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人 머니 산업 IT·과학 정치&정책 생활경제 사회 에듀&JOB 기획연재 오피니언 라이프 AI영상 플러스
글로벌 메트로신문
로그인
회원가입

    머니

  • 증권
  • 은행
  • 보험
  • 카드
  • 부동산
  • 경제일반

    산업

  • 재계
  • 자동차
  • 전기전자
  • 물류항공
  • 산업일반

    IT·과학

  • 인터넷
  • 게임
  • 방송통신
  • IT·과학일반

    사회

  • 지방행정
  • 국제
  • 사회일반

    플러스

  • 한줄뉴스
  • 포토
  • 영상
  • 운세/사주
오피니언>칼럼
기사사진
[홍경한의 시시일각] 어느 작가의 지난 2년

유명 작가인 A는 B작가와 일면식조차 없었다. B의 작품을 제대로 본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A는 B가 자신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단정했다. 작품 해석은 물론 같은 재료와 방법론을 구사했다며 공공연하게 밝히기까지 했다. 필자의 시각은 그렇지 않았다. 둘 다 누구든지 인용 가능한 공유저작물에 흔한 오브제를 부착하는 방식의 작품들이기에 가시적 오해의 가능성이 없진 않으나, 개념이 달랐고 내용도 달랐다. 심지어 접근 방향 및 표현방식에서도 교차점은 빈약했다. 때문에 눈에 비춰진 단순 유사성만으로 표절이라기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A는 B가 자신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굳게 믿은 나머지 보도자료를 작성해 여러 언론에 배포했다. 동시에 B의 전시를 진행 중이던 C갤러리에 이메일을 보내 전시를 취소하라며 압박을 가했다. 필자는 의아했다. 표절이라 보기엔 심도 있는 고찰이 누락되어 있었던 데다가 표절 의혹만으로 실명까지 거론하며 동네방네 공표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쉽게 납득되질 않았다. 아니, 한번 표절 작가로 인식되면 작가 생활에 치명적일 뿐만 아니라 상당히 오래 걸려야 회복된다는 점에서 조심스럽지 못한 처사는 꽤나 우려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언론보도는 가혹한 일상을 만들었다. 여기저기서 A의 주장을 담은 기사가 쏟아졌고 B는 하루아침에 표절 작가로 낙인찍혔다. SNS에는 '썩 좋은 수준이 아닌' B가 A를 '벗겨 먹었다'는 치욕스러운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미 홍보까지 진행된 전시를 멈출 수도 없고 A의 표절 주장을 무조건 무시하기도 찜찜했던 갤러리는 전시일정 축소와 함께 이례적으로 '갤러리에 손해가 발생하면 B가 책임지겠다'는 계약서를 요구했다. B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굴욕이었다. 이 와중에도 A는 전시가 진행 중인 갤러리에 B가 자신의 작품을 2005년경부터 표절했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거듭 발송했다. 그는 3류의 감성, 3류의 정신과 태도를 가진 사람의 전시를 취소하지 않은 건 유감이라고 적었다. 여기엔 타인의 발언을 인용해 "표절을 습관적이고 의도적으로 하는 사람", "깜이 아닌 사람" 등의 비하적 표현도 포함되어 있었다. B 작가는 어째서 자신에게 이처럼 부적절한 일이 발생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모멸감에 괴로웠지만 무엇보다 30년 작가로서의 삶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고통이야말로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이에 B는 고민을 거듭하다 A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오해가 있다면 풀어 보려는 마음에 만남을 시도했으나 거부당한 이후였다. 법정에선 A가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갤러리에 압력을 넣게 된 동기와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이 다뤄졌다. 사달의 원인인 표절여부도 중요한 쟁점이었다. 그리곤 오랜 시간이 흘러 드디어 선고가 나왔다. B의 승소였다. 법원은 표절 문제에 대해 B가 A의 작품방법의 독창성을 도용하였다는 A의 표현은 진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나아가 업무방해와 명예훼손도 인정했다. 하지만 A는 항소했다. B의 표절은 진실한 사실이며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도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길고 긴 법정다툼이 이어졌다. 그 사이 해가 세 번이나 바뀌었다. 결과는 이번에도 B의 승소였다. 항소심 법원의 판단은 필자의 예상과 같았다. B가 사용한 작품 이미지는 누구나 패러디할 수 있고, 표현방법 역시 보편적이라는 점을 들어 A의 표절 주장을 일축했다. 갤러리에 이메일을 보낸 행위는 B의 인격적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며, 전시업무를 방해한 것으로 봤다. 상습적 표절자라는 주장 역시 진실한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오히려 법원은 A가 B에 대해 매우 감정적이고 비하적인 표현을 동원하여 B를 자신의 작품을 비롯해 제3자의 작품까지 표절해온 상습적 표절자로 비난한 것은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위법한 공격'에 해당한다며 1심보다 무거운 시선을 덧댔다. 그리고 그렇게 약 2년간 이어진 어느 작가의 법정공방은 일단락됐다, 1심과 2심 모두 승소함으로서 B는 최소한의 명예를 회복했다. 하지만 느닷없이 표절작가로 둔갑된 채 지내야 했던 지난 시간은 보상받지 못했다. 수면제 없이는 잠을 청할 수 없었던 실체적 삶, 아픔을 끌어안고 살아야 했던 그 많은 세월은 이미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물론 A도 남을 것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시간과 금전, 막대한 감정소비가 이뤄졌다. 아쉬운 것은 만약 A가 조금만 더 신중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그랬다면 작품의 표현형식과 지향점이 다름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고 소송까지 가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정말이지 약간만 사려 깊었다면 누군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거나 스스로 피폐해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다 지난 일이지만. 한편 필자는 이번 표절 논란을 지켜보며 소통이 부재한 사회, 갈수록 모질고 혹독해지는 미술계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영 개운하지 않았다. 표절 여부를 가리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게 사람인데 그게 또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에 씁쓸함을 느꼈다. 예술도 결국은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사람의 것이거늘.

2017-02-19 13:17:04 송병형 기자
기사사진
[김민의 탕탕평평] (42) 거울을 보자

요즘 세상은 무엇이든 계속해서 발전하지 못할 경우, 그것은 정체가 아닌 퇴보를 의미한다. 정치, 경제, 문화, 스포츠 등 모든 분야의 트렌드가 급격하게 변해가고 있다. 그런 변화에 맞추어 발 빠른 변화를 추구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시대이다. 그만큼 획기적이고 치밀하게 계획된 생존전략만이 겨우 평균수준 정도는 될 수 있는 그런 세상이다. 구태(舊態). 말 그대로 뒤떨어진 예전 그대로의 모습의 일컫는 말이다. 흔히 구태정치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되고, 우리들 각자도 적잖이 쓰게 되는 경우가 있다. 모든 영역에서 무조건 옛것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전통이라는 단어도 무가치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각자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정치를 말할 때도 구태정치, 문화와 예술 등 우리 삶에 필요한 어떤 것을 말할 때도 구식(old fashion)이라는 말을 심심찮게 하고 있다. 자신을 제외한 타인과 세상의 모든 것들에는 광범위한 문제들을 지나치게 함축적으로 구태 내지 구식이라 칭하면서 정작 내 자신의 사고와 편협된 가치관은 그냥 개성 있고 독창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무언가를 평가하고 그것의 옳고 그름을 따지거나 비판할 때는 역으로 타인과 세상은 나를 어떻게 볼까에 대해 반드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비판과 비평 및 평가는 모든 것이 상대적이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자신을 정확히 보지 못하면서, 자신의 눈에 보이는 상대와 현상들만을 가지고 엄격한 잣대와 평가기준을 적용한다. 언제 어디서든 내 자신을 볼 수 있는 거울이 존재한다면 과연 그럴 수 있을지 궁금하다. 성경에서 보면 마태복음에 이런 구절이 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신앙의 여부를 떠나 누구에게나 양심에 가책을 느낄만한 말씀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것이다. 정치든 개인이든 남들이 그러니까 나도 그런다는 식의 태도와 자신이 하는 사고와 언행만 시대의 트렌드에 맞는 것이고, 남들이 하는 것은 다 올드한 것이라 판단하고 비판한다면 그것은 정말 잘못된 정도를 넘어 위험한 발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에게는 육과 영이 있는데, 육에서 영이 분리되는 순간을 우리는 사망이라고 한다. 육에서 영이 분리되는 순간 그 몸은 시체가 되어 썩어버리는 무의미한 것이다. 그만큼 사람의 생각과 사고가 육안으로 구분되지는 않지만, 눈에 보이는 것들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당들이 정치적인 싸움을 하든, 개인과 개인이 다툼이 있든 중요한 것은 자신의 과오를 정확히 먼저 파악하고 논쟁을 하든 상대를 비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의 경우, 진보진영에서는 보수의 정책이나 정치보다 더 완벽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객관적으로도 자신들의 것이 더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을 때 정쟁을 하는 것이 옳다. 보수진영 또한 매너리즘에 빠져 무조건 자신들에게 익숙한 것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때로는 진보적인 정책이나 진보정당의 요구가 기존의 것들보다 더 발전과 경쟁력을 가져올 수 있다면 과감히 포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정치, 제대로 된 개인의 태도이다. 의식주에 해당하는 가시화 된 것들만 변화한다고 그것이 발전이 아니다. 정녕 우리가 변화야 할 것은 개인이든 정당이든 자신의 내적 성찰과 반성과 변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정작 자기 것은 감추고 껍떼기에 불과한 모양만 유지하면서, 상대를 비판하고 상대 정당을 비판하는 것은 잘못임을 넘어 악한 것이라고 필자는 강력히 주장한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정치권에서도 마찬가지다. 각자가 자신부터 돌아보고, 자신이 먼저 바뀌는 것이 상대를 바꾸고 설득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내 자신의 생각과 사고가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그 행동이 바뀌게 되면 습관이 된다. 그 변화를 바라보는 상대와 타인은 그러면 자연히 나와 같은 과정을 반복하게 될 것이며, 그들 또한 바뀌게 될 것이다. 이런 방법이 가장 원만한 인간관계와 가장 안정적인 정치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지름길이라 생각한다. 남 탓하지 말자. 내 자신부터 스스로에게 엄격한 잣대로 변화시키자. 그러한 개인과 조직의 발전이 결국 국가발전의 반석이 될 것이다. 블로그 http://blog.naver.com/yumpie74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yumpie74

2017-02-19 13:15:25 송병형 기자
기사사진
[김소형의 본초 테라피] 직장인의 건강 간식? '견과류' 좋아

간식으로 간편하게 먹으면서도 건강에 도움이 되는 슈퍼푸드가 바로 견과류다. 특히 과로와 스트레스에 일상적으로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는 작지만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영양 간식이라고 할 수 있다. 매일 적당량의 견과류를 섭취하면 에너지와 활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단백질, 비타민과 미네랄, 오메가-3 지방산 등의 성분들이 긴장과 피로,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기운을 북돋워준다. 특히 30~40대 직장인들의 경우 혈관 건강을 잘 다스려야 한다. 혈관 건강은 하루 아침에 나빠지는 것이 아니다. 포화지방이 많은 기름진 육류, 트랜스지방이 들어 있는 마가린, 팜유가 들어 있는 비스킷이나 초콜릿, 당분 함량이 높은 식품 등을 과도하게 섭취하는 경우 혈중 콜레스테롤이나 중성지방의 수치가 높아진다. 잦은 회식으로 칼로리 높은 안주를 많이 섭취하고 술과 담배를 즐기는 직장인들은 30대부터 복부 비만의 징조가 보이며 혈관도 빠르게 노화한다. 이런 생활습관들은 모두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동맥경화 같은 질환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이처럼 건강을 해치는 잘못된 생활습관을 갖고 있는 직장인들은 견과류를 매일 한 줌 정도 꾸준히 섭취하면 콜레스테롤이나 중성지방의 제거에 도움이 된다. 즉 건강하고 탄력 있는 혈관을 유지할 수 있으며 심장 및 혈관 질환의 위험을 낮출 수 있다. 또한 견과류는 혈액순환을 개선하고 뇌 활동을 향상시켜주기 때문에 머리를 많이 쓰는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의 두뇌 건강에도 좋다. 다만 견과류도 많이 섭취하면 칼로리가 높아지기 때문에 하루 한 줌 정도가 가장 적당하며 될 수 있으면 종류를 골고루 섞어서 먹는 것이 좋다. 또한 견과류는 공기와 닿거나 습도가 있는 환경에서는 쉽게 곰팡이가 피며 견과류가 상하면 아플라톡신이라는 발암물질이 생성되기 때문에 보관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밀폐해서 냉장 및 냉동 보관하는 것이 좋지만 많은 양을 장기보관하기 보다는 신선한 것으로 적당량 구입해서 바로 먹는 것이 가장 좋다.

2017-02-16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기사사진
[노쌤의 키즈톡톡] 하루 10분, 규칙적인 놀이시간을 가져라

아이들에게 놀이는 감정을 표현하고 욕구를 전달하는 통로다. 부모와 함께하는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하루 중 겪었던 분노, 억울함, 황홀, 기쁨 등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을 발산시킨다.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감정을 발산시키며 정서의 균형을 잡아갈 뿐만 아니라 부모와의 정서적 유대감을 쌓는다. 또 놀이를 통해 부모가 들려주는 새로운 낱말의 뜻을 이해하고 표현하며 어휘의 이해 및 표현능력이 향상되고 다양한 놀이상황에 따른 상대방의 말을 추측해보며 구문의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 또한 키울 수 있다.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시간을 놀이로 여기며 즐겁게 대화하고 감정을 주고받는 것 그 자체로 놀이가 된다. 보다 더 효과적으로 아이의 언어발달을 향상시키고, 감정적 유대감을 쌓으며, 정서적 안정감을 채워주고 싶다면 매일 일정시간 동안 규칙적으로 놀이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예를 들어 어린이집 하원 후, 저녁식사 후, 아빠의 퇴근 후 등 하루 중 일정하게 놀이시간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은 언제인지 생각해보자. 그런 뒤 부모가 상의해 매일매일 지킬 수 있는 놀이유지시간을 10분~30분 정도로 정해보자. 필자는 부모들에게 부모와 아이 모두 즐거움을 가지고 놀이에 몰입할 수 있는 적당한 시간으로 '10분'을 추천한다. 하루 중 10분은 그저 '즐거움'만이 가득한 놀이시간이어야 한다. 10분이라는 시간마저 부모가 새로운 단어를 알려주느라, 과격하게 놀이하는 아이를 훈육하느라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놀이하는 10분 동안은 학습을 시키거나, 새로운 것을 가르치거나, 훈육하지 않고 '즐거움'에만 집중해보자. 그 시간 동안은 아이 혼자 놀이하는 것을 지켜보는 놀이시간이 아닌 역할을 맡아 소꿉놀이를 하거나, 함께 그림을 그리거나, 몸을 마음껏 움직이며 춤을 추거나 술래잡기를 하는 등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를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가능하면 엄마와의 10분 , 아빠와의 10분을 나누어서 놀이하면 좋지만 불가능하다면 엄마아빠가 모두 참여하여 아이와 10분 동안 놀이할 수도 있다. 규칙적인 놀이시간을 지키는 것은 아이들에게 놀이시간을 예측할 수 있게 함으로써 심리적 안정감을 줄 뿐만 아니라, 놀이에 대한 기대감도 키워줘 놀이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한다. 10분이라는 시간은 부모에게도 부담이 없음으로 부모와 아이 모두가 즐거운 놀이 활동이 가능해 알찬 놀이시간을 만들 수 있다. 아이에게는 놀이는 '밥'과 같다. 어떤 날은 먹여주고 어떤 날은 굶겨도 될 선택사항이 아니다. 매일 꾸준히 먹는 놀이여야만 놀이의 영양소가 아이에게 듬뿍 전달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2017-02-15 18:33:40 양성운 기자
기사사진
[윤휘종의 잠시쉼표] 일·가정의 두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건 욕심이다. 두 마리를 쫓다간 한 마리도 제대로 못잡는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여성들에게 이런 욕심을 부리라고 강요한다. '일'과 '가정'이란 두 마리 토끼를. "일 계속 할거면 결혼하지마, 영이씨." 젊은이들이 고군분투하며 취업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그려냈던 드라마 '미생'에서 워킹맘으로 고충을 겪던 직원이 다른 여직원에게 건넨 말이다. 일과 가정을 동시에 지킨다는 게 얼마나 힘들었으면 아예 결혼도 하지 말라고 했을까. 워킹맘이란 용어가 나오기 전에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던 여성들을 '슈퍼우먼'이라고 불렀다. 슈퍼우먼들은 직장에 출근해서는 다른 남성들과 똑같이 일을 하다가 집안 일을 하기 위해 '칼퇴근'을 한다. 동료들의 시선이 뒤통수에 꽂히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 그런 눈치를 받고 집에 와서는 애들 돌보랴, 집안 청소하랴, 밥과 설겆이에 빨래 하랴, 정신없이 '집안 노동'을 하다가 지쳐 쓰러져 잠이 든다. 하지만 일과 가정을 완벽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고, '슈퍼우먼 신드롬'이란 말까지 생길 정도로 여성들에게는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 이런 분위기가 후배들한테 전해지면서, 결국 결혼을 기피하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요인 중에 하나가 됐다. 워킹맘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정부와 대기업들은 남편들에게도 육아휴직 등을 제공하며 직장내 분위기를 바꾸는데 나서고 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육아대디들이다. 하지만 육아대디들도 워킹맘처럼 자리잡는 게 녹록치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5년 남성 육아휴직 사용자는 4874명이었다. 같은 해 출생아 수는 43만8400명이었다. 결국 출산한 부부 중 1%만 육아휴직을 사용했다는 계산이다. 나머지 99%는 고스란히 여성들에게 부담이 돌아갔다는 얘기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누가 아이를 낳으려고 하겠는가. 아이 한 명 키우는데 3억원이 들어간다는 비공식 통계도 있다. 금전적으로도 부담이 되지만 요즘 세상에 아이 키우는 것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도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다. 전경련 조사에서는 출산·육아 정책이 자리를 잡지 못하는 이유로 49.1%의 응답자들이 상사나 동료들 눈치 때문이라고 답했다. 20.3%는 승진·평가에 불이익을 받을까봐라고 답했다. 아이를 낳음으로써 직장내 입지는 줄어들고, 경제적 부담은 커지는 상황이 뻔히 보이는데 출산장려정책이 통할 리 만무하다. 대학 가기도 하늘에 별따기이고, 청년실업률이 사상 최고를 기록한다는 뉴스까지 접하면 이 시대에 태어난다는 게 불행하다는 젊은이들의 '헬조선'이란 말이 더욱 실감난다. 일·가정 양립은 전통적인 성 역할의 변화와 함께 저출산·고령화 등 사회구조 변화에 따라 대두된 이슈다. 하지만 아직도 상당수의 사람들은 왜 일·가정 양립이 필요한지, 일·가정 양립을 여성들에게만 요구하는지 등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다. 아울러, 통계에서도 나타나듯이 일·가정 양립은 기업 문화가 바뀌어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이런 여러가지 의문들을 해소하기 위한 작은 시작의 하나로 이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인 남인순 의원실과 함께 오는 22일 '제1회 일·가정 양립 포럼'을 통해 풀어보고자 한다.

2017-02-15 17:40:27 윤휘종 기자
기사사진
[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첫인상

첫인상은 뜻밖에도 이국적이었다. 르네상스 양식에 비잔틴 풍의 돔! 물 건너온 그런 서양 건축 양식을 차려입은 게 서울역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시골 촌놈은 서울역 광장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서 쩍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내 중학교 수학여행 기념사진에 박힌 한 장면이다. 시끌벅적했다. 팔도 사투리가 뒤엉켰고, 사람들은 더 엉켰다. 귀는 먹먹했고, 현란한 불빛에 눈은 휘둥그레졌다. 그 첫인상을 바꾸는데 무려 29년이나 걸렸다. 2003년 12월 지금의 현대식 고속철 역사가 준공되기까지 말이다. 저 유난했던 옛 서울역은 '문화역서울 284'로 문패를 바꿔단 채 기억 저편의 역사가 됐고, 그 바통을 이어받은 고속철 역사는 지금 재기발랄하다. 널찍해서 산뜻하고 밝다. 쇼핑 장터가 섰고. 볼거리를 제공할 무대도 설치됐으며, 먹거리 천지다. 객들은 시계바늘처럼 째깍거리지만 질서 있고 차분하다. 내 첫인상의 서울역은 이렇게 새 단장했다. 첫인상이 결판나는 건 단 3초! 사람의 경우 표정이나 동작까지 통째 그 째깍 몇 번에 결정된다니 취업 면접관의 예리한 속성 파노라마는 오죽할까.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아쉬의 입을 빌리면 취업 준비생들의 눈이 번쩍 뜨일 거다. 한번 박힌 첫인상은 나중에 들어오는 그 사람의 후속 스토리에 대해 좀체 귀 기울이지 않는 고집불통의 잣대가 된다는 거다. 금세 굳는 콘크리트 같은 묘한 집착. 이게 바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초두효과'라는 것이다. 일전에 고장 난 스마트폰을 수리하려 시내 서비스센터를 찾아간 적이 있다. 건물 안을 두리번거리는데 무섭게 입구를 지키고 있던 사설 경비원에게 가로막혔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는 다짜고짜 어디 가느냐고 묻는데 고압적이었다. 문간을 지키는 경비원이 저 정도면 이 건물의 주인은? 경비원이 눈을 희번덕거리는 사이 물음표를 단 상상은 증폭됐다. 다행히 건물 안은 친절했기에 망정이지, 내 스마트폰 회사 로고의 이미지는 하마터면 구겨질 뻔했다. 취준생과 기업과의 첫 맞선! 인상 깊고, 여운도 길다. 취업시즌을 맞아 면접 체험기가 가슴 아리게 들려온다. 최악의 취업 한파 와중에 면접 갑질이 고개를 드는 모양이다. 질문 속에 학연, 지연에 대한 편견이 녹아 있는가하면 성차별, 외모 비하, 연애담에, 말 자르기까지. 디지털 시대에 입사 면접은 여전히 아날로그에 멎어 있다. 냉수 한 잔 제공은커녕 슬리퍼를 신고 나오는 면접관의 개념 없는 자세에서 그 회사의 얼굴을, 아니 미래를 본다. 취준생 면접은 기업에 대한 또 다른 면접이라는 역설을 왜 모르는 걸까. 며칠 밤을 뒤척이며 퀭한 눈으로 면접장 문을 두드렸을 청춘들! 내일은 또다시 내일의 태양이 뜬다지만 숱하게 쓴 맛을 본 좌절의 그늘은 너무 짙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그 그늘을 지우려 얼마나 애썼을까. 혹여 이번에도 들러리용으로 세운 건 아닐까, 겨우겨우 면접까지 올라와 지푸라기라도 건지려는 그들은 그러나 무성의하고 생뚱맞은 질문에도 아연한 기색조차 숨죽여야 했을 것이다. 그런 청춘들의 마음 밑바닥에는 과연 어떤 생각들이 고였을까. 첫인상의 경제학적 역학이 여기에 숨어 있다. 사람 귀한 줄을 모르는 기업에 인재가 모일 리가 만무하다. 고용하는 입장에서 보면 자식, 동생, 조카 뻘 되는 청춘들이다. 요즈음 취업 한파에 밤마다 울음을 삼키는 취준생들이 부지기수다. 그 청춘의 정신적 허기를 달래주기 위해서라도 면접은 정중하고 인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2017-02-15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기사사진
이상헌칼럼-고객이 줄서는 매장 공통점 5가지

이상헌칼럼-고객이 줄서는 매장 공통점 5가지 "국내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2017년 국내 경제는 2016년보다 나빠져서, 경제성장률은 '2%대 초반'에 머물 전망"이라는 등 불황과 불경기에 대한 만성적인 당연시함이 지속되어서는 누구에게도 희망은 없다. 부정적인 상황임에도 잘되는 매장들은 반드시 존재하고 그 나름의 이유가 있고, 또한 매장 앞에 줄을 서게하는 공통적인 성공요인들이 존재한다. 첫째, 줄서는 매장의 점주는 고객을 기억한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한 번 가볍게 한끼 때우려 들렀을 뿐인데, 줄서는 매장의 점주는 다음 방문 시 그 고객을 기억해 주고 지난번 먹었던 메뉴까지 기억해서 보다 친근하게 다가간다. 이는 고객의 개별욕구에 적합한 마케팅 활동을 통해 차별적인 고객 각자의 니즈를 충족시켜줌으로써 만족도를 극대화시키는 관계 마케팅 전략의 실천이다. 둘째, 줄서는 매장은 고객을 위한 세심한 표현을 매장 곳곳에 표현한다. 예컨대 가파른 계단이 있는 매장을 운영하는 점주가 고객이 오른 계단 수를 계산하여 칼로리 소모량을 세심하게 적어 놓는다면, 고객의 다이어트를 걱정해 주는 세심한 점주가 될 것이다. 셋째, 줄서는 매장은 구석구석 깨끗하다. 청결은 매장 운영의 가장 기본적인 항목이지만, 오픈 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분명 소외되는 공간이 존재한다. 하지만 잘되는 매장은 소홀함 없이 구석구석 깨끗함을 항상 유지한다. 처음과 같은 청결함 유지는 필수 이다. 넷째, 줄서는 매장의 직원들은 항상 친절하고 항상 웃는다. 직원들의 기계적인 친절함은 교육과 훈련으로 이루어 낼 수는 있다. 하지만 고객에게 마음을 담은 친절함은 점주가 직원들을 대하는 거울처럼 반영되어 고객에게 그대로 표출된다. 고객들은 그 것을 아주 잘 감지한다. 다섯째, 줄서는 매장은 차별화된 홍보 센스를 가지고 있다. 고객에게 전해지는 전단지나 매장 안의 포스터 등을 구성할 때, 잘되는 매장의 점주는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센스 있는 문구로 그 시대 트랜드를 앞서간다. 고객에게 차별화된 즐거움을 제공함으로써 매장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높일 수 있다. 창업보다는 수성이 어렵다고 한다. 아무리 힘든 시기라고 하지만, 분명히 성공요건은 존재한다. 기본적인 항목에 충실하면서, 고객에게 조금이라도 세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면 노력들이 매장의 매출과 이어지면서 차차 줄서는 매장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한국창업경영연구소 이상헌 소장 (컨설팅학 박사)

2017-02-13 17:15:57 박인웅 기자
기사사진
[김민의 탕탕평평] (41)불필요한 부품, 불필요한 개인

세상에는 내 자신이 고민해서 해결할 수 문제들과 그렇지 않은 일들 둘 중 하나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이미 정해진 선택의 한 편에 내 자신이 그냥 속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스스로 국적을 선택하여 태어날 수 없고 자녀가 부모를 선택하여 태어날 수 없는 것 등이 그러한 경우에 해당하고, 부모가 미성년자인 자녀의 생활방식을 지시하고 가르치는 경우가 그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삶에서 우리는 크고 작은 고민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직장에서의 인간관계, 모임이나 여타 단체에서 우리들은 많은 이해관계에 본의든 타의든 얽혀있으며, 나와 같은 정서나 사고를 지닌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작은 농담조차도 제대로 소통되지 못해 애매한 관계가 설정되는 사람과도 만날 수 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개인의 자격으로만 이루어지거나 행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크고 작은 그룹이나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게 되고, 그 안에 속하게 되면 각자의 존재가치가 보여지고 존재감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과정도 결과도 물론 중요하지만, 본질이 중요하다. 본질이 희석되거나 변질되는 순간, 시작과는 전혀 무관한 과정이 진행되며 엉뚱한 결과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자신들의 본업인 학업에 열중해야 하는 이유도 그냥 해야한다고 가르치는 것보다 왜 해야하나를 먼저 충분히 설득하고 이해시킴으로서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효과적인 결과를 창출할 것이다. 또한 내 자신이 어느 모임이나 단체의 일원이 되더라도 그 모임이나 단체가 추구하는 바와 목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보고 가입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조직과 공동체라는 것을 자동차와 비교해 보자. 자동차라는 물건은 표면상 단순하고 심플해 보이지만 보통 2만개 이상의 부품들이 유기적으로 작동하여 달릴 수 있다고 한다. 자동차의 목적은 달리는 것이다. 안전이나 승차감 및 편의성도 중요하지만, 본질은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교통수단이라는 것이다. 자동차를 움직이게 하는 수많은 부품들, 그 중 내가 하나라고 생각해 보자. 그 자동차가 본질을 벗어나지 않는 것. 즉 달리게 하는데 있어서 내가 꼭 필요하고 적절한 부품인지, 오히려 자동차의 원만한 운행에 방해가 되는데도 억지로 끼워 맞춘 부품인지를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간혹 자동차의 안전하고 정확한 운행을 방해하며 다른 목적으로 자신이 하나의 부품으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음흉하고 불순하며 결코 있어서는 안 될 부품 즉 존재일 것이다. 우리의 삶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기적인 마음과 명쾌하지 않은 사람으로서의 존재의 가치를 자동차에 비유한 것이다. 가정에서도 직장이나 많은 모임과 조직에서도 각자의 역할이 있다. 또한 자신만의 고유한 포지션이 분명히 있다는 말이다. 그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조직과 공동체에는 그들이 추구하는 방향과 분명한 목적이 있다. 더 나아가서는 국가도 각국이 자신들이 목표하고 추구하고 나아갈 방향이 분명히 있으며 또한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 개개인은 우리가 속해 있는 모든 공동체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자신이 그 공동체가 추구하는 목표에 부합하는 존재인지, 극히 자신의 사익을 위해 공동체에 소속돼 방해가 되는 존재는 아닌지를 한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충분한 생각을 했다면, 자신이 전체의 목적과 방향에 미약하나마 일조를 할 수 있는지 아닌지를 정하고 스스로 소속과 참여여부를 결단내릴 수 있는 것이 상식이고 윤리이며, 인간으로서 최소한 도의적인 책임과 양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간사의 모든 것이 정치이다. 객관적인 정답이 존재할 수 없는 것 또한 정치이다. 각자가 맞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도 정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복잡난해한 모든 것들을 합리적으로 정리하고 단속하며, 원만한 흐름을 갖게 하는 것이 정치이다. 그래서 가장 어려운 것이 정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블로그 http://blog.naver.com/yumpie74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yumpie74

2017-02-11 19:38:18 송병형 기자
기사사진
[윤휘종의 잠시쉼표] 상법개정안, 다시 생각해보자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나라가 어지럽지만 지금 기업들에 가장 큰 걱정은 국회에 계류된 '상법 개정안'이다. 상법 개정안이 발의된 계기는 대주주들이 기업경영을 전횡하고 소액주주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이를 막자는 취지에서였다. 일부 기업 경영자들이 상장된 법인을 마치 개인회사처럼 마음대로 운영하거나 분식회계, 편법상속, 회사 기회유용 등을 저질러 이런 법안이 발의됐다. 소액주주들이 피땀흘려 모은 돈을 대주주들이 일방적인 전횡을 저질러 피해를 입힌 사례가 많았다. 그런 취지에서 상법을 개정할 필요성은 있다. 그런데 지금 발의된 상법 개정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초 취지와 다른 결과를 낳을 것 같아 걱정스럽다. 20대 국회에는 모두 20여 건의 상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경제민주화를 외치며 너도나도 법안을 발의한 결과다. 이 가운데 특히 논란이 되는 사안은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도'와 '집중투표제 의무화'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도란, 말 그대로 감사위원을 분리해서 뽑자는 것이다. 감사는 기업의 재무성과나 중장기 경영전략을 대주주로부터 견제·감시하는 사람이다. 지금 발의된 법안에 따르면 감사를 분리해서 뽑아야 하고, 이 때 대주주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대주주를 포함한 모든 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겠다는 게 골자다. 대주주의 지분이 3%를 넘는 얼마가 됐든, 의결권은 3%밖에 행사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기업의 경영권이 위협을 받을 수 있다. 3%씩 지분을 가진 기타 주주들 몇명이 몰래 작전을 짜고 감사를 자기들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선임할 가능성이 지금 발의된 법 아래에서는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경우 외부 세력들이 자기 사람을 감사로 심어 기업의 중장기적인 비전보다 단기적인 배당에 치중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하다못해 기업의 민감한 경영전략도 외부로 노출될 수 있다. 기업 비밀이 노출되는 것은 전쟁에서 작전계획이 노출되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집중투표제란 주주총회에서 이사진을 선임할 때 '1주 1표'의 원칙 대신, 선임하는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주총에서 3명의 이사를 선임할 경우 100주를 가지고 있다면 원래는 각 이사에 대해 100표씩 찬반투표를 하지만, 집중투표제는 3명 가운데 자신이 원하는 이사에게 300표(100주×3명)를 몰아주고, 나머지 2명의 이사에 대한 권리는 포기하는 것이다.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들에게 유리한 제도이지만 앞서 말한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도와 함께 도입되면 경영자 입장에서는 '역시너지효과'가 발생한다. 극단적으로는 2003년 '소버린 사태'처럼 외국계 투기자본이 국내 대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다. 이 개정안들이 소액주주를 보호하기 위해 발의됐지만 실제 주총현장에서 0.1%에도 못미치는 소액주주들이 힘을 합칠 가능성보다 어느 정도 자본력을 가진 외국계 펀드나 투기자본 등의 외부세력들이 경영권을 위협할 가능성이 더 높다. 이는 지금까지 경영권을 위협받은 대기업들의 사례에서 나타났다는 게 학계의 연구결과다. 이 법안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않다며 재계가 '공포 마케팅'으로 국회와 국민을 위협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업들에게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지, 우리 기업들의 경영권을 불안하게 만들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투기자본이 기업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소액주주들의 권리는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 하지만 그 방법이 지금 발의된 감사위원분리선출제도와 집중투표제는 아닐 수 있다. 국회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2017-02-08 19:41:30 윤휘종 기자
기사사진
[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2월의 전설

2월의 대학 교정은 쓸쓸했다. 교정은 내 젊은 날의 추억이 살아 숨 쉬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 지난 주말 나는 그 흔적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크고 작은 뜰엔 잔설이 희끗거렸고, 시선은 낯익은 소나무 숲에 오래 머물렀다. 졸업사진의 풍경으로 수놓았던 소나무 숲! 아련함이 가슴을 차고 올라왔다. 눈은 시렸다. 입춘을 알아차린 소나무 숲은 초록빛을 따스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대학 졸업식 즈음이면 더욱 짙은 물감을 풀 것이다. 2월이 오면, 아니 졸업의 계절이 오면 내 기억의 창고엔 허허로움이 스친다. 졸업하던 그날의 추억이 거센 숨결로 밀려왔다. 졸업식 날 취업한 과동기들이 눌러쓴 사각모는 눈부시도록 빛났으며, 그 가족들 주변엔 따스하고 향기로운 이야기꽃이 피어나는 걸 봤다. 대학원 진학을 빼고 취업 못한 동기는 손꼽을 정도였다. 개중 한 사람이었던 나는 사각모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시골서 올라온 가족들은 그 엇갈린 표정을 읽고 얼마나 가슴 아파했을까. 2월은 냉혹했다. 나는 교문을 나서면서 '자취방 학생'에서 '실업자 김 씨'로 바뀌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취직한 친구들에겐 교문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개선문이었지만, 나에겐 무너진 상아탑이었다. 그땐 그렇게 보였다. 2월의 밤은 처연했다. 그날 밤 자취방을 나와 흰 눈을 펑펑 맞으며 소나무 숲 부근 교정을 배회했다. 살을 에는 눈바람. 소나무 숲은 침묵했고, 나는 그 아래 웅크린 채 울먹거렸다. 눈바람은 뜨겁게 젖은 얼굴을 죽비처럼 마구 때렸다. 불현 듯 교문을 나서는 학생들의 긴 그림자에서 내 2월의 아픈 뒤안길을 본다. 졸업철이다. 60대 이상의 실버 취업자 수가 20대 청년을 앞지른 취업구조. 설렘과 기대 속에 교문을 나서는 졸업생들도 있겠지만 내 아픈 2월을 답습할 졸업생은 또 얼마나 많을까. 혹자는 '마무리와 시작이 공존하는 2월'이라고 하지만 미취업생들에겐 '마무리와 시작이 충돌하는 2월'이다. 그 충돌의 스파크 속에 그들의 가슴은 타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 말자. 졸업은 희망의 또 다른 이름! 윈스턴 처칠은 영국 옥스퍼드대 졸업식에서 이런 축사를 했더랬다. '포기하지 말라.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고.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는 얘기일 것이다. 성공은 꿈꾸는 자에게 있고, 그 꿈의 뿌리는 희망이다. 희망이 흔들리면 꿈이 흔들린다. 그래서 혹자는 '실업보다 더 무서운 게 꿈과 희망을 잃는 것'이라고 했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절망하지 않아야 하는 까닭이다. 마음이 추울수록 따스한 봄을 기다리는 꿈은 더욱 간절해지고, 단단해지는 법이다. 나무줄기에 매달려 저 꿈틀대는 고치를 보라. 그 무엇이 고치껍데기 밖 세상에 나오려 발버둥치는 광경을 말이다. 그건 취업을 갈망하는 졸업생들의 몸부림이자 절규에 다름 아니다. 안쓰럽다고 해서, 고치껍데기를 섣불리 벗겨주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거기에서 나비는 온전할까. 과연 날개를 펴고 제대로 날 수 있을까. 아니다. 날개의 힘! 그것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다. 고치를 수없이 떼밀어냈을, 그 고통을 감내해야 비로소 훨훨 나는 나비가 되는 것이다. 병아리가 달걀의 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이치와 같다. 인고의 세월을 건너뛰어서는 비상할 힘, 세상 급류를 헤쳐 나갈 생존본능이 생기지 않는다. 그 고통의 허물을 벗고 사회의 첫 발을 힘차게 내딛는 건 온전히 자기 몫이다. 내 2월의 전설이 가르쳐준 체감 교훈이다.

2017-02-08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