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미 기자의 와이(Why) 와인]<119>스테이크에 화이트와인?…"좋아하는 걸 마셔라"
<119>마궁와세 ③마리아주 점심이니 간단하게 하우스와인 한 잔씩 하기로 한다. 레드, 화이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고기엔 레드, 생선엔 화이트지. 누구 하나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 않았지만 규칙을 지키는 모범생 처럼 모두들 자기 메뉴가 고기인지, 생선이나 해산물인지에 따라 레드, 화이트 와인을 착착 시켜낸다. 스테이크를 주문한 누군가가 화이트 와인을 외치면 다들 의아한 눈으로 쳐다본다. '정말 스테이크에 그걸 마시겠다고?' 이번 마궁와세(마실수록 궁금한 와인의 세계)의 주제는 음식과 와인과의 궁합, '마리아주'다. 더 이상 '고기엔 레드, 생선엔 화이트'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좋은 궁합은 좋아하는 음식과 좋아하는 와인이다. 특히나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한식엔 더 그렇다. 메뉴 하나하나가 순서대로 나오는 양식과 달리 한 상 가득 차려진다. 식습관도 좀 다르다. 음식을 몇차례 씹고 와인을 마셔 입 안에서의 조화를 느끼는 원칙적인 마리아주의 개념이 아니라 우리네 일상은 음식을 일단 삼키고, 그다음 와인이든 다른 술이든 마신다. 너무 까다로울 필요는 없지만 음식과 레드, 화이트, 로제, 스파클링까지 너무도 다양한 와인을 맞추는 기본 규칙은 물론 있다. 바로 균형이다. 무게감, 강도, 풍미 등 모든 면에서다. 어느 한 쪽이 지배하거나 어느 한 쪽이 너무 밀리지 않게 말이다. 맛과 향이 강한 음식에는 와인 역시 강한 것이 어울린다. 레드 와인의 타닌은 음식 없이는 때론 텁텁하거나 뻑뻑할 때가 있다. 고기의 풍미가 그런 타닌을 부드럽게 해주니 고기엔 레드와인이란 공식 아닌 공식이 생겼다. 화이트 와인이라고 해도 고기의 풍미를 감안하면 된다. 고기가 '강'이니 화이트 와인 중에서도 '강'한 것을 고르는 식이다. 샤르도네나 알자스 스타일의 피노 그리, 비오니에와 같은 풍미있는 화이트라면 훌륭한 선택이 될 수 있다. 화이트 와인 또는 레드 와인에는 없는 특징이 있다. 바로 산도다. 금방이라도 침이 나올 것 같은 산도는 음식의 균형을 잡아주고, 육즙이나 양념으로 입안을 산뜻하게 해줄 수 있다. 스테이크부터 소시지나 짭짤한 베이컨까지 돼지고기는 선택의 폭이 훨씬 더 다양하다. 오히려 소고기 스테이크에 어울릴 '진한' 레드는 돼지고기에 좋은 선택이 아니다. 살코기라면 보졸레나 피노누아 같이 다소 '연한' 레드가 낫고, 훈제햄이나 베이컨에는 매운 음식이나 향신료가 많은 아시아 음식을 먹을 때 처럼 화이트 리슬링이 더 잘 어울린다. 기자는 점심엔 메뉴 불문 화이트 와인이다. 레드 와인을 먹고 나면 불그죽죽, 보라빛, 때론 시커매지기까지 하는 입술때문이다. 나오는 음식과 정 안어울리면 와인 따로, 음식 따로 삼키면 될 터. 때론 마리아주 보다, 취향보다 중요한게 있을 수 있는 법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