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ISA 도입 초읽기] 한 계좌로 모든 거래…'영역파괴' 금융권의 무한경쟁
오는 3월 하나의 계좌에 다양한 금융상품을 담아 운용하는 ISA(개인종합관리계좌)가 도입됨에 따라 금융권에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ISA가 저금리, 저성장 시대에 위축된 투자문화를 활성화시키고 자산관리 시장 성장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른바 '만능통장'을 두고 고객유치 경쟁에 나선 금융권의 면면을 들여다봤다. [한국형 ISA 도입 초읽기] 막 오른 '만능통장' 시대 3월 한국형 ISA 도입…은행·증권사·보험사 간 경계 무색 시중은행, 지난해 ISA 대비 TF 구성…영업전략 '氣싸움' 증권사, 가입자 선점 노력 vs 보험사 "실익 없다"…관망 금융권에는 오는 3월 도입될 '만능통장'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시장 선점을 위한 눈치작전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금융소비자들은 ISA를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지만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 등 금융사는 다른 업권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ISA는 예·적금은 물론 펀드, 주가연계증권(ELS)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하나의 통합계좌에 담아 운용하고, 수익에 대해서는 비과세 혜택이 주어지는 제도를 말한다. 정부는 저금리 시대를 맞아 서민·중상층의 재테크를 돕고 투자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지난해 8월 ISA 도입을 발표했다. ISA는 연간 2000만원으로 5년간 최대 1억원까지 투자할 수 있다. 가입대상은 근로소득자 및 사업소득자, 농어민으로 5년의 의무가입기간을 갖는다. 단 연 소득 5000만원 이하 혹은 15~29세 가입자는 의무가입기간을 3년으로 단축해 준다. 이 계좌에 가입한 5000만원 이하 소득자는 금융상품의 손익을 합산한 순수익 중 250만원, 5000만원 이상의 소득자는 200만원까지 비과세를 받을 수 있다. 비과세 혜택의 초과수익에 대해서는 9%(지방소득세 포함 9.9%)의 분리 과세만 납부하면 된다. 일반 이자소득세율이 15.4%인 것을 감안하면 세제 혜택이 대폭 확대되는 것이다. ◆英·日 대비 혜택 적지만…투자 기대감↑ ISA는 지난 1999년 영국이 처음 도입했다. 지난 2013년 말 기준 영국의 ISA 가입자는 2316만명을 기록했다. 이는 영국 18세 이상 인구의 47%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일본은 영국에서 국민 재테크 수단으로 자리 잡은 ISA를 벤치마킹해 지난 2014년 NISA(소액투자비과세제도)를 선보였다. 일본의 경우 ISA 도입 6개월 만에 727만개 계좌가 개설됐다. 한국형 ISA는 영국, 일본의 ISA와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영국과 일본은 의무가입기간을 두지 않고 있으며 계좌 수익 전체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부여한다. 반면 한국형 ISA는 의무가입기간이 5년으로 중도인출이 불가능하며, 순수익 200만원까지만 비과세한다. 이처럼 한국형 ISA는 영국과 일본에 비해 제약이 많아 실효성 논란이 잇따른다. 하지만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상황에서 세금을 아껴 목돈을 투자할 수 있다는 점이 '만능통장'으로서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ISA 도입으로 자산관리를 위한 맞춤형 포트폴리오 구성 관련 자문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며 "낮은 접근성과 고비용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온라인 자문업을 활성화해 소비자의 효과적 자산관리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시중은행, 영업전략 노출될라…조용한 전쟁 한국형 ISA는 한 사람이 한 계좌만 만들 수 있고 한번 가입하면 수년간 유지해야 절세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때문에 한번 계좌를 개설한 고객이 장기고객으로 이어질 수 있고, 해당 금융사를 통한 금융서비스 이용도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은행권은 오는 2월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계좌이동제와 맞물려 ISA 도입에 따른 고객이탈을 막기 위해 영업전략 구상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8월 KB투자증권, KB자산운용과 ISA 도입 준비 태스크포스(TF)를 구축하고 고객 성향과 조건에 맞는 상품을 구상하고 마케팅 수단을 모색 중이다. 신한은행도 같은 달 ISA 대비 시스템, 상품 등 대응체계 마련을 위해 지주 내 다른 계열사들과 TF를 꾸렸다. KEB하나은행 역시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통합 직후인 지난해 9월 계열사 간 협업을 위한 ISA 전담 TF를 구축하고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12월 신탁부와 개인영업전략부 등 관계부서 TF를 가동하고 상품개발, 전산구축 작업에 돌입했다. NH농협은행과 IBK기업은행도 이달 ISA 전담팀을 신설하고 시장 선점에 나섰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ISA 계좌에 어떠한 금융상품을 담을 것인지 고객을 만족시킬만한 포트폴리오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면서도 "고객 성향에 특화된 상품이 곧 고객확보 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어서 전략이 노출되지 않도록 특별히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 추격하는 증권사…뒷짐 진 보험사 증권사는 오랜 자산관리 능력을 장점으로 ISA 고객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다양한 기존 상품과의 연계를 통해 종합적인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방침이다. 신탁업 인가를 보유 중인 대형 증권사는 지난해부터 ISA 전담 TF를 꾸리고 준비작업에 들어섰다. 다만 중소형 증권사는 투자일임형 ISA 계좌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이 오는 29일 시행됨에 따라 이달부터 ISA 도입을 위한 준비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당초 정부는 신탁업 인가를 받은 증권사의 신탁형 ISA 계좌만을 인정하는 방안을 발표했다가 공정성 등의 문제가 제기되자 투자일임형 ISA까지 허용 범위를 확대키로 했다. 신탁형 ISA는 투자자가 자신의 ISA 계좌에 편입할 상품을 직접 선택하는 것이고, 투자일임형은 금융사에 상품 선택을 위탁하는 방식이다. 신탁업 인가는 최소 자본금 130억원 이상의 증권사만이 취득할 수 있어 사실상 대형 증권사를 위한 도입이라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ISA 도입에 앞서 은행과 증권사가 분주한데 반해 보험업계는 다소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ISA가 도입되더라도 은행이나 증권 상품을 중심으로 운용되는 만큼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거나 고객을 유치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판단에서다. 현재 ISA를 개설할 수 있는 보험사는 금융위로부터 신탁업을 허가받은 교보생명, 삼성화재와 종합신탁업무가 가능한 미래에셋생명, 삼성생명, 한화생명, 흥국생명 등 6곳에 불과하다. 이들마저도 ISA 편입상품에 보험상품이 빠져 있어 실익이 없다고 보고 있다. 보험사 관계자는 "보험사 특성상 ISA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사업을 펼치기보다 다른 업권에 고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