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명화 에세이] 화가들의 세이렌, 스타벅스의 세이렌
화가들의 세이렌, 스타벅스의 세이렌 ‘나니아 연대기의 판, 미로 속에 갇힌 미노타우르스, 왕자와 사랑에 빠진 인어공주…’ 우리가 흔히 접한 신화와 동화 속 반인반수(半人半獸)들이다. 실제로 상상해본다면 징그러워 얼굴을 찌푸릴 수도 있을 법한 그들의 모습은 많은 시간과 스토리텔링, 다양한 그림을 통해 친근하게 변해왔다. 인간을 사랑해서 목소리를 마녀에게 내어주고 다리를 얻은 인어공주, 그녀의 기원은 신화 속 ‘세이렌’이다. 세이렌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는 반은 인간, 반은 물새의 모습으로 표현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반은 인간, 반은 물고기인 인어가 되었다. 세이렌은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는 선원들을 노랫소리로 홀리는 요정이자, 나아가 그들을 바다에 빠져 죽게 하는 팜므파탈이다. 신화와 문학 속에 등장하는 여인을 아름답게 묘사하는데 뛰어났던 19세기 영국의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1849~1917)가 남긴 세이렌은 신비롭고 요염하기 그지없다. 남작 작위까지 받았던 인기 화가 영국의 프레드릭 레이튼(Frederick Leighton1830-1896)이 그린 세이렌은 젊은 청년을 꼬리로 칭칭 감아 유혹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가 그린 세이렌은 화가의 성격을 닮아 능청스럽게 바다에서 유유자적 하고 있다. 이처럼 화가들은 반인반수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운 존재인 ‘세이렌’을 그림으로 많이 남겼다. 그리고 지금, ‘세이렌’ 그녀는 우리가 자주 접하고, 자주 가는 한 브랜드의 로고에서도 요염하게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있다. 스타벅스 로고는 바로 신화에 나오는 세이렌(Siren)이라는 바다의 인어다. 그렇다면 스타벅스는 왜 매혹적인 목소리로 노래하며 배의 선원들을 유혹하는 ‘세이렌’을 로고로 활용했을까? 1971년 시애틀에서 시작되어 이제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프랜차이즈 커피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된 스타벅스. 처음에는 커피 원료와 커피 만드는 기계를 팔았지만 1982년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가 매장 운영과 마케팅 디렉터로 영입되면서 스타벅스는 크게 발전한다. 스타벅스 홈페이지에 적혀있는 이야기는 이렇다. 스타벅스를 창업했던 세 명의 동업자는 멜빌(Melville)의 모비딕(Moby Dick)이라는 작품에 등장하는 커피를 사랑하는 피쿼드호의 일등항해사 스타벅(Starbuck)에서 스타벅스(Starbucks)를 생각해 냈고, ‘세이렌’이라는 인어를 심볼로 활용함으로써 초기 커피 무역상들의 항해 전통과 열정, 로맨스를 연상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화가들이 그린 그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이렌을 보면 ‘매혹, 유혹’이라는 단어가 쉽게 떠오른다. 마치 고운 노랫소리로 뱃사람들을 홀려 유혹하듯이, 커피 향과 쾌적한 공간으로 고객들을 유혹해 스타벅스에 자주 오게 만들겠다는 의미가 담겨있지는 않을까? 결국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길을 걷다가도 하루에도 몇 번씩 현대판 세이렌과 인사하고 유혹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1971년 테리 헤클러는 16세기 노르웨이 판화 속 세이렌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로고를 디자인했다. 첫 로고의 디자인은 지금보다 훨씬 사실적이고 선정적이다. 가슴과 배꼽을 자신 있게 드러내고 다리(꼬리)를 벌리고 우리를 바라보는 세이렌의 모습이 다소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갈색에서 현재의 녹색 세이렌으로 변신하기 까지는 몇 번의 디자인 과정을 거쳤다. 1992년 두 번째 변형이 이루어지는데 세이렌의 얼굴 크기를 확대하고 상체는 일부만 드러나게 했다. 다리를 벌린 세이렌의 모습은 스타벅스라는 브랜드가 전 세계 고객들에게 뻗친 유혹의 결과가 어느 정도 만족스러웠던 건지 사라졌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에만 400개가 넘는 매장이 있고, 전 세계 60개국 이상에서 총 2만여 개에 가까운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니, 세이렌처럼 고객들을 유혹하겠다는 스타벅스의 목표는 성공한 셈이다. 이제는 스타벅스를 얄미워하는 사람이 많아져도 우리는 이미 호되게 유혹을 당한 후니까. 스토리의 힘은 오래 전부터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갔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이야기를 할 때 우화와 비유를 활용했고, ‘셰헤라자데’는 천일하고도 하루 동안 왕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어 죽음을 면하지 않았는가? 대중들은 브랜드의 심벌과 함께 스토리를 기억하기 때문에 브랜드에 얽힌 사연이나 심벌이 지닌 스토리는 중요하다. 화가들이 그린 ‘세이렌’을 보면 하나같이 매력적이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 노래 ‘미인’의 가사처럼 자꾸만 보고 싶어진다. 화가들이 그려놓은 세이렌의 미모가 아름다울수록 자연스럽게 스타벅스의 로고 ‘세이렌’의 유혹의 미 역시 덩달아 비례하게 느껴진다. 신화 속 세이렌이 아름다운 여인의 이미지로 대표되지 않았더라면 스타벅스는 그녀를 로고로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이렌’을 매력적인 여인으로 표현해준 화가들에게 스타벅스는 고마워해야 한다. 소규모 까페가 늘어나고, 동네의 구석진 까페를 사랑하는 나조차도 바쁘고 어디를 갈까 고민하게 될 때면 홀리듯이 스타벅스로 들어간다. 바쁜 시간, 바쁜 거리에는 어김없이 스타벅스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이 달콤한 유혹을 알면서도 당하고 말았다. 어느 날 문득 당신도 모르게 스타벅스에 들어와 있다면 분명히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당신을 홀린 그녀. ‘세이렌’ 덕분이리라. 이소영(소통하는 그림연구소-빅피쉬 대표/www.sotongart.com/출근길 명화 한 점, 엄마로 다시 태어나는 시간 저자)