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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호의 베이스볼 카페]삼성야구가 찾은 해답

"99년이었던가? 삼성 비서실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광주까지 내려와서 왜 해태가 강한지 노하우를 물었다. 그들의 정성 때문에 그 때 4시간 동안 내가 아는 것은 아낌 없이 말해주었다." 최윤범 전 해태 타이거즈 단장의 기억이다. 프로야구 출범 이후 삼성은 리그 최강이었지만 한국시리즈는 최약이었다. 잦은 감독 교체, 모래알 팀워크라는 오명을 들었고 93년 이후 7년 동안 한국시리즈 문턱도 밟지 못했다. 삼성은 벤치마킹이 필요했던 시점이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삼성은 최강의 야구단이 되었다. 80~90년대를 지배했던 해태, 해태 이후 판도를 좌우했던 현대와 SK를 잇는 '강자의 전설'을 쓰고 있다. 작년까지 한국시리즈 3연패를 달성하더니 최근 11연승의 기세를 올리며 4연패 가능성까지 높이고 있다. 삼성 야구는 빈틈이 없다. 선발진과 중간진, 소방수까지 마운드가 가장 탄탄하다. 강력한 타선과 수비력까지 더해있다. 위기에서 절대 밀리지 않는다. 그만큼 선수들은 자신감과 창조성이 넘치는 플레이를 한다. 전형적인 강자의 모습이다. 이처럼 강한 전력을 유지하는 첫 번째 이유는 부상선수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선수들이 그만큼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 여기에 부상 예방에 초점을 맞춘 트레이닝 시스템도 완벽하다. 설령 부상을 당한 선수가 나와도 완벽한 재활로 이끈다. 또 하나 눈여겨볼 대목은 선수들이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신뢰 관계다. 후배들은 선배들의 플레이를 보고 배우면서 어느새 경쟁자로 성장한다. 장원삼 이후 FA 영입을 하지 않으면서 육성체계도 뿌리를 내렸다. 80~90년대와 완전히 다른 삼성만의 야구 문화가 정착된 것이다. 삼성이 어려운 답을 풀었다. /OSEN 야구전문기자

2014-05-26 11:43:43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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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인문학산책] 다음 세대를 위한 횃불을

닐 디그래스 타이슨이 요즈음 한참 주목받는다. 그는 내셔널 지오그라픽 채널에서 새로 제작한 의 진행자로 등장하고 있는데, 그의 직업은 "과학 해설자(Science commuicator)"다. 우주의 생성과 구조, 그 움직임에 대해 일반대중들에게 쉽고 소상하게 알려주는 역할이다. 그는 천체 물리학자이자 과학소설 작가이기도 하며, 무려 19개의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인물이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소개 영상에 등장해서 더욱 유명해진 이 프로는 1980년 세계적인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제작, 진행해 최고의 인기를 모은 의 21세기 판이다. 오바마는 "우리의 첨단 과학의 성취를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는 새로운 시도"라면서 이 방송의 의미를 강조한다. 타이슨 역시, 과학이란 전 세대의 스승이 다음 세대의 제자에게 지식의 횃불을 전달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아도 타이슨은 17세 때, 코넬 대학에 있는 칼 세이건을 만나 그의 책 첫 장에 "미래의 천문학자"라는 친필서명을 받는다. 1975년 세이건의 수첩에는 뉴욕 브롱스 과학고 출신의 이 총명한 흑인 소년을 만나는 일정이 기록되어 있다. 1편 도입부에는 바로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타이슨의 가방에서 그 수첩이 공개되는 장면이 나온다. 40년 전 한 소년의 장래가 그렇게 방향을 잡았다. 11편에는, 전자기가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 과학기술의 결정적 이론을 세운 마이클 페러데이가 등장한다. 대장장이의 아들로 불우한 소년시절을 지냈던 그가 이후 영국 왕립연구소에서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한 금요 강연을 연 것은 19세기 이래 지금까지 유지되어오는 전통이다. 칼 세이건도 이 강의의 강사로 나선 것은 물론이다. 세계적인 석학들이, 과학자의 꿈을 꾸기 어려운 처지에 있는 다음 세대를 위해 지식의 횃불을 전수하는 훌륭한 전통을 세운 것이다. 우리의 교육은 어느새 양극화에 익숙해진 나머지, 이런 식의 노력은 아예 기울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도대체 누가 미리 알겠는가? 가난하지만 재능 있고 총명한 아이들 속에 미래의 뉴턴, 아인슈타인, DNA하면 떠오르는 제임스 왓슨, 프랜시스 크릭, 그리고 칼 세이건, 닐 디그래스 타이슨 등이 있을지 말이다. 교육의 양극화를 교정하지 않는 사회는 지식의 첨단을 향해가는 능력을 스스로 해체하는 곳이다. /성공회대 교수

2014-05-25 17:38:43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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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필의 청론탁설]야당은 지금 정치적 공세를 펼 때인가?

'4.16 세월호 참사'로 잠시 잠잠했던 야당의 주요 인사들이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시절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고 대선 때 박근혜대통령과 민주당후보로 경쟁했던 문재인 의원은 최근 세월호 사태를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비유하는 발언을 했다. 지난 16일 "세월호는 또 하나의 광주"라고 트위터에 올렸다. 이어 18일에는 광주광역시 5.18민주묘역을 찾아 "광주민주항쟁을 일으켰던 국가와 세월호 참사때 무능하고 무책임했던 국가의 모습은 본질적으로 같다"고 비판한바 있다. 또한 국회의원을 두 번씩이나 하고 노무현 정부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한 유시민씨도 지난주 세월호 참사에 대한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유 씨는 지난 2월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난다"고 정계은퇴를 선언했지만 이번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자신의 입지를 키우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가리켜 "박근혜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사람들 엄청 죽고 감옥 갈 거라고 말씀드렸었는데 불행히도 그렇게 돌아가는 것 같다"는 내용을 정의당이 6.4 지방선거 홍보용으로 공개한 정치토크쇼 동영상에 올렸다. 물론 '불행히도'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박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공격한 셈이다. 이와 함께 새정치연합의 주요 인사들도 대통령에 대한 정치공세를 준비나 한 듯이 일제히 포문을 열고 있다. 김한길 대표는 비록 완곡한 표현이기는 하나 "대통령 담화가 지방선거를 겨냥한 무리한 결단이 아니었나"라는 반응을 보였으며 박영선 원내대표는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선거를 통해 경고해야 한다"면서 다분히 세월호 참사를 선거정략으로 삼는 발언을 했다. 또한 민병두 선대위 공보단장은 "관 피아가 아니라 박피아(박 대통령 마피아)부터 해체해야 한다"고 정치적 공세를 폈다. 이러한 야당의 공세는 정치적 득실을 떠나 과연 바람직한가? 자문할 필요가 있다. 물론 세월호 참사의 충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국민은 현 정부여당에 대한 불만이 크다. 그러나 야당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지켜보고 있다. 이번 참사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야당의 역할 역시 매우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다수 국민들은 초당적 협력으로 난국을 수습해주길 바라고 있다. 야당에서도 합리적인 대안을 많이 제시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은 이러한 국민정서를 외면하는 듯하다. /언론인

2014-05-25 10:51:37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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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건설사의 경쟁업체는 금융사?

연초 뜨겁게 달아오르던 아파트 청약 열기가 주춤해지면서 아파트 분양 시장에 미분양 주의보라는 빨간불이 켜졌다. 최근 아파트 분양이 줄을 이으면서 분양가가 싸거나 입지여건이 뛰어난 아파트는 초기 계약률이 90%에 이르는 등 양호한 실적을 보이고 있지만 분양가가 높거나 기존 단지보다 입지 여건이 떨어지는 곳은 청약 미달로 미계약이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에서는 부산ㆍ대구ㆍ전남 등 지방 시장은 아직 청약 열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수요층이 그리 많지 않은 수도권에서는 계속해서 건설사의 분양 물량이 대량으로 쏟아짐에 따라 수도권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감소 추세에 있던 미분양 물량도 조만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여 관련 업계가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최근의 미분양 증가 문제보다 건설사들은 또 다른 경쟁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건설사의 경쟁사는 또 다른 건설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최근엔 금융업계가 오히려 새로운 경쟁상대(?)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금융권 관계자들의 강연이나 칼럼 등의 언론사 기고를 통해 재테크로서의 주택 투자에 대해서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예전처럼 집을 사고 팔아서 부자가 되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으로 부동산이 아닌 주식이나 기타 다른 분야로 눈을 돌려 재테크를 해야 한다는 논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파트 등을 짓는 건설사 입장에서는 수요자가 줄어드는 이러한 최근의 재테크 분위기가 달가울 것이 없는 것이다. 모 건설사 관계자는 "금융권에서 고객에게 재테크 상담을 해줄 때 주택 투자는 뒷전이고 다른 분야의 재테크 상품을 설명하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 한다"며 "이러한 영향으로 특히 내 집은 없어도 차는 있어야 한다는 젊은 세대들이 늘어만 가는 상황에서 딱히 건설사들은 적극적인 대응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기 불황속에서 정부차원의 내수 경기 활성화 정책과 노력이 이어지며 조금씩 부동산 시장 회복 조짐이 보이는 상황에서 내 집 수요층은 점점 줄어들고 재테크로서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현실을 건설사들이 어떻게 풀어나가고 대처할지 주목된다.

2014-05-25 10:16:29 김두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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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놀로그] 과거는 과거일 뿐

얼마 전 20대 시절의 지인한테 연락이 왔다. 그 시절 몇몇 다른 이들과 함께 모임을 가졌던 '사회친구'였다. 지난 십여 년간 따로 연락은 없었다. 우연히 그녀가 나의 측근과 술자리에서 만나 내 연락처를 알아내 메시지를 보냈다. 나도 반가움에 회신하며 몇 개의 문자메시지가 오갔다. 거기까진 좋았다. 옛 멤버들끼리 한 번 뭉치자고 말한 대목에서 난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거나 우연히 길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곧 버릴 명함이나 주고받으며 '언제 한 번 보자' '다음에 한 번 뭉쳐야지' 라는 말, 우린 참 많이 한다. 하지만 진심으로 반가운 건 첫 재회의 순간 정도가 아닐까? 막상 두 번째 만남을 성사시켜 만난다면 그것은 대개 부담스럽고 힘든 자리일 확률이 높다. 왜냐, 현재보다 과거를 공유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현재를 공유하기엔 그만큼 서로에게 이젠 관심이 없고, 현재 자기 상황을 얘기하다 보면 자기자랑이나 자기연민으로 들리기 십상이다. 그러면 자연히 과거 시절 이야기를 하나 둘 퍼 올리거나 그 시절의 다른 지인들에 대한 현황공유나 하게 된다. 혹은 반대로 그게 '한 번 뭉치자'는 말이 '그냥 한 말'이면 얼마나 영혼 없는 대화인가! 솔직히 말했다. "뭘 번거롭게 뭉쳐. 과거는 아름다운 과거로 남겨." 회신이 1초도 안 돼서 돌아왔다. "나쁜 것,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라!" 의리 없다는 듯 그녀는 귀엽게 성을 냈다. 작금의 유행어 '의리'에 비장함과 어깨에 힘이 들어간 것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어떤 대의명분이나 남의 눈을 의식해서 무리하기 때문이다. 의리보다는 신뢰가 낫다. 신뢰는 늘 구체적인 형태로 '확인'을 안 해도 편한 그런 무리하지 않는 관계다. "때 되면 만나겠지. 볼 사람은 또 어떻게든 보게 되잖아."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은 내게 야박하다고 했지만 그건 매정한 게 아니다. 정말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행여 '진심으로' 옛 지인을 굳이 먼지 털어 만나고 싶어 한다면 그건 그 사람의 현재 삶이 만족스럽지 못한 사람이라는 편견을 나는 가지고 있다. 나는 그녀가 그런 사람이 아니길 바랐다. /임경선(칼럼니스트)

2014-05-25 09:50:55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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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그 많던 건물들은 다 어디에?

그 많던 건물들은 다 어디에? 서울 경복궁을 거닐 때면 의아한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한 때 건물들로 빽빽했다는 경복궁이지만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경복궁이 처음 대대적으로 망가진 것은 지난 16세기말 임진왜란 때였다. 선조가 의주로 도망을 간 직후 백성들에 의해선지 왜군에 의해선지 주체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홀랑 불에 타버린 것이다. 이후 270여 년 동안 방치돼 있던 경복궁이 다시 지어진 것은 1865년 흥선대원군에 의해서였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또 수난의 시대가 찾아 온다. 조선을 강제병합한 일본이 경복궁에서 '시정오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라는 일종의 '엑스포'를 연 탓이다. 엑스포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1923년 조선부업품공진회, 1925년 조선가금공진회, 1926년과 29년에는 조선박람회가 연거푸 개최됐고 1935년에는 조선산업박람회까지 열렸다. 문제는 이런 행사를 위한 전시장을 마련한다는 이유로 원래 있던 전각들 가운데 상당수를 헐어버리거나 외부에 팔아버렸다는 데 있다. 실제로 구한말 당시 경복궁의 건물 수는 모두 509동에 달했으나 엑스포를 구실로 90% 이상이 헐리고 말았다. 해체한 뒤에도 재조립이 가능하다는 목조건물의 특성상 헐린 전각들은 요정이나 사찰, 개인집으로 팔려나갔다. 집현전의 후신이랄 수 있는 '홍문관'은 남산으로 팔려가 '화월별장'이라는 요정으로, '비현각'은 장충동으로 옮겨져 '남산장'이라는 요정으로 이용되는 식이었다. 세자와 세자비의 생활공간인 '자선당'의 운명은 더 처연하다. 1915년 일본 도쿄로 옮겨졌다가 1923년 관동대지진 때 불타버리고 말았다. 지금 현재 경복궁 동북쪽 귀퉁이에 놓여있는 돌무더기가 바로 1996년 일본에서 환수해온 자선당 석축이다. 2014년 5월 현재 경복궁에선 수라간 등 일제 때 헐려나간 시설들을 다시 짓는 사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과연 헐린 궁을 다시 짓는다고 비운의 역사가 극복되고 옛 영화가 되살아날까? '문화재 복원'이란 미명 아래 사라진 건물을 재건하려 서두르기에 앞서, 지도자들이 무능할 때 그 나라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해지는지 곱씹어보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다시 서울을 걷다'저자

2014-05-22 13:17:43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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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돼지족발이 특별한 이유…

돼지족발은 이슬람 문화권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즐겨 먹는다. 우리는 물론 중국에도 다양한 돼지족발 요리가 있고 태국도 카오카무라는 족발덮밥이 유명하다. 유럽도 마찬가지여서 독일에는 구운 족발 학세와 맥주에 삶은 아이스바인이 있다. 프랑스는 달콤한 족발 조림, 피에 드 코숑이 인기 고 이탈리아에는 잠포네가 있다. 대부분 나라는 족발에 특별한 의미를 담아 먹는다. 이탈리아는 새해에 잠포네를 먹으면 일 년 내내 지갑에 돈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중국 당나라 때는 과거 보러 가는 선비가 족발을 먹으며 장원급제의 소원을 빌었고 우리 역시 산후 조리로 족발을 먹으면 산모의 젖이 잘 나온다고 말한다. 족발에 왜 이렇게 특별한 의미를 담았을까? 네발로 걷는 동물은 발바닥에 정기가 몰리는데 특히 돼지는 짧은 다리로 육중한 몸을 버티고 서 있으니 족발이 그만큼 튼튼하고 강하며 몸에도 좋다고 여겼다. 옛날, 좋은 음식이 생기면 먼저 하늘에 제사부터 지냈으니 족발도 예외가 아니다. 돼지족발과 한 잔 술이라는 뜻의 돈제우주(豚蹄盂酒)의 고사가 그것이다. 춘추전국시대에 초나라 대군이 제나라를 침범했다. 놀란 제왕이 이웃 조나라에 원군을 요청하며 예물로 황금 100근과 마차 10대를 준비했다. 이를 본 재상 순우곤이 웃다가 갓끈이 끊어졌는데 왕이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아침에 어떤 백성이 돼지족발 하나와 술 한 잔을 제단에 올려놓고 소원을 비는 모습을 보았는데, 풍년을 기원하고 자녀의 출세와 부부 백년해로를 빌면서 제물로 달랑 돼지족발 하나를 놓았으면서 원하는 것은 너무 많았던 것이 떠올라 웃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제왕이 황급히 예물을 늘려 황금 1,000근과 마차 100대를 보내 원군을 청했다. 조나라에서 정병 10만과 전차 1,000대를 파견하니 소식을 들은 초나라가 서둘러 군사를 물렸다. 사기 골계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그만큼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다. /음식문화평론가

2014-05-21 10:26:37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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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호의 와인스토리]신세계 생산국의 간판 포도 품종

신세계 와인생산국의 대표 포도 품종은 식민지 시절 구세계 국가에서 이식돼 번창했다는 특징을 공통적으로 지닌다. 이미 최고 품질의 반열에 오른 미국에는 진판델이 있다. 종래 캘리포니아의 토착 종으로 알려져 왔으나 유전자 감식 결과 이탈리아의 프리미티보 품종으로 밝혀졌다. 풀바디한 레드 및 핑크와인을 만들며 오래 전부터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캐나다는 추운 날씨 탓에 아이스와인을 주로 생산하는데 이를 제조하는 비달이 대표 품종이다. 우리나라에는 대한항공 면세점에서 판매를 시작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남미의 대표 산지 칠레는 16세기 스페인의 정복과 함께 고유품종인 빠이스로 양조를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재는 카르메네르 품종이 대세다. 칠레 전역에서 발견되는 카르메네르는 조사 결과 19세기 후반 프랑스로부터 건너온 것으로 확인됐다. 대체로 미디엄 바디이며 균형잡힌 골격과 풍부한 과일향으로 사랑받는다. 남미의 또 다른 와인 강국 아르헨티나가 내세우는 포도는 말벡이다. 원산지인 프랑스에서는 말벡이 괄시받으며 블렌딩을 위한 보조품종의 위치에 머무르지만 아르헨티나에서는 첫 손가락에 꼽힌다.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가장 전도 유망한 와인"으로 평가한 바 있다. 호주 와인세계로 들어가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품종이 쉬라즈다. 프랑스 론 지방이 주산지인 시라가 호주로 건너와 시라즈로 개명됐다. 와인 색깔은 가장 보라색에 가까우며 강한 탄닌과 탄탄한 골격을 자랑한다. 후추 향(스파이시)이 물씬 풍기는 게 가장 큰 특징. 론 지방의 시라가 포도알이 작고 품종 고유의 특징을 제대로 보관하고 있다면 호주 쉬라즈는 날씨가 더운 탓인지 알코올 도수가 높고 더 묵직하다. 뉴질랜드는 화이트 와인을 빚는 소비뇽 블랑이 꼽힌다. 푸르름을 연상시키는 뉴질랜드 자연과 기막힌 궁합을 이룬다. 뉴질랜드의 소비뇽 블랑 와인은 다른 화이트 품종이 농익은 과일 또는 열대 과일향인 것과 달리 강한 풀 냄새를 바탕에 깔고 초가을 풋과일 향을 풍긴다. 요즘 급부상하는 남아공의 경우 네덜란드가 케이프타운에 동인도회사를 설립한 후 포도나무 이식이 이루어졌다. 별 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 나라에는 독특하게도 자신들이 교배한 품종이 간판 주자다. 바로 생소와 피노 누아 품종을 교배시켜 얻은 피노타주. 1925년 탄생한 이 포도종은 남아공 와인을 전세계에 퍼뜨리는 데 절대적으로 기여했다.

2014-05-20 10:59:08 조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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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호의 베이스볼 카페]응원문화 재점검 기회

야구장이 조용하다. 각 구단이 전국민적인 세월호 희생자 애도 분위기 속에서 응원을 자제하고 있다. 응원 단장의 응원과 치어리더들의 율동이 사라졌다. 귀를 찢을 듯한 스피커 소리와 응원 노래도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이참에 야구장 소음을 줄이는 계기로 삼자는 목소리들이 힘을 받고 있다. 시끄러운 소리도 없고 선정적인 치어리더들의 율동이 없으니 야구에 대한 집중력이 좋아졌다는 것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와 일본리그는 이닝 교대시간에 치어리더와 대형 스피커를 이용한 집단 응원은 없다. 서포터스들의 자발적 응원만이 있을 뿐이다. 그저 의자에 앉아 편안하게 야구만 즐기는 문화다. 야구장 소음은 인근 지역에도 피해를 준다. 특히 잠실구장은 야구장 소음 문제의 근원지로 꼽혀왔다. 홈 관중이 절대적으로 많은 지방구장과 달리 양 팀의 응원전이 치열해 필연적으로 소음이 발생한다. 홈팀이 이용하는 스피커의 음량이 큰데다 원정 팀도 대형 스피커를 동원해 맞불을 놓는다. 한 베테랑 KBO 심판은 "그나마 공수 교대 시간의 소음은 봐줄 수 있다. 경기 중 투수들이 투구를 하는 사이에도 스피커 소리를 크게 틀고 응원하는 경우가 있다. 경고를 해도 그때 뿐이다. 이번에 플레이에 지장을 주는 소음 문제는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치어리더 응원은 한국야구의 문화로 정착했다. 치어리더들의 응원을 즐기려고 야구장을 찾는 팬들도 많다. CF 모델로 발탁 받은 스타 치어리더도 등장했지만 동시에 그들의 옷차림과 율동은 항상 선정성에 시달려왔다. 그렇다고 무작정 치어리더 응원을 폐지하기는 어렵다. 그들의 노동 기회를 빼앗기 때문이다. 다만 선정적이지 않는 수준으로 바꿀 필요성은 있다. /OSEN 야구전문기자

2014-05-19 15:30:08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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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트렌드 읽기] CD는 커머셜 디렉터다

디자인은 21세기를 대표하는 단어다. 패션·건축·전자와 같은 CMF(Color·Material·Finishing)를 다루는 것에서 인터넷·모바일·도시 등의 UX(User Experience, 사용자 경험)·UI(User Interface, 사용자 편의)까지 활용 영역은 전방위화 됐다. 모든 상품과 서비스는 철저하게 계획되고 의도된 디자인을 바탕으로 시장에 뿌려질 수밖에 없다. 디자인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 됐다. CD(Creative Director)는 AS(Art Supervisor)와 CS(Copy Supervisor)를 관장하는 책임자다. 직무 내용에서 나타나듯 광고대행사의 광고제작 최고책임자다. 디자인 시대가 되면서 패션, 자동차를 포함한 여러 산업에서 CD는 각광 받았다. 또 활동 영역이 넓어지면서 관련 인력이 급증했고 CCO(Chief Creative Officer)란 직무도 생겨났다. 디자인 관련 전공자들에게 CD는 목표이자, 궁극적 가치의 표상으로 우뚝 섰다. 한국에서 CD 열풍이 불어 닥친 것은 대략 5년 남짓이다. 디자인 유학을 마친 젊은 피(DNA 자체가 이전 세대와는 달라 보이는 청년층)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탓이었다. 이들은 산업 곳곳에 포진하면서 CD를 하나의 지향점으로 설정했다. 덕분에 그 동안 창의적 업무의 수장으로 대표됐던 '디자인실장'은 고리타분한 직무수행자로 전락됐다. 문제는 CD가 디자인 혹은 창의성 그 자체에 무게 중심이 잡힌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자리의 근원지는 제품부문이고 마케팅·판매촉진·미디어리서치·회계 등과의 조율을 진행해서 기업의 기술 운영을 담당하는 영역이다. 즉, 기업의 생산과 판매를 최적화시키는 직무로서 디자인이란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이 적임자라는 얘기다. 파리를 대표하는 패션기업 겐조는 오프닝 세레머니의 캐롤 림과 움베르토 레온을 CD로 영입했다. 순식간에 잊혀가는 브랜드에서 논란의 중심에 선 패션으로 되살아났다. CD는 이제 '커머셜 디렉터(Commercial Director)'로 변신해야 할 때다. 디자인에 고정시켰던 핀을 과감하게 뽑자. /인터패션플래닝(www.ifp.co.kr) 대표

2014-05-19 13:46:34 메트로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