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수의 라이프롱 디자인] 살기위해 공부한다
기술과 교육이 경주를 벌인지 오래되었다. 어쩌면 인류사 자체가 기술과 교육의 경주(競走)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의 생애는 더욱이 기술을 뒤쫓는 추격전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배우는 게 늘 새로운 기술이니 말이다. 인생이 다름아닌 평생학습이다. 오래 전엔 제대로 된 기술 하나만 잘 배우면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었다. 이렇게 잘 배운 사람들이 호의호식하고, 그걸로 몇 대에 걸쳐 가업을 일굴 수도 있었다. 오늘날 문해(literacy)라는 말도 따지고 보면 <읽고 쓸 줄 아는(literate)> 식자가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에서 비롯되었다. 그야말로 교육의 우위시대였다. 인생은 짧고 기술은 길었다. 기술이 교육을 역전하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과학혁명, 산업혁명 등 기술의 혁신사를 거론하자면 끝이 없다. 교육을 따돌리고 기술에게 역사 발전의 바통을 넘겨주는 혁혁한 사건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산업혁명이 클래식이라면 이제는 디지털이다, 인공지능(AI)이다, 교육을 송두리째 뒤집는 아노말리들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잘 배운 사람인들도 호의호식하기가 힘들어졌다. 한평생은 고사하고 몇 년이나마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이 있기나 한 것인지 모르겠다. 여기에 기술혁명이 인생의 길이까지 담보하기 시작했다. 인생은 길고 기술은 짧아졌다. 두고두고 몇 대에 걸쳐 배우면 되었던 것인데 결국은 한 사람의 수명에서 몇 번이고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이 되었다. 필자의 중앙대학교 석사·박사 지도교수님은 이를 <화이트 헤드의 고민>이라고 명명했다. 인간의 수명은 25년, 40년, 50년, 70년, 80년으로 늘어났는데, 사회변화 기간·지식의 변화속도는 고대로마시대 100년, 르네상스 70년, 18세기와 19세기엔 50년, 20세기엔 30년으로 빨라졌고, 21세기엔 더 빨라져서 10년에서 5년으로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전대미문의 사건이자 기술의 수명이 인간의 수명보다 짧아지는 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기술이 교육을 역전하는 걸 넘어 그 격차가 벌어지는 만큼 살기가 힘들어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기술이 상승하고, 교육이 그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는 만큼 벌어지는 간극을 사회적 불행이라고 했다. 개인사에서 보면 이 간극의 크기, 즉 격차가 생존의 고통지수인 것이다. 평생학습은 다름 아닌 생존권의 교육이다. 서울시 은평구평생학습관의 사무국장 이야기가 귀에 생생하다. "학습상담을 하다보면 예전엔 많은 분들이 평생학습하면 자아성찰이라고 추상적으로 말했어요. 요즘엔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거의 없어요. 모두 생존학습이라고 말하시죠. 배워야 음식점에 가서 먹을 수 있지, 직장에 가서 돈을 벌 수 있지, 그렇게 말이죠." 교육이 기술을 따라잡을 일은 없을 것 같다. 다시 교육의 우위시대를 기대할 것도 없다. 문제는 명확하다. 우리는 어떻게 이 생존의 고통지수를 줄일 것인가? 살기 위해서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그에 대한 답을 이 칼럼을 통해 찾아가고 싶다. 인생은 긴 '라이프롱'이고, 우리는 이제 이 인생을 세밀하게 설계해야만 한다. /임경수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