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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 <70> 장충단을 비집고 들어선 박문사, 그리고…

서울 장충동에 있는 신라호텔 정문(사진)은 여느 호텔의 그것들과는 사뭇 다른 모양새다. 조선의 5대 궁궐 가운데 하나인 경희궁의 정문 '흥화문'을 쏙 빼닮았다. 현재 신라호텔이 들어서 있는 남산 자락의 이름이 '춘무산'으로 바뀌고 거기에 '박문사'라는 사찰이 들어선 것은 지난 1932년 10월 26일의 일이다. 춘무산의 춘무(春畝)는 이토 히로부미의 호이고, 박문사의 박문은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을 가리킨다. 이토 히로부미의 23번째 기일을 맞아 박문사를 세우면서 그 정문으로 쓰려고 흥화문을 떼어왔던 것이다. 박문사가 들어선 곳은 원래 장충단 영역이기도 하다. 장충단은 명성황후 시해사건, 즉 을미사변 당시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 죽은 조선 군인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웠던 제단이다. 그랬던 곳을 일제는 벚꽃을 심으면서 공원화해버렸고, 급기야 한쪽에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사찰까지 지어버렸다. 물론 해방 뒤 박문사의 운명은 온전하지 않았다. 본전이 있던 곳 주변에 일제의 기를 누른다며 '民族中興'(민족중흥)이라 새겨놓은 암반만이 그 역사를 어렴풋하게나마 증언해주고 있을 뿐이다. 흥화문도 지난 1988년 경희궁으로 옮기면서 그것을 본뜬 지금의 새 문을 세워놓은 상태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장충단을 비집고 들어선 박문사와 그것을 세운 의도는 사라졌을지언정 그 피해자들의 문제는 여전하다. 자그마치 1114회의 수요집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서 피폭당한 조선인과 그 후손들, 동토에 남겨진 '사할린 한인'과 '시베리아 억류 한인 포로', 해방 후에도 한참 동안 격리된 채 살아온 '한센인' 등 일제가 잉태하고 한국 정부가 방치해온 문제들은 여태 해결되지 않은 채 잊혀져 가고 있다. /'다시, 서울을 걷다' 저자

2014-02-27 11:27:46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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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 "콩밥 먹는다"는 말의 역사

콩밥은 영양만점에 맛도 좋다. 반면 우리말 이미지는 최악이다. 왜 그럴까? 예전 교도소에서 콩밥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콩밥 먹는다"는 말과 지금 교도소는 전혀 관계가 없는데도 '콩밥=교도소'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남은 것을 보면 재소자에게 콩밥은 꽤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교도소에서 콩밥이 사라진 것은 1986년부터다. 지금은 쌀 90%, 보리 10%의 잡곡밥이지만 앞으로는 100% 쌀밥을 제공한다고 한다. 반면 옛날에는 주로 콩밥을 먹었다. 재소자 영양도 고려하고 값도 싸기 때문에 콩밥을 제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감옥이 그렇게 휴머니즘이 넘치는 곳이 아니다. 1957년 형무소 재소자들은 쌀 30%, 보리 50%, 콩 20%가 섞인 잡곡밥을 먹었다. 콩이 20%면 쌀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일제 강점기 때는 더했다. 1936년 형무소 식단표에는 쌀 10%, 콩 40%, 좁쌀 50%로 적혀있다. 이 정도면 콩덩어리에 좁쌀 몇 알 붙은 수준이다. 하루 세끼 이런 콩덩어리를 먹는다는 것은 고역이다. 얼마나 먹기 싫었으면 콩밥 먹는다는 말이 다 생겼을까? 콩밥이 어떤 식사였는지는 1936년 신문에 실린 동시(童詩)에서 짐작할 수 있다. "콩밥을 보면 넌더리가 나요. 우리 집은 매일 콩밥만 짓지요. '엄마, 나 콩밥 먹기 싫어, 쌀밥 지어, 응'하고 졸랐더니 엄마는 '없는 집 자식이 쌀밥이 뭐냐. 어서 먹지 못하겠니'라며 부지깽이를 들고 나오셨다. 나는 꿈쩍도 못하고 안 넘어가는 콩밥을 억지로 넘겼지요." 교도소에서 쌀밥을 준다니 느낌이 묘하다. 앞으로 "콩밥 먹는다"는 말 대신 "쌀밥 먹는다"는 말이 생기겠다. /음식문화평론가

2014-02-26 11:16:23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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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호의 와인스토리]신세계와 구세계

와인 생산국은 크게 구세계와 신세계로 구분된다. 조지아에서 시작된 와인 재배는 이집트와 터키를 거쳐 그리스와 이탈리아로, 다시 유럽의 다른 나라로 전파된다. 그렇게 해서 유럽을 중심으로 한 구세계 와인산지가 완성된다. 구세계는 와인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비롯해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 그리스 오스트리아 헝가리 등이 대표적인 나라다. 구세계 와인의 역사는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는 유럽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로마 제국의 영토와 와인산지는 거의 정확히 일치하며 확대됐다. 중세 성직자들의 필요에 의해 와인 양조가 발달했고 흑사병의 창궐 후 물을 기피하게 되면서 와인이 일상의 음료로 자리잡았다. 프랑스의 화려한 파티 문화 또한 그렇다.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르네상스의 중심 메디치 가문에 의해 와인을 곁들인 파티 문화가 프랑스로 전파되었다.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와인산지 보르도 지방의 쟁탈전이었다. 백년전쟁에서 패한 영국은 보르도를 대체할 와인 산지를 찾아 나선다. 그 결과 포르투갈 와인이 선택 받았다. 포르투갈에서 영국으로 운반하는 도중 와인이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주정을 첨가한 주정강화 와인, 오늘날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포트와인이 만들어졌다. 신세계 와인산지는 유럽 각국의 식민지 개척에 의해 구축된다. 신세계의 대표로 꼽히는 미국 칠레 아르헨티나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 모두의 와인 생산은 서구 열강의 점령과 함께 시작됐다. 식민지를 지배하기 위해 파견되거나 거주 목적으로 이주한 서구의 귀족과 부유층은 이미 습관화된 와인 음용을 포기할 수 없었다. 동시에 식민 지배를 위해 기독교나 가톨릭을 전파한다는 종교적 목적을 위해서도 와인이 필요했다. 이들은 본토에서 포도나무를 가져와 식민지에 이식했고 그렇게 해서 신세계 와인 산지가 조성됐다. 신세계 와인은 계속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나라 안에서도 재배 면적이 확대되는 추세이며 국가도 늘어난다. 중국 일본 등이 대표적이다. 와인 재배가 가능한 지역의 빈곤한 국가들은 국민소득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예외 없이 와인산업을 일구는 패턴이 신 조류로 정착되고 있다.

2014-02-25 11:03:12 조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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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트렌드 읽기] 패션은 종합예술의 완성체

에디 슬리먼(Hedi Slimane)은 생로랑(Saint Laurent)의 수장으로 연 첫 번째 쇼에서 남다른 초대장을 뿌렸다. 그가 사람들에게 보낸 컬렉션 초대장은 검은색 노트북(Notebook)이었다. 매우 단순한 디자인의 노트북에는 쇼의 티저(Teaser, 예고 광고)이자 단서가 실렸다. 쇼와 작품의 영감이 된 아티스트의 작품을 고스란히 담아 전달했다. 초대 받은 이들은 쇼를 보기도 전에 에디 슬리먼이 보여줄 창작에 대한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오프닝 세레모니(Opening Ceremony)의 201415FW 컬렉션이 화제였다. 모델들이 걷는 런웨이의 벽면을 초콜릿으로 꾸몄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향을 맡는 것은 물론, 맛을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시각적 만족을 주는 런웨이에 후각, 미각에 대한 자극을 덧붙인 셈이다. 오프닝 세레모니를 이끌었던 캐롤 림과 움베르토 레옹은 지난 해 11월 겐조의 디렉터로 파리에서 또 다른 논란을 일으켰다. 그들에게 패션은 경계 없는 꿈이다. AVOC는 패션 브랜드 중에서도 창의성이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선보인 201415FW 컬렉션의 주제는 'Domestic Madness'였다. 남녀 관계의 파괴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첫 번째 시리즈를 내놓은 것이다. 이 컬렉션은 마치 연극이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연출을 차용했다. 제작된 화보를 보면 사진만 봐도 앞뒤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 옷으로 시선을 끌고, 이야기로 사람들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있다. 패션은 평범해졌다. 소비자들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과거처럼 이해하지 못하면서 패션이기 때문에 인정하고 걸치는 일은 없다. 오히려 수 많은 디자이너, 브랜드의 옷들을 분석하고 평가하며 가치를 매긴다. 디자인 자체에 대한 호응보다 디자이너의 철학과 그가 보여주는 행위에 대한 의미를 더 중요시 한다. 패션은 종합예술의 완성체로 탈바꿈 되고 있다. 완제품 산업에서 컨텐츠 산업으로 바뀐 것이다. 창의적 디자인보다 단단한 메시지가 더 중요해졌다. 패션시장이 모양과 색상이 아닌 철학과 사상의 유통공간이 된다? 디자인 할 맛이 나겠다.

2014-02-24 14:49:57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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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호의 베이스볼 카페]한국야구 지금이 진짜 위기

프로야구 10개 구단은 미국과 일본 오키나와 등지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전지훈련지발 기사들이 관심을 모으는 시점이다. 그러나 소치 동계올림픽 내내 야구는 스포츠 관심사에서 비켜 있었다. 빙속 이상화의 2연패, 쇼트트랙 박승희의 2관왕, 그리고 피겨여제 김연아의 편파판정으로 인한 은메달에 온 국민의 눈길이 쏠렸다. 국민들은 열흘 넘게 감동에 젖었고 분노에 몸을 떨었다. 국가적인 스포츠 이벤트는 국민들의 눈과 감정을 하나로 묶는다. 앞으로도 두 개의 큰 대회가 기다리고 있다. 6월에는 브라질 월드컵이 열린다. 월드컵은 올림픽에 버금가는 주목을 받고 있다. 두 대회 연속 16강 진출 여부가 관심이다. 9월에는 인천 아시안게임이다. 야구 종목이 있어 관심을 받겠지만 문제는 시즌이 중단된다는 점이다. 한국야구는 작년 LA 다저스 류현진 때문에 타격을 입었다. 다저스의 모든 경기가 생중계되면서 차원이 다른 메이저리그를 맛보았다. 최근 야구 르네상스라고 자부했지만 작년에는 관중이 감소했다. 올해는 추신수의 텍사스 이적, 윤석민의 볼티모어 입단으로 메이저리그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졌다. 여기에 돌직구 소방수 오승환 한신 입단, 이대호 소프트뱅크 이적까지 맞물려 상대적으로 한국야구는 왜소해졌다.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류현진과 윤석민·김광현 이후로 명맥이 끊겼다. 홈런타자 박병호가 등장했지만 스타급 신인들이 나오지 않는다. 콘텐츠와 스타의 부재는 위기로 이어진다. 오키나와의 일본야구 시범경기에는 구름 관중이 몰려들고 있다. 소치 올림픽과 스타급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속속히 진출했지만 야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여전하다. 33년을 맞는 한국야구는 여전히 기반이 취약하다. 관중이 조금 늘었다고 웃을 일이 아니었다. 더욱 저변 확대에 힘을 쏟을 때가 아닌가 싶다. /OSEN 야구전문기자

2014-02-24 11:31:55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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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인문학 산책]아메리칸 허슬, 코리안 허슬

최근 개봉된 영화 '아메리칸 허슬(American Hustle)'은 사기극을 벌인 남녀와 미국 연방수사국 FBI가 서로 짜고, 부패한 정치인들을 잡아들이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허슬'이라는 말은 '거칠게 밀어붙이다, 사기, 열정적 에너지, 70년대 유행하던 춤' 등을 이르는 매우 다양한 뜻을 지녔다. '미국식 사기극'이라고 번역할 만한 제목이지만, 이 영화에는 '허슬'의 여러 의미가 그대로 담겨 있다. 그런데 영화를 이해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타짜'나 '도둑들' 같은 작품을 떠올리면 오산이다. 이제는 고전이 된 '스팅'이나 '이탈리언 잡(Italian Job)'처럼 상대를 감쪽같이 속여먹는 스릴러도 사실 아니다. 물론 결정적인 반전의 속임수가 작동 하지만, 그보다 이 영화는 작품의 무대가 되는 미국의 70년대 중후반과 오늘을 서로 대조해서 생각해 보게 하는 의외의 매력이 있다. 주인공은 머리가 벗겨지고 배는 불룩 나왔다. 날렵한 인물을 연기해 온 크리스찬 베일의 상상을 넘는 변신이다. 그런 남자에게 미모의 에이미 아담스가 반한다. 지금이라면 이런 설정이란 대단히 비현실적이나, 둘은 잘 어울리는 사기극 파트너가 된다. 이와 함께, 명예욕에 사로잡힌 FBI 요원, 아랍계 거부의 투자를 애타게 원하는 시장, 가짜 아랍 왕족, 그리고 이권사업에 손을 대는 마피아가 등장한다. 이 시기는 어떤 때였는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이 사임하고, 이와 관련된 CIA, FBI의 위신은 추락한다. 베트남전 패전과 오일 쇼크 등으로 미국 사회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몸부림친다. 안에서 해답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 중동의 오일달러를 갈급해 했고, 온 몸으로 흔들어대는 허슬 춤을 추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폭발할 지경이었다. 내용은 다르지만, 오늘의 미국도 내부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해 비틀거리고 있다. 지금 우리와 결코 다르지 않은 현실이다. 어쩌면 우리가 더 할 지도 모르겠다. 도처에서 가짜가 판을 치고, 각종 속임수가 날로 기이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더 큰 사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중이다. 영화 말미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미국 경제를 망친) 정작 잡아넣어야 할 자들은 하나도 잡지 못하면서." 진짜 허슬의 주역들은 꽁꽁 숨어 있거나 법의 보호를 받고 있는 모양이다. '코리언 허슬'이 나와야 할 판이 아닐까?

2014-02-23 18:34:12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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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필의 청론탁설]이산가족 상봉 확대 대책 절실

2010년 10월 이후 3년 4개월 만에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지난주에 열려 '이산의 한(恨)'을 달랬다. 납북어부가족을 포함한 남측 이산가족 82명이 금강산호텔에서 북측 가족과 감격스러운 해후를 했다. 상봉 가족 가운데에는 휠체어에 의지한 채 그토록 그리던 가족을 만나 볼을 비비고 가슴이 메어지도록 통곡하는 고령의 이산가족이 심금을 울렸다. 북에 두고 온 딸을 만나려던 90세의 어느 할머니는 만날 날만 손꼽아 기다리다 지난 5일 세상을 떠났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린다. 2차 대전 이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우리나라는 뭐니 뭐니 해도 이산의 아픔이 너무나 크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6.25전쟁과 분단으로 60년이 넘게 생이별한 사연은 생각만 해도 있을 수 없는 비극이다. 이미 가족을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한 채 세상을 등진 이산가족이 5만 7784명이나 된다. 현재 7만1480명만 생존해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03년 이후 이산가족 사망자수는 매년 3800여 명에 달하지만 상봉자수는 1600여 명에 불과하다"며 결국 2200여 명의 이산가족이 상봉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사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연구원은 이산가족이 20년 내에 대부분 사망하고 70대 이상 고령층은 10년 내 사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면서 모든 생존자가 북측가족을 만나려면 해마다 상봉자를 6600명이상으로 늘려야한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결국 지금처럼 100명도 안 되는 규모로 찔끔찔끔 상봉행사를 치르면 이산의 아픔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다. 따라서 이산가족 상봉대책을 획기적으로 세워야한다. 우선 횟수를 크게 늘리고 면회 장소도 금강산호텔 뿐만 아니라 판문점, 나아가 우리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DMZ내 세계평화공원 등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특히 1회성 이벤트를 벗어나 상시화를 추진해야한다. 나아가 아직까지도 파악되지 않은 이산가족의 생사확인은 물론 자유로운 서신 교환?영상 상봉?고향 방문 등 다양한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산가족의 대상자 '추첨' 선정 방법도 '고령 자우선'으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소한 7만여 이산가족이 생전에 한번만이라도 반드시 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남북 간의 대화를 통해 물꼬를 터주길 바란다. 언젠가는 남북이 자유로운 왕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실질적인 협력을 통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지금까지 이산가족 상봉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북측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노력은 바로 인도적 차원에서 독일이 추구한 '접근을 통한 통일의 길'이 될 수도 있다.

2014-02-23 10:37:5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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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놀로그] 4만7000원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이따금 감정이입 할 때마다 이 곳 저 곳에 기부를 했다. 보통은 기부할 때 '슬프다, 안 됐다, 미안하다' 등의 죄책감이나 기부대상이 불행에서 구제되길 바라는 간절함 같은 감정으로 비롯한 행동이었다. 한데 이번에 동참한 기부는 사뭇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아름다운 재단이 주최하는 '노란봉투'캠페인은 47억원이라는 손배소와 가압류를 판결 받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금캠페인이었다. 47억원이라니,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막막한 돈이니 한숨부터 나올 성 싶다. 한데 어떤 사람이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해보았다. 47억원이면 그저 엄두가 안 나지만 계산해보면 그 돈은 4만7000원씩 10만 명이 힘을 합하면 되는 그런 액수이기도 했다. 사실 4만7000원이라는 액수는 1만원, 5만원, 10만원이라는 액수에 익숙한 우리에겐 뜬금없는 숫자이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 특수함 때문에 '현실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한 아이엄마에게 그것은 아이 학원비를 아껴 보낸 4만7000원이었고 내게는 장바구니를 한 주 살림을 줄여서 보낸 4만7000원이었다. 그 와중에 가수 이효리씨가 꾸깃꾸깃한 4만7000원을 동봉한 친필편지를 아름다운 재단 측에 보내왔다. 사실 내가 기부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이효리씨의 영향이 컸다. 평소 선행을 많이 하는 유명인들은 1000만원이나 억 단위로 척척 기부하지 않던가. 이효리씨가 만일 거액을 기부했다면 와,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오히려 '내 일'처럼 느끼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한데 이효리씨가 달랑(?) 4만7000원을 보내주었기 때문에 그것은 바로 '내 일'처럼 느껴지며 아, 나도 같이 연대하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레 들 수 있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구제하는 형식의 시즌성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훌륭하지만 나는 모두가 어깨를 나란히 평등하게, 조금만 같이 애쓰면 해결이 충분히 가능할 법한 목적을 향해, 집중적으로 연대하는 일이 더 힘차 보이고 좋다. 현실주의자인 나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이고 왠지 집요한 목적의식을 체감시켜주는 '4만7000원'이라는 기부금액수가 이래저래 참 마음에 든다.

2014-02-23 10:33:02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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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이산상봉 계기 남북 봄맞을 채비해야

우여곡절 끝에 남북이 3년 4개월만에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성사시켰다. 1차에 이어 2차 상봉도 북측 상봉 신청자 88명과 남측 가족 357명이 만나 25일까지 금강산에서 혈육의 정을 나눈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장성택 처형 이후 가뜩이나 얼어붙은 남북관계 개선에 첫 물꼬를 텄다. 북한의 제3차 핵실험이라는 중대 도전에 직면했던 박근혜 정부는 취임 1주년을 맞아 남북관계에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북한의 반응도 적극적이다. 실제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의 북한측 단장인 리충복 조선적십자회 부위원장은 1차 상봉 후 조선신보와 인터뷰를 통해 "이번 상봉으로 남북관계 개선에서 새로운 '활로'가 열렸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산가족 상봉 이후다. 상봉 행사가 끝나면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은 상봉대가로 5ㆍ24 대북제재 조치 해제, 금강간 관광 재개 등 현안문제를 협상카드로 제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도 식량과 비료지원은 물론 금강산 관광 재개가 핫이슈로 부각될 것이 분명한 만큼, 북한의 비핵화 등 정치적 사안은 우선 제처 두고라도 본격적인 대화 국면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남북 현안 문제를 좀더 유연하게 풀어 가야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4월로 예정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남북관계에 상당한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고 관측했다. 오바마 방한시 양국 정상회담 의제 중 남북문제를 포함한 동북아 질서 재편에 관한 논의가 핵심이 될 것이라는게 외교가의 조심스런 분석이다. 최근 남북을 오고간 류전민 중국 외교부 부부장의 행보도 예사롭지 않다. 그의 방북과 관련, 북한 외무성이 중국과 6자회담 재개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어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류 부부장을 접견하고 "중국 측이 6자회담 재개 여건조성을 위해 북한에 대한 설득 노력을 한층 강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당사자간 물밑 협상이 분주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연두기자회견에 언급한 '통일 대박론'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물론 북한의 유화적 제스처에 대한 경계를 늦춰서도 안된다. 다음달 6일은 개구리가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남북관계도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대화를 통해 화해 무드가 조성되길 기대해 본다.

2014-02-23 09:55:48 김하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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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 <69> 한양도성을 깔고 앉았던 조선신궁

지난해 말 서울 남산식물원 터에서 한양도성 유구(사진)가 발견됐다. 총 연장 18.6㎞ 가운데 현재 12.3㎞만 남아있는 한양도성에 94.1m의 새 구간이 더해지는 순간이었다. 특히 일제 때 땅속에 파묻힌 뒤 근 100년 만에 빛을 보게 된 거라 의미가 남달랐다. 앞서 일제는 이 땅에 총칼만 갖고 온 게 아니었다. 애당초 민간 신앙이었던 '신도'를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민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종교로 재정립한 '국가 신도'도 이식했다. 국가 신도는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군국주의적 색채가 농후한 정신적 지배도구 그 자체였다. 그중 가장 핵심적인 것이 지난 1925년 서울 남산 중턱 사이에, 그것도 한양도성 성벽을 깔고 지은 '조선신궁'이었다. 일본 천황가의 시조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와 메이지유신과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이끈 '메이지천황' 등을 신으로 모셨고, 비슷한 시기에 지은 조선총독부를 경복궁 중심축에서 5.6도 기울여 조선신궁을 마주보게 했을 정도로 위상이 남달랐다. 물론 지금은 조선신궁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돌계단 일부가 옆으로 옮겨져 이용되고 있고 백범광장이나 안중근의사기념관광장 등 조선신궁 당시에 조성된 넓은 터들이 형태로나마 남아있는 정도다. 해방 이튿날 일본인 제관들 스스로 신위를 불태우고 건물을 철거해버린 탓이다. 서울시는 이번에 드러난 성벽 주변을 단장해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라고 한다. 다만 조선신궁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함께 안내할 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발굴 현장 주변을 걸으며 과연 한양도성 성벽이 왜 땅속에 묻히게 됐는지, 나아가 식민의 역사를 잊지 않게 하는 버팀목으로서 이 현장을 재조명하는 방법은 없을지 상상해본다. /'다시, 서울을 걷다' 저자

2014-02-20 15:15:59 메트로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