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의 시시일각] 관행과 떡밥
[홍경한의 시시일각] 관행과 떡밥 베니스비엔날레는 약 120여년 역사를 자랑하는 국제미술행사다. 이 세계적인 미술전시회는 주최 측이 선정한 총감독 기획의 본전시와 국가별로 자비를 투자하는 국가관(한국관은 자르디니 공원에 1995년 둥지를 틀었다), 특별전 중심으로 진행된다. 행사가 열리면 한국관 운영을 맡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기획전 등을 꾸리는 한국 갤러리들은 작가들을 초청해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한다. 그러나 작가 외에도 초청되는 이들은 또 있다. 바로 신문, 방송, 잡지에 종사하는 기자들이다. 홍보를 목적으로 하는 만큼 기자들에겐 항공료, 호텔비 등이 제공된다. 조찬모임이나 현지 간담회 시 내놓는 식사도 초청하는 이들의 몫이다. 기자 입장에선 이를 '초청자부담 국외취재'라 부른다. 즉, 언론사가 자체적으로 부담할 경비를 주최 측 혹은 중간 커미셔너가 대신 지급하는 조건으로 이뤄진 취재가 '초청자부담 국외취재'인 것이다. 초청자부담 취재는 외국만이 아니라 국내 행사에서도 흔하게 목격된다. 광주비엔날레나 부산비엔날레 등, 각 지자체나 단체, 재단 등에서 주최하는 굵직한 사업을 취재할 때도 기자들은 대개 교통비(또는 유류비)와 숙박 등의 혜택을 받는다. 경험상 이는 '통상적인 범위'라 보기 힘든 경우가 많다. 물론 일반적인 기자간담회나 개별적인 홍보담당자와의 만남에서조차 기자는 거의 비용을 내지 않는다. 오히려 각양각색의 선물까지 받아든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지만 한때는 현금이나 상품권 등도 무언가를 청탁하는데 효과 좋은 아이템이었다. 이와 같은 양태는 그동안 '관행'으로 치부됐다. 행여 관행에서 제외되면 언론이라는 명시적 권력을 무기로 노골적으로 항의 할 만큼 상습적이고 고약한 습속이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언론사에 몸담아본 이들은 이를 관행 대신 '떡밥'이라 칭한다. 먹고 받아 옴짝 못할 물고기와 미끼의 관계에 빗댄 은어인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의 취재는 국민의 알권리를 왜곡하고 정보를 굴절시킨다는 점이다. 실제로 금품, 특혜, 향응과 같은 '떡밥'을 문 기자는 홍보대행인으로 변질되기 일쑤다. 감시와 비판은 고사하고 주최 측이 원하는 일방적인 입장과 주장을 기사로 포장하게 된다. 공정성, 객관성, 공익성을 논하기 어려울뿐더러, 무엇보다 뭔가를 받는다는 건 사적이익을 위한 취재활동을 금지하는 기자윤리강령과도 어긋난다. 최근까지도 당연하게 이어져 왔던 이런 관행은 오는 9월 28일 시행되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에 의해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기자를 포함해 공무원 등이 직무관련 유무와 상관없이 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원(연간 300만원)을 초과한 접대를 받을 수 없도록 정해놨기 때문이다. 다만 원활한 직무수행과 사교·의례 등의 자리에 한해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축·조의금 10만원을 '받을 수 있는 금품 등'으로 규정해 일정부분 숨통을 터놨다. 따라서 내용적으론 그리 엄격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부 기자들은 반발하고 있다. 심지어 한국기자협회는 "권력이 김영란법을 빌미로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릴 가능성을 경계한다"며 언론의 자율성을 훼손할 것이라는 이해 불가능한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허나 그동안 덥석덥석 물어온 떡밥이야말로 자발적 재갈이었고, 결과적으로 김영란법에 언론인이 포함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자초했다. 이를 모르지 않을 텐데 반성과 성찰 없이 언론의 자유 운운하며 부작용을 거론한다는 건 그야말로 코미디다. 공짜 밥, 공짜 술 얻어먹으면 언론의 자유는 드높아 지는가. ※홍경한은 미술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자문위원, 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 박수근미술상 운영위원, 서울시립미술관 전시평가위원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교양서인 '민주주의와 리더십이야기'를 비롯해, 미술평론집 '기전미술', 문화예술 비평집 '고함' 등이 있다. 대구신문, 메트로신문, 주간경향, YTN, 등에 매달 고정칼럼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