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얼인터뷰]김덕호 경사노위 상임위원 "노동개혁·계속고용 첫발, 노사정 대화"
"지금 노동개혁 때문에 노사정이 갈등 상황이고, 노동계는 사회적 대화에 응하지 않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뭐 하고 있느냐 지적을 들을 때마다 자괴감이 듭니다." 김덕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은 고해성사 보듯 털어났다. 노동개혁이란 가야 할 길은 명확한데 동행해야 할 노동계와 경영계가 다른 길을 가려고 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운 속내가 묻어났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정년 연장, 원·하청 양극화 등 노동시장 이중구조, 플랫폼과 프리랜서 등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노동자들, 최근 노동시장 환경은 혁명이라 할 만큼 급변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모두가 노동시장 개혁이 필요하다고 외치지만 그 주체인 노사정은 여전히 각자의 노선을 가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 1999년 경사노위 전신인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한 뒤 지금도 사회적 대화에 빠져있다. 한국노총이 참여하지 않을 경우 경사노위 존립마저 위태로운 상황이다. 현재 국회에는 근로자위원 위촉 조건을 바꾸는 경사노위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경사노위 근로자위원 조건을 "청년·여성·비정규직 근로자 등을 각각 대표할 수 있는 사람 중"으로 바꾸는 것이 골자다. 노동 형태가 다양화되고, 청년 MZ노조에 비정규직까지 모든 노동자들을 대표할 수 있도록 근로자위원들을 새로 구성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번에 경사노위 판을 새로 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노동개혁과 경사노위 그리고 노사정, 떼려야 뗄 수 없는 비운의 삼각관계 속에 놓인 김덕호 경사노위 상임위원을 만났다. Q. 인구구조의 변화에 따라 결국 노동시장도 바뀔 수밖에 없다. 정년 연장, 민감하지만 피할 수 없는 이슈인데 어떻게 논의되고 있나? A. 지금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어 정부도 계속 고용에 대한 논의를 경사노위에서 해 주길 원하고 있다. 사람들은 정년 연장이라 알고 있는데, 이는 노동계가 정년 연장에 방점을 찍어 그렇다. 경영계는 정년 연장보다 임금체계 개편에 방점을 찍고 있다. 서로 관점은 다르지만 노동계도 원하는 의제여서 계속 논의가 이뤄질 거라 생각한다. Q. 노동개혁이 시급하다면 노사정이 모여 논의해야한다. 그런데, 노사정이 사회적 대화를 하지 않는다. 민주노총은 왜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있나? 민주노총이 대화의 장으로 들어오려면 경사노위가 어떤 역할을 해야하나? A.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가 생긴 1997년에 들어온 이후, 25년 간 단 한 번도 사회적 대화에 응한 적 없다. 사회적 대화라는 제도적 틀이 있으니 들어와서 허심탄회하게 논의하자 말하고 있지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윤석열 대통령이나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대화하자고 한다. 노동계가 사회적 대화에 빠져 있기 때문에 경사노위는 일단 전문가 중심으로 노동개혁 의제들을 논의하고 있다. Q. 민주노총은 왜 사회적 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보나? A. 노선 때문인 것 같다. 민주노총의 노선과 방침을 보면 정치 투쟁을 더 우선시하는 것 같다.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들만의 생각이다. 사람마다, 집단마다 생각과 관점이 다른데 (노선에)갇혀 있으면 어려워진다. 사회적 대화의 전제가 신뢰와 협조인데 그 부분이 없는 것 같다. 부부가 대화하더라도 서로 신뢰가 담보되지 않으면 대화가 되지 않는다. 비트겐슈타인의 그림처럼 노동계는 오리로 보고, 경영계는 토끼로 본다. 그래서 양쪽을 불러 그 이유를 물어보고 싶은데 오지를 않는다. 그나마 지금 노동시장이 문제가 있다는 점에 양쪽 모두 동의하고 있어 대화의 장으로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Q. 오리든 토끼든 노사정이 대화의 장으로 나와 줬으면 좋겠다. 여전히 노사정위원회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어떤 곳이고, 어떤 역할을 하나? A.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그때 우리 국민 모두가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금 모으기 등 캠페인에 동참했다. 그때 노사정이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하자며 대타협을 이뤘다. 노사정위원회법이 생겼고, 노사정위원회가 출범했다. 이후, 사회적 논의의 영역을 고용·노동뿐만 아니라 경제와 사회, 노동시장에 미치는 모든 정책으로 넓혔다. 노동시장의 소외 계층이었던 청년과 여성, 비정규도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래서, 노사정위원회를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확대했다. Q. 노동계가 주 69시간제란 프레임을 만들어 헛된 논란이 일고 있다. 근로시간 제도를 둘러싼 노사 간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우리가 선진 노동시장으로 가려면 제도가 어떻게 개편돼야 하나? A. 주 69시간제는 정확한 용어가 아니다.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도 법적인 소정근로시간 40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주 52시간) 기준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일이 많을 때가 있고, 적을 때가 있어 주 평균 52시간으로 돼 있는 연장근로의 관리를 월 단위로, 분기, 반기, 연 단위로 유연화하자는 취지다. 그렇게 하면 연 평균 근로시간도 줄일 수 있다. 해외 국가들 중에는 휴가를 3주나 한 달처럼 몰아서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할 때 일하고, 놀 때 노는 방식인데 그러면 연 평균 근로시간도 확 줄어들 수 있다. Q. 포괄임금제, 흔히 공짜 노동이라고 한다. 밤늦게까지 야근했는데 수당도 못 받으면 억울하다. 근로시간 개편에 앞서 포괄임금제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는데? A. 항공사에 근무하는 파일럿을 예로 들어보자. 파일럿이 미국, 유럽 등으로 비행하다 주 52시간만 일해야 한다면 비행기를 멈춰야하나? 특례 업종이란 게 있다. 어떤 직종에 어떤 특수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거기에 맞게 유연한 근로시간이 적용되는 게 맞다. 무조건 69시간 또는 52시간 근로라는 일률적인 잣대로 보는 시각이 잘못이다. Q. 최근 근로시간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의 회계, 재정 투명성 강화 등 정부와 노동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정부가 무리하게 추진한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A. 지금 정부는 노조법 14조에 따라 노조가 회계 장부, 서류 등을 열람하고, 비치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법적으로 해야 하는 일인데 그동안 하지 않았고, 이제 와서 정부가 투명성 차원에서 관리, 감독을 강화한다고 하니 노동계와 갈등이 생기는 거다. 최근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도 설립됐다. 새로고침 노조도 회계 투명성을 강조한다. 청년 MZ노조들도 책임감을 말한다. 모든 노조의 회계는 투명해야 한다. 이 참에 노조가 자정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Q. 고용노동부 대변인을 거쳐 기조조정실장 그리고 차관급인 경사노위 상임위원으로 초고속 승진을 했다. 대변인과 상임위원, 어떤 역할이 더 힘드나? A. 힘든 걸로 따지면 사실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우리 고용노동부는 노동계와 경영계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 당사자 사이에 있어 어떤 정책을 펴더라도 욕을 먹는다. 대변인 시절에 정책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의견 수렴도 하고 해야 하는데, 언론은 정보 전달보다 싸우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무엇인가 문제가 생기는 거, 그러다 보니 하루하루가 살얼음을 걷는 기분이었다. 경사노위 상임위원은 본회의 위원이자 운영위원회 위원장으로서 회의체를 이끌어가야 한다. 그런데, 노동계가 아직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있어 죄인의 기분으로 뛰어다니고 있다. Q. 끝으로,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글귀를 소개한다면? A. 칸트의 묘비명에는 실천이성 비판 말미의 첫 구절이 적혀 있다.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더 커지는 놀라움과 두려움에 휩싸이게 하는 두 가지가 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내 마음 속의 도덕률이 그것이다." 칸트는 인식의 한계를 깨닫는 문제와 도덕성에 대한 문제를 언급했다. 이 두 가지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면 상대방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듣고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덕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은… 1969년생으로 성균관대 사회학과 졸업 후 서울대 행정학 석사, 성균관대 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36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한 그는 고용노동부 청년여성정책관과 대변인, 근로감독정책단장,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기획조정실장에 오른 지 2개월 만에 차관급인 경사노위 상임위원에 임명됐다. 문재인 정부 당시 문성현 전 경사노위 위원장이 약 5년간 자리를 지켰다. 배규식 상임위원이 임기를 1년 이상 남기고 사퇴한 뒤 2개월째 공석이었다. 그리고, 김덕호 상임위원이 바턴을 넘겨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