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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홍경한의 시시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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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이건희 컬렉션'과 국회의원

국민들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이건희 컬렉션'을 보고 싶어도 쉽지 않다. 몇 달을 기다려도 예약이 되지 않아 포기하는 상황이다. 시간당 인원제한에 걸리기 때문이다. 관람인원기준이 완화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방역체계가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전환된 첫날인 1일부터 회차별 관람인원을 30명에서 60명으로 변경했어도 예약 성공률은 극히 낮다.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예외다. 매번 1분 만에 2주치 예매가 끝나버리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지만 그건 절차를 준수하는 국민들에게만 해당된다. 국회의원들은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들의 스페셜 의전에다 다과까지 곁들인 대접까지 받으며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다. 물론 예약 따윈 안 해도 되고 방역 수칙조차 지키지 않아도 그만이다. 관람 인원 제한도 적용되지 않는다. 지난달 7일, SBS는 '이건희 컬렉션 관람만 50분…국정감사 맞나'라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폐관 시간 이후 국회의원 40여명이 국정감사를 이유로 '이건희 컬렉션'을 단체로 관람하는 장면을 내보냈다. 정말 국감인지 아니면 관람인지를 물었는데 결론은 후자였다. 그것도 권력에만 주어진 특혜성 관람이었다. 총 4분여짜리 리포트엔 권력과 특혜의 함수가 구석구석 녹아 있다. 일례로 국립현대미술관은 업무 종료 후 문을 열고 기다렸다. 직원들은 국회의원들을 실은 관광버스가 도착하자 도열해 맞이하며 인사했고, 곧이어 고개 숙인 자와 뒷짐 진 자가 화면에 등장했다. 방송 시작부터 권력이 사람을 지배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당시만 해도 시간당 30명만 입장할 수 있는 전시장에 40여명이 들어찼다. 엄연히 감염병예방법 위반이지만 이 또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는 국회의원들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모이지 말아야 하는 것도 국민이고 방역수칙을 지켜야 하는 것도 오로지 국민이며, 법의 적용도 힘없는 국민에 한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인원 통제 역시 평범한 국민들에게만 유효하다. 의원들의 전시 관람이 시작되자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직접 나와 도슨트를 자처한다. 작품을 돈으로 계산하는 모습에도 보기 드물게 그들 특유의 호통과 말 끊기, 윽박지름이 없다. 공간에 걸린 작품을 다 팔면 서울관 두세 채 지을 수 있다며 객쩍게 웃어도 그 잘하던 국회모독이니 태도가 어쩌니 하는 협박은 없다. 허긴, 예술에 대해 뭘 알아야 문제의식을 갖지, 국정감사를 패키지 관광 정도로 여긴 그들의 입장에선 그저 고개를 주억거리는 게 전부일 수밖에 없음이 수긍은 된다. "의원들끼리만 따로 현장 시찰을 하는 게 국민감정상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취재기자의 질문에 한 의원은 그래서 '비공개'로 했다고 답했다. 이는 특별한 대우자체가 특혜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니 나올 수 있는 발언이다. 특권의식이 몸에 밴 초현실적 집단의 구성원이기에 가능한 뻔뻔함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경제가 파탄 나고 자살하는 사람이 수두룩한 현실에서 국정감사를 구실로 밤늦은 시간 그림 보겠다며 떼로 몰려가 법까지 위반하며 온갖 특혜(호사)를 누리는 국회의원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모처럼 손잡고 하나 된 여야의원들의 훈훈한(?) 사례로 봐야 하나. 결국 우리가 잘 뽑는 수밖에 없다. 방송은 90분 일정 중 관람만 50분, 나머지 40분은 환담회를 가졌다고 전했다. 마스크를 벗은 채 우리의 피 같은 세금으로 제공된 음식을 야금야금 씹으며 그들만의 즐거운 밤을 보내는 동안, 그리고 그들이 그림을 보며 희희낙락하는 그 시간 자영업자들은 아무도 오지 않는 가게를 닫으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국민들도 이를 악문 채 비극적인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1-11-02 09:46:19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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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과열된 미술시장

비엔날레가 제 역할을 못한 채 그저 그런 지방자치단체 홍보용 기획전 정도로 추락한 반면, 미술시장은 갈수록 팽창하고 있다. 올 상반기 경매 낙찰총액은 지난해 전체를 넘어섰고, 서울옥션과 K옥션 등 주요 미술경매의 낙찰률도 90%대를 웃돈다. 그림을 팔고 사는 미술품 시장인 아트페어 역시 한층 달아올랐다. 지난 3월 개최된 화랑미술제에는 5만여 명이 방문해 예년의 두 배가 넘는 72억 원어치의 작품을 사갔다. 두 달 뒤 열린 아트부산도 8만 명이 관람해 350억 원의 매출 신기록을 세웠다. 정점을 찍은 건 지난 13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홀에서 진행된 국내 최대 미술장터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SEOUL 2021, 이하 키아프)다. 첫날 VVIP 오픈에서만 전체 매출의 약 절반인 350억 원의 미술품을 팔아치우더니 마지막 날까지 총 650억 원의 거래를 성사시켜 2019년 매출 310억 원을 가볍게 갈아치웠다. 관람객도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개막 첫째 날부터 이틀간을 VVIP와 VIP만 입장할 수 있도록 제한했음에도 행사장은 북새통을 이뤘다. 주말이 낀 16일과 17일엔 100미터가 넘는 줄을 서야 간신히 입장할 수 있었으며, 한때 홀 내부 체류인원 상한선인 3063명을 넘어 입구를 닫아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주최 측에 따르면 첫날 5000여 명을 포함해 행사기간 5일 동안 약 9만여 명이 방문한 것으로 집계됐다. 2019년 대비 7% 이상 증가한 수치다. 키아프가 최다 판매액과 관람객을 기록하자 일각에선 아트바젤홍콩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내년부터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영국 프리즈와 5년간 공동개최하기로 결정하면서 홍콩을 대체할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으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가 아시아 미술시장의 유통 허브로 도약한다는 측면에선 딱히 부정적일 이유가 없다. 하지만 미술품이 돈이 된다고 하니 너도나도 일단 사고 보자는 식의 양상은 상당히 우려스럽다. 예술품이 부의 차별화를 위한 도구로 자리 잡은 양태도 그렇지만 암호 화폐와 주식 대체용이라는 인식 앞에선 걱정마저 든다. 미술이 자본의 자기 팽창을 실현해 주는 고급 콘텐츠로 변질된 채 돈에 굶주린 이들의 투기판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윤추구에 부응하는 욕망에 의해 예술품이 재단 및 계량되는 현상이나 '장식'에 준하는 작품들을 미술의 전부로 착각하는 예술향유의 편식도 근심되는 부분이다. 특히 잘 팔리는 작가 혹은 그림이 예술가의 재능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고, 예술품에 대한 미적 기준조차 시장이 제시하는 폐해는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현재와 같은 분위기가 과거에도 있었다는 점이다. 바로 2007년이다. 당시에도 취향에 호소하는 얄팍한 '상품'이 '값'과 '가치'의 차이 구분 없이 '작품'인 양 둔갑해 날개 돋친 듯 팔렸고, 마구잡이식 구입과 사재기까지 벌어지는 현실을 염려하는 목소리에 미술계는 단군 이래 이런 호황은 없다는 말로 덮으며 자축했다. 그러나 몇 년 만에 시장은 쪼그라들었다. 많은 이들이 적금 깨고 집 팔아 그림을 구입했지만 결국 작품을 매개로 현재의 선택이 미래의 이윤을 이상적으로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 믿게 하는 최면의 공간에서 대부분 불나방처럼 산화됐다. 인테리어 업자처럼 복제품을 찍어내듯 한 작가들 역시 소비의 대상으로 남은 채 스스로 생명력을 갉아먹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미술품 유통업자들 또한 다시 어둡고 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야 했다. 과열된 지금의 미술시장은 그때와 여러 면에서 닮았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1-10-19 09:32:30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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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예술의 가치 확산을 위한 과제

우리나라 예술가들이 예술 활동을 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난관은 낮은 수입에 따른 생활의 어려움이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제 한 몸 거두지 못할 만큼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프리랜서라는 활동 형태로 인해 일반 금융서비스로의 접근이 쉽지 않으며, 주거 불안은 자유로운 예술 활동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예술인들이 겪는 민생고는 미적 신념을 무너뜨리고 심적 붕괴를 가져온다. 예술의 자율성을 포기한 채 부유층의 취미와 기호에 읍소하는 양태에 젖게 될뿐더러 가장 치명적 권력인 자본주의에 무릎 꿇음으로써 예술의 장식성·허위성을 찬양하고 만다. 국내에서 실력 있다는 예술인들이 점차 예술계를 떠나거나 작업 내용이 변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나라엔 예술가들의 생존과 예술 활동의 지속성에 도움을 주고 권익보호를 위한 기관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바로 예술인 복지에 대한 체계적·종합적 지원을 목적으로 지난 2012년 설립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다. 예술인복지법을 뿌리로 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재단은 건강한 예술 환경 조성 차원에서 '예술인생활안정자금(융자) 사업'을 비롯한 '창작준비금지원 사업'을 시행하는 등 예술가들의 경제적·직업적 어려움 개선에 일익을 담당해 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19' 피해 예술인을 위한 특별융자를 운영해 경제적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예술가들에게 단비와 같은 역할을 했으며, 전국의 12개 지역재단과 협력한 '예술인파견지원 사업-예술로(路)' 등의 프로젝트로 전공 관련 일자리 창출, 대민 교류, 예술의 사회적 기여에 힘을 보태고 있다. 재단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예술인의 직업적 특수성을 반영한 기준을 새롭게 적용한 금융지원방안과 사회보장정책을 고민하고 있다. 행정과 예술의 상이한 틈을 메울 인력 및 기관의 전문화도 꾀하는 중이다. 특히 예술인들의 사회적 위상과 정체성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 개발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계획만큼 쉬운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예술인의 직업적 특성을 반영한 기준을 새롭게 적용하려면 '특수성'에 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하지만, 당장 기획재정부나 행정안전부를 설득시키는 것부터 녹록지 않다. 시행 중인 예술활동증명, 예술인 사회보험료 지원, 예술인 고용보험, 예술인패스 등에서도 개선점이 없는 건 아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체력이 점차 고갈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갈수록 늘어나는 예산과 상당한 양의 업무 대비 재단 상근 인원이라야 고작 40여명을 웃돈다. 100만명 정도로 추정되는 예술인을 살피기엔 터무니없이 적은 수이기도 하지만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일부 지방자치단체 광역문화재단과 비교해도 최대 1/5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야말로 '복지'가 필요하다는 '웃픈'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예술계 및 관계 기관 내부의 논의나 제도정비·인원 충원만으론 예술가들이 부르주아 품에서의 성장에 거리를 둔 미적 태도를 유지하기엔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동시대 담론과 예술 향유를 제공하는 예술가들에 대한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얻어야 한다. 이는 예술가들의 생존과 예술의 가치 확산에 있어 우선돼야 할 과제다. 물론 이 과제를 풀기 위해 정부와 예술계는 예술이란 공공의 삶과 긴밀히 연관돼 있으며 예술가들의 미학적 성취와 실험의 성과는 결국 사회로 돌아온다는 믿음을 국민에게 심어줘야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이 미적 민주화를 넘어 삶의 민주화를 앞당기는 것임을 설명해야 한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1-10-05 09:58:09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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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무용론 속 줄줄이 개막하는 ‘비엔날레’

2년마다 열리는 시각예술축제인 비엔날레가 줄줄이 개막한다. 지난 1일 문을 연 전남수묵비엔날레를 시작으로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대구사진비엔날레, 강원국제트리엔날레(3년 주기)가 9~10월에 걸쳐 연이어 막을 올린다. 부산 바다미술제(10.16~11.14)까지 포함하면 9개에 달한다. 원래는 지난해 개최돼야 했으나 코로나19로 순연된 제2회 전남수묵비엔날레는 수묵화의 본고장 목포와 진도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10월 31일까지 '오채찬란 모노크롬-생동하는 수묵의 새로운 출발'이라는 주제로 남도전통미술관을 비롯해 목포문화예술회관, 소치기념관 등에서 15개국 작가 200여명의 작품을 선보인다. 제11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도 8일(~11.21)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문을 연다. 역시 코로나19로 연기된 끝에 비로소 발을 뗀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는 '도피주의'다. 현실의 제약으로부터 탈출하려는 개인의 욕망을 예술과 대중문화의 상상력으로 연결해 살펴보고 폭넓은 사회적 연대를 제안하는 작품을 소개한다. 주최 측의 설명에 따르면 도피주의를 비평적 도구로 삼아 코로나 팬데믹의 장기화와 함께 수면 위로 떠오른 인종주의, 젠더, 계급, 정체성, 이주, 경제 위기, 환경 문제 등 인류 공통의 사회적 쟁점을 다룬다. 작가 41명(팀)의 작품 58점이 소개된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개막 이틀 뒤엔 사진전문 행사인 제8회 대구사진비엔날레가 1년 미뤄진 끝에 대구문화예술회관을 중심으로 한 시내 전역을 무대로 11월 2일까지 이어진다. 주제는 '누락된 의제-37.5 아래'이다. 37.5는 코로나19 진단 발열 기준 체온을 뜻하며, '누락된 의제'는 인류를 위협하는 기후변화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빈부격차, 차별 등의 문제들을 의미한다. 32개국 351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이밖에도 9월과 10월은 '비엔날레의 달'이라고 할 만큼 여러 지자체에서 다양한 형식과 주제를 내건 비엔날레가 일제히 닻을 올린다. 여기엔 청주공예비엔날레와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강원국제트리엔날레도 포함된다. 이중 강원국제비엔날레의 후신이자 3년 단위로 순회하는 국내 최초의 유목형 예술제인 강원국제트리엔날레(9.30~11.7)는 '따스한 재생'을 키워드로 홍천군 결운리 옛 군부대 탄약정비공장과 폐교한 와동분교, 홍천중앙시장, 홍천미술관 일원에서 펼쳐진다. 코로나19 속 인간 사회에 드리운 환경 위기와 재난,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서 재생의 기대와 회복의 전망을 살펴보자는 게 취지다. 37개국 작가 100팀이 출품한다. 올해 비엔날레들을 관통하는 분모는 대폭 확장된 온라인 전시와 더불어 자연, 생태, 빈곤, 권력, 계급, 인종, 차별, 소통 등 동시대 인류 앞에 놓인 현안에 있다. 대체로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질병의 확산과 그로 인한 위기 속에서 그동안 무관심했거나 간과해온 사안에 대한 우리의 과오를 반성하고 나아갈 방향을 담고 있다. 다만 위 현안들은 이미 여타 전시를 통해 숱하게 거론해온 이슈들이라 그리 새롭지는 않다. 결국, 당대 인류 앞에 놓인 모든 문제의 배후인 자본주의라는 망령의 심장을 날카롭게 도려낼 수 있는 혁신적 칼날이 되어야 하지만 비엔날레 자체가 권력이자 자본주의적이라는 사실에서 기존 한계성과 상투성, 추상성을 예단케 한다. 주제만 거창할 뿐 혈세만 낭비한다는 '비엔날레 무용론'을 피할 수 없는 또 한 번의 '의무방어전'으로 남을지, 아니면 담론의 생성 및 사회 속 실천 방안에 대한 실질적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비엔날레의 역할과 가치를 증명할지 두고 볼 일이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1-09-07 09:53:51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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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장소가 아닌 마음에 남는 '공공미술'

동시대 공공미술은 미술인 개인의 예술적 성과를 진열하지 않는다. 예술가는 단순한 오브제를 생산하는 이가 아니라 공공의 주체인 주민들과 함께 시대의 이슈를 공론화하는 발굴자이자 해석자로 위치한다. 시민들 또한 관객이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자가 된다. 공공미술의 목표도 환경미화를 넘어 새로운 모더니티 구축에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공공미술이란 대개 전국 공공장소와 건축물 앞에 우후죽순 들어선 조형물을 가리킨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공미술 1단계인 '건축 속의 미술'과 2단계인 '공공장소 속의 미술'이다. 가장 낮은 단계의 공공미술이다.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문화체육관광부와 228개 지방자치단체가 동시 추진한 공공미술 프로젝트인 '우리 동네 미술'은 낡고 낡은 초기 공공미술 개념을 끌어와 재탕한 프로젝트이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 당시 예술뉴딜을 베꼈다. 예술가들의 생계부양 차원에서 2008년 시작된 '마을미술프로젝트'(이 또한 예술뉴딜의 일환으로 출발했다)처럼 '우리 동네 미술' 역시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술인들을 지원하고자 마련됐다. 예술가 일자리 제공을 통한 지속적인 창작 활동과 주민 문화향유 공간 조성이라는 명분이 붙었다. 결과는 좋지 못했다. 약 1년 전, '우리 동네 미술'은 시작과 동시에 지역과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쇳덩어리와 돌덩어리들을 공공미술이라는 이름 아래 강과 바다, 도심 곳곳에 뿌려댔다. 예술성을 헤아리기 힘든 국적 불명의 캐릭터가 벽을 채웠다. 공공영역의 주인인 주민들은 배제되기 일쑤였으며 기껏해야 단순하고 어설픈 기능적 개입에 머물렀다. 시간이 흘러 지난 6월경 대부분의 지자체가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약 1000억원이라는 역대 최대 예산을 투입한 '우리 동네 미술'은 지역 내 갈등과 미학적 평가가 불가능한 작품의 범람, 관리 부실의 우려를 낳으며 혈세만 낭비한 졸속 사례로 기록될 운명에 놓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의미 있는 프로젝트가 아예 없진 않았다는 것이다. 도시화로 사라져가는 '송도어촌계'와 '먼우금' 사람들의 삶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며 장소가 아닌 기억과 마음에 남는 공공미술을 추구한 연수문화재단을 비롯해 소외감과 사회적 고립을 겪는 장애인, 노인들과의 소통에 주목한 안양문화재단의 공공미술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때는 금지곡으로 꼽혔던 '해녀가'를 재해석한 음악다큐와 '우도' 사람들의 모습을 인터뷰 프로젝트 등으로 담은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우도 9경', 그리고 근대가옥을 주민들의 '인문학당'으로 탈바꿈시킨 광주광역시 동구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도 범람한 조형물 위주의 '우리 동네 미술' 속 변별력 있는 작업에 속한다. 이들 프로젝트들은 '보다 나은 공동체적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자문을 바탕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장소와 사람, 고유한 지역성에 초점을 두었다는 점에서 '장식'에 치중해온 기존 공공미술과 차이가 있다. 주민들 스스로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는 것도 시각적·물리적 맥락만을 좇은 여타 프로젝트 대비 구분되는 요소이다. 무엇보다 관·예·민이 힘을 모아 그곳에서 채집한 지역 내 무형의 자산을 기록함으로써 지역의 서사와 장소를 되새기며, 공간의 주체로 살아온 이들의 삶을 새롭게 조명하려 했다는 사실은 동시대 공공미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가치를 알려주는 조타로 작동했다. 비록 군계일학이지만 이와 같은 몇몇 프로젝트가 논란의 '우리 동네 미술'을 살렸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1-08-24 09:32:24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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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시를 위한 놀이터

20개의 콘트리트관을 쌓아 올린 작품 '우리가 이미지를 내쉴 때'로 후기자본주의사회가 만든 난민 위기를 다룬 쿠르드족 출신의 작가 히와 케이. 그리고 한 원주민 공동체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전통 및 자연생태의 소멸을 지적한 캄보디아의 예술가 크베이 삼낭의 작품 '영혼의 길'. 실제 난민으로, 권력을 가진 소수에 의해 희생당하는 정치적·사회적 현실을 묘사한 히와 케이의 작품과 무분별한 개발로 오염되거나 파괴되는 자연환경을 표현한 크베이 삼낭의 작품은 지난 2017년 '카셀도큐멘타'에 출품해 큰 주목을 받았다. 예술은 세계를 탐구한 결과이며, 사회 속 실천임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반향도 컸다. 최근 두 작가의 작품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바로 미술관 개관 10주년을 맞아 대구미술관이 새롭게 기획한 주제 발굴전 '시를 위한 놀이터'이다. 한국현대미술의 발상지인 대구 지역 미술사를 정리하는 한편, 예술의 역할과 가치 확산에도 관심을 기울여온 최은주 관장의 의지가 반영된 연례 특별전 '대구포럼'의 일환이다. '대구포럼' 서막을 연 '시를 위한 놀이터'는 "시의 외피를 한 예술"(기획 이정민 학예사)이다. 때문에 전시는 시적 문법을 따른다. '놀이터'라는 명사 아래 참여 작가 8명(이강소, 비아 레반도프스키, 오쿠보 에이지 외)의 창의적 과정이 흡사 서정시처럼 전개된다. 그러나 작품 각각의 면면은 묵직하다. 대표적인 작업이 히와 케이와 크베이 삼낭의 영상이다. 이번 전시에 히와 케이는 작품 '아버지의 컬러시대'(2012)와 '프레이미지/모국어만큼이나 눈이 먼'(2017)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선보였다. 카셀도큐멘타에서 화제를 모은 크베이 삼낭의 작품 '영혼의 길'(2016~2017)도 다시 만날 수 있다. 이중 히와 케이의 작품 '모국어만큼이나 눈이 먼'은 고향을 떠나 이탈리아로 향해 걸어가는 자신의 여정을 담은 작업이다. 화면에는 작은 거울 여러 개를 단 긴 막대기를 콧등에 얹은 채 균형을 유지하며 걷는 작가의 모습이 등장하고 이를 통해 난민 문제의 실질적 배후인 자국 이기주의와 인간 존재에 관해 말한다. 위태로운 작가의 걸음과 가라앉은 작가의 내레이션만으로도 난민으로서의 경험이 전이되고도 남는다. 크베이 삼낭의 작품 '영혼의 길'은 캄보디아 아랑 계곡에 거주하는 원주민 공동체 'Chong(총)'을 모태로 한다. 작가는 협업자들과 16개월 동안 원주민들과 생활하며 지역적 습관을 배웠고 강한 유대감을 형성했다. 그리곤 자연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며 재생 불가능한 처지에 놓인 자연생태와 전통의 소멸에 대해 언급한 작품 '영혼의 길'을 만들었다. '시를 위한 놀이터'에는 소개되지 않지만 토템에서 영감을 받은 11개의 동물 탈도 동일한 선상에서 구현된 설치이다. 작가가 '영혼의 길'에서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개발에 의해 사라지는 삼림과 밀매의 대상이 되는 동물, 급속한 현대화로 인한 공동체의 붕괴 및 무너지는 자연 서식지에 대한 우려이다. 캄보디아를 무대로 하고 있으나 자본주의 폭력 앞에 증발하는 전지구적 차원에서의 자연환경 문제와 국가를 불문하고 강제로 이주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시선이 원시적 풍경 속에서 기이하고도 세밀한 신체 언어로 표현되어 있다. 돈의 노예화에 종속된 채 미술조차 기획화 되고 있는 작금의 미술구조에서 '시를 위한 놀이터'는 예술의 가치를 포함해 현재의 시간 안에 존재하는 '참된 것'은 무엇인지 묻는다. 히와 케이와 크베이 삼낭의 작품은 자본주의의 욕망이 지배하는 체제에서의 삶, 나아가 어떤 게 예술의 역할인지 질문한다. 전시는 9월 26일까지.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1-08-10 09:26:22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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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훈민정음과 'NFT'

일제강점기에 사재를 털어 민족문화유산을 지킨 간송 전형필(1906~1962). 그의 호를 딴 간송미술관은 1938년 세워진 '보화각'이 전신이다. 1971년부터 간송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꿔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국 고미술 연구와 체계적 보존을 위해 설립된 사립미술관이다. 간송미술관의 위상과 가치는 값을 매길 수 없는 소장품에서 나온다. 세종 때 편찬한 '동국정운'을 비롯한 국보와 현존 최고 목판본 거문고 악보인 보물 '금보', 그리고 조선말기의 화원인 장승업 외에도 정선, 안평대군, 심사정, 김정희 등의 서화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김홍도, 김득신과 함께 조선 3대 풍속화가로 꼽히는 혜원 신윤복의 그림 역시 대부분 갖고 있다. '미인도'가 대표적이다. 간송미술관은 한국 회화사에 한 획을 긋는 작품들과 전적류, 도자류가 망라된 소장품으로 연구자들에겐 일종의 성지처럼 취급됐다. 처음엔 신윤복 관련 텔레비전 드라마가 전시와 겹쳐 대중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으나 전시가 열릴 때마다 수많은 관람객을 끌어들일 수 있었던 이유도 결국은 한민족의 얼이 담긴 소장품이었다. 그런데 간송미술관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소장품들로 인해 재정적 어려움을 겪어 왔다. 재정난이 알려진 건 지난해 5월 소장품인 보물 '금동여래입상'과 '금동보살입상'을 경매에 출품하면서이다. 당시 각각 15억원에 내놓아 안타까움과 충격을 줬다. 최근엔 한글 창제 원리가 기록된 '훈민정음' 해례본을 'NFT(Non Fungible Token, 대체불가토큰)'로 판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한정판 100개, 각 1억원) 국보나 보물을 NFT로 제작하는 첫 사례다.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이지만 문화재 지정 이전부터 사유재산이므로 NFT 발행에 법적인 문제는 없어 보인다. 저작권에서도 자유롭다. 허나 미술관이 소유하고 있다 해도 국가 상징 문화재를 상업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선 문화재 대중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훈민정음'을 디지털로 제작해 '가치를 계승한다'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문화재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이 많다. 사실 문화재를 디지털로 만들어 보존하는 것과 디지털 이미지로 돈을 벌겠다는 건 다른 개념이다. 단지 1억짜리 데이터, 가상의 자산일 뿐인 NFT가 간송미술관의 재정난을 해결하는 데 있어 과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불명확하다. '훈민정음'은 실물이 존재하므로 유일성과 원본성을 완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100개나 되어 희소성도 떨어진다. 한국의 사립미술관들은 재정의 어려움을 사재 출연으로 메우면서도 비영리 공공기관으로 등록해 영리행위를 배척한다. 오래 전 전국의 농지와 종로 상권에서 나온 자금으로 귀한 문화재를 수집했던 간송도 그랬다. 해방 후 농지개혁으로 토지의 대부분을 상실하고 부채 청산을 위해 생가마저 처분하면서까지 문화유산을 보호하려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수입과 지출의 불균형이 심해졌고 보물을 경매에 올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번 NFT 발행 또한 여러 수익원을 고민한 끝에 내린 자구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NFT는 투기 성격이 짙은데다 불안정한 측면이 크기에 신중한 게 좋다. 공공재를 다루는 일련의 방식에 관한 국민들의 정서적 괴리도 발행 결정에 고려해야 할 요소이다. 중요한 건 소유욕과 비례한 환금성만 회자되는 무대에 우리의 자산인 국보와 보물이 자주 등장하는 상황을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열악한 재정은 사립미술관 전체의 문제라는 사실에서 사회적·문화적 기여도에 맞는 지원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참에 사립미술관 관련 제도에 관한 공론의 장을 마련하면 어떨까 싶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1-07-27 09:33:26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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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이건희 기증관' 논란 자초한 문체부

지난 7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서울 송현동과 용산 부지를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관(이하 이건희 기증관)' 건립 후보지로 압축했다고 밝혔다. 기증관은 미술관과 박물관을 하나로 통합한 별도의 기관형태로 추진되며 오는 2027년경 완공을 목표로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 송현동과 용산을 이건희 기증관 후보지로 낙점한 배경으로 문체부는 문화예술향유 확대를 위한 대국민 접근성, 전문 인력과 기반 시설을 갖춘 인근 국립현대미술관 및 국립중앙박물관과의 연계성 등을 꼽았다. 연관 분야 간 교류와 협력이 가능하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하지만 발표와 동시에 열띤 유치경쟁을 벌여온 40여개의 지자체들은 일제히 반발했다. 일방적 결정에 따른 불투명성, 불공정성을 지적하며 지역 균형발전과 문화 분권을 역행하는 처사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건희 컬렉션을 통한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바랬던 미술계도 발끈했다. 12일, 670여명의 미술계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는 '국립근대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은 정부의 이건희 기증관 건립 계획 철회와 공개토론회를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이들은 "정체불명의 통합전시관 건립을 철회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촉구했다. 이건희 기증관을 둘러싼 지자체들과 미술계의 성토는 국립이 지닌 무게를 헤아리지 못한 서툰 행정에다 토론회 한 번 없이 섣부르게 미술관 신설을 밝힌 문체부가 원인을 제공했다. 이건희 유족 측의 4월 기증 이후 3개월 만에 졸속으로 미술관 신설 계획을 내놓은 정부의 빈약한 논리 또한 문제의 발단이 됐다. 일례로 문체부가 이건희 기증관 후보지 선정에 있어 중요하게 여긴 '기증자의 철학'은 견강부회(牽强附會)에 가깝다. 미술계는 하나의 기관에 모든 기증품을 모으는 것은 오히려 장르별, 시대별, 지역별 분류 원칙과 기관별 특성에 따라 국공립박물관과 미술관에 기증한 기증자의 뜻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하나 주요 잣대로 삼은 관람객 접근성도 마찬가지이다. 문체부는 국민 문화 향유 기회 확대를 위해 쉽게 방문할 수 있는 서울에 기증관이 건립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사실 물리적 거리와 문화예술향유는 큰 관계가 없다. 설사 오지에 세우더라도 관람객을 위한 전시 개발, 제반 시설 및 콘텐츠의 질에 따라 향유 기회는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으며, 실제 세계 많은 미술관들이 수도권이 아닌 곳에 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이 위치한 서울이야말로 이건희 기증관과의 연구·보존 전문 인력 간 협력이 원활할 수 있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없다. 대한민국은 어딜 가도 반나절 권인데다, 그런 논리라면 지역은 영원히 박물관·미술관 유치가 불가능하다. 이처럼 이건희 기증관 건립부지 선정과 관련한 문체부의 논리는 허점투성이다. '빌바오 효과'를 언급하며 상대적으로 인프라가 풍부한 현재의 서울과 쇠락한 공업도시였던 1980년대 빌바오를 동일 선상에 놓는가 하면, 전권을 쥔 '국가 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를 통해 내린 결론이라더니 현직 정부산하기관장과 행정부 요직에 있던 이들이 다수를 차지해 미술계로부터 향후 모든 일정과 회의를 공개적으로 개최할 것을 주문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 모든 혼란은 대통령이 한마디 했다고 부랴부랴 테스크 포스(Task Force)까지 꾸리며 호들갑스럽게 일을 벌인 문체부가 자초했다. 지역은 물론 미술계에도 환영받지 못한 채 결국 갈등과 분열, 논란만 유발한 책임도 문체부에 있다. 특히 언제부터인가 알량한 지식을 바탕으로 미술관·박물관 전문가인 척하는 황희 장관도 그 책임에서 예외는 아니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1-07-13 09:31:35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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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아트테크', 과연 돈이 될까

최근 미술품을 구입하고 매매차익을 노리는 투자방식인 '아트테크(Art-tech)'가 주목을 받고 있다. 미술품이 재테크 수단으로 부각되면서 미술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이다. 너도나도 미술품 투자에 관심을 기울이자 투자 노하우(?)를 가르친다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주식과 달리 미술품은 단기 투자로는 수익을 내기 어렵다. 유명 근대작가 작품과 극소수 생존 작가 작품을 제외하곤 미술품은 환금성도 거의 없다. 희소성이 있는 미술품의 경우 잘만 고르면 수년 후 작품 가치 상승으로 차익을 얻는 재미가 있다지만 '잘 고른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젊은 작가들은 열악한 창작환경과 민생고 등의 이유로 작업을 접는 경우가 많아 투자의 의미가 희석되기 일쑤이고, 중견 작가 이상이라 해도 소위 뜨는 작가는 1%에 불과하다. 그가 인지도를 얻기까지 10년 이상의 긴 시간을 지켜봐야 할뿐더러 시장의 가치 외에도 예술성과 미학적 가치도 고려된다. 때문에 투자자는 작품을 보는 안목부터 필요하다. 작품가격 형성에 도움이 되는 미술사적 지식은 물론 제작에 대한 이해, 미술 생태와 시장흐름 등도 알아야 한다. 작전세력을 피하는 것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운도 따라야 한다. 이러한 요소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파악하지 않는 한 미술품 투자로 큰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내려놓는 게 현명하다. 2007년에도 미술시장 관계자들은 단군 이래 최대 활황이라고 했다. 국적불명의 팝아트와 극사실주의 경향의 그림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고 초기 흐름을 주도한 일부는 떼돈을 벌었다. 하지만 3년도 못 갔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덮치자 나중에 미술품투자에 발을 담근 대부분은 본전도 못 건졌다. 심지어 일정 기간 내 구입한 미술품을 재매입해준다는 말을 믿고 투자했다가 폐업한 뒤 종적을 감춘 일부 유통업자들로 인해 피해를 본 이들도 수두룩했다. 유통업자들은 걸핏하면 앤디 워홀과 유에뮌쥔, 김창열을 예로 들며 100배, 1000배의 수익률을 말하지만, 100만 명 중 한 명, 어쩌다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사례에 불과하다. 분할 소유권에 소액투자가 가능한 공동구매 또한 결국 작가 명망에 기초한 돈 놓고 돈 먹기요, 많이 넣은 사람이 많은 이익을 취하는 구조이다. 작품임대 수익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 미술사적 의미가 있는 작품이 아니라면 기대할 수 없다. 요즘 뜨고 있는 NFT(Non Fungible Token·대체불가토큰) 역시 저작권, 표절, 위작, 중복판매 및 개정판에 따른 갖가지 문제와 규제·감독의 허술함 등에서 불안정한 요소가 매우 많다. 가상의 시장은 새로운 유통 대륙을 갈망해온 업자들에게나 환영할만한 현상이지, 사실상 코인, 미술품 할 것 없이 소위 돈이 된다는 투자정보가 나한테까지 왔을 땐 이미 늦은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내가 구입한 작품이 향후 폭등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점에서 미술품 투자는 일종의 도박이다. 그럼에도 아트테크를 최고의 재테크 수단으로 강조하는 이들은 대개 그 일이 생업인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에게 대중의 관심이란 더 큰 물고기를 잡기 위한 미끼일 뿐이다. 미술품은 그냥 작가들의 창작 동기부여 차원 혹은 감상용으로 형편에 맞게 구입하거나, 근처 미술관 혹은 갤러리에 들러 마음의 안식과 행복을 얻는 선에서 즐기는 것이 옳다. 자산이 많아 손해를 봐도 삶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포트폴리오의 하나로 접근하면 모를까,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끌어넣는 '영끌' 투자는 바람직하지 않다. 미술 시장도 돈 있는 자들만이 돈을 버는 곳이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1-06-29 09:32:44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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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일본 신사 '도리이' 닮은 31억짜리 상징조형물

한국엔 보편적 대중 정서와 미적 가치가 반영된 소통 중심의 '공공미술'과는 거리가 먼 조형물이 넘쳐난다. 공공의 주인인 시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한 지자체장들의 전시행정으로 '혈세 낭비'라고 비판받는 조형물 또한 가득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공중화장실 겸 조형물인 경북 군위군의 7억 원짜리 '대추화장실'이다. 세금 15억 원이 쓰인 강원도 고성군의 '항아리 조형물 겸 건축물'(일명 진격의 농부)도 '예산 낭비'의 전형으로 꼽힌다. 이밖에도 밥도 못 짓는 괴산군의 5억 원짜리 '대형 무쇠솥'이나 3억 원이 들어간 청양군의 '황금 복 거북', 5억 2천만 원을 들여 조성한 보령시의 '갈매기 형상 조형물'도 돈만 쓰고 효율성을 상실한 조형물로 언급된다. 하나같이 시민 공감은커녕 애물단지로 전락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럼에도 지자체들의 조형물 사랑은 남다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여러 지자체들은 새로운 조형물을 세우고 있거나 세울 계획에 있다. 강화도도 그 중 하나다. 인천광역시 강화군은 지난 3월 시·도 경계인 인천 강화대교 입구에 강화군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설치한다고 밝혔다. 오는 11월 준공을 목표로 강화읍 갑곳리 산 6-3일원 48국도변에 세워지는 이 조형물은 길이 42미터, 높이 11.5미터의 규모를 자랑한다. 지난 5월 기공식을 가졌다. 강화군의 재정자립도는 최근 5년간 10%대를 벗어난 적이 없다. 인천광역시 기초자치단체 8구, 2군을 통틀어 하위 2~3위를 다툰다. 이런 현실을 간과한 채 세금 31억 원이 투입되는 조형물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주민들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세 번에 걸쳐 주민의견을 수렴했다고는 하지만 예산규모와 재정현황, 당위성을 고려할 때 부족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실제 지역 내 일부 언론과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지난 10일 '강화대교 관문 상징조형물 포럼'을 개최하고 지역사회와의 충분한 논의와 동의 없이 관문 조형물을 건립하는 것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이들은 단체장들이 임기 중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과 근거 없는 관광 진흥 낙관론이 대형 조형물 건립의 발단임을 지적하며 늦었지만 군민과 지역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해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왜색(倭色) 짙은 조형물 디자인은 논란의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강화군은 강화산성 동문을 모티브로 처마와 성벽을 재해석한 조형물이라고 하지만, 일각에선 일본 신사(神社) 입구에 설치되는 '도리이'(鳥居)와 닮았다고 주장이 나온다. '도리이'는 신사 앞에 세우는 전통적인 문으로, 신이 머무르는 영역과 인간이 사는 영역을 구분 짓는 경계 역할을 한다. 지역 내 커뮤니티에선 '돈 낭비'라며 조형물 대신 차라리 주말 교통량을 분산시킬 수 있는 다리 하나를 더 놓으라는 주문을 내놓고 있다. 주민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살피라는 요청이다. 상징 조형물은 도시 이미지 개선과 지역성을 나타내자는 취지로 만든다. 그러나 공동체에 의견을 묻고 협업하는 구조가 누락돼 대부분 공공의 희생을 강요하는 흉물에 그친다. 문제는 사용자 관점을 우선하는 정책, 주민의견을 보다 폭넓고 밀도 있게 경청하려는 지자체 관계자들의 의식과 태도 변화가 없는 한 대형 조형물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또한 공무원들의 행정 중심적 사고와 낮은 미의식, 그릇된 정책을 바로잡을 수 있는 시민 감시 시스템이 부재한 상황에선 통제도 요원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1-06-15 10:40:54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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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눈 뜨고 보기 힘든 ‘이건희 미술관’ 유치 경쟁

지자체들의 '이건희 미술관' 유치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삼성가(家)와의 온갖 연고를 내세워 유치 경쟁에 뛰어든 지방자치단체만 15곳이 넘고, 이들이 내세우는 미술관 유치의 당위성 역시 가지각색이다. 경주시는 민족 예술(?)의 발생지를 유치의 구실로 삼고 있으며, 경기 용인시와 평택시는 삼성전자 사업장 소재지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경남 의령군은 고 이병철 회장의 출생지라는 이유를, 경남 진주시와 전남 여수시는 고 이병철 회장이 유년시절을 보냈다는 것과 하트 모양의 섬을 매입했다는 것을 유치의 근거로 하고 있다. 다들 말 같지도 않은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 기증자의 취지와 목적을 고민하거나 기증품의 가치, 학술연구계획 등을 꼼꼼히 따진 결과로 유치의 합당함을 인정받을 만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합리적 이해나 공감도 불가능하다. 문화적, 역사적, 미술사적 맥락 내에서 재구성 되어야 할 기증품임에도 그들에겐 단지 어떻게 하면 임기 중 뭐라도 하나 그럴싸한 성과로 포장할 수 있을까 싶은 정치적 목적만 부유하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다. '이건희 미술관'을 서로 차지하려 눈이 벌건 지자체들의 양태에 한몫한 건 정부의 단순함과 안일함이다. 자생적 혹은 자발적 논의로 비롯된 게 아닌 "별도의 전시실이나 특별관을 설치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라"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조선 임금 어명 받들 듯 서둘러 '이건희 미술관' 신설 계획을 내놓은 정부의 치밀하지 못한 태도가 문제의 발단인 셈이다. 사안을 쉽게 바라본 정부의 사고도 한심하지만 지역균형발전과 문화 분권을 볼모로 한 업적 과시, 홍보 수단으로서의 미술관 건립이라는 뻔한 계산이 깔린 지자체들의 모습 또한 목불인견이다. 그들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이 기증한 2만 3천여 점 미술품과 문화재는 정치꾼들의 성과지표로 대체되기에 딱 좋은 아이템이라는 것을 국민들이 모르는 줄 안다. 사실 지자체의 다수는 삼성가에서 기증한 국보와 보물급 작품을 품을 수준이 안된다. 지자체장들은 자기 지역에 있는 미술관 천장에서 물이 새고 소장품을 전문적으로 연구·관리하는 부서조차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혹은 알면서도 무신경하다.) 연간 소장품 구입예산을 단 1원도 주지 않는 공립미술관이 있고, 학예사라야 아무리 꼽아도 손가락이 남아도는 게 현실이다. 그뿐이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갖다 줘도 당장 배부터 갈라 먹는 게 그들이요, 남루한 미의식을 자랑하듯 조악한 조형물 앞에서 사진이나 찍고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이 청주인지 충주인지도 몰라 방송에서 헛소리를 늘어놓는 게 엄연한 현주소다. 그럼에도 공짜라니 양잿물도 마실 기세다. 욕심 내지 말고 있는 것이라도 제대로 운영해라. 정치적 관점에서 벗어나 시민을 위한 정책을 제안하고 진정성 아래 기존의 것에 어떤 내용을 어떻게 담을 지부터 고민하는 게 순서다. 능력도 안되면서 과욕을 부리면 체하는 법이다. 덧붙여, 문화예술에 관한 전문성이라곤 거의 없는 문화체육관광부 황희 장관도 이참에 자중할 필요가 있다. 황 장관은 최근 '국민 접근성'을 이유로 미술관을 지방에 둘 경우 '빌바오 효과'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수도권 입지 발언으로 지자체 간 갈등을 부추겼다. 빌바오 효과는 엄밀히 말해 '구겐하임 효과(Guggenheim Effect)'와 무관하지 않고, 세계 유명미술관 중 지방, 아니 거의 오지라고 할 수 있는 곳에 자리 잡은 미술관은 셀 수 없이 많다. 얼마 전 미술관에 왜 수장고가 필요하냐고 따지듯 묻던 문체부 직원이나 장관이나 어쩜 그리 무지할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 홍경한(미술평론가·DMZ문화예술삼매경 예술감독)

2021-06-01 09:53:46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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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한국엔 없는 ‘국립근대미술관’

이탈리아의 우피치 미술관은 르네상스 회화 컬렉션에서부터 18세기 베네치아 미술에 이르는 작품들을 소장한 세계 최고의 국립미술관이다. 프랑스 오르세미술관 또한 미술사적 의미가 있는 소장품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근대미술관이다. 서양에 비해 주목도는 떨어지지만 일본 역시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을 위시해 현 단위에까지 자국 근대미술은 물론 근·현대 동서양을 아우르는 다양한 미술관을 갖고 있다. 이 중 1986년 파리 기차 역사를 개축해 만든 오르세미술관은 100개가량의 전시실에 인상주의 회화를 비롯해 조각, 판화, 가구, 사진에 이르기까지 프랑스가 자랑하는 19세기~20세기 초반의 예술콘텐츠를 집중 소장하고 있다. 1978년 미술관 개관 방침이 정해진 뒤 8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오늘의 모습으로 안착했으며, 프랑스대혁명의 결과물인 루브르박물관과 파리 5월 봉기의 산물인 퐁피두미술관과의 차별점을 모색하다 근대미술로 방향을 정하게 됐다. 문화예술 선진국들과는 달리 한국에는 아직 국립근대미술관이 없다. 건립계획은 간간이 있어 왔다. 1990년대 초 정부는 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을 용산 미8군 기지 일대로 옮긴 후 그 자리를 국립근대미술관으로 사용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2007년엔 연구용역을 통해 옛 서울역을 근대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키는 방안도 고민했었다. 그만큼 근대미술관의 필요성을 인지했다는 얘기이다. 미술계도 목소리를 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을 근대미술 상설관으로 사용하자고 제안하는가 하면, 기회 있을 때마다 근대미술관 설립을 요구하곤 했다. 도심에 제대로 된 국립미술관 하나 없다며 미술인들의 관심이 온통 현대미술관 서울관에 가 있던 2013년에도 일각에선 어미 없는 자식 꼴이라며 근대미술관부터 필요하다는 주문이 있었다. 하지만 끝내 독립기구로서의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은 실현되지 않았다. 1998년 개관한 덕수궁미술관이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체제로 운영되며 근대미술관 역할을 대신해온 게 전부이다. 2008년 덕수궁 석조전 서·동관을 합친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추진했으나 문화재위원회의 반대로 무산된 이후 지금까지 달리진 건 없다. 현재도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 조각가가 대한제국의 위상을 깎아내리기 위해 만든 물개상이 자리 잡은 이곳에서 주요 근대미술전이 열리고 있다. 잠잠했던 국립근대미술관 건립 논의가 최근 '이건희 컬렉션'을 계기로 재점화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100여명의 미술인들은 삼성가 기증 미술품 2000여점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미술품 1000여점, 그리고 각 기관에 흩어져 있는 근대미술품을 한곳에 모아 근대미술관을 건립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미술계의 동참을 확대한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위한 준비위 또는 발기인대회를 이달 개최할 예정이다. 미술인들의 바람처럼 국립근대미술관은 필요하다. 긴 세월 동란과 상대적 무관심 속에 잃어버린 유산을 복원하고, 역사성 정립 차원에서도 이젠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때이다. 다만 이번엔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제대로 하는 게 옳다.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분리한 채 고고(考古)와 당대(當代)로 차별된 역할을 부여한 일제 문화식민주의의 찌꺼기인 용어부터 명확히 하여 국립근대미술박물관으로 쓰고, 갖가지 연(緣)을 이유로 능력도 없는 이들을 관장으로 선임하는 고질병도 근절해야 한다. 행정 중심주의와 관료예속주의도 끊어야 하는 등, 건립 전후 간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도 할 게 많다. ■ 홍경한(미술평론가·DMZ문화예술삼매경 예술감독)

2021-05-04 17:43:14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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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꽁꽁 얼어붙은 국내외 미술계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가 지구촌 전체를 강타하면서 국내외 미술계도 꽁꽁 얼어붙었다. 세계적인 명성의 아트페어와 비엔날레 등이 줄줄이 연기되거나 취소되는가 하면, 예정된 행사들조차 개최 여부가 불투명한 형국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나라 상황부터 썩 좋지 않다. 지난 4일자 칼럼('코로나 직격탄, 끼니 걱정에 한숨짓는 예술계')에서 언급했다시피 국립현대미술관을 포함한 부산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전국 국공립미술관은 코로나 위기경보가 심각 단계로 상향된 지난달 23일을 전후해 일제히 잠정 휴관에 들어갔다. 예술의 전당을 비롯한 문화예술 전문 공간들도 자체 기획전을 모두 중단했다. 중앙 및 지방 할 것 없이 전시를 멈춘 갤러리들도 상당수에 달한다. 어떤 이유로든 국내 거의 모든 미술관과 예술 공간들이 일시에 문을 걸어 잠근 건 한국 현대미술 70여 년 동안 전례 없는 일이다. 다행히 근래 들어 확진자가 두 자리 수로 떨어지는 등 진정세를 보임에 따라 다시 봄날을 희망하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 섣부르다. 세계 여러 나라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얽혀 공동운명체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동시대에선 우리만 안정된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연생태, 관광, 무역 등이 그러하듯 미술계도 한 배를 탄 입장에선 '공동운명체'와 밀접해 있다. 시간성과 공간성을 아우르는 동시에 서로 다른 문화가 이질성 없는 연속적 관계 맺음을 통해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과 형식 및 내용을 형성하는 게 동시대 미술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를 가시적으로 증명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국제전이다. 그러나 문화의 지속적 관계는 고사하고 일단 물리적 환경부터 제약이 많다. 국제전은 서너 달 전에는 작품 운송이 시작되어야 하는데다 참석 가능한 작가 리스트가 확보되어야 하며, 작품설치안까지 확정 짓는 게 일반적이지만 많은 국가들이 국경을 봉쇄한 채 하늘길까지 막으면서 이 모든 것이 불가능해질 수밖에 없는 위기에 처했다. 당장 6월에 개막하는 제주비엔날레는 물론, 9월 문을 여는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등은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 전시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같은 달 진행될 예정인 대구사진비엔날레나 올 하반기 대기 중인 강원국제예술제-키즈트리엔날레도 예외는 아니다. 일단은 지켜본다는 입장이지만 만약을 대비한 전략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제전을 준비 중인 일부 사립미술관들과 아트페어 사정 또한 나을 게 없다. 국내 주요 사립미술관으로 꼽히는 모 미술관은 국제적 명성의 남미 출신 작가의 전시를 준비 중이지만 '코로나19' 확산 방지 차원에서 국경을 봉쇄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디뮤지엄은 오는 25일 개최 예정이었던 'SOUNDMUSEUM: 너의 감정과 기억' 전시 개최를 숙고 끝에 잠정 연기했다. 이대로 가다간 5월로 예정된 '아트부산' 역시 조마조마하다는 시선 역시 존재한다. 문화와 문화 간 적극적인 교섭과 상호 이해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문화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선 동일한 외국의 경우도 '코로나19'에 따른 멈춤 현상은 남다를 게 없다. 코로나 발원지인 중국 인접국 중 가장 먼저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홍콩에선 추정 매출 1조원에 달하는 아트페어인 '아트바젤홍콩'을 지난 달 17일 전격 취소했다. '아트바젤홍콩' 개최 시기에 동시에 열리던 각종 위성 아트페어들도 진행을 포기했다. '코로나19'가 세계적 유행에 접어들면서 최근엔 이탈리아의 베니스비엔날레 국제 건축전 또한 당초 5월 23일 개막을 8월 29일로 미뤘다. 여기에 6월 스위스 바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아트페어인 '스위스 아트바젤'을 비롯해 5월 개최 예정인 '프리즈 뉴욕'도 막을 올릴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다. 이 밖에도 미국 입국 전면 금지 조치 이전 이미 비상사태가 선포된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은 물론이고 파리 루브르박물관 등도 전시를 중지했다. 그야말로 국내외 미술계가 꽁꽁 얼어붙었다. 세계인 모두에게 해당되는 사항이나 문화예술계 또한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국가를 불문하고 예술인들은 밥줄이 끊겼으며 불안한 현재를 견디며 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이러한 형국에 이르면 적지 않은 사람들은 '그래도 봄은 온다'고 말한다. 하지만 올해는 유독 봄이 늦다. 서릿발 같은 국내외 미술계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그 봄이 오기도 전에 동사할 것만 같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0-03-17 11:09:54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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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코로나 직격탄, 끼니 걱정에 한숨짓는 예술계

문화예술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직접적 타격에 신음하고 있다. 한 방송 외주제작사 대표는 최근 필자와의 통화에서 "2월의 경우 단 1건의 녹화를 제외하곤 일이 없어 쉬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한 프리랜서 실연예술가 역시 "하루 벌어 하루 사는데 모든 행사가 취소돼 생계를 고민해야 하는 위기에 처했지만 코로나 사태가 빨리 진정되길 바랄 뿐 달리 방법이 없어 너무 우울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생존의 위기에 직면한 건 예술계 일부만이 아니다. 창작, 실연 할 것 없고 뮤지컬, 연극, 영화, 미술 등 장르마저 불문한다. 그야말로 너나 구분 없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밀도 높은 공간에서 복수 이상의 관계사들과 함께하는 구조적 특징을 지닌 공연계는 유독 피해가 크다. 공연 취소와 관람객 감소에 따른 줄도산 위험에 처했다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 실제로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2월 공연매출액은 약 200억원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기 전인 1월 약 400억원 대비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1월 768건에서 2월 853건으로 공연 건수는 늘었으나 상연 건수는 1월 9200회에서 2월 7576회로 되레 줄었다. 예매 수 또한 약 100만건에서 약 50만건으로 곤두박질쳤다. 폐업 위기를 호소하고 있는 공연 제작사들과 소규모 극장들의 처지도 그렇지만 시각예술계 상황도 썩 좋지 않다. 지난달 23일 코로나 위기경보가 심각 단계로 상향되면서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국내 주요 국공립미술관과 화랑들은 일제히 동면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모이는 아트페어와 경매, 미술 강좌 및 행사, 교육 또한 대부분 잠정 연기되거나 취소됐다. 기획전과 작가 개인전도 확 줄었다. 위약금과 손해배상이 무서워 어쩔 수 없이 진행 중인 전시엔 관람객이 없어 개점휴업과 진배없다. 공연 제작, 배급·전시가 중단되고 미술유통망이 막히자 약 70%에 달하는 프리랜서 예술인들의 삶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배우와 스태프는 일자리를 잃었으며, 시각 분야 예술인들 또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일이 없으니 수입도 사라졌다. 각 지자체와 정부 산하기관의 지원금 심사가 보류되면서 향후 계획마저 불확실해졌다. 때문에 많은 예술인들은 비자발적 실직 상태에 놓인 채 하루하루를 끼니 걱정으로 채우고 있다. 현실이 이런데도 예술인들의 기초적 수준의 경제적 안전망을 보장할 것으로 기대되는 '예술인고용보험법' 등은 여전히 국회 계류 중이다. 애초 예술인의 노동 가치와 지위·권리 보장에 염두를 둔 것이지만 실직 위험에 따른 소득보전과 실업급여 수급 차원에서 진작 시행했다면 재난 상황에서도 효과를 발휘했을 것이다. '코로나19'와 관련해 문화체육관광부도 예술인을 위한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문체부는 생활자금 융자 30억원 등의 긴급지원 방안을 발표했지만, 금액이 적은 데다 그나마도 언젠간 갚아야 할 '빚'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대안이라 보기 어렵다. 새로 책정되는 추경예산의 적지 않은 부분은 예술계와 무관하고, 행정적·제도적 개선은 더디거나 변함이 없다. 그렇다고 정부의 노력이 아예 없다는 건 아니다. '코로나19' 확산 우려에 따른 문화예술계 피해 현황을 점검하고 지원책을 모색하기 위한 예술인들과의 만남을 지난 2월 20일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갖기도 했다. 하지만 문체부는 '코로나19' 창궐 한 달여 만에 현장의 의견을 청취해 늑장 행보라는 지적을 받았다. 신종플루, 사스, 메르스 등, 그동안 겪은 전염병에 관한 경험과 사례별 데이터를 토대로 한 국가 재난에 대비한 매뉴얼을 제시한 후 수정·보완하는 식으로 예술계 의견을 듣는 게 바른 순서였음에도 과정은 그렇지 않아 빈축을 샀다. 하루가 급한데 이제 의견을 들으면 대체 시행은 언제 하느냐는 비판도 나왔다.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사회적 재난은 국민 모두에게 시련이다. 누가 더하고 덜한지 고통의 무게를 저울질하기 어렵다. 어떻게든 견뎌야 한다는 절박함 또한 동일하다. 그렇기에 '예술가에게만' 관심을 가져달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예술가들에게도' 신경 써달라는 주문은 필요해 보인다. 이재웅 쏘카 대표의 말처럼 "일자리의 위기, 소득의 위기, 생존의 위기"는 예술가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0-03-03 10:07:25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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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예술인 곁으로 성큼 다가선 ‘예술인 복지’

우리나라는 한국예술인 복지재단을 비롯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문화재단 등의 각 지역문화재단을 통해 예술인들이 예술 외적인 요인으로 창작활동을 중단하는 상황에 이르지 않도록 보호하고, 지속적이며 안정적으로 작업할 수 있도록 다양한 예술인 창작·생활안정지원책을 마련해왔다. 그중에서도 2012년 설립된 한국예술인 복지재단은 예술인 복지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예술인으로서의 긍지와 문화예술의 향기가 창작자 개개인과 사회 곳곳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동안 괄목할만한 사업들을 펼쳐오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창작준비금지원사업'과 '예술인 생활안정자금 융자 지원사업'이다. '창작준비금지원사업'은 예술가들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예술활동을 그만두지 않도록 지원하는 제도이다. 예술인 복지법상 예술활동 증명을 완료한 예술인, 가구원 범위에 해당하는 인원의 월 소득인정액이 당해 연도 기준 중위소득 이내인 현업 예술인 1만2000명(작년의 경우 5500명)을 대상으로 1인 300만원을 지원한다. 2020년 예산은 약 360억원으로, 약 160억원이었던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창작준비금지원사업'이 예술활동을 저해하는 요소 중 하나인 낮은 소득 개선에 방점을 둠으로써 창작동기부여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면, '예술인 생활안정자금 융자 지원사업'은 창작안전망 구축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일반 금융제도에서 소외된 예술가들은 단비와 같은 제도로 인식한다. 2~3%의 저리로 500만원까지 대출해주는 이 사업은 학자금, 장례비, 부모요양비 등 예술인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예술인들의 관심이 높다. 주거부담 완화 차원에서 시행 중인 상한액 1억원의 전·월세 주택자금 대출과 향후 시행 계획에 있는 '예술저작물 담보 대출' 역시 주목받고 있는 지원제도이다. 2019년 85억원 규모로 시범 운영된 생활안정자금 융자는 올해 190억원으로 확대됐다. 크게 상향된 지원 규모도 그렇지만 최근 들어 유독 눈에 띄는 건 어떻게 하면 예술인의 입장에서 창작자 중심의 예술인 복지가 구현될 수 있는지에 대한 재단의 고민과 실천이다. 일례로 재단은 올해부터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을 도입해 신청인 구비서류를 12종에서 3종으로 간소화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처럼 예술가들의 편의를 고려해 지원신청 입력항목을 최소화했으며, 지원을 위한 소득과 재산 심사 대상을 신청인, 신청인의 배우자, 부모, 자녀, 사위, 며느리에서 본인과 배우자로 축소했다. 이는 보다 많은 예술인에게 고른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한 조치이지만, 예술인 편에서의 시선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술인 복지사업에 참여하기 위한 첫 단추인 '예술활동 증명' 또한 예술인의 눈높이에서 재정비된 사례로 꼽힌다. 40여명에 불과한 인원으로 방대한 사업들을 수행해야 하는 직원들에겐 또 다른 수고로움이나 내부 행정과정을 도입해 정량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자료를 제출한 예술가들이 최소한의 시간으로 정정할 수 있도록 활동 증명 방식에 변화를 줬다. 나아가 차수로 모아 진행하던 전문가 심의를 상시로 변경해 결과를 알기까지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하는 예술인들의 초조함도 없앴다. 기존엔 정량적 요건에 맞지 않는 신청 건이 다수 포함돼 전체 심의 진행 속도가 저하되는 단점이 있었다. 이 밖에도 재단은 보다 효율적인 복지구현 차원에서 지난 1월 초 일찌감치 '집담회'를 마련해 의견을 청취하고, 창작자와 매개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은 예술가들이 기다릴 것을 생각해 공모일정을 사전에 안내하는 등 섬세한 접근을 보여줬다. 이 모두가 예술인들의 삶 속으로 한 발 더 다가서려는 재단의 의지이자, 예술인의 삶 속으로 다가서기 위한 고민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아직까진 예술인 복지가 '가난'이 내재한 삶의 방식과 작동원리를 파악해 대안을 제시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채 주로 경제적 지원에 치우치는 한계를 갖고 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예술인 복지의 시작인 '예술활동 증명'이 활동경력이라는 정량적 기준만 적용돼 취미에 머무는 생활예술인과 아마추어들의 유입이 적지 않은 현실은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특히 국민 세금을 바탕으로 한 예술인 복지 사업이 창작의 가치와 예술인의 삶에 어떤 변화를 유도했는지에 관한 가시적인 지표 제시가 불충분할뿐더러, 예술인이 우리 사회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와 대국민 홍보 또한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예술인 복지재단이 '예술인재단'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싫든 좋든 짚어봐야 할 부분이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0-02-18 09:53:23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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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취소 가능성 커진 '아트바젤 홍콩'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사태가 국내외 문화예술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영화 '컨테이젼'(Contagion, 2011)에서처럼 박쥐에서 시작된 바이러스가 빠른 속도로 퍼지며 사망자와 감염 지역이 늘어나는 현실의 불안과 공포가 예술계를 강타하고 있는 셈이다. 1년 이상 준비한 전시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관람객 감소와 수익 저조로 이어지면서 열악한 재정의 기획사들을 비롯한 유통 관계자들의 생계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른 국내 상황도 걱정이지만, 한국 컬렉터들이 많이 찾는 외국의 주요 전시들 또한 바이러스가 몰고 온 한파에 몸살을 앓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아시아 최대 규모의 미술장터인 '아트바젤 홍콩'이다. 홍콩아트페어를 인수해 2013년 처음 문을 연 아트바젤 홍콩은 이후 아시아권 최고의 국제 예술 행사로 자리 잡았다. 2019년엔 35개 국가에서 242개의 갤러리가 참여했다. 당시 수많은 컬렉터를 포함해 약 9만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았고, 약 1조원의 추정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오는 3월 17일 개막해 21일까지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진행될 예정인 아트바젤 홍콩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두려움으로 인해 취소될 가능성이 커졌다. 주최 측은 계획에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홍콩을 둘러싼 상황은 예사롭지 않다. 지난달 25일 비상사태를 선포한 홍콩은 중국 본토를 오가는 대중교통 운행 횟수를 대폭 줄였고, 본토 개인 관광객에 대한 신규 비자 발급도 미뤘다. 바이러스 확진자가 15명으로 불어나자 캐리 람 행정장관은 4일부터 중국 본토와의 육상 및 해상 국경 통과점을 두 곳만 남기고 모두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홍콩 공공의료 노조는 국경 전면 폐쇄를 요구하며 3일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노조는 중국과의 접경 지역이 전면적으로 봉쇄되지 않으면 신종 코로나의 급속한 확산으로 홍콩 내 의료 시설과 인력마저 부족해질 수 있다면서 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중국 본토 관광객에 대한 비자발급 제한과 국경 폐쇄조치는 중국 거부들의 지갑에 눈독을 들여 온 아트바젤의 입장에선 매우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매출의 상당 부분을 그들이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애초 홍콩을 아시아 공략 거점으로 삼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중국인들의 입국을 거부하는 국가가 늘어나면서 전시장 밖에서 이뤄지던 거래의 폭마저 줄어들게 됐다. 문제는 아트바젤 행사를 취소해달라는 참여 갤러리들의 요청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트바젤을 주관하는 MCH 그룹은 이미 8개월에 걸친 반중 민주화 시위 여파로 개최를 취소하거나 연기해달라는 주문을 받아온 상황이었다. 민주화 시위에 대한 도덕적 참여라는 명분도 있었지만 과거 같지 않은 경제적 측면도 고려됐다. 여기에 지난달 말 일부 갤러리는 주최 측에 서한을 보내 행사 취소를 주문했다. 내용에는 공중보건 위생이 위험해진 현실에서 전시회를 진행하는 건 무책임하다는 목소리가 담겼다. 더구나 일부는 아트바젤 홍콩 개최 여부와 상관없이 홍콩 지사를 철수시켰고, 자체 전시를 중단했다. 심지어 아트바젤의 주요 후원사인 스위스 금융그룹 UBS는 직원들이 중국으로 여행하는 것을 금지했으며 홍콩에 있는 2500명의 직원에게 당분간 집에서 일하도록 명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화되고 있는 홍콩 시위에 대한 우려로 참가 의사를 거둬들인 갤러리들이 나타난 형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대내외적 환경 악화, 그에 따른 유력 갤러리들의 이탈 가속 및 개최 철회 요청은 아시아 최대 미술축제의 향방에마저 영향을 주고 있다.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걱정과 불안은 국내는 물론 지구촌 미술계 풍경까지 바꿔놓고 있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0-02-04 10:48:56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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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외국인 안 오는 미술관·박물관

유럽 미술관·박물관은 외국인들로 넘쳐난다. 그 나라 미술관·박물관을 방문하는 것이 필수 관광코스처럼 되어 있다. 이에 힘입어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의 외국인 관람객 비중은 75%에 달한다. 영국 대영박물관도 63%에 이르며, 런던 테이트모던 또한 연간 관람객 절반이 외국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미술관·박물관에는 외국인이 거의 없다. 지난해 10월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이 공개한 '2018년 14개 국립박물관 방문객 현황'에 따르면 박물관 전체 관람객 약 890만 명 중 외국인은 2.8%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을 찾는 외국인 역시 전체관람객 270여만 명의 약 5% 수준이다. 물론 1% 미만의 미술관도 수두룩하다. 외국인 관광객 2000만 명 돌파를 목전에 둔 현실이 무색할 정도다. 외국인들이 미술관·박물관을 찾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다. 무엇보다 전시나 소장품의 질이 현격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볼 만한 전시도, 기억할 만한 콘텐츠도 없다는 것이다. 전시는 기획력 부족과 맞닿고, 콘텐츠 부족은 미술사적 의미가 있는 작품 하나 제대로 구입할 수 없는 예산과 무관하지 않다. 이 가운데 소장품 구입 예산은 콘텐츠의 질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위상과도 직결된다.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의 연간 소장품 구입비는 60억 원이 채 안 된다. 미국 작가 신디 셔먼의 사진 한 점 가격이 많게는 10억 원에 달하고, 현대미술작품 중엔 100억~200억 원 하는 예도 흔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적다.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을 오가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추상화를 한 점 구입하려면 한 푼 안 쓰고 수년 이상을 모아야 할 만큼 초라한 예산이다. 정보 접근성이 낮다는 것도 문제다. 예를 들어 한국방문의 첫 관문인 인천국제공항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소식을 발견하는 건 쉽지 않다. 온갖 미술작품으로 공항을 치장했지만 정작 한국의 주요 미술관 전시에 관한 내용은 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은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서울역도 매한가지다. 상업광고만 가득하여 문화예술 변방국가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외국은 다르다. 오스트리아 빈 국제공항의 경우 승객은 수화물을 찾는 순간부터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까지 쉴 새 없이 전시정보를 접하게 된다. 1월 현재만 해도 오스트리아의 자랑 에곤 쉴레를 비롯해 알브레히트 뒤러, 카라밧지오와 같은 여러 미술관·박물관 전시정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벽면 전부를 전시정보로 도배해놓았다. 안내데스크에는 인쇄물이 비치되어 있으며, 숙박업소도 예외는 아니다. 문화예술 전반을 담은 인터넷 문화 포털을 통한 안내에도 열심이다. 독일이나 이탈리아, 프랑스, 체코도 마찬가지이다. 하나, 우린 세계 최고의 인터넷망을 갖추고 있음에도 주요 홍보채널로써의 인터넷 활용에서조차 부진하다. 7년 차에 접어든 국립현대미술관 유튜브 구독자 수가 고작 9000여 명이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할 말이 없다. 구독자 30만 명을 자랑하는 뉴욕현대미술관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다. 이대로라면 우리 박물관·미술관이 전 세계 한류열풍의 전진기지가 되길 바란다는 박양우 문체부 장관의 신년교례회에서의 바람은 한낱 몽상에 그칠 가능성이 짙다. "외국인이 서울관을 방문해서 한국 미술의 특징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대표적인 우리 미술 작품을 두루 선보일 계획"이라는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의 최근 발언도 실현되기 어렵다. 미술관을 찾는 외국인이 없는데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계획이 가당키나 한가. 세계 어느 나라던 자치정부 혹은 국가 차원에서 그물망처럼 촘촘한 유인책을 펼치며 관광, 예술, 행정이 결합된 정책으로 외국인 관람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그런데 우린 헐겁기 그지없다. 각 부처는 따로 놀며 정무직 공무원들의 약속은 임기 중 알리바이 혹은 시늉에 불과하기 일쑤다. 여기에 세계인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독자적인 킬러 콘텐츠는 빈약하고, 동시대 담론을 생성할만한 유효한 양질의 전시 역시 드물다. 다양한 홍보채널 구축과 관리마저 미흡할뿐더러 예산 없는 전략이다 보니 남는 건 책임지지 못할 말밖에 없다. 외국인이 미술관과 박물관을 찾지 않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0-01-21 10:05:54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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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괴물들’이 지배하는 세상

세상은 그림을 거울로 삼고, 그림은 거울처럼 세상을 투영한다. 그것은 때로 끔찍하고 괴기스러우며 아름답지 않으나 동시대인들에게 필요한 어떤 것을 엿볼 수 있다. 일례로 오스트리아 작가 '프란츠 세들락'의 1933년 작품 '나무 위의 유령'(Ghost in the Tree)에는 바짝 마른 해골을 한 새들이 까마귀 떼처럼 나무에 앉아 있다. 마치 죄악의 삶을 보낸 자들의 고통스러운 영혼을 보는 것 같아 다소 섬뜩한 느낌이 든다. 이러한 감정은 '요르그 임멘도르프'가 2005년에 그린 인체 작품에서도 동일하다. 부서질 듯 마른 꽃과 초점 없는 신체는 동전의 양면 같은 삶과 죽음을, 을씨년스러운 배경은 절망과 허무함을 흠뻑 품고 있다. 먼지처럼 푸석한 감정과 무기력한 자각을 드러내는 이 작품들을 보노라면 자연스럽게 건조한 인간사를 예견했던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을 떠올리게 된다. 갈수록 메마르고 점차 두꺼워지는 소외의 벽, 타인의 희생을 이기(利己)의 제물로 삼는 동시대인들의 모습과 교차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안타깝게도 제물의 역할은 언제나 정해져 있다. 바로 같은 식사라도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이들, 배경 없는 사람들, 출발선이 다른 자들이다. 꼼수와 편법조차 능력으로 인정받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자들, 힘없는 인간들이다. 그들은 경제적 자본으로 학벌 같은 사회적 자본까지 세습하는 구조마저 정상처럼 취급되는 공동체 내에서 가장 슬픈 약자로, 제아무리 용을 써도 이미 '괴물'로 성장한 이들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이 괴물들은 양심과 지성이 자릴 비운 사이 몸집을 키운다. 사익을 위해서라면 부정 따윈 솜처럼 가볍게 여기는 파렴치와 윤리적 타락에서 힘을 얻는다. 노력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는 사회, 희망에 기대어 내일을 기약할 수 있는 삶이 가능한 사회와 멀어질수록 지배력을 넓히고, 인정, 배려, 존중, 관심이 줄어드는 만큼 불안, 공포, 배척, 시기, 질투를 배양한다. 괴물이 만든 세상은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걸작 '세속적인 쾌락의 정원'(Triptych of Garden of Earthly Delights) 속 난잡한 그것들과 다를 바 없다. 아니, 그곳이나 이곳이나 참됨을 저버린 채 가짜 낙원 속에서 쾌락을 즐기다 지옥으로 떨어질, 탐욕과 교만의 마차를 탄 괴물들이 득시글하다. 그림과 실제 간 경계를 넘어선지 오래다. 어딜 봐도 괴물뿐인 세상, 문득 '뫼르소'의 독백을 경청하는 이도, '그레고르 잠자'의 고독과 불행마저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저무는 낙관론에 새로운 중세의 겨울이 도래하는 이곳에서 우린 어떤 것으로 치유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본다. 혹자는 '사랑' 밖에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믿음이 부족한 나와 다수는 그리하지 못한다. 진영에 따라 양심과 정의의 온도마저 달라지는 일부 위선자들을 사랑하기 힘들며, 편법과 반칙으로 타인의 정당한 기회를 빼앗는 이들을 도저히 가엾게 여기기 어렵다. 인간은 너무 자주 흔들리기에 신과 같은 아가페적인 사랑이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보쉬의 베로니카 손수건 속 예수님은 악한 자, 핍박하는 자,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한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 한다. 하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모든 미움과 증오를 내려놓아야 비로소 얻을 수 있다는 '진실한 사랑'이란 무엇인지, 타인을 위한 기도가 어디까지 가능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아직 사랑하는 법을 깨닫지 못해서일까. 그 또한 알지 못하겠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0-01-07 09:37:38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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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한해의 끝자락, 되돌아본 1년

2019년이 저물고 있다. 행복인지 절망의 연장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린 어떻게든 살아남아 다사다난했던 한해의 끝을 지켜보고 있다. 잊으면 잊힐 듯싶어 기록하고 있다. 미술계는 어땠을까. 이곳 역시 분주했다. 올해도 아트페어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화랑미술제(2월)를 시작으로 아트부산(5월), 한국국제아트페어(9월), 부산국제아트페어(12월)에 이르기까지 70여개에 달하는 장터가 쉴 새 없이 열렸다. 여기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하는 '작가미술장터'까지 가세하면서 미술판은 그야말로 '장사판'을 방불케 했다. 허나 그림 팔아 생활이 크게 나아졌다는 작가는 보이지 않았다. 세금까지 써가며 작가들이 직접 미술품을 판매하도록 했지만, 시장질서만 교란시켰을 뿐 대부분의 미술인들이 겪는 생활고는 변한 게 없다. 다행히 한편에선 예술가들의 창작환경 개선과 민생고 해결을 위한 시도가 이뤄졌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소득이 불안정한 예술인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금융지원사업인 '예술인생활안정자금대출' 시범사업을 지난 6월부터 시행했다. 내년엔 올해 대비 지원 대상 및 예산이 대폭 늘어난다. 돈을 뿌리는 게 반드시 정답은 아닐지라도 최소한의 자립 환경에는 도움이 될 전망이다. 작가들을 향한 지원이 다양해진 반면 전시기획자들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높지 않았다. 오히려 광주·부산비엔날레 등 주요 국제행사에서 한국 기획자들의 비중은 제로에 가까워졌다. 원고료 몇 푼에 기대어 살아가는 평론가들의 형편도 개선되지 못했다. 인건비는커녕 제 돈 쓰지 않으면 다행인 독립기획자들과 무대가 없는 30~40대 젊은 비평가들, 나이 지긋한 전업비평가들은 '소속' 없는 백수에 불과한 현실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영민하게 제 살길을 찾아 자리바꿈을 거듭했다. 공석이던 국립현대미술관장에 '근대미술사가'가 코드 및 특혜 논란 끝에 지난 2월 1일 취임했으며, '그랜드슬럼'이라도 달성하려는 양 인맥과 정치력을 무기로 미술계 주요 요직을 떠도는 철새들의 날갯짓도 일 년 내내 이어졌다. 물론 언제나처럼 실력이나 성과는 '묻지마'로 남았다. 한쪽에선 어좌에 앉아 미술계 권력이 될 때 또 다른 쪽에선 스스로를 내려놔야만 했던 비보도 있었다. 8월에 들려온 미술가그룹 '옥인콜렉티브'의 멤버 이정민, 진시우 부부작가의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도 그 중 하나였다. 그렇다고 미술계가 전년과 비교해 더 침울하거나 덜 역동적인 건 아니었다. 2017년 3월 홍라희 관장 퇴임 이후 기획전 없이 소장품 중심의 상설전만을 하고 있는 삼성미술관 리움과 달리 국공립미술관들의 몸짓은 활기찼다. 지난해 6월 호평 속에 막을 내린 개관전 이후 연일 매진 행렬을 빚은 부산현대미술관은 '레인룸'(8월 개막)으로 또 한 번 부산 문화예술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고, 3월부터 관람객을 맞아 4개월간 37만명이 다녀간 서울시립미술관의 '데이비드 호크니' 전도 관람객들의 주목을 받았다. 9월 시작된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 기념전 '광장: 사회와 미술' 또한 2019년 후반부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이 밖에도 10월엔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가 격년제로 진행하는 국제미술전인 '2019 바다미술제'가 '상심의 바다'를 주제로 개막했으며, 같은 달 청주에선 공예특성화비엔날레를 표방한 청주공예비엔날레가 개최되어 기대감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공예비엔날레의 경우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이 뒤섞여 정체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예도 미래도 안 보이는 비엔날레'라는 혹평을 받았다. 특히 1차 전시감독 공모에서 탈락한 감독이 기획위원 추천을 통해 다시 감독에 선임되는 황당한 사건에 일부 기획위원들이 반발 사퇴하는 등 불공정 시비에 휘말려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기타 민중미술 계열의 전시들이 여럿 규모 있게 펼쳐졌으나 일부는 내부를 향한 침묵에 습관화된 철 지난 노스텔지어의 소환이라는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며, 11월 이후 공모를 실시한 국내 주요 레지던시들은 지원 작가들로 인산인해를 이뤄 작금의 우울한 경제상황을 반영했다. 하지만 동일한 시기 김환기의 대작 '우주(Universe 5-IV-71 #200)'가 한국작가로는 처음으로 경매에서 132억원에 낙찰되었다는 소식이 해외에서 타전되어 세밑 미술계를 훈훈하게 했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19-12-10 09:58:01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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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가장 비싼 작품이 가장 좋은 작품은 아니다

추상적인 화면을 이용한 전체구성이 완숙의 경지에 올라선 김환기의 파리 시대(1956~1959)는 화면 자체가 점차적으로 통일을 지향하면서 정신적인 심화의 단계를 밟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기로 꼽힌다. 이후 서울 시대(1959~1963)를 거쳐 70년대 뉴욕 시대로 이어지며 김환기의 작품은 변화를 거듭한다. 단일 주제의 배열이나 단독적 요소로서의 형상과 서술적 경향이 점차 사라지고 대신 국부적인 요소가 전체 속에 동등하게 위치한다. 이 가운데 1973년 작 '10만개의 점'과 같은 작품을 통해 확인되듯, 축소와 거시적 우주관이 동시에 드러나는 뉴욕 시대는 색과 점, 공간 속 유동하는 초자연적인 세계를 뒷받침하는 순수한 조형성이 강조되면서 김환기 예술의 완성기를 보여준다. 70년대의 김환기 작품들은 예술성과 역사성이 더해져 가격도 상당하다. 실제로 지난해 5월 그의 붉은색 전면점화인 '3-II-72 #220'(1972)는 85억원에 팔렸으며, 올해 초 새 주인을 찾은 '무제'(1971) 역시 72억원에 거래됐다. 특히 지난 23일 김환기의 대작 '우주'(Universe 5-IV-71 #200)(1971)는 홍콩컨벤션전시센터(HKCEC)에서 열린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약 131억원에 낙찰되었다. 모두 김환기 미학의 정점으로 평가되는 시기의 작품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작품 가격이 예술성 및 역사성과 비례하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2015년 1월부터 2019년 8월까지 국내 미술품경매사 10여 곳에서 이뤄진 경매결과를 취합한 자료에 따르면 고(故) 백남준의 작품은 이우환의 작품 가격과 비교해 상당히 낮다. 분야가 다르고 매체 환경의 영향은 존재하나, 아직 미학적 평가가 덜 끝난 생존 작가인 이우환의 최근 5년간 최고가 작품은 16억6100만원('바람과 함께'(1990))인 반면,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백남준의 작품 중 최고가는 '바람과 함께'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6억6000만원('수사슴'(1996))에 그친다. 이런 현상은 서구에선 흔하다. 워낙 가격이 높기로 유명한 피카소만 해도 '전쟁과 평화' 등의 일부를 제외하곤 50년대에 이렇다 할 대표작이 나오지 않았지만 작품가격은 1955년에 그린 '알제의 여인들'이 으뜸이다. 이 작품은 2015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968억원을 기록했다. 큐비즘 시대를 연 '아비뇽의 아가씨들'(1907)을 포함해 '파이프를 든 소년'(1905), '꿈'(1932), '게르니카'(1937), '우는 여인'(1937)과 같은 이전 시대 작품들과 비교해 전위성이 위축된, 옛것을 재탕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것임에도 그림 가격은 정반대의 결과를 나타내고 있는 셈이다. 사실 예술의 가치와 시장의 가치는 다르다. 예술의 가치를 결정하는 요소는 미술사적 선구성, 작품성, 시대성 및 역사성, 해당 문화권 특유의 에토스와 같은 의식적 맥락 등이 맞물려 형성된다. 시장의 가치는 여기에 사회적 역학관계, 수익률, 소장이력까지 포괄하여 산출된다. 작가 인지도, 대중선호도, 투자환경 등도 간과할 수 없는 비중을 지니며, 결정적으로 구입자의 '취향'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가장 비싼 작품이 반드시 좋은 작품은 아니다. 잘 팔리는 작가가 훌륭한 작가도 아니다. 김환기나 박수근처럼 예술의 가치가 가격에 반영되는 예도 있으나, 그렇지 못한 사례가 훨씬 많다. 더구나 우린 아직 사회적 의사표시로서의 미술의 경제성이 곧 미술품의 가격이란 점은 헤아리지 않는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19-11-26 09:51:33 김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