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 빠져 쏟은 열정, 작품이 되다…국립과천과학관에 모인 '덕후들'
【과천=김나인 기자】 바야흐로 '덕후(어떤 분야에 몰두해 전문가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는 사람으로 일본어 오타쿠(御宅)에서 유래)의 시대'. 목범선, 건프라 제작, 해전 디오라마 등 특정 분야에 꽂힌 덕후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5일 경기도 과천 국립과천과학관에서다. 배재웅 국립과천과학관 관장은 이날 열린 '덕후전' 개막식에서 "과학이 관찰과 탐구를 통해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것처럼 자신만의 영역에서 특별한 장르를 만들어나가는 작가를 섭외했다"며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과학관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총 120여점의 작품이 있는 이번 전시에는 3.2m 크기의 대형건담을 비롯 건담 프라모델과 한정판 건담 40여점이 전시된다. 해전, 나무 함선 등 20여개의 디오라마(Diorama· 배경 위에 모형을 설치해 구성한 장면)와 종이로 만든 작품 50점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를 발로 뛰며 추진한 김주영 국립과천과학관 특별전시팀 주무관은 "과학도 사실 고정관념에 대한 도전의식으로 발전했다"며 "상상하는 것을 쉽게 이야기 하는 분위기가 과학 발전의 강력한 토양이 된 것처럼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덕후들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김 주무관은 각 분야별 '덕후 중 덕후'를 대상으로 섭외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20년 간 나무를 깎아 열차, 함선 등을 만들어 온 송정근 작가부터 전함과 해전의 스토리를 디오라마로 구현한 이원희 작가, 학 모양 종이로 종이블록 만들기를 창안한 장준호 작가 등 총 8명의 작가 작품이 한 자리에 모였다. 분야는 달라도 덕후가 된 계기와 과정은 비슷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처음에는 몰래 숨어서 시작했다"고 입을 모았다.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몰래 쌓은 내공이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작품으로 탄생했다. 김 주무관은 "지금까지 산업화 과정을 겪으며 우리나라는 주변을 둘러볼 여력 없이 바빴지만 이제 새 콘텐츠를 만들 여유가 생겼다"며 "이제 시작이지만 덕후들을 통해 새 콘텐츠, 예술작품이 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덕후전에 참가한 작가들의 일문일답이다. ◆송정근 작가(목범선 제작) ▲지난 20년 동안 나무를 깎아 열차, 함선 등을 만들어 덕후전에 목함선 10여척을 선보였다. 처음 목함선을 만들게 된 계기는 뭔가. -40대 중반이 되니 일에만 매달려 지내는 게 아쉬워 취미를 찾다가 해군에 다닐 때 만들던 모형이 생각나 만들게 됐다. 제대로 한 번 해보자고 해서 자료 수집도 직접 했다. 세종대왕함 같은 경우 자료를 구하기 힘들어 직접 도면을 만들기도 했다. ▲특히 목범선에 꽂히게 된 계기가 있나. -배 중에서도 전함을 좋아하는데, 전함이 함포로 전투를 할 수 있는 마지막 플랫폼으로 모양이 가장 복잡하다. 지나간 것에 대한 향수라고 할 수 있다. 디테일을 표현하기 힘든 소재지만 충해가 거의 없는 은행나무를 사용해 100% 수작업으로 만들었다. ▲디테일을 구현하기 위해 1년에 1작품을 만들어 지루함이 가장 큰 적이라고 하는데, 이를 이겨내는 원동력이 있다면. -디테일한 모양을 자료나 도면을 보고 따로 만들어서 합치하는 작업이 좋다. 향후에는 우리나라 고 건축물을 만들고 싶다. 현재 부석사 무량수전을 만들고 있다.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작업을 할 예정이다. ◆이성동 건프라연구소 소장(건담 프라모델) ▲유튜브 영상 구독자가 4만명이 넘는다. 이렇게 많은 구독자가 몰릴 건담의 매력을 꼽는다면. -건담은 손으로 작업해도 만족감을 느끼는 제 2의 창작물이 된다. 그야말로 투자한 만큼 나오는 작품이기도 하다. 지금은 장난감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음지에서 양지 문화로 가는 만큼 일반인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건담을 만드는 공방인 건프라연구소에 찾는 분들도 많은가. -건프라연구소에서는 건담 제작을 가르치기도 하고, 영상을 찍기도 한다. 배우러 공방을 찾는 분들도 10대부터 50대까지 많다. 얼마 전에는 과테말라에서 오신 분도 있다. ▲건담 '덕후'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멋있는 작품에는 그만큼 시간이 들어간다. 어떤 사람은 몇 달을, 1년을 투자하기도 한다. 하나라도 귀찮을 일을 해야 더 멋있는 작품이 나온다. 결과물만 보고 판단하는 점은 아쉽다. 일회성처럼 쉽게 얻으려고 하는 분위기는 지양하고 진득하게 도전하고 성취감을 느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