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人 머니 산업 IT·과학 정치&정책 생활경제 사회 에듀&JOB 기획연재 오피니언 라이프 AI영상 플러스
글로벌 메트로신문
로그인
회원가입

    머니

  • 증권
  • 은행
  • 보험
  • 카드
  • 부동산
  • 경제일반

    산업

  • 재계
  • 자동차
  • 전기전자
  • 물류항공
  • 산업일반

    IT·과학

  • 인터넷
  • 게임
  • 방송통신
  • IT·과학일반

    사회

  • 지방행정
  • 국제
  • 사회일반

    플러스

  • 한줄뉴스
  • 포토
  • 영상
  • 운세/사주
오피니언>칼럼
기사사진
[윤덕노의 푸드스토리] 최초의 샐러드 소스는 소금물

최초의 샐러드 소스는 소금물 샐러드가 다이어트식으로, 건강식으로 인기가 높다. 샐러드도 어쩌다 먹으면 맛있지만 여름이 시작되기 전, 뱃살을 빼야겠다는 의무감 때문에 줄곧 채소만 먹어야 한다면 그것처럼 힘든 일도 없다. 아무리 다이어트가 중요해도 채소를 날 것으로 계속 먹기는 쉽지 않은데, 때문에 옛날 서양에서는 채소에 소스를 뿌려 먹었으니 바로 샐러드의 기원이다. 지금은 샐러드도 종류가 다양하지만 최초의 샐러드 소스는 무엇이었을까? 고대 그리스에서 채소에 소금을 뿌리거나 소금물에 채소를 찍어 먹은 것에서 샐러드가 발달했다. 샐러드라는 말 자체가 라틴어 소금(Sal)에서 비롯됐다. 사실 서양 음식은 소금에서 비롯된 단어가 많다. 소스도 소금, 멕시코 소스인 살사도 스페인어로 소금, 소시지는 소금에 절인 고기, 심지어 월급인 샐러리도 어원이 소금이니 고대에 로마병사에게 급료로 소금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음식이름에 왜 이렇게 소금이 잔뜩 들어갔을까? 지금은 소금이 성인병의 주범으로 지탄받지만 고대의 소금은 산지가 아니면 구하기 힘든 귀한 조미료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채소에 소금물만 뿌려도 맛이 확 달라졌던 것이다. 어쨌든 샐러드는 식후 혹은 식전, 어느 때 먹는 것이 좋을까? 고대 그리스에서 샐러드 먹는 시점을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식전에 전채로 먹는 것이 좋다고 했다. 반면 샐러드를 식전에 먹으면 와인 맛을 버리니 식후에 디저트로 먹어야 한다는 것이 반대파의 주장이었다. 정답이 있을까 싶은데 아마 건강 중시파와 맛을 강조하는 미식가의 관점 차이가 논쟁으로 이어진 것 같다. 여러분은 어느 쪽 의견에 공감하는지? /음식문화평론가

2013-05-29 13:59:19 메트로신문 기자
기사사진
[윤덕노의 푸드스토리] 빵 만드는 여자가 '레이디'

빵 만드는 여자가 '레이디' 레이디(Lady)를 보통 숙녀라고 번역하지만 원뜻은 귀부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귀족 또는 군주와 같은 지도자의 부인이 바로 레이디였는데 그중에서도 첫째는 대통령의 부인, 퍼스트레이디다. 그런데 왜 레이디가 귀부인일까? 옛날에는 계급사회였으니까 조상 잘 만난 덕에 귀하신 몸이 됐기 때문일까? 아니면 영부인, 퍼스트레이디처럼 시집 잘 가서 남편 잘 만난 덕에 졸지에 첫 번째 귀부인이 된 것일까? 옛날부터 지도자의 부인을 레이디로 부르며 대접한데는 다 이유가 있다. 뒤집어 말해 레이디가 귀부인이 된 까닭은 제 역할을 다했기 때문인데 영어 단어 레이디의 어원에 설명이 담겨있다. 레이디는 고대 영어 흘라프디게(Hlafdige)에서 비롯된 말로 흘라프는 빵, 디게는 만드는 여자라는 뜻이다. 그러니 레이디의 원뜻은 '빵 만드는 여자'로 부족을 배불리 먹일 양식을 만들어주는 여자라는 뜻이다. 레이디의 남편은 군주를 뜻하는 영어 로드(Lord)다. 이 단어 역시 고대 영어, 흘라프베아르드(Hlafweard)가 뿌리다. 흘라프는 빵, 베아르드는 지키는 사람이라는 뜻이니 빵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종합하자면 고대 영국에서 지도자 부부는 부인이 빵을 만들면 지도자는 그 빵을 잘 지키고 관리했다가 부족 구성원들에게 신분에 따라 공평하게 나누어 주었던 사람들이다. '음식남녀(飮食男女)'라는 말이 있다. 홍콩 영화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말이지만 사실은 동양고전인 '예기'에 나오는 말로 음식과 남녀, 즉 식욕과 성욕은 인간의 가장 큰 욕망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기본욕구인 빵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이 바로 지도자인 것이다./음식문화평론가

2013-05-22 11:26:08 메트로신문 기자
기사사진
[윤덕노의 푸드스토리] 딸기는 스파이 활동의 부산물

딸기는 스파이 활동의 부산물 최초의 딸기는 과일이 아닌 화초로, 먹지는 못하고 눈으로 즐기는 관상용 열매였다. 이런 딸기를 어떻게 먹게 됐을까? 프랑스 스파이가 간첩활동을 열심히 한 결과다. 논리적으로 연결도 안 되고 상식적으로도 터무니없는 소리처럼 들리지만 사람들이 딸기를 먹게 된 과정이 그렇다. 지금 먹는 딸기의 조상은 남미 칠레의 야생 딸기와 북미 버지니아의 산딸기를 교배시켜 얻은 종자다. 1711년,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가 육군 정보국 소속 프레지어 중령을 스페인 식민지였던 칠레와 페루에 파견한다. 현지의 방어망을 비롯한 군사정보를 수집하라는 지시였다. 식물학자로 위장한 프레지어 중령은 칠레 해안가에 자생하는 야생딸기를 연구하는 척하며 열심히 간첩활동을 한 후 1714년 야생딸기 종자 몇 포기를 가지고 칠레에서 귀국했다. 간첩활동 결과를 보고한 프레지어는 제대 후 계란 크기의 빨갛고 탐스런 열매를 맺는 칠레 딸기의 보급에 나섰다. 하지만 칠레 딸기는 관상용으로 먹는 종자가 아니었다. 유럽 육종 학자들이 이 칠레 야생딸기를 유럽의 산딸기와 교배해 식용 딸기을 얻으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다 1764년 영국의 식물학자 필립 밀러가 북미 버지니아에서 자라는 토종 산딸기와 칠레 야생딸기를 교배해 새로운 품종을 얻었는데 이 딸기가 바로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딸기의 원조다. 이후 거듭된 품종개량을 거쳐 1806년 무렵부터 지금처럼 맛있는 딸기의 대량재배에 성공했다. 식물학자로 위장한 프랑스 간첩이 열심히 활동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딸기를 먹는 대신 바라만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딸기 한 알에도 뜻밖의 역사가 숨어있다. /음식문화평론가

2013-05-15 14:47:55 메트로신문 기자
기사사진
[윤덕노의 푸드스토리] 미리 더위 막아주는 녹두묵

'제철 음식은 보약' 이라는데 요즘 먹는 녹두묵이 그렇다. '동국세시기'에 음력 3월 세시음식으로 녹두묵을 꼽았는데 녹두묵을 잘게 썰어 돼지고기, 미나리, 김을 넣고 양념하면 시원한 맛이 늦은 봄의 별미라고 했다. 그런데 왜 하필 이맘 때 녹두묵을 먹었을까? 음력 3월은 날씨가 본격적으로 따뜻해질 때로 곧 더위가 몰려온다. 그런데 녹두는 열을 가라앉히는 식품이다.'동의보감'에 녹두는 성질이 차서 열을 내리고 부은 것을 가라앉히며 소갈증을 멎게 해준다고 나온다. 때문에 녹두묵은 여름이 시작되기 전, 더위를 예방해주는 계절음식으로는 제격이다. 사실 동양에서는 옛날부터 여름철에 좋은 음식으로 녹두를 꼽았다. 중국 송나라 황제는 여름에 녹두죽을 마시며 열을 식히고 더위를 달랬을 정도다. 열을 식혀주기 때문에 녹두묵은 옛날부터 좋은 술안주였고 최고의 해장음식으로 꼽혔다. 지금도 전통 음식점에서 술을 마실 때는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으니 안주로 녹두묵 무침이 나오기 때문이다. 별 의미 없이 내오는 반찬일 것 같지만 녹두묵으로 더위를 식히는 것처럼 술로 인해 생기는 열을 가라앉히라는 뜻이다. 일종의 해장 안주인 셈이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술상에 녹두묵 무침이 자주 올라오는 이유인데 정조 때 시인 이옥의 시에도 녹두묵이 술안주로 올라 와 있다. "안주로는 탕평채(蕩平菜) 가득/술자리에는 방문주(方文酒) 흥건/그러나 가난한 선비의 아내는/입에 누룽지조차도 못 넘긴다" 탕평채는 녹두묵 무침이고 방문주는 경남 밀양의 명주다. 오늘이 음력으로 3월의 마지막 날이고 입하 절기도 지났으니 이제 더워질 일만 남았다. /음식문화평론가

2013-05-08 11:39:48 메트로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