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의 시시일각] 불확실성 속 희망의 연대를 말하다
상업성 만연한 미술계에서 공적 문제를 공공적 가치를 지닌 미술로 어떻게 부응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기획은 의미 있다. 동시대성을 담보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재)경주문화재단 주관 특별기획전 <RE: SILIENCE, 다시〉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중앙에선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으나 전시 의도와 작품이 내뱉는 발언들은 귀 기울일만하기 때문이다. 경주 예술의전당 알천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이 전시는 기후 위기와 팬데믹(Pandemic)이라는 전 지구적 재난 앞에서 무기력하고 불확실한 상태로 살아가는 인간 삶을 관통한다. 그러나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는 전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궁극적으론 '희망', '공존', '회복'에 방점을 둔다. 참여 작가는 모두 7명(이연균, 오동훈, 박기진, 최정우, 박국진, 강재준, 김정헌)이다. 국내외를 무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청·장년 작가들이다. 이들은 시각예술의 다기한 언어로 공적 관심사를 공유한다. 당대 인류 앞에 놓인 엄중한 현실을 다루면서도 어둠의 시간을 견뎌낼 수 있는 긍정의 힘을 내보인다. 작가 이연균은 자연물인 '마른 솔잎'을 이용해 생태 질서를 거스르는 인간에 대해 성찰한다. 자연물의 예술화를 통해 인간의 생산성에 대한 반성과 회복의 메시지를 담았다. 오동훈 작가는 비누 거품에서 차용한 형상의 대형 조각을 선보였다. 그에게 영감을 준 '비눗방울'은 한순간의 꿈이면서 허상이고, 열정이며, 욕망이다. 상상력의 근원이자, 밝은 미래를 향한 꿈의 크기이기도 하다. 단순한 외형과 달리 작품 내부엔 자연의 섭리와 생명의 근원, 존재에 대한 철학이 녹아 있다.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 속의 장치와 상황, 풍경을 재현해온 작가 박기진은 과학과 예술의 접점을 두 개의 작품으로 빚어냈다. 첫 번째는 민통선 내부에 있는 남·북 사이의 끊어진 다리와 동·서 베를린 사이의 다리를 상징화한 4개의 창을 지닌 작품 '통로'(2015)다. 이 작품은 작가가 베를린에 머물며 조사했던 독일의 분단과 통일, 군 복무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열린 분할된 다리를 한 채 바닥에 놓인 '통로'는 볼 수는 있으나 건너갈 수는 없는 구조다. 지척에서 대립 중인 한국의 상황을 연상시키는 작업이면서 인간이 자초한 고통이 순환되는 작금의 현실까지 투영했다. 묵직한 두 개의 바퀴가 대지를 누르는 박기진의 또 다른 작품 '자국'(2022)은 20년 전 중부 전선 민들레 평원에서 마주한 궤도의 선들에서 착안됐다. 육중함을 전달하는 궤도 밑엔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시간, 미래에 대한 관점이 은유적으로 담겼다. 여기엔 팬데믹에 의한 혼란도 각인되어 있다. 작가는 "과거는 역사로 남겠으나 미래는 그 혼돈과 불확실성으로 인해 많은 가능성을 가진다."고 했다. 최정우 작가의 '편견 없이 이야기하기 위한 장치'(2019)는 양쪽에서 말하고 들을 수 있도록 고안된 파이프 형태의 설치 작업이다. 소통에 관한 메시지를 축으로 하지만 나팔 모양의 기다란 관에서 읽히듯 하나로 연결된 사회와 나의 관계를 포함한 이음과 연결의 의미가 더 짙다. 이외에도 박국진 작가의 'Unknown'(2018)과 '우물'(2018) 등의 작업은 디스토피아적 세상과 불안한 환경을 언급하고, 강재준의 설치작품 '온실'(2022)은 빛의 확장을 통한 위로와 치유를 다룬다. 김정헌 작가는 회화, 오브제 설치 등의 다양한 조형방식으로 인간과 자연, 동식물 간 새로운 상관성을 비롯한 타 생명의 정서에 대한 사유를 보여준다. 존재를 화두로 한 동질성, 평등성 등이 다채롭게 배어 있음에도 공존이라는 하나의 방향으로 귀결된다. <RE: SILIENCE, 다시〉는 공동체의 위기가 미술 안에서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방식이란 무엇인지 자문한다. 문명 속에서 자가 발전을 거듭해온 인위적 환경을 뒤로 물린 채 타자 간 거리감을 상쇄하고 갈등과 대립보단 병립, 공생, 화합을 말한다. 특히 이번 전시는 20세기 서구에서 시작된 사회복지국가 체제에서 벗어나 생태복지국가 체제로의 이행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인지 당면한 지구촌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인류의 생태적·연대적 결합이 요구됨이 자연스럽게 부각된다. 전시는 11일까지다. 장소가 경주이기에 혹자에겐 물리적 거리가 있겠으나 여건이 허락한다면 관람해도 좋을 전시다.■ 홍경한(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