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사람들] "암투병에도 '드르륵'…봉제술로 세계적 브랜드 만들고파"
-위기를 기회로 만든다, 40년 경력의 '봉제 마스터' 밤이면 가장 환해지는 동대문 시장. 그곳에 새벽만 되면 40여년 째 불을 밝히는 이가 있다. 현실에 안주할 수도 있었지만, 끊임없이 도전하며 '위기를 기회로' 삼고 있다는 그는 바로 의류제작업체 뚜또모 정태순 대표다. 그는 지난 2018년 서울시로부터 인정받은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의 1기 '봉제마스터'다. 봉제산업을 알리는 데 기여했다고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은 서울시가 국내 최초 도시재생 사업으로 개관한 역사문화공간으로, 봉제 산업의 역사를 알리고 있다. 봉제뿐 아니라 그는 직접 옷도 디자인하며 뚜또모 자체 의류를 제작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처음 봉제업에 들어서던 순간…지금 뚜또모가 있기까지 서울 중구 신당동의 한 의류 제작 공장에서 만난 정태순 대표는 마스크 봉제 작업에 한창이었다.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보여주듯, 공장 내에는 마스크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는 처음 봉제업에 들어서던 순간이 생생하다고 말을 이었다. 우연한 계기로 들어가게 된 한남직업전문학교 내 양재과가 첫 봉제사로서의 발걸음이 됐다. 이후 한 의상실에 다니며 기술을 배웠고, 동시에 학업도 놓지 않으며 경기여자고등학교, 방송통신대학교를 졸업했다. 정태순 대표는 "17살 때 상업고등학교 합격 통지서를 받았지만 등록금 낼 돈이 없어 가지 못했다. 그런데 마침 동네 통장님께서 추천서를 적어주셨고 덕분에 전문학교에 갈 수 있었다"며 "당시 '주 의상실'에 첫 출근을 했다. 그 때는 막내였기 때문에 단춧구멍을 기계로 뚫어오거나 실을 사오고, 풀을 쑤는 등 잔심부름을 도맡아 했다"고 말했다. 잔심부름만 하던 그가 현재 뚜또모라는 브랜드를 론칭하기까지 40여년의 시간이 걸렸다. 정 대표는 지금껏 수많은 의류제작업체를 거치며 옷의 이모저모에 대해 배웠고, 자체 공장도 몇 번이나 여닫기를 반복했다. 2015년 장인 브랜드 '뚜또모'라는 상표를 등록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다. 그러나 최근 봉제산업에도 코로나19의 여파가 미치며 수주량이 대폭 줄었고, 이에 지금은 마스크를 주력 제품으로 생산 및 판매 중이다. 정 대표는 "처음엔 주 의상실에서 기술을 배웠고, 이후 노라노 패션, 논노 개발실, 트로아조 샘플실 등 의류가 판매되기 전 디자인하거나 샘플 만드는 법들을 배웠다. 이후 2015년 첫 자체 공장을 오픈하게 됐다"며 "그 때는 한 공장을 다른 사장님과 함께 나눠 사용했다. 이후 2018년 12월 두 번째 공장을 열었고, 현재 운영하고 있는 공장은 지난해 11월 말 오픈했다"고 설명했다. ◆"위기를 기회로"…항암 투병 중에도 국가기술 자격증 취득 오랜 기간 봉제업에 종사하며 일해 온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첫 공장을 오픈한 지 1년여 만에 유방암 선고를 받았기 때문. 정태순 대표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큰 수술을 받으며 죽을 고비를 넘겼다. 지금도 투병 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실제 정 대표는 지난 2017년 6월 물조차 넘기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국가기술자격증 '양장기능사'를 취득했다. 정태순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 브랜드 중 외국인들이 쉽게 접하고 있는 브랜드가 전무하다. 그래서 뚜또모를 세계적인 한국 브랜드로 키우고 싶다. 공장만 잘 이끄는 게 아니고 실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투병 중에도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고 생각했다. 몸도 제대로 못 가눴지만, 물은 못 마셔도 공부는 했다. 물론 한번 떨어졌지만 심기일전으로 더 열심히 공부해 두 번째에 합격했다. 그 때가 1차 수술 직후였다"고 설명했다. 장인 브랜드 '뚜또모'는 당신의 모든 것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뚜또모의 시작은 의류업체지만, 향후에는 토털패션업체로 거듭나고자 하는 정 대표의 포부가 담겼다. 지금까지 그가 등록한 상표가 가방, 모자, 신발, 액세서리, 속옷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또한 정 대표는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마스크를 선택하게 됐다고도 전했다. 뚜또모는 현재 필터를 쉽게 갈아끼울 수 있는 면 마스크를 개발해 판매 중이다. 정 대표는 "아직까지 뚜또모 브랜드 이름으로 입체 마스크만 판매 중에 있다. 부직포는 아무래도 숨쉬기가 힘들고 세탁할 수도 없어 면 마스크를 생각하게 됐다"며 "다만 대중들은 여전히 면 마스크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이 좀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열심히 해서 해외 수출도 해보려 한다. 유튜브를 통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마스크 만드는 법을 영상으로 올렸다"고 말했다. ◆침체된 봉제산업, "장인들 지원해줄 필요 있어" 최근 몇 년간 봉제산업으로 대표되는 동대문은 침체기를 맞았다. 그럼에도 정태순 대표는 다른 업종으로의 전환이 아닌, 봉제업의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는 투병하고 있는 와중에도 밤새 일하며 공장에서 2~3시간가량 쪽잠을 청한다. 이미 의류가 넘쳐나 일감이 부족한 내수 시장의 상황으로 인해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정태순 대표는 "이번주에도 일주일동안 집에 한 번을 못 들어갔다. 밤새 일하다가 공장 내 작은 의자 4개를 모아놓고 쪽잠을 잔다. 거래처와의 시간 약속은 곧 신용이기 때문"이라며 "최근 봉제업계 전반이 힘들다. 질이 좋은 한국산 의류의 특징을 살려, 디자인을 개발하고 해외로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있었으면 좋겠다. 특히 40여년 이상된 장인들을 따로 분류해 지원해주면 일감이 없는 업체들도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정 대표는 지금껏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힘들게 옷을 만들어 줬지만 거래처에서 수금을 해주지 않을 때 가장 힘들다. 그러나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렇게 되면 수입이 끊겨 직원들 급여도 줘야 하는데 난감하다"면서도 "그렇지만 제작한 옷에 대해 거래처에서 만족감을 표할 때 행복을 느낀다. 그 한 마디가 스스로를 키워주는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