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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 푸드스토리] 감자와 고구마 이름이 바뀐 사연

감자와 고구마 이름이 바뀐 사연 동화 '왕자와 거지'는 쌍둥이처럼 닮은 왕자와 거지가 신분이 바뀌어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현실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감자와 고구마 이야기다. 영어로 감자는 포테이토(potato), 고구마는 달콤한 감자라는 뜻에서 스위트 포테이토(sweet potato)다. 옛날에는 달랐다. 고구마가 포테이토였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한 직후, 중남미 아이티에서 유럽으로 고구마가 전해졌다. 스페인에서는 낯선 작물을 원주민 발음대로 '파타타'라고 했다. 포테이토의 어원이다. 곧이어 비슷하게 생긴 감자가 전해졌고 포테이토와 구분해 하얀 고구마, 화이트 포테이토라고 했다. 그리고 운명이 엇갈렸다. 열대성 작물이며 보관이 어려운 고구마는 유럽에서 대량 재배에 성공하지 못했다. 반면 감자는 18세기부터 유럽 전역으로 퍼져 농민들의 주식이 됐다. 그러자 사람들은 고구마 대신 감자를 포테이토라고 부르게 됐고, 고구마는 스위트 포테이토가 됐다. 왕자와 거지처럼 이름이 뒤바뀐 것이다. 똑같은 상황이 우리말에서도 벌어졌다. 1763년 고구마가 처음 조선에 전해지자 사람들은 '달콤한 마뿌리'라는 뜻에서 감저(甘藷)라고 불렀다. 감자의 어원이다. 약 60년 후인 1824년, 함경도 산간지방으로 감자가 들어왔는데, 이 때는 그저 북쪽에서 먹는 고구마 비슷한 작물이라는 뜻에서 북감저라고만 했다. 그런데 유럽과 같은 상황이 반복해 일어났다. 고구마보다 감자를 주로 재배하게 되면서 고구마가 감자에게 원래의 이름을 내준 것이다. 일부 지방에서 아직도 고구마를 감자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식과 간식의 차이가 감자와 고구마의 운명을 갈라놓았다./음식문화평론가

2013-07-11 09:16:33 안용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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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누가 처음 팥빙수를 먹었을까

더위를 한방에 날려주는 팥빙수, 녹차빙수는 현대인만이 누릴 수 있는 입 호사 같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옛날 사람들도 여름에 빙수를 즐겼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현대식 빙수를 먹은 사람은 누구일까? 1876년 고종 때 수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김기수다. 일본 외무대신과의 만찬에서 디저트로 빙수를 먹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얼음 즙이 그릇에 산처럼 쌓였는데 오색이 찬란하게 빛나고, 먹으면 가슴까지 서늘하다고 했으니 시럽을 뿌린 빙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현대식 빙수는 일본에서 만들었다. 1869년 요코하마에서 빙수 가게가 처음 문을 열었고 1887년에는 얼음 가는 기계인 빙수기가 최초로 특허를 받았다. 이렇게 19세기 후반에 지금과 같은 빙수가 등장했지만 그렇다고 일본을 빙수의 원조 국가로 보기는 어렵다. 11세기 무렵에 이미 여름이면 빙수와 비슷한 얼음 음료를 먹었기 때문이다. 중국 '송사(宋史)'에 복날이면 황제가 꿀과 팥을 섞은 얼음을 대신들에게 하사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겨울에 저장한 얼음을 꺼내 꿀과 팥을 섞어 한여름에 먹었다는 것이니 현재의 팥빙수와 상당히 비슷하다. 팥빙수 이외에도 요구르트를 얼린 빙수 종류인 빙락(氷酪), 앵두 즙을 뿌린 얼음 등 다양한 얼음 음료가 있었다. 일본도 11세기 전후에 빙수 비슷한 음식이 있었다. 얼음을 갈아 금속 그릇에 담은 후 칡즙을 뿌려 먹는다고 했으니 지금의 빙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 우리 문헌에 빙수는 보이지 않지만 얼음 화채, 혹은 얼음 쟁반에 과일을 담아 차갑게 식혀 먹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무려 1000년 전에도 여름이면 지금의 팥빙수 비슷하게 얼음을 먹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음식문화평론가

2013-07-03 19:55:05 안용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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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 '영롱발어' '산약발어'...고급음식 수제비

'영롱발어' '산약발어'...고급음식 수제비 장마철에는 애호박 숭숭 썰어 넣고 끓인 수제비가 맛있다. 수제비는 흔히 제대로 차려 먹기 귀찮을 때 대충 먹는 음식이고, 살림이 넉넉하지 못했던 시절에 부족한 양식을 보충하려고 먹었던 음식이라고 오해하는데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물론 전형적인 서민음식으로 나라가 못살았을 때 많이 먹었던 것 역시 사실이지만, 더 옛날인 조선시대에는 별식으로 먹었던 고급 음식이기도 했다. '수제비가 고급요리'라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농촌 출신 어르신들 중에는 가을 추수 후 먹었던 수제비를 기억하는 분들도 있다. 지금은 모두 밀가루 수제비이니 쌀 수제비가 낯설게 들리겠지만 예전 시골에서는 가을걷이가 끝나 양식이 풍부할 무렵이면 쌀을 빻아 수제비를 끓였다. 쌀은 있지만 밀가루는 없고, 또 밀가루 살 현금은 없으니 쌀가루로 수제비를 끓여 먹으며 한 해 농사의 수고를 위로했던 것인데 이런 고급 수제비를 '발어(撥魚)'라고 한다. 쌀이나 밀가루 반죽을 떼어내 장국에 넣으면 둥둥 떠서 끓는 모습이 마치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과 비슷해서 생긴 이름이다. '산림경제'에 영롱발어라는 수제비가 있다. 메밀가루를 반죽해 잘게 썬 쇠고기와 함께 수저로 떠서 팔팔 끓는 물에 넣으면 수제비는 뜨고 고기는 가라앉는데 그 모습이 영롱하고 현란해 지어진 이름이다. 여기에 표고버섯, 석이버섯을 넣고 간장, 후추로 간을 맞춰 먹는다고 했으니 지금 봐도 고급 메밀수제비다. 산약발어도 있는데 메밀가루에 콩가루와 마(山藥)가루를 섞어 반죽한 후 수저로 떼어 끓는 물에 넣은 후 익기를 기다렸다고 먹는다고 했다. 수제비 한 그릇이 생각나는 날씨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2013-06-26 20:37:24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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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 영조의 장수비결은 물밥?

영조의 장수비결은 물밥? 영조는 조선 임금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 18세기에 여든 세 살까지 살았으니 지금이라면 백 살을 거뜬히 넘겼을 것이다. 장수만세의 주인공이지만 영조는 평생 장수의 최대 적이라는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인물이다. 무수리 아들이라는 신분적 열등감, 이복형 경종을 독살했다는 소문, 노론과 소론의 당파싸움, 아들 사도세자를 죽였다는 죄책감 등등, 신분은 왕이었지만 결코 순탄한 인생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역대 최고로 장수한 비결은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식습관을 꼽는다. 영조는 특히 보리밥을 좋아해 여름이면 자주 보리밥을 물에 말아 들었다. 승정원일기에는 굴비와 고추장도 좋아한 것으로 나오니 기름진 산해진미 대신 물만 보리밥에 굴비 한 마리의 소박한 식사가 장수의 비결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 물밥은 집에서 대충 먹거나 입맛 없을 때 후다닥 먹는 음식이다. 웬만큼 친하지 않으면 함께 물밥을 먹지 않는데 예전에는 손님상에도 물밥을 내놓았다. 고려 말의 대학자, 목은 이색이 젊었을 때 원로대신의 집에서 식사대접을 받았다. "이정당(政堂)과 철성시중(侍中) 집에서는 물밥을 먹었고 임사재의 집에서는 성찬을 대접받았다"고 했는데 정당은 지금의 차관보, 시중은 장관급 벼슬이다. 얼핏 들으면 고위 공직자 집에 갔다 문전박대 받았다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지만 고려 때 물밥, 즉 수반(水飯)은 지체 높은 집에서도 제대로 먹는 식사였을 뿐 아니라 손님이 왔을 때도 스스럼없이 가볍게 내놓을 수 있는 별식이었다. '성호사설'에도 물밥을 먹는 것이 우리 풍속이라고 했으니 지금처럼 대충 끼니나 때우는 음식만은 아니었다. 찬물에 밥 말아 풋고추와 보리굴비로 한 끼 즐기는 것도 소박한 행복이다./음식문화평론가

2013-06-19 17:25:16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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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 왜 하필 핫도그일까?

핫도그는 '뜨거운 개'라는 뜻이다. 왜 이런 엉뚱한 이름이 생겼을까? 설마, 진짜로 빵 사이에 혹은 막대기에 잘 익은 개고기를 끼워서 먹었기 때문일까? 전형적인 미국음식 핫도그는 뿌리가 독일이다. 주재료인 프랑크 소시지가 프랑크푸르트에서 발달했고 미국에 온 독일계 이민들이 주로 먹었던 음식이기 때문이다. 독일 사람들은 가늘고 긴 프랑크 소시지를 장남삼아 닥스훈트 소시지라고 했다. 다리가 짧고 허리는 비정상적으로 긴 닥스훈트 개를 닮아서다. 작고 귀여운 모습 때문에 흔히 애완견으로 알고 있지만 독일어로 닥스(Dachs)는 오소리, 훈트(Hund)는 개라는 뜻으로 좁은 동굴 속으로 기어 들어가 오소리를 잡도록 진화한 사냥개다. 반대로 닥스훈트의 별명은 프랑크 소시지와 비슷하다고 해서 소시지 도그(Sausage Dog)라고 했다. 핫도그의 유래는 여기서 비롯됐다. 1900년 무렵, 뉴욕 야구장의 노점상들은 소시지를 빵에다 끼워 팔면서 "뜨거운 닥스훈트 소시지가 왔어요"라고 외쳤다. 한 만화가가 이 모습을 신문 삽화로 그렸는데 닥스훈트라는 독일 사냥개의 스펠링을 몰랐기 때문에 그냥 "핫 도그 소시지가 왔어요"라고 적었다. 핫 도그라는 표현이 재미있었는지 이후 소시지 빵의 이름이 핫도그가 됐다. 다양한 핫도그의 유래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핫도그라는 이름이 생긴 배경은 흥미롭다. 하지만 음식이 만들어진 배경과 그 속에 담긴 문화코드는 인내, 그리고 사랑이 아닌가 싶다. 낯선 나라로 이민 와 힘들게 일했던 독일계 이민 1세대가 재빨리 먹고 다시 힘을 내던 패스트푸드였기 때문이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노점에서 목청껏 외치며 팔았던 음식이었으니 핫도그는 사랑의 음식이다. /음식문화평론가

2013-06-12 16:13:56 메트로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