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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이선호의 베이스볼카페 : '갑'이 된 프로야구

2007년 굴지의 IT 통신기업 KT는 현대 유니콘스 인수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했다. 현대는 2007시즌을 끝으로 공중분해 됐다. 대신 2008년 우리 히어로즈가 현대 선수들을 물려받아 창단했다. 센테니얼 임베스트먼트라는 정체불명의 기업이었지만 7구단 축소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창단을 승인했다. 그로부터 불과 4년이 지난 2011년 프로야구의 인기를 바탕으로 NC 다이노스가 9구단으로 프로야구계에 뛰어들었다. 1년 뒤 KT는 부영과 뜨거운 경쟁 끝에 열 번째 심장이 되었다. 프로야구계의 신임을 얻기 위해 1000억 원이 넘는 베팅을 했다. 5년 전이면 100억 원이면 끝났을 것이다. 최근 KBO는 NC의 연고지 창원시에 강력한 압박을 하고 있다. 2016년까지 새로운 구장을 짓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연고권을 박탈하겠다는 경고였다. 지방재정이나 행정절차를 감안한다면 새로운 구장 건립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단순한 압박은 아니다. 원하는 지역이 나오면 NC의 연고지도 옮길 태세이다. 10구단 싸움에서 수원에 패한 전북이 또 다시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다. 불과 5년 만에 프로야구의 환경이 뒤바뀐 것이다. 이제 프로야구는 을이 아닌 갑이 되었다. 한때 구단 인수를 애걸했던 프로야구가 아니다. 당당히 최신식 야구장을 짓지 않거나 과감한 투자를 하지 않으면 연고권을 없애버리겠다고 호언할 정도로 힘이 생겼다. 바로 국민적 인기를 등에 없었기 때문이다. KBO의 강공 드라이브는 10구단 체제를 확고하게 뿌리내리겠다는 의지일 것이다. 새로운 야구장 등 인프라를 확실히 갖춰 놓아야 '프로야구 르네상스'를 이끌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이미 광주와 대구는 새 야구장을 짓고 있으니 숙원이 풀리고 있다. 일본 프로야구는 매년 약 2500만 명의 관중을 동원한다. 한국은 아직 700만 관중에 불과하다. 10구단 체제와 인프라는 1000만 관중 동원의 초석이다. 좋은 시설이 아니면 관중 동원은 한계가 있다. 강력한 힘을 갖춘 프로야구가 출범 30년 만에 대도약기에 진입하고 있다. /이선호 OSEN 야구전문기자

2013-01-28 15:28:29 김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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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 '음치 황제' 네로가 즐겨먹었던 부추

모임에서 멋지게 노래하고 싶으면 부추를 먹으면 좋겠다. 목소리가 꾀꼬리처럼 맑게 변할지도 모른다. 설마 부추 먹는다고 목소리가 고와질까 싶지만 고대 서양에서는 그렇게 믿었다. 로마황제 네로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증인이다. 폭군 네로황제는 자칭 시인이자 가수였다. 자신을 황제라기보다는 예술가로 여겼다고 하는데 주로 성악에 관심이 많았다. 그것도 혼자 즐기는 것이 아니라 팬들의 환호와 갈채에 목말라하며 대중적 인기를 갈구했다. 그러나 재능은 없었던 모양이다. 청중들이 지루해 했는데 황제의 권력과 재력으로 박수를 강요했다. 예컨대 자신의 콘서트에 귀족과 시민을 초청해 놓고 공연장 문을 걸어 잠가 도중에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네로의 노래에 질려 몰래 도망치다 잡혀 벌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네로의 형편없는 재능은 역사에도 기록돼 있다. 역사가 플리니우스는 '박물지'에 "황제 자신은 스스로를 뛰어난 음악적 재능의 소유자라고 생각했지만 목소리는 쉬었고 힘도 없다"고 적었다. 박물지를 보면 네로가 재능은 모자랐어도 나름 노력만큼은 열심히 했었던 것 같다. 부추가 목소리를 곱게 만들어 준다고 믿어 한 달에 한 번씩 부추와 올리브기름을 먹었고 공연날짜가 정해지면 목에 나쁜 음식은 피했는데 빵은 한 조각도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부추가 목소리에 좋다는 믿음은 네로뿐만 아니라 그리스 로마에 널리 퍼졌던 속설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자고새 소리가 아름다운 것은 부추를 먹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노래 잘 부르고 싶으면 부추를 먹어보자. 그럼에도 박수갈채를 못 받는다면 네로처럼 재능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2013-01-24 16:08:34 전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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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 광해군 입맛 사로잡은 잡채

잡채는 한국인의 잔칫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다. 아이의 돌 잔칫상에서부터 시작해 생일, 결혼, 환갑잔치 때도 빠짐없이 잡채를 준비했다. 잡채가 예전에는 그만큼 귀하고 좋은 음식이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겠는데 조선 중기, 광해군 때는 더했던 모양이다. 당시 한양에는 권력층의 부정부패를 풍자하는 이런 노래가 유행했다. "처음에는 사삼 각로의 권력이 막강하더니 지금은 잡채 상서의 세력을 당할 자가 없구나." 사삼은 더덕이고, 잡채는 지금 먹는 잡채의 원형인데 광해군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바쳐 출세한 한효순과 이충을 조롱한 노래다. 특히 이충은 명문 집안 출신도 아니고 능력도 없으면서 광해군의 입맛을 사로잡아 지금의 장관에 해당하는 호조판서 벼슬에까지 올라 세간의 빈축을 샀던 인물이다. 이충의 잡채가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광해군은 수라를 들 때마다 그의 집안에서 만들어 온 음식을 기다렸다가 수저를 들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광해군을 식탐에 빠지게 한 잡채의 맛이 궁금해지는데 요즘 우리가 먹는 당면 잡채와는 상당히 달랐던 모양이다. 지금처럼 당면은 넣지 않고 도라지, 오이, 숙주나물과 각종 버섯 등을 식초에다 버무려 무쳤는데 여기에 마른 해삼과 전복을 불려서 채쳐 넣었다고 한다. 잡다한 채소를 무쳐 만든 요리라는 뜻에서 이름이 잡채(雜菜)인데 재료로 봐서는 상당한 고급요리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요즘과 같은 당면 잡채가 널리 퍼지게 된 것은 20세기 초반이다. 당면이 널리 보급되면서 최고급 요리였던 잡채가 일반인도 먹을 수 있는 대중적인 잔치음식으로 진화한 것이다. 무심코 먹는 음식인 잡채에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역사가 담겨있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2013-01-16 18:43:13 전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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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 국수 먹으면 왜 오래 살까?

국수를 먹으면 오래 산다고 한다. 국수 가락처럼 길고 오래 살라는 뜻에서 생긴 상징이고 미신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이런 말이 생겼을까? 결론부터 말해 국수 먹으면 장수한다는 믿음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국수가 장수의 상징이 된 것은 7~8세기 무렵인 당나라 때다. 당나라 시인 유우석은 "젓가락을 들어 국수를 먹으며 하늘의 기린만큼 오래 살기를 기원하노라"라는 시를 남겼다. 한 시대 후인 송나라의 학자 주익도 "의각료잡기"라는 책에다 당나라 사람들은 생일날 국수를 먹는데 세상에서는 장수를 소원하며 먹는 음식이라서 장수면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당나라 사람들은 왜 하필 국수에다 오래 살게 해달라는 소원을 담아서 먹은 것일까? 이유는 국수 가락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국수 면발이 길기 때문에 오래 살게 해달라는 미신적 소망이 아니라 면발이 길어지게 된 과학적 이유 때문이다. 동양에서 밀가루 음식이 발달한 것은 한나라 때지만 국수 면발이 길어지기 시작한 시기는 당나라 때다. 이 무렵, 제분기술이 발달하면서 밀을 곱게 빻을 수 있게 됐고 밀가루 반죽이 고와지며 국수를 길게 뽑을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만든 국수는 아무나 먹는 것이 아니라 귀족과 부자들만 먹을 수 있는 최고급 음식이었다. 그러니 지금과 달리 평소에 수수나 기장처럼 거친 음식을 주식으로 먹고 살았던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밀가루를 곱게 갈아서 면발을 길게 뽑은 국수는 먹기만 해도 오래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영양과잉 시대인 지금과 달리 옛날에는 국수를 먹으면 오래 살 것이라고 믿었던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2013-01-09 18:19:36 전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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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 귤은 부자 되는 과일

겨울철 가장 흔한 과일이 귤이다. 맛도 좋고 값도 싸니 모두 좋아하는데 너무 흔해서 귀한 과일인 줄 모른다.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수입이 제한됐던 바나나가 값비싼 인기과일이었던 것처럼, 귤은 약 두 세대 전에는 최고급 과일이었다. 서울의 중산층도 일 년에 기껏 한두 번 맛볼 수 있었을 정도로 드문 과일이었는데 제주도에서만 적은 양이 열렸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제주도에서 올려 보낸 귤이 한양에 도착하면 도성이 시끌벅적해졌다. 벼슬 높은 양반집에서는 임금님이 내려 준 신기한 맛의 남국과일을 맛 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귤이 올라온 것을 기념해 해마다 과거시험까지 열렸기 때문이다. 황금빛 감귤이 도착한 것을 기념하는 과거이니 이름이 황감제(黃柑製)였는데 급제한 선비가 여럿 있지만 가장 유명한 이가 바로 다산 정약용이다. 귤이 그만큼 귀했으니 귤나무 몇 그루만 있으면 부자 소리를 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주도에서는 귤을 대학나무라고 했는데 귤나무 몇 그루면 자녀를 대학까지 졸업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귤은 예부터 후손을 위한 과일로 여겼다. '천 그루의 귤나무(柑橘千樹)'라는 고사성어가 있는데 자손에게 재물 대신 소중한 자산을 물려준다는 뜻이다. 중국 삼국시대 때 오나라의 단양 태수 이형이 '사기(史記)'에 "강릉에 귤나무 천 그루만 있으면 제후가 부럽지 않다"고 쓴 구절을 읽고 귤나무를 심어 자손을 부자로 만들었다는 내용에서 비롯된 고사다. 때문에 예전에는 새해 귤이나 유자를 먹으면 부자가 된다고 믿었다. 황금빛 과일을 먹으며 금옥만당(金玉滿堂), 집안에 재물이 가득차기를 소원했던 것이다. 새해 귤 많이 드시기를...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2013-01-02 16:25:49 전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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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 바닷가재 못먹겠다고 파업하던 시절

빨갛게 익은 바닷가재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데 값이 만만치 않으니 서민들이 아무 때나 먹기에는 부담스럽다. 이런 바닷가재를 제발 그만 먹게 해 달라며 시위를 벌인 사람들이 있다. 초기 미국 정착민들이다. 1620년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를 타고 미국 플리머스항에 도착한 이후 이주민들이 계속 몰려왔다. 이들은 주로 개척 농장에서 일했는데 한 농장에서 바닷가재 때문에 파업이 일어났다. "바닷가재는 싫다. 빵을 달라" 노동자들의 요구조건 중 하나가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바닷가재를 제공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일주일 내내 빵 대신 지겨운 바닷가재를 먹었기 때문이다. 바닷가재는 미국 개척 초기, 노동자들이 먹던 음식이었다. 플리머스 총독인 브래포드가 쓴 '플리머스 농장에 관하여'라는 책에 "인디언들이 바닷가재를 주워 땅에 쌓아 놓았다"고 할 정도로 흔했기 때문이다. 메이플라워호에 탔던 청교도 지도자 에드워드 윈슬로우의 편지에도 해변에 바닷가재가 넘쳐났다는 기록이 보이니 더 이상 바닷가재를 못 먹겠다며 파업했다는 전설이 지어낸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바닷가재가 너무 흔해서 인디언들은 농사지을 때 퇴비로까지 썼다고 한다. 우리도 비슷해 조선 후기 '연원직지'에 "바닷가에는 게가 너무 흔해 큰 게로 거름을 하는데 이것이 한양까지 올라오면 가격이 비싸진다" 고 했다. 수급 불균형으로 게가 남아돌아 거름으로 썼으니 미국서 바닷가재로 퇴비를 했다는 말도 현실감 있게 들린다. 천덕꾸러기 바닷가재가 비싸진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부터다. 대륙횡단 철도가 완성되면서 미국 전역으로 공급이 가능해지며 바닷가재의 몸값이 뛰었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2012-12-27 09:39:52 전석준 기자
이선호의 베이스볼 카페 : '차·포' 빠진 WBC팀

내년 3월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를 앞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해외파와 주축 선수들의 불참이 겹치면서 역대 최약체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목표인 우승은 물론 4강도 힘들 수 있다는 전망이다. 좌완 빅 트리오가 빠졌다. 류현진은 LA 다저스 입단으로, 김광현(SK)과 봉중근(LG)은 어깨통증으로 엔트리에서 교체됐다. 역대 국제대회에서 기둥으로 활약했던 이들의 공백은 뼈아프다. 신시내티로 이적한 빅리거 추신수도 불참할 것으로 보인다. 대체선수를 뽑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생겼다. 한국시리즈 2연패를 달성한 삼성은 가장 많은 선수를 차출했고, 두산과 KIA는 주력 선발투수들이 포함됐다. WBC 후유증과 소속 팀의 리그 성적과 맞물릴 수 있다는 점에서 민감하다. 겉으로 표현은 않지만 "우리만 손해 볼 수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근우(SK), 강민호(롯데) 등 예비 FA 선수들이 많다. 스토브리그에서 롯데 김주찬이 50억 원을 받고 KIA에 입단했다. 몸값이 부풀려진 가운데 사상 최대의 FA 대박잔치를 앞두고 있다. 이들에게 부상은 가장 피하고 싶다. 예전처럼 죽기 살기로 덤벼들지 않고 소극적일 수 있다. 이번 WBC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과 달리 군 면제 혜택이 없다. 4강을 달성한 2006년 1회 대회는 면제혜택이 주어졌다. 2회 대회는 준우승을 하고 병역혜택을 요청했으나 논란 끝에 불가 판정을 받았다. 이번에는 병역혜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시작하는 첫 대회다. 동기부여도 제대로 되지 않아 이래저래 근심어린 눈길을 받고 있다. 최근 1회와 2회 대회 지휘봉을 잡았던 김인식 전 감독은 이례적으로 "태극기를 보면 울컥하는 마음이 생겨야 한다"면서 애국심을 당부했다. 선수들도 태극마크를 달면 정신자세가 달라진다고 한다. 한국 선수들은 애국심 하나로 국제대회에서 승승장구했다. 돈과 병역혜택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선호 OSEN 야구전문기자

2012-12-25 15:15:26 김민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