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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마마야 물렀거라, 지석영 대감 행차시다"

서울 연건동에 있는 서울대학교 병원에 가면 옛 '대한의원' 본관 건물을 만날 수 있다. 지난 1907년에 건립된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적인 병원 건물로서 근대적인 서양 의료기술과 의학교육을 국내에 도입하는 창구 역할을 한 기구다. 1885년에 개원한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인 '제중원'과 1899년에 문을 연 최초의 근대식 의학교육기관인 '의학교' 그리고 '광제원'의 맥을 잇고 있다고 평가된다. 물론 일제에 강점된 뒤에는 의사나 약제사, 사무원들이 대부분 일본인으로 교체됐고 이름도 '조선총독부의원'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차츰 조선인의 조선인에 의한 조선인을 위한 근대적인 의료서비스 제공 노력이 일본 제국주의의 통치 도구로 변질되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병든 사람들을 고쳐야 한다는 생각에, 아니 병들기 전에 예방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진 조선인이 있었다. 대표적인 이가 지석영이다. 의학교가 존속한 1899년부터 1907년까지 내내 교장을 맡기도 했던 지석영은 일본으로부터 '종두법'을 도입해 '마마' 퇴치에 앞장선 인물이다. 지금이야 그 위험성을 자각하는 이들이 거의 없지만 '두창'이나 '천연두'라고도 불리는 마마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거나 목숨은 부지하더라도 얼굴에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곰보 흔적을 남기던 무서운 질병이었다. 얼마나 대단했으면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호환보다도 두려울 정도라 하여 '호환마마(虎患??)'라 일컬었을까. 실제로 사망률이 매우 높아 한때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세계 전체 사망 원인의 10퍼센트를 차지하기도 했다. 다행히 지석영과 같은 이들의 고생과 끊임 없는 연구개발을 통해 지난 1979년 아프리카 소말리아에서 발생한 마지막 환자를 끝으로 마마는 인류가 개발한 백신을 통해 완전히 퇴치된 질병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의원 건물 안에 마련된 의학박물관에 가면 그런 어마무시한 마마를 물리치기 위해 애쓴 지석영의 노고를 돌아보는 전시를 볼 수 있는데, 이름이 '마마야 물렀거라, 지석영 대감 행차시다'이다. 물론 일제가 자신들의 식민지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지석영과 같은 인물의 업적을 앞에 내세운 반면 이전의 조선 정부가 했던 마마 퇴치 노력을 폄하한 측면이 없지는 않다. 또 지석영 스스로 이토 히로부미의 추도사를 낭독하기도 하는 등 친일부역 혐의마저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비록 옛 대한의원 의학박물관이 당시의 모든 역사를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건물을 안팎으로 살펴보고 전시물을 훑어보다 보면 근대 의학기술 도입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이 땅의 다양한 풍경이 머릿 속에 그려진다는 점이다. /'다시,서울을 걷다' 저자

2014-09-11 11:42:33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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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대일본'은 낭설이다

한때 이런 이야기가 돈 적이 있다. 서울의 백악산은 '대(大)'자 형상을 하고 있으며, 광화문 자리에 있던 조선총독부는 위에서 내려다 봤을 때 '일(日)'자를 닮았고, 경성부청사는 '본(本)'자를 의미했다고 말이다. 일제가 이 땅을 지배하던 시절 조선인의 기를 꺾기 위해 통치기구인 조선총독부와 경성부청 건물을 일부러 '대일본' 모양으로 설계했다는 이야기다. 자연물인 백악산은 논외로 치고, 지금은 철거해버린 조선총독부의 경우 위에서 내려다 보면 '日'자를 닮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일부러 그렇게 지었다는 증거는 없다. '日'자형 건물을 비록해 '입 구(口)'자나 '눈 목(目)'자, '밭 전(田)'자 등 건물 한복판에 정원을 둔 중정식 건물은 근세 부흥식, 즉 네오 바로크식 건축의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비단 일제강점 하의 조선에서만이 아니라 19세기 후반의 유럽식 건물에서 흔히 발견되는 모습이다. 서울시청사를 거쳐 현재 서울도서관으로 이용되는 옛 경성부청사도 그렇다. 위에서 보면 '本'자를 닮기는 했다. 하지만 태평로쪽은 변이 길쭉한 반면 무교로 쪽은 꽤 짧다. 국호 '일본'을 드러내기 위해 '本' 자를 닮게 짓는다면서 길이가 비슷하지 않았다면 아마 꽤 불경스럽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사실 경성부청사를 지을 때 '本'자를 본따 설계했다는 이야기는 일제강점기의 어떤 기록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도리어 건물 설계에 참여했던 조선총독부 건축과의 사사 케이이치는 '궁(弓)' 모양, 즉 활대를 닮게 지으려 했다는 증언을 남겼다. 실제로 근처 건물에서 내려다 보면 서울광장을 향해 한껏 활시위를 당긴 모양을 하고 있다. 백악산과 조선총독부, 경성부청사가 한자 '大日本'을 닮았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던 때로, 총독부 철거를 부르짖던 이들의 근거를 뒷받침하기 위해 통용된 이야기에 불과했다. 설령 조선총독부와 경성부청사를 지을 때 실제로 '대일본'을 형상화하려 했다 해도, 제 아무리 부정적인 유산이라고 해도, 그것들을 헐어버린다고 해서 일제잔재가 청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독일이나 중국이 부정적인 내용의 역사유산이라고 해도 일부러 보존하고 남겨 교훈으로 삼는, '기억의 의무'를 중히 여기는 이유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들이 유대인수용소나 정치범수용소 그리고 일본군에 패한 전적지들을 없애지 않고 잘 보존하며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그 역사가 자랑스러워서가 아니라 잊지 않기 위해서다. /'다시,서울을 걷다' 저자

2014-09-04 12:41:16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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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이보다 좋을 수 없다, 토란국

추석 별미인 토란(土卵)은 땅에서 나오는 알이라는 뜻이다. 생김새도 그렇지만 영양이 풍부해서 지은 이름이다. 추석에 토란국을 끓이는 것은 우리 전통으로 다산 정약용의 둘째 아들 정학유가 지은 농가월령가에도 "북어쾌 젓조기로 추석명절 쉬어보세/신도주 올벼 송편 박나물 토란국을/산사에 제물하고 이웃집과 나누어 먹세"라고 나온다. 옛날 사람들은 토란을 무척 좋아했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도 토란예찬론을 남겼는데 향기는 용연(龍涎)과 비슷한데, 감히 금제옥회(金虀玉膾)를 놓고 소동파의 옥삼갱(玉糝羹)과 비교하지 말라고 했고, 하늘나라 음식 수타(??)의 맛이 어떤지 모르지만 지상에는 이보다 맛있는 음식이 없다고 했다. 현대인은 듣도 보도 못한 음식과 비교하면서 토란국을 찬양한 것으로 풀이하자면 옥삼갱은 토란국이다. 토란 알갱이가 마치 옥을 삶아 놓은 것 같다며 지은 이름이다. 수타는 인도 천축국에서 전해진 음식으로 우유로 만드는데 맛과 빛깔이 아름다워 하늘나라에서 먹는다는 소문이 났을 정도다. 용연은 고대 향수의 이름으로 용이 흘린 침을 모아서 만든다. 금제옥회는 수양제가 먹고 감탄했다는 농어회로 진나라의 장한은 이 맛을 보기 위해 벼슬도 버리고 낙향했을 정도다. 정리하자면 마치 옥을 삶아 놓은 것 같은 우유 빛깔 토란국이 냄새는 향수보다 더 향기롭고 맛은 벼슬도 버릴 정도로 맛있다는 농어회보다 더 낫다는 소리다. 우리 옛 그림에도 토론이 종종 등장하는데 토란이 무병장수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유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없지만 토란에 대한 옛 사람의 인식을 보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것 같다. 옛날 사람들이 토란을 놓고 너무 호들갑 떠는 것 같지만 토란이 좋기는 좋은 모양이다. 영양도 영양이지만 토란은 전분 크기가 작아 다른 작물에 비해 소화가 잘된다. 한방에서는 위장의 운동을 원활하게 도와주고 열을 식혀준다니 과식하기 쉬운 추석 음식으로는 안성맞춤이다. /음식문화평론가

2014-09-03 10:32:15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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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필의 청론탁설]야당, 진정 국민여론을 외면할 것인가?

새정치민주연합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제1야당으로 존재감마저 상실할 만큼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응 둘러싸고 두 차례에 걸친 여야합의를 깨면서 이제 진퇴양난이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면서 45일간 단식을 해온 김영오씨가 지난달 28일 단식을 중단하고 문재인 의원도 동조단식을 그만뒀다. 장외투쟁도 여론의 뭇매를 맞고 강도를 높이지 못하고 어정쩡하다. 당내 온건파 의원15명이 연판장을 돌리며 장외투쟁에 나선 당 지도부에 반기를 들었다. 이제 야당은 내분의 씨앗을 키우며 당내 온건파와 강경파의 갈등이 노출되었다. '7.30 재보선' 참패 후 한 달도 안 돼 만신창이가 되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다섯 달째 국회를 공전시켜 이제 국민적 분노와 염증이 극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책임에 여당보다는 야당에 보다 많은 화살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 국민여론에서 드러났다. 경제살리기를 뒷받침해야할 민생법안을 볼모로 삼아 국회를 식물국회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난주 각종 여론조사결과 "세월호법과 민생법안을 분리 처리해야한다"는 응답자가 무려 67.7~78.5%나 나왔다. 또한 국민 3분의 2에 해당되는 64.5~66.3%가 "야당의 장외투쟁에 동의할 수 없다"고 응답하고 있다. 이 두 가지 결과만보아도 야당의 선택은 다른 길이 안 보인다. 우선 국회를 정상화시켜 민생 경제법안을 처리하고 세월호법을 다루는 것이 순리다. 염수정 추기경은 "이제 세월호의 아픔을 이겨내고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한다"는 간곡한 주문을 했다. 이어 불교계의 원로 월주 스님은 "세비를 반납하든가, 차라리 국회를 해산하라"고 일갈했다. 대다수 국민의 마음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해 54일간의 천막투쟁 끝에 결국 빈손으로 돌아온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지난 3월 39.7%에 달했던 지지율이 지금 23.2%까지 내려간 점을 깊이 성찰해야한다. 이러한 야당의 추락은 무엇보다 국민정서를 외면 한 채 당내 갈등과 장외세력에 휩쓸려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새 정치를 선창했던 안철수 전 대표는 지금 왜 침묵하는가? 그의 정치실험은 끝났는가? 야당의 원로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지금 야당은 크게 각성해야한다. 시대착오적이고 투쟁적인 정치노선은 구태정치의 표본이다. 국민에 대한 최고의 서비스로 무장돼야 희망이 있다. 당장 국회로 돌아와 '민생제일주의'에 동참하는 길이 살길이다. /언론인

2014-08-31 11:07:05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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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서대문형무소를 돌아보며

1908년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선 서대문형무소는 일제강점기 때 수많은 해방운동가들이 투옥됐던 곳이자 군사독재정권 때에는 민주화운동을 하던 이들이 수감됐던 곳이다. 한 마디로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된 권리를 완력으로 억압하던 권력에 대한 저항과 투쟁의 상징과도 같은 공간이다. 하지만 역사관으로 바뀐 형무소를 둘러보다 보면 아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1987년까지 약 80년 동안 기능했던 서대문형무소에서 기념하고 있는 것이 정작 전반기 40년 정도, 즉 해방 이전까지의 일제강점기에만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해방 이후 '가둔 자'와 '갇힌 자'가 바뀌지 않아 그런지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 때 투옥되거나 '사법살인'을 당한 이들을 설명하는 대목은 고작 사진 한두 장이 전부다.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설명이 충분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중국 동북3성과 연해주 일대에서 활약한 무장투쟁 세력이 해방 뒤 북한 정권 수립의 토대가 되었기 때문일까?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비롯한 보수적 계열의 독립운동에만 집중하고 있을 뿐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에 대해서는 충분한 조명을 하고 있지 않다. 전시공간을 유독 '남성'에게만 할애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띤다. 2013년경 여성 수감자들을 가둬두던 '여(女)옥사'를 복원해 일반에 개방하기는 했다. 1918년을 전후해 독립운동가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여성들만 따로 가두기 위해 지어진 뒤 지난 1979년 별다른 조사나 도면 한 장 남기지 않고 철거됐던 바로 그 여옥사다. 그런데 여옥사에는 유관순 열사와 같은 대표적인 인물 몇몇의 기록만 있을 뿐 그 외의 수많은 학생과 노동자, 간호사 등의 여성 운동가들은 이름 석 자조차 기록되어 있지 않다. 전체 기간 중에서 딱 절반의 기간만을, 그마저도 특정 세력을 제외한 채 보수적 독립운동에만 한정해, 그리고 남성 중심으로 관심을 가져온 서대문형무소…. 과연 서대문형무소가 방문자들에게 말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나아가 기억하고 기념하려는 것은 어떤 역사일까? 적잖은 이들이 곳곳에 낙서를 남겼는데, 그 내용은 지극히 편향적이었으며 독재정권에 대한 지적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반일적인 내용들로만 가득했다. /'다시,서울을 걷다'저자

2014-08-28 10:29:22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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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호박은 마법의 열매

서양에서 호박은 마법의 열매다. 마법 이야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동화 신데렐라도 그 중 하나다. 계모의 구박에 시달리며 부엌에서 재를 뒤집어쓴 채 일하던 아가씨 신데렐라를 왕자와 맺어주는 도구 중 하나가 호박이다. 요정이 마술지팡이로 호박을 마차로 만들어 무도회장의 왕자에게 데려다주기 때문인데 요정은 왜 하필 호박을 마법의 마차로 만들었을까? 할로윈 행사에도 호박이 등장한다. 할로윈의 상징인 잭 오 랜턴은 커다란 호박 속을 파낸 후 도깨비 얼굴로 조각을 하고 그 속에다 초를 고정시켜 만든다. 고대 켈트족의 전설에서 비롯된 할로윈은 하늘나라로 가지 못하고 암흑의 세상인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이 인간에게 나쁜 짓을 하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다. 때문에 무서운 모습으로 조각한 호박 등(燈)으로 악령과 마녀를 쫓아 사람을 보호한다는 것이니 호박에 악령을 쫓는 마법의 힘을 담았다. 호박이 가진 마법의 이미지는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해리포터에서 호박주스는 마법세계의 청량음료다. 마법학교인 호그와트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호박주스 마시면 금방이라도 마법의 힘이 생길 것 같은 이미지다. 반면 마법과 관련 없는 일반인들, 다시 말해 머글의 세계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은 호박주스를 마시지 않는다. 오렌지주스를 마실 뿐이다. 호박이냐, 오렌지냐가 마법의 존재 유무를 가르는 상징이 된다. 선악과하면 사과를 떠올리는 것처럼 서양동화에서 호박하면 마법이 연상되는데 호박은 왜 이렇게 마법의 이미지를 갖게 됐을까? 사실 호박은 옛날 유럽과는 관련도 없는 작물이다. 미주대륙이 원산지이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호박이 많은 사람을 구했다는 사실이다. 미국 정착민이 첫해 농사에 실패했을 때 원주민이 마법처럼 전해준 작물이 옥수수와 호박이었다. 호박이 처음 조선에 전해졌을 때도 가난한 농민은 호박으로 끼니를 삼았다. 혹시 호박이 배고픈 이들의 허기를 달래주었기에 마법의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음식문화평론가

2014-08-27 10:30:05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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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필의 청론탁설]달라지는 호남정서를 주목하자

소선거구제 실시 26년 만에 처음으로 여당인 새누리당의 이정현 후보를 당선시킨 호남에서 주목할 만한 뉴스가 또 나왔다. 순천시 곡성군 '7.30재보선'을 통해 철옹성 같은 야당 텃밭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어 최대의 이변을 호남에서 연출해 큰 파장을 일으킨바 있다. 이번에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 광주에서 일어났다.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에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홍성담씨의 걸개그림 작품 '세월오월' 전시가 성사되지 못하게 되었다. 지난 80년대 우리나라 대표적인 민중미술작가 홍성담씨가 그린 이 작품에는 박 대통령은 물론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과 이건희 삼성회장도 들어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계급장과 검은 선글라스 모습도 그려져 있다. 지난 20일 윤장현 광주시장은 안종일 전 광주시 교육감, 김양균 전 헌법재판관, 조비오 신부 등 원로 16명과 만찬을 함께 하고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에 박 대통령을 풍자한 '세월오월' 전시문제를 놓고 의견을 개진했다. 이 자리에서 대부분 원로들은 "박 대통령을 풍자하는 그림을 특별전에 전시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만찬에 배석한 광주시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지역 원로 한두 분을 제외하고는 참석자 대부분이 풍자그림전시를 반대했다"고 한다. 진보성향의 일부 원로인사들 마저 "예술차원에서 국가 원수를 패러디할 수는 있지만 '세월오월'처럼 직설적으로 패러디한 것은 지나치다"는 의견을 보였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느 원로는 "표현의 자유에는 표현의 책임도 뒤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 인식되어온 호남의 정서로는 매우 이례적인 사례로 받아들여진다. 이에 대해 윤장현 광주 시장은 "'외로운 섬'이 되지 않는 광주, 당당하게 다른 지역을 품고 가는 '열린 광주'가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제 이정현 의원 당선과 함께 이와 같은 작은 불씨가 커져 영호남의 갈등을 해소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갈등이 많은 나라로 지목되고 있다. 1위인 터키는 종교적인 갈등을 겪고 있어 실제로는 우리나라가 가장 심각하다. 이러한 면에서 호남의 정서가 변하고 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에 부응하여 영남에서도 맞불을 놓아 지역 간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 대통합의 길을 열어야 할 것이다. /언론인

2014-08-24 10:46:53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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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잊혀진 최초의 신식무기 공장

삼청동길을 따라 삼청공원이 있는 북쪽으로 걷다 보면 이내 한국금융연수원에 닿는다. 그리고 정문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주변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한 벽돌 건물을 만날 수 있다. 구한말 무기 제조를 담당하던 관청인 기기국에 속해 있던 번사창이다. '번사'는 흙으로 만든 거푸집에 금속용액을 넣어 주물을 만들 때 이리저리 모래를 뒤치는 것을 뜻하는데, 번사창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대형 무기공장이자 최초의 신식무기 공장 가운데 하나다. 번사창 등이 들어선 것은 1876년 강화도조약과 깊은 관련이 있다. 강화도조약의 서막을 알린 운요호사건 때 일본의 근대적 군사력에 눌려 불평등조약을 맺을 수밖에 없던 조선이 신식무기의 필요성에 눈을 뜬 것이다. 이에 조선 정부는 강화도조약 5년만인 1881년, 그나마 우군이었던 청나라에 서양식 총포와 탄약 등 신식무기 제조법을 배워오도록 영선사를 파견한다. 그런데 영선사 일행은 청나라에 1년도 채 머무르지 못했다. 일단 부족한 재정이 걸림돌이 되었고, 조선에서 임오군란이 터지면서 급거 귀국길에 올라야만 했다. 근대적 과학기술과 신식무기 제조법을 마스터하기엔 턱 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으나 그래도 1883년 번사창을 비롯한 무기공장 착공에 들어가 이듬해 완공을 보았다. 조선이란 나라가 확실히 기울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지점은 바로 이 대목이다. 어렵사리 공장을 돌리는 듯했지만 완공 10년 뒤인 1894년에 동학농민운동과 뒤이어 청일전쟁까지 벌어지면서 일본이 조선 내의 모든 무기공장을 폐쇄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된 이후에는 아예 문을 닫아걸게 했다. 자강을 위해 한 발 늦게나마 제도를 바꾸고 신식무기를 만들려는 시도도 했지만, 욱일승천하는 일본의 위세 앞에서 그 뜻은 힘 없이 접혀졌다. 그 뒤 일제강점기엔 세균실험실로 용도가 바뀌었고 해방 뒤에는 중앙방역연구소와 국립사회복지연수원 등으로 쓰이며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어버린 번사창…. 한국 최초의 근대적 공장, 그 중에서도 신식무기 공장일 뿐만 아니라 서울에 남아있는 유일한 조선시대 무기고이긴 하나 지금은 문화재 관련자 외에 일부러 찾는 이를 발견하기 힘들다. /'다시, 서울을 걷다'저자

2014-08-21 10:24:52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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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아담은 진흙, 인간은 옥수수로 빚었다?

사람은 세상만사 대부분을 자신의 잣대로 본다. 때문에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스캔들이다. 음식도 비슷하다. 내게 익숙한 음식은 맛있고 신이 보내 준 선물이지만 익숙하지 않은 음식은 맛도 없고 엽기적인 음식으로 취급한다. 옥수수가 그랬다. 지금은 누구나 맛있게 먹지만 한때는 사람에 따라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렸다. 옥수수는 원산지가 남미다. 남미의 고대 마야인과 중미 멕시코의 아즈텍 주민에게는 주식이었다. 때문에 마야인은 옥수수를 신이 환생한 작물이라고 여겼다. 또 기독교에서 하느님이 진흙으로 아담을 빚은 것처럼 마야 신화에서는 창조의 신이 옥수수 반죽으로 인간을 만들었다고 믿었다. 남미 원주민들에게 옥수수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 조상들에게 옥수수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옥수수가 우리나라에 처음 전해진 것은 조선 후기로 추정된다. 숙종 때 중국어 통역서인 역어유해에 옥촉(玉?)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소개돼 있으니 17-18세기 무렵이다. 잎 사이에 뿔처럼 생긴 꾸러미가 달렸는데 그 속에 구슬 같은 열매가 있고 맛은 달고 먹음직스럽지만 곡식 종류는 아니라고 했다. 옥수수가 곡식이 아니라는 것은 밥 대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곡식이 부족한 산골마을에서는 식량으로 먹었지만 옥수수는 주로 군것질거리였다. 때문에 옛날 조상들은 배고플 때 어쩔 수 없이 먹는 작물 정도로나 여겼다. 그러니 조선 후기의 명필 추사 김정희는 자신의 문집인 완당집에 일흔 넘은 노인이 옥수수를 먹고 지낸다는 말을 듣고는 망연자실해 하는 모습을 남겼고, 정약용 역시 곡식의 우선순위를 매기면서 17가지 곡식 중 옥수수를 꼴찌에서 두 번째로 꼽았다. 원산지에서는 신이 부활한 작물, 인류의 기본이라고 여겼던 작물이 우리나라에서는 마지못해 먹는 작물, 간식에 불과한 식물로 바뀌었으니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만사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음식문화평론가

2014-08-20 10:24:45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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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필의 청론탁설]민생법안을 볼모로 삼아서는 안 된다

세월호 특별법이 여야 합의가 깨지면서 민생관련 법안이 다시 표류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여당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합의하고도 당내 강경파와 장외 세력에 밀려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야당은 국회에 계류 중인 민생법안을 연계시키면서 배수진을 치고 있다. 이 바람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면서까지 정부가 요구한 경제활성화?민생?서비스 산업 발전?정부조직 개편 등에 관련된 법안 수십 개가 묶여 있다. 새누리당은 세월호 특별법과 이들 민생법안의 분리처리를 주장하고 있으나 야당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마치 노조가 파업을 빌미로 사 쪽을 압박하듯이 볼모로 잡고 있다. 따라서 정국은 다시 냉기류를 타고 국회는 식물국회가 되어 가고 있다. 그렇다고 다수당인 여당의 단독처리도 선진화 국회법에 따라 불가능하다. 정부가 국가개조를 주창하면서 경제살리기에 올인 하려고 하나 국회가 발목을 잡고 있다. 야당은 지난 7.30 재보선에서 무능정권을 심판해야한다면서 선거전을 치렀지만 오히려 심판 받았다. 심지어 야당 텃밭인 호남에서도 뼈아픈 1석을 내줬다. 선거 참패 후에는 민심에 복종하겠다며 거듭날 것을 다짐하며 비대위 체제를 만들었으나 아직 까지는 달라질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7.30재보선에서 민심은 세월호의 아픔을 이겨내고 경제를 살리면서 국가개조에 매진해줄 것을 주문했지만 야당은 벌써 이러한 국민정서를 잊고 있다. 지금까지 취해온 '투쟁 정당'이나 '딴지 정당'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날 한미 FTA에서 노무현 정권 때 추진한 것조차 재협상을 고집한 것이 야당이다. 또한 이명박 정권 때에는 광우병 파동의 회오리 속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막았다. 이러한 정치적 행보가 국민들로부터 냉정한 비판을 받고 있으나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세월호 특별법만 해도 민생법안을 연계시키면서 경제살리기에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큰 선거가 20개월이나 남아 있다고 민심을 외면할지 모르나 이러한 자세는 마치 유권자의 눈을 가리려는 것과 같다.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것조차 뒤집게 되면 의회정치는 실종된다. 이제 야당은 정도(正道)로 나와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수권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그야말로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조금이라도 입지를 확보할 수 있다. /언론인

2014-08-17 11:13:01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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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교황의 소울푸드, 야채 퐁듀

바냐 카우다(Bagna Cauda)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좋아한다는 음식이다. 우리에게는 낯설고 생소하지만 이탈리아 북서부 알프스 지방 농민의 전통 요리로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토리노 지역 특산요리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일종의 야채 퐁듀다. 스위스 전통 음식인 퐁듀가 녹인 치즈에 빵을 찍어 먹는 것처럼 바냐 카우다는 뜨겁게 끓인 안초비 소스에 홍당무나 샐러리, 무, 피망 같은 채소를 찍어 먹는다. 뜨거운 냄비, 혹은 뜨거운 소스에 찍어 먹는다는 뜻의 바냐 카우다는 유럽 멸치인 안초비와 마늘을 듬뿍 넣고 올리브기름으로 끓이는 냄비를 식탁 가운데에 놓고 사람들이 둘러앉아 함께 먹는다. 봄 여름 보다는 날씨가 추운 가을, 겨울에 먹는 음식이다. 바냐 카우다는 사랑의 음식, 화합의 요리로 유명하다. 먼저 가족 사랑이 듬뿍 담겨있다. 토리노 시가 속해있는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은 프랑스, 스위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전형적인 알프스 산록지역이다. 일조량이 적기 때문에 올리브 나무는 자라지 못하고 바다가 없어 안초비와 같은 생선도 없다. 그저 마늘만 풍부할 뿐이다. 이런 지역에서 생선인 안초비를 올리브기름에 끓이는 소스가 발달한 것은 알프스 산골 농부들이 추운 겨울, 가족에게 먹이려고 유일한 재산인 양털을 먼 바닷가까지 싣고 가서 소금과 생선으로 바꾸어 음식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 이렇게 시작된 바냐 카우다는 겨울철 포도농장 농부의 음식으로 발전한다. 겨울이 빨리 오는 알프스 산록에서 농부들은 추위에 대비해 서둘러 포도나무를 돌봐야 했다. 이른 아침부터 냄비에 끓인 안초비 소스에 채소를 찍어 먹으며 몸을 따뜻하게 녹이고, 힘을 합쳐 포도농장 작업을 마무리했다. 우리 비빔밥처럼 단결의 음식으로 자리매김한 이유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르헨티나 출신이지만 부모님은 바냐 카우다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피에몬테에서 이민을 왔다. 알프스 농부의 사랑과 화합의 마음이 담긴 바냐 카우다가 교황의 소울 푸드인 까닭이다. /음식문화평론가

2014-08-13 10:27:13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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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특별법 13일 처리 못하나…박영선 '특검 추천권' 추가요구

여 "합의 그대로 고수" …세월호법 논란 새국면 세월호특별법 합의를 놓고 당 안팎에서 거센 반발에 부딪힌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10일 "추가 협상을 통한 돌파구 마련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혀 '세월호법 논란'이 새국면을 맞았다. 특별검사 추천권을 얻어내지 못한 협상 결과에 대한 희생자 유가족과 당 내부의 고강도 비판과 재협상 요구가 수그러들지 않자 실무 협상을 통해 특검 추천 문제를 다시 손질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이미 합의된 내용을 재논의하자는 새정치연합의 주장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13일로 계획했던 세월호법의 국회 본회의 처리마저 매우 유동적인 상황에 놓이게 됐다. 박 원내대표는 10일 "유가족들이 이야기하는 특검 추천 방식과 관련해서는 저희가 좀 더 고민해보고 진지하게 노력해보겠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특검 추천에 관해서 논의할 구석도 조금 남아있다"고 밝혔다. 새정치연합은 우윤근 정책위의장을 내세워 특검 추천권을 사실상 야당 또는 진상조사위가 행사하는 조항을 특별법에 명시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사실상의 추가협상인 셈"이라면서 "정책위의장 간 실무협상이지만 큰 틀의 기조를 흔들 수 있는 세부안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박 원내대표는 11일 의원총회에서 실무협상 결과를 포함한 이번 합의의 배경과 내용을 의원들에게 보고하고 이해를 구하는 '정면돌파'에 나서기로 해 의원총회가 세월호법 사태의 큰 고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2014-08-10 17:07:19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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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필의 청론탁설]조세체계, 소득재분배기능 살려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금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양극화 문제가 초미의 과제가 된지 오래다. 그러나 이러한 난제가 당장 경기회복의 명제 앞에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최경환 경제팀이 올인 하다시피 경제를 살리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으나 양극화 해소 방안은 조금도 진전된 것이 없다. 특히 세제개편을 통해 '부자증세'를 내세웠지만 지난해 세제개편안에 비해 대기업과 고소득층의 세 부담 증가액은 오히려 3분의1로 줄어들었다. 작년에 정부는 올해 대기업과 고소득층의 세 부담 증가액이 2조 9700억 원이 늘어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세제개편으로 올해 세 부담 증가액은 9680억 원으로 가벼워지게 됐다. 결국 중산?서민 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게 됐다. 갖가지 세액공제가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세제운영으로 우리나라는 조세의 소득재분배기능이 갈수록 퇴보하고 있다. 우리나라 조세체계가 소득불평등 개선에 기여하는 정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가운데 최하위 수준으로 조사됐다. OECD와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2년 한국의 세전 빈곤율은 0.173%로 OECD 27개 나라 가운데 가장 낮다. 그러나 세후 빈곤율은 0.149%로 이스라엘, 칠레, 스페인에 이어 네 번째로 높다. 세금만 뗐을 뿐인데 OECD회원국에서 가난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가 돼 버린 것이다. 빈곤율이란 중위소득의 절반도 못 버는 빈곤층 인구가 총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프랑스의 경우 세전 빈곤율(0.347%)과 세후 빈곤율(0.079%) 차이가 0.268%포인트로 OECD 회원국가운데 가장 크다. 그만큼 소득불평등도가 개선됐다는 뜻이다. 이는 우리나라에 비해 11배나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는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무차별적으로 부과하는 부가세로 소득재분배기능의 역진성이 강하다. 더욱이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가속화돼 어느새 일본이나 프랑스보다도 불평등한 나라가 됐다. 최근 "21세기 자본론'으로 세계적인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상위 10%의 소득집중도는 45.51%로 프랑스(30.69%)는 물론 일본(40.50%)에 비해 높고 미국(48.16%)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1%가 전체의 12%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따라서 당장의 경제 살리기가 매우 중요하지만 조세체계의 전면적인 개혁으로 소득재분배기능을 살려야 한다. /언론인

2014-08-10 11:32:51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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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꽃보다 사람이 먼저다

얼마 전 서울시 서소문청사 13층에 마련된 정동전망대에 올라가 봤다. 경운궁[덕수궁]을 비롯해 정동 일대는 물론 멀리 서울광장 일대가 한 눈에 들어왔다. 명소별 설명이 담긴 안내문도 있어 이 일대의 어제와 오늘을 조망하기에 맞춤했다. 특히 경운궁 대한문 앞에서부터 정동제일교회와 돈의문 터까지 이른바 정동 일대는 이 땅의 근현대사가 녹아 있는 장소여서 전망대의 의미가 남달랐다.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도 눈에 띠었다. 대한문 앞에 있던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천막 분향소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4월 서울 중구청이 모두 철거해 버린 탓이다. 그 자리에는 다시 천막을 치지 못하게끔 대형 화단이 조성된 상태다. 참 아이로니컬했다. 중구청은 그 천막들이 불법적으로 설치된 것이기에 어쩔 수 없이 철거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지만 당시 중구청의 행위도 지극히 탈법적이었다. 대한문 앞은 역사문화환경 보존구역이기에 만약 그곳에 화단을 조성하려면 먼저 문화재청으로부터 현상변경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중구청은 그러한 절차를 밟지 않았다. 탈법이 불법을 나무란 꼴이었다. 정동전망대에서 내려와 농성 천막이 있던 곳으로 향했다. 그 어디에서도 지난 2009년 왜 3천 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공장을 떠나야만 했는지, 왜 24명의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왜 노동자들이 대한문 앞에 천막을 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고민은 엿보이지 않는다. 물론 왜 꼭 공공장소에 농성장을 차려야 하는지 불편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사회적 약자 중에서도 약자인 해고 노동자들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광장과 거리'는 벼랑 끝에 놓인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를 시민들에게 직접 호소할 수 있는 마지막 장소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 용산참사 유가족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 그리고 경남 밀양의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서울로 올라와 대한문 앞에 이른바 '함께 살자 농성촌'을 만들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임시시설'이라며 만들어 놓고 1년이 넘도록 그대로인 대한문 앞 화단... 과연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를 꽃밭으로 대치해버리는 이 사회를 정상적인 사회라 할 수 있을까? /'다시,서울을 걷다' 저자

2014-08-07 15:55:31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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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한국인은 왜 보신탕을 먹을까?

고대 동양에는 보신탕 문화가 보편적이었지만 지금은 유독 한국과 베트남에만 남아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역사적 배경도 있다. 보신탕의 뿌리는 중국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기원전 676년, 복날 개를 잡아 제사를 지낸다고 했으니 복날 보신탕의 기원이다. 뿐만 아니라 개는 중국에서 제왕의 음식이었고 하늘에 바치는 제물이었다. 주례(周禮)에는 개가 말, 소, 양, 돼지, 닭과 함께 제왕이 먹는 여섯 가지 고기에 포함돼 있다. 유교에서는 개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하지만 6세기 남북조시대 무렵부터 중국 문헌에서 개식용의 기록이 사라진다. 농경민족인 한족이 북방의 유목민에게 쫓겨 남쪽으로 밀려났을 때다. 유목민에게는 개식용의 풍속이 없다. 유목민에게는 개가 가축을 지키는데 절대 필요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중국에서 보신탕이 사라진 이유로 1,000년이 넘는 유목민족의 지배를 꼽기도 한다. 6-7세기 중국의 북쪽인 유목민인 선비족이 점령했다. 이어 당나라를 제외한 10세기 이후는 거란족의 요나라, 여진족인 금나라가 다스렸다. 다음이 몽고의 원나라고 명나라를 거쳐 여진족인 청나라의 통치가 이어졌다. 그러니 지배민족인 유목민족의 영향을 받아 보신탕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보신탕이 사라진 시기도 비슷하다. 서기 675년, 덴무(天武)일왕이 소, 말, 개, 닭, 원숭이는 먹지 말라며 육식 금지령을 선포한다. 바꿔 말하면 이전까지 개는 물론 원숭이도 먹었다. 일본인이 고기를 다시 먹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 명치유신 이후다. 1,200년 만에 다시 고기를 먹는데 굳이 개고기를 먹을 이유가 없었다. 반면 우리는 보신탕을 배척하지 않는 농경사회였고, 전통 유교사회였다. 게다가 고려 때 몽고의 영향 이외에는 유목민족의 음식문화를 강요당했던 적도 없다. 베트남 역시 우리와 역사적 배경이 비슷하다. 지금처럼 개가 반려견도 아니었기에 보신탕 문화가 사라질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음식문화평론가

2014-08-06 10:30:26 메트로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