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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홍경한의 시시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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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미술진흥법'인가 '미술유통법'인가

1962년 한국 최초의 영화 기본법인 '영화법'이 제정됐다. 1999년 예술의 자유 보장 및 건전한 공연활동 진흥을 위한 '공연법'이 만들어졌다. 2016년엔 문학에 대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지원 근거를 마련한 '문학진흥법'이 공표됐다. 이 밖에도 출판, 음반 등의 개별법이 속속 국회 문턱을 넘었다. 하지만 미술 분야 전체를 통일적으로 규정하는 법령은 없었다. 예술의 주요 장르 중 하나지만 '문화예술진흥법'상 세부 장르로만 다뤄졌다. 이에 (사)한국시각예술저작권연합회 등 미술계 21개 단체는 문화예술진흥법으론 미술진흥을 위한 실효적 체계구축에 한계가 있고, 미술 생태계의 다양한 주체를 포괄하지 못한다며 '미술진흥법'의 조속한 마련을 촉구해왔다. 미술진흥법이 지난 6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21년 법안 발의 이후 2년여 만이다. 핵심 내용은 체계적인 미술진흥정책 추진과 미술 서비스업 신고 제도를 포함한 미술업계를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 구축, 작가의 권리 보장을 위한 '추급권(미술품재판매보상청구권)' 도입 등이다. 이중 추급권이 가장 큰 이슈다. 추급권은 미술품이 거래될 때마다 작가나 상속권자가 작품 판매 금액의 일부를 작가 본인이나 유족이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양도 불능의 상속 가능의 권리이다. 연주될 때마다 저작권료를 받을 수 있는 음악 작품과는 달리 미술품은 일단 한 번 양도하고 나면 원저작자에겐 더 이상 추가 수입이 생기지 않는다. 이에 다른 예술작품과 수입 형평성을 맞추면서 원활한 창작활동까지 보장하기 위해 생겨난 제도가 추급권이다. 1920년 프랑스가 처음 도입한 이후 영국, 독일, 캐나다, 이탈리아 등 전 세계 80여 개국에서 시행 중이다. 캘리포니아 등 미국 일부 주에서도 실행되고 있다. 그러나 추급권 도입을 둘러싼 미술계 구성원 간 시각차가 뚜렷하다. 작가를 포함한 창작자들은 미술 시장의 투명성 확보 및 건강한 미술생태계 확립 차원에서 환영하는 분위기인 반면, 화랑이나 옥션 등 미술 유통업계는 한국 미술 시장 성장을 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두 입장 다 수긍과 반론이 가능하다. 현재로선 지엽적인 측면을 벗어나 미술진흥이라는 소실점 아래 미술관계자들의 다층적, 다발적 논의가 과제로 남았다. 여기엔 국립현대미술관이 맡고 있는 기존 정부미술품 대여 기관 외, 지자체 및 공공기관으로 관리대상을 확대한 '공공미술은행'이나 '미술진흥원' 설치와 같은 미술진흥 전담 기관에 대한 것도 포함된다. 문제는 미술진흥법의 정체성이다. 그도 그럴 것이 기본 방향과 철학이 두루뭉술하다. 경매업, 화랑업, 미술품 대여·판매업, 미술품 감정업, 미술 전시업 등 33개의 조항 중엔 문화예술에 대한 존중보단 자본주의적 속성을 지닌 것이 수두룩하다. 이는 미술진흥법이 '미술유통법' 내지는 '미술업자법'처럼 비춰지는 이유다. 실제로 미술진흥법은 미술품에 대한 가치 평가 또는 취득과 처분에 관한 의견을 제공하는 전문가의 업무를 '미술품 자문업'으로 규정하거나 전시기획과 개최, 운영주체를 '서비스업자'로 묶고 있다. 초기 거론되던 평론가를 비롯한 이론가, 연구자들에 대한 안전망은 다루지 않는다. 이들은 미술진흥에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지만 고용형태가 불분명한데다 초현실적인 평론비와 원고료를 받고 있다. 심지어 10년 혹은 20년 전 평론을 재사용해도 그에 대한 저작료 등의 보상은 전혀 없다. 이외에도 '시각적 매체를 이용하는 표현'으로 한정하고 있는 '미술'에 대한 정의는 전근대적이고, '미술창작자'에 대한 정의는 아예 빠졌다. '예비 전문 인력 양성 지원'에 대한 부분 역시 누락됐다. 어떤 면에선 '미술업계 제도화'라는 명분 아래 제정된 '규제법'이라는 인상까지 심어준다. 미술진흥법은 손볼 데가 많다. 시행령에 앞서 보다 섬세한 논의와 조율이 필요한 게 한둘이 아니다. 시행령이 미술계에 미칠 파장을 생각하면 미술인들 먼저 의견을 모으고 합의된 개선안을 정부에 제시해야지 않나 싶다.■ 홍경한(미술평론가)

2023-08-23 13:07:22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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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작지만 색깔 있는 아트페어

아트페어(Art Fair)는 미술품을 사고파는 장터다. 최근 부쩍 늘어난 신생 페어까지 합하면 국내에만 100여개에 달한다. 개인 및 협·단체, 기업, 문화재단이 주관하는 것에서부터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 아트페어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대표적인 아트페어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SEOUL, 키아프 서울)다. 한국화랑협회가 주관하는 국내 최대의 미술품 마켓이다. 지난해부터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영국 프리즈(Frieze)와 공동주최하며 글로벌 아트 플랫폼으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22회를 맞은 올해 역시 9월 6일부터 닷새간 장을 연다. 장소는 코엑스다. 국내 최장수 아트페어인 '화랑미술제'(1979~)와 2012년 설립된 '아트부산' 등도 주요 페어로 꼽힌다. 나머진 고만고만하다. 소위 메이저를 제외하면 대개는 개념과 형식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자기 색깔 선명한 아트페어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몇몇은 관점과 대상, 접근방법 등에서 기존 페어들과 맥락을 달리한다. 2012년 출범한 '브리즈 아트페어'(Breeze Art Fair, 2023.8.18-20. 노들섬 노들갤러리, 이하 브리즈)도 그렇다. 사회적기업 ㈜에이컴퍼니가 주최하는 브리즈는 한국국제아트페어나 화랑미술제에 비하면 규모가 작다. 출품작 수는 물론 매출에서도 비교할 바가 안 된다. 하지만 브리즈는 '젊은 미술'의 산실로 통한다. 이는 생물학적 측면만이 아닌 성장 가능성까지 포함한다. 발전하는 상태로서의 젊음이다. 작품들 또한 마찬가지다. 브리즈는 10년의 세월 동안 1000여명의 신진 창작자들을 발굴, 지원함으로써 미술계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했다. 경력이 적고 미술품 유통채널을 확보하지 못한 청년작가들에겐 소중한 무대다. 10대1 내외의 경쟁률을 나타낼 만큼 작가들의 호응도도 높다. 학력, 전공 유무와 상관없이 작품성과 예술가로서의 재능을 우선하는 탓이다. 브리즈는 작품만 팔지 않는다. 예술가들이 현장에 어떻게 진입할 수 있는지, 예술에 있어 중요한 것과 알아야 할 것에 대해 조언하고 의견을 나눈다. 앞으로의 작업에 힘이 될 동료와 수집가들을 만나도록 장려하며 예술 활동에 필요한 여러 방안을 공유한다. 작가들 간 네트워크 조성, 전문가(평론가, 법률가, 기획자 등)들을 연결하는 오리엔테이션 및 현실에 입각한 강연 프로그램 등이 그 예다. 상생의 고민을 담은 지역과의 연대도 눈길을 끈다. 이른바 '로컬트랙'이다. 로컬트랙은 지역작가들의 중앙 진출을 돕고 더불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코자 지역의 기업이나 문화재단과 협력하는 협업 프로그램이다. 2022년 울산에 이어 올해는 부천문화재단, 제주문화예술재단이 함께한다. 향후 '글로벌트랙'을 통해 지구촌 청년미술인들 간의 교류로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전례 없이 난립하는 페어 속에서 그림 매매라는 본연의 목적 외, 건강하고 지속성을 지닌 미술생태계 구현에 관한 브리즈의 지향적 태도는 주목할 만하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미술 인프라를 생성하기 위한 노력과 풍부한 문화유산을 구축하기 위한 실천들은 브리즈가 반드시 영리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일러준다. 하지만 개인 기업이 짊어지고 가기엔 때로 벅차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좋은 작가 발굴은 사회적 책임과 무관하지 않으며, 그들의 올곧은 성장은 곧 문화적 자산이 된다는 점에서 이제라도 공공의 역할이 필요해 보인다.■ 홍경한(미술평론가)

2023-08-08 11:52:46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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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언론의 위기와 대안

최근 한 광역자치단체 산하 문화예술기관장이 바뀌었다. 새롭게 선임된 이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측근이다. 문화예술 경력은 없다. 누가 봐도 '낙하산'이고 '보은인사'다. 하지만 지역 언론 어느 곳에서도 문제의식을 내비치지 않았다. 전문성과 역량을 가늠할 수 없는 인사가 정치권과의 연줄을 통해 선임됐지만, 비판적 보도는 없었다. 권력에 무비판적인 언론의 '침묵'은 흔하다. 권력 영합주의적 기사는 넘쳐난다. 이와 같은 현상은 사적 소유형태로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역 민간언론일수록 심하다. 왜 그럴까. 여기엔 수익구조가 놓여 있다. 다수의 중소 언론사에도 적용되는 것이지만, 지역 민간언론은 지자체에 의해 연명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취재 대상이면서 동시에 매우 중요한 광고주로, 경영 안정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자금줄'인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내부에도 원인이 있다. 언론사는 지자체나 관계 기관이 제공한 보도자료를 지면에 옮기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따옴표 저널리즘'이다. 사실 여부는 따지지 않는다. 책임질 일도 없다. 비판적 혹은 심층적 분석기사는 드물다. 받아쓰기 기사에 비하면 몇 배의 노동력과 시간, 비용을 들여야 한다. 특히 적은 인력과 예산으로 살림을 꾸려야 하는 지역 언론사의 입장에선 녹록한 과정이 아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목을 매는 수익구조는 성역 없는 취재를 불가능하게 한다. 정치권력에 비판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사에 대해서는 아예 홍보비를 집행하지 않는 식으로 '관리'를 당하다 보면 권력 감시 역할의 부재를 낳고 '관언유착'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럴수록 정보 편향성은 심화되며 독자의 알권리 역시 무시되거나 왜곡된다. 기자들은 좀 다르지 않을까. 훌륭한 기자도 있다. 하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오늘날 기자들의 적지 않은 수는 언론인이라기보단 글 쓰는 회사원, 홍보 직종에 몸담고 있는 구성원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혹자에겐 정계 진출을 위한 발판이다. 유시민 작가와 변상욱 전 YTN 앵커의 말처럼 누군가에게 언론사는 출세를 위한 도구이자 '간이 정류장'인 셈이다. 일부를 제외하곤 언론은 건강한 담론 생성이라는 사회적 기능을 상실한 체제가 굳어가는 듯한 인상이 짙다. 저널리즘의 기업성도 심각하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가중될수록 독자의 신뢰를 잃는다는 점이다. 신뢰를 잃은 언론은 생존을 위한 고립이 더욱 심화되고, 살기 위해 다시 자본과 권력의 시종이 된다. 본질은 퇴행, 좋게 말해 악순환이다. 언론의 사명은 정직한 보도다. 공익과 정의의 편에서 사실을 추적하고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다. 언론의 힘도 그것에서 나온다. 많은 언론사들이 정론과 직필, 정도의 길을 표명하는 것도 그 중요성을 알고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론직필을 지키는 건 어렵다. 자본주의 시대, 온갖 회활(獪猾)한 유무형의 권력 앞에 지식인으로서의 책무가 몸에 밴 사회의 목탁 내지는 시대의 등불이 되기엔 기자 개인의 희생이 너무나 크다. 오랜 시간 '위기'를 말해왔으나 뾰족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선 언론사도 버팀목이 되어주지 못한다. 대안은 정론을 지켜가는 언론과 연대하려는 독자들의 현명한 선택이다. 한부라도 구독하며 소액이라도 후원해야 한다. 공정하고 투철한 직업의식을 지닌 기자를 응원하며 홍보비나 기타 재원으로 언론에 재갈을 물리거나 고사시키려는 권력에 다 같이 저항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가 우군이 되어 주는 것이다. 물론 언론 또한 책임의식과 사명감을 잃지 않아야 한다. 독자와 함께 지속가능한 저널리즘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또한 유효해야 한다. 그러할 때 비로소 언론은 강자의 나팔수 노릇에서 벗어나 약자의 편에 서서 본연의 본분과 책임의식을 다할 수 있다. 시민 민주권력은 그렇게 탄생한다.■ 홍경한(미술평론가)

2023-07-26 13:29:35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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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유인촌의 귀환

지난해 3월, 서울문화재단은 창립 18주년을 기념해 대표적 'MB맨'으로 통하는 유인촌에게 '특별공로상'을 수여했다. 과거 재단대표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촬영한 광고 출연료 2억7000만원을 기부금으로 기탁한 '선행'이 근거가 됐다. 당시 재단대표는 홍보자료를 통해 "사재 기부금으로 문화예술에 지원한 선행을 알리기 위해 특별공로상을 드린다"며 "대한민국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헌신해 온 노고"에 깊이 감사하다고 했다. "서울시민과 문화예술계 그리고 서울문화재단 임직원의 마음을 담았다"는 말도 덧댔다. 어이가 없었다. 이명박 정부시절인 2008년 2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된 직후 철 지난 색깔론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예술기관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크게 위축시킨 '숙청 활극'의 장본인이었던 유인촌에 대해 문화예술지원기관의 대표라는 이가 "대한민국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헌신해 온 노고" 운운하니 어찌 기가 막히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돈 몇 푼 기탁했다는 이유로 '코드'라는 형태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진보인사 적출에 앞장섰던 인물에게 서울시민과 재단 직원까지 언급하며 감사하다고 하는 역사인식의 부재는 절망 그 자체였다. 문화예술을 정치와 이념의 잣대로 탄압한 유인촌의 행태는 동종업계에서도 지적됐다. 그와 연극계 선후배 관계인 최종원은 2010년 8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문화 예술의 정책적 대안을 제시해야 할 주무장관이 이념적인 잣대로 좌파, 우파를 나누기 시작하고, 그냥 남의 목 자르고, 자기 패거리를 집어넣고 하는 그런 형태들이 굉장히 잔혹하다"고 했다. 이제 와 문화예술에 대한 서울문화재단의 철학을 묻고 싶진 않다. 비민주적이고 왜곡 편향된 가치관에다 막말과 욕설로 온갖 구설수에 올랐던 자에게 상까지 주며 치하하는 모습만으로도 이미 질문에 대한 답은 나와 있다. 그리고 특별공로상은 서울문화재단의 부끄러운 역사로 남았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국내 최초의 미술자료 전문박물관이다. 한국근현대미술 아카이브 구축을 목표로 주요 사료를 정리하고 이를 발판으로 국내외에 정확한 미술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2008년 설립됐다. 운영자인 김달진 관장은 1980년대부터 미술자료 수집에 공을 들였으며 공공문화유산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에도 앞장서 왔다. 지난해 7월,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대중과의 접점 차원에서 '선인장이 자라는 박물관'이라는 제목의 웹드라마를 제작해 온라인에 송출했다. 총 8화 분량의 이 드라마는 여러 등장인물을 통해 박물관 내부의 일상과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버무려 소개했다. 덕분에 다소 딱딱하게만 느껴지는 박물관의 이미지 개선에도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난 시청하지 않았다. 아니, 이명박 정권 시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전횡을 일삼던 유인촌이 박물관장 역으로 출연한 장면 이후 덮었다는 게 맞다. 웹드라마 제작 사례가 문화예술계에 어떤 의미를 남길 수는 있었을지 몰라도 그 의미의 한 축이 이념 및 정치 성향으로 예술가들을 가르고 억압한 주인공이라면 아무리 좋은 내용도 가치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나는 작년에도 유인촌에 관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럼에도 그를 재차 소환한 이유는 거창한 '완장'을 차고 다시 나타나서이다. 지난 6일 대통령실은 그를 '대통령 문화체육특별보좌관'으로 임명했다. 문화예술인 출신에 다양한 행정 경험을 두루 갖춘 이력을 임명 배경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내 시각엔 집권 2년 차 들어 노동, 시민, 사교육, 공직자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카르텔'로 규정하는 일이 빈번하지만 정작 'MB맨'들과 검찰 출신들을 정부 요직에 대거 기용하며 자신들만의 카르텔을 견고히 구축 중인 대통령다운 인사의 연장으로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유인촌의 귀환은 벌써부터 많은 이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어떤 이는 엄혹한 과거의 망령이 돌아오고 표현의 자유와 창작의 자유가 사라진 폭정의 시대가 열렸다고 했다. 혹자는 극우적 태극기부대 정권으로 향하는 윤석열 정부의 걸음에 국민의 우려와 시름이 깊다고 한다. 과거에 근거한 염려지만 윤석열 정부의 유인촌 문화특보 임명이 의미하는 게 결국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펼쳤던 블랙리스트의 재연을 주문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희석되지 않는다. 문화예술계에 가한 유무형의 폭력마저 관용으로 대한 채 면죄부를 주는 우리 예술계 종사자들의 남루한 문제의식과 무딘 비판력을 생각하니 다가올 미래가 섬뜩해지기까지 한다.■ 홍경한(미술평론가)

2023-07-12 14:19:10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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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시각예술과 '생성형 AI'

'생성형 AI'(Artificial Intelligence)는 말 한마디, 단어 하나만으로 인간이 10시간에 걸려 해야 할 일을 10초로 줄여준다. 자율적으로 작품을 생성할 수 있는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과 딥 러닝(deep learning) 기술을 활용해 기존 작품을 분석하고 패턴을 학습하며 인간 예술가의 직접적인 입력 없이도 여러 예술적 스타일을 모사한 작품을 만들어 내기까지 한다. 원한다면 도상에 대한 기초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더라도 그럴싸한 그림 하나쯤은 쉽게 얻을 수 있다. AI는 기술적 장벽을 간단하게 뛰어넘게 만듦으로써 보다 많은 이들이(예술가 포함) 예술적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AI 덕분에 인간은 제작 시간과 노동력을 줄이게 돼 경제적 효과를 보다 극대화할 수 있게 됐다. 인간 예술가와 실시간 상호 작용을 통한 협업 예술 프로젝트를 구현하는 등 예술적 표현을 탐구하는 데에도 AI는 유용한 '도구'다. 도구라는 건 '수월해짐'의 문제다. 인간이 했던 일들 중 일부를 용이하게 만들어준다. 기술발전으로 인한 육체노동의 보완에서 인지 영역으로의 확장까지 그 폭도 넓다.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문학, 시각예술 장르 등도 그 너비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생성형 AI가 만든 이미지(Artificial intelligence art)는 '창의'에 속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말 그대로 '생성'이다. 독자성, 독창성, 창작과는 거리가 멀다. 현재 시점에서 AI가 생성한 이미지란 다른 사람들의 사진과 작품, 화풍 등의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재조합 되는 모방이기 때문이다. 인간 감수성이 배어 있는 예술과 일정한 규칙에 의해 조립되는 AI 예술은 출발점부터 다르다. 이미지만으로도 예술이라 여기는 오해 탓에 창작으로 인식되는 것일 뿐, 실제로는 기존 자료를 표면적 유려함으로 산출한 전산프로그램에 불과하다. 제아무리 '자율학습' 과정을 거쳐도 원본이 있기에 결과도 달라지지 않는다. 물론 창작에 있어 인간 역시 경험, 지식, 환경에 의한 학습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인간에 의한 창작에는 일반적으로 학습된 것 외에도 상상력이나 영감, 감정, 인지 능력, 사고 능력 등이 개입된다. 일정한 데이터에서 패턴을 추출하고 도상을 분류해내는 AI와는 완전히 다른 체계다. AI는 논리 및 알고리즘 프로세스에 의탁하고 그 시스템은 통계적 추론에 의지한다. 그것은 인간처럼 상상할 수 없고, 의식과 자기인식보다는 인간 지능을 시뮬레이션하거나 본뜨고 흉내 낸다. 모델에 의존한 데이터 및 컴퓨팅 접근 방식에 의해 완성된다. 혹자는 AI가 예술에 기여해온 각종 기술적 장치나 프로그램(소프트웨어)들처럼 인간에 의해 온전히 조율되고 지정되는 '예술 도구'의 연장이라면 그 결과물 또한 예술작품이 아니냐고 한다. 합당한 의견이다. 다만 이땐 AI 자체가 아니라 그 AI를 이용한 인간에 대한 윤리적, 도덕적, 사회적 요소들이 고려돼야 한다. AI로 만든 자신의 결과물이 개인과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의식해야 하며 저작물 전체에서 차지하는 실질적 비중도 따져봐야 한다. 만약 어떤 예술가가 순전히 AI가 만든 작품을 예술로 '선언'한다면, 그것이 지각적(perceptual)인 것이 아님을 설명할 수 있는 완벽한 개념이 수반돼야 할 것이다. 예술가에게 AI는 예술적 창의성을 기술 발전과 결합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강력한 수단이다. AI를 통한 조형방식의 풍요로움과 경험 방식의 다양성,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통한 예술 지평의 확대는 예상되는 미래다. 과거 사진이 그러한 것처럼 AI 작품 역시 하나의 새로운 예술분야로 안착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AI로 인한 긍정적 예술발전이 가능하려면 이용자는 문화적, 윤리적 가치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AI의 활용은 원저작자의 허가를 얻거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는 것, AI를 이용했음을 고지하는 것과 더불어 '창작윤리'에 부합하면서도 인간의 고유한 특성을 존중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창작윤리란 학습자로서 지켜야 할 학습윤리와 연구자로서 지켜야 할 연구윤리를 포함, 예술작품을 창작하는 이들이 창작과정에서 반드시 고수해야 할 원칙이나 행동양식을 의미한다.■ 홍경한(미술평론가·LHC Larchiveum 총괄 디렉터)

2023-06-13 13:56:05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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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문화예술 불모지 '강원도'

인천시립미술관이 2027년 개관을 목표로 한 걸음씩 발을 내딛고 있다. 시립박물관은 확장 이전되지만 미술관은 미추홀구 인천뮤지엄파크에 신규로 들어선다. 이곳엔 4곳의 전시공간을 비롯해 세미나실과 수장고 등이 조성된다. 현재는 설계 단계에 있다. 도립미술관 건립도 이어지고 있다. 충청남도는 오는 12월 도립 충남미술관을 착공한다. 홍성군을 소재지로 2025년 개관 예정이다. 경상북도도 2018년 이후 5년 만에 도립미술관 조성을 재추진하기로 했다. 건립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미술관 건립 용역에도 착수한 상태다. 충청북도 또한 도립미술관의 필요성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모습이다. 충북 지사는 지난 달 10일 열린 서울 '충북갤러리' 개관식에서 도립미술관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충북도는 충북문화재단과 함께 도 내 하드웨어 구축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 예술 기반 조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모두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출범 10여년 남짓한 세종특별자치시를 제외한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강원도만 도립미술관이 없게 된다. 하지만 강원도에서는 관련 논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06년 추진위원회가 구성된 적은 있으나 17년째 지지부진한 상태다. 2015년경 건립을 희망하는 춘천, 원주, 강릉 등 4개 시·군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마쳤음에도 더 이상의 진척은 보이지 않고 있다. 강원도의 경우 기초자치단체에서 세운 미술관조차 그리 많지 않다. 2022년 '전국 문화기반시설 총람'(문화체육관광부)에 의하면 강원도 내 등록된 기초단체미술관은 양구 군립 박수근미술관, 강릉시립미술관, 인제 내설악예술인촌 공공미술관을 포함 총 5곳이다. 이는 강원도 인구(153만 여명)의 절반도 안 되는 인구(67만 여명)임에도 제주도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김창열미술관 등 모두 7개의 공립미술관을 거느리고 있는 제주특별자치도와 비교된다. 14개에 달하는 경기도와 11개의 공립미술관을 운영 중인 전라남도 등과는 수적 차이가 더욱 뚜렷하다. 강원도의 문화예술 인프라 부족은 일반 통계에서도 잘 나타난다. 김달진미술연구소가 발표한 '2022년 전시공간의 변화, 128개 개관'에 따르면 서울 64개를 비롯해 경기도 18개, 전북전남 5개, 제주도 3개 등 전국에서 전시 공간이 증가했으나 강원도는 0개를 기록했다. 2021년엔 5개의 공간이 새롭게 문을 열었고, 코로나가 발발하기 전인 2019년엔 8개가 늘어나기도 했지만 갈수록 쪼그라드는 모양새다. 문제는 전시 공간 조성을 포함한 여러 문화예술 육성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여타 지방자치단체들과 달리 강원도는 그나마 있던 것마저 하나둘씩 없애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강원도는 도 내 유일의 국제시각예술행사인 '강원트리엔날레'(舊 강원비엔날레)에 대한 예산을 대폭 삭감해 사실상 식물행사로 전락시켰다. 주관 기관인 강원문화재단은 예산이 없어 예술감독조차 선임하지 못할 처지다. 이에 폐지 수순을 밟고 있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온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2019년 시작한 '평창국제평화영화제'도 올해부터 도 내 개최가 중단됐다. 강원도와 고성·인제 등 5개 군이 함께 주최해온 'PLZ 페스티벌' 역시 축소되거나 외부 운영이 불가피해졌다. 2016년 이후 매년 겨울 선보여 온 평창대관령음악제 '겨울음악제'도 예산 항목 자체가 사라지면서 폐지됐다. 여태껏 별 탈 없이 잘 운영되던 것들이다. 지역 언론은 지난해 6월 국민의힘 김진태 지사 취임 후 혈세를 낭비하는 보조금 지원사업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이런 사태가 본격화됐다고 지적한다. 몇 안 되는 문화자산마저 고사시키면서 강원도 예술인들은 '문화예술 불모지'로 변해가는 고향을 등지고 있다. 바깥에선 강원도가 원시적인 문화 생태로 회귀하는 것을 우려한다. 문화예술 진흥은 경제 성장과 사회적 결속을 촉진한다. 또 문화 활동에 대한 투자와 장려가 활발할 때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강원도는 관심 자체가 아예 없다는 인상이 짙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선 '최문순 전 지사가 공들였던 행사를 지우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진짜 그런 것인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문화예술에 대한 철학이 빈곤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홍경한(미술평론가)

2023-05-30 15:16:13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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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해명도 사과도 없는 광주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7.9)는 2년에 한번 열리는 비엔날레와 미술관 기획전을 구분하지 못했다. 규모만 커졌을 뿐 연구의 깊이는 얕았고, 당대를 바라보는 날 선 시선은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비엔날레 본연의 혁신과 도전을 통한 진보적 담론 생성, 동시대예술의 새로운 방향성 제시라는 측면만 놓고 보면 낙제점에 가깝다. 그럼에도 광주비엔날레는 세인의 숱한 입길에 올랐다. 전시 내용과는 무관했다. 스스로를 B급으로 전락시킨 '비엔나소시지' 홍보 영상을 비롯한 광주시장의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상업적 전시기획사) 대표 개막식 초청 발언, 단 1회로 끝난 광주비엔날레 '박서보 예술상' 등, 광주광역시와 광주비엔날레재단이 쏟아낸 여러 논란 탓이 컸다. 이 중 지난해 2월 제정된 '박서보 예술상'은 비엔날레를 혼돈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 상은 '단색화'를 대표하는 박서보 작가가 한국 미술 발전과 후학 양성을 위해 기탁한 100만달러(약 13억원)를 재원으로 만들어졌다. 2042년까지 10회에 걸쳐 시상할 예정이었다. 지난달 6일 첫 번째 수상자도 배출했다. 하지만 미술계 안팎에선 '박서보 예술상'을 반대해왔다. 군사 독재 정권 관변 미술 권력자의 이름을 딴 상과 광주비엔날레는 정체성 면에서 맞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실제로 광주의 민주적 시민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광주비엔날레와 박서보 간 교집합은 없다. 박서보의 작업에서 광주비엔날레 창립선언문에 기술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시대정신'을 찾기도 어렵다. 비상업적 성격의 비엔날레와 미술 시장에서 주목받는 거장 간의 괴리, 과한 명예욕, 개인적 성과를 위한 삶 등은 부차적인 이슈다. '박서보 예술상'이 진행되자 일부 미술인과 시민모임 등은 행동으로 나섰다. 그들은 "4·19 혁명에 침묵하고, 5·16 군부정권에 순응했으며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외면했던 작가의 이름을 딴 박서보 예술상 사태에 대해 분노한다"며 개막식 기습시위에 이어, 온·오프라인을 무대로 한 폐지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했다. 일각에선 지역미술인들의 저항쯤으로 프레임화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젊은 기획자들을 포함한 의식 있는 미술인들의 동참도 이뤄졌다. 그러나 광주비엔날레재단은 비판 여론이 비등한 와중에도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으로 보란 듯이 박서보 작가의 SNS 항변성 글에 '하트'를 날렸다. 누가 봐도 강행을 의미한다고 판단할만한 행위였다. 헌데 그로부터 얼마 뒤인 지난 11일, 재단은 갑자기 "올해부터 시상을 시작한 '박서보 예술상'을 폐지하기로 했다"는 보도 자료를 냈다. "이미 지급한 상금 10만달러(약 1억3000만원)를 제외한 나머지 후원금은 박 화백 측에 반환할 계획"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전시 중 폐지라는 황당한 발표와 나머지 후원금만 돌려준다는 이상한 계산법에 의아했으나 일단의 예술인들은 '환영'을 표했다. 설득력 있는 의견에 대한 응답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다만 상을 제정하고 매듭짓는 과정에서 재단이 보인 어설프고 미숙하며 비이상적인 태도는 또 다른 잡음을 낳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재단은 상을 만들면서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았다. 상의 명칭 및 행사와의 적합성, 역사적 의미 등에 대해 심사숙고한 것도 아니었다. 비엔날레의 공적 기능과 민주적 절차를 생각했다면 놓쳐서는 안 되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상을 만들고 없애기를 밥 먹듯이 해온 과거의 전력을 보면 예술상의 폐지 결정은 그리 터무니없는 것도 아니었다. 상을 제정했다가 이유도 모르게 그냥 흐지부지 종적을 감추거나 상금 몇 푼이 없다고 두어 번 진행하다 엎은 예도 있었다. 제1회 때인 1995년부터 틈만 나면 그랬다. 그러니 올해 다시 '박서보 예술상'이란 걸 진행하려다 반발이 일자 한 달 만에 접은 건 사실상 그들에겐 익숙한 일 가운데 하나였다. 문제는 자신들의 고약한 '습관'이 아무렇지도 않게 표출됨으로써 야기된 사태에 대해 아무도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적어도 재단은 광주비엔날레를 기이한 행사로 변질시키고 혼란을 초래한 것에 관해 상세히 해명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숙의가 빠진 예술상으로 전시 자체에 대한 논의가 실종되고 갈등과 상처만 남긴 것에 관해 미술계에 사과해야 옳음에도 침묵하고 있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은 사달의 중심이다. 공동주최인 광주광역시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게 무엇이든 최종 결정도 자신들이 한다. 엄밀히 말해 작가는 후순위다. 허나 비겁하게도 재단과 시는 전면에 나서지 않은 채 논란의 모든 짐을 작가 혼자 지도록 하는 듯한 행태를 하고 있다. 미술계에 때아닌 반목과 불화를 제공했음에도 반성의 기미마저 없다. 뻔뻔하고도 실망스럽다.■ 홍경한(미술평론가)

2023-05-16 13:27:52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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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알맹이 빠진 '에드워드 호퍼' 전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는 1882년부터 1967년까지 살았던 미국의 리얼리즘 작가이다. 황량한 도시 또는 시골 환경에서 외로운 인물을 묘사한 그의 그림들은 시대를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고요한 절망과 소외, 나른한 권태를 보여준다. 바쁜 도시인들의 심리적 그늘과 공허함이 '정지된 시간'에 담겼다. 호퍼의 국내 첫 개인전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오는 8월 20일까지 개최된다. 그와 관련된 기록 4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는 미국 휘트니미술관과 공동 기획했다. 작품들은 20세기 초 미국의 생활 풍경 화가들의 모임인 애시캔파(派: Ashcan School)의 일원이면서 호퍼의 스승이었던 로버트 헨리의 영향을 받은 인상파 경향의 그림에서부터, 신비적 이상주의자 겸 사상가인 랄프 왈도 에머슨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수채화, 드로잉 등을 아우른다. 모두 160여점이다. 전시는 이를 연대기가 아닌 파리, 뉴욕, 잉글랜드 등 작가의 활동지역(여정)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눈에 띄는 작품은 긴장감 역력한 에칭(etching)들이다. '밤의 그림자'(1921), '이스트사이드 실내'(1922) 등의 작품을 통해 렘브란트를 좋아했던 작가의 성향을 읽을 수 있다. 명암대조에 의한 극적 표현을 특색으로 한다. 때문에 일부에선 그를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은 이들을 지칭하는 화파인 테네브로시(tenebrosi)로 분류한다. 전시에선 작가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장부, 사진, 편지와 같은 기록물 110점도 함께 선보인다. 호퍼는 40대가 돼서야 주목을 받았는데, 30대 초반이었던 1913년 뉴욕에서 개최된 미국 최초의 국제 현대 미술전인 아모리 쇼(Armory Show)에서 처음으로 작품을 판매한 것을 제외하곤 벌이가 신통치 않아 생계를 위해 광고·출판물 삽화, 잡지 표지 디자인 등을 그렸다. 이들 자료는 호퍼의 예술이 구축되는 과정과 그의 삶을 다양한 각도에서 살필 수 있도록 돕는다. 유화는 50여점이다. 그가 남긴 유화가 400여점인 것에 비춰 다소 적다. 그러나 갈수록 도시화되고 산업화되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느낄법한 불안과 초연함,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지만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상황들, 그리고 정서적 공허 못지않은 인간의 온기는 남아 있다. 대표작은 당시 78세였던 아내 조세핀을 모델로 한 '햇빛 속의 여인'(1961)이다. 휴식 같은 장면 속 왠지 모를 무상함이 감도는 게 특징이다. '푸른 저녁'(1914) 또한 강렬한 느낌을 전달한다. 같은 공간에서조차 익명의 존재로 머무는 당대 우리 모습을 옮긴 듯해 공감도가 높다. 이 밖에도 상상력을 자극하는 '밤의 창문'(1928)을 비롯해 말년의 밝고 화사한 색감으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이층에 내리는 햇빛'(1960) 등도 눈길을 끈다. 다만 올 상반기 가장 기대를 모은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알맹이는 거의 빠졌다. '해외 소장품 걸작 전'의 일환이라는 설명이 무색할 정도다. 일례로 호퍼하면 떠오르는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1942)은 목탄 습작으로 나왔다.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2013)에 영감을 준 '객차'(1965) 등의 작품들과 대공황을 겪은 1930년대 이후의 시대상과 군상들의 쓸쓸한 내면이 짙게 묻어나는 '호텔 방' 시리즈, 1920년대 주요 작품군인 '자동판매기(식당)'(1927)와 '찹 수이'(Chop suey, 1929) 역시 누락됐다. 판화, 스케치 등도 가치가 있지만 혹자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고 할 법하다. 이들 작업이 출품되지 않은 건 휘트니미술관 소장품이 아니어서는 아닌 듯싶다. 뉴욕현대미술관이나 톨레도 미술관 등 여타 미술관에서 빌려 온 작품들도 내걸렸기 때문이다. 특히 한 여성이 침대에 홀로 앉아 무표정하게 창밖을 응시하고 있는 '아침 햇살'(1952)과 같은 작품은 지난해 휘트니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임에도 이 또한 만날 수 없다. 사실상 이번 전시는 에드워드 호퍼 '아카이브 전'에 가깝다. 전시 제목도 아카이브 전으로 바꿔야 정직하다. 전시 성격과 별개로 동시대미술을 선도해야 할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굳이 4개월 동안 전관을 내주면서까지 상업적 성격의 블록버스터 전시를 해야만 했는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반세기 전 죽은 망령을 소환해 오랜 기간 박제할 만큼 세상이 한가한지 되묻게 된다. 외국 유명 미술관 소장품을 돈 주고 끌어와 재탕하는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의 기획 역시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 관람객 수가 미술관 운영의 주요 성과지표 중 하나임을 모르진 않으나 '브랜드 장사'는 일반 전시기획사들이 해도 된다.■ 홍경한(미술평론가·LHC Larchiveum 총괄디렉터)

2023-05-02 13:52:49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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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혁명은 가슴 속에서 먼저 일어난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지난달 30일 공개한 행정부 소속 정무직을 비롯한 고위공무원단 가등급, 공직유관단체장,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장, 광역의회의원 등의 재산 신고 내역에 따르면 대통령과 대통령실 주요 직위자 12명의 평균 재산은 70억원이다. 재산공개 대상자 평균의 3.5배에 달한다. 이중 윤석열 재산의 거의 전부는 그의 아내 김건희 것이다. 재산 형성과정은 불명확하다. 어떻게 시간강사 일과 전시기획사를 운영하며 받은 200만원대의 월급으로 고액의 재산을 형성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등의 의혹이 있지만 아직 검찰 소환조사 한 번 없었다.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2023년 국회의원 정기재산변동사항 신고 내역을 보면 지난해 12월 31일 기준으로 국회의원 296명 가운데 1년 전보다 재산이 늘어난 의원은 258명이다. 무려 87.2%에 달한다. 이 가운데 10억원 이상 증가는 8명(2.7%)이었고, 5억원 이상~10억원 미만 18명(6.1%), 1억원 이상~5억원 미만 180명(60.8%)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평균 재산은 34억8462만원으로, 지난해 대비 3억원 넘게 불어났다. 부동산·예금·주식 등에서 골고루 증가했다. 다수가 이미 건물주이자 땅 부자, 주식부자인 정치인들의 부(富)는 빛의 속도로 축적되는 반면, 국민의 적지 않은 수는 50만원이 없어 16%에 달하는 연 이자를 내면서까지 대출을 받는다. 20년을 넘게 일했지만 손에 쥐는 월급은 200만원대 초반인 하청노동자들도 수두룩하다. 그들이 수령하는 월급 200만원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김앤장'에서 연봉 5억원을 받았던 당시 일당(日當)이다. 종로 금은방 골목엔 수십년간 간직해온 금붙이까지 내다 팔며 필사적으로 버티려는 이들이 줄을 설만큼 서민들의 현실은 팍팍하지만 정치인들은 다르다. 국민들을 쥐어 짠 세금으로 고급 호텔에서 우아한 음악을 들으며 민생 관련 회의를 하고, 툭하면 외유성 국외연수를 떠난다. 고급전용차량에다 공관도 집무실도 과할 만큼 사치스럽다. 당리당략에 치우친 채 국민을 외면해온 국회의원들만 해도 그렇다. 꼬박꼬박 1200만원의 월급을 받지만 시민의 삶 따윈 안중에도 없다. 2014년 발생한 '송파 세 모녀 사건'을 포함해 2019년 성북구 네 모녀 사건, 2020년 김포 일가족 자살 사건, 2022년 수원 세 모녀 사건 등 현재도 제2, 3의 송파 세 모녀 비극이 이어지고 있으나 그들에겐 남의 일이다. 오로지 공천을 목적으로 한 욕망의 시녀이자 국가 조직의 원리인 삼권분립조차 포기한 정부의 홍위병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물론 멀쩡한 청와대 내버려두고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기느라 상상초월의 혈세를 투입한 윤석열이나 자신이 머물 공관 보수에 1억5000여만원을 사용한 최재해 감사원장, 공관 사용은 안 하겠다더니 갑자기 말을 바꿔 새 단장에 약 6억원을 쓰기로 한 오세훈 서울시장이나 모두 도긴개긴이다. 혈세 낭비요, 자기 돈이라면 과연 그럴까 싶은 사례들이다. 독일 작가 케테 콜비츠는 '자유와 정의가 살아 있는 사회', '더불어 사는 사회'를 강조했다. 그는 그림을 통해 현실적, 심리적으로 계급 없는 사회, 인간답게 살 권리를 외쳤다. 이는 병든 자들의 신음과 고통, 헐벗고 굶주린 자들에 대한 방치와 소외에 대한 비판이었고, 계급의식에 사로잡혀 부당이익을 추구하던 관료들을 향한 거침없는 발언이었다. 놀라운 건 매일 죽음의 그림자가 아른거리는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의 상황을 대입해도 무리 없다는 점이다. 만약 프랑스의 사실주의 작가 오노레 도미에가 살아 있다면 탐욕스러운 자들이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한 끼에 수십만원씩 하는 식사와 수천~수억원에 달하는 고급만찬을 즐기며 호의호식하는 모습을 비판했을 것이다. 스위스의 토마스 허쉬혼 같은 작가가 한국의 정치를 목격한다면 시민을 위하는 양 하지만, 단지 자신들을 위해 살아갈 뿐인 권력의 민낯과 위선을 날카롭게 묘사했을 것이다. 하루에 몇백만원씩 써도 평생 남아돌 재산을 갖고 있는 정치인들은 서민들의 삶을 알 수 없다. 경험이 부족하기에 죽음의 사슬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하거나 공감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 문제는 부패하고 타락한 정치권력을 언제까지 두고 봐야만 하는가이다. 왜 눈에 흐르는 누런 고름을 힘겹게 닦아내는 것도 부족해 없는 피까지 짜내어 바쳐야 하느냐이다. 혁명은 때로 가슴 속에서 먼저 일어난다.■ 홍경한(미술평론가)

2023-04-18 13:39:41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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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환영할 만한 '장애예술인 창작물 우선구매 제도'

장애예술인의 문화예술 활동과 고용·소득 현황, 관련 시설·단체 운영실태 등을 분석한 '2021년 장애예술인 문화예술활동 실태' 조사(문화체육관광부) 결과를 보면 장애예술인 중 62.2%가 전업 예술가이다. 이는 전업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전체 예술인 55.1%(2021 예술인 실태조사, 문체부)보다 높은 수치로, 다양한 예술직무영역에로의 접근과 예술가치 확장을 위한 기회가 상대적으로 협소함을 의미한다. 그만큼 온전히 작업으로만 생계를 꾸려야하는 장애예술인이 많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장애예술인의 가구소득은 연평균 3215만1000원이며 연간 개인 평균소득은 809만원에 불과하다. 예술창작활동을 통한 수입은 월 20만원도 채 안 될 정도로 극히 낮다. 같은 기간 전체 예술인 가구의 연간 총수입 평균에는 약 1000만원 적고, 국민 가구소득 평균 6125만원(가계금융복지조사, 통계청)과는 약 3000만원의 차이를 보인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소하고 장애예술인들의 자립적 창작활동의 지속 및 직업으로서 예술가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장애예술인 생산 창작물 우선구매 제도'가 지난 3월 28일 시행됐다. 따라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은 창작물 구매 총액의 일정한 퍼센트를 장애예술인의 공예·공연·미술품 등을 구매하는데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해당 제도는 2020년 세계 최초로 제정된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과 개정된 동법 시행령을 근간으로 한다. 시행령에 따르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공공기관 등 847개 기관은 장애예술인 생산 창작물 우선구매기관으로 지정된다. 우선구매기관은 구매 총액을 기준으로 해당 연도에 구매하는 창작물의 100분의 3 이상을 장애예술인이 생산한 창작물로 구매해야 한다. 대상은 회화, 조각, 사진, 서예, 벽화, 미디어아트 등의 미술품과 공예품, 공연 등이다. 주무부처인 문체부는 처음 시행되는 제도인 만큼 우선구매 중개 업무 위탁기관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누리집을 통해 관련 제도와 장애예술인(단체) 정보, 우선구매 기관의 구매 절차 등을 담은 매뉴얼을 제공한다. 4월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과 함께 설명회를 개최하고, 우선구매 온라인 시장을 갖추기 위해 2024년까지 '장애예술인 창작물 유통 특화 플랫폼'을 구축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문체부는 국립중앙극장을 비롯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술경영지원센터, 영화진흥위원회,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국립국악원, 국악방송 등 관련 부처 소속 및 유관기관에 장애예술인 미술품 구매와 대여 전시, 전용공간 조성, 공연, 방송 출연 등에 앞장서도록 독려할 계획이다. '장애예술인 생산 창작물 우선구매 제도'는 환영할 만한 정책이다. 장애예술인을 대상으로 한 효율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한 첫 사례라는 점에 그 의미가 있다. 장애예술의 활성화는 물론, 장애예술인들의 자립 도모와 열악한 문화예술활동 기반 조성 및 예술계 내 다양성 확보에도 작지 않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국내 예술인의 약 90%가 월 100만원 미만의 수입(2021 예술인 실태조사)에 그치는 현실을 고려하면 장애예술인이든 비장애예술인이든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한다는 점에선 같고, 이에 예술인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예술인기본소득이나 기업 및 공공기관의 문화예술작품 구입 및 투자 의무제, 미술품 재판매 보상청구권(추급권) 등의 제도 도입이 요구된다.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 자체에도 문제는 있다. 일단 우선구매대상에 문학이 빠졌다. 전체 예술장르 중 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의아한 결과다. 또한 시행령에는 의무구매 비율 미달성 기관에 대한 부담금 부과 등의 강력한 처벌조항이 없다. 처벌조항이 없다는 건 제도의 성공적인 안착을 불투명하게 만든다. 의무구매 비율을 채우지 않는 기관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행된 지 14년이 지난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 특별법'의 경우 여전히 절반에 가까운 공공기관들이 1% 이상의 의무구매비율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장애인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미달성기관은 47.1%에 달한다. 장애인고용촉진법은 장애인의 고용률이 미달됐을 시 부담금을 물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현 시행령에는 우선구매기관의 장은 매년 1월 31일까지 전년도 장애예술인창작물 우선구매 실적을 문체부 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고만 적시하고 있다.■ 홍경한(미술평론가)

2023-04-04 10:04:26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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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퐁피두 센터' 한국 유치의 의미

프랑스 파리 보부르 소재 '퐁피두 센터'는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과 함께 프랑스 3대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힌다. 1977년 설립됐다. 퐁피두라는 이름은 프랑스 대통령을 지낸 조르주 퐁피두에서 따왔다. 그래서 정확한 이름은 '조르주 퐁피두 국립 예술문화센터'다. 전시실 외에도 카페, 공연장, 극장, 공립도서관, 자료실 등을 구비하고 있어 사실상 복합문화센터에 가깝다. 배기관과 통풍구가 그대로 노출된 7층 높이의 건물 자체부터 인상적인 퐁피두는 현대미술의 본거지답게 연간 수백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방문한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만 해도 약 350만 명이 이곳을 찾았다. 마르셀 뒤샹에서부터 마티스, 샤갈, 칸딘스키, 마그리트, 달리, 앤디 워홀, 마크 로스코, 요셉보이스 등 20세기를 함께 한 거장들의 작품을 상당수 소장하고 있으니 충분히 그럴만하다. 퐁피두 센터가 오는 2025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 들어설 전망이다. 19일 한화그룹과 퐁피두는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퐁피두 센터 한화 서울'(가칭)을 설립·운영하는 데 합의하는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2019년 개관한 중국 상하이에 이어 아시아 두 번째다. 개관일로부터 4년 동안 한국에서의 퐁피두 센터 운영권을 보장받고 매년 퐁피두 센터 소장품 중 대표 작가 작품이 포함된 기획전시를 열게 된다. 운영은 한화문화재단이 맡을 예정이다. 사실 해외에 분관을 두거나 현지 기관과의 파트너십을 맺는 형식을 띤 글로벌 미술관의 세계 거점화는 오래됐다. 한국 진출설도 줄곧 있어 왔다. 잊을만하면 구겐하임 미술관과 루브르 박물관의 한국 진출 소문이 돌았고, 퐁피두 분관이 만들어진다는 내용도 심심찮게 회자됐다. 이중 퐁피두는 단골 메뉴였다. 약 10여 년 전부터 구체적인 장소까지 거론되며 분관 유치의 가능성을 점치게 했다. 하지만 말만 무성했을 뿐 성사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2021년 인천국제공항공사에 이어 지난해엔 인천광역시가 퐁피두센터 분관 유치 의사를 드러냈고, 최근엔 퐁피두 관계자의 방한과 현장 실사로 '퐁피두 부산'의 실현 가능성을 엿보게 했다. 결과적으론 퐁피두와 한화의 양해각서 체결로 긴 시간 지속된 지방자치단체들과 기관들의 '구애'도 주춤하게 됐다. 일부 지자체는 타 미술관 유치로 방향을 수정할 계획이다. 그런데 왜들 그토록 해외 미술관 한국 분관 설치에 목을 매는 것일까.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단 경제적 효과다. 세계적인 미술관을 데려올 경우 해당 지역은 주요 관광 명소가 되면서 많은 방문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숙박업, 요식업, 운송업 등 지역 경제에 작지 않은 수익을 안겨준다. 또 하나는 일자리 창출이다. 미술관은 지역의 비중 있는 고용주로서 전문직은 물론 시설 종사자 등에게 다양한 일자리를 제공하게 된다. 여기에 알찬 콘텐츠로 무장한 미술관 유치는 해당 도시와 공동체에 문화적 풍요로움을 선사한다. 이는 문화시설이 갖는 중요한 의미다. 그러나 여러 긍정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저명 미술관의 해외 분관은 미술이라는 고급 콘텐츠를 팔아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돈벌이용 '프랜차이즈 사업'이기도 하다. 실제 이번 퐁피두와의 협약으로 한화가 지급해야 할 로열티, 작품 대여료, 컨설팅 지원비 등만 해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외국 미술관이 들어온다고 마냥 좋은 것만도 아니다. 우선 지금처럼 대도시에 미술관이 세워질 경우 그러잖아도 심각한 지역 간 문화적 불균형과 문화향유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다. 또한 대중에게 주목받을 만한 전시와 작품에만 집중하는 결과에 따른 다양성 부족, 지명도에 의한 서양미술 중심의 미적 편식 역시 우려된다. 나아가 비판 없는 서구 중심적 문화가치 수용은 은연중 강요받는 문화제국주의의 한 형태일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를 요한다. 스스로 생각해볼 문제도 있다. 너도나도 글로벌 미술관 분관 설치에 노력을 기울이나, 그것 못지않게 자국 미술관의 질적 성장과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닐 만한 작가 인프라 구축에 얼마나 투자해 왔는지, 지자체들은 드물게 성공한 빌바오 구겐하임 사례를 예로 들며 유명 미술관 유치에 발 벗고 나서지만 막연한 정치적 성과주의에 기댄 것은 아닌지 등이다.(빌바오 구겐하임이 지자체와의 긴밀한 협업, 공간적 특성 및 지리·생태적 환경과 맞물린 다양한 전략의 산물임을 대부분은 잘 모른다.) 퐁피두 센터 한국 유치는 도시의 풍경을 바꾸고 공동체의 삶과 역사를 변화시키는 촉매 역할을 하는 게 미술관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우린 과연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실제 무엇을 실천하고 있는지 곱씹게 한다. 비가 새는 공립미술관, 작품 한 점도 구입하지 못하는 소장품 예산, 철새 혹은 카르텔이 지배하는 미술관 인사…. 이 또한 퐁피두가 던지는 하나의 의미요, 필요한 자문(自問)이다.■ 홍경한(미술평론가, LHC Larchiveum 총괄디렉터)

2023-03-21 10:35:14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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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굴욕적인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방안

미술계에도 하루가 멀다 하고 초현실주의적인 일들이 벌어진다. 하지만 나라 돌아가는 꼬락서니에 비하면 대개는 그저 비루한 생존법으로 치부할 수 있는 것들이다. 역사에 죄를 짓는 참사가 ‘결단’으로 둔갑하는 현실에 비하면 거론될 깜조차 안 된다. 근래만 해도 그렇다. 이게 과연 나라인지, 어느 나라 행정부인지 묻고 싶을 정도다. 정부가 6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방안을 공식 발표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우리 정부 산하 재단이 민간의 기부를 받아 배상금을 지급하는 ‘제3자 변제 방식’이다. 재원은 포스코, 한국도로공사, 케이티(KT) 등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당시 일본의 자금을 지원받았던 16개 한국 기업을 통해 이뤄진다. 하지만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 등 정작 배상을 해야 할 일본 전범 기업은 빠졌다. 2018년 대법원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에 전범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냈다. 이날 정부가 발표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해법은 일본 쪽 주장과 판박이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은 없었다며 줄곧 부정해왔다. 과거사 배상문제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끝났다는 억지를 부렸다. 우리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대해서는 ‘국제법 위반’이라며 맞섰다. 한·일 기업의 자발적 출연에 의한 기부금 조성 및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한 배상으로 요약되는 해당 방안에 대해 박진 외교부 장관은 “과거사로 인한 우리 국민의 아픔을 보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궤변을 내놨다. 윤석열 대통령도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주도적이고 대승적인 결단”이라고 자평했다. 친일·굴욕 외교를 말장난으로 혹세무민한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과의 관계가 사활을 걸 만큼 시급한 것일까. 난 아니라고 보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일본 정부의 범죄 사실 인정과 정당한 배상, 사죄가 우선이다. 중국을 견제해야 할 미국에겐 아시아 동맹인 한·일 관계 개선이 다급할지 몰라도 일본이 먼저 침략 침탈의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행동을 보이지 않는 한 건설적 관계는 이뤄지기 어렵다. 우리가 아닌 일본이 풀어야할 과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일본 정부는 역사 왜곡은 물론 강제동원 문제까지 부정한다. 독도를 자기 땅이라 우기고, 위안부 문제는 증거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피해자 배상 문제 해법 발표를 재촉한 건 윤석열 대통령이다. 외교부는 그동안 일본 쪽의 ‘성의 있는 조처’를 얻어내야 한다는 태도였다. 그런데 돌연 한·미·일 협력 강화를 배경으로 한 윤 대통령의 조급함으로 인해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죄와 가해 기업의 배상 참여 등 ‘성의 있는 조처’는 끝내 무산됐다. 일본 전범기업에 대한 구상권 행사도 물 건너갔고, 협상의 주도권마저 일본에 빼앗기고 말았다. “일본 정부의 포괄적인 사죄와 일본 기업의 자발적인 기여 및 호응을 기대한다”는 정부의 어리석은 판단과는 달리 일본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6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역사인식에 관해서는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해 왔고, 앞으로도 이어갈 것”이라고 ‘두루뭉술’ 넘겼다. 일본 언론은 한국 정부의 국내 조치여서 언급할 입장이 없다는 자국 기업들의 입장을 전했다. 정부 산하 재단이 피해자들에게 대신 배상하고 일본 전범기업들은 배상이나 사죄를 하지 않게 된 이번 해법은 한국 행정부가 일본 강제동원 가해 기업의 사법적 책임을 면책시켜주는 것과 같다. 피해자가 오히려 고개를 숙인 채 가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꼴이다. 특히 “과거사로 인한 우리 국민의 아픔을 보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박진 장관의 발언은 스스로의 권리와 주권을 포기했다는 뜻과 다름없다. 우리 정부의 노골적인 저자세에 시민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의기억연대, 민족문제연구소 등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6일 저녁 서울광장에서 촛불집회를 열어 정부가 발표한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을 규탄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기금을 국내 기업 단독으로 조성하는 정부안에 대해선 친일·굴욕 외교라고 비판했다. 미쓰비시중공업 강제동원 피해 생존자 양금덕(93) 할머니는 “억울해서 지금은 죽지도 못한다”며 ”굶어 죽어도 이런 식으론 (배상을) 안 받겠다"고 했다. 제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일제 치하 35년간 이어진 고통의 역사를 아무 일 없듯 할 수는 없다. 피해자와 국민 동의부터 구했어야 옳다. 개인이 판단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대승적 결단”이라며 자기 마음대로 일본에 면죄부를 줬다. 임기 5년의 선출직 공무원이 국민 합의 없이 무슨 권리로? 가해자는 뒷짐 지고 피해자가 먼저 해법을 고민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일본 식민지배를 받은 것이 우리가 못나서였다는 식의 그릇된 역사관을 가진 이라는 점에서 머잖아 조공까지 바치겠다는 말도 하지 싶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3-03-08 11:14:08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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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조각 전시장에 조각 대신 놓인 '균열'

동시대미술은 통제, 관리, 지배, 통치라는 지휘적 명제들과 끊임없이 대결한 채 이전과 다른 가치를 창안하기 위한 태도를 중시한다. 새로운 형태의 문화라고 하는 것들 역시 기존 틀에 얽매이지 않은 그 태도의 산물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표현의 방식 면에서도 동시대미술은 어떤 제한을 두지 않는다. 문화와 문화 간 교섭과 상호 교류에 적극적이다. 조각·회화라는 구분은 구시대적이다. 주제, 소재, 기법 등 다양한 조형언어의 고정관념까지 해체한다. 따라서 당대 미술은 일종의 '혼합 감각적 예술'에 가깝다. '제12회 서울국제조각페스타'가 서울 삼성동 코엑스 B홀에서 오는 3월 2일부터 5일까지 열린다. 사단법인 한국조각가협회가 주최하고 국제조각페스타 운영위원회가 주관하는 조각 중심의 전시다. 150여 개의 부스 250여 명의 국내외 작가들이 참여한다. 주제는 '조각, 공간을 넘다'이다. 주최 측에 의하면 이번 행사는 조각의 사회적 기능과 담론 형성에 무게를 둔다. '작은 조각 특별전', '서울시 청년작가 특별전', '중국현대조각 특별전' 등은 그 일환이다. 미술이론가 조은정이 감독을 맡은 '한국근현대조각, 시공초월(時空超越)'이라는 또 다른 특별전도 마련된다. 인간 삶이 반영된 한국조각의 역사를 다룬다. 다채로운 특별전은 협회까지 나서 아트페어를 개최하는 것에 대한 알리바이일 수 있다. 그럼에도 신진작가 발굴 및 지원, 국제교류, 한국조각의 위상 제고라는 복합적 의미는 퇴색되지 않는다. 눈에 띄는 것은 기업과 지방자치단체 기관의 참가다. 여타 페어형 전시에 비해 비중이 높다. 올해도 크라운해태를 비롯한 여러 지자체 산하기관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우수한 작가를 후원하고 타 분야와 창조적 융합을 통한 조각 영역의 확장을 목적으로 한다. 이 가운데 김포국제조각공원(경기 김포시 월곶면 고막리 435-14)을 운영 중인 김포문화재단은 김포조각가협회와 함께 이색적인 전시를 꾸린다. 바로 '균열'(Crack)을 테마로 한 기획전이다. 김포조각가협회 회원들의 자발적 협의에 의해 선보이는 '균열' 전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조각'은 출품되지 않는다. 조각 행사에 조각이 없다. 대신 매체 확장성에 기반을 둔 '개념'을 선보인다. 형상을 만들기 전의 과정과 아이디어를 녹여낸 작품 20여점이다. 이들 작업은 '혼합 감각적 예술'에 부합한다. 취향에 봉사하기 위한 상품과는 거리가 멀다. 지각적(perceptual)인 것에서 이탈하고 시각적 만족에 저항하는 '도발적'인 작품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생각(개념)'도 완성된 형상 못지않은 작품임을 제시하는 무대 한편에선 화려한 의상을 차려입은 성악가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퍼포먼스 '세레나데'도 펼쳐진다. 점차 희박해지는 사람 사이의 순수한 감정과 희망을 다룬 작품이다. 김포조각가협회 부스 내에선 '살아 있는 조각'인 '침대(Bed)'가 관객을 맞는다. '세레나데'의 대척점에서 고요한 절망과 죽음을 뜻한다. 이 절망과 죽음 속에는 미술, 사회, 정치 그리고 동시대인들의 삶과 예술가로서의 삶 등 세상의 어둠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삶이 담겼다. 이 밖에도 김포조각가협회는 무빙아트(moving art)인 '카트'를 진행한다. 이는 전시장 내 모든 곳을 미술 장소로 만들기 위한 실험이다. 부유한 채 유동하는 동시대인들의 현재를 녹였다. 특히 카트 내에 가득 실린 오브제는 개개인의 정체성이자 욕망이다. 카트를 끌며 천천히 내딛는 예술가들의 걸음에서 강제된 질서 속 살아가는 현실의 은유를 엿볼 수 있다. 작가들은 이들 작업을 통해 '예술의 존재의 이유'를 묻고 진실한 교류와 관계 속에서 싹트는 '인간다움'에 대해 질문한다. 또한 '우린 누구인가'라는 명제 아래 인간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사명이란 무엇인지를 직접 혹은 타자의 행위를 빌려 제시한다. 물론 사회적 의사표시로서 미술의 경제성이 곧 진정한 미술품의 가격임을 고지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제도·상품·자본·노동 등 인간 삶을 지배하고 '포획하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탈주를 추구하고, 형식으로부터 자유를 드러내기 위한 김포조각가협회의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 복잡다단한 시대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면서 시대변화에 따른 예술 생산방식 역시 다양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그들의 태도는 충분히 의미적이다.■ 홍경한(미술평론가)

2023-02-21 14:09:20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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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RM'의 문화적 힘

지난해 12월 미국의 미술 전문매체 아트넷 뉴스(Artnet News)는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본명 김남준)'을 예술가, 큐레이터, 후원자로 소개하며 '투자자(The Investors)' 부문 '혁신가 35인(Innovators 35)'으로 선정했다. 경계를 넓히고 변화를 주도하며 예술 산업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한 결과다. 실제로 RM은 단순 미술애호가가 아니라 국내외 거장들의 미술작품을 지속적으로 구입하는 '컬렉터(collector)'이다. 경매를 통해 이대원 작가의 1976년 작품 '산(山)'을 처음 구매한 이후 이우환, 윤형근, 박수근, 장욱진, 백남준, 권진규, 유영국 등의 한국작가 외에도, 이즈미 카토(Izumi Kato), 로니 혼(Roni Horn), 조엘 샤피로(Joel Elias Shapiro),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 등의 외국 작가 작품도 꾸준히 매입해왔다. "영감을 불어넣고 더 나은 예술가로 살 수 있게 해준다."는 게 이유다. 아트넷의 설명대로 그는 적극적인 예술후원자이기도 하다. 절판돼 구하기 어려운 도서와 재발행이 필요한 미술도서 제작 후원 차원에서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재단에 1억원을 기부한 데 이어, 2021년과 2022년엔 문화재 보존·복원 및 활용을 위해 써달라며 국외 소재 문화재 재단에 2년 연속 1억원을 기부했다. 지난해 9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에서 열린 한국근대미술전에는 전시해설 재능기부에도 참여했다. RM은 미술관과 갤러리 방문을 즐기며 대중과 공유하는 등 미술 소통에도 상당히 열성적이다. 그는 이를 "일종의 큐레이션"으로 정의했다. 여기엔 미술품에 관한 정보를 선별·분류, 배포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다른 사람들의 동참을 통한 창의의 활성화라는 의도가 배어있다. 같은 세대 젊은이들이 자신의 관심사를 발견하고 탐구하도록 하며, 보다 능동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임도 부정할 수 없다. 미술에 관한 RM의 애정은 보다 많은 이들에게 미술의 중요성을 알리고 지원의 당위성을 촉발하며 감상과 참여를 장려하는 등 여러 긍정적 파급 효과를 낸다. 멀게만 느껴지는 미술관과 갤러리의 문턱을 낮추는 데 공헌할뿐더러, 새로운 세대의 예술 애호가와 지지자를 생성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우리 삶에서 예술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운다는 점에서 그의 행보에는 무게감이 있다. 이처럼 RM의 미술에 대한 사랑과 그것을 대중과 공유하는 행위는 미술 전반에 걸친 생산적 구조를 구축한다. 예술 장르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증가는 예술 공동체와 사회 전체를 풍요롭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RM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선한 영향력'이다. 다만 그가 주로 관심을 갖는 작가들은 대부분 그림 한 점에 수억에서 수십억원씩 하는 스타 작가들(그래서 덜 알려졌으나 젊고 유능한 작가들과 공간에 대한 관심이 덜 한 인상은 아쉽다.)이라는 점에서 뜻하지 않게 미술이 부유층과 엘리트들만의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RM으로 인해 특정 예술품에 대한 수요 증가로 가격상승이 이어지고 그림값에 구애받지 않는 부르주아 계급의 미술품 독점에 따른 가난한 이들의 접근 차단과 예술 감상의 불평등, 상대적 박탈감을 초래할 우려도 존재한다. 나아가 개인적 '취향'으로 특정 작가나 예술 형식을 지지하는 것은 그것만이 유일한 예술인 것처럼 비치게 하고, RM이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미술을 분별하는 눈을 통한 자신에 대한 이해"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와 같은 환경에 있지 못한 사람들은 자책과 실망, 허탈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에 대한 그의 기여도는 과소평가하기 어렵다. 세계의 시선이 한국 문화예술에 주목하도록 만든 수고와 성과도 치하할 만하다. 특히 미술활동을 하는 연예인은 넘쳐나도 RM처럼 '문화적 힘'으로 작동하는 경우는 드물며, 이는 그에게 변별력을 부여한다. 물론 그 문화적 힘은 어쭙잖은 작품성을 철학과 개념으로 과장하는 '흔한' 아트테이너(Art+Entertainer)들과는 결을 달리한 채 컬렉터이자 후원자로서 제자리를 지켜가며 문화현상을 건설적으로 창출하는 장면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어쨌든 RM에 대한 세인의 관심은 그의 배경인 BTS로부터 비롯되기에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그의 '선한 영향력'도 감소할 것이 예상되나,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발자취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히 아름답고도 값지다. 앞으로도 'K미술'을 키우고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홍경한(미술평론가)

2023-02-07 10:34:55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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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예술인 복지정책 기본계획'의 방향과 과제

19일 문화체육관광부는 향후 5년간 예술인 복지정책의 전망과 정책 방향을 담은 '제1차 예술인 복지정책 기본계획'(2023∼2027)을 발표했다. 기본계획에는 '자유로운 예술활동을 위한 법·제도 개선'을 비롯한 '예술 활동의 지속을 위한 안정적 삶의 기반 조성' 등 4개 전략, 13개 세부 과제가 실렸다. 먼저 예술인 복지정책 대상자 확인 제도인 '예술활동증명제도'가 '예술활동확인제도'로 바뀐다. 다소 딱딱한 '증명'이라는 단어 대신 '확인'이라는 표현을 쓰기로 했다. 절차도 간소화된다. 복지사업 참여를 위해 예술인이 밟아야 할 기본 절차에 해당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신청이 급증하면서 심의 절차 지연 문제가 지적된 데 따른 조치다. 지금까진 '예술활동증명'을 3년 혹은 5년마다 갱신해야 했다면 앞으론 5년으로 일원화한다. 20년 이상 예술활동증명 유지 예술인에 대해선 재신청을 면제하고, 본인경력을 직접 관리할 수 있도록 단계별 이행안을 도입한다. 현재는 신청 시마다 일일이 과거 3~5년간의 활동자료를 찾아 제출해야 한다. 예술인복지법상의 '예술인'에 대한 정의도 개정해 '예술인'과 '예술활동확인예술인'으로 대상을 명확히 하기로 했다. 나아가 신속하고 효율적인 업무처리를 위해 처리 기관을 지역문화재단 등으로 분산하고, 예술인 복지정책 전담 조직 역량 강화 차원에서 예술인복지재단의 조직 개편(2부 8팀)이 진행된다. 미약하나마 열악성을 면치 못했던 복지재단 직원 처우 개선도 이뤄진다. 이 밖에도 기본계획에는 주거안정 차원에서 예술인 맞춤형 공공임대 주택 공급(2023년 260호 제공), 예술인 권리위원회 구성, 지난해 대비 2000명이 늘어난 총 2만3000명(660억원)을 지원하는 '창작준비금' 확대 등이 망라됐다. 의료비 등 생활안정자금(인당 최대 700만원)과 예술인들에게 저금리로 대출을 지원해주는 전세자금 대출(2023년 180억원) 사업도 지속한다. 다만 올해는 새로운 제도 도입을 위한 과도기로, 예술인복지법을 개정하거나 절차 간소화에 역점을 둔다. 유형별 세부방안은 내년부터 이뤄진다. 예술활동증명이 예술활동확인제도로 전환되는 시기는 2026년쯤이다. 예술인 개인별 포트폴리오 관리 플랫폼 구축은 2024년으로 예정돼 있다. 기본계획이 발표됐지만 윤석열 정부의 단독 작품은 아니다. '예술인 복지정책 기본계획' 수립이 포함된 예술인복지법 개정안이 2019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며, 2020년부터 기초 연구가 시작됐다. 이미 지난 정부에서 추진해온 결과물인 셈이다. 하지만 아직까진 '이렇게 진행하겠다'는 정도이고, 실천단계에서 현장전문가들의 목소리를 수렴하는 등의 보다 섬세한 과정이 요구된다. 쟁점 역시 남아 있다. 예술인복지법상의 '예술인의 정의'의 경우 '예술인'과 '예술활동확인예술인' 간 구분은 어떻게, 어떤 지표와 방식으로 할 것인지, 현행 예술활동증명에 있어 생활예술인과 하이아마추어들을 차단할 방안은 무엇인지 등이 대표적이다. 다양하고 폭넓은 예비·신진 예술인과 상대적으로 협소한 중견 예술인 간 지원 불균형은 해결해야 할 숙제다. 이 가운데 생활예술인들의 진입은 심각한 문제로 꼽힌다. 취미나 여가로 활동하는 이들이 흘러들어오면서 한정된 복지 예산의 '누수'를 가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취미 인구의 유입은 예술인복지법 입제 취지와도 어긋난다. 예술인복지법은 예술을 업(業)으로 삼는 전문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법으로 보호하고 전문예술인의 창작활동 증진과 예술 발전을 목적으로 2012년 제정됐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혜화동 더부살이 청산 및 직원 업무 능력과 조직 기여도에 비례한 보상체계구축 등은 문체부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사안이다. 그래야 한국 예술인 복지를 총괄하는 위상에 걸맞고, 예술인들에게 돌아갈 행정능률 향상도 가능해진다. 특히 지난해 5월 예술활동 증명 발급처를 지방자치단체 출연기관으로 확대하는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통과가 불발되면 업무 분담은 요원해진다는 점에서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한 차선책도 필요해 보인다. 지역문화재단이 증명 업무를 맡기 위해서는 예술인복지법 개정이 필수다. 하나 예술인복지 관련 제도를 제아무리 잘 정비한들 예술을 통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건 예술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고, 국민기본권을 훼손하는 일이다. 이번 계획의 핵심 중 하나인 '자유로운 예술활동' 또한 표현의 자유를 전제로 할 때 비로소 가치를 얻을 수 있다.■ 홍경한(미술평론가)

2023-01-24 13:12:20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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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아무 생각 없이 만든 尹 연하장

'칠곡할매글꼴'이 화제다. 대통령 연하장에 등장해서다. 지난 2일 복수의 언론에 의하면 윤석열 대통령과 그의 부인인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는 취임 후 첫 새해를 맞아 공무원들에게 연하장을 보내며 서체로 해당 글꼴을 사용했다. 연하장에는 "76세 늦은 나이에 경북 칠곡군 한글 교실에서 글씨를 배우신 권안자 어르신의 서체로 제작되었습니다"라고 적혀있다. 이 글꼴은 2020년 처음 나왔으며, 한컴과 MS오피스에도 탑재됐다. '칠곡할매글꼴' 보도에 뒤덮여 금시에 잊혔지만 각계 인사들에게 발송한 대통령 신년 연하장 또한 도용·표절 논란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연하장 이미지가 상업용 사진·이미지 판매 사이트인 셔터스톡(Shutterstock)에 등록된 것과 거의 동일했기 때문이다. 실제 '프림야우(primiaou)'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이스라엘 작가가 공개한 기존 일러스트와 연하장 이미지는 판박이에 가깝다. 성형수술, 부처, 소주 등의 몇몇 그림을 첨삭한 것을 제외하면 누가 봐도 같은 작가의 작품이다. 도용 및 표절 의혹이 불거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닮았다. 표절 논란에 대통령실은 "적법 계약"이라고 반박했다. "연하장에 활용된 디자인 이미지는 외국인 시각에서 우리나라 문화콘텐츠를 형상화한 것"이라며 "해당 업체에서 적법한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구현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로부터 연하장 제작을 의뢰받은 업체가 작가 쪽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허락받은 이미지를 사용했다(고 들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높은 예술성을 지닌 한국 작가도 많은데 굳이 외국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을 '활용'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구태여 우리나라 외에도 일본, 중국, 프랑스, 미국 등 세계 여러 나라 및 도시 이미지를 반복 제작해 팔아온 상업 작가의 것을 썼어야 했는지도 의문이다. 성의도 없다. 한 나라의 대통령 부부가 보내는 연하장치곤 국정 철학이나 이미지 자체에 관한 정성 따위도 녹아 있지 않다. 대통령실은 "K-콘텐츠의 매력을 전 세계로 확산한다는 국정과제를 반영하여 다양한 한국의 문화, 전통, 유·무형문화재 등을 디자인화했다."고 설명했으나 실제로는 판매를 목적으로 거래 사이트에 올려놓은 이미지를 단지 '구매'한 것에 불과하다. 대통령실은 표절 논란이 일자 "역대 대통령의 연하장을 다수 제작한 경험이 있는 디자인 전문 업체에 의뢰해서 제작한 것"이라고 했다. 보도 자료를 보면 마치 자체적으로 '창작' 한 것처럼 적어 놨다. 하지만 기존 이미지를 갖다 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창작과는 거리가 멀다. 인터넷에 있는 이미지를 'Ctrl C', 'Ctrl V' 하는 게 '전문 업체'의 일이라면 지나가던 개도 웃을 것이다. 이미지의 차별성과 독창성 역시 현저히 낮다. 뷰티, 한옥, K팝, K무비, K드라마, 한복, 김치 등등, 이것저것 죄다 구겨 넣어 원본에 비해 오히려 조악하기까지 하다. 문제는 이런 디자인을 연하장 이미지로 쓰겠다고 대통령실에 제안한 제작업체나, 그런 연하장 디자인을 좋다고 승인한 대통령실 수준이다. 지난해 말 우리 농민들에게 대통령 연말 선물로 보낸 '100% 수입농산물' 논란처럼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작가 이력 검증에도 소홀했다. 대통령 연하장 이미지를 그린 이스라엘 작가는 과거 일본 제국과 일본군이 사용하던 국기이자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旭日旗)'를 다른 그림 곳곳에 새겼다. 주지하다시피 '욱일기'는 나치 독일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Hakenkreuz)' 깃발과 같은 의미의 전범기(戰犯旗)다. 전범국들이 '홀로코스트'의 직접 피해 당사국인 이스라엘을 포함한 인류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힌 역사를 안다면 '욱일기'는 결코 등장시킬 수 없는 이미지다. 만약 독일이나 유럽에서 '피의 십자가'로 불리는 '하켄크로이츠'를 공공연하게 적시했다면 커다란 사회적 비판에 직면했을 것이다. 물론 유럽을 비롯한 서양에서는 일본이 전범국이고 '욱일기'가 전범기라는 것을 잘 모른다. 일본이 애써 강조해온 것처럼 '전통문양'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우리마저 그런 인식에 동조한 채 역사의식에 결함이 있는 작가의 그림을 사용할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세계사 공부에 게으른 무개념의 이스라엘 상업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며 "외국인 시각에서 우리나라 문화콘텐츠를 형상화한 것"이라며 합리화했다. 나아가 그런 작가가 그린 이미지를 정부는 돈까지 주고 구입했다. 아무 생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홍경한(미술평론가)

2023-01-10 11:11:20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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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한국 전위예술의 선구자 김구림

1950년대 중반을 여명기로 하는 한국현대미술은 헤게모니와 이분법의 역사다. 미학적 차원이 아닌 양식적 측면에서 전개된 서구 추상을 한국적 추상으로 둔갑시킨 60년대 앵포르멜이 그렇고 일부 일본인들의 관심에서 비롯된 기묘한 집단현상인 70년대 단색화도 그렇다. 결국 제도권에 편입된 채 또 하나의 권력이 된 80년대 민중미술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한국현대미술사는 소위 주류를 중심으로 한 권력과 위계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양성에 관한 인정이 야박한 현실과 예술 식민주의 구조에 의해 '주변'으로 낙인됐을지언정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하며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개척한 이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작가 김구림(1936~ )이 있다. 집단화에 의한 서술에서 소외되고 기득권에 밀려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해왔을 뿐 김구림은 한국현대미술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문화예술 특권층의 헤게모니에 저항하며 한국미술의 진정성이 서구와 대비해 무엇이 같고, 서구미술의 무엇을 빌려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이끈 동인이었다. 우리 미술계의 이면에서 미학적 가능성과 조형적 풍성함을 제시해온 장본인이다. 김구림의 작품은 동일한 시기를 공유하는 작가들과는 사뭇 달랐다. 일찌감치 형식주의에서 벗어나 있었고, 소재나 매체 측면에서도 인위적 혹은 작위적이지 않았다. 그의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즉흥성, 우연성, 물성을 통한 탈물성화라는 역발상, 해체의 지향은 문화적·경제적 특권을 누리던 작가들과의 차이를 명료하게 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50년대 초반부터 김구림의 작품들은 일본화된 서구풍의 구상성에서 이탈하고 있다. 60년대엔 실험미술계열의 행위 미술을 주도하며 한국 아방가르드의 선구자적 면모를 내보였다. 일본과 미국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게 되는 70~80년대엔 오브제를 중심으로 한 평면, 설치, 입체, 영상 등의 다양한 개념작업을 펼쳤다. 이 중 김구림의 해체적 성향은 '음양'을 토대로 주류 밖에서 지속적으로 진행됐다. 일례로 1950년대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회화 'Moon Night'(1958)이 비교적 회화성에 안주하며 '음양'에 대한 기초를 담았다면, 나무 패널에 유화물감으로 비정형적 이미지를 거칠게 옮긴 (행위의 흔적이 뚜렷한) 1960년대 'Untitled' 연작은 탈고정성을 드러내 온 김구림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아쉬움이 없다. 이밖에도 나무 패널에 신문지를 오브제로 덧대어 일정한 도식을 첨가한 작품 'Work 8-63'(1963)은 플라스틱과 비닐을 조합해 미적 대상의 규칙성에 균열을 가한 'Space Construction A-B'(1968)와 함께 동일성의 논리를 부정함으로써 의미화의 과정 자체를 해체하는 작업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현상에서 흔적으로'(1969) 시리즈는 작가 특유의 전위적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설치작업으로 꼽힌다. 한국 최초의 대지 미술로 거론되는 '현상에서 흔적으로-김구림의 불과 잔디에 의한 이벤트'(1970) 등의 작업은 캔버스라는 물질성의 배격이자 예술에 대한 새로운 관점 및 사고를 엿보게 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시도로 인정받고 있다. 이렇듯 김구림은 한국 실험영화사의 중요한 작품인 '1/24초의 의미'(1969) 외에도 '태양의 죽음', '매스미디어의 유물', '걸레' 등 시대변화에 발맞춘 실험적이고 기념비적인 작업을 남겼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단체인 '제4집단'을 만들어 사회 전반의 영역과 통합돼야 할 예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실천하기도 했다. 김구림의 행보는 실력보단 학연에 얽매인 채 관념적, 현학적, 위선적 예술에 함몰된 화단과 확연히 구분된다. 판화에서부터 사진, 설치, 비디오, 대지미술, 퍼포먼스, 무용, 무대미술, 의상, 도자, 메일 아트, 연출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저돌적인 양태는 자칫 안일함에 빠질 수 있었던 한국 미술계에 신선한 자극이 됐으며, 그의 삶은 같은 작업을 무한 반복하고 있는 매너리즘 작가들과는 결이 다른 것이었다.(시장에서 주목 좀 받는다고 동일한 작업을 재탕, 삼탕하고 있는 작가들을 보라. 취향 집단의 간택이 그리 신 나는 일일까.) 근대적 사유방식의 대전제를 흔드는 김구림의 미적 태도는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시대가 변하면 사고가 변하고, 사고가 변하면 작품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그의 예술관도 유효하다. 다만 주류가 만든 인식과 제도는 오랜 시간 그를 외면했고 기존 틀에서 벗어나 행동하는 그를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거의 90평생을 그렇게 대우했다.(그래서 선구자는 항상 외롭다.) 늦은감이 없진 않으나 김구림의 개인전이 내년 8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최된다. 2013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의 개인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후 10년 만이다. 허세와 욕망으로 가득한 부르주아적 예술이 활개치는 당대, 이제라도 한국 미술의 새로운 비전을 열고 예술의 시대적 소명을 저버린 적 없는 작가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전시다.■ 홍경한(미술평론가)

2022-12-27 13:45:45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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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부끄러움조차 없던 한해

일도 많고 어려움이나 탈도 많았다는 뜻을 지닌 고사성어 다사다난(多事多難). 한 해가 저무는 연말이 되면 늘 듣게 되는 표현이다. 식상하지만 지난날의 상념과 감정을 함축적으로 담아내기엔 저 네 글자만 한 것이 없다. 수천만이 살아가는 나라에서 어느 해건 일없이 지날 수는 없을 것이다. 올해도 그렇다. 국내만 해도 다양한 이슈들로 넘쳐났다. 우선 대선이 치러졌다. 대통령이 바뀌었다. 전국지방동시선거도 있었다. '다누리' 발사 성공으로 한국도 이제 세계 일곱 번째 달 탐사국이 됐고,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이 16강에 진출하는 극적인 장면도 나왔다. 안타까운 일도 적지 않았다. 전국 각지에서 산불이 불거져 인명과 재산피해를 입었다. 3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태원 압사 참사는 온 국민을 슬픔에 젖게 했다. 2020년 초 시작된 코로나는 지금도 세계인들의 삶을 제약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인한 물가상승과 성장률 둔화, 고금리에 따른 경기침체는 나아질 기미가 없다. 소통과 대화가 실종된 정치권의 대립과 갈등, 양극화의 심화, 연금 및 건강보험 재정의 악화 등은 여전히 국민 불안을 가중시키는 요소이다. 이처럼 올 한해도 우리네 삶은 버거웠다. 연이은 북(北)의 도발과 기후변화는 다가올 미래마저 암울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미술계는 어떠했을까. 결론적으론 사건·사고로 얼룩진 사회와 다를 바 없다. 그리고 그 중심엔 국립현대미술관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22년 내내 바람 잘 날 없었다. '갑질 논란'에서부터 전문성 부족에 따른 전시 오류, 허술한 작품 관리 등 다양한 문제를 야기했다. 이중 '갑질 논란'은 1월에 불거졌다. 국립현대미술관 공무원 노동조합은 이른바 내부 '갑질'과 부당 인사를 고발하는 성명을 내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실태 조사에 나서면서 파장이 일었다. 윤범모 관장 취임 이후 빈번하게 발생한 전시 오류는 올해도 이어졌다. 지난 6월 과천관에서 개막한 '한국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는 채색화와 민화를 동일시해 '미술사 왜곡', '엉터리 전시'라는 평가를 면치 못했다. 8월 '이건희컬렉션' 이중섭 전시에는 작품 '아버지와 두 아들'을 두어 달 가까이 거꾸로 걸어놓아 전문성 논란을 자초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19년에도 진·위작 의혹 및 복제본 전시로 공신력에 타격을 입은 바 있다. 작품 관리 또한 부실했다. '한국 채색화 특별전'에선 최장 6개월 이상 전시하면 안 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상범의 '무릉도원'을 1년 넘게 공개해 입길에 올랐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야외 공원에 설치된 일부 조각 작품 역시 관리 미흡으로 빈축을 샀다. 서울문화재단의 개념 없는 행태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지난 3월 재단은 창립 18주년을 맞아 유인촌에게 '특별공로상'을 수여했다. 과거 재단대표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촬영한 광고 출연료 2억7000만원을 기부금으로 기탁하며 문화예술계를 지원해온 '선행'을 근거로 삼았다. 이창기 재단 대표는 홍보자료를 통해 "대한민국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헌신"을 운운하며 '노고'를 치하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시절 문체부 장관을 지낸 유인촌은 예술기관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크게 위축시킨 장본인으로 회자되고 있다. 역사는 그를 '숙청활극'의 주인공으로, '코드'라는 형태의 블랙리스트를 만든 의혹 인물로 기록한다. 한겨레신문은 2008년 3월 19일자 사설에서 '정권의 칼잡이', '정치권력의 망나니'라고 썼다. 그런 그에게 서울문화재단은 '특별'하다며 '공로상'을 줬다. 부끄러움조차 내팽개친 시상이었다. 이외에도 2022년 미술계는 분주하면서도 혼란스러웠다. 청와대를 전시 중심의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활용한다는 문체부의 방안에 반색과 반대가 부딪혔으며,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은 예술감독 재선정과 해촉 논의 등 전시가 열리기도 전부터 말썽을 빚었다. 국내에선 부산비엔날레, 강원트리엔날레 등 여러 국제행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프랜차이즈 아트페어인 영국의 프리즈가 국내에 처음 상륙해 성공적인 결과를 거뒀다. 미술 시장 규모도 1조원을 내다보게 됐다. NFT 등 블록체인 기반 작가와 작품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지나치게 우려먹는 인상이 짙지만 국공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이건희 컬렉션'을 포함해 매달 주목할 만한 전시도 줄지어 열렸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위기를 맞았다. 지난 9월 윤석열 대통령 순방 중 벌어진 한미회담 후 욕설 논란에 이은 국민의힘의 MBC 고발 사건, 고등학생이 그린 카툰 '윤석열차'를 전시한 기관에 '엄중 경고'한 문체부가 대표적이다. 언론 통제와 검열 및 블랙리스트의 재발이라는 측면에서 국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홍경한(미술평론가)

2022-12-13 11:28:11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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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환경운동가들의 '명화 테러'

세계 각국 미술관에 전시 중인 명화들이 일부 환경운동 활동가들에 의한 무차별 공격의 목표물이 되고 있다. 기후변화와 생태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명화 훼손 시위'로, 테러 수준의 과격함으로 인한 논란 또한 증폭하고 있다. 올해 5월 30일 프랑스 파리 루브르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작 '모나리자'가 일부 환경단체 활동가들에 의해 케이크 범벅이 됐다. 지난달 14일엔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걸려 있던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 작품이 토마토 수프를 뒤집어쓰는 봉변을 당했다. 이 뿐 아니다. 환경운동가들은 지난 11월 3일 이탈리아 로마의 보나파르트 궁전 미술관에 전시된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씨 뿌리는 사람'에 야채수프를 뿌렸다. 같은 달 15일엔 오스트리아 레오폴드 박물관에 전시돼 있던 클림트의 작품 '죽음과 삶'에 페인트로 추정되는 검은색 액체를 끼얹었다. 이들은 호주 국립미술관에 전시된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통조림' 등에 자신들의 손을 순간접착제로 붙이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환경운동가들이 식료품 및 물감을 쏟아 붓거나 자신들의 몸을 접착제로 붙이는 등의 격렬한 행위의 대상으로 삼은 명화는 이밖에도 더 있다. 네덜란드가 국보로 삼는 베르메르의 작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비롯해, 모네의 '건초더미', 존 컨스터블의 '건초마차',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봄)', 클림트의 '죽음과 생명', 뭉크의 '절규'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명작들이다. 유명 미술품만 골라 파손 시위를 벌이는 이유는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단시간 내 많은 관심을 끌어내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훼손된 작품 중에는 모네의 '건초더미'처럼 자연의 법칙과 조화를 강조한 작품들도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환경운동가들의 '명화 테러'는 주목받는 게 목적일 뿐 작품에 대한 이해도는 낮음을 알 수 있다.) 지구 온난화를 초래하는 화석 연료 사용 반대, 석유·가스 시추 활동 중단 등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지만 일반적인 집회·시위로는 이목을 끌기 어려워지자 미술작품의 명성에 기댄 전략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기후위기와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목적으로 한 환경운동가들의 시위 방식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미술작품에 대한 공격은 분명 나쁜 전술이지만 '명화 테러'를 통해 자신의 발언을 극대화할 수 있었고, 의도대로 언론의 얄팍한 스펙터클 논리와 직결되면서 크게 주목받았다. 사실 자연생태계의 파괴는 인류의 종말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에서 환경운동가들의 목소리자체는 가볍게 흘려들을 수 없다. 인간과 자연은 하나요, 기후가 무너지면 예술작품은 고사하고 인간 존재 역시 가능하지 않다. 기후위기 시대에서 우리 역시 뭔가를 해야 한다. 대규모 영농에 의한 토양손실, 개발을 앞세운 무분별한 벌목, 과도한 플라스틱 사용, 온실가스에 의한 오존층 파괴 등, 인간 사회와 복잡하게 얽힌 결과가 최악의 상황을 초래할 수 있음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자연이 인간에게 보내는 다양한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는 환경운동가들에게만 주어진 몫이라 보기 어렵다. 생물종 다양성 감소와 지구환경이 급격하게 변하면서 발생하는 '인위적 멸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미술작품에 대한 일부 환경운동가들의 극단적인 타격 방식에 공감을 표하긴 쉽지 않다. 제 아무리 뜻이 좋아도 인류 역사와 문화적 지반을 파괴하는 것까지 용납될 순 없을뿐더러, 세계 뮤지엄 92곳의 관장들이 지난 15일 발표한 성명에서 지적했듯 소장된 작품들이 대체 불가능하고 훼손에 취약하다는 점에서 지금과 같은 시위 형식은 옳지 않다. 물론 예술작품을 볼모로 삼아 테러를 가하는 그들의 거친 행동이 보편적 설득력을 담보하는 것도 아니다. 기후변화와 생태위기 상황의 심각함을 알리려는 것이라지만, 현재로선 공익에 반하는 폭력, 반달리즘(vandalism)에 지나지 않는다. 환경운동가들은 그동안 평화 시위, 청원, 인식 캠페인 등 덜 분열적인 다른 모든 전략을 통해 인식의 환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하나 기대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폭력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만약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는 적절한 방법을 고민한다면 미술작품에 테러를 가할 것이 아니라 정책 결정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 홍경한(미술평론가)

2022-11-29 09:44:23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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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두 개의 이야기

# 첫 번째 이야기. 레지던시(Residency)란 일정한 기간 동안 작가에게 작업공간을 지원하는 현재진행형 예술창작지원 공간과 프로그램을 말한다. 거주하는 특정 공간을 의미하면서도 예술교류, 전시, 학술 등 다양한 프로그램의 참여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작업실 유지와 각종 기자재를 사용하는 데 있어 경제적 부담을 느끼는 작가들은 장·단기 입주 기간 동안 거주 및 제작비용과 설비, 시설 등의 지원을 받는 레지던시 입주를 희망한다. 그러기 위해선 높게는 수백 대 일의 경쟁을 뚫어야 하고, 절차 중 하나인 소위 '면접'이란 걸 치러야 한다. 정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거나 특정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도 역시 면접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문제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한참 떨어진 곳까지 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수도권을 기준으로 할 때 멀리는 제주도나 강원도, 부산과 대전, 대구 등, 그 어디라도 창작할 수 있는 공간이 주어진다면 혹은 작업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무언가가 제공된다면 방문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번 갈 때마다 왕복 교통비만도 적지 않다. 5~10만원을 훌쩍 넘기 일쑤다. 행여 이른 시간에 면접이 잡히면 숙박비 지출도 염두에 둬야 한다. 역시 몇 만 원 이상이다. 면접 결과가 좋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씁쓸함은 오래간다. 경제적 부담에다 좌절감까지 더해지기 때문이다. 공립 기관만이라도 작가들에게 '면접비'를 지원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턱대고 떼쓰듯 달라는 게 아니다. 다양한 지원 사업에 참여한다는 건 작가들에게 돌아갈 일종의 혜택일 수도 있으나, 엄밀히 말하자면 그런 정책을 기획·집행하는 정부 및 지자체 산하 기관의 가치를 빛내주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들의 주목을 받으면 행정적 성과로 나타난다. 하지만 극소수를 제외하곤 필요 경비의 부담은 온전히 작가 개인의 몫인 경우가 많다. 우리 예술가들이 경제적 여유라도 있다면 이런 제안은 욕심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참담하다. 문체부가 발간한 '2021 예술인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소득이 전혀 없다(0원)고 응답한 예술인은 43%에 달한다. 30%의 예술인은 연평균 수입이 500만원 미만이라고 응답했다. 예술인 70% 이상이 매달 수입 40여만 원 이하의 빈곤상태에 놓여 있는 셈이다.(미술인의 경우 이 수입에서 작품 제작비 등을 제하면 사실상 적자다.) 그러니 교통비와 같은 실제 지출 비용이라도 예산에 반영하면 어떻겠느냐는 필자의 제언은 타당하다. 서류를 통과해 면접 단계까지 이르렀다는 건 어느 정도 작품성을 인정받았다는 것이고, 전문예술인으로서의 가능성이 유효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급 명분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논의가 활발해지길 고대한다. # 두 번째 이야기.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를 보호한다는 것. 그거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그들의 삶을 관심으로 지켜보고 그들의 예술이 현실에서 건강하게 지속될 수 있도록 작은 것부터 개선하는 일이다. '국고지원'의 취지를 잘 살려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국고지원'의 개념은 상업적 염두를 두지 않고 작업하는 작가들을 보호하자는데 있다. 조변석개하는 시장에 흔들리지 말고 자신의 미의식을 소신껏 드러낼 수 있는 자율권을 보장해주기 위함이다. 취미나 여가의 일환으로 예술 활동을 하는 이들이 아니라 '예술을 업으로 하는 전문 예술인'을 보호하자는 목적도 있다. 하지만 정부나 지자체, 관련 기관의 정책은 다소 다르다. 모든 국민의 예술가를 지향하는 듯 공적지원은 전문과 취미 구분 없이 이뤄진다. 심지어 멀쩡하게 운영되던 레지던시 등의 시설조차 시장이나 구청장이 바뀌면 돌연 생활문화센터로 둔갑하고 관광 시설화 한다. 어이없게도 시장진출을 위한 제도 강화가 곧 예술경영이라는 국가기관도 있다. 모두 지원 취지는 물론 '예술을 업으로 하는 전문 예술인'을 보호하자는 목적과 거리가 멀다. 가장 심각한 건 전문예술인 보호를 위해 마련된 제도를 악용한 여가 집단 혹은 미학적 소통이 불가능한 취미생들이 쉼 없이 들어서며 한정된 혈세를 '공돈' 받듯 타내지만 걸러낼 장치마저 마땅히 없다는 점이다.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산하기관들은 하루빨리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을 한 후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 지원 혜택의 산술성에 급급해 너도나도 세금을 타갈 수 있는 현행 구조를 방치한다면 정작 받아야 할 예술인은 차별되고 그에 비례해 한국 예술의 경쟁력은 낮아질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홍경한(미술평론가)

2022-11-15 13:11:56 김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