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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홍경한의 시시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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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베니스 전역을 무대로 한 '미술의 향연'

베니스의 낮은 덥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에 인파로 북적거리는 수상 버스 바포레토를 타고 10만 평 규모의 넓은 전시공간을 오가다 보면 땀이 줄줄 흐른다. 그런데도 제59회 베니스비엔날레(베네치아 비엔날레: La Biennale di Venezia: 2022.4.23~11.27)를 찾는 관람객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127년 역사를 자랑하는 베니스비엔날레는 크게 본전시와 국가관 전시로 구성된다. 옛 무기고이자 국영 조선소였던 아르세날레 지역은 주로 본전시인 주제전을 열고, 공원인 지아르디니에서는 한국을 포함한 29개의 고정 국가관 전시가 개최된다. 하지만 비엔날레가 전부는 아니다. 개최 시기에 맞춰 베니스 도시 내 곳곳에선 수십 개의 다양한 기획전과 병행전시가 다발적으로 펼쳐진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1984년에 문을 연 박물관 팔라초 시니는 독일 태생의 미국 작가 요셉 보이스를 초대했다. 1940년대부터 1980년대 사이 제작된 둔중하고 과묵한 조각과 수채화, 드로잉이 주를 이룬다. 요셉 보이스 예술의 키워드인 '사회적 조각'의 바탕이 되는 작품들이다. 인도 태생 영국 작가 아니쉬 카푸어는 주변의 모든 빛을 빨아들일 것만 같은 벤타 블랙의 감각적 단순함과 물성 넘치는 붉은 안료 덩어리를 아카데미아 미술관과 만프린 팔라초 전시장에 흩뿌려놨다. 벽면을 향해 대포에서 발사된 색 덩어리는 시각적 충격을 동반한 메스꺼움을 일으킨다. 이때 관람객들은 물질과 정신이라는 상반된 해석의 영역에서 주저하는 자신을 본다. 무겁고 진지하며 고요한 히스테릭이 내재된 작품들을 옛 궁전 팔라초 그라시에 가득 내건 마를렌 뒤마의 작품전 'open-end'는 인기가 많다. 그의 작업은 생생한 현실의 이미지를 도구로 삼아 통제되고 억압된 모든 것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도 미학적으로 재구성된 이미지를 통해 파생되는 수천의 의미가 습관적 타자성을 흡수한다는 게 특징이다. 때문에 뒤마의 작품 앞에 서면 보편적 인간의 고통과 비극, 말살된 인간성과 정체성에 대한 집요한 자문에 처한다. 당장 정답을 구할 순 없어도 질문의 여진은 오래간다. 베니스를 무대로 한 미술의 향연은 이 밖에도 더 있다. 에로틱과 환상적 아이러니가 불편하게 중첩된 작품을 선보인 작가 라킵 쇼를 비롯해 사회에 대한 사적 서사를 커다란 컬러 평면 추상과 하드 엣지에 새긴 마리 웨더포드, 자연의 개입에 따른 작품의 변화와 불완전함의 순응을 삶의 존재성에 연결해온 보스코 소디, 예술가들의 예술가로 유명한 사진 작가 사빈 바이스 등이 그 잔치의 주인공이다. 베니스비엔날레 병행전시로 진행 중인 안토니 곰리와 루치오 폰타나 2인전도 화제다. 팔라초 두칼레에 열댓 점의 초대형 작품을 출품한 안젤름 키퍼와 페기 구겐하임의 '초현실주의와 마술' 특별전 역시 볼 만한 팝업 행사로 꼽힌다. 미국의 여류 조각가 루이스 니벨슨, 우고 론디노네, 브루스 나우만, 얀보의 작품전도 베니스에 왔다면 놓쳐선 안 될 전시다. 특히 '여기는 우크라이나: 자유를 수호하다'(This is Ukraine: Defending Freedom)도 관람 동선에서 제외할 수 없다. 참여 작가 중 한 명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진실과 자유가 러시아의 공격을 받고 있다"며 "이는 전 인류에 대한 범죄이기에 우리 모두 맞서야 한다"고 했다. 그만큼 이번 전시엔 명분 없는 전쟁에 대한 예술가들의 명료한 메시지가 배어 있다. 우크라이나 작가들과 울라퍼 엘리아손, 무라카미 다카시, 데미안 허스트 등의 예술가들이 함께 꾸렸다. 14세기 초 지어진 옛 건물인 스쿠올라 그란데 델라 미세리코디아에서 8월까지 이어진다. 베니스비엔날레가 특정 주제 아래 각각의 예술적 발언을 연결하는 구조라면, 동기간 내 베니스 개별 공간에서 펼쳐지는 기획전들은 미적 다양성을 얼개로 한다. 그리고 베니스는 그러한 다양성을 실현할 수 있는 여력과 여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모두 문화예술이 지닌 유·무형적 가치에 관한 행정당국의 적극적 소통과 시민들의 동의가 전제된 결과다. 이는 30여 년이 다 되어감에도 여전히 자신의 지역에서 뭐가 열리는지도 모르는 시민이 수두룩한 한국의 비엔날레들과는 다른 양상이다. 2년마다 수백억 원의 혈세가 투입되지만, 비엔날레가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 자문하지 않은 채 공직자들의 성과주의와 무기력한 이들의 아마추어리즘에 비엔날레가 관치화, 도구화되는 우리의 현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요소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2-06-14 09:27:03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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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투기판 우려되는 미술시장

정보기술(IT)의 발전으로 미술품 시장에 대한 진입 장벽이 낮아졌다. 작품을 구매하는 이들의 평균 연령도 하향화됐다. 그중에서도 MZ세대(밀레니얼과 Z세대를 합친 말)의 부상은 동시대 아트마켓에 있어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이다. 세계 최대 아트페어 주관사인 아트바젤과 후원사인 UBS가 펴낸 '2021 미술시장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과 영국, 중국, 멕시코 등 10개국 고액 자산가 컬렉터 2569명 중 56%가 20~30대가 주축인 MZ세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40대 초반부터 50대 중반인 X세대가 32%로 뒤를 이었다. 20대에서 50대가 전체 컬렉터의 80%가 넘는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키아프(KIAF·한국국제아트페어) 방문객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한 '키아프 서울 2021 리포트'에 따르면 처음 키아프를 방문한 53.5%의 관람객 중 MZ세대인 21~40세가 60.4%로 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다음으로는 40~50대가 33.8%를 기록했다. 최근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개최된 미술장터인 '아트부산'(5월 13~15일)도 마찬가지였다. 10만여 명의 방문객 중 MZ세대의 비중이 높았다는 것이 주최 측의 판단이다. MZ세대가 소위 '불장'(상승장)을 이끄는 축이었음을 다시 한 번 입증한 셈이다. MZ세대가 시장의 주류가 되자 화랑과 경매사들은 그들이 원하는 작품을 발 빠르게 내걸었다.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미술시장 출품작들이 다양해졌다. 소유와 공유의 개념이 보편적인 MZ세대는 미술품투자 방식에도 변화를 줘 2018년 이후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공동구매나 조각투자,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한 토큰) 등의 새로운 투자방식이 생겨났다. 또한 이들은 같은 감성을 공유하는 아티스트들을 주요 작가군으로 부상시켰다. MZ세대에게 미술품은 자신의 관심 분야에 투자해 돈까지 벌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무엇보다 매력적인 아이템이다. 그들에게 미술품은 '나'를 드러내는 데 있어 매우 효과적이면서 취미가 돈이 되는 '상품'인 셈이다. 그러니 미술품과 한정판 스니커즈(운동화)를 어찌 비교할 수 있느냐는 시선은 (적어도 그들에겐) 촌스럽다. 널뛰기하는 주식과 가상자산에 비해 안정적이라는 것도 미술품 투자의 장점으로 꼽힌다. 미술품은 각종 세금의 제약에서도 자유롭다. 수익률 역시 무시할 수 없는 투자 요소다. 온라인 플랫폼과 언론에선 매각률과 평균 매각기간, 평균 수익률 등을 심심찮게 다룬다. 작든 크든 투자 대비 이익의 비중만 놓고 보면 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많은 예산이 필요한 일부 거장들의 작품을 제외하면 그들이 선택한 작품들의 경우 대체로 예술성을 논하기 어렵다. 실제 MZ세대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아 없어서 못 판다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미학적, 미술사적 가치 면에서 한계가 있다. 때론 기초가 부족한 아마추어 작품이 부풀려졌다는 인상도 준다. 하지만 아트페어가 열릴 때마다 특정 세대가 메뚜기 떼처럼 몰려와 작품을 싹쓸이하다시피 한다. MZ세대의 미술품 구입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는 건 '작가 소비' 외 의미적인 게 없다. 이는 작가 및 작품의 내용 따위엔 아무 관심 없이 작품가격과 판매 여부만 묻는 현실이 잘 증명한다. 지속 가능한 투자보다 주기가 짧은 단타 형식의 미술 투자로 돈만 벌면 그만인 것이다. 이런 상황을 알면서도 일부 미술시장 관계자들은 구매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어설픈 작가 작품에 '신선하다', '새로운' 등의 형용사를 남발한다. 젊은 작가들을 수혈하며 작가 소비에 동참한다. 심지어 점쟁이마냥 "이 미술품을 사 놓으면 오른다"는 식의 무책임한 전망을 내놓거나 거장의 꼬리표에 젊은 작가의 이름을 붙여 신화화하는 무리수까지 둔다. 역시 돈을 벌기 위해서다. 하지만 미술시장이 작가를 보호하지 않는 투기판으로 변질되고 있음을 보면서도 자정 노력 없는 행태는 시장의 수명을 단축시킬 뿐이다. 이런 양태라면 오늘의 호황은 3년을 채 못 갈 것이 자명하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2-05-17 10:39:27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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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베니스비엔날레, 여성·반전을 말하다

이탈리아에선 현재 127년의 역사를 지닌 세계적 미술축제인 제59회 베니스비엔날레가 진행 중이다. 지난달 23일 공식 개막해 11월까지 약 7개월간의 대장정을 이어간다. 2년마다 개최되는 국제미술전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올해는 3년 만에 문을 열었다. 베니스비엔날레는 본전시와 각 국가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국가관 전시를 축으로 한다. 본전시의 올해 주제는 '꿈의 우유'(The Milk of Dreams)로, 영국의 초현실주의 작가인 레오노라 캐링턴의 그림책 제목에서 따왔다. 초현실적 현실에 대한 역설, 현실과 비현실이 착종된 새로운 창조를 뜻한다.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는 과거 국영 조선소이자 무기고였던 아르세날레를 주 무대로 한다. 58개국 213명이 참가했다. 30대에서 17세기 독일의 삽화가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까지 고루 포진했다. 총감독은 세실리아 알레마니 뉴욕 하이라인 파크 예술총괄 큐레이터가 맡았다. 한국 작가로는 정금형과 이미래가 초대됐다. 국가관 전시는 베니스비엔날레에서만 볼 수 있다. 카스텔로 자르디니 공원에 모여 있는 나라별 공간을 비롯해 본전시가 열리는 아르세날레와 베니스 시내 곳곳에서 각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그 수만 총 81개국에 달한다. 이 중 한국관은 1995년 기존 화장실 터에 29번째 마지막 주자로 자르디니에 입성했다. 건축가 고(故) 김석철과 이탈리아 건축가 프랑코 만쿠조가 설계했다. 여느 국제 미술전과 마찬가지로 베니스비엔날레 또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본전시 참여 작가 비율만 봐도 여성보단 남성 작가들이, 아시아나 라틴계보단 백인 작가들이 많았고, 줄을 서서 봐야 하는 인기 국가관들도 대개는 유럽과 미국관 등이었다. 실제 2017년엔 독일관, 2019년엔 벨기에관과 프랑스관, 리투아니아관 등이 관람객들의 주목을 받았다. 올해만 해도 언론들은 꼭 봐야 할 국가관으로 미국과 캐나다, 프랑스 등을 지목했다. 하지만 2022년 베니스비엔날레의 키워드는 '여성', '흑인'이다. 정준모 미술평론가는 최근 '경향신문'에 기고한 르포 제목을 아예 "남성 중심주의의 종말을 상상하다"라고 뽑았다. 그도 그럴 것이 비엔날레 작가 90%가 여성, 베니스비엔날레만의 특징인 황금사자상 수상의 영예도 여성작가들이 독차지했다. 국가관 부문은 영국관 대표작가 소냐 보이스가, 본전시 부문에선 미국 작가인 시몬 리가 받았다. 둘 다 흑인이다. 2007년 말리 출신의 사진가 말릭 시디베가 아프리카인으로는 최초로 황금사자상을 받았으나 흑인 여성작가가 두 개의 황금사자상을 동시에 거머쥔 건 처음이다. 평생공로상 역시 여성 작가인 독일의 카타리나 프리치와 칠레의 세실리아 비쿠냐에게 돌아갔다. 모두 광주비엔날레와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전시 등 한국과 인연이 깊다. 예술에 있어 성별의 구분은 무의미하지만 여성의 실존성과 존엄, 정체성이 정당하게 가치 매김 되는 하나의 전환점일 수 있다는 점에서 여성 작가들의 선전은 눈여겨볼 만하다. 역사에서 소외되고 억눌렸던 여성의 삶이 비엔날레라는 권위를 통해 재편됐다는 사실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한편 외신을 종합하면 관람객에게 특별함을 선사하고 있는 건 우크라이나 광장이다. 이곳엔 러시아 침공 이후 제작된 40명의 작가 작품이 들어섰다. 우크라이나 예술인들은 전쟁으로 인해 파빌리온 전시 참여가 불발됐고, 올해 초 성명문을 통해 연대와 지지를 호소한 바 있다. 러시아 예술인들도 우크라이나 침공이 부끄럽다며 국가관 참가를 포기했다. '반전'(反戰)이 베니스비엔날레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명사로 부각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들이다. 개막 초기엔 한국관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나선(Gyre)을 주제로 한 한국관 전시에는 설치예술가 김윤철이 참여했다. 그는 마치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볼 법한 대형 금속 조형물 5개를 설치해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시각적 놀라움'은 당대 인류가 처한 시대 징후를 다룬 작품에 후한 점수를 매기는 비엔날레의 흐름을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던 듯싶다. 한 기자는 현장을 전한 보도에 "본전시 주제와 연결 짓기 쉽지 않아 보였고 문명의 성찰을 촉구하는 시대 흐름과도 이질적이었다."고 썼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2-05-03 10:37:04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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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기억에 관한 13개의 서사 '나너의 기억'

기억에 관한 여러 질문 혹은 자문을 묶어 놓은 전시 '나너의 기억'(My Your Memory)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오는 8월 7일까지 진행된다. 루이즈 부르주아, 아크람 자타리, 안리 살라, 양정욱, 세실리아 비쿠냐, 시프리앙 가이야르, 뮌, 박혜수, 홍순명 등 국내·외 작가 13인(팀)의 작품을 '나너의 기억', '지금, 여기', '그때, 그곳' 등 세 가지 주제로 선보인다. 작품들은 물질과 정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기억과 관련한 다채로운 장면들을 내보인다. 저마다 내용과 서술방식은 다르지만 인간의 기억과 삶의 상관성을 관통한다는 점에선 동일한 결을 지닌다. 무엇을 기억하고 남겨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설치, 회화, 영상에 배어 있다. 주제 순서와 상관없이 가장 눈에 띄는 작업은 전시장 외벽에 자리 잡은 홍순명 작가의 작품 '비스듬한 기억-역설과 연대'(2022)이다. '그때, 그곳' 섹션에 포함된 이 작품은 유년시절 바다에서 익사할 뻔했던 사적 기억을 바탕으로 여러 중첩된 기억을 담고 있다. 죽음과 공포, 사투와 절망 앞에 드리워진 역설적 아름다움 등 경험과 상황에 따른 기억의 층위를 12m의 대형 캔버스에 압축했다. 가로 60cm의 작은 캔버스 240개가 사용됐다. 그룹 뮌(김민선+최문선)의 '오디토리움'(2022)은 45개의 시대적 장면들을 다섯 개의 캐비닛에 배치했다. 전구의 불이 불규칙하게 점멸되면서 그림자 이미지가 나타난다. 이 이미지들은 시공간의 빠른 변화에 의해 망각되고 소실되는 집단과 개인의 기억을 보여준다. 알바니아 출신의 작가 안리 살라의 작업 '붉은색 없는(빨강 없는) 1395일'(2011)은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계 무장 세력이 사라예보를 점령한 사건을 토대로 한다. 작품 속 여주인공을 통해 폐쇄적일 수밖에 없던 개인의 삶과 사회적(집단적) 기억을 엮어낸다. 과거의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억하는지 돌아보는 '지금, 여기' 섹션엔 루이즈 부르주아의 유명한 '코바늘' 연작(1998)을 비롯해 레바논 출신의 작가 아크람 자타리의 '스크립트'(2018), 세실리아 비쿠냐의 '나의 베트남 이야기'(2021) 등이 들어 있다. 앤디 워홀의 '수면'(1963)과 양정욱의 키네틱 작품 '피곤은 언제나 꿈과 함께'(2013)는 개인의 정체성과 경험이 기억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볼 수 있는 '나너의 기억' 파트에서 만날 수 있다. '나너의 기억'은 기억에 관한 13개의 서사를 다룬다. 기억의 다채로운 모습을 모아 놓아 흡사 '기억의 도서관' 같은 여운마저 심어준다. 아기자기한 전시구성은 관람의 흥미로움을 높이는 요소다. 하지만 스타작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국립미술관의 특성을 반영하듯 이번에도 뉴페이스는 발견하기 어렵고, 안리 살라의 '붉은색 없는 1395일'처럼 이미 여러 전시에 내걸렸던 것들이 다수에 달해 작품 자체만으론 신선함이 덜하다. 주제 대비 몇몇 작품은 이현령비현령에 가깝다. 2021년 광주비엔날레 출품작 중 하나인 세실리아 비쿠냐의 '나의 베트남 이야기'를 포함해 양정욱의 '피곤은 언제나 꿈과 함께', 그리고 시프리앙 가이야르의 초기 대표작 '호수 아치'(2007) 등은 관점에 따른 여러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더라도 기억이라는 명사를 대체할만한 단어들이 먼저 떠오르는 게 사실이다. 특히 일부 작업은 사회적 이슈를 다루지만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 한국인들의 경험과 기억, 시대성을 반영한 사건의 흔적들은 비어 있다. 이슬람 문화권에 관한 편파적 기억이나 베트남 전쟁과 칠레 쿠데타의 경험을 회상으로 연결한 작업 등이 의미 없다 할 순 없어도 주목해야 할 근·현대 한국의 정치적, 문화적 상황이 헐렁하게 느껴질 만큼 공감대 형성은 쉽지 않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2-04-19 10:37:39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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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기후위기 시대의 미술

꿀벌 군집 붕괴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첫 보고된 2006년 이후의 미국은 물론 현재의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다. 양봉 농가와 정부 관계 기관은 올 초부터 지금까지 이미 약 60억~70억 마리의 꿀벌이 실종된 것으로 추정한다. 꿀벌의 실종은 식량문제와 맞닿는다는 점에서 인간에게도 심각한 사안이다. 하지만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다만 꿀벌 실종은 단순한 우연이 아닌, 기후위기를 초래한 인간에게 자연이 보내는 경고라는데 이견이 없다. 미술계 또한 이와 같은 양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관련 기획전을 열어 현실에 질문하며 폐기물 없는 전시를 통한 실질적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등 나름의 고민도 잇고 있다. 얼마 전 충무아트센터 갤러리에선 '홀로세의 미래'(2021.12.30~2022.3.30)라는 제목의 전시가 마련됐다. 생물종 다양성 감소와 지구환경이 급격하게 변하면서 발생하는 '인위적 멸종'에 방점을 둔 기획전이다. 회화, 설치, 사진 등 다양한 미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고상우, 파랑, 임상빈, 엄기준, 김유정, 백종훈 작가가 참여했다. 작가들은 자정능력을 (거의) 상실한 현재의 지구를 묘사했다. 녹아내린 빙하와 해양 도처에 떠다니는 쓰레기 섬,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는 동물들의 모습을 작품에 담았다. 기후변동으로 인해 지구 허파 곳곳이 불에 타는 장면 등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그려냈다. 표현의 대상은 다르지만 자연생태 복원의 시급함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선 분모가 같다. 인간과 자연이 하나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우리에게 닥칠 재앙에 대한 경각심을 다룬 전시는 지난해 서울시립미술관에서도 개최됐다. 시민의 기후 행동을 촉구하는 공공예술 캠페인의 일환으로 진행된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2021.6.8~8.8)다. 기후위기와 생태계 파괴라는 엄중한 과제 앞에 다 같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기획 의도는 관람객들에게 현재의 상황을 경험케 함으로써 보다 감각적으로 실현됐다. 강원문화재단이 주관한 강원국제트리엔날레 역시 미술과 기후를 연결하는 주제를 내걸었다. 현대미술의 역할을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으로까지 확장한 주제전 '따스한 재생'(2021.9.30~11.7)이다. '기후미술'이라는 개념을 통해 기후위기에 관한 해답을 지역 재생에서 찾는 실험을 두어 달 가량 전개했으며,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내부로부터의 개선으로 기후위기에 관한 대안을 강구하는 미술관 전시도 늘고 있다. 일명 '제로웨이스트'(Zero Waste·쓰레기 배출량 줄이기) 전시다. 부산현대미술관은 '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 전(2021.5.4~9.22)을 통해 미술관 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활동이 생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했다. 산업쓰레기 배출에 기여한다는 일각의 비판과 달리 국립현대미술관 또한 올해 초 종료된 '대지의 시간' 전(2021.11.25~2022.2.27)에서 상당한 양의 산업폐기물을 양산하는 가벽을 줄이거나 없애는 시도를 펼쳤다. 공생과 연결을 키워드로 한 내용처럼 전시구성도 생태학적 관점에서 풀어냈다. 이중 부산현대미술관은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페인트 벽 대신 조립식 벽에 작품을 내거는 등 미술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동시대 환경문제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서울시립미술관의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가 그러했듯 종이 도록을 온라인으로 대체하는가 하면 탄소저감 차원에서 전시 설명조차 손 글씨로 처리했다. 이밖에도 국내 많은 작가들과 미술관들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성찰하는 시간을 공유하며 유한한 환경을 지키기 위한 해법을 찾고 있다. 작품과 전시로 기후위기 시대 미술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하는지에 대한 자문의 길을 열어가고 있는 것. 이제 남은 숙제는 어떻게 하면 단발성에 그치지 않는 자연친화적 예술생태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갈 것인지와 대시민 담론 생성 및 실질적 연대 확장을 꾀하느냐에 있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2-04-05 11:18:07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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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간송미술관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

간송 전형필의 후손이 소장하고 있던 국보 제72호인 '금동 계미명 삼존불입상'과 국보 제73호인 '금동 삼존불감'이 지난 1월 27일 K옥션에 출품됐다. 국보가 경매에 나온 건 사상 처음이다. 그러나 두 점 모두 유찰됐다. 당시 '금동 계미명 삼존불입상'과 '금동 삼존불감'의 시작가는 각각 31억원과 28억원이었다. 이후 '삼존불입상'은 간송미술관에 되돌아갔으나 '삼존불감'은 2월 21일 외국계 암호화폐 투자자 모임(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공동투자조합)인 '헤리티지 다오'(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에 팔린 것으로 밝혀졌다. 문화재청은 지난달 국보의 소유자 변경 신청이 들어와 지난 8일 절차를 마무리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제 '삼존불감'의 실소유주는 '헤리티지 다오'다. 국보 구매를 주도한 이는 '헤리티지 다오'에 참여한 다국적 투자자 중 한 명인 재미교포 김모 씨다. '삼존불감'은 그가 운영하는 '볼트랩스'라는 싱가포르 법인 명의로 계약했다. 국보도 매매가 가능하나 국외 반출이 되지 않는데다 법률상 문화재를 취득하려면 자연인이거나 법인이어야 하기에 김 씨가 대표로 있는 법인 명의로 계약된 것으로 파악됐다. 구입액은 25억원이다. '헤리티지 다오'는 구입한 '삼존불감'의 소유권 지분 51%를 간송과 나눴다. 지분을 분할한 것은 국보를 다시 팔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간송은 불감을 기탁 받는 형식으로 영구 관리를 맡았다. 다만 '헤리티지 다오'가 소유권을 일부 나누는 조건으로 간송미술관에 무엇을 요구했는지는 알 수 없다. NFT(Non Fungible Token, 대체불가토큰) 사업권 획득이 목적이라는 보도가 있지만 김 대표는 (현재로선) '삼존불감'을 NFT로 발행할 계획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NFT 사업에 국보가 이용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작지 않다. 문제는 간송 후손과 간송미술관의 경우 상속세 등 세금 한 푼 내지 않은 채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국보와 보물을 경매에 올린 사례가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2020년 5월엔 관장 개인 소장품인 보물 '금동여래입상'과 '금동보살입상'을 각각 15억원에 경매에 출품해 충격을 줬다.(유찰되었으나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이 약 30억원에 두 점 모두 구입했다.) 지난해엔 한글 창제 원리가 기록된 '훈민정음' 해례본을 NFT로 판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한정판 100개, 각 1억원) 국보나 보물을 NFT로 제작한 첫 사례였고 상업성 논란에 휘말렸다. 그리고 지난 1월 국보마저 경매에 내놨다가 또 유찰, 결국 다국적 투자자 모임에 판매됐다. 간송미술관은 보물과 국보를 팔 때마다 재정난을 이유로 삼았다. 그러나 간송미술관에 투입되는 세금은 결코 적지 않다. 올해 1월 착공한 대구 간송미술관 건립에는 국비와 지방비 400억원이 들어간다. 새 수장고를 짓는 데에도 국비와 지방비 등 78억원이 쓰였다. 간송미술관 건물인 보화각 역시 12억여 원의 정부 지원으로 보수·복원 작업을 하고 있다.(만약 재정압박에 따른 고육책으로 문화재를 팔았다면 매매 수익도 개인이 아니라 간송미술문화재단으로 편입돼야 마땅하다.) 2019년 9월에야 사립미술관에 등록하는 등 제대로 된 자구노력은 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가운데 우리 문화유산을 잘 관리해달라는 뜻에서 상당한 지원까지 해줬음에도 툭하면 보물과 국보를 시장에 내놓는 간송미술관에 대한 여론은 좋지 않다. 이를 의식한 듯 '삼존불감'을 판매한 뒤 간송 측은 "앞으로 유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한 나라의 문화재를 주식처럼 지분을 나눠 공동 소유하는 것도 괴이한데다, 국보를 외국 법인에 넘긴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또한 문화재를 공공재가 아닌 사유 재산으로 여긴 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비판과 더불어, 우리 문화재를 보호하려던 선대의 정신을 퇴색시키고 있다는 시선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2-03-22 13:27:12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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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박서보 예술상'과 광주비엔날레의 권위

박서보는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명이다. 반복해서 선을 긋는 '묘법' 연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미술사적 평가는 아직 더 두고 봐야 하지만 미술시장에서의 성과는 괄목할만하다. 작품 한 점에 많게는 10억원을 훌쩍 넘는다. 그의 1986년작 '묘법 No.200~86'(165×260㎝)은 지난해 10월 경매에서 12억원에 팔렸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집계한 2021년 경매 낙찰 총액만도 약 200억원에 달한다. 비엔날레(이탈리아어로 2년마다 개최하는 국제미술전)는 원래 정치와 자본 등 모든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목적으로 한 문화 쟁의장치였다. 동시대미술에 관한 각축장 내지는 경연장이었고, 미술이 선전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차단하며 과도한 상업성에서의 독립과 예술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의 무대였다. 한국에선 광주비엔날레가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광주의 문화예술 전통을 계승함과 동시에 5·18광주 민주정신의 새로운 문화적 가치로의 승화를 기치로 1995년 창설됐다. 2002년 첫발을 뗀 부산비엔날레와 함께 양대 비엔날레로 꼽힌다. 현재 우리나라엔 20여개의 비엔날레가 난립하고 있다. 대부분 지역 생활미술축제 수준이다. 광주비엔날레 역시 나이에 비해 차별성은 두드러지지 못했다. 고유한 이념과 방법론은 무엇인지 의아하다는 지적이 없지 않았고, 내용 면에서 또한 변별력이 약했다. 해마다 수십억원의 혈세가 투입되지만 여전히 국제적 담론 부재, 토론과 논쟁의 장으로서의 기능 부족 등에서 아쉬움이 많다. 광주비엔날레는 베니스비엔날레가 만든 전통적 프레임마저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왔다. 대표적인 게 시상제도다. 실험성을 텃밭으로 전위적이며 도발적인 작업을 통해 예술담론의 틀을 제시하기보단 상(賞)으로 비엔날레의 권위를 획득하려 했으며, 출범 초기부터 만들었다 없애기를 반복한 채 공적 상속을 지속해왔다. 지난 7일 (재)광주비엔날레는 또다시 예술상을 제정했다. 이른바 '광주비엔날레 박서보 예술상'이다. 내년 4월 개최되는 제14회 광주비엔날레부터 2042년(총 10회)까지 총 100만달러의 시상금을 수여한다. 광주비엔날레 전시 참여 작가를 대상으로 심사한 뒤 선정된 작가 1인(팀)에게 매회 10만달러씩 지급한다는 게 골자다. 작가들에게 줄 돈은 박서보 화백이 후진 양성을 위해 기탁한 재원으로 설립된 '기지재단'에서 나온다. 박양우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는 보도자료에서 "단색화를 세계무대에 알렸던 박 화백의 예술적 신념과 한국 미술을 국제무대에 소개해온 광주비엔날레의 역할이 상응해 이 상이 제정됐다"고 밝혔다. '박서보 예술상'에 스스로 '최고 권위'라 칭하며 "예술상을 통해 비엔날레다운 비엔날레를 만들어 갈 계획"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예술상은 예술이라는 개념을 증언하고 확증하는 이데올로기적 기능까지 맡는다는 점에서 위험도가 높다. '광주비엔날레 박서보 예술상'은 가장 자유롭고 구속되지 않아야 할 비엔날레와 가장 제도적이고 세속적이며 '인정'과 '질서'를 부여하는 상의 조합이기에 그 자체로 개념적 갈등이 존재한다. 특히 모든 귀속에 도전하는 하나의 방식 아래 가능한 비엔날레의 권위가 시상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믿음은 의무방어전처럼 변질된 광주비엔날레의 현실을 보다 남루하게 할 뿐이다. 예술작품과 예술가를 비롯한 시장의 가치와 다른 차원의 가치란 스스로 존재할 뿐 외적 기준과 평가에 의한 승인이 아니다. 진정 비엔날레다운 비엔날레를 원한다면 상에 연연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본연의 소임에 충실할 수 있을 지부터 심도 있게 연구하는 게 맞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2-02-22 12:07:36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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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러시아 아방가르드를 보다

아방가르드(Avant Garde)는 통상 기존 예술에 대한 인식과 가치를 부정하고 새로운 사회와 예술의 유토피아를 염원한 급진적, 비전통적, 진보적인 예술운동을 가리킨다. 시대적 제한 없이 사회 개혁을 지향하는 모든 도전과 전위적 태도를 포괄하는 일시적 개념이지만, 근·현대사적 관점에선 곧잘 20세기 초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정치·사회적 혼돈과 이데올로기의 투쟁 과정에서 발화한 예술 흐름으로 정의되곤 한다. 1910년대에서 1930년대까지 이어진 러시아 아방가르드 또한 기존 예술에 대한 인식과 가치를 부정하고 새로운 예술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서유럽 아방가르드와 개념상 크게 다르지 않다. 칸딘스키의 추상과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그리고 신원시주의를 비롯한 광선주의, 구축주의, 생산주의를 포함하는 등 매우 광범위한 영역을 갖고 있음에도 러시아 아방가르드 역시 관성화로부터의 이탈이 형식과 내용의 변화를 소환한다는 내적 믿음과 코뮌주의 사회 실현을 목표로 한 10월 혁명(1917)이라는 외적 전환기에 탄생했다는 측면에서 유사한 배경을 지닌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 전(~4월 17일까지)은 러시아 아방가르드를 접할 수 있는 기회다. 예술에 있어 삶의 문제를 놓지 않은 채 정치적 혁명과 예술적 혁명을 동일시했던 49명의 러시아 작가의 작품 75점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서구 아방가르드와의 교류 속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태동과 전개는 물론, 스탈린의 전체주의 체제에서 퇴폐 예술로 낙인 찍혀 긴 시간 고립돼야 했던 역사적 과정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결과적으론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충돌한 채 정치적 탄압이라는 엄혹한 현실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으나 그 내면에 살아 생명력을 유지해온 러시아 전위 예술의 단면들을 6개의 섹션 아래 고루 펼쳐냈다. 출품작들은 러시아 민속미술인 루복과 1910년대 서유럽 모더니즘을 수용하며 생성된 초기 작품을 비롯해 러시아 추상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광선주의, 입체미래주의 및 절대주의, 구축주의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이중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전성기에 해당하는 1914~1917년의 작업 중 극도의 정신성을 담은 말레비치의 '절대주의'(1915)와 칸딘스키의 비기하학적 추상인 '즉흥' 연작(1909/1913/1917)은 이번 전시의 핵심 콘텐츠다. 그만큼 관람객의 주목도도 높다. 하지만 리시츠키와 로드첸코의 구축주의 작품들과 표현주의에 입각한 바실리 체크리긴의 목탄화인 '죽은 이들의 부활' 연작(1921), 알렉산드르 티실레르의 펜화인 '장애인들의 시위'(1925)도 예술과 삶을 교합하려 했던 러시아 아방가르드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가와 작품에 속한다. 이외 다이아몬드 잭(1912~1913)파의 멤버였던 알렉산더 쿠프린의 '담배 파이프가 있는 정물'(1917)이나 오브젝티비즘 작가인 다비드 시텐베르크의 '푸른 화병이 있는 정물'(1919),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시작을 알린 여성 작가 곤차로바와 류보프 포포바의 '라일락'(1906) 및 '공간-역학적 구성'(1921)도 전시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는 작업에 속한다. 이들은 모두 미래주의자들이라는 개념을 넘어 현실의 조건을 다루는 프롤레타리아적 창조의 세계에 시선을 뒀다는 점에서 분모가 같다.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미술관 등 4개 기관의 소장품이 전시의 밑동이기에 기획의 한계가 읽히지만, 그럼에도 이번 전시의 가장 큰 의미라고 할 수 있는 예술 변혁을 통한 사회 변혁을 꿈꾼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미학과 실천성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은 유효하다. 특히 시장자본주의가 하사하는 달콤한 쾌락에 취해 고급 취향에 봉사함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며 다이소 같은 전시를 통해 예술을 논하고 상업적 성과가 곧 예술가가 획득해야 할 가치인 양 여기는 동시대에서 과연 아방가르드 정신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게 한다는 것도 이번 전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중요 지점이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2-02-08 11:04:06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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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미술계에 드리운 양극화와 부익부 빈익빈

연간 약 1만4000여 회의 전시가 전국에서 열린다. 공·사립미술관만 200개가 넘는다. 4000억원대에 불과하던 2021년 미술 시장은 급성장해 매출 1조 시대를 예상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1년 예산도 대충 1000억원을 웃돈다. 이는 정부지원 미술 분야 전체 예산의 40%가 넘는 거금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대부분의 작가들과는 무관해 보인다. 전시 기회도 많고 미술관도 많으며 돈도 많다고 하는데 정작 나와는 상관없게 느껴진다. 특히 경매를 포함한 미술시장은 전례 없이 호황이라지만 내 주변 작가들의 살림살이는 예나 지금이나 그리 나아진 것 같지 않다. 사실 전시 횟수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기획전이라고 무조건 참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도 전시의 대부분은 주목받지 못한다. 개인전도 마찬가지다. 경제력만 된다면 작가 스스로라도 전시를 열 수 있지만 1년 혹은 그 이상의 준비기간과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하는 것에 반해 실질적 효과는 크지 않다. 인지도가 높아야 언론도 대중도 관심을 갖는다. 물론 대형 상업전시나 국·공립미술관, 국내·외 대형화랑, 외국 작가의 전시라면 상황이 다르다. 잘 꾸민 세트장 같은 '이머시브아트 전'(Immersive art, 몰입형 미디어 아트) 역시 관람객이 줄을 잇는다. 하지만 국내 전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한국 작가들의 개인전은 가족과 지인들을 제외하곤 찾는 이 없이 조용히 열렸다 소리소문없이 문을 닫는다. 작품성은 미학적 가치를 담보할 순 있어도 관람의 척도는 아니다. 자본과 조직, 홍보력의 문제요, 이는 전시 전후 작가들의 작품 판매와도 연결된다. 미술시장도 그림의 떡이기 일쑤다. 약 2%에 불과한 화랑과 경매가 각각 전체시장의 80%를 점유하는 독과점 현상 속에서 그나마도 매매·낙찰 작품의 절대다수는 유명 원로 및 작고 작가, 외국 작가들의 차지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등이 발표한 경매 낙찰 순위만 해도 그들의 총액이 전체의 절반 가까이 된다. 아트페어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일반 기획전이나 개인전 대비 참여 작가의 수는 많으나 트렌드에 반응하는 작업이 아닌 한 경제력 확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시 이력이 훗날 작품가에 영향을 주긴 하지만 작품을 매매할 수 없는 미술관에선 당장의 경제적 문제보단 참여 기회에 의미가 있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만 해도 작가들을 위한 무대는 무척이나 협소하다. 스타 작가 모시기에 혈안이 된 그들은 외국 유명작가들에게 많은 돈을 쓰고, 민중미술 작가들과 작고 작가, 원로들에게 적지 않은 예산을 집행한다. 실제로 지난 7일 국립현대미술관이 발표한 2022년 전시계획을 보면 백남준 아카이브와 작가 개인사 자료전, 문신, 임옥상, 히토 슈타이얼, 피터 바이벨 등 국내·외 거장전이 다수 포진하고 있다.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아 중국 근·현대미술을 소개하는 '20세기 중국미술전'도 준비 중이다. 작년에도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을 비롯해 최욱경, 박수근 등의 작고 작가, 아이 웨이웨이, 문경원&전준호를 포함 이름 꽤나 알려진 국내·외 작가들의 전시비중이 컸다. 이전 사례를 고려할 때 당분간은 새로운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거나 기회를 제공할 것 같지 않다. 미술계엔 예술불평등의 구조와 그에 따른 양극화, 부익부 빈익빈이 고착돼 있다. 모든 면에서 쏠림현상이 심하다. 이것이 전시 기회도 많고 미술관도 많으며 돈도 많은데 정작 상당수의 작가들과는 상관없는 이유다. 미래까지 계산된 인프라 구축의 부재, 즉 아무도 새로운 흐름을 만들 인재에 관심 없고 발굴하려 하지도 않으며, 다들 그저 눈앞에 놓인 것에만 열중하니 당연한 결과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2-01-25 09:50:31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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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매체의 변화, 예술의 진화

미디어 아트(Media Art)는 매체에 예술을 도입한 것이다. 글자, 소리, 이미지를 구성요소로 하며 언어, 음악, 그림으로 표현된다. 미디어를 활용한 예술이기에 미디어 자체만으론 예술이 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도 미디어이지 예술은 아니다. 최근 전국 곳곳에 들어서고 있는 '몰입형 미디어 아트'라 불리는 것들 역시 대부분은 미디어일 뿐 '아트'와는 거리가 있다. 그 전시들이 예술이 되려면 사회적 의제 생산이 가능하고 미학적 의미를 지녀야 한다. 하지만 대개의 몰입형 미디어 아트는 그렇지 못하다. 역할이란 것도 화려한 조명과 프로젝션 맵핑을 통한 시각적 환영에 초점을 둔 SNS 포스팅용이다. 휴대전화에 담긴 수십 장의 사진을 제외하곤 사실상 남는 게 없다. 미디어를 통한 예술의 가치와 흐름, 시대성을 엿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바로 광주시립미술관(관장 전승보)에서 진행 중인 '미래의 역사쓰기 : ZKM 베스트 컬렉션' 전이다. 독일 '예술과 매체 기술센터'(ZKM: Zentrum fur Kunst und Medientechnologie)의 핵심 소장품 약 100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1960년대 초기 비디오아트 작품부터 현재까지 미디어 아트 역사에 방점을 찍은 주요 작품들이 총망라돼 미디어 아트 60년 역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출품작들은 신체경험의 직접성을 매개성으로 치환해온 작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독일 예술가 울레이가 협업한 영상 작품 'Rest energy'(1980)를 비롯해 그로테스크한 작업으로 주목받아 온 작가 토니 오슬러의 'Hello?', 고트프리트 헬른바인의 사진 '앤디 워홀, 뉴욕 1983'(1993) 등 다양하다. 특히 1965년 제작돼 전체 작품 중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되는 컴퓨터아트의 선구자 마이클 놀의 컴퓨터 드로잉과, 미디어 아트 역사상 가장 중요한 컴퓨터 인터랙티브 아트 작품으로 꼽히는 제프리 쇼의 '읽을 수 있는 도시'(1989)도 만날 수 있다. 이중 '읽을 수 있는 도시'는 관람객이 고정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 가상의 '텍스트 도시'로 들어가 곳곳을 이동하는 인터랙티브 설치미술 작품이다. 눈에 보이는 건 가상현실이지만 현실적 공간에서 자전거를 밟는 행위를 통한 신체성의 의식에 방점을 둔다. 이밖에도 이번 전시에서는 우디 바술카, 알도 탬빌리니, 다니엘 하이스, 하룬 파로키, 라파엘 카데나스, 에드멍 퀴펠, 발터 지에르스, 칸디다 회퍼, 백남준 등 아티스트 64명의 작업이 6개 소주제 아래 소개된다. 모두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개척해온 명성 자자한 작가들의 작품이다. 미디어 아트로 묶여 있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이번 전시는 마르셀 뒤샹과 플럭서스의 틀 내에서 오브제와 행위예술 그리고 이브 클라인 류의 비물질성 등이 복잡하게 혼재돼 있다. 따라서 미디어 아트의 계보는 물론 어떻게 장르 간 학제 간 경계 없는 융합의 예술이 전개됐는지도 미술사적 맥락에서 훑을 수 있다. '미래의 역사쓰기 : ZKM 베스트 컬렉션'은 약 2년의 준비과정을 거쳤다. 신중하게 선택한 작품들이 미술관 전관에 방대하게 놓여 있다. 광주시립미술관은 "예술의 진화를 기술적인 매체의 변화와 함께 체험할 수 있는 무대"라고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로 하여금 무엇이 미래의 역사에 기여하도록 하는지 사유하게 한다는 점이야말로 이번 전시가 지닌 의의다. 한편 광주시립미술관과 협업한 '예술과 매체 기술센터'는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산업도시 카를스루에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미디어 복합기관이다. 공예와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추구했던 '바우하우스'를 모델로 1989년 건축가인 하인리히 클로츠에 의해 창립됐으며, 1997년 개관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군수품 생산 공장이었던 건물을 개조한 이곳엔 작품 약 1만여 점이 소장돼 있다. 전시는 오는 4월 3일까지.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2-01-11 10:27:07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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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올해 최고 이슈 '이건희 컬렉션'을 둘러싼 잡음

어느 해든 무탈하게 보낸 적이 있을까만 올해 역시 '다사다난' 했다. 미술계도 그랬다. '이건희 컬렉션'을 시작으로 낙찰률 및 판매율, 관람객 모두 이전 기록을 갈아치운 미술시장, 광풍처럼 휘몰아친 대체불가능토큰(NFT)까지 한 달이 멀다 하고 다양한 이슈들이 미술계 소식란을 점령했다. 그 중에서도 지난 4월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족이 조건 없이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은 단연 올해 최고의 화제였다.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기증된 국내외 근현대 미술작품 및 문화재 약2만3000점은 양적 측면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데다, 겸재의 '인왕제색도'를 비롯한 일부 공개된 작품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었기 때문이다. 미술만 떼어 말해도 가치적 측면이 컸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전달된 8명의 외국 작가 작품은 기존 동일 작가 작품 대비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지만 백남순·박수근·김환기·장욱진 등 한국 근현대미술 작가 238명의 작품 1369점은 한국 미술사의 빈칸을 메우리라는 기대감을 낳기에 충분했다. 최근 알찬 기획으로 국립현대미술관 못지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대구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박수근미술관 등 5개 공립미술관에 분산 기증된 작품들 또한 학예연구에 밑바탕이 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작품을 받은 국립 및 공립미술관들은 복권에 당첨된 듯 기뻐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의 경우 1시간에 50여점의 작품을 봐야 하는 '주마간산' 식 관람 속에서도 전시장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많은 작품들을 이 전 회장 측이 어떻게 구입했는지에 대한 검증은 누락됐다. '세기의 기증'이라는 수사 앞에 비자금, 정경유착, 편법 세습, 노동자들의 산재 사망 등의 그림자는 존재감을 상실했고 국가 예산을 투입하는 공공문화시설에 '이건희'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에 대한 공론의 장도 마련되지 않았다. 대개는 국립현대미술관 윤범모 관장처럼 "최고의 안복(眼福)", "행복한 관장" 운운하며 감탄, 감사해 할 뿐이었다. '이건희 컬렉션'을 어떤 방식으로 소장·관리할 것인가를 두고도 말이 많았다. "별도 전시실을 마련하거나 특별관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뜬금없는 언급에 돌연 '이건희 컬렉션'은 '(가칭)이건희 기증관' 유치 문제로 번졌으며, 이후 건립지를 놓고 지방자치단체들의 과열 경쟁이 벌어졌다. 말도 안 되는 삼성가(家)와의 온갖 인연을 나열하며 최적의 입지를 강조한 지자체들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미술과 미술관의 역할 혹은 가치를 이해해서라기보단 임기 중 성과에 급급한 지자체장들의 정치적 판단이 짙었기에 여론의 눈총도 따가웠다. 다만 우리나라 문화시설 2800여개 중 약 40%가 수도권에 몰려 있는 현실과 전국 200여개 미술관 가운데 절반가량이 수도권에 자리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경청할만했다. 지역문화균형발전 차원에서도 지역 건립 주장은 설득력이 있었다. 더구나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은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를 통한 문화균형발전'을 대선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는 지자체의 요청을 외면했다. 문체부는 지난 7월 일방적으로 서울 용산 부지와 송현동 부지를 후보로 낙점하며 '이건희 기증관'의 서울 건립을 속전속결로 밀어붙였다. 물론 이 과정에서 공청회 따윈 없었다. '공공재'인 문화재와 미술품 활용 방안을 소수의 정부 관료와 인사들끼리 모여 졸속으로 결정했다는 점에서 민주적 절차의 정당성에 결함이 있었지만 정부는 결국 지난 11월 송현동을 '이건희 기증관' 건립 부지로 최종 확정했다. 섣부르게 미술관 신설을 밝힌 문체부 탓에 수개월 간 헛물만 켠 지자체는 지역 무시, 공정성 결여, 불투명한 절차를 내세우며 비판을 쏟아냈다. 근래엔 시민단체들도 나서 정부의 '이건희 기증관' 건립이 원칙이나 명분 없이 이뤄지고 있다며 추진 반대를 표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건희 컬렉션'은 한편으론 사회적·문화적 갈등을 유발했으며 여러 잡음을 생산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흘렀고 작품을 둘러싼 이슈만큼이나 뜨거운 관심을 잃지 않은 채 한 해를 보냈다. 내년 대선 이후 어떤 운명에 처해질지 모를 '이건희 기증관'도 논란과 함께 해를 넘기게 됐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1-12-28 11:49:34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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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가당찮은 문화권력의 헛소리

문화권력은 정치권력의 속성을 계승한다. 배경만 다를 뿐, 통제와 수용의 선별을 관리하고 예술에 질서를 부여하면서 적합성을 감시한다. 구조도 닮았다. 정당함을 가장한 부당함을 강제하는 구성적 권력과 상위에서 모든 걸 조종하는 행태적 권력이 피라미드처럼 놓여 있다. 문화권력의 취득과 유지방식은 때로 실용주의로 포장된 기회주의를 따른다. 간혹 비굴하며, 때론 뻔뻔하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일관성 없음은 같은 주제라도 여기서 이 말 하고 저기서 딴소리 하는 현재의 대선 후보들만이 아니다. 일부 권력지향형 예술인들도 환경과 상황에 따라 태도를 번복한다. 관련하여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작가 중 한명을 꼽으라면 바로 프란시스코 고야다. 그는 에스파냐를 점령한 나폴레옹이 자신의 형 조제프를 왕으로 앉히자 '마드리드 시의 우의화' 속 원형에 조제프의 얼굴을 처음 그려 넣었다가 복위한 페르난도 7세에 의해 군주정이 수립된 이후엔 정부를 찬양하는 문구를 다시 새기는 등 1872년까지 몇 번이나 그림을 수정한다. 정권과 권력에 따라 작품 속 주어가 변신을 거듭했던 셈이다.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며 사회 만연한 이기와 편견, 그릇된 야욕에 대해 경고했으나 한편으론 권력자에 기대어 정치적 성공과 보신주의라는 이중적인 태도를 드러낸 고야 같은 예는 이밖에도 많다. 인정받기 위해, 힘을 얻기 위해 혹은 생존을 위하여 개인의 도덕적 정신과 정치적 양심의 표현이 상충되는 사례, 그리고 신념을 불분명하게 하는 여러 모순적 현상은 지금도 보기 드물지 않다. 필자가 목격한 것 중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은 과거 한 블록버스터 전시 오픈식에 당시 대권주자였던 이명박 씨가 방문했을 때였다. 이명박이 미술관에 들어서자 그 뒤로 미술관장을 비롯해 수많은 미술계 인사들이 그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는 코미디를 연출했는데, 그건 어떤 해석도 필요 없이 단지 정치권력의 우산 아래 놓이고 싶은 말단 문화권력자들의 욕망과 생존방식, 그 한 단면이었다. 궁극적으론 최고 권력에로의 편입을 꿈꾸며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아부하는 모습, 그 추한 현장을 미술계에서 목도할 수 있는 예는 숱하다. 위법을 일삼는 국회의원들에게 오히려 특혜를 베풀면서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반성하지 않고, 대외적으론 한껏 과장된 목소리로 정의와 원칙을 말하지만 정작 자신이 속한 조직 내 부조리와 불합리에 대해선 일언반구 없이 그 권력 밑에서 조신한 척 살아가는 이들이 대표적이다. 지적 공동체인 국민들의 관심과 투쟁, 발언에 의해 사회적·경제적·정치적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높아지고 있으나 어쩌면 가장 민주주의적이어야 할 미술계는 그것에 부응하지 못한 채 포괄적 지배 권력에 맥없이 종속되고 있다. 진정한 예술 민주화란 권력자원으로부터 독립과 자율성에 있지만, 현실은 따로 논다. 여전히 비민주적 절차와 과정을 통해 문화권력이 탄생하고 있으며 이들이 작은 미술 동네 높은 곳에 앉아 온갖 정책을 집행한다. 심지어 동종세력의 비호를 받으며 그들과 철저한 공생관계를 형성한 채 자신들의 불량한 이데올로기를 예술가들에게 산포한다. 화가 나는 건 그런 이들이 툭하면 사회적 예술을 말하고 민중을 언급하며 공정과 상식을 꺼낸다는 점이다. 물론 가당찮은 소리다. 알고 보면 예술을 통해 스스로의 허위를 가리는, 교묘한 알리바이에 불과한 위선적 헛소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1-12-14 14:38:01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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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강요배와 모던 라이프

거주지에서 대구미술관까지는 승용차로 대략 왕복 8시간 정도를 예상해야 한다. 교통체증까지 겹치면 기약 없다. 그야말로 도로에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강요배의 대형 작품 '수풍교향(水風交響)'과 '모던 라이프' 전에 공개된 마르크 샤갈의 작품 '인생'은 고된 여정을 희석시키기에 충분하다. 대구미술관은 2022년 1월 9일까지 '강요배: 카네이션_마음이 몸이 될 때'와 함께 같은 해 3월 27일까지 '모던 라이프' 전을 동시에 개최한다. 강요배 전은 대구 출신 서양화가 이인성(1912~1950)의 예술정신을 기리기 위해 대구시가 지난 2000년 제정한 '이인성 미술상' 수상작가전이고, '모던 라이프' 전은 대구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 해외교류전이다. 이중 지난해 수상자인 강요배의 전시는 회화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개척해온 작가의 작품 40여점을 선보인다. 1992년 자신의 고향 제주로 귀향한 뒤 그린 대자연의 풍경 대작을 비롯해 대구·경산의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한 설치와 자소상, 영상 등이 관객을 맞는다. 출품작 대다수가 올해 제작한 신작이다. 대표작은 16미터 거대한 화폭에 광활하고 웅장한 대자연의 일렁임을 파노라마처럼 수놓은 '수풍교향'이다. 바람으로 채워진 자연에 시간과 역사를 꾹꾹 눌러 담은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강요배라는 작가를 알린 민중적 역사화 '어느 가을날'과 '코발트'라는 제목의 작품도 빼놓을 수 없다. '어느 가을날'은 미군정기인 1946년 미군정의 식량 정책에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경찰이 총격을 가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발생한 '대구 10·1 사건'을 다뤘고, 상주 지역의 비단을 푸른 쪽빛으로 염색한 설치작업 '코발트'는 1950년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보도연맹 회원들을 처형한 '경산 코발트 광산 학살사건'을 주제로 했다. 격동의 시기를 온몸으로 맞선 민중의 저항과 그들의 고통조차 예술로 승화시킨 작업이다. 강요배 전과 함께 대구미술관 1전시실과 어미홀 두 장소에선 프랑스 매그 재단과 공동주최 및 기획한 '모던 라이프' 전이 열린다. 총 8개의 소주제로 전개되는 이번 전시엔 추상조각가인 에두아르도 칠리다를 비롯해 유연한 서정적 긴장감을 선사하는 한스 아르퉁, 검은색의 화가로 불리는 피에르 술라주 등 국내외 작가 78명의 작품 144점이 출품됐다. 미술사적으로 모두 의미 있는 작품이지만 샤갈의 '인생'은 국외 반출이 엄격해 이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걸작으로 꼽힌다. 몽환적 초현실주의 그림인 이 작품은 전제군주국이었던 러시아 제국이 붕괴되고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인 소비에트 러시아가 탄생하는 러시아혁명을 포함해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 나치의 탄압 등을 겪어야 했던 유대인 작가의 삶과 정체성, 아내 벨라 로젠벨트와의 사랑을 하나의 화면에 녹여냈다. 이 밖에도 '모던 라이프' 전에는 세계 각지를 직접 걸으며 현지의 자연물을 이용해 환경에 동화되는 특정한 모양을 만들고 이를 조각 및 사진, 글과 기호 등의 매체로 기록해온 대지미술 작가 리차드 롱, '키네틱 아트'의 선구자인 알렉산더 칼더의 1950년대 작업, 그리고 그의 움직이지 않는 조각인 '스테빌'도 접할 수 있다. 개인적으론 예전 세종문화회관에서의 개인전 비평을 썼던 호안 미로의 작품에 눈길이 간다. 강요배 전이 분리될 수 없는 삶과 예술, 세계의 일부인 예술을 통해 시대성과 자연성, 질곡의 한국 근현대사를 보여준다면 '모던 라이프' 전은 세계 근현대미술을 총천연색으로 친절히 소개한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이들 전시의 관람을 권한다. 과거와 현재, 장르와 국경을 넘나드는 미술의 다채로운 장면을 목도할 수 있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1-11-30 09:34:14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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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이건희 기증관'의 정해진 운명

'이건희 기증관'(가칭)이 서울 종로구 송현동에 세워지는 것으로 결론 났다. 지난 4월 '이건희 컬렉션' 기증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별도 전시실을 마련하거나 특별관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언급한지 6개월 만이다. 이건희 기증관은 연면적 3만m²(약 9075평) 규모에 이건희 컬렉션 2만3181점을 모두 모은 독립적인 미술관 형태로 지어진다. "융·복합 문화 활동의 중심 공간"(문화체육관광부)으로서, 향후 학예실과 수장고 등 별개의 직제와 시설을 갖추게 된다. 개관은 2027년이다. 이건희 기증관의 송현동 건립이 확정되면서 장소에 대한 논란도 수그러들 전망이다. 그러나 과정에 있어 여러 문제점을 노출했고 국민적 이슈를 통해 문화 인프라를 점검하고 문화예술의 가치를 논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일단 장관의 시각부터 잘못됐다. 문체부 황희 장관은 지난 4월 이후 줄곧 이건희 컬렉션을 '국가'에 기증한 것이라고 말해왔다. 10일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진행된 '이건희 기증관 건립을 위한 서울시와의 업무 협약식'에서도 또 한번 "국가에 기증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틀렸다. 국가가 아니라 '국민에게 돌려준 것'이다. 생전 이건희 회장도 '국민'의 품으로 보내겠다고 했다. 이건희 유족 측이 국립현대미술관이나 국립중앙박물관 등의 국·공립기관에 맡긴 것 또한 국가 귀속의 개념이 아니라 전문적 관리를 통한 국민향유의 지속성에 방점이 있다. 장관은 이를 명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국가권력을 배경으로 한 관료적 마인드는 곧잘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려 하지 않은 채 독선적·획일적으로 일을 처리하곤 한다. 이번 기증관 건립 경로만 봐도 그렇다. 막대한 세금이 투입되는 것임에도 소위 '판'을 짜는 것에서부터 결론에 이르기까지 소수의 정부 관계자와 관련 인사들끼리 모여 졸속으로 결정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비민주적이었다. 실제로 정부는 '이건희 기증관'과 관련해 제대로 된 공청회나 설명회 한 번 열지 않았다. 공모라도 진행해 달라는 지역의 요구조차 무시했다. 특히 정부가 송현동 부지 건립의 방패로 삼은 '국가 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는 정부 산하 기관장과 공무원 출신이 주를 이뤘으며 정부가 선임한 위원 중 지역 인사와 시민을 대표하는 인물은 단 한명도 없었다. 이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며 공론을 통해 사안에 접근하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있다. 문화예술시설의 서울 편중 심화도 문제로 부각됐다. 우리나라 문화시설 2800여개 중 36%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미술관은 전국 200여개 가운데 50% 이상이 수도권이다. 여기에 기증관이 또 서울에 들어선다. 이는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를 통한 문화균형발전'에 부합하지 않는다. 2022년 예산 편성의 주요 기조로 삼은 문체부의 '문화균형발전 촉진'마저 과연 진실한 것인지 의심케 한다. 송현동 부지를 선정한 이유로 '접근성'을 말하지만 그런 논리라면 지역은 영원히 미술관·박물관 유치가 불가능해 문화균형을 강조해온 정부 스스로 모순을 드러낸 것 외에도 컬렉션을 다시 합치는 건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 시기별·성격별로 구분해 기증한 유족의 취지를 퇴색시킨다는 사실 역시 짚고 넘어갈 문제다. 이는 지금도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부분이다. 허나 아무리 말한들 달라질 건 없어 보인다. 민주적 절차와 국민과의 소통을 주문하는 대신 '별도 전시실' 및 '특별관' 운운하며 대통령이 나서서 방향을 규정해버린 지난 4월 이미 '이건희 기증관'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었으니 말이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1-11-16 09:16:02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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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이건희 컬렉션'과 국회의원

국민들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이건희 컬렉션'을 보고 싶어도 쉽지 않다. 몇 달을 기다려도 예약이 되지 않아 포기하는 상황이다. 시간당 인원제한에 걸리기 때문이다. 관람인원기준이 완화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방역체계가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전환된 첫날인 1일부터 회차별 관람인원을 30명에서 60명으로 변경했어도 예약 성공률은 극히 낮다.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예외다. 매번 1분 만에 2주치 예매가 끝나버리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지만 그건 절차를 준수하는 국민들에게만 해당된다. 국회의원들은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들의 스페셜 의전에다 다과까지 곁들인 대접까지 받으며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다. 물론 예약 따윈 안 해도 되고 방역 수칙조차 지키지 않아도 그만이다. 관람 인원 제한도 적용되지 않는다. 지난달 7일, SBS는 '이건희 컬렉션 관람만 50분…국정감사 맞나'라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폐관 시간 이후 국회의원 40여명이 국정감사를 이유로 '이건희 컬렉션'을 단체로 관람하는 장면을 내보냈다. 정말 국감인지 아니면 관람인지를 물었는데 결론은 후자였다. 그것도 권력에만 주어진 특혜성 관람이었다. 총 4분여짜리 리포트엔 권력과 특혜의 함수가 구석구석 녹아 있다. 일례로 국립현대미술관은 업무 종료 후 문을 열고 기다렸다. 직원들은 국회의원들을 실은 관광버스가 도착하자 도열해 맞이하며 인사했고, 곧이어 고개 숙인 자와 뒷짐 진 자가 화면에 등장했다. 방송 시작부터 권력이 사람을 지배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당시만 해도 시간당 30명만 입장할 수 있는 전시장에 40여명이 들어찼다. 엄연히 감염병예방법 위반이지만 이 또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는 국회의원들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모이지 말아야 하는 것도 국민이고 방역수칙을 지켜야 하는 것도 오로지 국민이며, 법의 적용도 힘없는 국민에 한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인원 통제 역시 평범한 국민들에게만 유효하다. 의원들의 전시 관람이 시작되자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직접 나와 도슨트를 자처한다. 작품을 돈으로 계산하는 모습에도 보기 드물게 그들 특유의 호통과 말 끊기, 윽박지름이 없다. 공간에 걸린 작품을 다 팔면 서울관 두세 채 지을 수 있다며 객쩍게 웃어도 그 잘하던 국회모독이니 태도가 어쩌니 하는 협박은 없다. 허긴, 예술에 대해 뭘 알아야 문제의식을 갖지, 국정감사를 패키지 관광 정도로 여긴 그들의 입장에선 그저 고개를 주억거리는 게 전부일 수밖에 없음이 수긍은 된다. "의원들끼리만 따로 현장 시찰을 하는 게 국민감정상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취재기자의 질문에 한 의원은 그래서 '비공개'로 했다고 답했다. 이는 특별한 대우자체가 특혜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니 나올 수 있는 발언이다. 특권의식이 몸에 밴 초현실적 집단의 구성원이기에 가능한 뻔뻔함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경제가 파탄 나고 자살하는 사람이 수두룩한 현실에서 국정감사를 구실로 밤늦은 시간 그림 보겠다며 떼로 몰려가 법까지 위반하며 온갖 특혜(호사)를 누리는 국회의원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모처럼 손잡고 하나 된 여야의원들의 훈훈한(?) 사례로 봐야 하나. 결국 우리가 잘 뽑는 수밖에 없다. 방송은 90분 일정 중 관람만 50분, 나머지 40분은 환담회를 가졌다고 전했다. 마스크를 벗은 채 우리의 피 같은 세금으로 제공된 음식을 야금야금 씹으며 그들만의 즐거운 밤을 보내는 동안, 그리고 그들이 그림을 보며 희희낙락하는 그 시간 자영업자들은 아무도 오지 않는 가게를 닫으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국민들도 이를 악문 채 비극적인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1-11-02 09:46:19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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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과열된 미술시장

비엔날레가 제 역할을 못한 채 그저 그런 지방자치단체 홍보용 기획전 정도로 추락한 반면, 미술시장은 갈수록 팽창하고 있다. 올 상반기 경매 낙찰총액은 지난해 전체를 넘어섰고, 서울옥션과 K옥션 등 주요 미술경매의 낙찰률도 90%대를 웃돈다. 그림을 팔고 사는 미술품 시장인 아트페어 역시 한층 달아올랐다. 지난 3월 개최된 화랑미술제에는 5만여 명이 방문해 예년의 두 배가 넘는 72억 원어치의 작품을 사갔다. 두 달 뒤 열린 아트부산도 8만 명이 관람해 350억 원의 매출 신기록을 세웠다. 정점을 찍은 건 지난 13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홀에서 진행된 국내 최대 미술장터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SEOUL 2021, 이하 키아프)다. 첫날 VVIP 오픈에서만 전체 매출의 약 절반인 350억 원의 미술품을 팔아치우더니 마지막 날까지 총 650억 원의 거래를 성사시켜 2019년 매출 310억 원을 가볍게 갈아치웠다. 관람객도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개막 첫째 날부터 이틀간을 VVIP와 VIP만 입장할 수 있도록 제한했음에도 행사장은 북새통을 이뤘다. 주말이 낀 16일과 17일엔 100미터가 넘는 줄을 서야 간신히 입장할 수 있었으며, 한때 홀 내부 체류인원 상한선인 3063명을 넘어 입구를 닫아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주최 측에 따르면 첫날 5000여 명을 포함해 행사기간 5일 동안 약 9만여 명이 방문한 것으로 집계됐다. 2019년 대비 7% 이상 증가한 수치다. 키아프가 최다 판매액과 관람객을 기록하자 일각에선 아트바젤홍콩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내년부터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영국 프리즈와 5년간 공동개최하기로 결정하면서 홍콩을 대체할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으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가 아시아 미술시장의 유통 허브로 도약한다는 측면에선 딱히 부정적일 이유가 없다. 하지만 미술품이 돈이 된다고 하니 너도나도 일단 사고 보자는 식의 양상은 상당히 우려스럽다. 예술품이 부의 차별화를 위한 도구로 자리 잡은 양태도 그렇지만 암호 화폐와 주식 대체용이라는 인식 앞에선 걱정마저 든다. 미술이 자본의 자기 팽창을 실현해 주는 고급 콘텐츠로 변질된 채 돈에 굶주린 이들의 투기판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윤추구에 부응하는 욕망에 의해 예술품이 재단 및 계량되는 현상이나 '장식'에 준하는 작품들을 미술의 전부로 착각하는 예술향유의 편식도 근심되는 부분이다. 특히 잘 팔리는 작가 혹은 그림이 예술가의 재능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고, 예술품에 대한 미적 기준조차 시장이 제시하는 폐해는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현재와 같은 분위기가 과거에도 있었다는 점이다. 바로 2007년이다. 당시에도 취향에 호소하는 얄팍한 '상품'이 '값'과 '가치'의 차이 구분 없이 '작품'인 양 둔갑해 날개 돋친 듯 팔렸고, 마구잡이식 구입과 사재기까지 벌어지는 현실을 염려하는 목소리에 미술계는 단군 이래 이런 호황은 없다는 말로 덮으며 자축했다. 그러나 몇 년 만에 시장은 쪼그라들었다. 많은 이들이 적금 깨고 집 팔아 그림을 구입했지만 결국 작품을 매개로 현재의 선택이 미래의 이윤을 이상적으로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 믿게 하는 최면의 공간에서 대부분 불나방처럼 산화됐다. 인테리어 업자처럼 복제품을 찍어내듯 한 작가들 역시 소비의 대상으로 남은 채 스스로 생명력을 갉아먹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미술품 유통업자들 또한 다시 어둡고 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야 했다. 과열된 지금의 미술시장은 그때와 여러 면에서 닮았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1-10-19 09:32:30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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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예술의 가치 확산을 위한 과제

우리나라 예술가들이 예술 활동을 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난관은 낮은 수입에 따른 생활의 어려움이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제 한 몸 거두지 못할 만큼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프리랜서라는 활동 형태로 인해 일반 금융서비스로의 접근이 쉽지 않으며, 주거 불안은 자유로운 예술 활동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예술인들이 겪는 민생고는 미적 신념을 무너뜨리고 심적 붕괴를 가져온다. 예술의 자율성을 포기한 채 부유층의 취미와 기호에 읍소하는 양태에 젖게 될뿐더러 가장 치명적 권력인 자본주의에 무릎 꿇음으로써 예술의 장식성·허위성을 찬양하고 만다. 국내에서 실력 있다는 예술인들이 점차 예술계를 떠나거나 작업 내용이 변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나라엔 예술가들의 생존과 예술 활동의 지속성에 도움을 주고 권익보호를 위한 기관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바로 예술인 복지에 대한 체계적·종합적 지원을 목적으로 지난 2012년 설립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다. 예술인복지법을 뿌리로 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재단은 건강한 예술 환경 조성 차원에서 '예술인생활안정자금(융자) 사업'을 비롯한 '창작준비금지원 사업'을 시행하는 등 예술가들의 경제적·직업적 어려움 개선에 일익을 담당해 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19' 피해 예술인을 위한 특별융자를 운영해 경제적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예술가들에게 단비와 같은 역할을 했으며, 전국의 12개 지역재단과 협력한 '예술인파견지원 사업-예술로(路)' 등의 프로젝트로 전공 관련 일자리 창출, 대민 교류, 예술의 사회적 기여에 힘을 보태고 있다. 재단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예술인의 직업적 특수성을 반영한 기준을 새롭게 적용한 금융지원방안과 사회보장정책을 고민하고 있다. 행정과 예술의 상이한 틈을 메울 인력 및 기관의 전문화도 꾀하는 중이다. 특히 예술인들의 사회적 위상과 정체성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 개발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계획만큼 쉬운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예술인의 직업적 특성을 반영한 기준을 새롭게 적용하려면 '특수성'에 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하지만, 당장 기획재정부나 행정안전부를 설득시키는 것부터 녹록지 않다. 시행 중인 예술활동증명, 예술인 사회보험료 지원, 예술인 고용보험, 예술인패스 등에서도 개선점이 없는 건 아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체력이 점차 고갈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갈수록 늘어나는 예산과 상당한 양의 업무 대비 재단 상근 인원이라야 고작 40여명을 웃돈다. 100만명 정도로 추정되는 예술인을 살피기엔 터무니없이 적은 수이기도 하지만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일부 지방자치단체 광역문화재단과 비교해도 최대 1/5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야말로 '복지'가 필요하다는 '웃픈'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예술계 및 관계 기관 내부의 논의나 제도정비·인원 충원만으론 예술가들이 부르주아 품에서의 성장에 거리를 둔 미적 태도를 유지하기엔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동시대 담론과 예술 향유를 제공하는 예술가들에 대한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얻어야 한다. 이는 예술가들의 생존과 예술의 가치 확산에 있어 우선돼야 할 과제다. 물론 이 과제를 풀기 위해 정부와 예술계는 예술이란 공공의 삶과 긴밀히 연관돼 있으며 예술가들의 미학적 성취와 실험의 성과는 결국 사회로 돌아온다는 믿음을 국민에게 심어줘야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이 미적 민주화를 넘어 삶의 민주화를 앞당기는 것임을 설명해야 한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1-10-05 09:58:09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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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무용론 속 줄줄이 개막하는 ‘비엔날레’

2년마다 열리는 시각예술축제인 비엔날레가 줄줄이 개막한다. 지난 1일 문을 연 전남수묵비엔날레를 시작으로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대구사진비엔날레, 강원국제트리엔날레(3년 주기)가 9~10월에 걸쳐 연이어 막을 올린다. 부산 바다미술제(10.16~11.14)까지 포함하면 9개에 달한다. 원래는 지난해 개최돼야 했으나 코로나19로 순연된 제2회 전남수묵비엔날레는 수묵화의 본고장 목포와 진도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10월 31일까지 '오채찬란 모노크롬-생동하는 수묵의 새로운 출발'이라는 주제로 남도전통미술관을 비롯해 목포문화예술회관, 소치기념관 등에서 15개국 작가 200여명의 작품을 선보인다. 제11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도 8일(~11.21)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문을 연다. 역시 코로나19로 연기된 끝에 비로소 발을 뗀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는 '도피주의'다. 현실의 제약으로부터 탈출하려는 개인의 욕망을 예술과 대중문화의 상상력으로 연결해 살펴보고 폭넓은 사회적 연대를 제안하는 작품을 소개한다. 주최 측의 설명에 따르면 도피주의를 비평적 도구로 삼아 코로나 팬데믹의 장기화와 함께 수면 위로 떠오른 인종주의, 젠더, 계급, 정체성, 이주, 경제 위기, 환경 문제 등 인류 공통의 사회적 쟁점을 다룬다. 작가 41명(팀)의 작품 58점이 소개된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개막 이틀 뒤엔 사진전문 행사인 제8회 대구사진비엔날레가 1년 미뤄진 끝에 대구문화예술회관을 중심으로 한 시내 전역을 무대로 11월 2일까지 이어진다. 주제는 '누락된 의제-37.5 아래'이다. 37.5는 코로나19 진단 발열 기준 체온을 뜻하며, '누락된 의제'는 인류를 위협하는 기후변화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빈부격차, 차별 등의 문제들을 의미한다. 32개국 351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이밖에도 9월과 10월은 '비엔날레의 달'이라고 할 만큼 여러 지자체에서 다양한 형식과 주제를 내건 비엔날레가 일제히 닻을 올린다. 여기엔 청주공예비엔날레와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강원국제트리엔날레도 포함된다. 이중 강원국제비엔날레의 후신이자 3년 단위로 순회하는 국내 최초의 유목형 예술제인 강원국제트리엔날레(9.30~11.7)는 '따스한 재생'을 키워드로 홍천군 결운리 옛 군부대 탄약정비공장과 폐교한 와동분교, 홍천중앙시장, 홍천미술관 일원에서 펼쳐진다. 코로나19 속 인간 사회에 드리운 환경 위기와 재난,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서 재생의 기대와 회복의 전망을 살펴보자는 게 취지다. 37개국 작가 100팀이 출품한다. 올해 비엔날레들을 관통하는 분모는 대폭 확장된 온라인 전시와 더불어 자연, 생태, 빈곤, 권력, 계급, 인종, 차별, 소통 등 동시대 인류 앞에 놓인 현안에 있다. 대체로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질병의 확산과 그로 인한 위기 속에서 그동안 무관심했거나 간과해온 사안에 대한 우리의 과오를 반성하고 나아갈 방향을 담고 있다. 다만 위 현안들은 이미 여타 전시를 통해 숱하게 거론해온 이슈들이라 그리 새롭지는 않다. 결국, 당대 인류 앞에 놓인 모든 문제의 배후인 자본주의라는 망령의 심장을 날카롭게 도려낼 수 있는 혁신적 칼날이 되어야 하지만 비엔날레 자체가 권력이자 자본주의적이라는 사실에서 기존 한계성과 상투성, 추상성을 예단케 한다. 주제만 거창할 뿐 혈세만 낭비한다는 '비엔날레 무용론'을 피할 수 없는 또 한 번의 '의무방어전'으로 남을지, 아니면 담론의 생성 및 사회 속 실천 방안에 대한 실질적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비엔날레의 역할과 가치를 증명할지 두고 볼 일이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1-09-07 09:53:51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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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장소가 아닌 마음에 남는 '공공미술'

동시대 공공미술은 미술인 개인의 예술적 성과를 진열하지 않는다. 예술가는 단순한 오브제를 생산하는 이가 아니라 공공의 주체인 주민들과 함께 시대의 이슈를 공론화하는 발굴자이자 해석자로 위치한다. 시민들 또한 관객이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자가 된다. 공공미술의 목표도 환경미화를 넘어 새로운 모더니티 구축에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공공미술이란 대개 전국 공공장소와 건축물 앞에 우후죽순 들어선 조형물을 가리킨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공미술 1단계인 '건축 속의 미술'과 2단계인 '공공장소 속의 미술'이다. 가장 낮은 단계의 공공미술이다.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문화체육관광부와 228개 지방자치단체가 동시 추진한 공공미술 프로젝트인 '우리 동네 미술'은 낡고 낡은 초기 공공미술 개념을 끌어와 재탕한 프로젝트이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 당시 예술뉴딜을 베꼈다. 예술가들의 생계부양 차원에서 2008년 시작된 '마을미술프로젝트'(이 또한 예술뉴딜의 일환으로 출발했다)처럼 '우리 동네 미술' 역시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술인들을 지원하고자 마련됐다. 예술가 일자리 제공을 통한 지속적인 창작 활동과 주민 문화향유 공간 조성이라는 명분이 붙었다. 결과는 좋지 못했다. 약 1년 전, '우리 동네 미술'은 시작과 동시에 지역과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쇳덩어리와 돌덩어리들을 공공미술이라는 이름 아래 강과 바다, 도심 곳곳에 뿌려댔다. 예술성을 헤아리기 힘든 국적 불명의 캐릭터가 벽을 채웠다. 공공영역의 주인인 주민들은 배제되기 일쑤였으며 기껏해야 단순하고 어설픈 기능적 개입에 머물렀다. 시간이 흘러 지난 6월경 대부분의 지자체가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약 1000억원이라는 역대 최대 예산을 투입한 '우리 동네 미술'은 지역 내 갈등과 미학적 평가가 불가능한 작품의 범람, 관리 부실의 우려를 낳으며 혈세만 낭비한 졸속 사례로 기록될 운명에 놓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의미 있는 프로젝트가 아예 없진 않았다는 것이다. 도시화로 사라져가는 '송도어촌계'와 '먼우금' 사람들의 삶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며 장소가 아닌 기억과 마음에 남는 공공미술을 추구한 연수문화재단을 비롯해 소외감과 사회적 고립을 겪는 장애인, 노인들과의 소통에 주목한 안양문화재단의 공공미술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때는 금지곡으로 꼽혔던 '해녀가'를 재해석한 음악다큐와 '우도' 사람들의 모습을 인터뷰 프로젝트 등으로 담은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우도 9경', 그리고 근대가옥을 주민들의 '인문학당'으로 탈바꿈시킨 광주광역시 동구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도 범람한 조형물 위주의 '우리 동네 미술' 속 변별력 있는 작업에 속한다. 이들 프로젝트들은 '보다 나은 공동체적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자문을 바탕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장소와 사람, 고유한 지역성에 초점을 두었다는 점에서 '장식'에 치중해온 기존 공공미술과 차이가 있다. 주민들 스스로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는 것도 시각적·물리적 맥락만을 좇은 여타 프로젝트 대비 구분되는 요소이다. 무엇보다 관·예·민이 힘을 모아 그곳에서 채집한 지역 내 무형의 자산을 기록함으로써 지역의 서사와 장소를 되새기며, 공간의 주체로 살아온 이들의 삶을 새롭게 조명하려 했다는 사실은 동시대 공공미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가치를 알려주는 조타로 작동했다. 비록 군계일학이지만 이와 같은 몇몇 프로젝트가 논란의 '우리 동네 미술'을 살렸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1-08-24 09:32:24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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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시를 위한 놀이터

20개의 콘트리트관을 쌓아 올린 작품 '우리가 이미지를 내쉴 때'로 후기자본주의사회가 만든 난민 위기를 다룬 쿠르드족 출신의 작가 히와 케이. 그리고 한 원주민 공동체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전통 및 자연생태의 소멸을 지적한 캄보디아의 예술가 크베이 삼낭의 작품 '영혼의 길'. 실제 난민으로, 권력을 가진 소수에 의해 희생당하는 정치적·사회적 현실을 묘사한 히와 케이의 작품과 무분별한 개발로 오염되거나 파괴되는 자연환경을 표현한 크베이 삼낭의 작품은 지난 2017년 '카셀도큐멘타'에 출품해 큰 주목을 받았다. 예술은 세계를 탐구한 결과이며, 사회 속 실천임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반향도 컸다. 최근 두 작가의 작품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바로 미술관 개관 10주년을 맞아 대구미술관이 새롭게 기획한 주제 발굴전 '시를 위한 놀이터'이다. 한국현대미술의 발상지인 대구 지역 미술사를 정리하는 한편, 예술의 역할과 가치 확산에도 관심을 기울여온 최은주 관장의 의지가 반영된 연례 특별전 '대구포럼'의 일환이다. '대구포럼' 서막을 연 '시를 위한 놀이터'는 "시의 외피를 한 예술"(기획 이정민 학예사)이다. 때문에 전시는 시적 문법을 따른다. '놀이터'라는 명사 아래 참여 작가 8명(이강소, 비아 레반도프스키, 오쿠보 에이지 외)의 창의적 과정이 흡사 서정시처럼 전개된다. 그러나 작품 각각의 면면은 묵직하다. 대표적인 작업이 히와 케이와 크베이 삼낭의 영상이다. 이번 전시에 히와 케이는 작품 '아버지의 컬러시대'(2012)와 '프레이미지/모국어만큼이나 눈이 먼'(2017)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선보였다. 카셀도큐멘타에서 화제를 모은 크베이 삼낭의 작품 '영혼의 길'(2016~2017)도 다시 만날 수 있다. 이중 히와 케이의 작품 '모국어만큼이나 눈이 먼'은 고향을 떠나 이탈리아로 향해 걸어가는 자신의 여정을 담은 작업이다. 화면에는 작은 거울 여러 개를 단 긴 막대기를 콧등에 얹은 채 균형을 유지하며 걷는 작가의 모습이 등장하고 이를 통해 난민 문제의 실질적 배후인 자국 이기주의와 인간 존재에 관해 말한다. 위태로운 작가의 걸음과 가라앉은 작가의 내레이션만으로도 난민으로서의 경험이 전이되고도 남는다. 크베이 삼낭의 작품 '영혼의 길'은 캄보디아 아랑 계곡에 거주하는 원주민 공동체 'Chong(총)'을 모태로 한다. 작가는 협업자들과 16개월 동안 원주민들과 생활하며 지역적 습관을 배웠고 강한 유대감을 형성했다. 그리곤 자연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며 재생 불가능한 처지에 놓인 자연생태와 전통의 소멸에 대해 언급한 작품 '영혼의 길'을 만들었다. '시를 위한 놀이터'에는 소개되지 않지만 토템에서 영감을 받은 11개의 동물 탈도 동일한 선상에서 구현된 설치이다. 작가가 '영혼의 길'에서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개발에 의해 사라지는 삼림과 밀매의 대상이 되는 동물, 급속한 현대화로 인한 공동체의 붕괴 및 무너지는 자연 서식지에 대한 우려이다. 캄보디아를 무대로 하고 있으나 자본주의 폭력 앞에 증발하는 전지구적 차원에서의 자연환경 문제와 국가를 불문하고 강제로 이주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시선이 원시적 풍경 속에서 기이하고도 세밀한 신체 언어로 표현되어 있다. 돈의 노예화에 종속된 채 미술조차 기획화 되고 있는 작금의 미술구조에서 '시를 위한 놀이터'는 예술의 가치를 포함해 현재의 시간 안에 존재하는 '참된 것'은 무엇인지 묻는다. 히와 케이와 크베이 삼낭의 작품은 자본주의의 욕망이 지배하는 체제에서의 삶, 나아가 어떤 게 예술의 역할인지 질문한다. 전시는 9월 26일까지.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1-08-10 09:26:22 김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