 밖으로 나온게 바로 RSRV다. 의미를 살리기 위해 약자를 그대로 와인명으로 썼다. RSRV란 이름이 생소하다면 샴페인 하우스 '멈'을 떠올리면 된다. RSRV는 메종 멈의 프라이빗 컬렉션이다. 그만큼 모든 뀌베를 그랑크뤼 포도밭에서 재배한 포도로만 양조한다. RSRV의 수수께끼를 하나하나 풀어보자. 푸는 과정이 곧 RSRV의 본질을 가장 빨리 이해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와인명과 한 쪽 구석이 접힌듯한 레이블에 대해선 궁금증이 풀렸다. 다음은 낯선 와인병의 모양이다. 안정적으로 넒은 하부에 가느다란 목을 가지고 있다. 힌트는 다시 19세기다. 19세기 식사 테이블마다 올려져 있던 물병, 혹은 테이블 와인을 담아뒀던 카라페의 모양을 본따 만들었다. 식사할 때 같이 올려놓고 마시는 샴페인을 만들겠다는 의도다. RSRV의 모든 샴페인은 좋은 음식과의 페어링을 염두에 뒀다. 'RSRV 블랑 드 블랑'의 경우 한 모금 입에 담으면 다른 샴페인보다 버블이 조밀하다고 느껴진다. 실제 일반 샴페인이 6기압이라면 블랑 드 블랑은 4.5기압이다. 버블을 섬세하고 정교하게 해서 음식과 같이 마실 때 부담이 되지 않도록 했다. 그래서 샤도네이 품종으로만 만들었지만 날카로운 산도가 아니라 크림 같으면서 신선하다. 이와 함께 특정 해에 재배한 포도로만 만드는 빈티지 샴페인이지만 그 해의 특징을 강조하기 보다는 매년 같은 향과 맛을 낼 수 있도록 한다. 음식과 즐기는 샴페인인 만큼 기존 예상하고 있는 풍미를 벗어나면 안된다는 의미에서다. 'RSRV 뀌베 4.5'의 4.5는 5곳의 크랑크뤼 포도를 섞어서 4년간 셀러에서 숙성했음을 뜻한다. 피노누아 60%, 샤도네이 40%로 만들어 조화로우면서 다채롭다. 피노누아는 힘과 구조감을, 샤도네이는 우아함과 신선함을 줬다. 흰 과일이나 꽃향과 함께 이어지는 볶은 커피나 모카향이 인상적이다. 육류나 향신료 음식과도 잘 어울릴 샴페인이다. 'RSRV 뀌베 랄루'는 피노누아와 샤르도네를 반씩 섞어 만들었다. 40년간 RSRV를 이끌며 미식 페어링에 힘을 썼던 르네 랄루에게 헌정하는 샴페인이다. 입 안에서 동글면서도 단단해 원석도 좋은데 커팅도 잘한 다이아몬드의 느낌이다. 에피타이저 보다는 메인 음식과 같이 할 만큼 무게감으로 초콜릿과도 잘 어울리는 샴페인이다.

2024-09-26 15:53:45 안상미 기자
기사사진
[이정희 大記者의 西村브리핑] 임종룡 회장, 찜찜하게 살아남았지만

"우리은행이 법상 보고를 제때 안 한 부분은 명확하게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 일반적인 회사라면 이 정도 발언은 조금 화난 수준의 경고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수장이 특정 금융인과 금융회사를 찍어 한 말이라면 엄청 센 발언이다. 그것도 공영방송을 통해서. 지난 달 25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이같이 말했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과 우리금융지주에 대해 제재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정신 차리도록 뭔가 후속 조치를 하겠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우리은행은 2020년 4월부터 올해 6월까지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전 회장의 친인적을 대상으로 42건 616억원에 달하는 대출을 실행했으며 이 중 350억원아 특혜성 부당대출로 밝혀졌다. 손 전 회장은 2017년 우리은행장에 취임해 2023년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9~10월께 여신감리 중 해당 사실을 인지했으나 올해 1월에서야 자체 감사를 진행했다. 대출에 문제가 있다고 인지하고도 관련 대출에 대한 이렇다 할 통제 조치가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금감원에 사고 사실을 지각 보고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도 지난 12일 우리금융의 부당대출 책임론 공방 질문과 관련 "금감원이 검사를 진행 중이고, 정기검사도 곧 진행을 시작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금감원의 엄정한 검사가 이뤄질 것으로 생각하고 진행 상황을 면밀히 살펴 보겠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다음달 우리금융과 우리은행의 정기검사를 한다. 당초 내년에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부당대출과 보험사 인수 적정성 등을 살펴보기 위해 일정을 1년 앞당겼다.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이 이 정도 언급했으니 임 회장에 대한 뭔가 조치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잇따랐다. 당사자인 임 회장과 우리금융 측이야 죽을 맛이겠지만 보는 사람들은 흥미진진했다. 전직 금융위원장과 검사 출신 금감원장이 맞붙은 큰 싸움답게 먼지도 많이 나고 볼거리도 많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쯤이면 뭔가 신호가 갔을 것으로 보였다. 대개 지주회장이 꼬리를 내린다. 모든 일에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며 선처를 바라는 수순에 들어가게 마련이다. 예상대로 임 회장은 지난 달 28일 긴급임원회의를 열고 "부당대출로 국민에게 큰 심려를 끼친점에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거취와 관련해서도 조사 혹은 수사 결과가 나오면 그에 맞는 조치와 절차를 겸허하게 따르겠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지난 추석을 전후로 사태가 관전자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임 회장은 살아남고 밑에 조 행장이 책임지는 쪽으로 봉합이 됐다는 소식이다. 최근에 만난 전직 금융위원장 A씨는 "임 회장이 살아남는 것으로 해결됐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며 "금감원 보고 누락이 임 회장의 잘못은 아니지 않냐"고 말했다. 금융위원회 전 고위 관료 B씨도 "임 회장 자리를 노리던 몇몇한테 경고가 내려지면서 임 회장은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방향이 잡혔다"고 전했다. 금감원 모 고위 간부도 "전 금융위원장인 임 회장을 몰아세우면 금융위와도 사이가 불편해지는 것은 물론 임 회장과 조 행장 자리가 공석이 되면 경영공백 사태에 빠지게 되는 상황이라 임 회장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분위기로 흐르고 있다"고 밝혔다. 찜찜하긴 하지만 결론적으로 임 회장은 살아남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임 회장은 취임 초기부터 내부통제를 당부했으나 계속되는 횡령 사고와 부정 대출 사태에 그의 노력은 공염불이 됐다. 무엇보다 잇따른 횡령사고, 파벌 싸움 방치, 특정학맥 중용 등 조직 관리 능력에 부족함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부정적 평가는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2024-09-25 16:59:33 이정희 기자
기사사진
[이수준의 부동산수첩] 옥죄는 주담대, 서로 다른 시각

서울 지역 주택 매매거래가 큰 폭으로 늘고 있다. 반면에 지방에는 미분양 주택이 쌓여 있다. 부동산만큼 수요가 비탄력적인 시장도 없다. 수요가 비탄력적이라는 말은 집 산다는 사람을 말릴 수 없다는 뜻이다. 다만 주택시장은 공급도 비탄력적이다. 그렇다면 집값 안정을 위해서는 금리를 올리는 것이 가장 빠르다. 그러나 금리는 주택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두루 작용하기에 단순히 올리고 내리기 어렵다. 어느 나라든 자금조달을 위해서 국채를 발행한다. 일정 기간의 이자와 원금반환을 약속하는 국채는 조세와 함께 재정을 지탱하는 중요 재원이다. 전 세계 투자자들은 어느 국가의 국채를 보유할지 저울질을 한다. 마치 어느 은행에 돈을 맡길지와 같은 문제이다. 지금 미국이라는 은행은 한국보다 훨씬 높은 수익률을 제공한다. 더구나 미국은 원금을 떼일 염려가 없는 우량은행이다. 따라서 한국이 투자금을 끌어오려면 미국보다 금리가 높거나 최소한 비슷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현재의 상황을 비정상적인 '금리 역전' 상황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계속 자금조달을 할 수 있는 것은 국채의 상당 부분을 자국민이 각종 도급, 면허발급, 등기, 등록 신청 시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준조세의 성격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국내 기준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은 현상은 또한 원화 약세를 지속시킨다. 원화의 가치가 떨어지면 수입 제품의 원화 환산 가격이 높아지고 완성품이든 원자재든 상당 부분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소비자 물가가 상승한다. 기준금리를 내릴 수가 없는 상황인데도 금리 인하 기대는 여전하다. 기준금리가 요지부동임에도 일부 시장금리를 소폭 내린 것을 다시금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한다. 주택 담보 대출자들은 주택 관련 금리만 오르는 것에 볼멘소리가 커진다. 물론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미국의 금리가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는 국내금리가 '정상적'으로 미국금리를 넘어서는 원상복구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최근 정부는 대출자의 소득 수준에 맞추어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축소했다. 더불어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가산금리를 비수도권보다 더욱 높였다. 고금리에도 공급 부족으로 인한 집값 상승에 여전히 빚투, 영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가계대출의 목적이 생활자금이라면 문제가 안되겠지만, 사실상 상당수가 주택가격을 밀어 올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금융당국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중금리가 주춤하는 시기에 되레 금융감독원이 은행 부행장들을 소집해 대출 현장 점검까지 벌이며 주택 관련 대출금리를 올리는 까닭은 은행의 이윤을 높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주담대의 이자가 오르고 대출 건수가 줄어들면 시중은행의 영업이익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즉, 저소득 무주택자를 위한 디딤돌대출이나 청년을 위한 버팀목 대출과 같은 정책금융이 증가해서 가계대출이 커져 보이기는 하지만 현재의 금융규제의 노림수는 그중에서도 주택 수요를 잡아서 집값 안정을 겨냥하는 것이다. 소비자 부담을 늘리는 것이 아닌 무리한 지출 자체를 줄이는 목적인만큼 그 이후에 풍선효과로 카드론까지 긁어서 영끌을 한다면 이를 위한 다음 타깃은 신용대출이 될 수도 있다. 투자도 좋지만 시간이 갈수록 무리한 대출은 독이 될 수도 있다. 국채금리의 비교를 마저 해보자. 장기채권은 유동성, 금리변동 등의 위험을 고려했을 때 단기채권에 비해 높은 수익을 제공하는 것이 보통이다. 최근 미국채의 1년 만기 수익률은 4.2%인데 비해, 5년 만기는 3.5%이다. 반면에 한국은 1년 만기와 5년 만기의 수익률이 거의 3%로 큰 변화가 없다. 미국은 금리가 내리더라도 국내 금리가 크게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게 지금 세계시장의 평가이다. /이수준 로이에아시아 컨설턴트 대표

2024-09-25 15:44:29 윤휘종 기자
기사사진
[김준형의 '청맹과니'] 염치없는 선배의 뻔뻔한 부탁

사막 한 가운데 물펌프가 하나 있었다. 목마른 나그네가 달려가 보니, 펌프 옆에 한 바가지의 물과 다음과 같은 팻말이 있었다. '누구든 목을 축이셔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펌프 옆의 바가지에 있는 물은 절대로 마시시면 안 됩니다. 이 물은 마중물입니다. 이 물을 펌프 안에 넣고, 펌프질을 해야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떠나실 때는 잊지 마시고 한바가지 가득 물을 채워 주세요. 나중에 오시는 분을 위해서입니다.' 의정갈등이 7개월에 접어들고 있다. 그동안 이 사태에 대해서 기고를 해 달라는 요청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후배 전공의 선생님들과 의대생들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얼마 전, 총리께서 '환자 떠난 전공의가 제일 잘못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은 사실이 아니다. 제일 잘못한 사람은 의료 현실을 잘 모르면서 무리하게 정책을 추진한 정부와 정부에 현실을 잘 전달하지 못한 선배의사들이다. 전공의들이 주 80시간을 근무한다고 알려졌지만, 실제 근무 시간은 훨씬 더 길다. 필자도 전공의 시절에 하루 3-4시간에 불과한 수면부족이 가장 괴로웠다. 수면부족이 이어지면, 처음에는 소리가 잘 안 들린다. 그리고 눈도 어른거려서 글자가 잘 안 보인다. 걸을 때는 공중을 걷는 것 같고, 가끔은 가슴이 두근거린다. 숨이 잘 안 쉬어 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피가 튀고, 사람이 죽어가는 현장에서 전공의들은 정신줄을 놓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조선시대 노비들에게도 이렇게 혹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폐단은 진작에 없어져야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값싸고 질좋은 의료'는 최저시급을 받으면서도, 이런 희생을 감내하는 전공의들의 희생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있다. 지난 2월, 전공의들은 사직서를 쓰고 병원을 떠났다. 사실 이들이 떠나버린 것은 일이 힘들어서도 아니고, 수면부족 때문도 아니다. 희망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인간이 지독한 고통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해 주는 원동력이 희망이다. 많은 분들이 전공의들에 대해서 불편한 마음을 가지실 것이다. 충분히 그 마음은 이해한다. 그렇지만 어떤 직장이든 '앞으로 희망은 없지만, 당신은 계속 최저시급을 받으면서 하루 20시간을 일해야 해. 휴일은 꿈도 꾸지마.'라고 말하면, 사직하지 않고 버티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희망을 잃은 사람이 절망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전공의들이 절망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들이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비난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우리 선배의사들이다. 우리는 전공의들이 희망을 잃을 때, 또 사직하고 방황할 때, 아무 것도 해 주지 못했다. 우리는 무능했다. 의학교육시스템은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이루어진다. 전공의가 빠져 버리면, 망가진 톱니바퀴처럼 지식의 전수가 완전히 멈추어 버린다. 이제 세계 최고 수준이던 한국의 의료기술과 지식은 맥이 끊길 위기이다. 염치없다는 것은 잘 알지만, 후배님들에게 한마디 남기고 싶다. "여러분들의 절망과 고통은 잘 알지만, 말라가는 펌프에 마중물 한바가지 정도는 남겨 줄 수 없을까? 그리고 너무 늦지 않았다면, 비록 무능한 선배들이지만 함께 다시 시작해 볼 수는 없는 것일까?" 부족한 선배가 용기를 내어 뻔뻔한 부탁 한마디를 남겨본다. 김준형 / 칼럼니스트(우리마음병원장)

2024-09-24 14:46:37 구현재 기자
기사사진
[임경수 교수의 라이프롱 디자인] 31.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정말 망할까

한 번은 지방대학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모임이 열렸다.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이동시간을 공평하게 맞추려고 KTX 오송역에 회의 장소를 잡았다. 멀게는 제주도에서 청주공항으로 올라오고, 대구·부산·김해·광주·전주에서는 고속철도에 잇닿아 도착했다. 이렇게 모처럼 지방대학 교수들의 수사적 향연이 시작되었다. 그 때 몇 번이고 들어서, 귀에 못이 박힐 만큼의 레토릭이 있었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한다'는 것이다. 봄이 오면 벚꽃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따뜻한 바람을 타고 순차적으로 꽃을 피우겠지만, 지방대학들은 남쪽에 있는 대학들부터 먼저 폐교의 위기를 맞을 것이란 얘기다. 대학에서 시작된 이른바 '벚꽃엔딩'을 실험해보는 일도 벌어졌다. 교육학자인 양정호 교수가 서울 경복궁을 기점으로 전국 대학들의 주소와 위도 및 경도를 활용해 거리를 계산했다. 그런 다음, 이 거리에 따른 대학의 신입생 경쟁률, 신입생 충원율, 그리고 졸업생 취업률을 분석했다. 그 결과는 분명한 '거리의 패턴'을 보여주었다. 데카르트가 만든 좌표평면에 지방대학들의 위치가 점으로 찍혀 있는데, 거리 축(x축)의 크기가 커질수록 경쟁률 축(y축)의 크기는 감소하는 '음의 상관관계' 분포를 뚜렷하게 나타냈다. 서울에서 떨어진 거리가 멀어질수록 대학의 3가지 지표 모두가 감소하는 것이다. 지방도시의 인구감소는 더 이상 지방소멸이 수사가 아님을 알려준다. 출생아 수가 급감하고, 자연히 학령인구가 줄어드니 지방대학의 소중한 입학자원이 희소한 게 당연하다. 그나마 지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재목(材木)들이 괴나리봇짐을 싸듯 서울로 향한다. 지방도시의 청년 유출은 '강물을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를 연상시킨다. 우리나라의 '벚꽃엔딩'이 거리에 울려퍼지는 사이 외국에선 '빛 좋은 개살구'가 무르익고 있다. 대학 졸업장이 부질 없는 사회라는 거대담론이 열리고, 미국에선 고등학교 졸업자의 대학진학률이 63%로 10년새 가장 낮다는 소식도 들린다. '캠퍼스의 위기', '폐허의 대학'은 이렇게 보면 지방대학이니 수도권대학이니 편가를 문제가 아니다. 벚꽃 피는 순서가 아니라 여름이 오기 전에 고목의 존폐를 단단히 각오하라는 시그널이다. "대학, 스스로 재발명하라. 그러지 않으면 소멸될 것이다(reinvention or extinction)." 미국에서도 지극히 지방에 있는 애리조나주립대학의 일성이다. 대학에 난데없이 '은퇴자 커뮤니티'가 들어서고, 구글·엔비디아·오픈AI 같은 첨단기술의 성인교육 경쟁이 치열하다. 벚꽃 피는 순서는 고사하고, 허리띠를 거듭 고쳐 매는 대학혁신이 코앞에 있다. 며칠 전 대학의 입학자원을 결정하는 수시모집이 끝났다. 고등학교 졸업(예정)자를 차치하고 평생학습자 전형의 신입생 경쟁률을 보면 눈이 번쩍 뜨인다. 경상권 및 전라권에 있는 대학들의 성인학습자와 기업 재직자 지원 비율이 모집정원을 넘어섰다. 적게는 100명 모집에 140명이, 많게는 300명 모집에 500명이 대학의 문을 두드렸다는 얘기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성숙한 학습자'가 대학의 신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임경수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 교수/성인학습지원센터장

2024-09-23 14:27:22 윤휘종 기자
기사사진
[신세철의 쉬운 경제] 한국 기준금리 내려야 할지 의문

한국경제는 장기간 단기 부양책에 치중하다 보니 잠재성장률은 2% 아래로 추락한 데다 재정적자 누적에다 경기부양 유혹으로 (자산)인플레이션 압력이 잠재하고 있다. 서둘러 물가를 잡으려다가 경기침체를 가속화하고, 성급하게 경기를 부추기다가는 물가 불안을 재연하고 증폭시킬 수 있다. 스태그플레이션 아래서, 일거리는 줄어들고 금융비용, 생산비용이 높아 저소득 가계, 한계기업의 생존을 더욱 위협하고 있다. 지금 같은 진퇴유곡 국면에서 섣부른 대책을 펼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다가는 경제는 균형을 잃게 되어 무기력해질 우려가 있다. 2024년 현재, 시중 유동성(M2)이 무려 4,000조 원을 돌파한 데다 가계부채, 기업부채, 국가부채가 3면으로 확대되어 총액이 물경 5,800조 원에 이른다. 가계·기업·국가의 부채는 갚을 능력이 있을 때는 각각 책임지지만 한계를 넘어서면 전 국민이 고통을 받다가 미래의 주인인 후손들이 짊어져야 한다. 만약 이래도 저래도 갚을 능력이 보이지 않을 때는 가계와 기업은 자국 통화가 아니라 남의 나라 화폐를 선호하게 되어 경제정책 효과가 무력해진다. 그 정도가 심해지다 보면 경제적 주권을 빼앗기게 되는 사례들은 포퓰리즘 국가들이 아니더라도 볼 수 있다. 빚이 많은데도 성장에 욕심을 내다가는 상황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예측 불가능하다. 물가가 안정 기조에 접어들었다고 착각하고 저성장 기조에서 성급하게 탈출하려 욕심을 내 비추다가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되살릴 가능성이 크다. 물가가 안정목표 수준으로 접근한다고 하지만, 물가 불안 요인들은 곳곳에 도사린다. 기후 위기, 경제패권 쟁탈전, 산업간 경쟁력 양극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지구촌 지역 분쟁으로 향후 물가 방향을 예측하기 어렵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유동성 완화와 재정팽창이 동반하는 사태가 발생하면 초인플레이션 위험으로 내몰릴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한다. 금리는 생산, 소비, 투자 같은 모든 경제활동의 기회비용이다. 기준금리 크기의 영향을 받는 시장금리는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더한 범위에서 결정되어야 경제가 중장기 균형으로 이룬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 금리는 우리나라 거시경제 현상을 균형 있게 반영해야지 남의 나라를 따라 올리고 내리다 보면 자국 경제를 불균형으로 이끌 수 있어 위험과 불확실성을 잉태하기 마련이다. 자국 거시경제 현상보다 남의 나라를 따라 (기준)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면 불균형이 확대되어 대내외충격을 시장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는 재앙을 일으킨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0.50%p 내렸어도 아직은 우리나라 3.50%보다 1.50%p나 높은 5.00% 수준이다. 골치 아픈 부동산가격 문제가 아니더라도 양국 간의 거시경제 현상을 비교할 때 미국을 따라 기준금리를 내려야 할지는 정말 의문이 아닐 수 없다.

2024-09-23 09:39:50 최규춘 기자
기사사진
[김소형의 본초 테라피] 아낌없이 주는 약재 '꾸지뽕 나무'

쉘 실버스타인의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열매, 가지, 줄기 그리고 그루터기까지 한 사람을 위해 전부 내주고도 늘 행복했던 나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아낌없이 모든 것을 약재로 주는 나무가 있다. 바로 '꾸지뽕나무'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동아시아 지역에 자생하는 꾸지뽕나무는 이름에서 유추가 가능하듯 뽕나무에 속한다. 뽕나무가 아닌데 굳이 뽕나무라 하여 꾸지뽕나무가 됐다는 우스갯소리 같은 설이 있는데 뽕나무와는 다르게 줄기에 가시가 있다. 꾸지뽕의 열매는 호두 정도의 크기이며 늦가을이 되면 붉은 빛을 띠며 익는다. 표면은 울퉁불퉁하고 눌러 보면 하얀 진액이 흘러나오는 특성이 있다. 그냥 먹기도 하지만 열매가 큰 편이라 약재로 쓰거나 잼, 술 등을 담그는 데 주로 쓴다. 꾸지뽕 열매는 영양 성분만 따져보아도 얼마나 몸에 좋은지 알 수 있다. 식이섬유 함량은 사과나 고구마보다도 많으며 각종 필수 미네랄과 비타민이 골고루 들어있다. 기본적으로 칼슘, 칼륨, 마그네슘이 풍부하며 항산화 성분을 대표하는 비타민인 베타카로틴과 비타민 C를 비롯하여 비타민 B군, 비타민 E 등 어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 혈액의 응고와 염증 완화로 위장 건강을 돕는 비타민 K의 경우 대표 식품인 양배추를 능가한다. 열매보다 더 좋은 건 꾸지뽕나무의 잎이다. 얼핏 보면 감잎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영양소 면에서도 열매보다 월등하고, 활성산소 제거와 항암 작용을 하는 플라보노이드가 함유돼 있어 건강식품으로도 인기가 높다. 또한 볕에서 말린 잎을 우려서 차로 간편하게 즐길 수도 있다. 이외에도 줄기, 옹이, 뿌리까지 꾸지뽕나무는 전부 약재로 사용될 만큼 어느 한 군데 버릴 곳이 없다. 또한 꾸지뽕의 효능을 몇 가지 살펴보면 우선 여성들의 자궁 건강을 지키고 자궁암에 효과가 있다. 신경통이나 관절염도 마찬가지인데 잎과 줄기, 뿌리 등을 달인 물을 꾸준히 음용하면 통증을 줄여준다.

2024-09-23 05:45:31 최규춘 기자
기사사진
[김지희 변호사의 손에 잡히는 法] 과거 양육비 성인 후 10년이내 해야

이혼한 부부 사이에서 자녀 양육비의 지급을 구할 권리는 당사자의 협의 또는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해 생긴다. 구체적인 청구권의 내용과 범위가 확정되기 전에는 '상대방에 대하여 양육비의 분담액을 구할 권리를 가진다'라는 추상적인 청구권에 불과하다. 당사자 사이의 협의 또는 가정법원이 당해 양육비의 범위 등을 재량적·형성적으로 정하는 심판에 의해 비로소 구체적인 액수만큼의 지급청구권이 발생한다(대법원 2006. 7. 4. 선고 2006므751 판결 등 참조). 이혼한 부부 사이에서 어느 일방이 자녀를 양육하게 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양육하는 일방은 상대방에 대해 현재 및 장래 양육비 중 적정 금액의 분담을 청구할 수 있다. 또 부모의 자녀양육의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녀의 출생과 동시에 발생한다. 따라서 과거 양육비에 대해 상대방이 분담함이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비용의 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대법원 1994. 5. 13. 자 92스21 전원합의체 결정 등 참조). 그래서 과거 우리 법원은 "당사자의 협의 또는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해 구체적인 지급청구권으로서 성립하기 전에는 과거의 양육비에 관한 권리는 양육자가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재산권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고, 따라서 이에 대하여는 소멸시효가 진행할 여지가 없다"고 결정해왔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결정으로 "이혼한 부부 사이에서 어느 일방이 과거에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면서 생긴 비용의 상환을 상대방에게 청구하는 경우, 자녀의 복리를 위해 실현되어야 하는 과거 양육비에 관한 권리의 성질상 그 권리의 소멸시효는 자녀가 미성년이어서 양육의무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진행하지 않는다. 자녀가 성년이 돼 양육의무가 종료된 때부터 진행한다고 봐야 한다. 사건본인이 성년에 이른 때부터 10년이 훨씬 지난 후에 이뤄진 과거 양육비 청구는 과거 양육비에 대한 권리가 이미 시효로 소멸됐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24. 7. 18.자 2018스724 전원합의체 결정). 과거 양육비에 관한 권리는 구상권의 실질을 가진다. 자녀가 성년이 돼 양육의무 자체가 종료한 이상 이를 과거에 형성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인정되는 일반적인 금전채권과 비교해 보더라도 재산적 권리라는 본질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 따라서 과거 양육비에 관한 권리가 아직 당사자의 협의나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해 그 내용과 범위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소멸시효가 진행할 수 있는 채권 내지 재산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과거 양육비를 청구하는 경우에는 사건본인이 성년이 된 이후 10년 이내에는 청구하도록 주의를 해야 하겠다.

2024-09-22 13:19:34 신하은 기자
기사사진
[김승호의 시선] "콩 싸오(khong sao)"

베트남어 "콩 싸오(khong sao)"를 우리말로 풀면 "괜찮아", "문제 없어" 정도가 된다. 영어 "노 프라블럼(no problem)", 중국어 "메이원티(没问题)"와 유사한 말이다. 기자는 9월초 베트남 하노이에 잠시 머물렀다. 마침 베트남은 태풍 '야기' 때문에 비상 상태였다. 간만에 휴가를 이용해 간 베트남에서 예기치 못한 복병을 만난 셈이다. 칼럼의 서두에 언급한 "콩 싸오"는 잘 알지도 못하는 베트남 말 가운데 내가 사흘간 하노이에 머물면서 가장 많이 쓴 단어다. 베트남 지인들이 휴대폰으로 태풍이 오는 경로를 보여주며 걱정하는 소리에 이방인인 내가 외친 말도 "콩 싸오"였다. 현지인을 통해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태풍이 온다며 사나흘치 식량을 집에 사다 놓은 이도 적지 않았다. 실제 태풍이 오기 직전 기자가 잠시 들른 식료품 가게에는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 물건을 사느라 혼잡했다. 일부 마트는 문을 닫고 아예 장사를 접었다. 한 한국식당 주인은 태풍이 온다며 직원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느라 분주했다. 베트남 지인이 보여준 유튜브엔 태풍에 깨진 유리창이며 바람에 날아다니는 물건 등의 영상이 수두룩하게 올라왔다. 그것을 보면서도 내가 한 말은 역시 "콩 싸오"였다. 어떤 이는 내가 말끝마다 "콩 싸오"를 외친다며 핀잔을 줬다. 역대급 태풍이 베트남 곳곳을 강타하고 있는데도 "괜찮아", "문제 없어"라고 말하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되내인 "콩 싸오"는 결국 안전불감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관련 뉴스를 종합해보면 슈퍼태풍 야기로 인해 베트남에선 298명이 사망하고 35명이 실종되는 등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베트남 정부는 이번 태풍으로 약 40조동, 원화로는 2조원이 훌쩍 넘는 피해가 발생했다고 집계했다. 이에 따라 베트남의 올해 GDP성장률이 0.15%포인트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베트남 친구들이 수시로 태풍의 경로와 뉴스를 예의주시하며 걱정하는 모습이 어쩌면 당연했다. 안전불감증에 "콩 싸오"만 외친 내가 부끄럽고 미안했다. 괜찮은 것이 아니었다. 문제가 없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 한국 사회로 눈을 돌리면 안전불감증 때문에 발생한 크고 작은 사고는 언급하기조차 벅찰 정도로 우리 주변에 많다. 이태원 참사가 대표적이다. 38명이 사망한 2020년 경기 이천 물류센터 공사장 화재, 지난해 여름 내린 폭우로 14명이 목숨을 잃은 충북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 등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어디선가는 안전을 무시해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나를 포함한 우리에게는 이젠 '안전불감증'이 아닌 '안전과민증'이 필요한 때다.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교훈을 이번 베트남 여행길에서 배웠다.

2024-09-22 11:35:43 김승호 기자
기사사진
[안상미의 와이 와인]<253>와인, 만원짜리를 고급이라고 내놨더니

고급와인 판매업자가 소장하고 있는 와인을 대거 풀었다. 상류층들이 호감을 가지고 너도나도 와인잔을 집어들었다. 찬사가 쏟아졌다. 왕실 행사니 얼마나 비싼 와인을 내놨을지 기대감이 표정에 그대로 나타났다. 먼저 레드와인에 대한 평이다. "향이 정말 좋네요. 과실미에 풍미까지 좋고, 깊은 맛이네요. 그렇죠?" "딱 내가 마시고 싶은 와인이에요. 한 잔 더 마시지 않을 수가 없네요." 다음은 샴페인 차례다. 판매업자의 제안에 다들 샴페인잔에 귀를 귀울였다. "(거품이 올라오는 소리가)마치 음악처럼 들리네요!" 영국의 소매업체 알디(Aldi)의 유튜브 채널에 한 영상이 올라왔다. 고급 와인상으로 가장한 저스틴 유랄디(Justin Youraldi)가 영국 웨스트석시스에서 열린 왕립국제경마 행사에 자리를 잡고 참석자들에게 와인을 따라준다. 그간 세계 최고의 와이너리들에서 수집해온 고급 와인이라고 내세웠지만 사실은 저렴한 마트 와인이었다. 알디는 매장수가 1000개가 넘는 영국의 슈퍼마켓 체인이다. 규모도 규모지만 영국에서 가장 저렴한 슈퍼마켓으로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몰래카메라 같은 이번 영상의 의도는 명백하다. 와인 좀 안다는 상류층이 맛을 봐도 고급 와인으로 느낄 정도로 자사 와인의 가성비가 좋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름인 저스틴 유랄디 역시 풀어보면 저스트 인 유어 알디(Just in Your aldi)다. '알디 마트에 다 있어요' 쯤이다. 다들 자신이 맛 본 와인을 한 병에 최소 20파운드(한화 약 3만5000원)에서 많게는 40파운드(약 7만원)로 예상했는데 실제 가격은 레드와인이 4.99파운드(약 8700원)에 불과했다. 물가 비싼 영국 기준으로 보면 데일리 와인에도 못 미치는 저렴한 와인이다. 가성비 와인을 위해 깔린 판인데 정작 사람들의 주목을 끈 것은 '와인 스노브(Wine Snob)'들이었다. 스노브란 속물 혹은 잘난 체하는 사람을 말한다. 와인 스노브라면 와인으로 잘난 체하는 사람, 와인 좀 아는 척 하는 사람 정도 일테다. 저스틴이 와인에 대해 설명하자 행사에 참석한 소위 상류층이라는 사람들은 동의하기 바빴다. 심지어 레드 와인의 포도를 두고 남아공의 유명한 포밸리에서 재배했다고 하자 한 남성은 그 지역을 잘 알고 있다고 답했다. 물론 남아공의 와인 산지 가운데 포밸리라는 곳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저스틴이 샴페인 잔의 소리를 들어보라고 유도한다. 큰 버블과 작은 버블의 소리가 다르지 않냐고 묻자 한 여성은 "정말 큰 차이가 나네요"라고 감탄한다. 큰 버블과 작은 버블을 언급한 것도 그렇지만 전문가도 구분할 수 없는 차이다. 알디가 2000명의 와인 애호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4명 가운데 한 명은 만원 짜리 와인과 10만원 짜리를 구분할 수 없다고 답했고, 절반 가까이는 내놓은 와인에 대한 평가가 좋으면 더 비싸게 주고 샀다고 과장한다고 했다. 와인 평론가가 아닌 이상 가격 차이를 구별하기도 힘들 뿐더러 와인 역시 아는 척하기보단 좋은 사람과 기분 좋게 즐기면 될 뿐이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당신은 '와인 스노브'입니까.

2024-09-19 14:58:18 안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