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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임경선의 모놀로그]가족, 그 복잡한 이름

가정의 달, 오월의 가장 큰 심리적인 부담은 '어버이날'이라고 생각한다. 명절엔 '조상'이라는 보이지 않는 공통의 대상이 있지만, 어버이날은 자식이 부모에게 명백히 감사를 표현하는 무척이나 구체적인 날이기 때문이다. 그 방식은 일반적으로 외식과 선물, 선물 중에서도 용돈일 것이다. 형제자매가 다 함께 모이기에 외식장소 섭외부터 난항이다. 경비분담 시 형제자매의 경제적 수준 차이에 따라 '적절함'의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나마 돈 봉투는 내용물을 바로 확인하지 않아 다행이다. 다들 평소 먹고 살기 바빠 오랜만에 만나 반갑기도 하지만 자주 만나지 못하다 보니 대화는 효율적으로 간소화된다. 즉 '그간의 일'을 피차간 축약보고 하니 완만한 자기자랑 혹은 신세한탄처럼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오간다. 그런 개괄적인 브리핑이 한 차례 끝나면 이번에는 서로에 대한 은근한 품평회로 돌입한다. 서로의 육아나 교육방식에 대한 걱정을 가장한 비난, 쇠퇴하는 외모에 대한 연민을 가장한 악평. 그러나 형제자매간의 경쟁과 신경전은 약과다. 어버이날 행사가 어떤 이들에게 고통인 것은 이 만남이 '의무감'에 따른, 사회가 내게 '부모에게 잘하라'고 지시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물론 평소에도 자주 잘 못 찾아뵈는데 이런 날이라도 효도하는 게 어떠냐 하면 할 말은 없다. 자, 여기서 불편한 진실을 말할 때가 되었다. 자식이라고 해서 반드시 부모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척, 감사한 척, 하는 게 고통이다. 감정노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때 되면 돈으로 해결하자, 싶어 두둑하게 봉투를 채워도 여전히 찜찜하다. 자식들이 부모에 대해 느끼는 가장 큰 불편함과 미안함은 그간 전형적인 효도를 잘 못해와서가 아니라 실은 자신의 부모를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전혀 좋아하거나 감사함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상처의 실감 때문인 것이다. 누구는 어버이날을 부담스럽게 느낄 때가 그나마 인생에서 행복한 시기라고도 하던데, 그것 역시도 틀린 말은 아닌 걸 보면 가족은 이래저래 복잡한 화두인 것만은 틀림없다. 글/임경선(칼럼니스트)

2013-05-05 15:34:56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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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 점심과 딤섬의 차이

많은 사람들이 딤섬은 홍콩 또는 타이완의 만두 종류로 알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다양한 만두를 포함해 간단하게 먹는 음식은 모두 딤섬이다. 그러니까 음식 종류가 아니라 먹는 형태다. 글자로 쓰면 우리가 오후에 먹는 밥인 '점심'과 한자가 같다. 점심과 딤섬, 왜 한자가 같은 것일까? 우연의 일치였을까? 점심의 원 뜻은 오후에 제대로 먹는 식사가 아니라 간단하게 시장기를 채우는 음식이라는 뜻이었다. 한자로 점찍을 점(點)에 마음 심(心)자를 쓰는데, 마음에 점을 찍듯이 적은 음식으로 시장기를 달랜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먹는 것으로써 허기진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점심이라는 말이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문헌에는 주로 중국 당나라 때부터 보인다. 당시는 지금처럼 하루 세 끼를 먹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끼를 먹었다. 때문에 중간에 시장기를 달래 줄 가벼운 요깃거리가 필요했는데 이때 간식으로 먹는 음식을 보고 점심이라고 했다. 당나라 때 문헌에는 아침 식사를 하기 전, 새벽에 공복을 채우는 음식도 점심이라고 불렀다. 흥미로운 것은 간단히 시장기를 달래 주는 음식이었던 점심이 세월이 흐르면서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변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점심은 아예 식사로 자리를 잡았다. 낮에 제대로 차려서 먹는 오찬이 된 것이다. 반면 딤섬은 중국 광동성과 홍콩에서 발달하면서 가볍게 먹는 식사라는 뜻으로 변했다. 딤섬이라는 홍콩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이유다. 중국 본토에서는 디엔신이라고 하는데 군것질 거리인 간식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점심의 변천사다./음식문화평론가

2013-05-01 11:11:16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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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 비스킷이 바꾼 세상

사소한 일이 큰 변화로 이어질 때가 있다. 나비의 작은 날개 짓이 폭풍우를 몰고 온다는 나비효과라고나 할까? 과자 비스킷이 그랬다. 비스킷은 두 번 구운 과자라는 의미로 라틴어 비스콕투스(Biscoctus)에서 비롯된 단어다. 비스는 두 번, 콕투스는 요리하다라는 뜻이다. 비스킷이 변화를 일으킨 것은 두 번 구웠기 때문이다. 반죽한 밀가루를 두 번 구우면 수분이 완전히 제거돼 장기간 보관할 수 있어 10년 넘게 저장이 가능하다. 빵이나 과자를 두 번 굽는 것이 별 것 아닐 것 같지만 예전에는 한번 조리한 음식을 태우지 않고 다시 굽는 것이 보통 기술로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때문에 비스킷은 조리기술이 발달한 16세기에 등장했고, 비스킷이 나오면서 세상도 달라졌다. 무엇보다도 비스킷은 장기 항해를 떠날 때 도움이 됐다. 바다를 몇 달씩 항해할 때 보통의 빵은 썩고 곰팡이가 피어서 먹을 수 없지만 비스킷을 실으면서 바다에서도 언제든지 탄수화물을 섭취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이 무렵의 비스킷은 지금의 과자 비스킷과는 많이 달랐다. 밀반죽에 물과 소금을 섞어 구운 것으로 얼마나 딱딱했는지 망치로 깨 먹어야 했고, 씹다가 치아가 부러지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비스킷을 응용해 아시아에서 군인들의 전투식량으로 개발한 것이 건빵이다. 비스킷이 등장하면서 세상도 많이 바뀌었다. 콜럼버스가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아메리카에 도착한 것과 마젤란의 세계일주가 모두 비스킷의 등장시기와 일치한다. 비스킷 덕분에 장기항해가 수월해졌고 군인들도 전투 중 굶지 않고 싸울 수 있게 됐다. 오늘 내 작은 행동 역시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2013-04-24 10:46:24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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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 김치국물은 약이다

조선 초, 명나라 황제의 후궁이 된 조선여자 중에 황씨가 있었다. 만주를 거쳐 중국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복통을 앓았다. 의원이 여러 약을 처방했지만 차도가 없었는데 황씨가 김칫국물을 마시면 나을 것 같다며 호소했다. 이 말을 들은 중국 책임자 황엄이 "혹시 사람고기가 먹고 싶다면 내 다리를 베어서라도 바치겠는데 이런 황무지에서 어찌 김칫국물을 얻을 수 있겠냐"며 난감해 한다.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며칠이 지나도 복통이 가라앉지 않던 어느 날, 황씨가 측간에서 죽은 아이를 낳았다. 이웃집 관노와 통해 아이를 가졌다는 소문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쉬쉬하며 북경에 도착해 황제와 동침을 했지만 다음날 아침 들통이 났다. 처녀가 아닌 것을 알고 진노한 황제를 달래느라 애 먹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보인다. 한국인이 아플 때 약 대신 김칫국물을 마신 역사는 뿌리가 깊다. 수십 년 전만해도 시골에서 아이들이 배앓이를 하면 할머니가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떠주며 속을 달랬다. 연탄으로 난방을 했던 시절, 연탄가스에 중독되면 응급처방으로 김칫국물을 마시라며 장려했던 시절도 있었다. 김칫국물은 심지어 전염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데도 쓰였다. 조선 중종 때 평안도에서 전염병이 나돌아 670명이 사망했다. 이로 인해 평양감사가 문책까지 당했는데 이후 전염병 치료에 동원된 약이 바로 나박김치와 그 국물이었다. 따지고 보면 십년 전, 사스라고 하는 중증 급성호흡기 증후군이 퍼졌을 때도 한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김칫국물이 예방약으로 유행한 적이 있으니 김치국물의 효능에 대한 신뢰가 뿌리 깊다. 중국서 AI(조류인플루엔자)가 퍼진다는 소식에 떠오른 이야기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2013-04-17 10:51:38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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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 몽골 초원에서 태어난 햄버거 레시피

다져 구운 고기를 빵 사이에 끼워먹는 초간편 패스트푸드가 햄버거인데 어디서 비롯된 음식일까? 미국에서 발달해 널리 퍼졌지만 기원은 보통 독일의 항구도시 함부르크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빵 사이에 끼어 있는 고기, 즉 패티가 미국에 이민 온 함부르크 출신이 주로 먹었던 고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함부르거(Hamburger), 즉 햄버거라는 이름이 지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햄버거 고기는 어떻게 생겨난 음식일까? 햄버거 스테이크로 쓰는 고기는 일반 스테이크와는 달리 고기를 잘게 다지거나 갈아서 굽는데 그 뿌리는 서양식 육회인 타타르 스테이크에서 나왔다. 타타르는 서양에서는 유럽을 침입한 야만족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중앙아시아에 살았던 유목민족으로 우리에게는 돌궐족의 일파인 달단족으로 알려진 민족이다. 징기스칸의 몽고군이 러시아로 진격할 때 연합군으로 함께 유럽으로 쳐들어갔다. 서양식 육회, 타타르 스테이크는 이들이 먹었던 비상식량이었다. 원래 유목민들은 급하게 장거리 여행을 할 때 고기를 잘게 썰어 말안장에 넣어 다녔다. 사방에 지평선이 보이는 초원이니까 불을 피우면 적군이나 도적한테 들키기 때문에 갈아 만든 생고기를 먹으며 신속하게 이동을 했다. 그런데 몽고군이 러시아를 점령하면서 생고기 비상식량이 타타르 스테이크라는 서양식 육회로 현지에 전해졌다. 그리고 러시아와의 무역항이었던 함부르크에 전해졌는데 이들이 육회 대신 구워 먹던 음식이 미국에 건너와 햄버거 스테이크, 햄버거 패티로 발달했다는 것이다. 햄버거의 뿌리가 몽골 초원이었다는 이야기로 여러 햄버거 기원설 중의 하나다. 지구는 역시 둥글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2013-04-10 15:48:07 메트로신문 기자
[임경선의 모놀로그] 타인의 문제와 나의 불안

나라의 여러 국면에서 사생활과 인권침해, 신상털기와 마녀사냥이 범람한다. 요새는 온라인의 익명성을 이용해 누구라도 공개적으로 타인을 비난하거나 공격할 수 있고 사람들은 점점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감해져간다. 그럴수록 더더욱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결코 공개적으로 타인을 쉽게 비난하지 말자고. 물론 그것은 나 역시도 타인에 대한 험담을 남못지 않게 하는 불완전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주로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에 대한 험담을 했다. 그러나 갈수록 그 수근거림 뒤에는 자기혐오만 남았다. 내가 얼굴을 찡그리며 타인의 험담에 열을 올릴 때마다 그것은 사실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내 내면의 문제를 타인에게 투영시킨 것임을 알았다. 타인에 대한 비난은 대개 자신의 불안으로 기인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험담을 할 때마다 그것을 내 안의 공허함이나 불안함에 시선을 돌리라는 자가신호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한편 험담이 모르는 사람에 대한 비난으로 확장되면 답이 없다. 겉만 보고 판단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 역시도 마음의 뿌리는 같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체념한 이들일수록 타인의 문제에 더 열을 올리며 비난하기 바쁘다는 것. 그들은 비난을 '비판'이라 착각하고 가장 객관적인 심판자를 자처하며 손쉽게 소속감과 자존감을 얻으려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 내가 느낀 씁쓸함처럼 어느새 자신의 인생과 인상은 조금씩 썩어갈 것이다. 물론 인생에 지쳐있을 때 거슬리는 타인에게까지 너그럽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한 부탁일수도 있다. 하지만 타인의 문제를 평가하기보다 자신의 불안을 이해하는 것이 더 필요하고 중요하지 않을까. 자신의 불안을 이해하려면 우선 자신의 현실을 파악하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 두 가지는 말로는 쉽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현실을 직시하는 대신 시선을 밖으로 돌려 화풀이할 대상을 찾는다. 그렇게 어려운 것 대신 쉬운 것만 쫓으니 내게도 남에게도 도움이 될 수가 없다. 글/임경선(칼럼니스트)

2013-04-07 16:23:3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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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 탄산음료가 약이었다고?

탄산음료는 발포성 가스가 들어있어 톡 쏘는 맛이 특징이다. 마시면 시원한 청량감이 들지만 각종 첨가물 때문에 건강에는 썩 이롭지 않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이런 탄산음료가 처음에는 청량음료로 개발된 것이 아니라 약으로 만들어진 음료수였다. 때문에 식품점이 아니라 약국에서 팔았으니 콜라, 사이다 마시러 약국으로 가야했던 것이다. 탄산음료는 땅에서 솟는 발포성 가스가 포함된 약수, 즉 광천수(鑛泉水)를 모방해 만든 음료다. 사람들은 온천물로 목욕하면 병이 낫고, 광천수인 온천수를 마시면 위장병이 치료된다고 믿었다. 때문에 수많은 약사와 화학자들이 인공 광천수 개발경쟁을 벌였는데 일련의 과학자들이 탄산염을 넣으면 기포가 발생하는 물을 만들었다. 이때 사용한 탄산염이 소다였기 때문에 탄산음료를 영어로 소다수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서부개척시대 미국인들은 소화가 안 되거나 머리가 아프면 약국에서 광천수인 소다수를 사서 마셨다. 당시 약사들은 소다수의 맛을 더하기 위해 각종 향료를 섞거나 거품이 많이 나도록 탄산염을 혼합해 팔았는데 바로 지금 마시는 탄산음료의 기원이다. 그런데 약으로 마시던 탄산음료가 청량음료로 널리 퍼지게 된 계기가 생겼다. 엉뚱하게도 1920년, 미국의 금주령이 탄산음료 발달의 전환점이 됐다. 술을 마실 수 없게 된 성인남자들이 대체품으로 톡 쏘는 맛의 탄산음료를 선택한 것이다. 남자들은 술집 대신에 약국에 모여 탄산음료를 마시며 술집에서 이뤄졌던 사회적 교류의 공백을 메웠다. 그러자 폐업한 술집들이 너도나도 탄산음료 판매점을 열면서 지금처럼 널리 청량음료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탄산음료에서 발견한 엉뚱한 역사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2013-04-03 14:21:12 메트로신문 기자
[임경선의 모놀로그] 거절을 너무 잘해도 고민?

소싯적 나는 부탁을 받으면 거절 못하는 매우 소심한 여자였는데 서른 중반 이래 프리랜서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일상적으로 많은 선택을 해야 했기에 자연스레 '노'를 제법 잘 하게 되었다. 직감적으로 끌리지 않으면 남들 듣기엔 솔깃해도 눈 딱 감고 일을 거절했고 본능적으로 마음을 못 열겠는 사람들과는 관계가 깊어지는 것을 피했다. 한데 요새는 '노'를 너무 쉽게 하는 거 아닌가 고민이 되었다. 사십 대라는 나이는 정신적, 육체적 정체기를 본격적으로 체감하는 나이. 이쯤 해서 내 인생 대충 결산하고 스스로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체념한다. 이런 자세는 성숙하고 초연한 자세지만 한 편으로는 '지쳤다'는 이유로 겁쟁이가 된 것을 합리화시켜주는 것이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성장하려면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접촉이나 도전이 불가결하다. 시작 선에 선다는 마음으로 어떤 기회가 왔을 때 '난 됐어요'라고 내빼지 않고 한 보 앞으로 걸어나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런데 몸에 배인 탓에 조금만 거슬리는 게 느껴지면 '노'를 외치는 자신을 발견하면? 그럴 때는 자신의 우선순위를 재점검해보는 수 밖에 없다. 내가 이 일을, 혹은 이 인간관계를 거부함으로 인해 무엇을 얻거나 지키려는 것인가. 그 이유는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것인가 아니면 포기에 가까운 태도일까. 내 경우 일의 우선순위는 나다운 소설, 에세이, 칼럼을 꾸준히 쓰는 것. 그래서 글 쓰는 일에 직간접적으로 도움 될 일이 아니라면 돈 대신 여유시간을 선택하기로. 인간관계에서는 좋아하고 매료되는 사람이라 해도 바로 신뢰하거나 의존하지 않는다. 깊은 관계는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니 그것을 착각하면 쉽게 피차간 상처를 입는다. '예스'로 새로운 일과 사람을 받아들여 몰랐던 나를 새로이 발견하는 기쁨도 있지만 '예스'라고 했다가 자칫 내가 아닌 나를 무리해서 연출하며 후회하기도 한다. 그 차이는 내가 얼마나 예민하고 상세하게 스스로의 우선순위를 공정하게 납득하고 있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글/임경선(칼럼니스트)

2013-03-31 17:28:37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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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 계란과 새봄맞이

계란과 새봄맞이 부활절이면 교회에서 곱게 색칠한 계란을 선물한다. 막연하게 예수 부활을 의미하는 것으로 짐작하겠는데 어디서 비롯된 풍속일까? 기원에 대해 여러 설이 있지만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하나는 부활절 직전의 사순절 금식에서 비롯된 풍속이라는 것이다. 금식이 풀리며 계란으로 영양을 보충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기독교 이전, 원시종교의 봄 축제에서 비롯됐다는 설이다. 봄은 부활의 계절이고 계란은 생명 탄생을 의미하기 때문에 예수 부활을 상징하게 됐다는 주장이다. 대체적으로 두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얽히며 부홀절 계란 먹는 풍습이 생긴 것으로 본다. 흥미로운 것은 부활절 계란이 기독교 의식이고 서양 풍속인 것 같지만 동양에도 비슷한 풍속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새봄을 축하하면서 계란을 먹고 또 계란에 장식을 했다. 6세기 중국의 '형초세시기'에 정월 초하룻날이면 조상께 제사를 지내며 새봄을 축하하는데 사람마다 계란을 하나씩 먹는다는 기록이 있다. 진나라 때 학자인 갈홍은 "정월 초하룻날 계란을 먹는 것은 나쁜 기운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계란 장식도 동서양이 비슷하다. 역시 형초세시기에 새봄이면 계란에다 파랗고 붉은 색을 칠해 서로에게 선물로 나누어 주는 풍습이 있다고 했다. 계란에 색을 칠하는 것은 만물의 소생을 축하하고 재물이 생기기를 소원하는 의미라는 풀이다. 고대 페르시아에서도 새해, 그러니까 봄날이 시작되는 날이면 가족들이 삶은 계란에 장식을 한 후 선물을 하는 풍속이 있었다. 형식은 서로 달라도 동서양에서 모두 계란에다 새봄이 다시 돌아온 것을 축하하는 의미를 담았다. 역시 세계는 하나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2013-03-27 14:58:11 메트로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