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의 시시일각] 동시대미술의 문법
19세기 인상주의(Impressionism) 시기까지만 해도 미술은 명확한 경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같은 시대를 공유하는 신고전주의(Neoclassicism)와는 마치 물과 기름처럼 명료히 구분되었으며, 각 예술 사조는 자율성과 독자성을 바탕으로 고유한 영역을 형성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경계는 점차 무너지기 시작한다.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의 양상을 기존의 시각조형만으로는 충분히 담아내기 어렵다는 인식이 미술가들 사이에서 퍼지면서 장르 간, 매체 간 경계를 자발적으로 허물고 새로운 표현을 탐색하는 무리들이 나타났다. 특히 기술의 발전과 매체의 다양성은 이러한 흐름을 더욱 촉진했고, 이는 예술 내부에서조차 융합(convergence)과 혼종(hybridity)의 양상을 일반화하는데 주요하게 역할 했다. 현대미술의 이러한 변화는 프랑스 작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을 필두로 한 다다이즘(Dadaism) 운동을 통해 더욱 본격화되었다. 뒤샹은 자전거 바퀴를 의자에 얹은 조형물을 선보이며, 몇몇 오브제의 조합만으로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나아가 그는 상점에서 구입한 변기 하나를 미술관에 전시하고 '샘'(Fountain, 1917)이라는 제목을 붙임으로써 작품이란 작가의 개념과 정의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와 용도로 탈바꿈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이후 예술은 더욱 빠르고 급진적인 진화를 거듭하게 된다. 자연주의(Naturalism), 사실주의(Realism)와 같이 '보이는 세계'에서, 큐비즘(Cubism), 야수주의(Fauvism), 초현실주의(Surrealism) 등의 '생각을 그리는' 단계로 전환되었으며, 대중예술(Pop Art)과 고급예술(Fine Art) 사이의 틈을 메운 앤디 워홀(Andy Warhol)이나, 비어 있는 공간 자체를 작품으로 제시해 이미지와 텍스트, 시간과 공간, 물질성과 개념 사이의 관계를 재구성한 이브 클라인(Yves Klein)의 사례처럼 시간과 공간, 관념과 감각이 융합된 복합예술로 확장되기에 이른다. 21세기의 예술은 오랜 시간 유지해온 전통적 분간에서 자유롭다. 경계와 진역은 지속적으로 재편되고 상호 침투하며 혼합된다. 예술은 이제 장르와 형식의 범주를 넘어 제도, 자본, 상품, 노동 등 인간의 삶을 구성하고 지배하는 모든 요소를 포섭하며, 그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의미를 생성해낸다. 물론 엘리트와 대중, 순수예술과 상업예술, 예술품과 일상 사물 간의 위계조차 해체되었고, 주제와 소재, 기법 등 수백 년간 이어 온 시각예술의 고정관념 역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처럼 후기구조주의(Post-structuralism)로 대변되는 탈근대의 미술은 일정한 규범이나 형식 속에 가두거나 이미 정착한 양식 안에서 완결되지 않는다. 복합성과 개방성, 대중성과 다양성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진보를 거듭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탈경계적(debordering) 움직임 속에서 관람객에게 전례 없는 감각적 경험까지 제안한다.(실제로 동시대 관람객들은 한 작품 안에 다양한 층위의 의미를 생성하는 상호작용성(interactivity)의 주체이자 능동적인 참여자로 위치한다) 결론적으로, 동시대에서 미술은 형식이 아닌 태도이자 관점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보다는, 작가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지에 가치를 둔다. 미디엄의 순수성에 얽매이지 않고 비판적 사유를 위한 다학제적 관계성을 용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통 방식을 포함해 그 내용과 형식까지 근본적인 변화가 뚜렷해진 현실을 고려할 때 한국에 아직 남아 있는 '회화냐 조각이냐', '동양화냐 서양화냐' 하는 구분은 더 이상 중요한 기준이 되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당대성이 내포된 문장을 짓기 위한 하나의 단어에 불과하며 다차원적인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으로서의 문법의 일부일 따름이다. ■홍경한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