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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홍경한의 시시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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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동시대미술의 문법

19세기 인상주의(Impressionism) 시기까지만 해도 미술은 명확한 경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같은 시대를 공유하는 신고전주의(Neoclassicism)와는 마치 물과 기름처럼 명료히 구분되었으며, 각 예술 사조는 자율성과 독자성을 바탕으로 고유한 영역을 형성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경계는 점차 무너지기 시작한다.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의 양상을 기존의 시각조형만으로는 충분히 담아내기 어렵다는 인식이 미술가들 사이에서 퍼지면서 장르 간, 매체 간 경계를 자발적으로 허물고 새로운 표현을 탐색하는 무리들이 나타났다. 특히 기술의 발전과 매체의 다양성은 이러한 흐름을 더욱 촉진했고, 이는 예술 내부에서조차 융합(convergence)과 혼종(hybridity)의 양상을 일반화하는데 주요하게 역할 했다. 현대미술의 이러한 변화는 프랑스 작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을 필두로 한 다다이즘(Dadaism) 운동을 통해 더욱 본격화되었다. 뒤샹은 자전거 바퀴를 의자에 얹은 조형물을 선보이며, 몇몇 오브제의 조합만으로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나아가 그는 상점에서 구입한 변기 하나를 미술관에 전시하고 '샘'(Fountain, 1917)이라는 제목을 붙임으로써 작품이란 작가의 개념과 정의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와 용도로 탈바꿈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이후 예술은 더욱 빠르고 급진적인 진화를 거듭하게 된다. 자연주의(Naturalism), 사실주의(Realism)와 같이 '보이는 세계'에서, 큐비즘(Cubism), 야수주의(Fauvism), 초현실주의(Surrealism) 등의 '생각을 그리는' 단계로 전환되었으며, 대중예술(Pop Art)과 고급예술(Fine Art) 사이의 틈을 메운 앤디 워홀(Andy Warhol)이나, 비어 있는 공간 자체를 작품으로 제시해 이미지와 텍스트, 시간과 공간, 물질성과 개념 사이의 관계를 재구성한 이브 클라인(Yves Klein)의 사례처럼 시간과 공간, 관념과 감각이 융합된 복합예술로 확장되기에 이른다. 21세기의 예술은 오랜 시간 유지해온 전통적 분간에서 자유롭다. 경계와 진역은 지속적으로 재편되고 상호 침투하며 혼합된다. 예술은 이제 장르와 형식의 범주를 넘어 제도, 자본, 상품, 노동 등 인간의 삶을 구성하고 지배하는 모든 요소를 포섭하며, 그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의미를 생성해낸다. 물론 엘리트와 대중, 순수예술과 상업예술, 예술품과 일상 사물 간의 위계조차 해체되었고, 주제와 소재, 기법 등 수백 년간 이어 온 시각예술의 고정관념 역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처럼 후기구조주의(Post-structuralism)로 대변되는 탈근대의 미술은 일정한 규범이나 형식 속에 가두거나 이미 정착한 양식 안에서 완결되지 않는다. 복합성과 개방성, 대중성과 다양성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진보를 거듭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탈경계적(debordering) 움직임 속에서 관람객에게 전례 없는 감각적 경험까지 제안한다.(실제로 동시대 관람객들은 한 작품 안에 다양한 층위의 의미를 생성하는 상호작용성(interactivity)의 주체이자 능동적인 참여자로 위치한다) 결론적으로, 동시대에서 미술은 형식이 아닌 태도이자 관점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보다는, 작가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지에 가치를 둔다. 미디엄의 순수성에 얽매이지 않고 비판적 사유를 위한 다학제적 관계성을 용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통 방식을 포함해 그 내용과 형식까지 근본적인 변화가 뚜렷해진 현실을 고려할 때 한국에 아직 남아 있는 '회화냐 조각이냐', '동양화냐 서양화냐' 하는 구분은 더 이상 중요한 기준이 되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당대성이 내포된 문장을 짓기 위한 하나의 단어에 불과하며 다차원적인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으로서의 문법의 일부일 따름이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2025-05-06 13:21:04 한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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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역사적 전환점이 된 작품

'공공미술(Public Art)'은 '공공의 장소에 놓이는 미술'을 의미한다. 도심 빌딩 앞, 공원, 광장 등 일상 속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조각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작품들은 도시미관 개선과 미술향유를 목적으로 설치되지만, 정작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왜 그 자리에 놓였는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데다, 공공의 주체인 시민들의 개입 또한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미국 작가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의 '기울어진 호'(Tilted Arc)는 이러한 현실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공공미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문제적 작품이다. 공공미술이란 단순한 장식이 아닌, 공공공간의 본질과 기능을 되돌아보게 만들어야 한다고 믿었던 작가의 신념을 드러낸 도전의 결과물이자, 미술사적으론 예술과 시민, 공간의 관계를 재구성한 선구적 사례로 꼽힌다. 1981년 뉴욕 맨해튼의 폴리 연방 플라자(Foley Federal Plaza)에 설치된 이 작품은 거대한 강철판(Corten steel) 하나로 구성되었다. 길이 36.5미터, 높이 3.6미터에 이르는 규모는 언뜻 거대한 철판 덩어리에 불과하지만, 시각적 문법으로 시민과 공간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려한 세라의 의도가 가장 잘 반영되어 있다. 실제로 이 조각은 사람들의 이동 방식, 공간 인식, 심리에 영향을 주도록 고안했으며, 이와 같은 설정은 플라자의 동선을 재편하며, 시민들이 일상적인 공간을 새롭게 의식하도록 유도했다. 이에 시민들은 철판을 우회하며 공간과의 긴장감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고 그 과정은 곧 시각적 감상을 넘어 신체적 경험을 통한 예술을 음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의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사실 특정 장소를 위해 제작된 장소특정적(site-specific) 작품이었던 '기울어진 호'는 설치 직후부터 논쟁의 중심에 섰다. 인근 법원 관계자들과 사무직 종사자들은 위압감을 준다며 불편해 했으며 일부 시민들은 통행을 방해하는데다 주변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장소 이동을 요구했다. 심지어 1985년엔 사회적 문제로까지 비화되면서 작품 존치를 둘러싼 청문회까지 열리게 되었다. 1300명 이상의 지지자와 반대자가 날 선 의견을 교환하는 등 의견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세라는 철거 여론을 단호히 거부했다. 예술은 단지 대중을 만족시키기 위한 장식물이 아니라, 때론 불편함을 통해 질문을 던져야 한다며 맞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9년, '기울어진 호'는 기어이 해체되어 창고로 옮겨졌다. 이를 두고 세라는 '예술에 대한 폭력'이라며 강하게 비판했으며, 여러 강연과 글을 통해 공공미술의 본질과 예술가의 권리에 대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기울어진 호'가 인정받게 된 것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였다. 뒤늦게나마 공공미술의 존재 방식과 시민 참여, 예술의 자율성에 대한 담론 유발이라는 미술계의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고 시민들 역시 미술이란 눈에 보이는 것에 그치지 않는, '경험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임을 서서히 이해하게 되었다. '기울어진 호'는 더 이상 볼 수 없다. 하지만 당시 길을 가로막는 골칫거리로 인식되던 이 작품이 남긴 의의는 작지 않다. 예술이 지닌 힘, 즉 사고를 자극하고 경험을 변화시키는 것이 예술이라는 메시지를 영원히 남겼고, 예술과 권력 간의 긴장 관계를 비롯해 공공미술이 누구를 위한 예술인지, 작가의 권리와 공공의 권리 중 무엇이 우선인가에 대한 화두를 생산하는 등, 공공미술의 역사에서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의 공공미술은 지역 사회와의 협의와 소통, 참여형 기획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2025-04-22 10:38:41 한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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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것

아무런 죄 없이 겪는 숱한 익명의 비극을 목도할수록 희망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공허하게 들린다. 고통과 불행을 마주할 때, 우리는 곧잘 "이 세상이 과연 나아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는다. 인류의 역사는 아픔과 상처로 점칠 된 여정이었고, 제 아무리 밝은 미래를 소망한들 달라진 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가자지구, 수단, 미얀마 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 및 정치적 불안으로 인한 국민의 도탄과 잔혹한 결과들은 21세기에도 인간의 삶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매일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증오와 폭력, 무고한 이들에게 부여된 참상은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과거의 어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케테 콜비츠(Kathe Kollwitz)의 '전쟁' 연작은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 존엄성 상실을 새긴 목판화다.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작가 개인의 비탄과 사회적 비극을 거친 선과 어두운 명암으로 버무렸다. 전쟁의 끔찍함을 되돌아보며 만든 이 작품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끝난 후인 1922년 제작됐다. 지금으로부터 약 70년 전인 1953년,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은 다양한 이유로 감금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괴로움과 내면의 절규를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에 빗댔다. 일그러진 얼굴에 비명까지 얹어 억압적 상황마저 읽게 하는 이 작품 외에도 '풍경 속의 인물'(1945)이나 '인물 삼부작'(1972) 등의 많은 작품들이 인간이 처한 실존적 공포를 가감 없이 반영하고 있다. 난민들의 유류품들을 전시공간에 펼쳐놓은 '빨래방'(2016)과 3500개의 난민 구명조끼를 이용한 '해돋이'(2017)와 같은 아이 웨이웨이(Ai Weiwei)의 설치작업은 지중해를 건너다 목숨을 잃은 시리아 난민들의 비극을 상기시킨다. 175명의 정치적 망명자들의 초상화를 레고로 만들어 전시한 '궤적'(2014)에서 마냥 현대사회의 인도주의적 위기를 직설적으로 다루고 있다. 콜비츠에서부터 아이 웨이웨이까지, 100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불안과 절망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냥 이대로 무력함에 좌절하는 것이 전부일까. 이에 대해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는 4부작 <비르케나우(Birkenau)>(2014)를 통해 역사적 비극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추모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나치에 의해 110만명의 사람들이 학살된 죽음의 장소인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촬영된 4장의 사진을 바탕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사진을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그림 위에 여러 겹의 페인트를 덧칠해 가려버렸다. 형상의 가독성을 해체시킴으로써 끔찍한 역사에 반대하며 애도를 녹여낸 것이다. 이들 작업의 공통점은 결국 잔인한 세상과 인간의 연약함을 직시하되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에 있다. 고통이 몸을 휘감더라도 타인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고통에 맞서 싸우는 행동 자체에 의미가 있음을 가리킨다. 이는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도 인간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페스트'(1947)를 통해 희망 없는 상황에서도 행동하고, 연대하면서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저항이자 승리라고 말한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입장과 결이 같다. 오늘날의 세계가, 인간의 삶이 여전히 비극으로 넘쳐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체념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가 그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작품마다 각인시켰다. 그것은 엄혹한 현실을 바로보면서도 더 나은 가능성을 믿는 용기였다. 비록 당장은 세상을 바꿀 수 없을 지라도, 무기력함이 억누를 지라도. /홍경한 미술평론가

2025-04-08 11:31:28 한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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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예술의 한계

오스트리아 빈에서 결성된 빈 분리파(Vienna Secession)는 1897년 4월,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비엔나공방으로 잘 알려진 콜로만 모저(Koloman Moser), 요제프 호프만(Josef Hoffmann) 등의 예술가들에 의해 창설되었다. 기존의 전통적인 예술 아카데미와 역사주의 양식에서 벗어나 보다 현대적이고 개성적인 종합예술을 추구했던 그룹이면서 개혁운동이다. 빈 분리파하면 가장 먼저 클림트와 에곤 실레(Egon Schiele), 코코슈카(Oskar Kokoschka), 카를 모저(Karl Moser) 등을 떠올리지만, 멤버 중에는 프란츠 세들라체크(Franz Sedlacek)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실종되어 사망 처리된 인물로, 유럽 미술에서 독창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20세기 초반 활동한 작가다.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그림을 주로 그렸다. 세들라체크는 1891년 현재의 폴란드 브로츠와프(Wroclaw, 당시 독일제국)에서 태어났으며 건축과 화학을 전공했다. 그림은 독학으로 배웠다. 1912년 린츠에서 열린 전시회에 처음으로 작품을 선보였고, 인상주의와 표현주의적 요소를 결합한 화풍의 안톤 루츠(Anton Lutz), 세밀한 연필 드로잉으로 이름을 떨친 클레멘스 브로쉬(Klemens Brosch) 등과 함께 린츠 기반의 예술 협회를 창립하며 본격적으로 예술 활동을 벌였다. 빈 분리파 정회원이 된 것은 1927년으로, 이후 정기적으로 전시회에 참여했다. 감정적 표현을 배제하고 객관적이고 차갑게 현실을 묘사했던 신즉물주의의 대표작가로 꼽히는 그는 흑백의 어둡고 기이하면서도 환상적인 이미지로 유명한 알프레드 쿠빈(Alfred Kubin)과, 에로틱하고 그로테스크한 작품을 남긴 벨기에 작가 펠리시앙 요제프 빅토르 롭스(Felicien Joseph Victor Rops)와 비슷한 예술적 감수성과 어두운 환상성을 공유한다. 세들라체크는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만의 조형문법을 만들었다. 특히 르네상스와 초현실주의, 마술적 리얼리즘의 흔적이 뒤섞여 있다는 점에선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나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피터르 브뢰헬(Pieter Brueghel de Oude)과 같은 선배 작가들의 영향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은 그의 그림 속 초자연적이거나 상징적인 풍경, 수수께끼 같은 장면 등에서 잘 드러난다. 그의 작품은 다양한 양식을 차용하고 있으나, 억압적인 시대에 대한 회의와 심리적 불안 등을 기괴한 화면으로 표현했다는 사실은 동일하다. 사회비판적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도망자(The Fugitive)>(1928), <황혼의 노래(Song in the twilight)>(1931), <나무 위의 유령들(Ghosts on a Tree)>(1933) 등이 그 예이다. 그 중 인상적인 작업은 <나무 위의 유령들>이다. 이 작품은 달빛 비추는 밤하늘을 배경으로 기이한 형상들이 황량한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두건을 쓴 듯, 독수리를 닮은 해골얼굴의 새 23마리가 나뭇가지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구성이다. 잎사귀 하나 없는 나뭇가지는 죽음과 황폐함을 의미한다. 유령 같은 존재들은 불길함의 기호요, 알 수 없는 세계 및 인간의 필멸을 암시하는 장치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사이, 사회적 공포와 정치적 혼란이 팽배했던 시기에 그는 이와 유사한 주제를 자주 작품 속에 녹여냈고, <나무 위의 유령들>도 그 연장으로 볼 수 있다. <나무 위의 유령들>처럼 예술은 현실을 반영한다. 물론 건조한 감정과 무기력함이 팽배한 동시대를 투영한 작품들은 많다. 세들라체크 외에도 적지 않은 예술가들이 저마다의 언어로 악몽 같은 오늘을 그린다. 다만 예술의 속도는 현실의 고통과 암울함을 따라가지 못한다. 현실은 언제나 예술의 그것보다 참혹하고, 새로운 비극은 늘 예술을 앞선다. 이는 예술의 존재이유이자 한계다.■ 홍경한(미술평론가)

2025-03-25 11:08:57 한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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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농담'

1993년, 이탈리아의 개념 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은 다른 작가의 작품을 통째로 훔쳐 전시회를 열었다.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선 자신에게 허용된 전시 공간을 향수 광고 에이전시에 팔아넘기는 기행도 벌였다. 1995년 열린 광주비엔날레에 'Tie'라 명명한 2㎝짜리 개미 형상의 조각 한 점을 보낸 건 꽤나 유명하다. 심지어 그는 1999년 돈과 권력으로 물든 비엔날레를 비틀기 위해 가상의 비엔날레인 캐리비언비엔날레를 창설, 크리스 오필리(Chirs Ofili), 리크리트 티라바니자(Rirkrit Tiravanija) 등의 참여 작가들과 함께 세인트 키츠라는 서인도 제도의 한 섬에서 휴가를 보내는 프로젝트를 펼치기도 했다. 당황스럽고 예측하기 어려운 행동으로 미술계의 악동이라 불리는 카텔란은 새로운 미술사적 의미를 통해 예술의 이상성을 제시하고 미술계를 정복하겠다는 순수한 감정 따윈 일찌감치 내다 버렸다. 차용, 풍자, 유머를 사용해 기존 가치 체계를 자극하며 우리가 가장 불편해하는 것, 금기시하는 주제들을 자기만의 방법으로 희화화해 거리낌 없이 내놓았다. 이를 달리 말하면 '비판적 유희'라고 할 수 있다. '비판적 유희'의 대상은 넓다. 정치, 사회, 종교, 미술계를 넘나든다. 일례로 성경에 등장하는 구시(유대인 시간으로 오후 3시이자,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선종한 시간)를 빗댄 '아홉 번째 시간(La Nona Ora)'이라는 제목의 작품은 가톨릭교회의 최고 권위자인 교황(요한 바오로 2세)이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에 깔린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종교적 권위와 타락, 인간의 취약성을 꼬집는 조각으로, 1999년 쿤스트할레 바젤에서 처음 선보였으며 2023년 리움미술관 전시에도 출품됐다. 일주일이면 썩어 없어질 허상의 기호로 바나나 한 개를 벽에 덕트 테이프로 붙여 놓은 게 전부인 '코미디언(Comedian)'(2019)은 동시대 미술 시장의 투기적 성격과 비합리성을 지적한다. 동네 슈퍼마켓에서 1000원 남짓할 바나나 한 개가 처음엔 1억원을 웃돌더니 2024년엔 86억원에 거래되는 미술 시장 자체가 그에겐 코미디 같은 현실인 셈이다. 조롱에 가까운 카텔란식 어법은 '아메리카(America)'(2011)라는 제목의 작품에서도 동일하다. 그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물건인 '변기'를 18K 금으로 만들어 2016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화장실에 설치했다. 총 103㎏의 금이 사용돼 일명 '황금 변기'로 통한다. 2019년 영국 블레넘 궁전 전시 중 도난을 당하면서 더욱 화제가 된 작품이다.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아메리카'는 미국식 자본주의와 소비주의를 비판함과 동시에 극단적인 부와 사회적 불평등, 예술의 가치에 대해 질문한다. 예술이든 인간관계든 그저 돈이 우선인 현실과 소수의 권력이 그렇지 않은 이들의 몫과 기회까지 모두 쥔 채 사회적 자본마저 세습하는 구조를 비판하고 있다. 부의 불균형과 자본의 다소가 곧 계급이자 미래의 자리까지 결정하는 한국도 예외는 아니라는 점에서 곱씹게 되는 작품이지만, 한편으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실용성을 부여함으로써 예술의 민주화라는 측면도 엿볼 수 있다. 특히 한 끼 식사로 10만원짜리 호텔 뷔페를 먹건, 몇 천원짜리 김밥 한 줄을 먹건, 배설은 동일하다는 사실은 카텔란식 풍자의 정점이다. 익살스러움 뒤에 숨겨진 진지함을 특징으로 하는 카텔란의 모든 작업은 부조리한 것들에 관한 '냉소적 진술' 혹은 '시니컬한 농담'이다. 점차 지루해지는 동어 반복과 맥락상 다다이즘(Dadaism)이라는 거대한 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도 부정하기 어렵지만 작품을 통한 그의 발언들은 저항 없이 습속 돼온 사회의 폐단과 상류 의식에 금을 낸다. 그의 농담 하나가 파급력이나 의미 면에서 1000개의 대중 취향 의존적 작업들보다 낫다, 훨씬.■ 홍경한(미술평론가)

2025-03-04 11:23:38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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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예술 없는 삶이란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는 사랑의 환희와 상실의 아픔을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Twenty Love Poems and a Song of Despair, 1924)라는 시집에 새겼다. 카스파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는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1818)에 자연과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를 기록했고,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는 사후 심판에 대한 두려움과 구원에 대한 희망을 '레퀴엠'(Requiem, 1791)에 녹여냈다. 세 작품 모두 인간 감정의 깊이와 미적 아름다움을 동시에 갖춘 걸작으로 꼽힌다. 예술은 시공간에 가로막히지 않은 채 길 잃은 자들의 조타로써,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로도 평가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예술을 사치나 여가 활동 정도로 치부한다. 최근엔 경제적 가치로만 환산하는 경우도 부쩍 늘었다. 종교가 돼버린 자본주의의 부작용이다. 예술의 역할은 크다. 인간 존재의 심도를 헤아리고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내면의 세계를 시청각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요, 어둡고 탁한 사회를 예술의 언어로 치환해 밝음으로 인도하는 산파다. 예술가의 신념과 문화의 가치, 삶의 근본 원리를 담는 그릇인 것도 맞다. 미술 또한 예외는 아니다. 강렬하고 원초적인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작품을 보라. 고립된 인간의 영혼과 고통에 잠식된 실존이 배어 있지 않은가. 오토 딕스(Otto Dix)의 '전쟁'(War, 1929-1932) 제단화는 또 어떤가. 삼면화(triptych) 형식의 이 그림은 종교적 도상을 차용했지만, 내용은 전쟁이 남긴 처참한 폐허와 인간 존재의 허무함으로 가득하다. 부패한 시신, 폐허가 된 전장, 공포에 질린 병사들의 모습은 전쟁의 두려움과 인간의 무력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게오르크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이 말했듯이 "예술은 시대정신의 감각적 표현"이다. 피카소(Pablo Picasso)의 '게르니카'(Guernica, 1937)는 전쟁의 참상을 드러낸다. 이탈리아 출신의 작가 다니엘 노어(Daniel Knorr)의 연기 작품 '날숨 운동'(Expiration Movement, 2017)은 나치의 만행으로 희생된 이들에 대한 위령임과 동시에 오늘을 성찰하는 다층적 함의다. 이 밖에 미술은 험난한 세상살이에 치이고 할퀴어진 인간의 상처를 소독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말년의 클림트(Gustav Klimt)가 애착을 가졌던 풍경화나, 미술사적으로 숱하게 반복하며 표상해온 '피에타'(pieta), 로스코(Mark Rothko)의 추상화에서 엿보이듯 붓의 움직임, 빛과 색채의 조화, 저마다의 형상에 낱낱이 각인된 이야기는 마음의 혼란을 달래고 정화하는 묘약이다. 물론 미술은 세상을 보는 다양한 방식이자 인간을 보다 인간답게 만드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곳에 근간한 작품들은 우리의 무뎌진 감각을 일깨우고, 사고의 지평을 넓히며, 남루한 영혼을 풍요롭게 한다. 그리고 그 주체인 예술가들은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태고의 날들'(Ancient of Days, 1794)에서처럼 이성과 상상의 힘을 통해 또 하나의 창조자가 돼 속박 없는 세상을 끝없이 개척해낸다. "음악이 없다면 인생은 실수가 될 것이다"라는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의 발언은 잘 알려져 있다. 아마도 자신만의 철학적 관점에서의 예술, 특히 음악이 인간 존재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넓게 보면 미술을 포함한 예술 없는 삶이야말로 인생의 실수다. '그저 살아감'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홍경한(미술평론가)

2025-02-18 10:49:29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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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잘 지내길 바라"

이별은 흔적을 남긴다. 특히 사랑이 짙을수록 헤어짐의 생채기도 깊다. 흔히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다'는 말로 위로하지만, 사랑하는 이와 작별한 이들에겐 공허함만 부풀릴 뿐이다. 사랑과 상실은 동일한 서사 안에서 반복됨을 모르진 않음에도 그렇다. 프랑스 개념 미술가 소피 칼(Sophie Calle)은 사랑과 이별이라는 일상적 경험을 재치 있는 방식으로 풀어 미술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내용은 이렇다. 그녀는 2004년 연인으로부터 헤어지자는 편지를 받았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사랑한다면서도 갈라서길 원하는 듯한 편지에 칼은 대체 어떻게 답장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마지막에 쓰인 "Take care of yourself(잘 지내길 바라)"라는 문장은 꽤나 혼란스러웠다. 다시 만나자는 것 같기도 하고 떠나겠다는 것 같기도 한, 한마디로 이게 무슨 뜻일까 싶었다. 이에 소피 칼은 그 편지를 문학가, 철학자, 기자, 정신 분석가, 배우, 가수, 변호사, 음악가 등 다양한 분야의 여성 107명에게 각자의 전문적 관점으로 분석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철학자는 사랑과 이별의 본질에 대한 논의를 펼치며 편지 속 문장이 어떻게 윤리적·존재론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살폈고, 정신 분석가는 편지를 보낸 사람의 심리 상태와 무의식적 의도를 추론했다. 이 밖에도 댄서는 춤을, 가수는 노래를, 변호사는 법적인 관점에서 책임과 계약적인 요소를 뽑아냈다. 소피 칼은 그 결과물과 과정을 글과 사진, 영상 등으로 기록했다. 전시를 열고 책을 만들었다. 이후 그의 '이별 극복기'는 거대한 다원 예술 프로젝트로 완성됐다. 바로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 프랑스 국가관에서 처음 공개된 'Take care of yourself' 프로젝트이다. 개념 미술의 중요한 특징인 텍스트와 다중 해석 가능성에 주목한 이 작업은 '부재'를 화두로 한 전작들의 연장이다. 그녀는 1981년 베니스의 한 호텔 객실 청소부로 일하며 손님이 나간 객실을 촬영해 그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자취를 담은 'L'Hote'(호텔, 1981)이라는 작품을 만든 적이 있다. 에펠탑에 작은 방을 설치해 놓고, 방문객들과 같이 누워 대화를 나눈 작업 'Room with a View'(전망 좋은 방, 2002)에서마냥 'Take care of yourself' 프로젝트 역시 누군가의 참여로 이뤄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베니스에서 우연히 만난 한 남성을 몰래 따라다니며 그의 행적을 기록한 'Suite Venitienne'(베니스의 추적, 1980)이나, 자신이 타인의 관찰 대상이 되는 경험을 다룬 'The Shadow'(그림자, 1981) 등은 'Take care of yourself'와 마찬가지로 사생활과 공적 영역, 관음과 관찰을 넘나드는 구조로 돼 있다.다만 'Take care of yourself'의 경우 이전 대비 사적인 이야기를 사회적·문화적 담론으로 확장시키면서, 예술과 삶의 경계가 보다 얇아진 측면이 있다. 실재를 벗어나 심리의 부재가 더욱 두드러진다는 점, 예술은 더 이상 작가 개인의 내러티브에 머무르지 않고 집단적 해석을 통해 얼마든지 열린 결말이 가능함을 보여준 사례라는 것도 하나의 차이다. 'Take care of yourself' 프로젝트는 1970년대 이후 지속된 페미니즘 미술의 연장선상에 놓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주디 시카고(Judy Chicago)나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여성적 경험의 재구성과 맞닿아 있을 뿐만 아니라,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의 'My Bed'(나의 침대, 1998)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h)의 'The Artist Is Present'(예술가가 여기 있다, 2010)에서처럼 파국적인 연애와 개인적인 상실을 예술적 문법으로 변환하는 과정은 페미니스트 아트와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소피 칼은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이별의 아픔도 무뎌졌다고 했다. 그녀는 가슴 아픈 이별을 객관화해 공유함으로써 마음속 상흔을 완전히 털어냈다. 그리고 편지를 보낸 이의 바람대로 잘 지냈다. 아니, 잘 지내고 있다.■ 홍경한(미술평론가)

2025-02-05 14:37:01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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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인간애'는 인간의 조건이자 미술의 조건

'인간애'(人間愛)에 대한 미술의 역사는 깊다. 오래전부터 적지 않은 작가들이 빈곤, 전쟁 등을 겪는 인간의 슬픔과 상실을 그렸으며, 어두운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 참아내며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잔혹한 전쟁에 반대하며 인간의 존엄과 가치,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하려 했던 피카소(Pablo Picasso)의 '게르니카'(1937)가 그렇고, 사회적 약자의 고통과 그들에 대한 연민을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새긴 케테 콜비츠(Kathe Kollwitz)의 판화 작업들, 난민들의 아픔을 이해하길 원했던 아이 웨이웨이(Ai weiwei)의 설치 작업들이 그렇다. 이 중 콜비츠의 주요 작품 중 하나인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1903)에는 어머니와 죽은 아이 사이의 고통스러운 순간이 담담하면서도 강렬하게 담겨 있다. 격변기마다 사회 운동에 참여했던 어머니는 전쟁으로 인해 자식과 사별하고, 죽음을 마주한 노인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자신과 이웃에 엄습한 세계를 응시했던 그에게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끌어안고 있는 형상(Pieta)의 이 에칭(etching) 작업은 그의 '전쟁'(1921~1922) 시리즈 이상으로 인간애를 물씬 풍긴다.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감자 먹는 사람들'(1885) 역시 인간에 대한 애착이 녹아있는 작품에 속한다. 단순하게 보면 한 가난한 가족이 어두운 방안에 모여 식사를 하는 장면이지만 다섯 인물의 태도와 분위기에서 농민의 거친 삶과 더불어 인간의 존엄성과 소박한 아름다움까지 담아내려 했던 고흐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의 실체는 가족 간 보이지 않는 사랑, 내 것에 앞선 배려와 희생이다. 인간애가 묻어나는 작품은 이 외에도 많다. 뱃사람들의 험난한 인생을 통해 사회적 모순과 절망을 피력한 일리아 레핀(Ilya Repin)의 '볼가 강의 배 끄는 인부들'(1870~1873)을 비롯해 빈민과 노동자들의 삶과 개척 의지에 주목하며 생존을 위한 투쟁의 숭고함을 형상화한 세바스티앙 살가도(Sebastiao Salgado)의 '브라질'(Serra Pelada Gold Mine, Brazil, 1986) 연작, 전쟁의 비인간성을 비판하는 포토몽타주 작품으로 폭력을 미화하는 나치 정권의 허위를 폭로한 존 하트필드(John Heartfield)의 작업 등도 궁극적으론 인간애를 바탕으로 인권과 인간의 존엄은 물론, 사회 구성원의 윤리적 책임을 환기케 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브라질 금광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군상과 아프리카 사헬(Sahel) 지대에서 결사적으로 유랑하는 유목민들의 묵시록적 풍경, 진흙 속에서 일하면서도 형형한 눈빛을 잃지 않은 사람들을 앵글에 담은 살가도의 작업은 인간애를 개인적 영역에서 끄집어내 사회적, 환경적 차원으로 확장한 사례로 꼽힌다. 인간 존재(Dasein)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고, 존재의 진정성은 이타성에 의해 실현된다. 인간은 그 자체로 목적이어야 하며, 삶에 대한 경외는 인간애의 가장 진솔한 형태이다. 그것은 개인의 경험적 범위에서만이 아닌 인문학적 기반 위에서 형성된 세계관과 관련이 있고, 그 내부엔 인간의 정서적인 차원의 활동들이 끊임없이 삶의 사실적인 차원들과 화해를 쌓아가는 과정이 들어 있다. 이런 과정들은 미술에 있어 익명의 이야기를 역사적 장에서 의식화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것은 억압받은 자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행위이며,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과 모순을 인식하게 만드는 일이다. 비록 동시대에서 인간애란 한없이 허약하지만, 그럼에도 우린 인간애야말로 증오로 가득한 현실의 문맥을 변경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저버릴 수 없다. 인간의 조건인 인간애가 곧 미술의 조건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홍경한(미술평론가)

2025-01-21 14:27:42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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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죽음의 섬

스위스 태생의 상징주의 작가 아놀드 뵈클린(Arnold Bocklin)이 그린 '죽음의 섬'(Isle of the Dead, 1880) 중앙에는 명암의 극한 대비를 이루는 암벽의 섬이 있다. 흡사 거대한 무덤처럼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이 섬에는 영생과 애도를 의미하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음산한 기운을 내뿜은 채 빼곡하게 서 있고, 초월적 평온의 바다 위엔 작은 배 한척이 놓여 있다. 죽은 자를 저승으로 데려가는 뱃사공 카론(Charon)일까. 뒷모습의 사공은 유령마냥 하얀색 천으로 온몸을 감싼 사람과 흰 포로 덮인 관을 싣고 섬을 향해 노를 젓고 있다. 정지한 듯 고요히 움직이는 이 배는 머잖아 섬에 당도할 것이다. 섬은 깊고 깊은 죽음 이후의 세계. 육신의 아픔도 정신적 괴로움도 없다. 사공은 안식의 세계에 망자를 내려놓을 것이다. '죽음의 섬'의 주제는 '죽음'이다. 결혼을 약속했던 연인이 뇌염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뵈클린의 자녀 14명 중 여덟 명이 전염병과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 작가 본인도 열병과 뇌졸중에 걸려 사경을 헤매는 경험을 했다. 그렇게 그는 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었다.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숱하게 목격해야 했다. 뵈클린은 죽음이 낯설지 않았다. 그는 점차 죽음에 익숙해졌다.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해골이 귓속말을 하는 장면이 묘사된 '자화상'(Self-Portrait, 1872)은 죽음을 안고 가야 할 존재로서의 자신을 표현한 작품이다. 죽은 예수를 끌어안고 있는 성모를 그린 '피에타'(1885)에는 떠나보낸 자녀에 대한 그리움과 비통함이 담겨 있다. 죽음은 자식을 잃은 후 심연에 들었던 그였기에 표현할 수 있는 세계였다. 그의 유력 후원자가 작업실을 방문한 후 원래는 없었던 배와 여인, 그리고 흰 포로 덮인 관을 넣어달라고 했을 때에도 기꺼이 수락할 수 있었던 건 급성 감염 질환으로 남편을 먼저 보낸 그녀의 사연에 공감해서였다. 이처럼 그의 그림에는 죽음이 스며있다. 그리고 죽음과 마주하기로 결심한 이후 제작된 '죽음의 섬'은 많은 이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그중에는 러시아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와 히틀러(Adolf Hitler)도 있다. 라흐마니노프는 흑백으로 된 '죽음의 섬' 복제품을 본 후 비장함이 묻어나는 동명의 교향시를 작곡했다. 히틀러는 뵈클린의 그림을 다수 소장할 만큼 그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1886년까지 제작된 '죽음의 섬' 다섯 가지 버전 중 세 번째 버전(1883)을 소장하기까지 했다. 히틀러가 만난 적도 없는 뵈클린에게 푹 빠진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화가가 되려 했던 젊은 시절의 꿈과 죽음과 영속성에 대한 집착, 나치 이데올로기에 관한 이미지 조작 등의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저 그랬던 무명의 화가를 일약 스타로 만든 '죽음의 섬'은 숭고미를 완벽히 구현한 사례로 평가된다. 숭고미는 인간이 감각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무한함, 거대함, 초월적인 힘과 맞닥뜨릴 때 발생한다. 자연이나 예술 작품 앞에서 느끼는 경외감과 불안한 감정 등도 그중 일부다. 죽음 역시 예외는 아니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Epicurus)의 사유처럼 우리가 존재할 때 죽음은 존재하지 않고, 죽음이 존재할 때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불멸의 욕망만 제거한다면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뵈클린이 말년에 발표한 '생명의 섬'(Isle of Life, 1888)을 통해 죽음의 반대편에서 '생의 환희'를 찬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것이 비록 찰나에 불과할지라도.■ 홍경한(미술평론가)

2025-01-07 13:36:29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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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역사는 어떻게 도큐먼트화 되는가

이집트 출신의 미술가인 와엘 샤키(Wael Shawky, 1971~)는 아랍권을 대표하는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영상, 설치 미술, 조각 등 다양한 조형 방식을 통해 지난 천 년 동안 지속돼온 아랍과 서구 간의 깊은 갈등과 그 속에 내재된 민감한 사회 정치적 이슈(역사, 종교, 문화 정체성) 등의 주제를 탐구하는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와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유목민 사회에서 근대화된 사회로의 전환을 관찰하며 성장한 그에게 중요한 건 '역사가 어떻게 도큐먼트화 되는가'이다. 여기엔 유럽이 모든 역사의 중심이자 주체로서 근대적인 것의 탄생이라고 보는 시각을 당연시하는 데 대한 그만의 미적 태도가 녹아 있다. 샤키는 이와 같은 관점에서 타지역에 대한 주변화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서사화하며 혼성화한다. 서구와의 역사에서 승자와 패자,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이항 대립에서 벗어나 불확정적이고 모호한 시대의 난제들에 도전하며, 시각 조형을 거푸집으로 어떻게 새로운 사회 체제가 구축될 수 있는지에 대해 언급한다. 샤키는 1996년 참여한 '카이로 비엔날레'에서 아스완 댐 건설로 인해 많은 마을이 수몰된 사건을 배경으로 한 대형 설치 작업 <얼어붙은 누비아>로 큰 주목을 받았고, 2003 베니스비엔날레에선 국경과 공간이 허물어지는 현상과 자본의 소유자이자 세계화의 배후에 의해 촉발된 거주민들의 갈등을 다룬 <아스팔트 쿼터>(2003)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2000년대 들어서며 샤키는 지금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종교와 영토, 정치적인 문제를 다룬 <텔레마치 시리즈>(2007~2009)를 비롯해 종교적 탄압을 피해 300년간 에페소스 외곽의 동굴 안에서 잠을 잔(숨어 살던) 사람들 이야기를 주제로 한 <동굴>(2005), 십자군 전쟁을 아랍의 시각에서 조명함으로써 서구 중심적 역사 서술의 편향성에 문제를 제기한 <십자군 카바레>(2010~2015) 시리즈 등을 연이어 선보인다. 이 중 <더 호로쇼 파일>(2010), <카이로로 가는 길>(2012), <카르발라의 비밀>(2015) 등 모두 3부로 제작된 <십자군 카바레> 연작은 서구와 비서구 간의 문화적 충돌, 종교적 갈등,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오늘날의 세계관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엿볼 수 있는 그의 대표작이다. 이후에도 샤키는 삶과 죽음의 근본적인 문제, 자본주의의 욕망을 신화와 전설로 연결한 <알 아라바 알 마드푸나>(2012~2016) 연작을 비롯해 2024 베니스비엔날레 이집트 국가관 작가로 참여해 선보인 <드라마 1882>(2023) 등으로 이집트와 중동 지역의 역사적 오해와 편견을 해체하고, 전통과 신화를 버무려 보편적 '사실'이 하나의 관점으로 정의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지난 9월 10일 개막해 2025년 2월 23일까지 이어지는 대구미술관에서의 전시도 그 연장이다. 이정민 학예사가 기획한 이번 전시에 샤키는 폼페이를 배경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와 고대 이집트 종교 간의 연관성을 탐구한 <나는 새로운 신전의 찬가>(2023)를 포함해 한국의 구전 설화와 전래 동화인 '금도끼 은도끼', '누에 공주', '토끼의 재판'을 판소리로 재해석해 구전 전통이 현대 사회에서 가지는 역할을 새롭게 조명한 신작 <러브 스토리>(2024) 등의 영상 및 70여점의 설치 작업을 출품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다시 조명하고 고대 설화와 전통적 스토리를 통해 오늘의 '이야기'를 새롭게 창조해낸 이번 전시는 현대 사회의 정체성과 이데올로기 문제, 역사적 사건의 복잡성을 보다 세밀하게 살피게 할 뿐만 아니라, 허구와 현실을 관통하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특히 치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작가의 상상력은 전시의 매력을 높이는 요소다. 놓치면 아쉬울 전시다.■ 홍경한(미술평론가)

2024-12-25 11:53:31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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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장님을 이끄는 장님

'장님을 이끄는 장님'(1568)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다. 안정적이고 평화로워 보이는 배경 아래 여섯 명의 장님이 줄지어 걷고 있는 장면을 묘사했다. 그런데 주인공들의 미래는 그리 순탄치 않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장 앞에 있던 장님은 이미 구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으며, 두 번째 장님은 막 넘어지려는 순간이다. 균형을 잃은 채 비틀거리는 그의 표정에는 공포와 당혹스러움이 역력하다. 나머지 사람들 역시 곧 첫 번째 장님과 같은 위기에 봉착할 것이다. 16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피터르 브뢰헬이 그린 이 풍자화는 성경의 마태복음 15장 14절에 나오는 "눈먼 사람이 눈먼 사람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라는 구절에 근거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지도자가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거나 통찰 없이 다른 사람을 이끌 경우, 자신과 타인을 모두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지난 12월 3일 '장님을 이끄는 장님'의 경고가 현실화됐다.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 즉 비상계엄이다. 야당에 대한 감정적 반발로 인한 그의 돌발 행동에 나라는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사회 전체가 혼란에 빠졌으며 경제는 올 스톱됐다. 장갑차와 헬기가 등장하고,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를 점령하려 하자 외신들은 일제히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을 우려했다. 12월 7일, 헌정 중단을 시도한 내란 수괴인 윤석열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으나 결국 무산됐다. 야당 대표에게 정권을 넘길 수는 없다는 이유로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 의결 정족수 부족으로 표결이 불발됐기 때문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개표를 미뤘지만 105명의 '국민의힘' 의원들은 끝내 본회의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윤석열은 손바닥에 왕(王)자를 그리고 나타난 2021년 대선 경선 당시부터 정상이 아니었다. 평소의 상스러운 언행과 낮은 지적 수준은 둘째 치고, 궁지에 몰리면 제2의 계엄, 전쟁 도발도 감행할 수 있을 만큼 무모하고 비이성적인 존재다. 김건희 비리 방탄과 독재 집권을 위해서라면 그러고도 남을 인물이다. 그런 그가 국정에서 손을 뗀단다. 왕정 국가도 아니건만 국정 운영을 '우리 당에 일임'한다고 했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는 순순히 자신의 권력을 포기할 사람이 아니다. '일임'은 언제든 철회한다고 하면 그만이고, 국정 관여도 이어질 것이다. 실제로 8일에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사의를 수용하는 등 인사권을 행사했다. 따라서 '국민의힘'이 말한 윤석열의 직무 배제 및 '질서 있는 퇴진' 약속은 애초 지켜질 수 없는 헛된 망상임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내란죄 수사 대상인 한덕수 총리와 행정부의 일에 관여할 아무런 법적 지위와 권한이 없는 한동훈은 정부와 당이 협의해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한다. 명백한 위헌이다. 헌법 어디에도 대통령이 권한을 특정인이나 정당에 위임 또는 승계하거나 정당 대표가 대통령을 직무 배제할 수 있다는 조항이 없다. 특히 국민 누구도 그들에게 국정 운영권을 부여하지 않았다. 탄핵만이 답이다. 윤석열의 정치적 연명은 더 큰 국가적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 '장님을 이끄는 장님'에서처럼 우매한 지도자가 인도하는 길엔 불행한 말로만 있다. 그러나 현실은 민주 헌법을 유린한 쿠데타의 주범을 대통령직에 그대로 둬야 하는 상황이다. 쿠데타도 하나의 정치 행위로 간주하는 정신 나간 지도자와 내란조차 용인한 정당이 협잡해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판이다. 국민은 윤석열을 더 이상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당론이라는 허울 뒤에 숨어 윤석열 내란 공범의 길을 선택한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도 믿지 않는다. 모두 축출해야 한다. 숱한 피를 흘리며 지켜온 자유와 권리, 헌정을 위해 국민이 나설 때이다.■ 홍경한(미술평론가)

2024-12-10 15:23:52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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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기억의 지속

꿈과 환상, 무의식 세계와 이성과 비이성이 결합된 초현실주의(Surrealism)는 현실을 넘어선 세계를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 20세기 초반에 등장한 예술 및 문학운동이다.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이 쓴 《초현실주의 선언》(1924)을 통해 본격적으로 정립됐다. 이 운동은 1차 세계대전(1914-1918) 이후의 불안정한 사회와 문화적 변화 속에서 탄생했다. 다다이즘(Dadaism)과 프로이트(Sigmund Freud) 정신분석학의 영향에 따라 기존의 논리적 사고와 전통적인 예술 규범을 탈피하려 했으며, 상징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를 통한 '새로운 현실' 창조에 주력했다. 1931년 초현실주의 작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는 그의 대표작 '기억의 지속'(The Persistence of Memory)을 완성했다. 이 작품에는 녹아내리는 시계와 개미떼, 어두운 그림자로 덮인 땅과 앙상한 나뭇가지, 그리고 황량하면서도 몽환적인 풍경이 하나의 화면에 새겨져 있다. 치즈(Camembert)가 흐느적거리며 녹아내리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치즈가 녹아내리는 것과 시계가 무슨 상관이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바로 비논리적 상황과 부조화를 특징으로 하는 초현실주의적 감성이다)는 이 그림의 배경은 비현실적이다. 이는 무의식과 꿈의 세계를 나타내며, 덧없고 무력한 현실을 뜻한다. 그림 하단의 흐릿한 얼굴 형태는 달리 자신의 모습으로 풀이된다. 무의식 상태에 있는 자아를 상징한다는 게 일반적이다. 녹아내리는 세 개의 회중시계는 이 작품의 핵심이다. 제 기능을 상실한 시계 속에서 단단하고 규칙적인 선형적 개념으로 여겨지는 시간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이는 시간의 상대성과 인간 저마다의 경험과 인식, 그리고 그것이 가지는 복잡함과 가변성을 암시하면서 시간의 의미조차 잃어버렸음을 가리킨다. 특히 주황색 시계 위에 모여 있는 개미와 그 옆에 놓인 시계의 파리는 부패와 죽음의 은유다. 스토아 철학(Stoicism)과 허무주의, 흑사병과 종교개혁, 황금시대를 구가한 17세기 네덜란드의 경제적 성장과 세속적 탐닉, 중부유럽 최초의 전쟁인 30년 전쟁(1618~1648) 등의 여러 역사적, 문화·종교적 흔적을 배경으로 하는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들이 그러했듯, 이는 시간의 흐름과 존재의 유한성에 대한 불안을 반영한다. 이처럼 다양한 기호들로 채워진 '기억의 지속'은 절대성을 벗어난 시간이 저마다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 얼마든지 비선형적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사실과 이성을 관장하며 바깥세상의 흐름을 구속하는 시계가 맥없이 축 처져 있다는 건 '시간 개념의 붕괴'를 뜻한다. 시간은 인간의 기억과 존재를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과거의 기억이나 경험이 현재의 선택을 결정짓지만, 현재의 해석이 과거를 재구성할 수도 있다. 그런데 시간의 개념이 붕괴되거나 사라진 채 지금의 순간만이 전부라면 어떻게 될까. 만약 연속성이 없는 세계라면 기억은 어떻게 작용하며 '영원'이라는 개념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시간이 사라진다면 아마도 우린 '존재'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삶이란 무엇이며 살아가는 목적은 무엇인지 새롭게 돌아보게 되거나,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외부적 조건에서 벗어나 더 내면적인 것에 집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억의 지속'은 치열하게 혹은 처연하게 살아가는 인간들이 잠시나마 시간 없이 존재하는 방식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시간과 기억을 축으로 인간은 무엇에 의지해 삶의 의미를 정의할 것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명화 한 점에 숨겨진 이야기다.■ 홍경한(미술평론가)

2024-11-25 15:37:41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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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

지난 4월 17일, 국제적 문화예술 노동자 그룹인 '대량학살 반대 예술 연맹'(Art Not Genocide Alliance, ANGA)은 '대량학살 국가관에 반대한다'는 구호가 적힌 붉은색 전단지를 뿌리며 이스라엘 국가관의 베니스비엔날레 참여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나라별 전시장이 밀집해 있는 자르디니(Giardini) 내 일원과 리알토 다리(Rialto Bridge) 등지에서 이뤄진 시위에 앞서 'ANGA'는 지난 2월 이스라엘의 전시 참가 금지를 요구하는 온라인 청원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현재도 진행 중인 청원에는 예술가, 큐레이터, 문화계 인사 등 2만4000여 명이 서명했다. 고대 조각상이 등장하는 영상 작품 'Keening'(2024)을 선보일 예정이던 이스라엘 국가관 대표 작가 루스 파티르(Ruth Patir)와 큐레이터인 미라 라피도트(Mira Lapidot), 타마르 마르갈릿(Tamar Margalit) 또한 전시장의 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대신 이들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전시 연기 안내문을 외부 유리창에 부착했다. 가자지구 내 주민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문화예술계의 보이콧(Boycott)은 다른 예술 장르에서도 전개됐다. 전 세계 출판·문학 관계자들은 이스라엘의 행위를 '인종청소'로 규정하며 '이스라엘 출판기관을 통한 공모를 거부한다'는 선언문을 지난달 28일 발표했다. 선언문이 공개된 이후 지금까지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Deborah Smith)를 포함해 수천 명의 문학 창작자, 출판인, 번역가, 서점·책방 운영자와 종사자 등이 연대 서명하며 이스라엘 및 공모 기관과의 관계를 중단하자는 주장에 동의를 표하고 있다. 영화계도 침묵하지 않았다. 지난 9월 영화인 700여 명은 제81회 베니스영화제에 공식 초청된 이스라엘 감독 대니 로젠버그(Dani Rosenberg)의 영화 '개와 사람에 관하여'(Of Dogs and Men)에 대해 전쟁의 책임 여부는 외면하면서 이스라엘을 미화한다며 상영 취소를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올 10월 3일 한국 문화예술인 800여 명 역시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된 해당 영화에 대한 상영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이처럼 국외 미술인들과 국내외 영화계, 문학·출판계 구성원들은 지난 1년간 팔레스타인인 4만여 명을 비롯해 레바논과 이란인 등 수없이 많은 사람을 살해한 이스라엘에 분노하며 다원적 연대를 통해 21세기 제노사이드(Genocide)를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이용해 이미지 개선을 시도하는 이스라엘 문화 기관들의 아트워싱(Art washing)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미술계는 상대적으로 잠잠하다. 억압에 대한 저항과 민주·평화·비폭력적 가치를 추구하며 1995년 출범한 광주비엔날레가 올해 행사에 역대 최대인 30여 개의 국가관(파빌리온)을 마련하며 이스라엘 문화 기관인 CDA홀론을 포함시켰음에도 소위 지식인이라는 이들조차 끔찍한 전쟁과 광주비엔날레의 위선적 태도를 언어화, 문자화하지 않았다.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는 출판·문학계의 선언문을 생각하면 참으로 겸연쩍은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심각한 건 따로 있다. 바로 박양우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의 인식이다. 그는 지난달 31일 보도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은 국가 전시가 아니라 CDA홀론이라는 미술 기관에서 하는 전시"라고 했다. "광주비엔날레가 전쟁을 강행하는 나라(이스라엘)의 특별전을 여는 것은 부끄럽다는 비판이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는 "왜 비엔날레에 그런 정치적 이념을 대입하는가"라고 되물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비엔날레 공식 보도자료에 이스라엘을 31개의 파빌리온 중 하나로 묶어 발표한 것은 자기 부정이다. 집단학살 방관 기관과 전쟁 미화를 거부한 출판·문학인들, 영화인들은 모두 이념 집단이다. 부정의는 그릇됨과 올바름의 영역이자 양심의 문제라는 것을 모르는 이가 국제 미술행사를 이끌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가장 부끄럽다.■ 홍경한(미술평론가)

2024-11-06 11:02:55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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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기술에 대한 예술의 믿음

기술의 발전이 일상을 넘어 예술의 영역으로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로 인해 낯선 형태의 예술이 등장하고, 예술 창작의 전통적인 개념마저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실제로 기술은 예술가들에게 창의적인 도구로 사용되고 있으며 기술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게 영역 간 경계 없는 작업을 발표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제아무리 빼어난 기술도 예술의 본질적인 요소인 인간의 감정, 경험, 직관을 대체할 수 없다는 점에선 한계가 명확하다. 기술이 과연 예술의 미래인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이에 미술관을 포함한 예술 기관에선 당대 흐름을 반영하는 차원에서 기술과 예술의 융·복합 전시를 기획하면서도 현시점과 방향에 대한 논의도 빼놓지 않고 있다. 울산시립미술관은 오는 11월 14일부터 내년 2월 16일까지 '예술과 인공지능'을 주제로 한 특별전을 연다. 독일의 유명 작가이자 무빙 이미지 제작자인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을 포함해 스테파니 딘킨스(Stephanie Dinkins), 오묘초(OmyoCho) 등 모두 20여명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이번 전시는 예술 창작의 원형에 초점을 맞춘다. 더불어 예술과 기술 융합의 시대를 4개의 섹션(기술과 예술의 만남, 예술의 본질 등)으로 나눠 조망한다. 미술관은 전시 기간 중 국내외 전문가를 초빙해 동시대 기술과 예술의 조류를 진단하는 포럼을 연계 행사로 개최한다. 포럼에선 예술가가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방식으로 인간적 감성을 담아낼 수 있는지, 기술에 대한 지나친 의존으로 인해 발생하는 고유 자생적 표현 능력의 상실과 피상적 감각 체계의 학습에 따른 지적 퇴행을 가져올 우려는 없는지 등을 짚어본다. 영등포문화재단도 11월 4일까지 융복합기술탐구 기반 전시 '시간과 이야기(Time and Narrative)'를 선보인다. (구)농협하나로마트에서 지난 24일 개막한 해당 전시는 문화 도시 특화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며, 김신일, 비홉(BIHOP), 김동현, 최종운, L.A.B, 이지연, 소수빈, 크사베리 콤퓨터리(PL,Ksawery Komputery), 이은정&조혜정, 네비게이터, 티슈오피스 등 선정 작가와 기획 작가 총 18인이 함께한다. 재단 역시 포럼(11월 3일)을 통해 로컬 문화와 예술이 공존하는 영등포의 지역성을 고찰한다. 영등포라는 장소를 바탕으로 기술과 예술의 동행이 인간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살핀다. 세부 범주엔 포스트 휴먼, AI 존재론, 도시 기반 생태계 전반이 포함돼 있다. 기술과 예술에 관한 전시와 담론 형성을 위한 학술행사는 종종 있어 왔다. 최근만 해도 융·복합 콘텐츠의 창·제작을 중심으로 하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ACT(Arts & Creative Technology)를 비롯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예술과 기술융합지원 사업’에 의한 여러 프로그램 및 국제 컨퍼런스가 펼쳐졌다. 이 밖에도 국립현대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아트센터나비 등 기술과 예술의 창조적 가능성에 주목하고 예술의 미래를 점쳐보는 무대는 적지 않았다. 서울문화재단의 서울융합예술페스티벌(Unfold X 2024)도 오는 11월 7일 개막을 앞두고 있다. 물론 지금까지 미술관과 기관에 소개된 전시들은 높은 기술력을 자랑할 뿐 반드시 예술의 정의에 부합한다고 보기엔 곤란한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단지 시각 만족에 그친 채 휘발되는 사례도 곧잘 눈에 띄었다. 학술 프로그램 또한 일반론에 머무르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기술과 예술의 상호 작용이 서로의 한계를 확장할 것이라는 기대와 새로운 경험과 가치를 창출하리라는 믿음은 유효하다. 싫든 좋든 기술에 대한 예술의 관심은 거스를 수 없는 동시대 미술의 한 현상이라는 것도 분명하다.■ 홍경한(미술평론가)

2024-10-27 12:37:17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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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대량학살 국가관에 반대한다'

지난 7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의 전쟁이 시작된 지 1년이 됐다. 그러나 종전의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가자지구에서 레바논, 시리아, 그리고 이란을 향하며 중동 전체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문제는 민간인의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한 언론은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UN OCHA)과 가자지구 보건부 등의 자료를 인용해 지난 1년간 가자지구에서 목숨을 잃은 민간인 포함 팔레스타인은 4만1802명이라고 보도했다. 사망자의 약 70%는 어린이와 여성으로 알려진다. 가자지구 사망자 수는 1967년의 제3차 중동 전쟁 때보다도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언론들은 아랍권이 이스라엘과의 수십 년 분쟁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손실을 봤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각에선 가자 전쟁을 제노사이드(Genocide)로 꼽는다. 제노사이드는 인종, 민족, 종족, 이념 등의 대립을 이유로 특정 집단을 고의적 및 제도적으로 말살하는 행위를 뜻한다. 지난 4월, 베니스 비엔날레(la Biennale di Venezia, 2024.04.20.~11.24.) 이스라엘 국가관의 작가 루스 파티르(Ruth Patir)와 큐레이터들은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가자 학살을 옹호하지 않는다며 휴전과 하마스가 납치한 인질들을 석방 때까지 문을 닫기로 했다. 이에 대해 본전시 예술감독 아드리아노 페드로사(Adriano Pedrosa)는 "현명하고 용기 있는 결정"이라며 지지했다. 사실 베니스 비엔날레 개막 전부터 수천 명의 예술가, 큐레이터, 비평가들이 이스라엘의 가자 전쟁에 항의하기 위해 이스라엘 국가관을 비엔날레에서 제외할 것을 촉구했다. 국가관들이 들어선 자르디니(Giardini di Castello) 구역에는 대량학살 반대 예술 연맹(ANGA)을 비롯한 시위대들이 '대량학살 국가관에 반대한다'(No To The Genocide Pavilion)는 팸플릿을 뿌렸다. 본전시에도 동일한 맥락의 작품들이 곳곳에 들어섰다. 이처럼 예술가들은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무의미한 살상'에 연대를 표했다. 여기엔 국가와 인종의 구분은 없다. 전쟁 뒤에 감춰진 파괴적 본능과 정치적 계산, 그로 인해 드러나는 허무와 비극만 존재한다. 윤리적 지향성이 결여된 거대한 폭력에 대한 규탄, 인간 '존재'의 근본적 불안과 '실존'의 허무를 반영한 '저항'이 있을 뿐이다. 광주비엔날레(2024.9.7.~12.1.)는 5.18민주화운동의 저항 정신을 뿌리로 한다. 저항 정신은 곧 '광주 정신'이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자행된 국가 폭력 앞에 당당히 항거하며 이겨냈던 공동체 정신과 기억과 애도, 연대와 투쟁의 미학적·실천적 정신이 광주 정신이라는 것이다. 실제 광주비엔날레는 늘 역사적 시민 투쟁은 물론 여러 동시대 시민 투쟁을 조명하는 광주 정신의 중요성을 언급해왔다. 광주비엔날레는 올해 행사에 역대 최대인 30여개의 국가관을 마련했다. 이스라엘 문화기관인 CDA홀론(국가관)을 앞세운 이스라엘도 포함됐다. '우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주제로 한 전시에는 인간의 정의를 묻거나 사회적·정치적으로 은폐된 것들을 되짚는 작업들이 출품됐다. 개중엔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Diaspora)적 역사를 말한다. 넓게 보면 존재와 실존의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타인의 폭력과 고통에 대해선 침묵한 채 에둘러 표현한 존재와 실존은 공허하다. 광주정신을 표방하고 있음에도 인류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있는 국가를 초대한 광주비엔날레는 위선적이며 모순적이다. 광주비엔날레가 진정 광주 정신을 계승하고 연대를 가치로 내걸었다면 세계 많은 예술가들이 그러했듯 '대량학살 국가관에 반대한다'고 했어야 했다.■ 홍경한(미술평론가)

2024-10-10 15:02:44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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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키아프리즈' 단상

국내 최대의 아트페어인 키아프(Kiaf·한국국제아트페어)와 영국의 프랜차이즈 아트페어 프리즈(Frieze)가 지난 4일 개막해 7일과 8일 각각 폐막했다. 소위 '키아프리즈'로 불리는 '프리즈 서울 2024'와 '키아프 서울 2024'이다. 2022년 첫 공동 개최 이후 올해로 세 번째. 각각 112개와 206개의 화랑이 참여했다. 전체로 보면 작년 대비 10여개의 화랑이 줄었다. 2022년보단 30여개가 적다. 외국 화랑의 감소는 한국 미술 시장의 침체와 기타 운송비, 부스비, 체류 비용, 보험료 등의 참여 환경을 고려한 선택으로 보인다. '키아프 서울'을 주최하는 한국화랑협회는 참여 신청은 늘었으나 까다로운 심사로 갤러리 수를 되레 줄였다고 했다. 양보다 '질'을 고려했다는 뜻이다. 올해 '프리즈 서울'의 경우 임팩트는 약했다. 내용에서도 1회 때인 2022년에 비해 화제성 높은 작업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매매 용이한 소품들이 주를 이뤘으며, 가격대도 낮아졌다. 이는 실속과 적응을 뜻한다. 실제 현장에 놓인 작품만 봐도 한국 시장에서 어떤 게 잘 팔릴지 간파했음을 알 수 있었다. '키아프 서울'의 수준은 높아졌다. 유치찬란하다고 밖에는 표현하기 힘든 작업들이 적잖이 눈에 띄었다는 점에서 참여 갤러리 및 작품 심사에 훨씬 더 엄격해질 필요는 있지만 이전 대비 나아진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프리즈와의 체급 차이가 사라진 건 아니다. 다만 간극은 다소 줄었다. 프리즈로부터의 자극이 한몫했을 것이다. 전시 동선과 작품 등이 개선돼야 한다는 내부 지적도 많았다. 올해 '프리즈 서울'엔 작년과 비슷한 7만여명의 관람객이 페어를 찾았다. '키아프 서울'은 조금 늘어, 8만여명이 방문했다. 두 페어 모두 구체적인 매출은 공개하지 않았으나 과거만큼은 아니었다는 후문이다. 그럼에도 경기 침체 속 나름 선방했다는 평가다. 한 지붕 두 페어의 동행 효과는 '안착'과 '성장'이라는 각자 다른 방향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키아프의 입장에선 경제성과 '시장 미술'에 관한 새로운 데이터를 생산해 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아트페어는 단지 시장이다. 미술이라는 고급 콘텐츠로 '장사'하는 곳일 뿐, 동시대 미술 흐름을 진단하고 담론을 생성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키아프리즈'가 원하는 건 오직 이익이다. 미학적 소통을 책임질 생각도, 기대할 이유도 없다. 그런 곳에 사회와 예술 사이의 상호 작용을 말하거나 한국 미술의 위상과 한국 문화의 전반적 성장을 논하는 건 무리다. 아트페어는 우리와 다른 세계다. 니콜라스 파티(Nicolas Party)의 작품이 약 30억원에 팔리던, 조지 콘도(George Condo)나 바젤리츠(Georg Baselitz)의 회화가 20억~30억원에 새로운 주인을 찾던, 대부분의 사람과는 무관하다. 페어를 찾은 7만~8만여명의 관람객 중 대개는 그저 1억원이 1000원의 가치에 불과한, 이질적 세상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게 전부인 존재들이다. 지난 8월 17일 부산비엔날레가 개막했다. 9월 7일엔 광주비엔날레가 문을 열었다. 오는 26일부터 연말까지 강원국제트리엔날레와 창원조각비엔날레, 제주비엔날레 등이 진행된다. 주제와 형식은 저마다 다르지만 동시대 인류 앞 현안을 다룬다는 점에선 대동소이하다. 우리가 보다 관심을 갖고 의미 부여에 인색하지 않아야 할 것은 시대의 특성과 문제의식을 반영하고, 다층적인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는 예술이지, 돈이 된다면 고대 유물까지 팔아치우는 아트페어가 아니다. 분별할 필요가 있다.■ 홍경한(미술평론가)

2024-09-18 13:19:10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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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부산비엔날레, 어둡고 두려운 세계를 비추다

올해 부산비엔날레(8월17일~10월20일)의 주제는 '어둠에서 보기'(Seeing in the Dark)다. 다양한 작업을 통해 혼란한 시대 속 내재적 불완전성을 새로운 가능성으로 짚어보자는 의미가 담겨있다. 역경과 곤경,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채워진 '어둠'을 직시하고 '해적 유토피아'와 불교의 '도량'(度量)을 축으로 한 '낙관적 상상'이 핵심이다. 전시는 부산현대미술관과 부산근현대역사관, 초량재, 한성1918 등에서 동시에 펼쳐진다. 중국의 현대화 과정에서의 반란과 그에 따른 노동자들의 공포를 담은 천 샤오윈(Chen Xiaoyun)의 영상 등 일부를 제외하면 의도와 표상의 불일치가 확연하거나 꿈보다 해몽에 가까운 작업들, 단선적 관점을 부정할 수 없는 여타 공간 전시에 비해 부산현대미술관(주 전시장)에는 비교적 흥미로운 작업이 많다. <메메디 사와(허수아비)>(Memedi sawah(Scarecrow), 2024)라는 제목의 작업을 내건 인도네시아 아티스트 그룹 타링 파디(Taring Padi)도 그 중 하나다. 전통 허수아비의 자바어 용어인 '메메디 사와'는 골판지 인형을 뜻하는 '와양 카르두스'(Wayang Kardus)와 쌀포대, 분노에 찬 사람들이 빼곡히 그려진 회화가 한 덩어리를 이룬다. 인도네시아 총선 이후 폭등한 쌀값을 이슈로 했다. 공권력의 착취적 관행과 농민 권리 박탈, 억압적인 권력 구조 등을 비판적으로 녹여냈다. 타링 파디의 작품 맞은편엔 윤석남의 <여성 독립운동가 초상>(2020~2023) 시리즈가 놓였다. 조선의 잔다르크로 불리는 여성독립투사 김명시, 의열단원으로 활동하며 여성들의 민족해방운동을 이끌었던 박차정 지사 등 일제강점기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운 여성 독립운동가 63명이다. 역사 왜곡을 일삼는 '현대판 밀정'들이 득세하는 오늘의 한국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정유진의 <망망대해로>(2024)도 눈에 띈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겪는 격차와 불평등, 기댈 곳 없는 존재들의 가냘픈 보루마저 깨지고 무너져버린 상황을 해적 난파선에 이입해 재해석했다. 문법은 단순해도 시각적 임팩트가 있다. 이 밖에도 일제강점기의 양민 학살부터 4·19, 민주화 항쟁에 이르는 한국 근현대사의 인물들을 거대한 구름 같은 공간에 빼곡히 새긴 신학철, 인도 카스트 제도로 억압받아 온 수백만 불가촉천민 계급을 기리는 라즈야쉬리 구디(Rajyashri Goody), 방글라데시와 인도 내 종교적 폭력에 대응하는 공동체 협업 프로젝트를 선보인 아시피카 라만(Ashfika Rahman), 벨기에와 콩고 사이의 식민지적 역사를 다룬 아요 크레 뒤샤틀레(ayoh kre Duchatelet) 등도 강렬한 메시지를 품고 있는 작업으로 꼽힌다. 특히 관객을 30분 가까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몰아넣는 홍이현숙의 퍼포먼스 <야행(夜行)>(2024)은 어둠에 관한 직관적 명료함을 제공한다. 이번 부산비엔날레는 '어둠에서 보기'지만 전시의 중심은 그 '어둠' 자체다. 국가와 처한 입장은 다르나 공통적으로 '낙관적 상상'보단 현실에 대한 거역성이 짙다. 그래서인지 과거 대비 비교적 비엔날레답다. 비판의 장으로서의 역할에 어느 정도 충실하다. 다만 해적의 의미와 불교의 깨달음, 감독이 강조한 '대안적인 삶의 방식'은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다. 작품별로 따로 노는 느낌이 크다. 더구나 사회적으로 추방된 자들임에도 높은 자율성과 포용성을 지녔다는 18세기 '해적 유토피아'의 개념에다 세속적인 세계로부터 분리된 금욕적 삶의 불교를 덧댄 건 다소 억지스럽다. 외국인이 감독을 맡은 국내 비엔날레에서 곧잘 발견되는 심리적 모더니즘의 어설픈 이식의 결과다.■ 홍경한(미술평론가)

2024-09-04 11:13:45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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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비평의 죽음은 곧 예술의 장례(葬禮)

한국 미술 생태의 건강성을 추구하고 예술가들의 창작 환경을 보호해야 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산하 공공기관의 대부분은 민간 영역에서 지급하는 통상 원고료의 20%에서 30% 정도를 책정하고 있다. 지식 노동을 기관의 권위와 헐값에 교환하는, 착취에 버금가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작년 10월 국내 최고의 비엔날레라고 자평하는 곳에서 비평가들에게 제시한 평론비는 30만원이었다. 지난 4월 지역의 모 도립미술관이 명시한 원고료 또한 25만원에 불과했다. 이 사실은 과거 본 란을 통해 다룬 적이 있다. 그러나 일부만의 사례가 아닌데다,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재론의 여지는 충분하다. 최근에도 부산의 어떤 공공기관은 A4 10장에 달하는 원고의 고료로 13만원을 지급했다.(130만원이 아니라 13만원이다.) 영천시가 운영하는 모 예술창작스튜디오의 평론가 원고료는 2024년 기준 30만원이다. 고맙게도(?) 2020년에 비해 5만원 올랐다. 당시엔 교통비 포함 25만원이었다. 근거는 공무원들이 정한 저마다의 규정이다. 출자·출연기관이라서 그렇다거나, 지방자치 인재개발원의 수당 규격별 지급액 기준 등을 이유로 든다. 작품을 보기 위해 많게는 수백 킬로미터를 왕복하는 물리적 거리와 시간, 온갖 자료를 찾아가며 분석해 한 달 내내 쓴 글 값이 20만~30만원대라면 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 기본적인 민생고 해결조차 안 된다. 실질임금으로 따지자면 '0원'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평론계를 대변할 한국미술평론가협회의 대응은 안일하다. 현실에 둔감한 친목 모임인가 싶을 정도다. 개인이 아닌 단체의 발언이라면 조금 더 영향력을 갖겠지만, 어찌 된 일인지 관련해 이렇다 할 발언은 별로 없다. 지난해 6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미술진흥법'에서마저 예술 매개자들에 관한 조항이 전무하다시피하자 소수가 모여 토론회 한번 연 게 거의 전부였다. 그나마도 주변에서 등을 떠미니 마지못해 진행한 듯한 여운이 컸다. 평론가들의 기대를 모은 '미술진흥법 시행령'(7월 26일부터 시행) 역시 진일보한 측면이 없다. 미술계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진흥 정책을 추진한다기에 비물질 노동자들의 남루한 처우 과제도 포함될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미술진흥법에서처럼 평론가나 기획자 등에 대한 구체적 조항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도 '예산의 범위에서'로 제한해 처음부터 예외의 길을 터놨다. 오래 전부터 평론계에는 '비평의 죽음'이 부유하고 있다. 여기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긴 글이나 심도 있는 분석보다는 간결하고 직관적인 콘텐츠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졌고, 다양한 관점을 통해 정보를 얻거나 스스로 판단하는 문화적 흐름의 영향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내부의 문제도 있다. 법이 낡았거나 미진하다면 우리 자체라도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 그러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기보단 문제의식 없이 응하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공무원들과 기관은 변화할 이유를 체감하지 못한다. 형편없는 고료에도 대신 써줄 사람이 널렸으니 제도 변화에는 애초 관심도 없다. 작품의 의미 해석과 사회적 맥락에서의 분석, 예술적 기준 및 가치 설정 등의 미학적 소통이라는 측면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비평의 직능은 여전히 살아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이러한 평론의 역할과 가능을 알고 있다면 향후 설계할 '미술진흥 기본계획'에라도 평론가와 기획자들의 현황과 실태, 지원 방안 등을 섬세하게 다루는 게 맞다. 비평의 죽음은 곧 예술의 장례(葬禮)다.■ 홍경한(미술평론가)

2024-08-21 14:10:18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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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유인촌도 '필요성' 인정한 '국립근대미술관'

23일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위한 세미나가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됐다. 한국예술인총연합회와 국립20C(근대)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 등이 공동 주최했다. 미술인을 포함한 정부 관계자 등 200여명이 참석해 '국립근대미술관' 조성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행사는 이원복 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실장과 다테하타 아키라 쿠사마야요이 미술관 관장의 기조 발제로 문을 열었다. 이들은 각각 '국립근대미술관 존재 이유-한국미술의 총체적 인식의 장'과 '한국 국립근대미술관 설립을 둘러보면'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근대미술관 건립은 우리 미술의 총체적 이해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할뿐더러, 국내외 새로운 문화 발신의 근원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첫 번째 세미나 발표자로 나선 김복기 경기대 교수는 6·25전쟁을 비롯한 남북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같은 재난 및 인재에 의해 잃어버린 유산의 복원, 디아스포라 미술의 집결지로서의 국립근대미술관 설립의 당위성을 언급하며 대통령이 국립근대미술관 기공의 첫 삽을 떠달라고 주문했다. 두 번째 발표자인 김한결 미술사학자는 이탈리아 로마의 보르게세미술관을 비롯한 독일 에센의 포크방 미술관 등 유럽의 사례를 상세히 소개했다. 그는 근대미술관이 설립돼 제 소임을 다할 때 비로소 한국의 미술사가 온전하게 우리의 '눈에 보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지막 발표는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이 맡았다. 정 전 실장은 '국립 20세기(근대)미술관 구상'이라는 글에서 국립근대미술관 컬렉션은 한국미술의 근대성과 예술의 자유를 상징한다고 했다. 청산의 대상인 동시에 보존과 기억의 대상이라는 이중적 태도를 지닌 '근대의 가치'를 정립하고 복원하기 위해서라도 근대미술관 조성은 절실하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근대미술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제시했다. 기관 형태에 대해선 특수법인의 민간기관으로 하되, 국가가 예산의 일정 부분을 부담하지만, 정부부처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영국의 '비부처 공공기관' 모델을 제안했다. 소장품 확보 방안으로는 기존 공공기관과 이건희 기증 근대미술작품 외, 국내외 기증 운동을 제시했다. 미술관 건립 부지 확보에 관한 의견도 꺼냈다. 현재 '이건희미술관' 조성 대상지로 낙점된 서울 송현동 (송현문화공원 내)을 포함해 청와대 여민관과 경호동, 수송부 부지, 그리고 대통령 의무실 격인 서울지구병원, 청와대 경비를 담당했던 서울경찰청 202경비대 부지 등도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관람객 접근성, 지속 운영의 가능성, 역사성, 뮤지엄 복합지구로서의 연계 효과 등에서 가장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정 전 실장은 이건희 기증품을 한데 모은 종합 백화점식 이건희미술관은 한계가 명백한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고 이병철 회장과 고 이건희 회장이 수집한 기증 유물 중 근대기 미술품을 가려 국립근대미술관의 기반으로 삼고, 기증자의 뜻을 기리는 차원에서 '고 이건희 기증실'을 설치하자고 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인사들은 국립근대미술관 설립에는 이견이 없었다. 다들 공감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역시 인사말을 통해 근대미술관의 필요성을 설파하고 (건립이) 늦은 감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중앙정부의 굳건한 의지와 확약은 물론, 당위성과 설립의 논리가 보다 폭넓게 공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서도 시민의 지지와 동참을 위한 미술계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근대든, 현대든 미술관의 핵심 주체는 시민이기 때문이다.■ 홍경한(미술평론가)

2024-07-24 14:12:14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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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화100'을 보셨나요?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얼마 전 막을 내린 미술 오디션 프로그램 '화100'(MBN)을 시청한 이는 얼마나 될까. 모르긴 해도 알 사람은 알았을 것이고 볼 사람은 봤을 것이다. 사회적 화제까진 아니었지만, 적당히 회자되고 외면받지는 않았구나 싶을 만큼의 이야깃거리는 됐을 것이라 여겨지니 말이다. 실제로 심사위원으로 함께한 필자의 경험도 그랬다. 최근 미술계 현장에서 만난 미술인들은 가장 먼저 '화100' 얘기부터 꺼냈다. 연락 뜸하던 학창시절 동기들의 안부 속에도, 길을 걷다 우연히 만난 일반인들의 인사말에도 '화100'은 자주 등장했다.(방송으로 연장된 비평 직능이 혹자에겐 흥미로웠던 모양이다.) '화100'은 논쟁적인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곧잘 비교되는 '아트스타코리아'(CJ E&M)에 견주면 확실히 그렇다. 사실 국내 최초의 미술 서바이벌을 내세운 '아트스타코리아'는 2014년 방송 당시 상당한 관심을 받았다. 미술을 어떻게 정량화하고 평가할 수 있는 지에서부터 목적을 부여하는 미션에 대한 미학적 이견까지, 그야말로 방송 내내 거센 후폭풍에 시달렸다. 더구나 주어진 가치 체계와 강령에 작가들 스스로 정주한다거나 "예술에 등수를 매긴다"며 본방 전부터 빗발치던 전문가들의 비판은 '아트스타코리아'를 뜨겁게 달궜고, "예술의 상업화를 부채질한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공립미술관이 후원에 나서면서 논쟁은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그리고 그 논란 내에는 미술과 방송의 관계, 예술과 구조의 문제, 예술가의 삶의 방식 등, 여러 담론을 생성하는 성과도 들어 있었다. 그게 10년 전이다. 그동안 많은 것이 달라졌다. 지금은 누구도 예술의 상업화를 말하지 않는다. 미술인들은 오래전부터 이어온 미술계 내 등수 매기기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만은 무관하다는 듯한 전문가들의 태도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순응적 가치 체계를 만들어 온 주체들의 객쩍은 소리 역시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특히 미술을 포함해 음악, 요리, 모델 등의 온갖 유사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방송에서의 '경쟁'을 대하는 대중의 인식도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또한 스스로 계획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방송 출연만으로 빠르게 성공할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기대감조차 포박한 채 예술의 순수성과 예술가의 태도를 놓고 예민하게 반응하던 양태마저 소멸시켰다. 사람들은 이제 돈을 벌기 위해서든, 아트스타가 되기 위해 혹은 작가 자신과 작품을 홍보하기 위해 방송에 출연하든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 삶의 문제로 여긴다. 그것이 욕망의 발로든 용기를 낸 선택이든 상관없이 존중한다. 미술계도 마찬가지다. 이는 예술과 예술가를 엄격하게 정의하며 장르를 구분 짓던 '아트스타코리아' 때와는 사뭇 다른 현상이다. '화100'은 재미있었다는 평가가 많다. 참가자들의 인간적인 이야기와 감정을 잘 살려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공감을 이끌어낸 결과로 보인다. 다만 짧은 시간 내에 많은 내용을 담아야 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특성상 예술적 논의나 작품 분석이 충분하게 전달되지 못한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만약 향후 '화100'과 비슷한 프로그램이 다시 만들어진다면 예술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신진 예술가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무대로서의 역할과 더불어 예술의 본질과 가치를 유지할 수 있도록 균형을 지녔으면 하는 바람이다. 방송을 위한 단기 상품으로서의 관점에서 벗어나 프로그램 종료 후에도 참여 작가들에 대한 수준 높고 지속적인 지원이 이뤄진다면 더할 나위 없고.■ 홍경한(미술평론가)

2024-07-10 13:29:20 김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