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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미 기자의 '와이, 와인(Why, wine)']<53>머릿고기, 순대에 와인?…韓 음식엔 韓 와인

-한국 음식엔 한국 와인① 소믈리에들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다. 도대체 매콤한 코다리찜, 제육볶음은 물론 감칠맛 나게 버무린 육회나 식탁에 자주 오르는 비빔밥에는 어떤 와인이 어울릴까. 답을 찾아낸다고 해도 음식과 와인, 서로의 맛을 해치지 않는 수준이지 맛과 향을 배가시키는 진정한 마리아주는 아니었다. 정답은 오히려 눈 앞에 있었다. 프랑스 음식엔 프랑스 와인이, 이탈리아 음식엔 이탈리아 와인이 가장 잘 어울리듯이 간장과 고추장 양념이 많은 한국 음식엔 한국 와인이었다. 최정욱 광명동굴 와인연구소장은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전통주 갤러리에서 열린 '한국와인 주담회'에서 "아시아 음식은 굳이 외국 와인을 어렵게 매칭하지 말고 아시아 와인을 마시면 된다"며 "접하기 쉬운 순대나 돼지머릿고기는 한국 레드와인이 어울리고, 콩고물 떡이나 산채비빕밥, 육회 등 한국인이 일반적으로 먹는 음식과도 한국 와인이 찰떡궁합"이라고 말했다. 한국 음식엔 한국 와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소비자들은 다시 한 번 고민에 빠지게 된다. 한국 와인이라는 것이 있었나에 대해 말이다. 한국 와인에도 황금기가 있었다. 1970~80년대다. 식량이 부족한 시기에 쌀 대신 외국처럼 포도로 술을 만들라는 정책으로 대기업들이 와인생산에 뛰어 들었다. 파라다이스의 애플 와인을 시작으로 해태의 노블와인, OB의 마주앙 등이 줄줄이 선을 보였다. 대기업이 해외 주류사와 기술 제휴를 맺고 대량으로 생산하면서 품질도 좋은 수준이었다. 마주앙의 경우 한때 600만병을 생산해도 물량이 없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들이 자취를 감춘 것은 88올림픽을 기점으로 와인 수입이 자유화되면서다. 앞으로 돈이 안 될 것이라고 판단한 대기업들은 생산을 아예 접거나 수입상으로 전환했다. 그럼 지금은 누가 와인을 생산하고 있을까. 바로 농민이다. 해외 와이너리 처럼 포도나 오미자, 머루를 키우는 농민이 와인을 만드는 진정한 한국 와인의 시대가 시작됐다. 정제민 한국와인생산협회장(예산 애플 와이너리 양조책임자)은 "1970~80년대 와인산업은 대기업이 돈을 벌기 위해 시작했다가 돈이 안될 것 같아 끝난 형태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과실 재배 농가들이 와인생산에 뛰어들었다"며 "지금의 한국 와인은 공산품으로서의 술이 아니라 지역의 농업과 관광이 결합한 문화상품"이라고 강조했다. 그럼 한국 와인의 테루아부터 살펴보자. 동남아성 기후에 연중 강우량이 많은 반면 일조량은 부족하다. 지질은 적토, 황토, 모래지질이다. 전 세계적으로 와인양조 대표 품종으로 꼽히는 것들은 우리 나라에서 잘 자라기 쉽지 않아 캠벨이나 거봉, MBA포도, 비티스 라브라스카(Vitis Labrusca) 등을 주로 재배한다. 여인성 여포와인농장 대표는 "다양한 과일 생산 지역에서 소규모 와이너리들이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와인을 만들고 있다"며 "식용 포도로는 좋을 와인을 만들수 없다는 기존 편견과 달리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식용포도로 양조한 영동와인은 탄닌 성분이 적어 맛이 부드럽고, 한국음식과 조화를 잘 이룬다"고 밝혔다. 현재 전국에는 278개 과실주 제조장이 있다. 특히 무주나 영동, 영천 등은 와인으로 특화된 곳이다. 정 회장은 "한국 와이너리는 아직 전문인력이나 기술, 유통채널 모두 부족한 상황이지만 좋은 원료를 생산하겠다는 고민이 시작된 것은 물론 2세들이 와이너리를 이어가겠다는 곳들이 나오고 있다"며 "유럽이나 미국처럼 한국 와이너리도 백년 이상을 이어갈 토대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2019-12-19 13:56:02 안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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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휘종의 잠시쉼표] 전문가들 울리는 공포마케팅

정부가 17일 발표한 '인공지능(AI) 국가전략'은 'AI를 가장 잘 활용하는 나라'를 목표로 ▲2030년까지 디지털 경쟁력 세계 3위 ▲AI를 통해 지능화로 경제효과 최대 455조원까지 창출 등의 원대한 꿈을 세웠지만 산업계에선 실현 가능성이 낮은 '공허한 소리'라는 비관론이 나오고 있다. 뭔가를 해보겠다고 정부가 의욕적으로 나서고 있는데 산업계에서는 왜 반응이 시큰둥할까.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정부 발표 가운데 그나마 '(가칭)미래사회 법제정비단'을 발족한다거나 역기능 방지 시책을 담은 기본 법제를 마련하고, 선허용-후규제 방침에 따라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 로드맵'을 수립하기로 한 것 등은 앞으로의 일이니 지켜봐야 한다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소위 '데이터3법'을 묶어둔 채 AI산업을 육성시키겠다고 한 것은 AI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거의 없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란 비판이 높았다. AI란 나무는 데이터란 양분을 섭취해야 성장하는데, 지금 풀어야 할 규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국민에게, 그리고 AI 업계 종사자들에게 희망고문만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우리 사회는 아직도 전문가들의 의견보다는 정확한 근거도 없는 대중적 선동이 더 먹히는 사회다. 이른바 '공포마케팅'이 아직도 여론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직도 끊이지 않는 '탈원전' ㅡ쟁이다. 과연 탈원전 정책을 잘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에 대한 찬반 논쟁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가운데 탈원전 선언의 객관적 근거가 무엇인지는 지금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거리에 떠도는 소문처럼 만약 정부가 '판도라'란 영화를 보고 탈원전을 결심했다면 정말 실망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묵살된 채 원전이 폭발한다는 가상의 소재를 삼은 영화를 보고 '공포마케팅'에 휘둘리는 정책을 결정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 대학의 수능비중을 높이겠다는 것도 전문가들의 의견은 묵살된 채 정부 지지율이 떨어진다는 '공포마케팅'으로 결정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특혜가 논란이 되자 대통령 말 한마디로 정책이 뒤집어졌다. 교육부총리는 대통령의 발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수능비중을 줄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으나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 탓에 '대전(대치동 전세)'이라도 가야 한다는 학부모들 영향으로 강남 부동산 값은 고공행진 중이다. 데이터3법도 마찬가지다. 시민단체 등이 개인정보의 오·남용을 지적하는 '공포마케팅'에 정부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있고, 국회의원들은 부화뇌동하고 있다. 정말 그렇게 위험한지에 대한 여부를 검증하기 위한 움직임은 없다. 그저 불안에 떠는 것이 전부다. 이러니 "아마추어에, 얼치기들 말만 듣고 정책을 수시로 바꾸는 정부"란 비판을 받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전문가들을 폄훼하려는 움직임이다. 이들은 전문가들이 자기들 밥그릇 챙기려고 원전은 안전하다, 데이터3법을 허용해도 개인정보 유용은 없다고 말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건 전문가들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국민과 나라를 팽개치는 나쁜 집단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그건 그들을 두번 죽이는 일이다. 그럴 바에야 전문가라고 부르지도 말아야 한다. 국민 전반적인 지적 수준이 높아지다보니 한 이슈에 대해 여러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일부에서 공포마케팅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거기에 휘둘리면 안 된다. 국민에게 막연하게 불안감만 주지 말고, 냉철하게 객관적 데이터를 제시해야 모두에게 지지를 받을 수 있다.

2019-12-18 15:51:53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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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욱 원장의 성형이야기] 노안성형

[홍종욱 원장의 성형이야기] 노안성형 제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는 것보다 더 큰 스트레스가 또 있을까? 요즘 동안열풍에 힘입어 젊은층은 물론 중장년층 및 노년층 사이에서도 성형수술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노안성형의 특징은 좀 더 예쁘고 또렷한 이목구비를 만드는데 치중하기 보다는 젊고 탄력 있는 외모를 만드는 데 목적을 둔다는 것이다. 동안과 노안을 결정짓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주름인데, 실제로 눈가나 이마, 입가, 팔자주름만 없애줘도 훨씬 젊어 보이는 인상을 만들 수 있다. 현재 성형외과에서 시행 중인 주름성형은 크게 비침습 요법과 수술요법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비수술요법은 필러나 보톡스 제재를 주름 부위에 시술해주는 방법으로 피부를 절개하지 않아 흉터나 부기가 남지 않고 시술 즉시 일상생활도 가능해 누구나 부담 없이 시술받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또 시술시간이 짧고 간편해 직장인이나 방송인, 취업준비생, 면접생, 정치인 등 이미지개선이 필요한 이들 사이에서 '美테크'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다만, 주사성형시술은 최소 6개월에서 1년이면 피부에 거의 흡수되어 효과가 사라지기 때문에 보다 영구적인 효과를 원한다면 수술요법을 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때 코 옆에서 입가로 이어지는 일명 '팔자주름(비구순주름)'이 깊어 고민이라면 필러보다 지속력이나 생착률이 높은 '자가지방이식술'이나 보형물을 삽입해주는 '귀족성형'을 시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반면 이마주름은 주름의 정도가 경미하다면 보톡스 시술을 통해 간단하게 제거할 수 있지만, 이미 깊게 자리 잡은 노인성주름은 보톡스 만으로는 눈에 띄는 개선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처음부터 이마거상술을 시행하는 것이 좋다. 이마거상술의 장점은 처진 이마피부를 당겨 탄력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물론 넓은 이마를 좁게, 좁은 이마를 넓게 만들어줄 수도 있으며, 피부를 박리한 상태에서 미간 주름의 원인이 되는 '추미근(눈썹주름근)'을 제거해주면 미간주름도 영구적으로 없앨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얼굴 곳곳에 자리 잡은 표정주름과 처진 피부탄력을 동시에 해결하고 싶다면 '안면거상술(페이스리프트)'을 시행하면 된다. 주름성형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안면거상술은 늘어진 피부를 완전히 박리해 팽팽하게 당긴 후 남은 피부를 제거해 자연스럽게 모양을 잡아주는 시술로 수술과정에서 눈가주름의 원인이 되는 안륜근, 일명 '까치발주름'을 제거해주면 눈가주름을 영구적으로 없앨 수 있다. 수술에 앞서 과거 불법성형시술을 받은 경험이 있거나 필러시술을 받고 딤플(피부가 움푹 패인 현상)이나 염증, 피부괴사 등의 부작용이 발생했다면 '이물질제거술'을 통해 피부 속에 남아 있는 이물질을 일일이 제거해줘야 한다. /성형전문의 세민성형외과 원장

2019-12-17 14:32:10 박승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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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의 본초 테라피] 애연가, 애주가들을 위한 해독 식품 '브로콜리'

[김소형의 본초 테라피] 애연가, 애주가들을 위한 해독 식품 '브로콜리' 슈퍼푸드 중 하나인 브로콜리는 건강에 이로운 성분들이 풍부하게 들어 있는 데다가 항암 효과가 뛰어난 식품으로 한때 각광을 받았다. 설포라판, 인돌은 물론이고 각종 비타민, 식이섬유 같은 성분들이 면역력을 강화하여 암은 물론이고 다양한 질병으로부터 몸을 보호해준다. 특히 겨울철만 되면 체력이 떨어지고 감기 같은 질환에도 자주 걸리며 잔병치레가 많은 허약한 사람들에게 좋은 식품이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많은 직장인이나 체력이 많이 요구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브로콜리는 좋다. 레몬보다 훨씬 많은 비타민 C를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피로를 자주 느끼는 사람들은 브로콜리를 섭취하면 도움이 된다. 정신적 스트레스로 신경이 예민해지고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좋다. 가공 식품을 많이 섭취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세먼지 같은 외부 오염 물질에 자주 노출되는 현대인들에게는 해독 식품이 건강 관리에 도움이 된다. 브로콜리는 간을 보호하며 간의 해독 작용을 돕는다. 특히 브로콜리의 인돌 성분은 체내 독성 물질의 배출을 촉진하는 데 효과적이다. 따라서 술을 자주 마시는 사람들의 간 보호에도 좋고 담배를 많이 피우거나 간접 흡연 등으로 인한 독성 물질의 배출에도 브로콜리가 도움이 된다. 또한 브로콜리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엽산은 태아의 뇌 발달에 중요한 영양소이기 때문에 임산부들에게도 좋다. 브로콜리는 줄기보다는 부드러운 송이 부분만 먹는 사람들도 있지만 줄기에도 영양 성분이 풍부하기 때문에 줄기까지 모두 먹는 것이 좋다. 브로콜리는 볼록 솟은 송이 부분이 듬성하지 않고 빡빡한 것이 좋고 색은 짙은 녹색으로 선명하고 너무 무르지 않은 것이 좋다. 브로콜리의 항산화 성분들은 열에 약하기 때문에 너무 많이 조리해서 먹지 않는 것이 영양학적 면에서 좋다. 그렇다고 생으로 먹을 경우 잘 소화되지 않아 위장이나 대장에 부담을 주기 쉬우므로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먹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2019-12-16 06:48:47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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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윤 변호사의 알기 쉬운 재건축 법률] 재건축 조합은 공사도급계약을 해지할 수 있을까?

[여지윤 변호사의 알기 쉬운 재건축 법률] 재건축 조합은 공사도급계약을 해지할 수 있을까? Q. A조합은 시공자 선정 총회를 통해 시공자로 선정된 건설회사와 공사도급계약을 해지하고자 한다. 이 경우 반드시 시공자의 공사도급계약상의 의무를 위반한 사유가 있어야만 할까? 민법 제673조는 "수급인이 일을 완성하기 전에 도급인은 손해를 배상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위 규정의 취지는 수급인에게 아무런 귀책사유가 없는 경우에도 도급인이 일방적인 의사에 기하여 도급계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하면서, 그 대신 이로 인하여 수급인이 입게 될 손해를 배상하게 함으로써, 도급인의 자유로운 계약 이탈과 수급인의 손해배상을 동시에 보장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재건축조합은 시공자의 공사도급계약상의 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공사도급계약을 해지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재건축조합이 시공자의 채무불이행 사유가 없음에도 민법 제673조에 의하여 도급계약을 해지할 수 있을까요? 하급심 판례 중에서는 재건축조합이 민법 제673조에 의하여 해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다소 부정적으로 본 경우도 있습니다. 위 판례는 재건축조합이 시공자와 체결하는 도급계약은 단순한 도급계약과 달리, 시공자의 사업경비 대여나 분양업무 수행 등을 비롯하여 재건축사업 시행과 관련된 복잡한 법률관계를 정하고 있어서, 민법 제673조가 곧바로 적용될 수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대구지방법원 2019. 7. 1.자 2019카합10218 결정). 그러나 단순한 도급계약과 복잡한 도급계약의 구별 기준이 명확하게 있다고 보기 어렵고, 민법 제673조가 단순한 도급계약의 경우에만 해제권 행사가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지도 않다는 점에서 위 판례의 논리는 쉽게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다른 하급심 판례 중에서는 재건축조합도 민법 제673조에 근거하여 공사도급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본 경우가 다수 있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도 재건축조합이 약정 해지사유나 법정 해지사유가 없다고 하더라도 민법 제673조에 근거하여 공사도급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9. 11. 29.자 2019카합50610 결정) 또한 광주지방법원도 "도급계약의 성격상 시공자에게 조합의 의사에 반하여 공사의 완성 전에 도급계약의 지속을 요구할 권리가 인정되기 어렵다"면서 도시정비사업의 도급인이 민법 제673조에 근거하여 공사도급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결정한 바 있습니다(광주지방법원 2017. 4. 27.자 2017카합 50155 결정). 특히 시공자가 공사도급계약이 해지된 이후에 조합을 상대로 입찰절차 등 후속 절차의 진행을 금지하는 가처분 등을 신청한 경우, 설사 시공자의 계약상 의무 위반 여부가 가처분 사건에서는 명확하게 판단되지 아니한다고 하더라도, 조합이 민법 제673조를 행사하여 공사도급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이상, 가처분 신청의 피보전권리나 보전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을 여지가 많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도 "시공자는 공사도급계약의 해지로 인하여 손해가 있다면 재건축조합을 상대로 그 배상을 구할 수 있을 뿐, 시공자에게 입찰절차의 중지나 후행절차의 이행의 금지를 구할 피보전권리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9. 7. 5.자 2019카합21061 결정). 다만 이 경우 조합은 시공자에 대한 손해배상의 문제가 남게 된다는 점에 관해서는 미리 인지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2019-12-15 09:36:57 손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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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한의 작가산책/4]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자들의 삶을 글로 그려낸 이준태 작가

[b]"일제 강점기 대한민국에 사회주의 열풍이 불었다. 당시의 의식이 있는 젊은이들 상당수가 사회주의자가 됐다. 그들이 사회주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애국전선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b] [b]그들이 역사의 현실을 조금만 외면했다면 훨씬 편안하게 넉넉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어려운 길을 택했다. 그들은 끊임없이 감시를 당했고, 체포됐고, 지독한 고문을 당해야했다. 많은 애국자들이 감옥에서 죽었거나, 반신불수가 되어 출옥했다."[/b]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짧지만 이 한 문장이 주는 울림은 크다. 바다가 없이 배는 존재할 수 없고, 오토바이가 발명됐다 해도 자전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것엔 인과로 연결 된 고리가 존재한다. 역사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는 앞으로 우리 후손들이 지혜롭게 살아나갈 '단초(端初)'를 제공한다. 지난 3년 간 자료 조사를 통해 소설 '1915'를 집필한 이준태(64) 작가는 서울 서초동 인근 '책과강연' 연구실에서 필자와 만나 "당시 상당수 젊은이들은 (일제시대) 사회주의자가 됐고, 그들은 일제로부터 고문을 당하는 등 어려운 삶을 선택해야 했다"며 "그들은 충분히 역사의 현실을 외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왜 고문을 받으면서,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애국을 했어야 했는지, 저서 1915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통해 독자들에게 설명하고 싶었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b]- 자기소개를 부탁한다.[/b] "1954년 김제에서 태어나 익산 남성고와 전북대학을 나왔다. 군입대전 까지 전북을 떠난 기억이 없다. 어린 시절 가봤던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의 가위눌림을 감당해내기가 쉽지 않았기도 했다. 스스로 촌놈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후의 삶을 얘기하면 서부전선 연평도 내에서 해병대 장교로 복무했다. 전역 후 건설회사에서 5년간 근무했고, 지금 삶의 터전인 전남 광양에서 사업을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은 사업을 정리하고 글을 쓰는데 매진하고 있다." [b]- 글쓰기에 매진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b] "오랫동안 일기를 썼다. 그 전엔 전혀 써보지 않았던 일기였다. 그만큼 생면부지 객지에서 생업을 영위해간다는 게 힘들었다. 그 심정을 아무도 들어줄 이 없었으니, 내 자신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었다. 그뿐인가. 멀리 사는 친구들에게도 편지를 보내게 됐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들로부터 '글이 많이 좋아졌다'는 격려를 받았다. 일기와 편지를 그간 썼던 게 창작활동의 밑거름이 됐다." [b]- 펜을 들기 전 자신의 모습을 말해줄 수 있나.[/b] "먹고 살기위해 처절했었고, 그러기 위해 철저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글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에 착수하기 전에는 인터넷 카페나 친구들끼리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생활수필이나 여행기 등을 올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터무니없는 시도였다. 단편소설을 한 편도 써보지 않은 초보자가 장편소설에 도전한다는 것 말이다. 그럼에도 '사업을 정리하고 평생 가슴에 담고 있었던 서사를 소설로서 풀어보리라' 생각하고 장편소설에 도전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제 도전은 터무니없었다. 수필이나 여행기 정도 써본 게 전부였는데 장편소설에 도전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한 3년 정도 낑낑대니 소설의 윤곽이 나왔고, 거기에 1년을 더 가다듬자 초고가 나왔다. 그래도 내 자신이 신기했던 것은 그렇게 자학과 고통의 시간을 보냈지만 단 한 번도 포기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b]- 책을 쓰기까지의 노력, 어려운 점 등을 설명해달라. [/b] "저서의 등장하는 주인공은 집안 어른을 모델로 했다. 그 분은 일제강점기 때 중앙고보(현 서울 중앙고등학교)를 나왔고, 사회주의자였으나 요절했다. 그 분의 행적을 찾는데 노력했으나 거의 남아있는 게 없었다. 그리고 내 주의에는 그 시절을 증언해줄 분들도 이미 세상을 달리했다. 때문에 그 시절의 얘기를 챙겨볼 수 있던 것은 일제강점기 당시 신문이나 잡지들이 전부였다. 따라서 그렇게 자료를 수집하는데 1년이 걸렸다. 문제는 막상 자료를 다 모아놓자 그 다음 얘기를 꾸며가기가 너무 어려웠다. 마냥 붓방아만 찧고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글이 되든지 안 되든지, 무조건 하루 1쪽을 써내려가자.' 그렇게 1~2년을 보냈다. 시간이 흐르니 900쪽이 넘는 소설이 나왔다. 그렇게 만들어진 초고를 다듬고 다듬어서 지금의 1915가 나오게 됐다." [b]- 저서의 제목에 담긴 뜻이 궁금하다.[/b] "정확하지는 않지만 주인공을 1915년 태생으로 잡고 이 소설을 구상했다. 1915년이라면 일제의 강제 징용과 학병에 끌려가지 않을 나이였다. 우리나라 근대 역사상 거물 중에 1915년생을 들자면 시인 서정주와 정주영이 있다. 주인공이 사회주의를 택하지 않았다면 해방 후의 정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았을 것이다. 그는 일제의 지독한 고문에 얼이 빠져 해방이 된지도 몰랐고, 그해 겨울에 죽었다. 아름다운 젊은이였지만, 비극적인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인 아픔을 제목은 담고 있다." [b]- 곧 출간될 저서 1915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b] "자랑스러웠던 할아버지들의 얘기를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해방 후 친일세력들이 대한민국의 주류가 됐고, 그들의 논리에 의해서 정의·역사가 농단됐다. 우리는 아직도 사회주의하면 빨갱이라는 도식이 머릿속에 주입이 되곤 한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 한쪽에서는 사회주의가 꽃 피우고 있다. 전 국민이 의료혜택을 받고 있으며, 노인들은 노인 연금을 받고 있고, 수십조의 재산을 가진 기업총수와 현장 노동자들이 같이 앉아서 대등하게 임금협상을 하고 있다. 인류에 있어서 어떤 제도도, 어떤 법률도 완전한 적은 없었다. 인류는 끊임없이 그 시대의 여건에 맞게 개선해왔고, 조정해왔다. 자본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역사의 흙먼지에 사라져갔던 선조들의 정의로웠던 삶, 아름다웠던 삶을 통해 역사를 바로 알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이제 좌우이념을 떠나서 역사를 바로 봐야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절대로 3대 세습 왕조인 김정은의 북한은 사회주의국가가 아니다. 어느 경우에도 그 누구에게도 종북이라는 말은 삼갔으면 한다." [b]- 소설의 큰 주제가 사회주의인 것 같다.[/b] "성장기를 떠올려보면 끊임없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살았다. 할머니나 외할머니도 저를 사랑하지 않았다. 제 아버지가 빨갱이였기 때문이다. 특히 외갓집에 가면 저는 눈치꾸러기였다. 외할아버지가 우익인사로 6·25남북전쟁 때 학살을 당했기 때문이다. 어릴 땐 가장 위대하고 뛰어난 어른으로 생각했던 내 아버지가 어느 순간부터 무능력자, 얼치기 사회주의자가 됐다. 그래선지 청소년기에 아버지 삶에 노골적으로 반항을 많이 했다. 아버지는 그때 가슴이 많이 아팠을 것이다. 나는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다. 제 불효에 대한 반성과 아버지 삶에 대한 변명 정도로 생각하고 오래전부터 그려보고자 했던 게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자들의 삶이었다. 그리고 소설의 모델이 된 분은 우리 아버지의 사촌형이다. 우리집안을 빨갛게 물들인 장본인.(웃음)" [b]- 향후 계획이 있다면.[/b] "후속 작품으로 해방 후 좌우가 격돌하는 시대상황에서 한 집안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대립을 그려보고 싶다. 형제가 각자 다른 길을 걷다. 형은 남로당원이 됐고, 동생은 국군의 장교가 됐다. 갈등과 반목이 있었지만 어떤 상황이 주어졌어도 서로를 원망하고 적대시하지 않았다. 해방 후 6·25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를 '1915'와 엮어서 대하소설로 만들어보고 싶다." [b]이준태 작가는...[/b] 1954년생 전북상과대학 경영학과 학사-해병대 장교 복무-25년 자회사 경영 2019. 12. 저서 '1915' 출간

2019-12-13 17:04:17 우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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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기적의 신화와 값비싼 교훈

[신세철의 쉬운 경제] 기적의 신화와 값비싼 교훈 자본금 500만원, 직원 5명으로 10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어패럴 제품 판매로 시작하여 30여년 만에 계열사 41개, 해외법인 396개에다가 임직원만 30만 명이 넘게 성장하는 기적(奇蹟)을 대우는 세웠다. 수출주도성장국가인 한국에서 대우의 수출액은 1998년 전체 수출의 14%를 차지하는 신화(神話)를 기록했다. 게다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이 세상 어디를 가도 널려 있는 돈이 보인다."고 하니 무수한 청년들이 외경심을 가졌다. 압축성장, 수출지원 시대를 숨 가쁘게 달리다보니 대우그룹은 어느 덧 41조원의 분식회계에다가 약 91조원의 부채를 짊어진 채 좌초하였다. 유수 금융기관과 수많은 대우채 소유자들에게 깊고 붉은 상처를 냈다. 혹자는 대우그룹 도산은 김대중 정부와의 갈등이 원인이라고 추측하지만, 기본적으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기술개발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승자독식 경향이 강해져가는 상황에서, 대우는 음식료품을 제외하곤 거의 산업전분야에 진입했지만, 1위 기술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금융억압(financial repression) 상황에서 사실상 공짜인 초저금리 구제금융을 많이 받을수록 땀 흘려 연구개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쉽게 거부가 되는 길이 있었으니 구태여 불확실성이 있는 기술개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는가? 과거 시중실세 금리가 10~15%인 상황에서 0.5~2%로 특별금융, 구제금융을 받아 기업을 인수·합병하면 순식간에 떼돈을 벌고 싶지 않아도 벌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당시 구제금융은 기업에 대한 정부(사실은 납세자가 부담하는)의 보조금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기적 아닌 기적'과 '신화 아닌 신화'가 가능했었다? 그러다가 금리자유화로 돈의 가격인 이자비용을 시장실세 금리로 지불하게 되면서 그룹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한국경제가 모라토리움 위기에 처하자 IMF는 구조조정의 방안으로 무지막지한 고금리 정책을 권유하려 시장금리가 20%를 넘어섰다. 부채로 문어발 확장을 한 선단경영(船團經營) 기업들의 목줄을 죄어 간 셈이었다. 그런데도 신용경색 상황이 벌어져 일반기업이 발행한 회사채는 소화되지 않고 4대 그룹만이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게 되면서 대우그룹은 회사채를 한도대로 발행하여 부채 규모는 더 크게 불어났다. 대우그룹은 자산규모가 외환위기 이전 5위권 내외에서 아시아 외환금융위기가 진행되면서 2위로 올라섰다. 물이 새고 배가 기우러지는데, 짐을 빨리 줄여 배를 가볍게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짐을 더 실어 더 무겁게 한 셈이었다. 초고금리 상황에서도 큰 기업은 망하게 놔두지 않을 것이라는 대마불사(too big to fail) 프레임을 신봉하고 외형 확장에 주력했던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까? "위기 뒤에 기회가 온다."고 하지만 기회를 잡으려면 먼저 살아남아야 했었다. 정경유착으로 무섭게 몸집이 불어난 대우그룹의 부실이 심화되어가는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관계자들은 외면하고 있다가 상황을 악화시켰다. 생각건대, 그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힌 대형부도사태는 시장실패보다는 정부실패가 더 크게 작용하였다고 판단한다. 만약 당시 정부가 부채가 쌓여가는 큰 대우그룹의 동향을 관찰하고 신속하게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하였더라면 부채 규모는 그렇게까지 크게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외환금융위기로 황당하게 퇴직당하고 퇴직위로금으로 고금리 대우채를 샀다가 날벼락을 맞은 황퇴자(荒退子)들의 시름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었을 것이다. 기적은 현실세계에서 일어날 수 없는 기이한 사건이다. 신화는 신비스러운 불가사의로 이 세상 일이 아니다. "경제에는 공짜 점심이 없다"고 하는데 부가가치창출 능력이 취약한 상황에서 정경유착에 의존하거나 비정상 금융기법으로 그 신화를 이루었으니 최악의 사태 돌발은 예상된 일이었다. 대우사태는 기업경영은 물론 국가경영에 값비싼 교훈을 주고 있다. 폴 크루그만은 "과거의 위기 사례가 배우지 못하는 교훈(unlearnt lesson)으로 버려진다면 위기는 다시 반복된다."고 하였다. 그 미증유의 불상사가 다시는 이 땅에서 재현되지 말아야 한다. [b]주요저서[/b]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2019-12-13 14:21:31 최규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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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미 기자의 '와이, 와인(Why, wine)']<52>또 한 번의 그레이트 빈티지…佛 보르도 2016

와인애호가들에게 즐거운 해가 이어지고 있다. 대표선수인 프랑스 보르도 와인이 2015년에 이어 2016년도 역대급이라는 '그레이트 빈티지'로 평가되면서다. 와인에서 빈티지(vintage)란 포도를 수확한 해를 말한다. 프랑스 보르도는 매년 온화한 기후가 이어지는 미국 캘리포니아나 호주 등과 달리 해마다 포도재배 품질에 편차가 날 수밖에 없고, 와인을 선택하는데 있어서도 빈티지가 중요한 기준 중 하나로 여겨진다. 올해도 보르도 그랑 크뤼 연합(UGCB)이 주최하고 소펙사 코리아가 주관하는 '2019 보르도 그랑 크뤼 전문인 시음회'가 열렸다. 보르도 72개 샤또의 2016 빈티지가 한국에 첫 선을 보이는 자리다. '그랑 크뤼(Grand Cru)'는 프랑스어로 뛰어난 포도밭을 뜻한다. 매우 우수한 품질의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나 포도밭에 부여되는 명칭으로 지난 1855년 프랑스 황제였던 나폴레옹 3세가 파리만국박람회를 개최할 때 출품할 와인을 선정하면서 처음 정해졌다. 1973년 설립된 보르도 그랑 크뤼 연합은 134개의 최고 샤또들로 구성돼 있다. 매년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시음행사를 열고 와인 애호가들과 회원 샤또가 직접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4년 첫 개최를 시작으로 올해 16회를 맞았다. 국내 와인애호가들에게는 연말에 절대 놓칠 수 없는 와인행사 중 하나다. 2016년은 초반에는 비가 쏟아졌고, 후반기엔 건조했다. 우기에서 건기로 이어지면서 결과적으론 균형잡힌 빈티지가 만들어졌다. 무더위 없이 건조하고 따뜻한 낮과 선선한 밤으로 2016 빈티지 와인은 묵직하면서도 풍부한 과실향을 그득히 품게 됐다. 특히 보르도 특급 샤또들의 경우 21세기 들어 최고라는 2015 빈티지마저 뛰어넘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시음회에는 로낭 라보르드 UGCB 신임 회장을 비롯해 보르도 현지 그랑 크뤼 샤또의 대표들과 양조 책임자들이 대거 방한했다. 쌩떼밀리옹 그랑크뤼와 뽀르롤, 마르고, 뽀이약, 쏘테른까지 주요 13개 원산지에 속하는 최고 와인들이 한 공간에 펼쳐졌다. 올해 와인스펙테이터(WS)의 선택도 보르도 2016 빈티지였다. 와인 스펙테이터가 꼽은 최고의 와인 1위는 '샤또 레오빌 바르똥(Chateau Leoville Barton) 2016'이다. 샤또 레오빌 바르똥은 보르도를 대표하는 곳 중 하나로 그랑 크뤼 2등급이다. 포도밭은 생줄리앙 북쪽에 위치해 있다. 남쪽 언덕을 마주하고 고도가 좀 더 높아서 전통적으로 검은 과실의 느낌이 풍부한 와인을 만들었다. 2016 빈티지는 카버네 소비뇽 86%에 나머지는 메를로를 섞었다. 샤또 레오빌 바르똥의 1위가 더 반가운 것은 그랑 크뤼 와인치고는 많이 비싸지 않다는 점이다. 다른 그랑 크뤼 대표 와인들이 몇 십만원을 호가하는 반면 샤또 레오빌 바르똥 2016은 87달러에 시장에 풀렸다. 보르도 2016 빈티지 가운데서는 '샤또 삐숑 바롱 2016'이 8위에 이름을 올렸다. 샤또 삐숑 바롱 역시 보르도 그랑 크뤼 2등급이다. AXA 밀레짐이 인수한 뒤 모든 양조시설을 현대화하고, 양조기법도 현대적으로 도입했다. 2016 빈티지는 카버네 소비뇽 85%에 메를로 15%를 섞어 만들었다.

2019-12-12 14:05:17 안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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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래영 원장의 건강관리] 한방 다이어트

[김래영 원장의 건강관리] 한방 다이어트 각종 모임과 회식이 잦아지는 겨울철엔 음식 섭취량은 늘고 활동량은 감소해 살이 찌는 체질로 변하기 쉽다. 또 두꺼워진 옷차림에 살이 쪄도 '옷으로 가리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에 팔뚝이나 아랫배, 허벅지, 엉덩이, 옆구리 등에 군살이 붙기 쉬운데 정말 살을 빼고 싶다면 겨울철에 다이어트를 할 것을 권장한다. 추운 겨울철에는 우리 몸이 체온 유지를 위해 스스로 체지방을 태워 여름보다 기초대사량이 약 10%가량 증가하기 때문이다. 단, 고도비만 환자나 평균 체중보다 10∼20㎏ 이상 나가는 과체중인 경우 다이어트에 성공하더라도 요요현상이 올 확률이 높고, 요요현상으로 인해 원래 체중보다 더 증가할 우려가 있어 처음부터 전문의의 처방을 받아 안전하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살을 빼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한방치료 가운데 건강과 미용을 목적으로 한 '한방 다이어트'는 개개인의 체질, 체형, 영양상태, 근육량, 체지방량, 기초대사량 등을 고려한 맞춤형 다이어트 프로그램이다. 간혹 다이어트 한약 복용 후 가슴 두근거림, 입마름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는 한약 속에 함유되어있는 마황의 작용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마황은 사용해서는 안 되는 한약재인 것처럼 잘못된 정보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명백히 잘못된 인식이며 한의사의 정확한 진단에 따라 마황을 복용하는 것은 안전하며 비만치료에도 효과적이다. 중국 북부와 몽골 등지에 분포하는 상록관목인 마황은 뿌리는 지한작용을 하고, 지상부는 발한작용을 한다. 대개 마황이라 하면 지상부 줄기 부분을 말하며, 발한작용과 선폐작용을 하여 감기나 천식, 기침과 같은 호흡기 질환이나 부종 등 비만 치료에 주로 처방된다. 특히 닫혀있는 땀구멍을 열어 몸의 한기를 물리치고 가라앉는 기운을 밖으로 발산하는 발한작용을 하고, 열이 많이 나는 사람의 경우 체온을 내려주고 식욕을 조절해주며, 잦은 기침도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다만 너무 많은 양을 사용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도 있을 수 있으니 반드시 한의사의 진료 하에 처방받아 복용해야 한다. 참고로 현재 대한 한방비만학회에서는 마황 내복약의 경우 하루 8~16g의 사용이 일반적이며 비교적 위급 증의 경우 24g까지 무난하다고 권고한다. 미국 FDA의 에페드린 하루 허용치가 150㎎ 인데 마황 24g의 경우 에페드린 수치가 126㎎ 정도에 해당한다. 또한, 최근 한약도 다양한 제형들이 개발되어 탕약, 연조엑스제(물엿 같은 상태의 엑스제), 환제로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으며, 출산 후 다이어트를 고려하고 있다면 수유하면서도 복용할 수 있는 한약재들이 있으니 전문한의사와의 충분한 상담을 통해 개개인의 체질에 맞게 처방받으면 된다. /압구정 대자인 한의원 원장

2019-12-12 13:41:22 박승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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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신경증

신경증이란 용어는 한권의 책으로 정리될 정도로 매우 광범위하면서 흔하게 사용되는 용어이다. 일반적인 정신과 혹은 상담 장면에서도 가장 흔하게 만나게 되는 정신과적 증상이며 전문적인 진단용어이기도 하다. 정신의학적으론 신경증은 '급성 혹은 만성적으로 지속되는 스트레스에 대한 정서적 반응'으로 궁극적으로 그 스트레스를 해결하는데 부적절한 감정이나 행동으로 나타나는 증상을 의미한다. 하지만 아직 까지도 신경증이란 용어는 정신과 의사에 따라 상이하게 사용되다 보니 대부분의 독자들이 신경증에 대해 알고 있는 듯 하지만 무엇인지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을 못하는 이유도 용어의 미묘함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정신병과 반대의 의미로 사용된다. 현실감각이 심각하게 손상되면 정신병을 가지고 있다고 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 신경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신경증이란 용어를 무의식적 갈등의 존재를 의미하는 정신역동적인 문제로도 이해하였다가 진단편람에서 폐기되기도 하였다. 신경증이란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1784년 컬렌(Cullen)이란 의사에 의해서인데 이때는 감각과 운동의 초자연적 질병을 기술하기 위해 영어에 처음 도입되었다고 한다. 이는 특정 장기에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신경계 전체 또는 감각과 운동이 종속되어 있는 신체계통의 질병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어떤 사람이 신경에 문제가 있다면 어디로 데려가야 할까? 아마 신경과일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미치지는 않아서 현실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데 불안하고 우울하고 힘들어하고 자살을 생각한다면 어디로 데리고 갈 것인가? 아마 정신과일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는 신경의 문제와 신경증적인 문제의 구분은 초기에는 구분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미치지 않았는데 그리고 실제로도 신경에는 큰 문제가 없는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일반인들의 용어는 '신경에 문제가 있어'였던 것이다. 그래서 1940년대 정신분석이 나오기 전까지는 의사들도 정신병이든 신경증이든 모두 다 본질상 '신경에 의한 것'이라는 일종의 허구에 동조하였고 특히 당시의 정신과 의사들은 매우 열성적으로 이러한 시선에 동조하였다고 한다. 그 이유는 사실 좀 단순하지만 흥미 진지하다. 정신의학이 현대처럼 발전하지 않았던 시대에 정신병을 전문적으로 치료-사실 감금에 좀 가까운-하는 정신과 의사라고 상상해 보라.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교수로 남고 싶지만 개업을 할 수밖에 없다. 당신이 처한 입장은 열자라는 중국 고전 중 한 부분에 나오는 내용과 일치한다. 용을 잡는 무술을 10년 동안 훈련한 무술의 고수와 같은 것이다. 공부를 마치고 그래서 스승으로부터 떠밀리다 시피해서 하산했다. 자 당신이 투자한 돈을 회수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렇다. 용을 잡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가? 그렇다. 용이 없었던 것이다. 이럴 때 누군가가 어디서 용이 되기 전의 이무기란 놈을 봤다고 하고 그것을 잡아 줄 수 있는지 한다면 어떨 것인가? 그것이 지렁이라고 하여도 아마 용이 되려는 이무기라고 우기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와 동의되는 공모를 통해 도시의 신경-전문의사, 전기치료사, 신경정신과 의사로 불리면서 사회적 지위와 높은 수입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최근까지도 왜 신경정신과였다가 신경과, 정신과였다가 다시 신경정신과였다가 하면서 한 여자랑 결혼과 이혼을 되풀이 하는 것 같은 상황이 정신의학에서 일어났는지 감이 올 것이다. 현재는 완전히 다른 여성과 재혼해서 정신건강 의학과 의원이 되었지만 말이다.

2019-12-11 14:54:30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