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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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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의 본초 테라피] 불쑥 치미는 화를 다스려주는 '치자'

붉은색의 열매를 맺는 치자는 한방에서는 약재로 사용하며 민간에서는 천연 색소로 다양하게 활용했다. 색이 잘 배어 나오기 때문에 천을 염색해서 옷을 만들어 입거나 밀가루 반죽 등에 섞어서 음식의 색을 내기도 했다. 한방에서 치자는 마음의 불을 꺼주는 약재로 처방이 됐다. 특히 우리나라 고유의 질환이라고 알려진 화병을 다스리는 데 효과가 있다. 스트레스나 화를 제때 풀지 않고 꾹꾹 쌓아두면 화병이 되는데 속에 열이 꽉 찬 것처럼 가슴이 늘 답답하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분노가 치밀 수 있다. 화병이 있을 때는 수시로 짜증이 나는 것과 같은 심리적 증상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증상도 나타나는데 얼굴이 뜨끈뜨끈하게 달아오르는 상열감, 소화장애, 두통, 식욕 저하, 불면증 등이 동반될 수 있다. 화병이 있어서 항상 열이 오르는 느낌이 들고 가슴이 답답할 때 치자를 달여서 차로 마시면 뜨거운 기운이 아래로 내려가면서 마음이 좀 편해진다. 치자가 열을 내리며 위로 상승하는 기운을 아래로 끌어내리기 때문에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가라앉히며 눈의 충혈, 두통을 완화하고 높은 혈압을 낮추며 불면증을 개선하는 데도 좋다. 또한 같은 이유로 갱년기 증상인 상열감이나 우울감 등의 완화에도 효과가 있다. 치자는 물 1리터에 치자 20g을 넣어서 잘 끓여서 충분히 우러나면 이를 차로 마시면 스트레스를 줄이고 마음을 편안히 다스릴 수 있게 된다. 몸에 열이 많을 경우 피부도 자극을 많이 받게 된다. 염증을 비롯해서 각종 트러블이 발생하기 쉬운데 이때도 치자가 효과적이다. 피부의 염증을 개선하며 알레르기를 진정시키기 때문에 여드름, 아토피 등의 피부 질환에도 많이 사용한다. 이뇨 작용이 있어서 소변이 원활하게 배출되지 않는 경우에도 치자가 도움이 된다. 다만 열을 내리는 찬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몸에 냉기가 많아서 설사를 자주 하는 사람들은 치자를 과도하게 먹지 않는 것이 좋다.

2022-02-28 05:16: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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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윤 변호사의 알기 쉬운 재건축 법률] 2022년 개정 소규모주택정비법 주요 내용은

여지윤 변호사/ 법무법인 바른 최근 가로주택정비사업, 소규모재개발사업 등 소규모주택정비사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소규모주택정비사업의 근거 법률은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약칭 '소규모주택정비법')인데, 2022년도 개정되는 내용을 살펴보겠다. 먼저 개정법은 소규모주택정비사업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하기 전에 조합설립을 위한 '창립총회'를 의무적으로 개최하도록 했다.(소규모주택정비법 제23조). 현행법에서는 토지소유자 등의 동의만으로도 조합을 설립할 수 있었다. 위 개정규정은 개정법 시행일인 오는 8월 4일 이후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하는 경우부터 적용된다. 또한 시장·군수 등이 조합설립인가를 하는 때에는 14일 이상 주민 공람을 거쳐 의견을 수렴하고, 일정 사항을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공보에 고시하도록 하는 등 조합설립을 위한 절차를 개선했다. (동법 제23조 제8항). 사업추진이 장기간 지연되거나 중단되는 경우에는 조합설립인가를 취소할 수 있는 근거 규정도 신설했다. 조합이 설립된 사업시행구역에서 조합원 과반수 동의로 조합의 해산을 요청하는 경우에는 시장·군수 등은 조합설립인가를 취소해야 한다(동법 제23조의2 제1항). 또한 시장·군수 등은 사업의 절차가 지연되는 경우 업무의 시정, 조합의 해산 등의 필요한 조치를 명하거나 조합설립인가를 취소할 수도 있다(동법 제23조의2 제2항). 한편, 도시정비법과 마찬가지로 소규모주택정비사업에서도 행위제한의 근거 및 절차를 마련했다(도시정비법 제19조). 현행법에서는 소규모주택정비사업 시행구역에서 건축물의 건축, 공작물의 설치, 토지의 형질 변경 등의 행위를 제한하는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았다. 이에 사업의 원활한 추진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행위제한의 근거 및 절차를 마련한 것이다. 따라서 조합설립인가 고시나 공공시행자 및 지정개발자의 지정고시 등이 있은 날의 다음 날부터 건축물의 건축, 공작물의 설치, 토지의 형질 변경, 토지분할 등의 행위를 하려는 자는 시장·군수 등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시장·군수 등은 이를 위반한 자에게 원상회복을 명할 수 있다(동법 제23조의3). 위 개정규정은 8월 4일 이후 조합설립인가 고시 등이 있는 경우부터 적용된다. 또한 투기과열지구에서의 조합원지위 양도제한 대상에 가로주택정비사업과 소규모재개발사업도 추가했다(제24조 제2항). 현행법에서는 소규모재건축사업만 조합원지위 양도제한 대상이었으나, 이제는 가로주택정비사업, 소규모재개발사업도 위 대상에 해당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가로주택정비사업, 소규모재개발사업에서도 조합설립인가 이후에 해당 사업의 건축물 또는 토지를 양수한 자는 조합원이 될 수 없다. 위 양수에는 매매, 증여 등 권리 변동을 수반하는 모든 행위가 포함되나, 상속·이혼으로 인한 양도·양수의 경우는 제외된다. 다만 기존 소유자가 1세대 1주택자로서 양도한 주택의 소유 및 거주기간이 대통령령이 정하는 일정 기간 이상인 경우 등에는 조합원 지위를 양도할 수 있다. 위 개정규정은 8얼 4일 이후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하는 경우부터 적용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2022-02-27 08:04:04 이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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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미 기자의 와이(Why) 와인]<138>작년 와인수입 또 사상 최대…단숨에 맥주 두 배

<138>2021년 와인 시장 결산 시원하게 맥주 한 잔? 아니다. 분위기 있게 와인 한 잔! 작년 우리나라의 와인 수입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5억 달러를 넘어서며 다시 한 번 신기록을 세웠다. 팬데믹에 '홈술(홈·home+술), 혼술(혼자+술)'로 불기 시작한 와인 열풍이 팬데믹 2년차에는 더 뜨거워졌다. 한국주류수입협회에 따르면 2021년 와인 수입 규모는 5억5980만 달러다. 몇 년째 2억 달러 안팎에 머물렀던 와인 수입 규모는 2020년 처음으로 3억 달러를 넘어서더니 작년에는 5억 달러로 그야말로 '퀀텀 점프'를 했다. 와인 수입 규모를 전년 대비 성장률로 보면 2020년 27%에서 2021년 무려 69.6%로 크게 높아졌다. 지난해 글로벌 물류 대란을 감안하면 실제 수요는 더 컸을 것으로 보인다. 한때 수입 주류 시장을 주름잡았던 맥주와는 이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맥주 수입 규모는 2020년 2억2685만 달러로 처음으로 와인에 추월당했고, 2021년은 2억2310만 달러로 감소세를 이어가면서 와인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쳤다. 와인업계에서는 국내 와인 시장 규모가 2조원에 육박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원화로 환산한 수입규모 약 6700억원에 각종 세금과 마진 등을 고려한 수치다. 작년 와인시장의 특징은 프리미엄 와인과 화이트 와인의 선전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와인이 수입 금액 기준으로는 전년 대비 70% 가까이 늘었지만 수입량은 36.8%에 그쳤다. 와인을 마시는 양 자체도 늘었지만 많은 이들이 이전보단 좀 더 좋은, 비싼 와인을 마셨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원래 와인이란 게 그렇다. 한 번 좋은 와인을 마셔보면 절대 눈높이를 낮출 수가 없고 자꾸만 더 '고급진' 와인을 찾게 된다. 2020년 와인 세계에 입문한 '와린이(와인+어린이)'들이 작년엔 프리미엄 와인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단 얘기다. 국가별로 보면 수입금액은 비싼 와인이 많은 프랑스가 1위, 수입량을 기준으로는 저가 와인이 많은 칠레가 1위로 올라선다. 프랑스 와인의 수입규모는 1억8114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93.8%나 늘었다. 전체 와인 수입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은 32.4%에 달한다. 2위 경쟁은 치열하다. 미국 9066만 달러, 이탈리아 9046만 달러로 거의 차이가 없다. 전년 대비로 보면 각각 61.8%, 85.6% 늘어 성장세로는 이탈리아 와인이 앞섰다. 2020년까지만 해도 굳건한 2위였던 칠레는 7482만 달러 규모로 수입돼 완전히 4위로 내려왔다. 수입량으로는 칠레가 비중 22.2%로 1위를 차지했으며 ▲스페인(18.4%) ▲프랑스(16.8%) ▲이탈리아(15.6%) ▲미국(10.3%)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스파클링 와인과 화이트 와인의 성장세도 눈여겨 볼 만 하다. 레드와인의 소비가 더 많은 것은 어느 나라나 공통된 현상이지만 우리나라는 유독 그 정도가 심했다. 여전히 절대 수치는 레드가 많지만 성장세는 스파클링과 화이트 와인이 더 가파르다. 화이트 와인의 수입규모는 1억379만 달러로 전년 대비 76.9% 늘었다. 스파클링 와인 역시 전년 대비 67.6% 증가한 7782만 달러로 집계됐다. 화이트와 스파클링 와인을 더하면 레드 와인의 절반 수준까지 따라잡았다.

2022-02-24 13:48:24 안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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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세계문학 파노라마] <5>미하일 불가코프 '거장과 마르가리타'(1966년)

본디오 빌라도와 예수, 사탄이 함께 행복해지는 소설 20세기 러시아 문학의 거장 미하일 불가코프의 대표작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그의 사후 26년만인 1966년에 발표됐다. 불가코프가 1940년 3월 사망하기 3주 전까지 실명의 고통을 무릅쓰고 10여 년 분투하며 완성한 작품이다. 한때 잘 나가는 극작가였던 불가코프는 한순간에 '국내 망명 작가'가 돼 계속되는 상연 금지와 출판 금지 속에서 지병과 투쟁하며 필생의 대작을 남기고 분노 속에 죽었다. 비운의 작가 불가코프의 이 작품은 소비에트에 대한 풍자소설, 시공간을 넘나드는 환상소설, 그리고 현란한 문체의 카니발소설로 읽히며 독자로부터는 물론 작가들로부터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예수를 못박은 본디오 빌라도를 소재로 한 소설 이 정도로 방대한 규모의 작품을 이 정도의 확고한 장악력으로 집필한 작가는 많지 않다. 무엇보다 소재 면에서 독특하다. 기본적으로 기독교 자장에 강력하게 포섭된 서양에서 화가·음악가는 물론이고 많은 작가가 성서로 무언가를 해보고 싶어 했지만, 본디오 빌라도를 붙들고 이렇게 완성도 높은 소설을 쓴 사람은 불가코프 말고는 없을 것이다. 소설에는 세 공간이 등장한다. 예루살렘, 모스크바, 그리고 너머의 공간. 대표 인물로는 예루살렘에 예수와 빌라도, 마태가 있고, 모스크바에는 거장과 마르가리타가 있다. 볼란드는 두 세계를 연결하는, 너머의 세계에 속한 존재이다. 세 공간 중 이야기가 전개되는 두 축은 2000년이란 시간 간격을 둔 예루살렘과 모스크바이다. '파우스트'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 '파우스트'에 나오는 그레트헨이나 메피스토펠레스에서 얼핏 마르가리타와 볼란드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무대의 규모와 웅장함은 '거장과 마르가리타'가 '파우스트'를 능가한다. 세계관과 주제가 다르다. '파우스트'의 주제가 고전적인 진리와 구원 같은 것이라면,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진리와 구원은 물론 사회 비판, 풍자, 사랑, 종교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른다.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읽기에 매우 재미있는 소설이다. 만화처럼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덮고 나면 심오한 주제의 무게에 체할 수도 있다. 예루살렘을 묘사하는 데에는 작가가 20세기 초반 사람이기 때문에 당대의 신학 연구 동향을 참조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예수를 비롯하여 빌라도, 유다, 바라바, 가야바 등의 형상화엔 당대의 한계가 투영되었겠지만, 소설이기 때문에 굳이 문제 삼을 이유가 없다. 다만 이 소설에서 그린 빌라도가 실제 본디오 빌라도와 분명하게 달랐으리란 점은 언급할 필요가 있다. 빌라도는 그려진 것처럼 지식인이 아니었고, 잔인하고 출세 지향적인 용병 스타일의 무장(武將)이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빌라도가 예수를 죽인 사람임에도 기독교 일각에서는 그를 성인으로 만들어 추앙했다. 예수 사후에 제자들이 기독교를 만들면서 기독교가 유대교의 소수 종파로 남아 있다가 로마 권력과 제휴하며 제국의 종교가 되는 경로를 걸었고, 기독교가 유대교로부터 핍박받는 상황에서 이처럼 로마제국 내에서 선교하다 보니 친로마적인 태도를 보였다. 빌라도가 로마를 대표하는 인물이기에 빌라도를 척지는 것은 선교전략과 약간은 충돌했다는 관점이 가능하다. 성서의 기록에는 빌라도가 자신은 죽이기 싫어하면서 주변의 압력에 밀려 예수를 죽인 것으로 돼 있다. 여기서 예수가 신성 모독에 따른 투석형으로 죽지 않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는 사실을 눈여겨봐야 한다. 십자가형은 로마 형벌이다. 빌라도는 예수를 죽이기 전에 이미 많은 사람을 십자가형으로 죽인 경험이 있다. 변방인 나사렛의 청년을 십자가에 못 박는 데에 1초도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기록된 빌라도의 모습은 후대에서 만들어진 역사일 확률이 높다. 빌라도는 이 소설에 묘사된 것처럼 그렇게 고뇌하는 사람은 아니었고, 오히려 그 고뇌는 거장을 통한 고뇌였다. ◆예루살렘과 모스크바 소설에서 예루살렘은 모스크바와 겹쳐진다. 직접 겹쳐지는 게 아니라 두 가지 매개 방식으로 겹쳐진다. 볼란드란 존재를 통해서 두 공간이 이어지고, 모스크바에 사는 거장이 쓴 소설을 통해서 빌라도가 묘사되어 두 공간이 연결된다. 후자는 흔히 말하는 액자 소설이라기보다는 상호 간섭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뫼비우스 소설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소설 속의 소설과 소설 속의 현실이 상호 간섭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을 읽고 현실이 변화하는 것으로 나온다. 보통 액자 소설이 이렇게 간섭까지 일으키지 않고 영향과 파장 정도만 드러내는 것과는 판이하다. 마지막엔 소설과 현실이 혼동된다. 볼란드는 시간을 초월하는 존재다. 예루살렘에서 빌라도 옆에 있었고, 마태 옆에도 있었고, 거장과 거장의 후계자 격인 시인 베즈돔니 등 모두의 옆에 있다. 기독교에서 보통 사탄은 타락하여 추방당한 천사라고 말하는데, 볼란드를 사탄이라고 규정하기엔 애매한 구석이 있다. 결정적으로 볼란드와 예수 사이에 대립 관계라 할 만한 것이 없다. 우열 관계도 명확하지 않다. 마지막에 보면, 예수가 마태를 보내서 안식을 주라고 부탁을 한다. 성서의 기술로는 예수가 물러가라고 하며 공격해야 할 존재에게 소설에서는 오히려 부탁을 한다. 공간의 겹침 외에 인물의 겹침이 목격된다. 예수와 거장.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당대 기득권의 박해와 사회적 소요 속에서 희생당한 젊은이다. 소설에서 빌라도는 예수의 억울한 죽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역할을 한다. 예수를 살해한 사람이면서 역설적으로 예수의 무죄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기득권의 핍박은 모스크바에서 재현돼 문학을 통한 거장의 핍박으로 이어진다. 다른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예수와 거장이 의미상 중첩되며 거장은 불가코프의 대리인이자 분신이다. 소설가는 자신을 시대의 핍박을 받는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고 실제로도 그랬다. 예수가 사후에 부활이라는 형태로 새로 살아났듯이 거장도 부활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살아서 인정을 못 받고 핍박받은 불가코프도 죽어서 이 소설로 어마어마한 이름을 얻게 된다. ◆만 이천 번의 보름달을 보면서 괴로워한 뒤에 얻는 구원 이 소설이 미완성이라고 지적되는 이유 중 하나가 거장이 죽었는지 납치당했는지 헷갈리게 써놨다는 점이다. 앞뒤를 다르게 썼다. 어디서는 죽었다고 돼 있고, 어디서는 납치됐다고 돼 있다. 개인적으로 죽었다고 쓰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맥락과 관계를 보면 아무튼 사라지기는 해야 하는데, 납치라고 하면 SF영화인 '에이리언'이 돼버리고, 죽어야만 종교 영화가 된다. 소설에서 중요한 장면은 통념이 어떠하든 빌라도가 예수의 죽음으로 괴로워했다는 것으로, 불가코프가 이 소설에서 설정한 핵심장치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 그리고 역사에 (끔찍하게) 남은 일을 함으로써 2000년 동안 고독과 후회 속에서 산 빌라도는 거장의 소설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 이게 소설 속 소설의 힘이다. 거장이 빌라도에 관한 소설을 쓰고, 예수가 읽고, 나중에 빌라도와 예수가 걸어가면서 화해한다. 이런 빌라도의 캐릭터에 비추어 빌라도가 스탈린을 상징한다고 주장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어떤 이들은 볼란드가 스탈린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소설에 소비에트 비판이 뚜렷하지만 불가코프가 특정한 인물로 스탈린을 상징하려고 했다기보다는 스탈린 체제를 우화처럼 전반적으로 모스크바에 깔아버린 듯하다. 2000년을 왔다 갔다 건너뛰면서 종국에 빌라도가 구원을 받고, 거장은 안식을 받는다. 볼란드는 두 세계를 넘나들다가 너머의 세계로 사라진다. 볼란드는 한 마디로 편재(遍在)한다. 앞서 볼란드가 예수보다 상위의 존재로 느껴진다고 했는데, 단적으로 볼란드의 세발의자가 이러한 위계를 뒷받침하는 건 아닐까. 세발의자가 기독교의 삼위일체를 떠올릴 수 있기에, 불가코프의 소설에서 볼란드를 조금 더 높은 신의 개념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하지 싶다. 이 책에는 판타지와 로맨스가 있고 종교와 구원에 관한 얘기, 사회 비판이 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과는 닮지 않았다. 전형성과 계급성이 없다. 당시 러시아 상황에서 불온한 서적으로 간주될 만하다. 인류 문명 전체에서는 당연히 탁월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미완성이라고 한다. 몇 가지 부정확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긴 소설을 조용히 혼자 은밀하게 쓰다 보니 노트북도 파일도 없는 상황에서 작가가 실수했을 법도 하다. 병마와 싸우며 죽음 직전에 간신히 마무리했으니 그럴 소지가 다분하다. 빌라도는 만 이천 번의 보름달을 보면서 괴로워한다. 자기의 과오때문에, 한 번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죽지도 않고 그 밤이 오면 계속 괴로워한다. 그 저주가 거장의 소설을 통해서 풀린다. 거장도 마르가리타와 함께 안식을 찾으니 아무튼 이 소설은 해피엔딩이다.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가 러시아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면,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세계의 현대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비운의 작가 불가코프에게 이것이 해피엔딩이라고 해야 할까. /인문학자 겸 영화평론가(ESG연구소장)

2022-02-24 08:46:39 박승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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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덕의 냉정과 열정사이] 대선과 회색코뿔소

#. '대통령 선거가 50년 우정도 두동강 내버릴 수 있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음을 새삼 느껴 봅니다. 3월9일이 빨리 지나갔음 좋겠습니다'. 며칠 전 페이스북에 지인이 올린 글이다. 직접 묻지 않았다. 짐작은 간다. 서로 지지하는 후보가 달랐을 것이다. 그리고 언쟁이 벌어졌을 터. 장단점이 오가고 이래서 된다, 안된다며 옥신각신. 코로나19로 사적모임도 줄어든 요즘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모임에선 대선 얘기가 안주로 자주 등장한다. 뜨거운 감자다. 술까지 곁들여지면 고성이 오가고 주장이 엇갈린다. 결말이 좋지 않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대선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생각이 다르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맘이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차기 대통령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누가 될 것 같냐고 물어 온다. 궁금하지 않다고 말하기엔 답변에 너무 정성이 없다. 충청도 사람인 것이 다행이다. '글쎄요'라고 답한다. #. '작은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나오고/배어나오면 이내 밝아지고/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되고/변하면 생육된다/그러니 오직 세상에서/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역린'에 나오는 중용 23장이다. 차기 지도자를 뽑는 선거가 보름도 남지 않았다. 대선 후보 모두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고 있는 지 묻고 싶다. 최근 여야 대선후보 4명이 맞붙은 세 번째 TV토론은 한마디로 실망스러웠다. '코로나 시대 경제 대책'과 '차기 정부 경제정책 방향'이 주요 주제였음에도 벗어난 질문과 답변이 많았다. 삐지고, 무시하고, 무지하고, 고성과 딴청, 동문서답…. 품격있는 토론 자체를 기대한 것이 잘못이었다. 감동이 없었다. 각 당의 토론전략이겠지만 후보의 의지와 정성이 필요하다. 네거티브보다 리더십과 비전(정책)을 보여주고 감동을 줘야 한다. 그래야 표심이 움직인다. 누구에게 투표할 지 마음 속에는 이미 정해져 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국민들이 내편네편으로 극명하게 갈라져 있는 현실이다. 한 명만 살아남는 '오징어 게임'. 누가 되든 희망은 크지 않다. 게임이 끝나면 또 두 편으로 갈라지지 않길 바랄뿐. #. 최근 한국은행이 내놓은 가계부채 현황을 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1862조1000억원으로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3년 이래 가장 많았다. 작년 한해만 134조1000억원의 가계빚이 불어났다. 지난 2020년(127조3000억원)보다 증가액이 많다. 최대 기록인 2016년 139조4000억원에 이어 두 번째다.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은 대출)'과 '빚투(빚내서 투자)'가 많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려스러운 것은 가계빚에서 2030세대의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한은 자료에 따르면 2030세대의 가계대출은 작년 6월 말 기준 458조원으로 전체 가계대출(1705조원)의 27%를 차지했다. 실제로 작년에 서울 아파트의 41.7%를 20~30대가 샀다는 한국부동산원의 통계도 있다. 재테크에 열심인 요즘 젊은이들은 주식시장 기업공개(IPO) 공모주에 청약하기 위해 대출을 받는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투자와 재테크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하지만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 금리인상, 차기 대통령 등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간과하는 위험을 의미하는 '회색 코뿔소'가 오고 있다. 정성을 다해 대비해야 위험을 줄일 수 있다. /파이낸스&마켓부장 bluesky3@metroseoul.co.kr

2022-02-24 06:00:10 박승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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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안전자산 희귀본능과 기축통화

금과 같은 실물자산과 함께 이른바 기축통화(基軸通貨, key currency)는 평소보다 경제위기나 국제분쟁 같은 불확실성 시기에 선호되는 '안전자산(risk free asset)이다. 불안심리가 퍼지고 위기가 도래하면 개인이나 사회나 안전자산 회귀본능이 커지기 마련이다. 2000년대 초반 증권화(securitization) 현상에 대한 과신과 들쑥날쑥 통화정책으로 말미암아 미국은 2008년 국제금융위기 진원지가 되었다. 달러화 위상이 급격히 추락하리라는 시각이 팽배했지만 안전자산인 달러화 선호도가 더욱 커지며 달러가치가 급상승하는 이변(?)이 벌어졌다. 오늘날 달러화 위상이 더 커진 까닭은 미·중 갈등 같은 그치지 않는 분쟁으로 기축통화 의존도가 높아진 때문이다. 기축통화 국가가 누리는 셰뇨리지 효과(seigniorage effect)는 발행한 화폐의 교환가치에서 화폐발행비용을 뺀 수치로 화폐주조이익이다. 기축 통화국이 일단 되기만 하면 사실상 불로소득 기득권을 누리는 셈이다. 간단하게 계산해보자, 미국은 1억 달러의 상품을 수입하고 그만큼 달러를 지불하는데 실제로는 지폐 인쇄비용과 보관·이전 비용이 들뿐이다. 물론 해외로 넘어간 달러는 언젠가는 미국이 갚아야 하지만, 미국경제가 고꾸라지면 달러 부채는 나뭇잎 저버린 숲속의 낙엽이 된다. 최근 미국이 새로운 부가가치 선도국이 되어가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는 재래산업 생산성이 아시아 신흥공업국에 뒤져 있었다. 만약, 셰뇨리지 효과가 없었다면 미국경제가 어떤 길을 갔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국제대차대조표(IIP)를 관찰하면 미국은 실질 대외부채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가다. 2021년 9월말 현재 미국의 대외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국제투자(=순대외자산)는 마이너스 16조 달러다. 일본은 플러스 3.4조 달러, 중국은 플러스 2조 달러에 이른다. 만약 기축 통화국이 아니라면 달러의 대외가치 척도인 달러 인덱스는 지금보다 크게 낮아질 것이다. 달러대비 원화가치가 경제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크게 흔들리지 않는 까닭은 우리나라 실질 대외순자산이 2021년 말 현재 6,3백억 달러에 이르기 때문이다. 국제 상품결제나 금융거래 주요 교환수단이 되는 기축통화로 부상하려면 거래 당사자들이 당해 화폐가치를 신뢰하여 결제 수단으로 선호하면 자연발생적으로 기축통화가 된다. 예컨대, 원화가 기축통화가 되려면 거래 당사국들이 결제수단으로 원화를 고집하기만 하면 간단하다. 상상컨대, 미국과 중국이 채권채무를 결제하면서 상대방이 발행한 달러화나 위안화를 서로 불신하여 원화결제를 고집하고, 이런 관행이 전 세계로 확산된다면 원화는 자연스럽게 기축통화가 된다. 물론, 이런 상상이 언제 현실화 될지는 누구도 짐작하지 못한다. 한국의 경제력이 튼튼해지는 동시에 안보가 튼튼해야만 한다. 최소한 북쪽에서 중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도발이 금지되어야 기축통화로의 도약을 기대할 수 있다. 현재는 달러를 중심으로 세계경제질서가 펼쳐지고 있어 원유, 금, 기타 원자재 가격 모두 달러화로 표시되고 있다. 미국은 유로나 엔화의 기축통화 정착도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다. 사실 미·중 갈등도 기축통화 패권에 대한 방어와 신규진입 전략에서 비롯되었다. 미국의 군사력, 외교력이 우세한 상황에서 국제긴장이 계속되기에 가장 강한 기축통화인 달러의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주요저서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호모 이코노미쿠스

2022-02-23 14:51:32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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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휘종의 잠시쉼표] 코로나19 방역정책은 사실상 실패했다

윤휘종 유통&라이프부장 주위에서 코로나19에 확진됐다는 얘기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한다.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력이 빠르다는 걸 실감할 정도다. 23일 0시 기준으로 하루 확진자가 17만1452명을 기록했다. 이로써 현재까지 누적 확진자는 232만9182명이다. 우리나라 국민이 약 5162만명이라고 한다면 대략 22명중 한 명이 코로나19에 걸린 셈이다. 이런 숫자를 보면 정부의 코로나19 대책이 과연 성공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정부 발표문을 보면 마치 정부가 코로나19를 잘 제어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정부가 코로나19를 제어하는 게 아니다. 코로나19 확산 추이를 예측만 하고 있을 뿐이다. 사망자나 위중증환자를 의료체계 안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도 정부의 의지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오미크론 변이의 특성상 사망률이 낮기 때문인 것이다. 백신주사를 3차까지 맞으라고 했지만 오미크론에는 무용지물에 가까웠고 제대로 된 치료제도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코로나19로 망가진 서민경제를 살리는 데 성공한 것도 아니다. 현행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은 지난해 11월 델타변이 때 만들어진 것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 이후 의료체계는 그에 맞게 대응하고 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나 서민경제 살기기는 델다변이 때를 뼈대로 삼고 있으니 소상공인들의 불만이 폭주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소상공인들을 위한 코로나19 피해보상정책도 정부의 기본 입장은 추경 편성 반대였다. 예산부족이 이유였다. 그러다가 정부의 국세수입 계산을 잘못해서 추경 여력이 없다는 말이 거짓말이 되기도 했다. 여기에 대통령선거가 맞물리면서 대선 후보들과 여야의 압박에 못이겨 마지못해 추경이 편성된 것이다. 추경편성을 정부가 생색낼 입장은 아니라는 얘기다. 대기업들의 사회공헌도 기대하기 힘들다. 과거 박근혜정부 때의 '상처' 때문에 대기업이나 정부 모두 적극적으로 나서려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로 외화를 벌어오는 주요 기업들이 내수경제나 서민경제 활성화를 위해 돈을 풀 수도 있을텐데, 어느 대기업도 나서지 않는다. 돈주고 뺨맞는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속내다. 게다가 지금은 정권교체기다. 아마 정부가 대기업에 도움의 손을 내밀어도 기업들은 정부 손을 잡지 않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1일 "최근 확진자 수가 10만 명을 넘고 있지만, 당초 예상 범위 내에 있으며 걱정했던 것에 비해 상황이 어려워진 것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정부의 최대치는 일일 확진자 27만명이니 그 때까지는 아무리 많은 국민이 오미크론에 감염돼도 정부의 예상치 안이라 안심해도 된다는 얘기인가. 방역당국은 하루 10만명을 넘는 확진자들이 쏟아지고 있는데도 22일에는 현 상황을 '코로나19 출구의 초입'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발언 이후 나온 입장인 것 같다. 하지만 지난 2년간 대통령과 정부가 '이제 끝나간다'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 '일상회복(위드코로나)을 해도 된다'는 말을 할 때마다 코로나 대유행이 발생했다. 이번에는 정말 정부 말대로 코로나19가 끝나길 간절히 바라지만 과연 오미크론에서 더 이상 바이러스가 변이를 멈춘다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국민을 안심시키려는 의도는 좋지만 선한 의도가 악한 결과를 낳는다면 차라리 '희망고문'은 그만 해야 한다.

2022-02-23 11:43:10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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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박서보 예술상'과 광주비엔날레의 권위

박서보는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명이다. 반복해서 선을 긋는 '묘법' 연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미술사적 평가는 아직 더 두고 봐야 하지만 미술시장에서의 성과는 괄목할만하다. 작품 한 점에 많게는 10억원을 훌쩍 넘는다. 그의 1986년작 '묘법 No.200~86'(165×260㎝)은 지난해 10월 경매에서 12억원에 팔렸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집계한 2021년 경매 낙찰 총액만도 약 200억원에 달한다. 비엔날레(이탈리아어로 2년마다 개최하는 국제미술전)는 원래 정치와 자본 등 모든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목적으로 한 문화 쟁의장치였다. 동시대미술에 관한 각축장 내지는 경연장이었고, 미술이 선전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차단하며 과도한 상업성에서의 독립과 예술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의 무대였다. 한국에선 광주비엔날레가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광주의 문화예술 전통을 계승함과 동시에 5·18광주 민주정신의 새로운 문화적 가치로의 승화를 기치로 1995년 창설됐다. 2002년 첫발을 뗀 부산비엔날레와 함께 양대 비엔날레로 꼽힌다. 현재 우리나라엔 20여개의 비엔날레가 난립하고 있다. 대부분 지역 생활미술축제 수준이다. 광주비엔날레 역시 나이에 비해 차별성은 두드러지지 못했다. 고유한 이념과 방법론은 무엇인지 의아하다는 지적이 없지 않았고, 내용 면에서 또한 변별력이 약했다. 해마다 수십억원의 혈세가 투입되지만 여전히 국제적 담론 부재, 토론과 논쟁의 장으로서의 기능 부족 등에서 아쉬움이 많다. 광주비엔날레는 베니스비엔날레가 만든 전통적 프레임마저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왔다. 대표적인 게 시상제도다. 실험성을 텃밭으로 전위적이며 도발적인 작업을 통해 예술담론의 틀을 제시하기보단 상(賞)으로 비엔날레의 권위를 획득하려 했으며, 출범 초기부터 만들었다 없애기를 반복한 채 공적 상속을 지속해왔다. 지난 7일 (재)광주비엔날레는 또다시 예술상을 제정했다. 이른바 '광주비엔날레 박서보 예술상'이다. 내년 4월 개최되는 제14회 광주비엔날레부터 2042년(총 10회)까지 총 100만달러의 시상금을 수여한다. 광주비엔날레 전시 참여 작가를 대상으로 심사한 뒤 선정된 작가 1인(팀)에게 매회 10만달러씩 지급한다는 게 골자다. 작가들에게 줄 돈은 박서보 화백이 후진 양성을 위해 기탁한 재원으로 설립된 '기지재단'에서 나온다. 박양우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는 보도자료에서 "단색화를 세계무대에 알렸던 박 화백의 예술적 신념과 한국 미술을 국제무대에 소개해온 광주비엔날레의 역할이 상응해 이 상이 제정됐다"고 밝혔다. '박서보 예술상'에 스스로 '최고 권위'라 칭하며 "예술상을 통해 비엔날레다운 비엔날레를 만들어 갈 계획"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예술상은 예술이라는 개념을 증언하고 확증하는 이데올로기적 기능까지 맡는다는 점에서 위험도가 높다. '광주비엔날레 박서보 예술상'은 가장 자유롭고 구속되지 않아야 할 비엔날레와 가장 제도적이고 세속적이며 '인정'과 '질서'를 부여하는 상의 조합이기에 그 자체로 개념적 갈등이 존재한다. 특히 모든 귀속에 도전하는 하나의 방식 아래 가능한 비엔날레의 권위가 시상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믿음은 의무방어전처럼 변질된 광주비엔날레의 현실을 보다 남루하게 할 뿐이다. 예술작품과 예술가를 비롯한 시장의 가치와 다른 차원의 가치란 스스로 존재할 뿐 외적 기준과 평가에 의한 승인이 아니다. 진정 비엔날레다운 비엔날레를 원한다면 상에 연연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본연의 소임에 충실할 수 있을 지부터 심도 있게 연구하는 게 맞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2022-02-22 12:07:36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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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성의 전원에 산다] 봄이 왜 이리 더디지?

작년 이맘때 봄날 같았다. 텃밭에 냉이도 나고 철쭉과 산수유가 움 텃었다. 그래서 뉴스 속 온난화를 걱정하며 왠지 모를 죄의식에 사로잡힐 지경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작년과 달리 영하 10도를 오르내릴 만큼 맹추위가 이어지고 있다. 북서향을 이루는 잣나무골은 여전히 잔설이 남아 있고 맞은 편 절골엔 겨울 햇살이 번져 있다. 마냥 따뜻할 것만 같다. 햇살만으로도 아랫동네가 부럽기조차 하다. 월동준비하던 게 아득하고 봄은 감감할 지경이니…. 해마다 이맘때 늘상 한 번쯤 쓰던 말이 있다. '춘래불사춘'이다. 봄 같지 않은 봄! 난 그게 싫다. 며칠전 새벽녘 경강선 곤지암역에서 전철을 탔다. 내가 타는 칸은 여섯량 중 맨 뒤편이다. 이매역에서 분당선으로 환승할 때 최단 거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칸에는 여분의 자리가 있어서다. 그날도 나는 맨 뒤칸에 올랐다. 마침 몇 자리가 남아 있다. 느긋하게 자리를 잡고 휴대폰을 꺼낸 다음 주위를 둘러보자 온통 검은 색이다. 한결같이 검은 패딩을 장착한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조는 듯한, 마치 무덤처럼 고요했다. 침묵과 검은 옷들. 우리가 언제부터 흑의민족으로 변신한거야. 어떤 데자뷰가 머리를 짓눌렀다. 8~9년 전 어느날 출근길 새벽 전철에 올랐을 때 모든 이들이 검은 옷을 입고 있어 놀랐던 그 광경이다. 그 때 나는 '불경기라서 그런 건가'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코로나19로 지친 사람들이 여전히 검은 옷을 벗지 못한 걸까? 그 때와 다른 건 있다. 예전 전철에서는 청소부 아줌마나 아파트 경비원 처럼 보이는 이들이 많았다. 일부는 퇴근하는 것 같았고 일부는 출근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엔 직장인 같은 청장년이 대부분이다. 모두들 출근하는 분위기다. 같은 것은 모두 푸대같은 겉옷을 뒤덮고 조는 듯한 행색들이라는 거다. 이 우울한 풍경, 마치 십여년을 두고 반복되는 듯한 모습을 봄이 오는 길목에서 또다시 마주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왜 모두 검은 옷을 입는거지 ?' 난 내가 목격한 풍경에 답을 할 자신은 없다. 다만 힘든 세상이 그렇게 나타났을 거라는 짐작은 해본다. 어느 사회학자라도 속시원한 답을 내려주면 좋겠다. 간혹 흰색이나 붉은 색 혹은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사람도 있어야하는 거 아닌가. 대개 이 나라엔 겨울이면 대체로 두세가지 색의 옷을 입는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대체로 옷 색깔이 비슷비슷하다. 심지어 흰색이나 청색도 도드라질 정도로 눈에 띨 정도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옷 걸이를 살펴봤다. 파카 둘, 반코트 하나, 패딩 둘 그게 겨울 웃의 전부다. 반 코트만 고등색과 검정색의 중간쯤이고 나머지는 모두 검거나 거무스레하다. 반코트는 이번 겨우내 한 번 입었다. 친구 딸 결혼식날, 좀 단정하려고 선택했을 뿐 회색 버버리는 몇 년째 옷장 밖을 나온 적이 없다. 30여년전 버버리 열풍이 불었고 나도 하나쯤 가져야할 듯한 기분에 결혼 이듬해 장만했었다. 한번은 아들녀석이 패딩 하나를 사준 적 있다. 그래서 패딩이 두개가 됐다. 패션에 둔감한 나는 극구 다음부터는 옷은 사주지 말라고 당부했었다. 녀석은 반색하지 않는 내게 뾰로퉁한 채 투덜거렸다. '뭐 기분 좋아하면 안 돼!' 그런 녀석에게 '요즘 옷은 수 십 년씩 입을 수 있으니 너한테 다 물려줄게'라고 응수했다. 녀석은 질겁했다. '우린 아빠랑 달라'. 그리고 생각한다. 날 풀려 검은 옷들을 모두 벗었으면 좋겠다.

2022-02-22 08:36:03 이규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