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피 시대] 불장 이끈 외국인, "코스피 부스트 업"vs “노키아 꼴 날라”
"이재명 정부들어서 외국인이 K주식을 20조원어치나 샀다고요? 언제 이렇게 많이 산 건가요? 깜놀이네요."(증권업계 관계자 A씨) 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이 보유한 한국 주식의 시가총액 비율은 31.55%다. 올해 초 28.88%(1월 2일 기준)와 비교해서 2.67%포인트 높다. 시가총액 비율이 커졌다는 의미는 그만큼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많이 매수했다는 의미다. 4년 전 코스피가 3000선을 찍었던 한국 강세장 시기를 기점으로 해서 서서히 한국 기업 주식을 덜어냈던 외국인은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올해 6월4일 이후 폭발적인 매수세로 돌아섰다. 새 정부 출범 기대감이 작용했던 지난 5월부터 이날까지 외국인은 한국 증시에서 20조3200억원어치 주식을 사 모았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나타났던 '바이코리아'(2009년 32조원, 2010년 23조원) 기록도 바꿀 역대급 매수세다. 개인도, 연기금도 다 떠나는 한국 증시에서 외국인의 영향력은 날로 커지고 있다. 왜 나 홀로 매수하는 걸까. 외국인 중심의 시장이 낳을 부작용은 없는 걸까. ◆달라진 '기업 거버넌스', 외국인 불러 모아 올해 외국인이 눈독 들인 한국 증시에선 각종 신기록이 쏟아지고 있다. 외국인 보유 시총은 이달 2일 처음 1000조원을 넘긴 뒤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27일 액면분할 후 처음으로 '십만전자'(주가 10만원대)를 찍었다. SK하이닉스는 '50만닉스"(주가 50만원) 를 넘어 60만원대 향해 질주한다. 외국인의 왕성한 매수세에 대해 여의도 증권가는 크게 3가지 이유를 꼽는다. 첫째, 반도체 슈퍼파이클 기대감과 조선 등 주요 업종의 수출 회복세 속에 예상되는 실적 개선이다. 그간 한국 반도체 업체들에 대한 매도 의견을 자주 냈던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최근 삼성전자 목표 주가를 12만원으로 올렸고, 노무라증권은 SK하이닉스 목표 주가를 54만원으로 높여 잡았다. 둘째, 정부가 만성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저평가)를 해소하기 위해 추진한 거버넌스 개혁, 친 시장 정책효과다. JP모건은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 증시는 상법 3차 개정, 배당소득 분리과세,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이 병행될 경우 12개월 내 코스피 4000~5000선 도달이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한국은 제조업 경쟁력, AI 밸류체인, 낮은 밸류에이션, 거버넌스 개혁 의지라는 네 가지 요인을 동시에 갖췄다"며 "이는 신흥국이 아닌 '준선진국형 리레이팅 사이클'"이라고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달러당 1400원대의 달러 대비 원화 환율도 외국인의 한국 주식 매수 욕구를 자극하는 요소다.증권가에 따르면, 지난 2011년 이후 외국인은 원화 환율이 1300원 이상일 때 순매수세를 보여 왔다. 외국인은 달러를 원화로 바꿔서 한국 주식을 사는데, 1400원대에서 한국 돈으로 주식을 샀다가 향후 원화 강세가 되었을 때 달러로 바꾸면 환차익을 챙길 수 있다. 이영곤 토스증권 투자전략센터장은 "2021년은 '돈이 남아 도는 장세'였다면, 지금은 '돈이 갈 곳을 찾는 장세'"라며 "외국인 매수의 핵심은 환율이 아니라 이익"이라고 말했다. 이 센터장은 "환율이 1450원을 넘었는데도 외국인은 팔지 않았다. 그건 단순한 수급이 아니라, 한국의 반도체·전력기기·조선업이 리레이팅(재평가) 구간에 들어섰기 때문이고. 글로벌 자금이 그 중에서도 저평가된 한국 시장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번 장세의 유동성은 위험한 과잉이 아니라 '기대와 실적이 정렬된 유동성'"이라며 "기업 이익이 오르고, 자금이 이를 따르는 구조로 전환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외국인 "시장 왜곡 우려vs 코스피 이끄는 마차" 외국인 보유 시총은 이달 2일 처음 1000조 원을 넘긴 뒤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외국인의 증시 영향력이 커지면서 걱정도 커졌다. 한국은 위기 때마다 '글로벌 ATM(현금인출기)'이 된 아픈 기억 때문이다. 한국경제는 대외 의존도가 높다는 숙명에 문을 열어놔 외국인이 쉽게 돈을 뺄 수 있는 구조다. 현재 한국 경제가 처한 현실도 바람앞에 등불 신세다. 한미 무역협상이 최대 쟁점인 3500억달러(약 500조원) 규모 대미 투자 패키지 놓고 합의접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미 관세협상이 길어지면 원화 약세(외국인 투자자금 이탈) 국면에 빠질 수 있다. 외국인의 커진 힘은 시장을 왜곡시킬 가능성도 있다. 반도체 등 시총 상위 종목을 편식하고 있어서다. 외국인 매수세가 집중되면서 10월 1일부터 28일까지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1~10위 종목의 거래대금이 전체의 약 37%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반도체 수퍼사이클'(초호황기) 기대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삼성전자우선주 등이 처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만으로도 코스피 전체 거래대금의 25%가량을 차지해 거래 쏠림이 이를 방증한다. 강진혁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코스피는 반도체와 2차전지 등 대형주 수급 쏠림이 야기한 '왜곡된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키아 꼴이 날 수 있다는 얘기다. 과거 핀란드 증시는 노키아의 몰락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한때 휴대전화 시장에서 세계 1위 자리를 지켰던 노키아는 2007년 기준 핀란드 헬싱키 증시에서 시총 70%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후 애플과 삼성에 밀려 주가는 5년 동안 90% 이상 폭락했고 핀란드 증시도 반 토막 났다. 다만 이 같은 우려는 지나치다는 시각도 있다. 이영곤 센터장은 "지금 외국인 매수는 환율이 아니라 한국의 체력에 대한 투자"라며 "정책 불확실성만 크지 않다면 내년 말쯤엔 4000이 일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통된 목소리는 있다. 외국인을 붙잡고, 더 끌어들일 터전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을 과제로 꼽는다. 이를 위해서는 외환결제 인프라 개선, 공매도 전산화, 외국인 투자 절차 간소화가 이뤄져야 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MSCI 편입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외국인 자금의 체류 시간을 늘리는 제도적 전환점"이라며 "유동성·펀더멘털·제도의 세 축이 동시에 맞물릴 때 비로소 4000은 일상이 된다"고 말했다. 주주가치 제고 및 주주 환원도 확대해야한다. JP모건은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 증시는 상법 3차 개정, 배당소득 분리과세,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이 병행될 경우 12개월 내 코스피 4000~5000선 도달이 가능하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