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의 '청맹과니'] 죄와 벌
'신은 나 함무라비의 이름을 불러, 이 땅 가운데 정의의 규범을 세우도록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악한 자, 악을 행하는 자를 섬멸하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했다.' 함무라비 법전의 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확실히 인간세상에서 법은 정의를 세우고, 악한 자를 섬멸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형법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현대의 형법은 '죄형법정주의'를 근간으로 만들어 졌다. 범죄와 형벌을 미리 규정하고, 이 규정된 범위 내에서만 범죄자를 처벌할 수 있다는 원칙이 죄형법정주의이다. 형법과 죄형법정주의는 단순히 범죄자를 처벌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범죄와 처벌을 미리 알려서 범죄를 예방하고, 사회의 안전을 지키는 것도 형법의 중요한 기능이다. 이 죄형법정주의의 사상적 기초가 되는 철학이 포이어바흐(Feuerbach)가 말한 '심리강제설'이다. 포이어바흐에 따르면 인간은 쾌락을 쫓고 고통을 피하는 본능을 가졌다고 한다. 사람들은 쾌락을 쫓아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 그러나 범죄로 얻어지는 쾌락보다 형벌에 의한 고통이 더 크다고 판단되면,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된다. 이런 심리적 강제에 의해서 범죄를 예방하고, 사회를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 포이어바흐의 생각이었다. 최근 신림역 흉기난동사건과 분당 흉기난동사건으로 온 국민이 공포와 분노에 휩싸였다. 이 사건들은 자연스럽게 사형제 존폐에 관한 논쟁에 불을 붙였다. 현재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3일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실질적 사형폐지국'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민들 사이에서는 다시 사형을 집행하라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심리강제설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여론은 합리적이다. '수많은 사람을 죽이더라도, 절대로 나는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다면, 살인을 예방할 수 있을까?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도저히 용서될 수 없는 살인범들이 정신질환, 만취상태 등을 주장해서, 감형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운만 좋으면 가석방도 될 수 있었다. 더구나 요즘 교도소는 인권이 잘 보장되어 예전만큼 수형생활이 힘든 것도 아니다. 힘없는 국민들은 분노하면서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아야한 했다. 그리고 최근 보도에 따르면, 사형수 한명 당 연간 3000만원이상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모두 국민 세금이다. 더 기가 막힌 사실은 이 비용 속에 피해자의 가족들이 낸 세금도 포함된다는 점이다. 국가가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살인범의 옥바라지를 강요하는 꼴이 되고 만다. 이 상황을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사형제도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에서 심리가 진행 중이고, EU와의 외교문제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쉽사리 결론 낼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은 반드시 필요하다. 정의를 실현하고 악을 물리치는 것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오래된 숙제이다. 함무라비법전 역시 이런 인류의 고민을 잘 보여준다. 물론 현대의 형법은 더 이상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알려진, 함무라비법전의 동해보복법을 지향하지 않는다. 사실 동해보복이란 경우에 따라 무척 잔인한 처분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원전 1750년의 함무라비왕은 왜 이렇게 잔인한 법을 만들어야만 했을까? 필자는 확신한다. 아마도 함무라비왕은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정의'라는 굳은 신념을 가졌을 것이라고……. 김준형 칼럼니스트 / 우리마음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